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드미트리. 이 캐릭.이 역사적으로 아주 독특하고 재밌는 캐릭이야.
During this two-and-a-half-year period, 127,000 bodies were buried in mass graves in Moscow alone. Widespread starvation killed perhaps two million in Russia, a third of the population. The suffering and social disruption were part of the political unrest called the Time of Troubles, which led to the downfall of Tsar Boris Godunov
와이나푸티나 화산의 1600년 2월의 폭발로. 러시아는 1601-1603년의 대기근에 굶주림으로 죽은이들이 2백만. 전체인구의 1/3 인데. 이 기간 2년 반 동안. 모스크바.에 대규모 공동묘지에 12만 7천명이 묻혔다.
결국 이게 보리스 고두노프.의 몰락을 가져오고. 가짜 드미트리들이 나오면서. 이 사람의 부인과 자식 짜르가 죽은건데.
부인.은 귀족들의 타겟이 된거고. 오프리치니나.의 대명사가 저 부인이 된거고. 아들 표도르2세는 고두노프.라는 다이너스티.를 이어받은 건데. 이건 이반4세에 로얄티가 생긴 사람들에게 반감이 생긴거걸랑.
대기근 후에 귀족이 중심이 되고. 민심도 싱숭생숭하고. 이때 등장하는게 가짜 드미트리.야
Dmitry I (Russian: Димитрий I (Первый), tr. Dimitry I (Perviy))[1] (historically known as Pseudo-Demetrius I and False Dmitry I, Russian: Лжедмитрий I, tr. Lzhedmitry I) was the Tsar of Russia from 10 June 1605 until his death on 17 May 1606 under the name of Dmitry Ivanovich (Russian: Дмитрий Иванович). According to historian Chester S.L. Dunning, Dmitry was "the only Tsar ever raised to the throne by means of a military campaign and popular uprisings"
사이비 드미트리 1세. 얼제 드미트리1. 러시아어의 슬라브 엘. 이 스트로크 엘.이라는 거로 혀를 천장에 붙인듯 아닌듯 애매한 소리걸랑. 넘어가고. 하여튼 가짜 드미트리.도 1 2 3 이 있어서리 뒤에 숫자를 붙이는데.
얘가 서기 1600년 즈음에 등장해. 즉 아직 대기근이 아냐. 얘가 당시 모스크바 주교.에게 눈에 띄인겨. 자기가 죽었다던 우글리치.의 드미트리. 꼬마 였다는거지. 죽은애가 1582년 생이고 만 아홉살 안되서 죽은거고. 저때 살았다면 18세 인거야. 헌데 애가 특이하게도 말야, 공부를 한 청년인거야. 예의도 바르고 말도 잘타고 러시아어에 폴란드어에 프랜치도 유창한겨. 이 인간이 아주 독특해. 이반4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얘가 얼굴이 닮았다는거고.
저때 보리스 고두노프.는 짜르 즉위후 2년이고. 수도원의 누구.라고 콕 찝어서 걔일 거다. 라고 말해. 그리고는 델꼬오라는겨. 이때 얘가 리투아니아쪽으로 도망을 가는거야.
Dmitry fled to Prince Constantine Ostrogski at Ostroh, of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and subsequently entered the service of the Wiśniowieckis, a polonized Ruthenian family. Two family members in particular, the princes Adam and Michał Wiśniowiecki, were intrigued by the stories Dmitry told of whom he purported to be, as it gave the Poles real opportunity to capitalize on the political rancor rising in Moscow.
얘가 도망간 곳.이 오스트로.의 영주 콘스탄틴 오스트로그스키.에게 간겨. 그리고 비슈노베스키.들의 우산으로 들어가.
오스트로.가 지금 우크라이나 서쪽이고. 여기가 루떼니안.들이 있는 루떼니아 Ruthenia 란 지역이야. 이전 썰한 갈리시아-로도메리아.의 로도메리아.고. 여기가 슬라브어로 할리치-볼리니아 Halych-Volhynia.의 볼리니아.야.
카르파티아산맥이 휘감아 돌때 우크라이나 쪽의 산기슭 지역이야. 이때는 리투아니아 땅이고. 폴란드랑 카먼웰스고.
이지역은 모스크바 보다 훨 빨라. 류릭.의 무리들이 바로 내려가서 키예프.를 세운거걸랑. 이때 바로 서쪽으로 확대하면서 점령한게 할리치.와 볼리니아 지역이야. 즉 여긴 류릭 핏줄들이 여전히 여기 귀족들인거야. 오스트로.의 오스트로그스키.가 류릭 핏줄이야. 헌데 비슈노베스키 가문.은 죽 올라가면 Gediminids 게디미니드즈. 게디미나스.가 세운 가문이걸랑. 이 게디미나스.가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1236년 이고. 50년 후에 게디미나스.의 조상들이 대공작이 되걸랑. 리투아니아의 진짜 시작은 게디미나스.의 자식들이야. 이 게디미나스.의 두 자식의 각각의 자식. 즉 두 손자.가 야기에워 가문을 세운 요가일라.이고 비타우타스. 인겨. 이 둘이 사촌인거고. 이 둘일때 리투아니아가 최고인겨.
웃기게도. 가짜 드미트리1세.의 피난처가 저 비슈노베스키 가문이 된건데. 즉 이들은 게디미나스.의 방계에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야기에워 와도 그래서 가까운거고 실세인거야. 폴란드 킹인 지기스문트 바싸.도 엄마 야기에워 핏줄인거고.
정작 류릭.의 핏줄인 오스트로그스키.는 저기에 안끼어들어. 비슈노베스키 애들이 얘를 이용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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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짜 드미트리1세 캐릭이 재밌는데 이게.
There were rumors that Dmitry was an illegitimate son of the Polish king, Stefan Batory, who had reigned from 1575 to 1586; according to a later tale, Dmitry blurted out that identity when once slapped by a violent master. Dmitry's own story was that his mother (Tsar Ivan's widow), anticipating Boris Godunov's assassination attempt, had given the young tsarevich into the care of a doctor, who placed him in various Russian monasteries through the years. After the doctor's death, Dmitry had then fled to Poland, working there as a teacher for a brief time, before being accepted into the service of the Wiśniowieckis. Several of those who had known Ivan IV claimed later that Dmitry did indeed resemble the young tsarevich; further, the young man also displayed aristocratic tendencies, such as horsemanship and literacy, and was fluent in Russian, Polish, and French.
루머에 의하면. 이 드미트리가 어떤 폭력적 윗자리에게 졸 얻어터질때 자기 정체를 실토를 했대 자기는 스티븐 바토리.의 배스타드.라고. 스티븐 바토리.가 헝가리 귀족출신으로 트랜실베니아.를 세우고 영주 하다가 야기에워 안나.랑 결혼하면서 폴란드 킹을 했걸랑. 이 다음 지금 지기스문트 바싸인거고. 스티븐 바토리.는 자식없이 죽었어. 하튼 얘 정체가 애매해. 고드노프 말 마따나 수도원에서 공부하다 도망나온 애일 확률이 높은 듯해.
가짜 가 하는 자기 이야기는, 옌날에 고두노프.가 섭정할때 암살시도를 예견하고 어린 자기를 닥털에게 피신시켰는데 거기서 여러 수도원으로 보내졌다는겨. 닥털이 죽고선 폴란드로 와서리 과외선생 짧게 하면서 지내다가 비슈노베스키 당신 집안으로 오게되었소 하는 거걸랑. 주위에 이반4세를 알았던 몇몇도 아 저 가짜가 닮았단거야 이반의 어릴때랑. 더해서 애가 귀족티가 나고 교양도 있고 말도 타고 언어도 유창한겨.
저 촌놈의 귀족들이 얘한테 녹아난거야. 왜냐면 이 지역이 독특한거걸랑. 갈리시아-로도메리아(할리치-볼리니아).라는 이 지역이. 우크라이나 왼쪽 카르파티아 산맥 기슭인데. 저 사람들이 가장 바닥엔 류릭의 키예프 사람들이 만들었던 거고. 이 다음에 요가일라와 비아투타스.때에 리투아니아.로 들어가서 게디미나스의 후예들이 귀족이 된거걸랑. 이 핏줄이 저 비슈노베스키.의 형제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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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호르드.가 서고 얘들은 수도.가 사라이.라는 이름으로 스탈린그라드.라는 지명도 되는 볼고그라드.지역에 있었걸랑. 카스피해 북쪽이야. 여기서 왼쪽 키예프.까지 지배를 한거야.
저 키예프.를 점령하면서 저쪽의 골든 호르드를 몰아낸건. 리투아니아.의 Algirdas 알기르다스.여. 야기에워.를 세우는 요가일라.의 아빠야.
알기르다스.의 아빠인 게디미나스.가 왼쪽위인 볼리니아.를 점령한거로 봐. 1320년대. 여긴 키예프 루쓰.의 땅이었고 당시 키예프루쓰.는 골든호르드.에 하미지 하던 애들이었고.
이 아들 알기르다스.가 이어서 키예프 까지를 먹은겨. Battle of Blue Waters. 1362 or 1363. 이건 골든 호르드.와 전투고 골든호르드.는 흑해에서 쫓겨난겨 이 알기르다스.와의 전투로.
키예프 루쓰. 가 882–1240. 류릭 올렉 이고르.의 올렉.이 세운겨. 류릭이 862.에 먼저 노브고로드.를 세우고 죽고.
Vladimir-Suzdal 1157-1331. 블라디미르-수즈달.이 3백년 안되서, 모스크바 동쪽 위 180키로 정도에서 들어서. 안드레이.가 세운거고 류릭의 방계핏줄이야. 여기서 키예프.를 갖고 오고. 이 상태에서 몽골 골든호르드.가 들어와서 이들이 다 몽골의 바쌀. 임차인이 되는거야. 그리나서 다니엘.이 모스크바.를 세운겨. 1283년. 골든호르드에 하미지를 하는거고 대공작이란 벨리케 크냐즈 타이틀도 몽골 애들이 준거야 이당시엔. 당시 실세는 블라디미르.야. 몽골의 우산 아래지만.
이상태에서, 리투아니아.의 게디미나스.가 키예프 루쓰 관할인 왼쪽 위 볼리니아.를 점령하고. 1320년대. 아들 알기르다스.가 키예프.를 점령해. 1362. 몽골 골든호르드의 이쪽 세력을 쫓아낸거야 리투아니가.
골든호르드.는 1240s-1502 로 250여년 있던것으로 보이지만. 이반3세가 1480년 전투에서 이기면서 끝난거야. 나머지들이 그레이트 호르드.란 이름으로 볼고그라드 인 카스피해의 볼가강 하류 지역에서 걍 깨갱 하고 있다가 사라진거야.
골든호르드.는 서자마자 백여년 지나면서, 내분나면서 키예프에서 알기르다스.에 패해서 저지역을 주면서 쇠하기 시작한겨. 모스크바 와 블라디미르수즈달.이 눈치보면서 나갈생각 하고 있는거고.
블라디미르 수즈달.이 1157년에 서고. 130년 후에 왼쪽에 모스크바 를 다니엘이 세우고, 블라디미르에 핏줄이 끊겨서 이걸 다니엘의 자식 유리.가 겸임을 해. 1318년. 그러면서 모스크바와 블라디미르.가 유니온.이 되고 수도를 모스크바.로 갖고오면서 블라디미르 대공국.은 1331년.에 마침표를 걍 찍어. 그러다 이반3세가 1480년에 골든호르드.를 이기는거고.
Battle of Blue Waters. 1362 or 1363. 이 파란물들의 전투.
The Southern Bug, also called Southern Buh[1] (Ukrainian: Південний Буг, Pivdennyi Buh; Russian: Южный Буг, Yuzhny Bug),[1] and sometimes Boh River,[2] is a navigable river located in Ukraine. It is the second-longest river in Ukraine.
블루 워터스.라는게. 저 전투가. 키예프.의 드네프르강 Dnieper(니퍼) 와 이 왼쪽에 써던 버그. 남부크강.에서 벌어진겨.
그래서 파란 물들 에서의 전투.걸랑. 남부크강.이 드네프르 왼쪽에서 같이 흑해로 흐르는, 우크라이나 중심 가르는 두번째 긴 강이야. 이 왼쪽이 몰도바와 가르는 강인 드네스트르 Dniester(니스터) 이고. 드네프르 남부크 드네스트르. 요건 외워야해.
저 전투.는 이미 모스크바.와 블라디미르.가 합해진 상태에서. 저 멀리 아래 왼쪽에 떨어진 키예프를 두고 벌이는 리투아니아 와 골든호르드.의 전투야. 비록 키예프.도 골든호르드 속국이지만, 이전에 블라디미르.가 이미 갖고 온거걸랑. 그래도 모두 골든호르드 관할인거야. 블라디미르.와 키예프는 900키로 거리야. 골든호르드 오면서 블라디미르에서 떨어져 나간겨 키예프는.
모스크바 입장에선, 이미 블라디미르랑 합치고. 저 키예프도 블라디미르.가 갖고있던 자기들 땅이었고, 올렉.이 만든 자기들 고향이걸랑. 노브고로드.는 1136년 부터는 리퍼블릭 체제로 거의 남이 된거고. 블라디미르와 합한 모스크바.는 여전히 힘이 없는겨 저당시는.
The Lithuanian–Muscovite War, known in Russia as Litovschina (Russian: Литовщина) encompasses three raids by Algirdas, Grand Duke of Lithuania, to the Grand Duchy of Moscow in 1368, 1370, and 1372.
리투아니아와 러시아전신인 모스크바가 처음으로 전쟁을 시작한게 서기 1368년.이야. 키예프를 점령한 알기르다스.가 모스크바로 쳐들어가는거야.
리투아니아.가 키예프루쓰랑 전쟁 시작한건 알기르다스.의 아빠 게디미나스.가 볼리니아.를 점령하는 것 부터인데. 이건 반전설로 봐. 역사로 안쳐. 다음 알기르다스.가 키예프를 점령하는건 몽골애들이랑 싸운겨.
저 1368년.이 최초야. 즉 저건 리투아니아.가 시작을 한거야.
Principality of Tver (Russian: Тверское княжество, Latin: Tferiae[1]) was a Russian principality or duchy, which existed between the 13th and the 15th centuries.
트베르. 에 크냐즈 비슷한게 13세기에 있었어. 모스크바 오른쪽위에 블라디미르 수즈달.이 서고. 이 왼쪽 위에는 이후 트베르.가 선거야. 이것도 키예프에서 나온애가 세운겨. 이 위가 노브고로드.야. 이 트베르.는 노브고로드.와 친해.
모스크바.에서 트베르 영주를 초대하고는 감금해. 이걸 마침 몽골 골든호르드 사신이 와서 보고 풀어주라 해. 풀려나서 이 트베르. 영주가 왼쪽 리투아니아의 알기르다스.에게 징징대는겨. 트레브의 누이가 알기르다스.의 마누라걸랑. 이걸 알기르다스.가 자기 동생 Kęstutis 케스투티스.와 함께 쳐들어 가는겨.
알기르다스.가 요가일라의 아빠고. 케스투티스.가 비타우타스.의 아빠야.
저때 모스크바의 대공작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저걸 이기는겨. 이 돈스코이.의 손자가 이반3세.야.
그리곤. 저 돈스코이.의 아들 바실리1세.가. 결혼을 비타우타스.의 딸이랑 하는겨. 저 직전에 차가타이에서 나온 티무르.가 티무르 제국을 세우고 얘들이 카스피해변 따라 볼가강 쟤들 사라이.수도로 쳐들어가걸랑. 이때 모스크바가 독립을 하면서 리투아니아 비타우타스.와 결혼으로 손을 잡아. 그리곤 이 아들 이반3세.가 골든호르드.를 1480년에 직접 물리치는겨.
저 러시아 짜르들의 핏줄이 그래서 리투아니아.가 섞인겨 저게. 비타우타스.의 자식들이야 또한.
러시아가 왼쪽 접한 리투아니아와. 서기 1368년 부터 전쟁에 동맹이 되고 골든호르드 몰아내고 다시 전쟁을 하는겨 폴란드 유니온 된 리투아니아와. 저게 서기 1600년대인 250년 가까이 된거야. 쟤들은 거의 전쟁속에서 살은거야 저때까지. 그 절정이 이전의 리보니안 전쟁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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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스웨덴 과 전쟁하는게 훨씬 빨라. 이건 노브고로드 가 스웨덴과 핀란드만을 두고 벌이는 전쟁의 역사야.
According to the First Novgorod Chronicle, the Swedish troops attacked the Novgorod merchants somewhere in the Baltic Sea region and killed 150 Novgorodians in 1142.
노브고로드.가 스웨덴과 전쟁한게 1142년.으로 기록이 돼. 이전에도 노르웨이 스웨덴과 전쟁을 했다가 결혼으로 휴전을 한겨. 저 노브고로드.를 모스크바.가 점령하고 이어 계속 하는거고. 러시아.의 먼저의 적은 유럽에선 스웨덴이야. 2백년의 감정이 더 있는겨 러시아와 스웨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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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는 돈스코이의 손자 이반3세.가 노브고로드.를 합병하고. 이어 골든호르드.를 1480년에 압승하고. 트베르 Tver 로 합병하고. 위와 아래정도를 갖고 온겨 초기엔. 그리고는 왼쪽 아래로 들어가. 지금 Oryol. Kaluga 오리올 오블라스트 칼루가 오블라스트.를 갖고 오는거야. 여긴 모스크바 바로 서남쪽이야. 아주 근처야. 즉 모스크바는 저때까지 아무것도 아닌겨. 모스크바의 왼쪽은 리투아니아.의 관할인거야.
리투아니아.가 1429년.에 93만 제곱키로야 영토가. 지금은 6.5만 제곱키로고. 비타우타스.가 1430년 까지야. 야기에워.가 폴란드에 있을때고. 이때 리투아니아가 93만 제곱 걍 최고야. 모스크바 왼쪽엔 다 리투아니아 땅이야. 골든호르드.도 이전에 키예프에서 얘들한테 쫓겨난거고.
저 거대한 땅을 이반3세.가 치고 들어오기 시작한거야. 1368년 할아버지와의 전투 후 손자가 본격적으로 하는겨 이반3세가 1462-1505 재임이야. 22세에 올라서 43년을 재임하면서 이사람이 러시아를 만든거야. 15세기 후반부터 리투아니아땅을 야금야금 뺏은겨.
오리올. 칼루가. 다음이 스몰렌스크.야
Smolensk is a city and the administrative center of Smolensk Oblast, Russia, located on the Dnieper River, 360 kilometers (220 mi) west-southwest of Moscow. Population: 326,861 (2010 Census);[5] 325,137 (2002 Census);[10] 341,483 (1989 Census).[11]
이 스몰렌스크.가 지금 벨로루시 와 러시아 접경의 러시아 땅이지만. 이게 특히나 길목이야. 벨로루시.는 리투아니아꺼였고. 리투아니아와 러시아의 1368년 부터의 수백년간 전쟁의 핵심이 이놈의 스몰렌스크.야. 리보니안 전쟁의 전장 중심도 여기 뜬굼없는 내륙지역이고. 아주 비참한 도시야 이 스몰렌스크가. 이반3세가 여기까지 먹은겨. 지금 모스크바의 서쪽 접경 100키로 정도까지는 원래 리투아니아 땅이었어.
1583년. 이반4세.가 죽을때인 리보니안 전쟁끝나고 리투아니아 땅이 36.5만 제곱키로야. 150년 만에 93만 제곱키로가 삼분의 일정도만 남은겨 이게. 리투아니아.가 폴란드랑 카먼웰스 하면서 폴란드에 뺏긴땅도 있지만 러시아에 특히나 뺏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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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게. 지도로 보여주면. 칼루가 오리올 스몰렌스크. 에 트베르. 키예프. 이반3세 시작할때 모스크바 서쪽은 리투아니아여 저게. 저걸 다 뺏긴겨. 스몰렌스크.는 근현대사 전쟁까지도 오는 곳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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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상황에서 가짜 드미트리.가 온거야. 볼리니아.라는 루떼니아 땅에. 비타우타스 핏줄인 정통 리투아니아 핏줄 귀족 가문에. 리투아니에에겐 러시아가 특히나 웬수인겨. 길게는 230년. 짧게는 150년.
얘를 앞세우고서, 러시아를 먹으려 한거야. 비슈노베스키 형제들이. 얘들은 코트의 중심에서 먼 애들이고, 변방에서 러시아 점령에 앞장서서 도약도 하고 싶은욕심이 당근 있는거고. 이걸 지기스문트 바싸.에게 보고를 하는겨. 여기 러시아 짜르의 진짜 아들이 왔다고. 가짜가 아니어도 진짜 여야 해 러시아를 먹기위해서. 진짜면 더 좋은거고.
However, regardless of whether or not Dmitry's tale was authentic, the Wiśniowiecki brothers, along with Samuel Tyszkiewicz, Jan Sapieha, Roman Różyński, and several other Polish noblemen soon agreed to fully back the man, and his claim, against Tsar Boris Godunov. In March 1604, Dmitry visited the royal court of Sigismund III Vasa in Kraków. The king provisionally supported him, but gave no promise of military aid to help ease the young man's path to the throne. To attract the support of powerful Jesuits in lieu of the king outright stating anything, Dmitry publicly converted to Roman Catholicism on 17 April 1604, thus convincing papal nuncio Claudio Rangoni to also back up the young Russian's claim.
비슈노베스키 형제들.에 폴란드 귀족들이 끼는거야. 이 기회에 힘좀 얻으려는. 서기 1604년. 3월에 가짜 드미트리.를 인사시켜 수도 크라쿠프.에 있는 킹 지기스문트 바싸.에게. 얘도 아사무사 하걸랑. 너를 마음으로는 지지하지만 코트차원의 지원은 못해주겠다.고 하는거야. 왜냐면 당시 리보니아 지역에서 스웨덴것이 된 에스토니아.의 스웨덴과 리보니아에서 전쟁중이걸랑. 거기에 아래는 몰도바 도 불안불안한거고 얀자모이스키.가 진압을 했지만. 저 아래는 오스만이랑 손잡았지만 아래쪽은 오스만에 합스부르크가 전쟁중이고.
가짜 드미트리.가 폴란드 코트에 제수이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공개적으로 로마 카톨릭.으로 종교를 바꿔. 그래서 주교.가 지원을 약속하고.
이놈의 지기스문트 바싸.가 문제가 역시 종교야. 당시 폴란드는 종교의 자유.의 나라여 이게. 오히려 코트 귀족들은 프로테스탄트.가 많아. 그래서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공작령의 호헨졸레른 가문 알베르트.가 튜튼 기사단장.할때에 마르틴 루터 만나서 속삭임당하고 프로테스탄트.로 전향해서 자기 삼촌 지기스문트1세 폴란드킹.한테 하미지 하고 프로이센 공국령을 세운거걸랑. 즉 저때 폴란드 코트는 프로테스탄트 였던겨. 헌데 뜬굼없이 저 지기스문트1세의 외손자인 3세 바싸.가 엄마영향으로 로마카톨릭이 쎄게 심어져서 코트에 로마 카톨릭의 제수이트 들이 득실득실한겨 이게. 얀자모이스키.도 로마카톨릭으로 전향한 원조 칼뱅이었지만. 얜 아예 로마카톨릭으로 다 바꾸려는 수작을 한거걸랑 킹이. 이 종교 이념이 지배하는 땅은. 망하는겨 그게. 정치인 애가 진영논리를 갖고 있으면 그게 정치인이니 그게.
야 기사 보니 진영논리를 하는게 당연하대. 저 조선본색. 조선 왕조 들의 본색이 그냥 드러나는겨 요즘. 진영끼리 서로 적폐 해대면서 학살한 오백년이 너무나 그립걸랑 저 민족 놀이 이념 놀이 앞장 선 이들은.
걍 윤리적 패닉상태야 저게.
얀 자모이스키.가 그래서 폴란드의 건강한 세력의 핵심이 돼. 이사람이 몰도바 를 가서 진압하고, 이어 리보니아 에서의 스웨덴과의 전쟁하고 이기고 돌아와서 죽은게 1605년 6월이야. 얀 자모이스키 죽고서 폴란드는 끝이 난겨 이게. 이사람이 저 가짜 드미트리 도 보는겨. 저러면서 코트가 들썩이는것도 보고. 비웃는거지 저게 먼 대체 코메디짓이냐며. 그래서 당근 지기스문트 킹도 혹 하지만, 공식적으론 못 나서. 찜찜하걸랑.
지기스문트 바싸.가 이반4세 죽고 고두노프 한테 제안을 먼저 해. 러시아랑 우리 폴란드 카먼웰스.랑 합치자. 니덜도 우리처럼 카먼웰쓰 하자. 이건 의회.라는 셰임을 두자는거걸랑. 아니면 유니온을 제안해.
The szlachta ([ˈʂlaxta] , exonym: Nobility. was a legally privileged noble class in the Kingdom of Poland, and in the Grand Duchy of Lithuania. After the Union of Lublin in 1569, the Grand Duchy and its neighbouring Kingdom became a single state,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이전 지나친 말이 슐라흐타.야. 이건 오직 폴란드 카먼웰쓰.의 귀족층.에만 쓰는 말이야. 얘들은 슐라흐타.라고 했어 귀족계급들을. 러시아는 보야르.라는 말은 있어도. 보야르들을 계급화하는 슐라흐타.라는 말은 안써. 모두 슬라브어지만. 왜냐면 이반4세가 오프리치니나 하면서 또한 귀족층들 힘을 다 뺏았걸랑. 헌데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셰임을 하면서 이 귀족층들이 서로 모인거야. 그리고 유니온을 하고. 얘들은 귀족층들이 모여서 정체성을 하나로 갖는 일들이 생긴겨 이게. 그러면서 슐라흐타.라는 말이 생긴겨 여기만. 허나 러시아는 이런게 없어. 그래서 초기에 폴란드 리투아니아.가 중세와 근대를 전후할때 아주 강력했던 이유야 이게. 포스폴리테 루셰녜. 라는 귀족들의 용병집단을 스스로 만든거고. 헌데 얘들은 또한 이러면서 망한겨. 얘들이 서로 사익을 추구하게 되는겨 이게. 정체성이 오히려 분열이 되고. 셰임이 진영논리의 장이 되고, 이 중앙권력과 귀족권력의 조율과정의 실패.가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실패야. 이 바닥은 모랄 이란거야. 윤리고. 결국 모든 문명의 잣대.는 이거야. 저 모랄의 스밈의 정도와 고차원화된 정도야. 이 슬라브 애들은 이게 안된겨. 급박하게 뒤늦게 로마를 뻬꼈지만, 모랄이 안된겨 이게. 주도적으로 신앙과 전쟁을 못했어. 주도적으로 역사를 전개하면서 거기서 모랄이 쌓인거걸랑 쟤들이. 좀 어려운 얘긴데. 넘어가고.
이 조선민국이 허섭한 지금 똥떵어리 자체 인 이유.는 조선 이후 오백년에 칠백년째 이 모랄.이 전혀 없다는거야 이게. 정말 세상 빠닥에서 가장 하치리들이 조선의 후예가 되어서 여전히 저 똥떵어리 조선을 지폐와 동전으로 모시면서 반일놀이로 정의질 민족놀이로 이념 짓하는 그야말로 머중에 머땅이 여기 조선민국인데 이게.
During his time at court, Dmitry met Marina Mniszech, daughter of the Polish nobleman Jerzy Mniszech. Dmitry and Marina fell in love; asking her father for her hand, the young man was promised it in return for granting the Mniszechs full rights to the Russian towns of Pskov, Novgorod, Smolensk, and Novhorod-Siverskyi upon his ascension
이 가짜 드미트리.가 지기스문트 바싸 킹을 만나고. 이 폴라드 코트에서 마리나 므니셰크.를 만나.
우글리치의 드미트리.라는 진짜는 1582-91. 이걸랑. 얘가 1604년 저기있을땐 22세 란거야. 마리나 므니셰크.가 1588년생. 16세여. 저때 이 가짜애가 마리나 므니셰크.를 코트에서 보고 빠져. 결혼을 약속하는겨.
저 여자도 아주 웃긴겨 저 이후 인생이. 므니셰크 집안이 귀족이고 아빠가 코트에서 아주 잘나간 사람이야. 저걸 보면 저때 폴란드 코트가 걍 미친새기들인거야 귀족 놈들이. 폴란드는 저때 이미 애들이 망쪼가 든겨 저게. 얀 자모이스키.가 저걸 보면서 어이없어서 웃다가 다음해 죽은거고.
가짜 드미트리.가 1600년 정도에 등장해서 루떼니아.로 도망가서 사기치다가 지기스문트 바싸 만나러 코트에 간게 1604년 3월이야. 얘가 이럴때 러시아는 대기근 1601-3년 인거야. 여기도 역시나 흉년인거고. 얘들은 이런저런 분위기에 과거 러시아와의 150년에서 230년의 앙금에.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와 한몸인거고. 스웨덴과도 전쟁이라 피곤하지만 코트의 나머지 귀족애들이 여기에 다 붙는겨. 지기스문트 바싸도 내심 응원을 하고.
Dmitry, having now gained the full support of the Polish Commonwealth, formed a small army of approximately 3,500 soldiers from various private forces. With these men, he advanced on Russia in March 1605. Boris's many enemies, including the southern Cossacks, joined Dmitry's army on the long march to Moscow. Thus combined, these forces fought two engagements with reluctant Russian soldiers; winning the first, they captured Chernigov (modern Chernihiv), Putivl (Putyvl), Sevsk, and Kursk, but they badly lost the second battle, almost to the point of disintegrating. The young man's cause was only saved when news of the sudden death of Boris Godunov on 13 April 1605 reached his troops in the aftermath.
일년 후 1605년 3월에 러시아로 출정하는겨. 즉 코트에 일년을 있었어 얘가. 귀한 손님으로. 3500명 병력. 대부분 귀족들이 서로서로 자기들 병력을 동원한거야. 코트는 나서지 않고. 이때 러시아.도 대기근 이후.에 귀족들이 본격적으로 반 보리스 고두노프.가 되는거고. 민심도 이미 흉흉한거고. 더하여 코사크.들은 스트로가노프. 가문의 지휘로 시베리아 정벌 시작을 한거걸랑 이반4세의 말년 지시로. 이 코사크.가 역시나 테러블 이반.에 로얄티가 있는겨. 즉 류릭에. 뜬굼없이 이놈의 코사크들이. 얘들도 가짜 드미트리 편에 서는겨.
러시아 대부분이 어쩌면 갑자기 고두노프.의 반대편에 선겨 이게. 이 바닥은 러시아 대기근 1601-3 이 삼년간이야. 이게 결정적으로 민심이반을 하게 되는 구실이 돼. 고두노프.는 정치를 잘했어. 진영놀이도 안했어. 헌데 뿌리가 너무 약한거야. 섭정 14년에 차르 7년째걸랑. 그래도 고두노프.야. 병력 동원도 개인귀족들이 서로 온거고. 3500명이고. 한달만에 다 패해. 두번재 전투에서.
헌데 정말 가짜 드미트리 입장에선 기가막히게도. 보리스 고두노프.가 갑자기 죽어버린겨 저때. ㅋㅋㅋㅋ.
고두노프.가 54세 밖에 안되었는데. 이미 지병이 있었고. 심장쇼크가 갑자기 와서 죽어.. 4월13일. 가짜가 출정하고 한달 직후야 저게. 1605년.
On 10 or 20 June Feodor was strangled in his apartment, together with his mother.
고두노프.의 아들과 부인.이 죽는게 6월 10일 또는 20일. 즉위하자마자 두달되서 그냥 죽은겨. 모두 저 가짜 드미트리.에 붙은 애들이야 ㅋㅋㅋ.
얘가 러시아 짜르가 되는겨 진짜루.
On 20 June, Dmitry made his triumphal entry into Moscow, and on 21 July, he was crowned tsar by a new Muscovite Patriarch of his own choosing, the Greek Patriarch Ignatius.
고두노프.가 4월에 죽고. 모자가 6월에 죽고. 즉 얘가 모스크바로 입성하는 날에 죽였다고도 하는거고. 얘가 7월 21일에 대관식을 하는겨. 그리고 다음해 1606년 5월 17일.에 죽어. 일년 한거야.
완전히 고메딘데 저게. 얜 오래 버틸 수가 있었어. 헌데 문제는. 종교야 종교.
러시아민들은 쟤를 진짜 우글리치.의 드미트리.로 인정해.
The new tsar moved to consolidate his power by visiting the tomb of Tsar Ivan, and the convent of his widow Maria Nagaya, who accepted him as her son and "confirmed" his story.
얘가 가장먼저 한게. 아버지라 자칭하는 이반4세.의 무덤을 가고. 이어서 말야, 수도원에 있는 그 이혼당하고 우글리치.에서 있었던 마리아.의 수도원엘 가는겨. 당연히 이 여자는 가짜 드미트리.가 진짜 내 아들이다 하는거고. 자기가 태후가 되는 찬스걸랑. 이걸로 쇼잉이 다 된겨.
가짜 드미트리.가 애가 사기가 먹힐만큼 기본 소양을 쌓은 애걸랑. 아주 독특한 캐릭인데. 얘가 정치를 잘했어
The Godunovs, including Tsar Feodor and his mother, were executed, with the exception of Tsarevna Xenia, whom Dmitry took as his royal concubine for five months. In contrast to Godunov's policies, many of the noble families Tsar Boris had exiled – such as the Shuiskys, Golitsins and Romanovs – were granted the pardon of Tsar Dmitry and allowed to return to Moscow. Feodor Romanov, sire of the future imperial dynasty, was soon appointed as metropolitan of Rostov; old patriarch Job, who did not recognize the new tsar, was sent into exile.
얘는 폴란드의 힘으로 짜르가 된거야. 결혼할 여자가 있어. 짜레브나 크세니아. 고두노프.의 딸이었던 크세니아.는 살려줘. 이여자가 엄청 아름다웠대. 헌데 좀 자유로왔나봐 성격이 좋은말로. 스웨덴 로얄 패밀리.랑 약혼했는데 이게 취소가 되고 걍 혼자였걸랑. 둘이 동갑이야. 이여자를 첩으로 삼는겨 얘가. 애인으로 둔거지. 이쁘니까. 이여잔 나중에 그냥 수녀로 살게되고. 고두노프.에 대립했던 슈이스키. 로마노프 귀족들이 드미트리 가짜에겐 사면받고 복귀를 해. 슈이스키.는 류릭의 방계고, 로마노프 가문은 이반4세의 첫부인인 로마노브나.의 집안이걸랑.
Dmitry planned to introduce a series of political and economical reforms. He restored Yuri's Day, the day when serfs were allowed to move to another lord, to ease the conditions of peasantry. His favorite at the Russian court, the 18-year-old Prince Ivan Khvorostinin, is considered by historians to be one of Russia's first Westernizers.[3]
얘가 유리 의 날.을 다시 해. 유리.가 성 조지. 게오르기오스.의 슬라브말이야. 성조지의 날. 이반3세가 만든 제도야. 이 축제일 일이주간 농노.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가 있었어. 영주들을 바꿀 수 있었던겨. 이걸 고두노프.가 없앴걸랑. 민심 얻으려고 이런것도 해.
문제는. 얘가 로마카톨릭.을 심으려 한다는 소문이 코트에 도는 거걸랑. 얘가 끌고온 애들이 로마카톨릭의 제수이트.에 주교가 후원한 애들이 많고. 얘가 로마카톨릭 으로 전교했다는 말들도 당연히 돌거고.
오소독시 정통이라 자부심있는 러시아에서 이건 엄청난 반감을 일으키는거걸랑 이게. 러시아 오소독스.는 류릭 올렉 이고르.에서 류릭의 아들 이고르.부터 시작하는겨 이게. 이고르.의 부인 성 올가.걸랑. 이들은 노브고로드 862년 하고 이 아들때부터 비잔틴의 그리스도가 심어진겨. 이고르 부인 성 올가.의 손자.가 블라디미르 대제.이고. 블라디미르.가 결혼한 여자가 비잔틴 황제 마케도니아 조.의 안나.걸랑 여기에 이반3세.가 비잔틴 황제의 딸 팔라이올로고스.의 소피아.랑 결혼하고 비잔틴은 망하면서 비잔틴의 오소독시의 정통은 러시아 라고 자부심 쩔던 곳이야. 오소독시가 로마카톨릭이랑 1054년에 갈라서면서 부터지만 완전히 이 전부터 오소독시에 쩐곳이 러시아야.
폴란드애들이 러시아를 치려는 것도 저놈의 오소독시를 로마카톨릭으로 바꾸겠다는거고. 자기들이 보기엔 이단이란거지 저게. 코사크.가 그래서 폴란드를 버리고 러시아로 간거야 그 이면엔.
저 지기스문트 저 멍청한 애가 뜬굼없이 카톨릭을 심으려들면서 폴란드는 나중에 지도에서 사라진거야. 쟨 폴란드 리투아니아 역사에서 재앙이었어. 저리 보지 않는겨 쟤들 사가들은. 한명 빼고.
똑같어 저런 시선이. 이 땅빠닥 사가 애들과. 다를게 없어 이 후진 나라들의 지쩍수준은. 다 똑같애.
On 8 May 1606, Dmitry married Marina Mniszech in Moscow. It was the usual practice that when a Russian Tsar married a woman of another faith, she would convert to Eastern Orthodox Christianity. Rumors circulated that Dmitry had obtained the support of the Polish king Sigismund and Pope Paul V by promising to reunite the Russian Orthodox Church and the Holy See; it was for these alleged reasons, claimed the rumors, that Tsarina Marina did not convert to the Orthodox faith. This angered the Russian Orthodox Church, the boyars, and the population alike.
얘가 1년 만에야 모스크바로 온 마리나 므니셰크.와 결혼을 하는겨.
The first wedding ceremony, performed in November 1605 by the Bishop of Kraków, Cardinal Bernard Maciejowski was held per procura in Kraków, at the Montelupi complex (Pod Jaszczurami and Firlejowska) and was attended by the Polish king Sigismund III Vasa himself, as well as hundreds of high-ranking szlachta members and foreign guests. Dmitri was represented by Muscovy envoy, Afanasy Vlasiev. Afterwards, Marina went with her father and a retinue of approximately 4,000 to Moscow
먼저 이전해인 1605년 11월에 프락시 결혼.을 해. 크라크푸.에서. 이게 약혼.이란겨. 약혼이란건 중세 프락시 대리결혼.이 와전된거야. 약혼이란건 의미가 없어 이개. 프로포즈. 라는게 인게이지먼트.야 이젠. 남편 대리로는 러시아 대표하는애가 대신 서는거고. 저때 지기스문트 바싸.도 참석하고 폴란드에 고급귀족들 수백명이 다 온겨. 얘들 눈깔엔 러시아가 자기들께 된거야. 완전히 코메디야 이건.
리고 4천명 수행단을 이끌고 러시아로 가서 다음해 5월 8일 에 결혼식을 정식으로 하는거야 모스크바.에 가서.
사람들은 당연히 저 황후.가 오소독시로 전향할줄 아는겨. 헌데 이게 분위기가 이상한거지. 오히려 러시아를 로마카톨릭으로 바꾸려는 모양새야 이게. 러시아 귀족들이 보니까.
She wore a Polish wedding dress, and Dmitri wore the armor of a Polish hussar.
저때 결혼하면서 여자도 대관식을 하는거걸랑. 저때 마리나 므니셰크.는 폴란드 결혼예복을 입고, 가짜 드미트리는 폴란드 경기병 후싸르의 군복을 입었어.
갑자기 러시아 코트와 민들 눈에는 완전히 폴란드 코트로 둔갑이 되어버린겨 이게.
마리나.는 독실한 카톨릭이야. 이여자는 러시아를 오소독시에서 카톨릭으로 바꾸려는 마음이 강하고 지기스문트의 하명을 깊게 받고 저 러시아를 폴란드로 만들려는겨 이게.
On the morning of 17 May 1606, ten days after Dmitry's marriage to Tsarina Marina, a massive number of boyars and commoners stormed the Kremlin. Tsar Dmitry tried to flee, jumping out a window, but fractured his leg in the fall. He fled to a bathhouse and attempted to disappear within, but was recognized and dragged out before the populace by the boyars, who killed the tsar lest he successfully muster an appeal to the crowd.[6] His body was put on display and then cremated, with the ashes allegedly shot from a cannon towards Poland. According to Palitsyn, Dmitry's death was followed by the massacre of his supporters. Palitsyn boasted in his chronicle that "a great amount of heretical blood was spilled on the streets of Moscow."[7]
Dmitry's reign had lasted a mere eleven months. Prince Shuisky then took his place as Tsar Vasili IV of Russia. However, two further impostors later appeared, False Dmitry II and False Dmitry III, the first of whom was publicly "accepted" by Tsarina Marina as her fallen husband.
아주 한방에 날라간거야. 저 결혼식때 시안야릇한 분위기로. 5월 17일. 결혼식하고 딱 10일째야. 크레믈린에 보야르들과 민들이 떼거지로 모인겨. 이미 이건 이전에 소문이 다 퍼지다가 결혼식으로 확신이 든거야 저게. 아침이야. 가짜 드미트리.가 도망가려고 창문에서 뛰어내려. 다리가 뿌러져. 목욕탕에 가서 숨어. 잡혀서 질질 끌려나와서 죽여 바로. 혹시나 감정놀이 할까봐. 민들이 혹해지면 피곤하걸랑.
가짜 드미트리.를 화장을 하고. 그 유골을 대포로 폴란드로 향해 쐈대.
가짜 드미트리.가 일년 지배했걸랑. 이때의 권력애들이 또한 무수히 죽는거지.
저때부터 폴란드.가 정식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코트차원에서 정식으로 전쟁을 하는겨.
False Dmitry II (Russian: Лжедмитрий II, tr. Lzhedmitrii II; died 11 December 1610)
그리고 또튀나와 가짜 드미트리 2세. 자기가 진짜 우글리치의 드미트리.라면서.
The second False Dmitry first appeared on the scene around 20 July 1607, at Starodub. He is believed to have been either a priest's son or a converted Jew, and was relatively highly educated for the time. He spoke both the Russian and Polish languages and was something of an expert in liturgical matters.
얜 1607년.에 티나와 스타로두프. 스몰렌스크 훨 아래여. 사제의 아들 또는 전교한 유대인으로 봐. 얘도 교육을 많이 받은듯 하다는거지.
웃긴건, 가짜 드미트리1세.의 부인이었던 폴란드 귀족 마리나 므니셰크.가 도망다니다가 얘랑 또 결혼을 하는겨.
False Dmitry III (Russian: Лжедмитрий III, tr. Lzhedmitrii III; died July 1612)
가짜 3세.가 또 나와. 다들 죽어 바로.
저때부터 러시아는 내전으로 들어가고. 짜르들이 서로들 서고. 이와중에 폴란드는 크레믈린까지 쳐들어오고 점령하고 바싸 아들이 짜르도 해. 모스크바는 스웨덴과 손잡아 막아달라하고. 저 전쟁으로 스몰렌스크 등 변경땅을 폴란드에 뺏기지만.
그리곤 1613년.에 로마노프 가문의 미하일.이 짜르로 선출되면서. 저게 막을 내리는거야.
저때 아주 러시아.가 폴란드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해져. 러시아 대기근을 겪은 직후에 별 시안하게 자기들한테 드리댄거걸랑.
러시아는 저 복수를 2백년 만에 확실히 하는거야. 폴란드 리투아니아.를 지구상 지도에서 지우는거지. 그게 폴란드 삼분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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