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Council of Nicaea (325)
First Council of Constantinople (381)[edit]
Council of Ephesus (431)[edit]
Council of Chalcedon (451)[edit]
Second Council of Constantinople (553)[edit]
Third Council of Constantinople (680-681)[edit]
Second Council of Nicaea (787)[edit]

공회의들을 초기에 7번을 해. 325-787. 450년간. 삼위일체 교리는 서기 451년. 4차회의 칼케돈.때 정해진거야. 2세기부터 시작된 세개의 단어부터 논쟁이 들어가서 350여년만에 정리가 된겨 이게. 엄청난 기간의 논쟁이야. 저 회의들도 이백에서 오백명의 성직자들이 세션을 나누고 서로서로 토론을 한거야. 얘들의 이 문화가 이게 어마어마한겨. 이게 유럽애들에게 스민거야. 우리네는 저런 토론을 이제야 해보는거고. 이 지성의 차이는 엄청난거야. 저런 기회를 준게 지저스.이고 그리스도이고. 삼위일체가 시작을 한거야. 이때 플라톤을 다시 부른거고. 유럽은 여기서 시작을 한거야 이게. 여기서 사유의 확장을 하면서 중세 천년을 만들고 산업혁명을 얘들이 한거고 지금 문명을 얘들이 만들 수 있었던거야.

유대교.도 말이지. 로마와의 유대전쟁을 하고나서야 자기들 교리 정돈작업을 한겨 이게. 이삼세기때야 시작하는겨. 헌데 이 논쟁이 그리스도 처럼 활발하지 않아. 그냥 주목받을 학자들만 나선거일 뿐이야. 그래도 유대인들의 힘은 저때 나온거야. 이 사유란게 인간과 짐승의 가름이야.

저런것들에 더하여 루터티나오는 리포메이션 이라는 종교개혁.또 하고. 미국땅가서 그레이트 어웨이크닝.이라는 대각성운동을 네번시기에 걸쳐해. 저런것과 대비해서 이슬람. 힌두교. 유교. 불교.를 비교해봐. 이 차이가 생각의 차이 사유 마당의 차이야. 유럽과 비유럽의 문명수준의 가장 큰 가름은 여기에서 나와.

조선 오백년은 저런 논쟁조차 하면. 죽여. 찢어서. 공자 말에 토달면 죽여. 그건 인간이 아냐. 주자의 해석에 토달면 사문난적이야. 그건 인간종자가 아냐 쟤들눈엔. 지식인 자체 들이. 미개의 극치를 간거야 이게. 일본들 유교논쟁조차 저러진 않걸랑. 얘들은 경학파 남학파 성학파 고의학파 고문사학파.등으로 막 갈리면서 논쟁하걸랑 유교조차도. 여기에 오규쇼라이 이토진사이. 막막 나오고. 더하여 얘들은 유교만의 나라도 아니거니와.

조선의 동인서인남인북인시파벽파. 다 걍 조폭들 똘마니들 모아놓고 서로 적페놀이 한것 이상없어 저게. 저건 유학논쟁을 한게 아냐. 남인 북인.이 이게 남명 조식계열이걸랑 북인이. 동인에서 남인북인 할때. 저기서 주리론 주기론 논쟁이 나오고. 이 주리론 주기론이란게 별개 아녀. 플라톤의 퓌시스 휠레.프레임이야. 플라톤은 이원론 어쩌고 그따우게 중요한게 아니고. 플라톤의 핵심은 이데아.의 "밝음""선" 에 방점을 둔거야 세상의 배후는. 이걸 부정한게 니체.이고. 세상의 배후는 그따위 밝음이 아니라 저 수면 아래엔 꿈틀거리는 괴물이 있을뿐이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일 뿐이고. 거기서 정신 바짝차려서 위버멘슈. 초인들이 되자. 해대다가 왠지 멀해서 매독 걸렸다가 걍 가신 분일 뿐이고. 세상 찌질이 중에 찌질이야 이 니체 가.

사단칠정이니 주리 주기 하는게. 세상 바닥. 실재. 퓌시스.가 리. 란거야. 성.이란게 리.고. 우주이자 마음의 바닥은 성.이야. 이 성.이란걸 깎고 다듬어 잣대로 만든게 리.야 그래서 성리학.하는겨. 이 리.는 사단.으로 되어있다는거고. 휠레. 라는 세상에 드러난 건 칠정.이란거야 사단칠정논쟁 식으론. 이기호발설에 기발설 하는건 심통성정.을 봐야해. 마음 심.이 성과 정.을 다 통제한다 걸랑. 이럼 또 마음이란 심.이랑 가장 바닥.리.인 성.이랑. 그 위의 정.이랑. 이 심 성 정 이 분리된거냐. 아니면 성 더하기 정.이 마음심.인거냐 로 또 생각꺼리가 있지 않겠니? 정.이란건 성의 부분집합이냐 아니냐. 심이 성과 정을 통제하면 정은 성이 통제하는거냐. 지각이란 게 리에 속하는거냐 기에 속하는거냐 아 아무래도 기에속하는거다 이거 기란게 중요하다.

함시롱 이때 생각 이란걸 하는거야.

내용이 중요한게 아냐. 이걸 명심해. 생각 이란걸 자유롭게 하는게 중요한겨. 논리적으로. 그것도 수백명이 모여서 막 서로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거야. 여기서 먼가 다른 꺼리가 나오면서 다른 질문들이 나오는거걸랑.

쟤들은 저러다 말아. 그리고 모든건 정치적으로 갈려. 논쟁이 사라지고 파벌 조폭무리가 돼.

정여립때 동인들 무지 당하걸랑. 저거도 증거없어. 걍 무지 죽이는겨 서인애들이. 여기에 남인이 침묵하고. 북인이란 남명조식 따르는애들은 상대적으로 호기로울수 밖에 없어. 사단 해대고 가만히 있어라 는 먼 헛 소리라니. 두륜산 도 내 발 아래 아 세상 모두가 내 아래있고만 하는게 남명조식 싯구걸랑. 얘는 칼차고 댕기써. 술 처먹고. 먼 사단이 어쩌고 하냐 하던 이걸랑. 이들이 정여립 편을 드는겨 당근. 먼 증거도 없고. 걍 카더라. 죽이는겨. 이전의 감정으로. 이 조선은 감정 싸움 이상없어 이게. 여기서 북인들이 살벌히 죽고. 편지 교환해도 죽여. 아 누구가 편지를 쟤랑 나눴슈. 그래? 죽여. 이발이 불쌍해. 형제들 다 죽고. 엄마가 팔십이 넘었어. 아이도 꼬마야. 고문하는겨. 죽여.

남이.가 죽을때도 말야. 남이의 엄마.도 근친으로 죽여. 증. 이란 글자 박고. 근친한거란 거야 저게. 아들이랑 애미가. 명명백백한 주작이야. 고문당하잖냐 사람들이. 살아남기위해서 남이 의 가족을 물고늘어지는거야. 말하면 살 수 있어. 남이 엄마도 그래서 찢어죽이고 삼일인가 걸어놔.


조선은 세조 때 재밌어 이게. 아직 고려때 기운이 있어. 세조가 호탕하걸랑. 세조는 나쁜애가 아냐. 영화처럼 그리 인상쓰고 하는 그런 인간이 아냐. 얘 입장에선 당근 김종서 무리를 칠수밖에 없어 걍 어린단종은 김종서가 하라는데로 황표놀이 하는데 그꼬라질 못보는겨 저게 김씨 조선도 아니고. 얘입장에선 해야만 했어. 단종은 세조가 죽이지 않았어. 애들이 죽여라 죽여라 도 다 말렸어. 단종이 한양 떠날때 자기 심복 내시를 화양리까지 보내서 전송케 해.

애들이랑 술먹을때 정인지가 욕 한듯 술자리서. 세조 보고 대놓고 이놈 저놈 한겨 그게. 남이도 그런짓을 해. 세조가 열받아서리 남이를 하루 감옥에 쳐넣어 불경하다고. 헌데 바로 다음날 풀어줘. 얘들 이때만 해도 재밌어 이런게. 단종이 도장 넘길땐 그 장면을 사관이 그대로 써. 꼬마가 일어나서리 엎드려 있는 삼촌한테 이거 가져유 하는 장면 보면 짠하던데 나는.

조선은 김종직의 나라야. 조광조의 나라고. 노론 의 나라가 아니란다.

먼 말 하다 샌냐. 하튼 저런 논쟁이 그 규모나 크기가. 비교가 안돼. 저러다 말아. 예송논쟁도 그 상복 몇년 몇개월도 그 근거 찾기는 중국들 고서야. 저게 별게 없어. 오직 권력 놀이 이상은 없어 저게.

.
짐승들의 나라야. 몇몇만의 조선.
.

세상에 저따위 부도덕한 인간 역사는 우주 빅뱅이래 138억년동안 있어본적이 없어. 저러다 먹히고 구한말에 외국인들이 보는겨. 거 프랑스 공사관이냐 걔의 조선 보고서 봔냐. 다 다 다 번역이 되어있다 그게. 야 여긴 먼 노예들이 이리 많누.

노비가. 특히나 여자노비. 유자광이 얼자 거랑. 엄마가 부엌데기 노비야. 이들은 여자노비.는 강간 전용이야.

얼자.란건 유럽 역사에 없어. 서자도 당근 없지만. 첩제도가 없어 유럽엔.

여자노비는 강간 전용으로 두는겨. 지들 씨받이로 쓰는겨 저들이. 그래서 본처들에게 또한 여노비들이 뚜드려 맞는거고. 이들이 또한 병란때 여자들이 청나라 애들 노비로 잡혀서리 청나라 머스마애들의 노리개가 되는겨. 그 본처 년들이 또 저 조선 여자들을 학대하는거고. 거기서들 도망나와서리 압록강을 건너려는데 못 건너. 조선에서 오게 하면 조정에서 죽여버려. 서로 압록강을 마주보고 울어. 그 압록강에 쌓인 백골이 수북하다고 오년후냐 상소를 하는겨. 그게 실록에 고대로 있어.

38년만에 안단.이란 사람이 도망나와. 이 사람도. 잡아서 보내는겨 중앙 코트에서. 아 어찌 이런일이. 안단이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을 사관이 썼어. 사관이 자기감정을 쓴건지.

.
구한말에 외인들이 저 노예들을 봐. 노예시장도 있나봐.

저걸 또 드립치길. 사가들 왈. 우리 조선 노비는 노예가 아뉴. 농노요 농노.

아 난 정말 이땅 사가 들 조선 팔이 하며 밥벌이하는 들을. 개인적으로. 혐오해.

.

정복왕 윌리엄.이 1066년 잉글랜드 정복할때 말이다. 아일랜드도 원정을 가. 이사람이 맞나? 아 기억력 요즘 감퇴라서. 아마 맞을껴. 저때 아일랜드에 노예시장이 있었걸랑.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야만이야. 가장 늦어 얘들이. 이 아일랜드 역사 주작질도 아일랜드 독립할때 교육부장관 하는 애가 학자인데 얘가 아일랜드 고대사 중세사를 쓰걸랑. 아무런 고증학적 증거 없어. 고고학적 자료 없어. 그냥 위대해 아일랜드. 오닐.하면 아일랜드여. 쟤도 무슨 오닐.이야.

야 뭔 노예시장이냐 이거 11세기에. 윌리엄이 저 노예시장을 없애.

Slavery became more widespread in Ireland throughout the 11th century, as Dublin became the biggest slave market in Western Europe.[8][4] Its main sources of supply were the Irish hinterland, Wales and Scotland.[8] The Irish slave trade began to decline after William the Conqueror consolidated control of the English and Welsh coasts around 1080, and was dealt a severe blow when the Kingdom of England, one of its biggest markets, banned slavery[9] in its territory in 1102.[5][8]

서기 1102년에 잉글랜드.는 노예제도를 금지시켜.

팔백년 전에 없어진 노예들을 쟤들이 저때 구한말 조선에 와서 본거야. 자기 민족들을 노예로 부리는걸 처음본거지.

저런 이야기 하나 제대로 비교하는 애들이 없는데 말야. 노예 하면 먼 흑인노예 만 눈깔에 뵈는지. 이슬람 천년 해적질의 지중해 민간인 약탈 노예질은 수백만이다 기록이. 노예로 잡혀간 유럽사람들이.

무슬림은 쓰레기야 쓰레기. 그리곤 남탓.

.

4차회의 칼케돈.이 중요해.

The council opened on October 8, 451. .. The council was attended by about 520 bishops or their representatives and was the largest and best-documented of the first seven ecumenical councils.[15]

(October 8-November 1)

총 520명.의 주교들과 대표들이 참석을 해. 초기 일곱 공회의 중 가장 많은 참석자야. 서기 451년 8월에서 11월까지 세달.을 한거야.

According to the deacon Rusticus, there were in all sixteen sessions; this division is commonly accepted by scholars, including Karl Josef von Hefele, an historian of the councils. If all the separate meetings were counted, there would be twenty-one sessions; several of these meetings, however, are considered as supplementary to preceding sessions.[1]

콘스탄티노플 외곽 도시의 교회 한 곳에서. 다 모인겨 이들이 16 세션. 또는 21세션.에 걸쳐 해. 세션이란건 seated 앉는거야. 일주에 한두번 꼴로 한거야. 나눠서 한것도 아니고 한 장소에서 다 모여서 한걸로 보면 돼. 이런게 쟤들의 힘의 바탕이 되는거야. 나중 독일땅 다이어트.란것도 저 그림들 보면 수백명이 한 자리에서 한거야 저게. 쟤들의 토론 문화는 이게 차원이 달라 다른 문명과.

저때가 서기 451년.이여. 이땐 말야. 훈족 아틸라.가 유럽을 헤집을 때야.

Attila (/ˈætɪlə, əˈtɪlə/; fl. c. 406–453), frequently called Attila the Hun, was the ruler of the Huns from 434 until his death in March 453.

아틸라.가 서기 434-453년을 지휘하는겨. 삼촌인 레길라 Regila 가 죽고 아틸라와 블레다 Bleda 형제가 받아. 20년을 휘저은겨 유럽을. 이때 얘 경로가 아조브해에서 넘어와서 모에시아 Moesia 로 가는겨. 콘스탄티노플 위야. 다뉴브 하류 불가리아 땅. 여기가 저지대 모에시아. 고지대모에시아.는 이 왼쪽 아래고 지금 마케도니아. 얘가 고지대 모에시아도 왔다가 콘스탄티노플 앞까지 와. 이걸 돈으로 해결한겨 비잔틴이. 사신도 보내고. 이 아틸라.가 그리곤 프랑스땅으로 넘어가는겨. 여기서 메로빙거 조.를 시작하는 메로빈지언. 프랑크 시작.의 할아버지가 아틸라랑 배틀붙는거고. 이 아틸라가 그리고 이탈리아로 가.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까지 가서 휘젓고. 아주 쑥대밭이 돼 당시 수확기인데 이걸 수확을 못해. 그래서 지옥이 된거고 이탈리아가. 그리곤 죽어 아틸라가.

이 아틸라.나 뒤에 오는 칭기스칸의 아이들이나. 점령된 땅의 병력들을 앞에세우고 대부대로 약탈을 하는겨 민간인을. 유럽은 저런식의 전쟁은 절대 하지 않았어. 민간인 대학살.따위는 유럽 중세 전쟁에 없어. 로마도 마찬가지야. 그런 전쟁은 하지 않았어. 저런 식의 전쟁에 공포를 느낀거야 로마가. 더하여 중세 유럽이. 듣도보도 못한 야만질이걸랑 저게.

저때 비잔틴.은 아틸라가 왔다가 돈보내고 협상하고. 그래서 아틸라가 서쪽과 이탈리아로 갔을때야. 태풍이 다녀간 시긴겨. 이때 열린거야 저 칼케돈 회의. 4차 공회의가. 그리고 이 후 25년 지나서 서기 476년.에 서로마는 오도아케르.에 의해 망. 하는거고.

.
평소 200여명 모이다가. 이게 가장 많아. 모두 모여서 저 위기의 시절에 내논 게 칼케돈 크리드.라는 신조야. 즉 이들은 위기의 시절을 저런 사유의 탐색과 신앙으로 실천적으로 해결한겨. 우리넨 고려를 보면 한무당 짓 나무조각만 파댄거고. 이건 미개한 짓이야 이게. 팔만대장경. 의미가 없어 저딴 짓은. 우리네 불교.는 아무런 사유의 탐색을 하지 않았어. 오직 중국들이 번역한 한자들을 조각만 한겨. 불교가 미개한겨. 기독교도 미개한겨 지금 이게. 이 나라 현실이. 이런 사유같지 않은 생각의 바닥에 이념놀이만 성행하는거야 이게.

The full text of the definition reaffirms the decisions of the Council of Ephesus, the pre-eminence of the Creed of Nicaea (325) and the further definitions of the Council of Constantinople (381)[3]
In one of the translations into English, the key section, emphasizing the double nature of Christ (human and divine), runs:


앞에 세개 회의들.인 니카이아. 콘스탄티노플. 에페소스.의 결과물들을 재 확인하고. 여기에 추가하면서 정리한거야. 그리스도의 삼위일체는 이 칼케돈 신조.에서 거의 정리를 하는겨 520명이 세달 동안 회의하면서.

크리드. Creed 라는건. 6세기에나 나온 말이야. 나중에야 저때들의 것을 저 제목으로 붙일 뿐이야. 크리드.라는건 크레도 Credo . 믿는다 의 일인칭이야. 나는 믿는다. 여기서 크레디트.란 영어가 나오고.

처음 니카이아 신조.가 시작이 Πιστεύομεν εἰς 피스테보멘 에이스. We believe 우리는 믿는다~ 로 시작을 해. 이걸 다음 2차회의에서 I believe. 나는 믿는다.로 바꿔. 주어를. 이게 라틴어로 크레도 Credo. 야. 나는 믿는다. 이 제목을 6세기 지나서 Creed 크리드. 라고 새로 단어 만들면서 쓰기 시작한겨. 이걸 중국은 신경. 일본은 신조. 로 번역하고.

공회의 결과물.만이 크리드.가 아냐. 초기에 나온 크리드 들이 십여개 있어. 중세이후에도 수십여개 크리드 들이. 있고. 사도신경.이란것도 2세기 즈음에 나온 출처 불분명한 크리드여. 루터 이후에 종교분리되서들 지들마다 크리드들이 나와.

Following, then, the holy Fathers, we all unanimously teach that our Lord Jesus Christ is to us One and the same Son, the Self-same Perfect in Godhead, the Self-same Perfect in Manhood; truly God and truly Man; the Self-same of a rational soul and body; co-essential with the Father according to the Godhead, the Self-same co-essential with us according to the Manhood; like us in all things, sin apart; before the ages begotten of the Father as to the Godhead, but in the last days, the Self-same, for us and for our salvation (born) of Mary the Virgin Theotokos as to the Manhood; One and the Same Christ, Son, Lord, Only-begotten; acknowledged in Two Natures unconfusedly, unchangeably, indivisibly, inseparably; the difference of the Natures being in no way removed because of the Union, but rather the properties of each Nature being preserved, and (both) concurring into One Person and One Hypostasis; not as though He were parted or divided into Two Persons, but One and the Self-same Son and Only-begotten God, Word, Lord, Jesus Christ; even as from the beginning the prophets have taught concerning Him, and as the Lord Jesus Christ Himself hath taught us, and as the Symbol of the Fathers hath handed down to us.[4]


삼위가 일체.인건 아리안이즘.의 자리 위아래 논쟁때. 플라톤의 퓌시스 휠레.를 갖고 와서 해결을 했어. 실재.가 같어. 퓌시스.휘포스타시스. 로 위아래 자리를 해결한겨. 자리 상하를 논해선 안돼. 성부성자성령 셋의 자리는 이 이상의 진행을 안한거야. 여기서 끝. 이 이후 이 자리 논쟁을 선후 문제로 다시 티나온게 1054년 동서교회분리 때 필리오케 란 이름으로 나오면서 삼위일체 방패.가 그 이후에야 티나오는거야. 즉 저 삼위일체 방패.의 의미.는 나중에야 정립이 돼. 니카이아와 칼케돈의 신조가 전혀 삼위일체 지금 정돈된 그 이야기가 아니야.

이때는 지저스의 정체성이야. 지저스가 사람이냐 신이냐. 가면만 쓴 사람이냐. 이것도 희포스타시스 라는 실재.와 가면 퍼슨.의 시선에서. 논쟁의 핵심은 실재. 바닥. 진짜야. 이걸 논쟁하는겨. 가면은 중요한게 아냐 가면이 뭐로 된건가는.

진짜 속성조차도. 사람이자 신.이란거야. 지저스.는 두개의 실재.로 이루어진거야. dyophysitism 다이오피사이티즘. 이게 정론이야. 이걸 거부하는게 Monophysitism 모노피사이티즘. 지저스는 속성이 신이면 신이고 사람이면 사람이지 두개가 아니라는겨. Miaphysitism 미아피사이티즘. 이것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해. 모노피사이티즘. 하나.란것과 같은 부류야. 헌데 전혀 달라. 이들은. 지저스가 신성과 사람성.이 섞여서 전혀다른 속성의 하나.라는겨. 오케이? Oriental Orthodox Churches. 이들이 오리엔탈 오소독시.란 이름으로 저 칼케돈 신조 를 거부하고 나가는 이들이야. 동양 정교회.로 번역하는.


co-essential with us according to the Manhood; like us in all things, sin apart; before the ages begotten of the Father as to the Godhead,

저기선 단지 성부성자성령.이 하이포스타시스. 실재를 같이 공유해서 같어. 여기까지만이야. 나중 이게 실재의 선후관계문제가 생겨서. 그래 같긴 같아. 헌데 아빠가 먼저고 아들이 다음이야 그 실재도. 이 문제로 중세 후반에 터지면서 분리하는겨. 삼위일체 정의.는 실재의 선후.가 없어 전혀. 누가 먼저고 누가 다음이고 이게 아냐. 셋 모두. 아타나시우스 는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이야. 시작이 없는 시작 끝이 없는 끝이야. 이 문제는 저때 교리들과 전혀 다른겨. 오케이?

저기서 사람의 성질. 인성.은 지저스가 우리와 같은겨. 지저스는 인성과 신성을 갖고있는데. 지저스의 인성과 우리 일반인들과 이 인성은 같아. 여기서 지저스는 죄.만 없는겨. 사람들은 죄.가 있는거고. 이것도 시안한 정리야. 굳이 이걸 넣은건 아폴리나리스 때문에 그래. 아폴리나리스.가 우리 사람은 짐승과 다를바가 없다 했걸랑. 신성을 고양하면서 인간이 짐승과 다를 뿐이란거걸랑. 이걸 거부하기 위해서 저런 말을 만든거야.

The Definition implicitly addressed a number of popular heretical beliefs. The reference to "co-essential with the Father" was directed at Arianism; "co-essential with us" is directed at Apollinarianism; "Two Natures unconfusedly, unchangeably" refutes Eutychianism; and "indivisibly, inseparably" is against Nestorianism.[1]

저러면서. 아리우스.와 다시 선을 확실히 거. 아폴리나리스 와도 확실히 선을 거. 유티치어니즘.이 콘스탄티노플의 유티케스.라는 사제여. 이사람이 미아피사이티즘.이 되는겨. 지저스는 신과 사람의 성질이 혼합되어 섞인 전혀다른 성질 네이쳐다. 이들이 거부돼. 오리엔탈 오소독시.로 나가는겨. 네스토리우스 랑은 테오토코스. 성모 마리아 의 문제로 이 위격정리와 함께 지저스의 두성질은 분리불가.로 해서 또한 결별하는거고. 이 네스토리우스.가 동쪽 인도 중국땅의 그리스도 바닥이 돼.

Fourth Ecumenical Council of Chalcedon, 1876 painting by Vasily Surikov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