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en.wikipedia.org/wiki/Universal_history
이땅은 저 기원전 역사가 없다. 고구려백제신라는 삼국사기에 기원전후부터 시작을 한다.
이땅은 저 정신세계가 터~~~엉 비었다. 면면히 내려오던걸 조선 초에 아주 아작을 내버렸다. 신에 대한 이야기 비서 고대이야기들을 갖고 있으면 죽었다. 다 태워버렸다.
태종실록 33권, 태종 17년 6월 1일 을유 3번째기사 1417년 명 영락(永樂) 15년
장례 제도를 의논하면서 서운관 구장의 참서를 불태울 것을 명하다
http://sillok.history.go.kr/id/kca_11706001_003
"내가 서운관 구장(舊藏)의 참서(讖書)를 모조리 불살라 버리라고 했었는데 아직도 있다는 말인가? 내가 비록 불민(不敏)하지만 두루 제왕(帝王)의 행적을 보았더니, 참위(讖緯)의 설(說)을 논자(論者)들은 모두 취하지 아니하였다. 술수(術數)로 말하면 수(數)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지만, 참위 같은 것은 허탄(許誕)한 데에서 나온 것이라, 심히 믿기에 족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와 같은 총명을 가지고도 오히려 도참(圖讖)에 미혹되었으므로 논자들은 이를 비평하였는데, 이것은 광무제가 도(道)에 불순(不純)한 때문이었다. 우리 조정에 이르러, 참서(讖書)에 말한 바, 목자(木子)510) ·주초(走肖)511) 의 설(說)은 개국 초(開國初)에 있었다. 정도전(鄭道傳)은 말하기를, ‘이것은 반드시 호사자(好事者)512) 가 만든 것이다.’하였지만, 마침내 이 책을 따르게 되니, 조정의 대신들도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정안군(靖安君)으로 있을 때에는 이것을 믿지 않았는데, 천도(遷都)하는 날에,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 하윤(河崙)이 심히 이 책을 믿어 도읍을 모악(母岳)513) 으로 정하고자 하였지만, 나만이 믿지 아니하고 한양(漢陽)으로 도읍을 정하였다. 만약 참서를 불살라 버리지 않고 후세에 전한다면 사리(事理)를 밝게 보지 못하는 자들이 반드시 깊이 믿을 것이니, 빨리 불살라 버리게 함이 이씨(李氏) 사직(社稷)에 있어서 반드시 손실(損失)됨이 없을 것이다."
세조실록 7권, 세조 3년 5월 26일 무자 3번째기사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팔도 관찰사에게 고조선비사 등의 문서를 사처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다
http://sillok.history.go.kr/id/kga_10305026_003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대변설(大辯說)》·《조대기(朝代記)》·《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지공기(誌公記)》·《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안함 노원 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 문태산(文泰山)·왕거인(王居人)·설업(薛業) 등 《삼인 기록(三人記錄)》, 《수찬기소(修撰企所)》의 1백여 권(卷)과 《동천록(動天錄)》·《마슬록(磨蝨錄)》·《통천록(通天錄)》·《호중록(壺中錄)》·《지화록(地華錄)》·《도선 한도참기(道詵漢都讖記)》 등의 문서(文書)는 마땅히 사처(私處)에 간직해서는 안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進上)하도록 허가하고, 자원(自願)하는 서책(書冊)을 가지고 회사(回賜)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寺社)에 널리 효유(曉諭)하라."
하였다.
세조때까지도 저짓을 하였다. 저런 기록 흔했다. 태워도 태워도 건국 후 60년이 되어가도 사람들은 참서라는 이름등의 그 옛이야기들을 갖고 있는거라. 이걸 모질라게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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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면서도 왕가들은 지들 왕족 죽으면 불제사는 또 지냈다. 궁궐여인네들은 소격서 안에서 일월성신께 제사를 지낸다. 차마 자기들 여인네들의 그림자 처리 기제는 못지우는거다. 자기들 선대 왕들의 죽음도 그런 부처나 일월성신께 넋을 기리는거다 위선의 극치다 극치.
조광조가 아예 대놓고 나서는 거라, 소격서 없애자 없애자 논의 되어왔지만, 정말 없애시라.
중종은 대비가 신경이 쓰인다. 효냐 정치냐. 유학정치를 택한다. 허나 조광조 죽이고 대비가 골골하다 곧 죽을 때가 되었다. 대비가 말을한다. 아 임금아 낵아 니 정치 관여하고픈게 아니라 일월성신 제사만 지내게 해주라.
연산군의 취임 시작도 저 불제사다. 왜 선대왕들은 다 지내게 했는데 못지내게 하냐는거지.
저런 이야기들이 다른게 아니라, 이땅의 집단무의식이야기다. 저게 그림자 이야기고, 이땅의 사람들은 그러한 자기들 그림자들을 저런 이야기들로 거기에 더한 신의 이야기들로 나름 처리를 한거다.
조선유학은 보면 볼 수록 참 끔찍하다. 그 좁다란 시선. 사유의 낮은 천장. 주자만 맹신하는 관점. 그 주자의 가례를 아직도 이놈의 땅은 모든 집안에서 따른다. 모든 민들이 왕의제사를 지낸다. 지금 집에서 지내는 것들의 제삿상차림은 왕들이 지내는 양식이다. 그릇갯수니 제사음식의 종류니 신분계급마다 다른걸 이 땅의 지금 인간들은 천자의 제사를 집안에서 명절마다 지내고 있다 코메디다 코메디.
조선유학은 정말 편협하다. 인간을 온전한 시선의 인간으로 둘 수가 없다.
진보란 애들은 보면, 정말 어설픈 조광조다 . childish cho. 세상물정모르고 인간에 대한 그 배후의 무수한 뒷이야기 관심없고 자기만의 정의 자기만의 도덕이다.
조선실록을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완전히 소꼽장난하는거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데 저따위 소꼽장난질이라니, 아이들 소꼽장난 있지 않은가?
세상은 그런 임팔라들이 오손도손 살게끔 두지 않는단다. 주위는 사파리다. 사자들이 침을 흘리고 노려보고 있는데, 니들 대체 머하는거니?
데카르트는 저짝에서 모든것을 의심해야 하고 수학해야 한다는데, 니들은 그래 아직도 아들이 죽은걸 일년짜리 제사옷을 입니 삼년짜리 제사옷을 입니 그런 소꼽놀음 질이라니 그래.
저 지랄들이, 저런 지들만의 소꼽놀이가 지금도 여전한거라 이땅에서.
저 지들만의 이성, 지들만의 합리주의가 그 유교적 맹점이 특히 이땅의 소위 진보지식층들에 쫘악 깔렸다. 저 기원전 수천년의 역사는 텅 비워넣고 괄호로 만들고, 15세기에야 만든 한글을 열심히 쓰잔다. 정신 우물이 기껏해야 1450년이다.
거기 세종실록 1443년 마지막해 마지막달 마지막날. 단 몇줄로 쓴 세종의 한글만들었다는 메세지를 봐라. 왜 하고많은 달 하고많은 날 중에 그 마지막 날에 그 자칭 위대한 작업을 그리 소심하게 넣었는지. 혹은 뒤의 실록 편찬자가 그리 넣었는지.
삼년후 9월 그것도 그믐날에 한글 반포하는 그 세종의 교지를 봐라. 거기서의 세종의 비애를 그리고 포부를.
어떻게 말이다, 한문을 쓰지말고 한글만 전용하자 는 말들을 할 수가 잇니?
역사는 어떤가.
북한만 고조선 땅인가, 국정역사교과서 문화범위지도 논란 2017-02-01 11:3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7744344
실제로 ‘갑골문화와 한반도’를 연구하는 이형구 선문대 교수에 따르면 김해 봉황동 유적과 사천 늑도, 전남 해남 군곡리 패총, 경북 경산 임당 저습지와 전북 군산 여방동 남전패총 등지에서 은나라의 갑골과 동일한 방식의 갑골이 속출했다
이땅은 저 기원전 역사들이 풍부하게 있었던 곳이다. 헌데 봐라 그냥 신석기 빗살무니토기 청동기 민무니 토기 이따위가 전부다.
저때의 유럽의 역사들 봐라 세세하다.
저 조선초, 그리고 세조 까지도 의 저 사관이, 자기들만의 얄팍한 이성, 자기들만의 허섭한 합리주의가 절대적이다 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씨가 여전히 이땅을 지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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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중남미가 졸라 비참한 이유다.
잉카니 아즈텍이니 끽해야 몇년이냐 13세기다. 그래도 우리보다 낫지
북중미 부분 마야문명이 그나마 고대문명이지만
저런 이야기들이 또한 식민지 삼백년간 아주 아작이 난거라. 언어도 잃어서리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 쓰는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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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그딴거 봐라 옛날꺼, 아 증말 재덜 대단하다. 허우샤오시엔 고령가 살인사건 그거 네다섯시간 되나? 우리랑 똑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그 미래소년 코난 만화가 언제꺼냐 1978. 야 이거 지금봐도 재밌는거라.
구로사와 아키라가 사남사녀 중 막내다. 위에 셋째 형이 헤이고 아키라다. 구로사와보다 4살위이다. 졸라 수재다. 구로사와의 이상형이자 질시의 대상이었단다.
구로사와가 1910년생이다. 관동대지진이 1923년.
17살 짜리 형 헤이고가 13살짜리 동생 구로사와 손목을 잡고, 저 대지진 현장을 직접 데리고 간다. 끔찍한 현장을. 구로사와가 멀리서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는걸 형 헤이고가 억지로 보게했단다. 구로사와야 피하지말고 똑바로 봐!
나중 영화를 만들때도 그 구로사와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때도 주저함이 없었단다. 형 헤이고의 힘.
그 형도 27살에 여자랑 수면제 처먹고 자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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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은 저딴위 직시하는 인간들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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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삐까리가 과대망상증 환자다.
천지 삐까리가 요즘은 나무정의타불이다.
저것들이 나중엔 또다른 독재를 할거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따위가 인간의 역사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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