태조 1년 7월 17일 병신 1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태조가 백관의 추대를 받아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르다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107017_001

 

태조 1년 10월 13일 신유 1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조준·정도전 등에게 《고려사》를 수찬케 하다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110013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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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실록은 1392년 7월 17일.에 시작한다. 그리고 3개월 후에 고려사를 수찬, editing. 모아서 편집하라고 한다. 즉 창작물이 아니다. 머리속에서 지들이 소설쓰듯이 쓰는게 아니라, 있는 자료들을 취합하는것이다. 저때도 고려에 대한 참조자료들이 널린 건 당연한거다. 고려때의 역사 뿐이겠나 남았던게.

 

그리고, 그 후 2년 3개월만에

 

태조 4년 1월 25일 경신 1번째기사 1395년 명 홍무(洪武) 28년 
정도전과 정총이 《고려사》를 편찬하여 바치다. 그들에게 내린 교서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401025_001
 

고려사 편찬을 끝낸다. 이 고려사가 소위 고려국사. 태조실록을 보면 정도전 등이 편찬한 고려사 를 고려국사 라고 지칭한다. 해서 이 최초의 고려사를 고려국사 라고 한다. 이는 전해지지 않는다.

 

 

정도전등 건국세력이 고려를 뒤엎고 펴낸 고려국사. 제대로 그대로 사실그대로 썼을리가 있겠나? 고려는 쓰레기고 그래서 조선을 건국했다는 사관이 주로 개입이 되었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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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5년 12월 29일 병자 3번째기사 1423년 명 영락(永樂) 21년 
지관사 유관·동지관사 윤회에게 《고려사》를 개수케 하다
http://sillok.history.go.kr/id/kda_10512029_003#footnote_4
 

세종 5년이다. 그 전해 5월에 실질적 왕 상왕인 태종이 죽었다. 55세. 이제 본격적으로 세종 스스로 정치를 할 수가 있게 된다. 

 

세종은 명한다. 고려사를 다시 개수하라, 개정하라, 다시 쓰라. 물론 태종때도 개수작업을 했으나 진척이 없었었다.

 

저 날의 저 기사가 내용이 많은데 눈여겨 볼 대목이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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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왕(元王) 이하는 비기어 참람하게 쓴 것이 많다 하여, 즉 종(宗)이라고 일컬은 것을 왕이라 쓰고, 절일(節日)이라고 호칭한 것을 생일(生日)이라 썼으며, 짐(朕)은 나[予]로 쓰고, 조(詔)를 교(敎)라 썼으니, 고친 것이 많아서 그 실상이 인멸된 것이 있고, 또 운경(云敬)은 도전의 부친으로, 별다른 재능과 덕행도 없었는데도 전(傳) 을 지어 드러내고, 정몽주(鄭夢周)·김진양(金震陽)은 충신(忠臣)인 것을 가차없이 깎고 몰았으며, 오직 자기의 일은 비록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기록하여, 그 옳고 그른 것을 정한 것이 〈그네들이〉 좋아하고 미워하는 데서 나왔고, 착하다고 한 것과 악하다고 한 것이 옛 역사를 그르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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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태조 왕건이 건국시 중국의 속국이 아니었다. 헌데 정도전이 고려국사를 수찬하면서, 고려실록에 임금을 종宗, 태어난 날을 절일, 자기를 칭할때 짐朕, 임금이 내리는 지시글 조詔라 한 것을 다 하대 용어로 바꾼거다. 왕이 자칭할때 짐. 이라 한것은 진시황제. 황제들만 할 수 있는 말이란 것이고, 감히 고려따위가 머라고, 졸라 제후국인 허섭한 나라인 주제에, 우리 조선과 마찬가지로 조또 아닌 나라가, 감히 황제국의 용어들을 쓰다니, 하면서 정도전 등이 다 비칭한것이다. 조선이 그리 제후국으로 쓰는 것처럼.

 

헌데 저 주장하는 이들은 저 정도전의 저런 고친내용에 대해 동의하는게다. 지금 저 실록 번역이 좀 이상하게 되어있다 따옴표도 그렇고, 

 

조선왕조실록, 2026년에 새로 탄생…재번역 15년 대장정
기사입력 2015-01-26 07:35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50126000052&md=20150126073518_BL

 

지금 실록 번역본은 1968에서 1993, 25년동안 번역한 그 한글본을 보는 것이다. 이것 조차도 지금 보기 이상한거라, 재번역 작업을 2011년에 시작했다. 앞으로 10년이 더 걸린다. 

 

 

원래 고려는 태자. 태자빈 했다. 이걸 세자 세자빈 으로 정도전이 바꾼거라. 고려는 중국의 속국이 아니다. 

 

헌데 저런걸 세종때 신하들은 말이다, 왜 바꾸느냐 저런것까지. 정도전 등이 저렇게 고려사를 제후국 수준으로 수정하여 고친것은 당연한거다 하는거라. 그러면서 고칠게 있는 걸 따로 제시하는거라. 출생이 허섭한 정도전이 지 아부지 운경은 띄우고, 정몽주는 깎아내렸다 충신인데. 이런걸 고치겠다고 신하들은 세종께 주장한다.

 

 

정도전의 출생은 태조실록의 그 졸기. 그게 전부다. 그 이상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머 도담삼봉이 어쩌니, 길가다 고승 말을 듣고 낳아서 도전이라느니 다 걍 뻥이고 야사고 전설이다. 정도전의 형제가 도존 도복이다. 

 

정도전 아비 운경은 없는 집안에서 낳아서 형부상서, 법무부 장관까지 한거보면 능력이 탁월한 사람. 헌데 문제는 엄마 영주 우씨다. 그 엄마의 부모가 중과 여비. 이게 정도전의 뒷다마를 저렇게 실록에서도 까는 이유가 된다. 

 

 

저 날 기사에 나오는 다음 대목을 보자. 이 대목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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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과 윤회에게 명하여, 도전이 고친 것까지도 아울러 모두 구문(舊文)을 따르도록 하였다. 이에 유관이 글을 올려 말하기를,
"삼가 상고하오니, 한나라와 당나라·송나라의 제도에 있어, 서한(西漢) 시대에는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와 태종 효문 황제(太宗孝文皇帝)와 세종 효무 황제(世宗孝武皇帝)와 중종 효선 황제(中宗孝宣皇帝)만 종의 존호를 올렸고, 그 나머지는 모두 종으로 일컫지 않았으며, 동한(東漢)에 있어서는 세조 광무 황제(世祖光武皇帝)와 현종 효명 황제(顯宗孝明皇帝)와 숙종 효장 황제(肅宗孝章皇帝)와 목종 효화 황제(穆宗孝和皇帝) 이외에는 또한 종으로 칭호하지 않았으며, 당나라에서는 고조(高祖) 이하로 모두 종으로 칭호하였고, 송나라에서는 태조 이하로 또한 모두 종으로 칭호하였습니다. 전조(前朝)에서 이것을 본받아 태조로부터 내려오면서 또한 모두 종으로 칭호하였으니, 이는 참람한 일입니다. 그러나, 혜종(惠宗)·정종(定宗)은 모두 묘호(廟號)이므로, 이번에 혜왕(惠王)·정왕(定王)으로 칭호를 고쳤습니다. 묘효로써 시호[謚]를 삼는 것은 그 진실을 잃는 것 같아서, 전조사(前朝史)의 시말(始末)을 상세히 상고하오니, 태조의 시호는 신성 대왕(神聖大王)이요, 혜종의 시호는 의공 대왕(義恭大王)이었으며, 정종 이하도 모두 시호가 있었습니다. 재위(在位)의 끝나는 해에 이르러서는, 왕이 아무 전에서 훙(薨)하다 하고, 시호를 올리기를 아무 왕이라 하고, 아무 능(陵)에 장사하고, 묘호는 아무 종(宗)이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고종에 이르러서 원나라 조정에서 추후해서 충헌왕(忠憲王)이라 시호하였고, 원종(元宗)도 추후해서 충경왕(忠敬王)이라 시호하였으며, 충렬왕(忠烈王)으로부터 그 이하는 모두 원나라 조정의 시호를 받은 것이오니, 비옵건대, 전조사(前朝史)에 있어 태조를 신성왕(神聖王)이라 고치고, 혜종을 고쳐서 의공왕(義恭王)이라 하며, 정종 이하는 모두 본래의 시호로써 아무 왕으로 칭호하면, 거의 사실을 속이는 것이 되지 않을 것이오니, 엎디어 바라건대, 하감(下鑑)하시고 재량 선택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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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과 윤회. 지관사와 동지관사. 춘추관의 직책이다. 춘추. 공자의 춘추. 역사다. 역사를 정사를 기록관리하는 곳. 그곳의 제 2서열이 지관사, 그 다음 서열이 동지관사다. 지관사는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의 약자다. 

 

저말이 뭐냐면, 춘추관 제2서열인 지관사 유관이 말하는게, 자기들이 고려시대에서 남긴 고려실록을 보니까, 이 고려애들이 말이죠, 지들이 우리 조선과 같은 허섭한 제후국 주제에, 중국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왕들님께 쓰는 종宗 이란 존호를 평소에서 쓰더라고요. 아니 그 종宗이란 호칭은 임금이 죽고 나서 3년상 다 치르고 신위를 종묘에 묘시고 그에 부여한 묘호廟號인데, 이걸 시호謚號, 즉 존칭으로 살아있을때도 그 임금을 호칭할때 쓰더라고요. 참나 제후국 속국 신하국 주제에 말이죠. 

 

우리도 지금 세종께서 죽으시면 그 뒤엔 세종 하는거지. 지금 살아계신데 세종이라 안하잖아요. 헌데 저 허섭한 고려따위가 살아있는 당사자 앞에서 당시 혜종 정종 하더라고요. 머 이따위 건방진 고려ㅇㅐ들이 있대요? 어처구니가 없어요. (세종 이도 의 묘호는 세종世宗, 시호는 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 왜 묘호를 시호로 쓰느냐 하는거다)

 

하물며 또, 태조 왕건을 신성대왕 또 누구는 의공대왕 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니 대왕은 우리의 위대한 중국 왕님들이 대왕이지 지들이 머라고 대왕 대왕 어이구 참나. 

 

왕이시여, 이런건 제후국 속국 신하국 주제에 맞게, 우리 조선처럼, 비하해서 고쳐야 해요. 어떻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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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의 말은 매우 사대적인 관점이다. 헌데 이게 조선왕조의 시각이다 모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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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답을 보자 바로 밑에

 

임금이 말하기를,

"이와 같은 미소(微小)한 별(星)의 변동은 기록할 것이 못된다. 고려 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천변과 지괴를 정사(正史)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전례에 의하여 다시 첨가하여 기록하지 말고, 또 그 군왕의 시호는 아울러 실록에 의하여 태조 신성왕·혜종 의공왕이라 하고, 묘호와 시호도 그 사실을 인멸하지 말 것이며, 그 태후·태자와 관제(官制)도 또한 모름지기 고치지 말고, 오직 대사천하(大赦天下)라고 한 곳에는 천하 두 글자만 고칠 것이요, 또한 천하를 경내로 고칠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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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이, 그 대왕 글자만 신성대왕 의공대왕 하지말고 신성왕 의공왕 이라 하고. 나머지는 다 그대로 써라. 하는거라. 그 황제국의 관제를 취한 관직명들, 태후 태자 라고 쓴 호칭들. 다 당시 고려인들이 쓴 글 그대로 쓰라 그 당시대로. 

 

이게 소위 직서直書주의다.

 

조선시대 그나마 온전한 관점의 사람이 세종이다. 세종이 그 시대까지의 모든 자료를 집대성한 것이다. 난 세종을 집대성의 대가, 집대성한 업적으로 높이 평가하나, 그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세종은 창조 하지 않았다. 세종은 모았을 뿐이다. 오직 나만의 세종에 대한 평가다.

 

invent. 창조하다. Create or design (something that has not existed before),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Make up (an idea, name, story, etc.), especially so as to deceive someone. 그래서 invent에는 사기치다 란 말이 있다.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말은 사기다.

 

 

세종이 자기 아들 문종의 마누라, 즉 세종의 맏며느리 세자빈 순빈 봉씨에 대해서 그 벼라별 봉씨 추잡한 이야기 속내 털어놓으면서 도승지한테 하소연하듯이 이야기 하는 긴 글 실록글 보면, 세종 증말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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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까지도 말이다. 이땅은 자주적, 주체적인 국가였다 왕조였다. 

 

저리 고려실록 지들이 본거 어이없어하면서 어찌 짐 이라 하고 조서 라 하냐, 노예국으로 어이없는거라. 실록에도 해서 교서를 내린다 하지 조서를 내린다고 안한다. 고려실록은 조서를 내린다 하고 써있나 보다. 이런 고려실록까지도 없앴으니.

 

 

하물며 고구려 백제 신라를 봐라. 그따위로 제후국 처신했나.

 

고구려 라는 나라는 더욱 모른다. 고구려는 그냥 신화다 신화. 지금 이땅의 역사가들에겐.

 

 

 

 

https://www.travelchinaguide.com/intro/history/

 

저 중국만 해도 기원전 2000의 역사를 나름 편년체로 쓸 수가 있다.

 

한나라가 기원전 2백년 즈음이다

 

http://ctext.org/faq/zh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중국철학서전자화 계획으로 만든 사이트. 저기에 저 한대 전과 후의 철학서들. 

 

이나란 기껏해야 최치원 계원필경. 최치원이 857년 ~ 908년.

 

 

 

 

아무~것도 모르고, 국제관계 아무~것도 모르고, 병자호란이 왜 터졌고 그 이전에 임진란이 왜 터졌는지도 모르고, 식민지가 왜 되었는지도 모르고, 오직 도덕이니 정의니 만 찾고, 지들만의 정의 지들만의 도덕, 

 

그러다가 튀고, 지나라 민들 포로로 모두 잡혀가서 노예질 해도 관심없이 각자도생하라 하고, 경상도서 왜성 쌓으민서 조선민들 죽이고 수탈하고 해도 각자도생하란 선조 들이 여전히 정치인들로 환생해서 넘쳐난다 이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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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정신분석학으로 접근을 하면 말이다, 자기 생활이 졸라게 구린 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정의를 외친다. 이건 정신분석하는 전문의들이 하는 말이다. 

 

지들 정의만 정의, 지들 빠만 정의. 지들은 빛이요 상대는 어두움이라. 

 

요한복음에도 그따위 말이 없다. 일본이 번역한 영일 번역성경을 한글로 번역한 성경이 주류였고, 이제야 원문 희랍어를 직접 번역한 한글 성경이 나왔는지. 

 

 

정의를 짖어대는 니 안에 악마가 꿈틀대고 있음을 자각해라. 아니, 이미 그 악마가 꿈틀대서 니도 모르게 사악한 짓들을 하고 있을게라. 단지 너만의 정의로 너의 그 사악함을 포장질 하느라 자위질 변명질하며 니의 사악은 사악이 아니라 또다른 정의라고 짖어댈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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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와 현대사를 직시하지 않는 이들이 이대로 넘실댄다면

 

우리는 중남미의 지난 길을 갈 것이다. 

 

 

중남미가 해방을 하고 지금 2백년이 지났다. 이땅도 앞으로 150년은 편협질 극단질 정의놀이질 할거라 정의의 칼이랍시고 휘두르면서

 

 

중남미야 농산물 넘치고 구리 등 비철 넘치고 어디는 원유라도 넘치지

 

 

조또 없는 나라의 땅도 10만 제곱키로 좀 넘는 곳에서, 대체 언제까지 저런 편가름질 하면서, 지들의 잊혀진 이야기 찾을 생각 않고, 언제까지 저지랄 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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