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宛之跡,見自張騫。張騫,漢中人。建元中為郎。是時天子問匈奴降者,皆言匈奴破月氏王,以其頭為飲器,月氏遁逃而常怨仇匈奴,無與共擊之。漢方欲事滅胡,聞此言,因欲通使。道必更匈奴中,乃募能使者。騫以郎應募,使月氏,與堂邑氏(故)胡奴甘父俱出隴西。經匈奴,匈奴得之,傳詣單于。單于留之,曰:「月氏在吾北,漢何以得往使?吾欲使越,漢肯聽我乎?」留騫十餘歲,與妻,有子,然騫持漢節不失  

 

대완의 자취.는 장건.에서 시작이 돼. 한중. 사람이야. 섬서성 아래 가운데 시안시.의 서남쪽 시야. 지금 한중시.야 섬서성의 서남쪽 끝이야. 여기가 섬서성 남부를 지나서 쪽 하남성 낙양 왼쪽 산먼샤시.까지 가는 진령.이라는 긴 산맥의 아래여. 유방이 홍문연의에서 도망가서리. 진령을 넘는겨. 棧道. 잔도. 이 길이 잔도로 되어있어 절벽 낭떠러지에 띄엄띄엄 사다리길이야. 이걸 태워. 항우가 추적해서 올까봐 무서버서. 이 너머 아래가 바로 한중이야 얘가 정착하는. 그러다가 다시 항우가 수도 옮겨 팽성으로 가고, 저 진령을 왼쪽으로 돌아 쳐 넘어가는 길이 진창길.이 되는 진창이야. 이 진령이란 곳이 무지 험한겨 길이. 이 동쪽이 함곡관인거고 더 가서 산먼샤시에 삼문협곡이 되는겨. 아주 시안(호경 함양 장안 대흥) 이란 곳이 요충지여 이게. 중국 역사의 핵심이고. 중국역사는 여기서 벗어나서 낙양에 개봉에 북경으로 가는 역사여. 황하야. 허나 최종 정착지는 상해야. 장강이야. 이 중국은 황하와 장강 이 두문명의 경쟁이야. 이 둘이 전혀 달라 이게. 황하는 스텝이야. 장강은 티벳고원에서 내려온 이들에 오스트로아시아틱.더하기 오스트로네시아.야. 티벳과 버마오른쪽의 아시아와 아래 바다섬의 인간들이 세 축으로 아주 장강아래에 섞인겨 이게. 더하여 회하로 이어 간거고. 황하와 장강 사이의 회하. 인간들이 중국사를 만든겨. 

 

건원중. 위랑. 건원 때에 랑.이 되다. 

 

建元(けんげん)は、中国前漢代の元号(紀元前140年-紀元前135年)。中国最初の年号である。景帝の死後、皇位を継いで即位した武帝の初元

 

건원. 중국 최초의 연호.야. 사마천.이 이전까지는 그냥 황제 누구 몇년. 제후 누구 몇년.이라 쓰다가 이때부터 연호를 써. 이때부터 중국은 연호를 쓰는겨 한경제 죽고 아들 한무제 시작부터. 중국은 이 한무제가 만든거야. 

 

郎官,尊稱為郎君,簡稱為。古代中國職官名。無固定員數,通常是侍从官,依命行事。《史記·袁盎晁错列传》:“且陛下從代來,每朝,郎官上書疏,未嘗不止輦受其言。” 

 

랑관. 낭관. 높은칭호 낭군. 줄여 낭. 고정인원수가 없어. 이건 보통 시종관. 얜 비서. 참모야. 황제.가 조.를 내리면 이에 따라 행하다. 폐.아래에서 지가 모시는 사람 따라서 왔다가 상관이 당상으로 올라 가는겨. 얜 신발 벗어놓는 폐.아래에 대기하는 인간이야 자기 상관 기다리는. 조정회의 끝날때까지 상관이 타고온 수레옆에서 필요한 서류 드리고 지시사항 받는 인간이야. 조선식으론 당하관.이야. 걍 비서야. 높은 자리가 아냐.

 

是時天子問匈奴降者,皆言匈奴破月氏王,以其頭為飲器,月氏遁逃而常怨仇匈奴,無與共擊之。漢方欲事滅胡,聞此言,因欲通使。  

 

천자. 한무제가 흉노항자. 흉노에서 투항한 자.에게 물으니 답을 해. 훙노.가 월씨왕.을 파하고, 그 머리를 음료 먹는 그릇으로 써. 월씨. 월지가 숨어 도망가고 항상 원수로 생각을 하지만 공격은 못해. 무서운겨. 한나라가 호. 흉노의 대명사.를 멸하려 했는데 그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려는겨. 

 

月氏[註 1][1]上古漢語擬音(郑张尚芳):/*ŋod *kje/。又譯禺氏[註 2]禺知、月支、苑支)為前7世紀至公元1世紀一個民族名稱。  

 

월씨.를 중국발음 위에지. Yuezhi 라고 이걸 통상 쓰는데. 몰라 어떤 발음인지. 씨.라고 한글쓸땐 중국 발음 스.비슷하걸랑 헌데 저건 고대에 지.라 했다는거지. 해서 월지.라고 우리넨 써 통상. 우지 월지 라고도 쓰고. 일본애들은 걍 음 겟시.라 걍 써. 

 

道必更匈奴中,乃募能使者。騫以郎應募,使月氏,與堂邑氏(故)胡奴甘父俱出隴西。經匈奴,匈奴得之,傳詣單于。

 

월씨들 찾아 가는길이 흉노애들 땅이걸랑. 사신할 할 사람 공모를 하고 장건.이 낭관.자격으로 응모를 해 자기가 가겠다고. 당읍씨 호노(흉노) 감부.랑 같이 농서.로 출발해. 흉노.를 지나가다가 흉노가 잡아서리 선우(두목)에게 보내서 앞에 갔에 갔어. 

 

농서.는 농.이 섬서의 대명사. 섬서의 왼쪽. 즉 하서주랑 길을 간거야. 감숙성 누운 길. 양쪽 산맥들 있는 복도길. 이 끝이  알툰산맥이고 여기로 들어가는 입구가 옥문관이야. 실크로드 시작. 여기 너머가 신장위구르여. 이쪽부근이 다 흉노땅인겨. 여기서 잡혔다는거야. 저때 흉노.는 지금 신장위구르.의 남강 북강.에 천산산맥 넘어 북강.에 소위 수도가 있는거야. 얘들 두목 호칭 선우.가 저기 있어

 

單于留之,曰:「月氏在吾北,漢何以得往使?吾欲使越,漢肯聽我乎?」留騫十餘歲,與妻,有子,然騫持漢節不失  

 

선우가 말해. 월씨는 내지역 북에 있는데 한나라가 왜 사신을 보낸다니? 내가 사신을 장강의 월나라에 사신을 보내면 한나라는 나를 긍정적으로 대하겠어? 장건이 10여년을  여기에 있는거야. 부인을 두고. 자식도 생겨. 그러면서도 한절. 한나라 징표 마디짝대기.를 잃지 않고 간직한겨. 이 십여년.을 팁으로. 건원2년. 기원전 139년.에 출발했던 것으로 보는겨 장안에서. 10년을 포로생활하면서 부인에 자식을 뒀어. 

 

居匈奴中,益寬,騫因與其屬亡鄉月氏,西走數十日至大宛。大宛聞漢之饒財,欲通不得,見騫,喜,問曰:「若欲何之?」騫曰:「為漢使月氏,而為匈奴所閉道。今亡,唯王使人導送我。誠得至,反漢,漢之賂遺王財物不可勝言。」大宛以為然,遣騫,為發導繹,抵康居,康居傳致大月氏。大月氏王已為胡所殺,立其太子為王。既臣大夏而居,地肥饒,少寇,志安樂,又自以遠漢,殊無報胡之心。騫從月氏至大夏,竟不能得月氏要領。  

 

흉노땅에 살면서. 익관. 점점 관대해진겨 흉노가. 느슨해졌어. 장건.이 그래서. 자기 속. 따르는 무리.와 함께 월씨 향해서 도망간거야. 저때 딱히 이 속.이 누구누군지 알길이 없어. 가족이 같이 갔나 아이를 데리고. 저 험한길을. 하튼 끝에는 마누라와 같이 한나라에 돌아와 감부와 같이. 자식은 몰겄어 부인은 써있는데 자식은 안써있어.  

 

서쪽으로 달려 수십일. 대완(대원).에 이르르다. 대완.은 한나라의 효재.를 듣고. 넉넉한 재물들. 통하려 했으나 못했는데 장건을 보고는 기뻐 묻다. 어디에 가려고? 장건 왈. 한나라 월씨 사신인데, 흉노가 길을 막았는데 지금 도망나왔어. 킹아 사람하나만 나한테 붙여서 거기에 보내줘. 임무를 다하고 한으로 돌아가면 한이 너 킹한테 재물을 주도록 꼭 말하겠어. 대완이 그러겠다 하고 역. 통역이 대완사람과 함께. 강거.에 닿은겨. 강거.에서 대월씨(대월지)로 보내고. 대월지.는 왕이 이미 흉노에게 죽어서 태자가 왕이 되다. 대하.를 신으로 두고 살아, 땅은 비옥하고 풍요롭고 도적은 적어. 마음가는 곳이 안락해. 한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어, 둘이 동맹이 효력이 있으까 생각하는거지 이건. 흉노 호.한테 복수심도 없어. 장건.이 대월지.의 속국인 대하.까지 간거야 아래로. 여기에까지 왔는데 결국 월지의 요령.을 얻지 못해. 요령부득. 요령.이 핵심 강령이고 원래는. 즉 거절을 당한겨 최종 의사결정자에게, 자기들은 한나라랑 연합해서 흉노랑 싸울 생각이 없다는거지.

 

大宛英语:Tayuen; 上古漢語擬音:Ta-yuan /dhaːts ʔwan/[1] ; 中古漢語擬音(Edwin G. Pulleyblank): /daj ʔuan/ ),是西汉时,泛指在中亚費爾干納區域居住的國家和居民,大宛國大概在今日費爾干納盆地。  

 

대완.이 상고 한어.는 다완. 중고한어는 다위안. 해서 저게 한글표기 상고.로는 대완. 중고로는 대원. 해서 요즘 우리네는 이걸 대원. 하걸랑. 그럼 대원.이라고 이제부터 해주고. 우리는 의성어.하고 중국은 의음어.라고 해. 의.라는게 비교 견주는겨. 한어.할때 어.라는 건 랭귀지.야. 스크립트.라는 글자 문자 가 아냐. 소리발음이야. 상고한어.는 주나라부터 한나라까지 쳐. 이전을 원시한어.라고 해. 한나라 이후부터 수당까지.가 중고한어고. 이후가 근대한어.야  

 

漢語族(或漢語語族漢白語族)為漢藏語系的一支。關於其所包含的語言種類,在語言學界主要有兩種不同觀點:一種認為漢語族只有漢語一種語言;另一種認為漢語族包含官话湘語贛語吳語閩語粵語客家話七大語言(或加上晋语徽语廣西平話),其中「閩語」實際上是閩語支,其下分閩南語閩東語閩北語閩中語莆仙語等互不相通的語言  

 

중국어. 한어족.이 관화. 상어. 감어. 오어. 민어. 월어. 객가어. 7대어언. 진어 등 추가.

 

官話(又称北语北方话官話方言。此外有時也稱北方方言

 

The English word "mandarin" (from Portuguese mandarim, from Malay menteri, from Sanskrit mantrin, meaning "minister or counsellor") originally meant an official of the Ming and Qing empires.[7][8][a] Since their native varieties were often mutually unintelligible, these officials communicated using a Koiné language based on various northern varieties. When Jesuitmissionaries learned this standard language in the 16th century, they called it "Mandarin", from its Chinese name Guānhuà (官话/官話), or "language of the officials".[10]  

 

관화.가 관.에서 쓰는 말. 북어 북방화. 이게 스텝에서 시작한 주나라.가 황하 따라 만든 중원이 하류까지 가서 나중 수나라에 수로 건설해서 북경까지 이 언어족이 길게 이어져. 서남으로 이들 언어족이 운남성까지 들어가. 

 

이들을 만다린어.라고 하는데. 이건 포르투갈.이 탐험의 시대에 마카오에 자리잡고 중국 명나라 관공서 애들 상대하면서 이 관공서 공무원들 관리.를 만다린.이라고 부른겨. 이들이 중국 오기전이 인도 다음에 말레이반도 의 말라카.에서 멀러커즈 스파이스섬들과 마카오로 진출하는거걸랑. 해서 말레이반도 있을때 거기 관료를 멘테리. 한건데. 마카오에 가서 이 말레이사람들이 통역을 하면서 만다린.이 된겨. 

 

나머지 여섯 말들은 장강 아래여. 객가어. 가 하카. hakka 란 이들이고. 이들이 화북에서 내려온거로 보걸랑 송나라 당나라때. 오어.가 오나라 고 월어.가 월나라여. 장강 하류 남부여 똑같어. 감어.는 강서성에 감강.이 있어 장강 지류. 진어.라는건 이 진 晉 이란 곳은 산서성.이야. 

 

저놈의 진. 사마씨 진나라의 진. 이 섬서이분할때 섬진 당진.할때 당진.의 진.이걸랑. 당나라 당이 곧 진.이야. 여기가 삼황오제할때 사기.에 황제 전욱 제곡.다음 요 순. 은 항상 당요 우순.이라고 읊도록 해. 요.는 당요.야. 이사람이 이름이 요.인데 당.을 봉지로 받은겨. 그리고 제곡 다음 제위에 오르는건데. 이 당.이 산서성 남쪽이야. 훨 이후 주나라때 주성왕이 어려서 킹하고 삼촌 주공단 한테 맡기고 동생이랑 놀아. 이때 장난으로 나무가지 주면서 너를 제후로 봉하노라 했걸랑. 아 장난이 아니게 된겨 옆에서 신하가 듣고. 해서 동생한테 주는 땅이 저 당.이야. 산서성에. 이 동생이 받아서 여길 당.이라고 한교. 당국. 이 바로 아들이. 이름을 진국. 으로 바꾸면서 최초로 晉 이 진.이란 글자가 등장해. 당이 곧 진이야. 산서성 아래. 이 아래가 하남인거고. 산서성.의 상징이 저 진.이란 글자야. 산서성에 진중시 진성시.가 있고. 당진.이 이게 같은겨 .여기서 당나라.란 이름이 나중 나오고. 춘추때 진국.이 망해서 이게 아래부터 위로 한위조 세나라로 분리되면서 전국7웅이 돼. 

 

 

대완. 대원. 장건 이 천산산맥을 타고 서진하면서 카스. 카슈가르를 지나서 파미르 북쪽을 넘어서 다다른 곳이야. 이게 타지키스탄 북쪽으로 보면되고. 강건.을 지금 타슈켄트.로 봐 서쪽에 약간 서북쪽이야. 여길 가서 아래로 내려간겨. 

 

대월지.(대월씨)에 닿아. 여긴 아무강.아모강. 파미르고원이 동쪽에 장벽으로 있는겨 중국과 가르는. 여기서 흐르는 강이야. 아마 여기 부근일껴 저 대월지가. 이 바로 위가 대원.이고 이 대원 위와 옆이 소그디아. 야. 대월지는 대원의 아래에서 중남부.의 땅으로 보면돼. 

 

저 아무강이 타지키스탄 가운데를 갈라서리 쭉 서쪽으로 흘러서 길게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국경을 가르면서 아랄해로 가는 강이야. 여기 아래.와 힌두쿠쉬 사이가 당시 대하.라는 박트리아.야. 여기까지 온겨 장건이가. 헌데 결국 연합작전을 거절당해. 수포로 돌아간거야. 십년동안 포로생활하다 왔는데. 

 

留歲餘,還,并南山,欲從羌中歸,復為匈奴所得。留歲餘,單于死,左谷蠡王攻其太子自立,國內亂,騫與胡妻及堂邑父俱亡歸漢。漢拜騫為太中大夫,堂邑父為奉使君 

 

유세여, 일년여를 머물고, 돌아갔어. 병 남산. 남산을 따라서. 욕종강중귀. 여긴 강족.의 땅인겨. 헌데 다시 흉노에게 잡힌거야. 이거만 보면 문맥이 애매한데 돌아갈때 경로를 남산.만 언급했걸랑. 이게 하서주랑의 남산인지. 아니면 티벳과 가르는 곤륜산맥이라는 아래산인지 저걸론 알길이 없어. 일단 한자.남산 하면 저기선 하서주랑의 남쪽산으로 칭해. 하서주랑이 동북은 북산 남서는 남산.이라 통칭해. 이 남산.에 기련산이 있는겨. 하서주랑은 북과 남의 산맥 줄기 사이의 복도야. 여기서 또 흉노에 잡혔어. 그러다 일년여 머물었는데 선우(두목)이 죽어. 좌곡리왕.이 태자를 공경하고 혼자 선겨. 얘가 선우가 된겨. 국내가 난이 나고. 장건이 흉노 부인과 당읍씨 감부.와 모두 함께 한으로 도망해. 한은 장건을 태중대부.로 올리고. 흉노인 당읍감부.는 봉사군.이 돼. 

 

左谷蠡王,是古代匈奴官号,與右谷蠡王相對,低於右賢王,为二十四长之一。東漢南匈奴低於左賢王,高於右賢王,為四角之一 

 

좌곡리왕. 중국어로 주어굴리왕. 으로 읽어. 그럼 곡.이라 써야해. 녹.이 아냐. 좌곡리왕. 우곡리왕. 좌현왕 우현왕. 니 넷이 흉노.의 사각.이야. 이 사각 위에가 선우.라는 짱이야. 좌곡리왕이 좌현왕보다 낮고, 우현왕보다 높아. 우곡리왕은 그럼 어디냐 이거. 여하튼 저 선우.아래 네명중 좌곡리왕.이 쿠데타 했다는겨. 

 

騫為人彊力,寬大信人,蠻夷愛之。堂邑父故胡人,善射,窮急射禽獸給食。初,騫行時百餘人,去十三歲,唯二人得還。  

 

장건이 위인. 다른사람에 대해서는 강력.해. 관대하고. 신인. 다른사람에 대해 믿음을 준다는겨 이건. 만이(오랑캐)가 그래서 좋아했어 이 장건을. 당읍부.는 이전 호인 흉노였는데 활을 잘 쏴, 궁할때 금수를 활로 사냥해서 음식으로 끼니채운겨. 장건이 저 먼 길을 4천여 키로미터의 산길을 오랑캐에 잡히고도, 고행길에 안굶으며 도착한 이유란 거지. 처음엔 백여인이 갔는데. 13년이 지나서 오직 둘만 돌아온거야.

 

태중대부가 돼. 낭관.에서. 가방모찌에서 어느정도 승진이냐면.

 

汉书·百官公卿表》载:郎中令所属有太中大夫等,秩比千石,掌议论。官名。光禄勋属官有中大夫、太中大夫、谏大夫太初元年更名中大夫为光禄大夫,秩比二千石,太中大夫秩比千石如故。  

 

한서.에 백관공경표.를 보면. 낭중령.구경 중 하나.에 속한 관직이 태중대부 등.이야. 저기서 광록대부.가 세번째걸랑 2천석.이야. 태중대부.는 천석을 받아. 

 

로또 승진한거야. 그래서 이 장건 때문에 이 후로. 저 서역길 사신 자청하는 이들이 넘쳐나. 다녀오면 높은 관직 받는다는 소문에. 저 이후 무수히 가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어. 중앙 코트.는 사기만 당해 저 사신자청하는 애들로 인해. 대원.과 대월지.는 후에는 아주 구찮아해 한나라에서 오는 애들때메. 민폐가 돼 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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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이 한무제 에게 보고를 해. 직접 보고 들은 나라들에 대해서.

 

騫身所至者大宛、大月氏、大夏、康居,而傳聞其旁大國五六,具為天子言之。曰 

대원. 대하. 대월지. 강거. 등 말고 다른 걸 보면. 이게 재민는데. 또한 우리네가 전혀 모르는 거고. 

 

大宛在匈奴西南,在漢正西,去漢可萬里。其俗土著,耕田,田稻麥。有蒲陶酒。多善馬,馬汗血,其先天馬子也。有城郭屋室。其屬邑大小七十餘城,眾可數十萬。其兵弓矛騎射。其北則康居,西則大月氏,西南則大夏,東北則烏孫,東則扜穼、于窴。于窴之西,則水皆西流,注西海;其東水東流,注鹽澤。鹽澤潛行地下,其南則河源出焉。多玉石,河注中國。而樓蘭、姑師邑有城郭,臨鹽澤。鹽澤去長安可五千里。匈奴右方居鹽澤以東,至隴西長城,南接羌,鬲漢道焉。

 

대완. 대원. 은 흉노 서남. 한나라 똑빠로 서쪽 만리. 포도주.가 있고. 좋은 말.이 많아. 마한혈.

 

북에 강거. 서에 대월씨. 남에 대하. 동북에 오손. 정동.에 우삼. 우전. 여기 서쪽에서 물이 흘러서 이게 동으로 가서 염택호.를 만들고 여기 물이 아래로 흘러서 황하로 나간다는거고. 저 강이 타림강.이고 타림분지.를 가운데 가르는 강이야. 

 

더 가서 누란. 이란 곳이 있어. 염택이란 곳이. 아래 병풍 곤륜산맥에 알툰산맥의 동쪽 끝이야. 여기서 장안까지 오천리. 즉 이사람은 대원.에서 장안까지를 만리.라 하고. 그 반이 염택.이란 곳이야. 중국땅 감숙성과 경계야. 여길 넘어가면. 지금의 돈황시.가 있는거야. 이 돈황시.가 신장과의 경계여. 돈황시.에 옥문관.이라는 실크로드 출발지가 있는거고. 

 

만리.가 여하튼 지금 지도상으로는 정확하게 찻길로 걍 4천키로 보면돼. 하서주랑.이 2천키로여.

 

저기서. 흉노.는 염택 동쪽에서 농서 장성에 이른다. 남은 강족에 접하고. 즉 얘들이 타림분지 동쪽에서 섬서성 서쪽을 걸쳐 지배하는거고. 여긴 하서주랑 중북부를 포함한거야. 신장의 천산산맥 위를 포함하고. 하서주랑 아래쪽에 강족이 있었던거고 얘들이 쫓겨난거야. 

 

저기서. 우전.과 누란. 

 

위에가 천산산맥.이고 그 위에 오손.족이 있고. 구자.가 저 위 오른쪽. 그 오른쪽에 당나라 도호부.가 저기 자리잡은거고.

 

아래가 곤륜산맥에 알툰산맥이야. 아이금. 이 알툰산맥이 하서주랑 북쪽까지 이어가서. 아래 기련산맥.과 만나. 이 둘을 하서주랑의 남산.이라 해. 우전.이 왼쪽이고. 누란. 이 오른쪽이야. 

 

疏勒. 소륵.이 지금 카스. 예전 카슈가르. 슐레. 

 

저게 다들 저당시 고대 국가야. 슐레.는 기원전 200년.으로 봐. 

 

和田市 维吾尔语خوتەن شەھىرى拉丁维文Xoten Shehiri, 旧称“和阗”,1959年更名为“和田[1]),位于新疆西南部和田地區塔克拉玛干沙漠南侧边缘的绿洲内,是古代“丝绸之路”上的重镇,以“和田玉”、“和田毯”以及“和田绸”闻名天下  

 

우전.이 지금 화전시. 이게 우전국.으로 56–1006 서기 56년 부터 1006년까지 킹덤.이야. 이전에 있던 이들이 토카리안.이라해

 

The Tocharians or Tokharians (/təˈkɛəriənz/ or /təˈkɑːriənz/) were Indo-European peoples who inhabited the medieval oasis city-states on the northern edge of the Tarim Basin (modern Xinjiang, China) in ancient times.   

 

이 토카리안 언어족.은 인도유러피안.의 별도 가지야. 이란어족 아리안족(인도 아리안)에 안 넣는 별개야 이건. 이들은 9세기에 사라졌어. 이란어족과 투르크어족에 스며든거야.

 

The Afanasievo culture, or Afanasevo culture (Russian Афанасьевская культура Afanas'yevskaya kul'tura; "[the] Afanasevan culture"), is the earliest known archaeological culture of south Siberia, occupying the Minusinsk Basin and the Altai Mountainsduring the eneolithic era, c. 3300 to 2500 BC. It is named after a nearby mountain, Gora Afanasieva (Russian: Гора Афанасьева, lit. 'Afanasiev's mountain') in what is now Bogradsky District, Khakasia, Russia.[2]  

 

기원전 3300년-전2500년 의 아파나시에보 문화. 가 남시베리아.에 있어. 여긴 몽골알타이 위. 몽골고원의 위에서 왼쪽 발하슈 호수 에 걸친 곳이야. 토카리안들이 여기 있다가 내려간걸로 보여. 이들이 천산산맥 넘어 타림분지로 들어가고 파미르 왼쪽 박트리아땅으로도 내려가고.

 

저길 왼쪽의 이란어족들이 넘어와서 세운거야 우전.이란 킹덤을. 이들은 이란어족이야. 이란어족 중에 동이란어족.이야.

 

이란어족.이 동이란 서이란.으로 나눠. 동이란.의 엄마는 

 

The Scythian languages (/ˈsɪθiən/ or /ˈsɪðiən/) are a group of Eastern Iranian languages of the classical and late antique period (the Middle Iranian period), spoken in a vast region of Eurasia named Scythia.  

 

스키타이 라 들어본. 시디언 언어족.이야. Sycthia 시디어. (그리스어 스키티케)는 흑해 카스피해 북쪽 걸친 스텝이야. 동쪽으로 더해서. 남부를 파르티아. Parthia 라 한거고. 

 

시디어.라는 동이란언어족.에서 시작언어가 아베스탄.이야 기원전 2천년이 시작으로 보고. 이게 동이란어족의 시작이야. 여기서 박트리아어 소그디안어 나오고 뒤에 파슈토어족.이라는 아프간 애들이 주로쓰는 어족이 나와.

 

서이란어족.의 엄마는 페르시안.이야. 이게 기원전 오육백년.으로 보는겨. 동시에 있는 서이란어족을 메데 Medic 으로 봐. 저 올드 페르시안이. 아케메네스 제국.이고 메데어가 메데 제국.이야. 메데를 아케메네스가 먹는거고.

 

지금 이란 이란 나라의 공식언어는 페르시안.이야. 서이란어족인거고. 타지키스탄.이 타지크어인데. 이것도 페르시안의 가지야. 얘들도 서이란어족이야. 

 

유러피안이 동쪽으로 가서 이란어족. 아리안어족(인도) 으로 나뉠때. 아리안어족(인도)의 시작은 베다어.야 얜 아베스탄보다 늦은겨. 기원전2000년 다음이야 한 전1500년으로 보믄돼. 동이란어의 아베스탄.에서 나간거야. 아베스탄.은 전2000년 에서. 다음 전1000년 에 영거 아베스탄.으로 또 진화가 돼. 

 

 

이란어족.이 동이란 서이란 으로 나뉠때. 동이란.이 먼저야. 나중에 여기서 올드페르시안.이 서이란.으로 따로 분가를 해서 얘들이 메데.와 아케메네스.에서 지금 이란.을 만드는거야. 분가를 1500년이 지나서 한거야. 즉 위에 스키티케. 시디어.에서 내려와서. 파르티아.가 되는거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거야. 

 

시디어(스키티케. 스키타이)의 오른쪽 위에 아파나시에보 문화의 토카리안.도 위에 있다가 내려간거고. 여기 언어족.의 중심은 위에 있었던겨. 언어족.이란게 보다 문명화의 힘이 내재가 되어있던 거라고 본다면. 문명은 위의 사람들이 내려가서 아래 사람들을 지배한게 문명의 과정인거야 이게. 보다 추웠던 이들이 더 강했거나. 저 당시 기온변화를 봐야겠지만. 여하튼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흑해 카스피해에 접한 북부지역 사람들이 인류문명을 시작한 가장 강력한 사람들인거야 기원전4천년에. 이들이 오른쪽으로 발하슈넘어 위의 아파나시에보.로 간거고. 아래로 가고. 왼쪽으론 유럽으로 향한겨.

 

기원전 2천년에 분화가 된게 동이란.의 올드페르시안과. 아리안(인도)의 베다언어족.이야.

 

 

타림분지에 기원전 1천년에 토카리안들이 위에서 내려와 들어오고 있다가. 이들 다음에 오는 사람들이 동이란어족이야.

 

Saka, Śaka, Shaka or Saca (Persian: old Sakā, mod. ساکا; Sanskrit: शक, Śaka; Ancient Greek: Σάκαι, Sákai; Latin: Sacae; Chinese: , old *Sək, mod. Sāi) were a group of nomadic Iranian peoples who historically inhabited the northern and eastern Eurasian Steppe and the Tarim Basin.[1][2]  

 

시디어(Scythia)에 사는 시디언.은 오른쪽 인도이란어족(이란과 인도아리안)의 시작이야 저 시디언.들이. 기원전 2천년 이전.의 사람들이야 시디언.이라는 용어의 쓰임은. 

 

저 이후. 저 시디언들이 동쪽으로 아래로 이동하고. 흩어져. 저 이후 기원직전후 시대즈음 부터는. 시디언.이란 사람들과 구분을 해서. 저 스텝의 사람들을 사카. 샤카. 라고 하는거야. 이들은 보다 넓게 분포가 된겨. 타림분지 까지 들어가고. 

 

자. 저 사카들은 이란인들이야. 이미 인도아리안.이라는 인도에 들어간 사람들은 더이상 이란어족이 아냐.

 

다시. 사카는 이란어족이야. 시디언들이 흩어지고 시디언.이란 이름은 지워지고 사카.로 남았어. 이건 말야. 투르크.라는 스텝과 전혀 별개여. 사카.는 투르크 사람들이 절대 아냐. 용어 구분을 분명히 해.

 

이 사카들이 우전국을 점령해서 Khotanese 코타니즈. 하는겨. 우전.이 코탄.이야 중국발음. 코탄 호탄 허탄 허티안. 

 

사카 코탄어족.이라고도 하고. 천년을 있었어 서기 1006년 까지. 불교국가야. 이란사람들인데. 바로 아래 곤륜산맥 넘어가 티벳이걸랑. 여기 타림분지엔 티벳인들 장족이 또한 많이 스미는거야. 해서 지금 신장위구르.의 남강이란 타림분지는 이란인들 티벳장족인들 투르크인들이 있는겨 여기 한족들이 오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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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전 의 반대쪽 끝이 누란.이야. Loulan 樓蘭 . 루란.으로 읽는. 저 지도상 끝에 누란.과 옆 미란.米 도 이 누란국 관할로 보이고. 저 왼쪽의 미란.이란 곳에. 장건이 말하는 염택.이란 호수.가 있어.

 

 

罗布泊维吾尔语لوپنۇر‎,蒙古語:Лоп Нуур,古称盐泽泑泽蒲昌海牢兰海洛普池辅日海临海洛普池罗布池等,

 

장건이 염택 하는곳이 지금 나포시.야. 몽골어 로프 노르(누르). 로프 호수. 소금호수란겨. 

 

公元前3世紀時,當時樓蘭受月氏統治。公元前177年至公元前176年,匈奴打敗了月氏,樓蘭又為匈奴所管轄。公元前77年樓蘭國王尉屠耆更名鄯善國

 

누란국.이 기원전 3세기.엔 월씨족(월지)가 통치했는데. 흉노한테 쫓긴거야. 그래서 흉노관할로 들어간거고. 이 월씨들이 저때 쫓겨나서 산맥따라 곤륜지나 파미르 넘어간겨. 장건 오기 50년 전에. 

 

기원전77년.에 선선. 샨샨으로 개명을 해. 

 

 

헌데 말야. 우전국.이 서기 56년 부터고. 누란국.은 중국 전국시대부터걸랑. 그렇지만 이전에도 여기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 토카리안들이 기원전 천년에 넘어왔었고 타림으로. 

 

이 누란국.이 고고학적으로 저 훨전에 고대 문명이 미스테린겨.

 

A number of mummies, now known as the Tarim mummies, have been found in Loulan and in its surrounding areas. One female mummy has been dated to c. 1800 BCE (3,800-year-old), indicating very early settlement of the region.[4]  

 

많은 미라들이 타림 분지에서 발굴하는데. 이걸 타림머미.라고 해 타림미라. 누란에서 기원전 1800년 께 나와. 타림분지가 사막이라지만 주위 산맥에서 물줄기들이 흐르걸랑. 우전.이나 누란.이나 오아시스야. 저들을 토카리안 들이라 보는거야. 저 누란국.도 전국시대 이전의 고고학적 연구가 20세기 초에. 유럽 인간들이 저길 또 하는겨.

 

세상의 모든 역사.는 다 저 유럽애들이 하는거야 이걸. 이 누란 킹덤 연구가 지금 하는거야. 다시 20세기 말에 계속 발굴되는거고. 저 타림분지 땅들이 미지의 세계야. 

 

이 누란.은 특히나 하서주랑 출입구고. 위에 몽골고원이고. 스텝애들이 오기 쉽고 중국도 직접 지배도 하다 가고. 오래 못버티는겨 나라가.

 

 

 

The Uyghur Khaganate (or Uyghur Empire or Uighur Khaganate or Toquz Oghuz Country) (Modern Uyghur: ئورخۇن ئۇيغۇر خانلىقى), (Tang era names, with modern Hanyu Pinyin: traditional Chinese: 回鶻; simplified Chinese: 回鹘; pinyin: Huíhú or traditional Chinese: 回紇; simplified Chinese: 回纥; pinyin: Huíhé) was a Turkic empire[7] that existed for about a century between the mid 8th and 9th centuries. They were a tribal confederation under the Orkhon Uyghur (回鶻) nobility, referred to by the Chinese as the Jiu Xing ("Nine Clans"), a calque of the name Toquz Oghuz or Toquz Tughluq.[8]  

 

돌궐국 1차 2차 가. 552-744. 2백년에 망하고. 흩어져서 여러 스텝 족들이 되고. 이중에 몽골고원에 위구르 칸.이 서는겨.

 

当时的突厥汗國古突厥文中習慣稱呼回紇人为 Toquz-oghuz,意即“九姓乌古斯[2],“乌古斯(oghuz)”在古突厥语中有“部落”、“联盟”、“姓”之意。有人则认为回纥的族名为古突厥语的Uyghur,意為團結、同盟輔助,见于《磨延啜碑》有十回紇和九烏古斯(九姓)的记载[3]。而另一解释称,回紇族名的词源为oigur,是森林中人與十個游牧氏族。  

 

위구르.라는 회골. 어원.이.

 

돌궐국 2차.가 토쿠즈 오구즈.라는 아홉(토쿠즈)부락 연맹(오구즈)체였어. 당시 당나라에서 돌궐애들의 아홉부락 체제.를 한문으로 구성 오고사. 한겨. 아홉씨족의 오고사. 오구즈.의 소리발음이야. 연맹.  한문으로 회골. 저 위구르 칸이 돌궐에서 반란한 이들이걸랑. 이들이 칸을 세워서 자기들도 똑같은 구성 오고사.를 만든겨. 위구르.가 오고사. 오구즈.여. 이걸 회흘. 회골. 이란 한자로 쓴거고. 즉 연맹 동맹.

 

 

해서 저들을 오고사이게 지금 신장위구르.의 위구르 시작인데. 참 비참한데 지금 저 사람들 중국들 때메. 저 중국이란건 정말 그야말로 머야 저건. 이념에 미친. 북조선과 같은겨 저게. 저따위 중국과 북조선에 환장한 애들이 있다는게 참 서글픈건데.

 

744–840. 저들이 백년 칸 체제였다가. 킹덤을 세우는겨. 칸 백년일땐 종교가 말야. 원래 탱그리즘.에 불교를 더하고. 아주 싕기한게 마니교.가 여기 공식 종교야. 

 

세계 최초야. 마니쿄. 매니키즘.이 나라의 공식종교를 채택한게. 이 마니교.가 위구르를 통해서 중국 본토에 스미는겨 이게. 이게 나중 오백년이 지나서 주원장.이 마니교도여 명교라 카는. 저 명나라.의 시작이 마니교야. 

 

위구르 칸.이 백년있다가. 얘가 쪼개져. 쳐들어 오는게. 뜬굼포 머리 위야. 

 

지금 바이칼호.는 러시아땅이야. 몽골 중간 머리 위야.

 

예니세이강.의 본류. 시작이 지금 카자흐스탄과 몽골. 신장위구르. 중국. 만나는 점.에서 오른쪽이야. 바이칼 호수의 정 서쪽이고. 바이칼호에서 물이 서쪽으로 흐르면서 지류로 예니세이에 흘러가. 예니세이 강이 일직선으로 이게 카라해 Kara Sea 로 들어가는겨.

 

The Yenisei Kyrgyz, also known as the Ancient Kyrgyz or the Khyagas (Khakas), were an ancient Turkic people who dwelled along the upper Yenisei River in the southern portion of the Minusinsk Depression from the 3rd century BCE to the 13th century CE. 

 

예니세이 키르키즈. 이들이 예니세이 강 상류에 있어. 여길 미누신스크 분지.라고 해. 이들이 동남으로 쳐내려가는겨 당시 위구르 칸땅 몽골고원으로. 그래서 위구르.가 쫓겨나가면서 하서주랑을 쑤셔 들어가고 타림분지로 도망가서 킹덤을 만들어.

 

Qocho (Chinese: 高昌回鶻; pinyin: Gāochāng Huíhú; literally: 'Qocho Uyghurs', Mongolian ᠦᠶᠭᠦᠷ Uihur "id."), also known as Idiqut,[7][8][9][10] ("holy wealth"; "glory") was an Uyghur Turkic kingdom created in 843, with Buddhist and Tocharian influences. 

 

The Ganzhou Uyghur Kingdom (甘州回鶻), also referred to as the Hexi Uyghurs, was established in 894 around Gan Prefecturein modern Zhangye.[4][5] The kingdom lasted from 894 to 1036; during that time, many of Ganzhou's residents converted to Buddhism.[6]  894–1036

 

 

고창 위구르. 감주 위구르. 

 

고창 위구르는 몽골알타이 넘어내려가서 죽 가서 타림분지 남부 곤륜산맥과 알툰산맥 기슭에 자리잡아. 즉 왼쪽에 우전.과 오른쪽 누란.의 사이로. 

 

감주 위구르.는 감숙성. 하서주랑.이야. 얘들이 하서주랑 중간까지 자리 차지하는겨 지금 신장의 북강.인 투르판(토로반)과 합밀(하미)에 더해서 하서주랑의 중간 서늘 량주군.까지. 량주 하면 감숙성 가운데 즘이야. 

 

감주 위구르 킹덤.은 나중 당나라 망하고 오대십국에서 정난절도사.가 저 하서주랑을 먹어서 지워지는거고. 이 정난절도사.를 탕구트족.이 먹는거야. 하서주랑 전부를. 이게 서하.킹덤이야. 

 

탕구트족.은 강족.의 가지야. 강족.은 티벳버마어족.의 가지고. 즉 저들은 티벳고원에서 북쪽으로 청해.까지 와서리 하서주랑으로 들어온 사람들이야. 이 탕구트족.이 하서주랑.의 남산인 기련산맥 줄기 아래. 즉 청해 지역에 있었어.

 

吐谷浑汉语拼音tǔ yù hún中古漢語擬音:tʰuoX jɨok ɦuən),是西晋唐朝时期位于祁连山脉黄河上游谷地(今青海)的一个古代国家。因其统治地区位于黄河以南,统治者又被封为“河南王”,因此被南朝称为河南国河南,后不复见[1]。公元663年被吐蕃征服,但其世袭王室汗族仍保留,与唐朝作战中成为吐蕃军队的重要来源,一部分东迁到唐朝,原部或者一直到公元9世纪才在今青海省境内消失。

 

오호16국때. 청해의 동북 기련산맥 걸쳐 지배한 이들을 토욕혼. 투윤.들이라 해. 이들은 말야. 엄마가 선비족이야. 아 무지 쎄 이 선비. 흉노의 자식들이야. 여까지 온겨 이들이. 탕구트.가 이 선비 자식인 투윤.의 지배하에 있다가 투윤들이 당나라때 소멸되고 정난절도사로 들어가다가 서하. 황하 서쪽.이란 서하킹덤.을 세우고 칭기스칸에게 하미지 하고 다시 배신하고 칭기스칸이 열받아서 친정하러 가는길에 낙마하고 여길 정복하곤 죽은겨 낙마한 후유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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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위구르.는 안으로 들어가서. 뒤에 금나라 여진에 쫓겨난 요나라가 서쪽으로 도망와서 서요를 세우면서 얘들이 천산산맥의 위아래를 다 먹는겨. 타림분지에 북강까지 이 서요.로 들어와. 저 왼쪽 아랄해까지 서요의 관할이야.

 

저 둘이 서하.와 서요.로 들어오고 이제 바로 모두 몽골로 들어가는겨. 타림분지.는 차가타이.한테 들어가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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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구르 칸.을 없애러 쳐 내려가는 예니세이 상류의 예니세이 키르기즈.란 스텝이 지금 천산산맥 북부에 접한 키르기즈스탄.이란 나라를 만들어 사는거고.

 

 

다시 돌아가서. 우전.(코탄)국. 타림 서쪽에 있는. 동이란어족.이 넘어와서 코타니즈. 사카 코타니즈.라는 동이란언어족.이 되는 이 천년의 왕국.은 천년 지나서.

 

The Kara-Khanid Khanate (Persian: آل افراسیاب‎, romanizedĀl-i Afrāsiyāb, lit. 'House of Afrisyab') was a Turkic dynasty that ruled in Transoxania in Central Asia, ruled by a dynasty known in literature as the Karakhanids (also spelt Qarakhanids) or Ilek Khanids.[8] Both the dynastic names of Karakhanids and Ilek Khanids refer to royal titles with Kara Kağan being the most important Turkish title up till the end of the dynasty.[9]  

 

840–1212  

 

카라 카니드.라는 투르크에 망해. 서기 1006년. 카라 카니드.는 천산산맥 왼쪽 위에서 시작을 해 서기 840년. 얘들이 내려와서 소그디아로. 서쪽으로 아랄해까지 가는거고. 천산산맥 넘어 내려와서 타림분지를 서부쪽을 대부분 점령하는거야. 그러다 왼쪽 아랄해 아래쪽에서 콰리즈미아.에서 시작한 화리즘 샤. 콰리즘.애들이 서는거고. 오른쪽에선 요나라가 서요 만들고 해서 3백년만에 지는거고. 역시나 몽골 칭기스칸분들이 드시는거고.

 

 

아. 또. 장건 이야기 마무리하려다가.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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