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mpany of Merchants of the Staple of England, the Merchants of the Staple, also known as the Merchant Staplers, is an English company incorporated by Royal Charter in 1319   

 

이전에. 컴퍼니 보면서. 잉글랜드의 컴퍼니 처음으로 보이는게 차터받은. 스테이플의 상인들 회사.걸랑. 회사.도 일본말이고. 걍 모임체.야. 스테이플.은 시장 마켓.이고. 이게 서기 1319년. 이지만. 이미 이전 백년전에 플랑드르지역에 잉글랜드의 컴퍼니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가 1600년이고 이년후에 네덜란드 회사가 생기는데. 이 전에도 회사들은 넘쳐나는겨 저 잉글랜드에서. 이 컴퍼니.란건 잉글랜드가 주도를 한거야. 이 역사가 어마어마한겨. 중세에 아무것도 없던 나라가 말야. 해결책이 컴퍼니들을 장려한거야 이게. 이게 지금의 영국.을 만든건데.

 

서기 1319년 에 정식으로 보이지만. 이미 백년전에 시작한 듯하고. 동인도회사.도 차터를 주고. 이들이 탐험의 시대 막차를 타면서 컴퍼니들을 코트 차원에서 역시 밀고 나간거야. 이건 코트와 상인들의 전략적인 협업의 힘인겨 이건. 이들의 전략이 무서운거야. 맞아 떨어진겨. 

 

 

 

The Worshipful Company of Mercers is the premier Livery Company of the City of London and ranks first in the order of precedence of the Companies. It is the first of the Great Twelve City Livery Companies.[1] Although of even older origin, the Company was incorporated under a Royal Charter in 1394, the Company's earliest extant Charter.  

 

서기 1394년.에 머서들의 컴퍼니. 리버리 컴퍼니.의 시작 이라하는데. 런던에서. 즉 런던만의 컴퍼니들 중에서 리버리 컴퍼니. 연합의 하나야. 리버리 컴퍼니들이. 이게 지금 현재 110개.가 있어. 6백년이 된 회사들이야. 이게 지금도 있는겨. 

 

유럽의 기업들은. 현대에 생긴 갑툭튀가 아냐. 쟤들 상장사들의 역사가 몇백년인겨 저게. 중세 유럽의 연장선이야. 저 핏줄들이 지금도 유럽과 미국을 이끄는거야. 

 

저 110개를 지금도 서열을 매겨. 창업 순서대로. 

 

  1. Worshipful Company of Mercers (general merchants)
  2. Worshipful Company of Grocers (spice merchants)
  3. Worshipful Company of Drapers (wool and cloth merchants)
  4. Worshipful Company of Fishmongers (Fish and seafood)
  5. Worshipful Company of Goldsmiths (bullion dealers)
  6. Worshipful Company of Skinners* (fur traders)
  7. Worshipful Company of Merchant Taylors* (tailors)
  8. Worshipful Company of Haberdashers (clothiers in sewn and fine materials, eg. silk & velvet)
  9. Worshipful Company of Salters (traders of salts and chemicals)
  10. Worshipful Company of Ironmongers
  11. Worshipful Company of Vintners (wine merchants)
  12. Worshipful Company of Clothworkers

그중 12개.를 그레이트 투웰브 시티 리버리 컴퍼니즈.라고 해. 구분하는 뒤에 이름들이. 품목들이야. 머서.는 의류의 잡화.에 쓰이는 옷감. 패브릭.의 상인들. 그로서.는 스파이스. 드레이퍼.는 울. 등등. 

 

리버리. Livery 라는게 중세에. 쟤들은 가문.의 역사걸랑. 지금도 유효해. 가문별로 헤럴드리. 문장에 옷 입는 패션과 달고 다니는데 다른거야. 귀족 가문들만 구분을 하는게 아니라, 똑같이 그 집에서 일하는 서번트. 하인들에 그 가문에 속하는 사람들도 그 가문의 헤럴드리.를 모두 입는겨. 이걸 리버리.라고 해. 즉 저 리버리 컴퍼니.는 귀족이 사업에 뛰어든거야 시작이. 그러면서 그 가문 서번트들까지 합세를 하고 자기 가문만의 리버리.를 입는겨 서번트들이 상인들이 되서리. 그래서 앞에 워시풀.이라는 높은 수식어를 붙이게 되고. 

 

저게 점점. 길드. 조합이 된겨 시간이 지나면서. 그야말로 상인들이 주도가 되는거고. 이 길드마다 헤럴드리가 다르고 입는 옷 색깔에 무늬가 다른거야. 

 

 

영국.이라는 가장 듣보잡 나라는 저 컴퍼니들이 만든겨. 포르투갈이 카자 스페인이 카사.로 가다가 결국 컴퍼니로 뒤늦게 바꾸는 거고. 네덜란드가 받아서 컴퍼니로 흩어져 모험을 하는 상인들이 된거야. 

 

 

The Levant Company was an English chartered company formed in 1592. Elizabeth I of England approved its initial charter on 11 September 1581 when the Venice Company (1583) and the Turkey Company (1581) merged, because their charters had expired, as she was anxious to maintain trade and political alliances with the Ottoman Empire.[2] Its initial charter was good for seven years and was granted to Edward Osborne, Richard Staper, Thomas Smith and William Garret with the purpose of regulating English trade with the Ottoman Empire and the Levant. The company remained in continuous existence until being superseded in 1825. A member of the company was known as a Turkey Merchant.[3][4]  

 

레반트 컴퍼니. 엘리자벳.이 차터를 준겨. 서기 1581년.에 레반트 독점권을 준겨 여기가서 돈 벌어오라고. 오스만과 상대를 하는겨. 잉글랜드야 떨어져서리 오스만과 딱히 감정 상할 일이 없걸랑. 그리스도가 이슬람이랑 감히 상거래를 해? 응. 해. 그게 먼 상관이야 그따위 이념질이. 엘리자벳의 골든 연설에 그러잖아. 나는 우리 시민들의 번영.을 위할 뿐이야 그래서 행복하게 하는것. 이 이상 없어. 이 조선들의 땅에서 저따위 말하면. 돈만 밝히는 실용주의자 딱지를 붙여. 

 

저 레반트 회사.가 서기 1825년 까지 가. 저 회사 상인이 터키 상인.으로 알려지다. 

 

이보다 먼저 생긴 해외루트 회사.가 모스크바 컴퍼니야.

 

The Company of Merchant Adventurers to New Lands was an early joint stock association, which began with private exploration and enterprise, and was to have been incorporated by King Edward VI in 1553, but received its full Royal Charter in 1555. It led to the commencement of English trade with Russia, Persia and elsewhere, and became known informally, and later formally, as the Muscovy Company.  

 

서기 1553년. 에드워드6세 때에 생겼어. 피의 마리 전이야. 처음엔 뉴 랜드들을 향한 상인 모험가들.의 회사.였어 이름이. 이게 모스크바 컴퍼니.로 바뀌어. 이게 4백년 가까이 모스크바.에서 기업활동을 하다가. 지금은 기부활동 재단으로 바뀌고 여전히 있어.

 

The Muscovy Company traces its roots to the Company of Merchant Adventurers to New Lands (in full: "Mystery and Company of Merchant Adventurers for the Discovery of Regions, Dominions, Islands, and Places unknown") founded in 1551 by Richard ChancellorSebastian Cabot and Sir Hugh Willoughby, who decided to look for the Northeast Passage to China.  

 

저게 원래는 미스테리 앤드 컴퍼니.야 지역들 나라들 섬들 그리고 모르는 장소들.의 발견을 위한 상인 모헙가들의 미스테리와 컴퍼니야. 이 미스테리 라는게. 여기서는 거래. 무역.이란 의미로 써야 해. 미스터리에 이런 의미가 있어. 헌데 이 미스테리.란게 또한 탐험의 시대.에 주제어여. 저때 또한 이면엔 말야, 사람들에게 미스테리.가 관심 대상이었어. 중세 연금술.이 근대에 본격적으로 터진겨 이게. 인도를 직접 가면서. 아프리카 사하라이남을 직접 가면서. 신대륙을 찾으면서, 완전히 모험심이 발동을 하는겨. 성경 이야기들 진짜 찾기.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 진짜 찾기. 그 신화속 캐릭이 진짜 있다고 믿었어 저들은. 콜럼버스.도 그런 이야기를 써 자기 일기들에. 황금양모피.가 진짜 어딘가 있을껴. 이걸 말야 진짜로 믿고 돌아다니는겨 아주 꽂혀서. 카인.이 아벨 죽이고 쫓겨났걸랑. 아벨의 자식들이 분명 있을껴. 구약의 주인공은 셋째 세트.지만 저 아벨의 자식들.이 갓 더 로어드.의 진짜배기야. 이들이 세상의 배후일꺼야. 이 땅빠닥 아래는 빈공간이야. 어딘가 출입구가 있을껴 저게. 

 

그 미스터리.를 밝히고자 하는게 또한 저 상인들이야. 그래서 상인들이 이 단어를 자기 회사.에 같이 쓰는겨. 저게 나중. 회사라는 의미가 그래서 더해지는거고. 

 

조인트 스탁.은 주식회사.인데, 일정 제한을 두는겨. 주식 매매도 동의를 받아 이전한다던지, 채무.는 어느정도 주주가 책임을 지느냐 등을 약정 맺으면서 회사를 설립한거지. 

 

1551년.에 만들고. 2년후에 딴회사랑 합병해서 나중에 새차터를 받아. 리차드 챈슬러. 세바스티안 캐봇. 휴 윌러비.가 세 창업멤버여. 북동항로.를 찾아 가는겨. 딴 이들은 북서항로 찾아갈때.

 

1553년에 챈슬러.와 윌러비.가 배를 세 척.을 꾸려서 북동항로로 출발해. 모스크바 컴퍼니.란 이름은 이 후에 모스크바.를 다녀오고서 개명한거야.

 

Merchant Adventurers in 1552–1553, with the Duke of Northumberland as principal patron. They hoped not only to discover a north-east passage but also to find a market for English woolen cloth.[2]  

 

나중 모스크바 컴퍼니.가 되는 이 회사의 일종의 대표. 페이트론. 즉 이 회사에 대표이자 돈을 제일 많이 넣은사람이야. 노썸벌랜드 공작.이 이 회사 최대주주인겨. 북동항로 발견이 목표고. 자기들 양모 시장 찾는거야. 갈땐 저 길에 뭐가 있는지 전혀 모르고 출발을 하는겨.

 

문제는 저 노썸벌랜드 공작이야. 

 

Sebastian Cabot (Italian and VenetianSebastiano Caboto, Italian: [sebaˈstjaːno kaˈbɔːto]SpanishSebastián CabotoGaboto or Cabot; c. 1474 – c. December 1557) 

 

Sir Hugh Willoughby (died 1554) was an English soldier and an early Arctic voyager. He served in the court of Henry VIII and fought in the Scottish campaign where he was knighted for his valour. In 1553 he was selected by a company of London merchants to lead a fleet of three vessels in search of a northeast route to the Far East. Willoughby and the crews of two ships died on the voyage while the third vessel went on to open a successful and long-lasting trading arrangement with Russia.  

 

Richard Chancellor (died November 10, 1556) was an English explorer and navigator; the first to penetrate to the White Seaand establish relations with Russia.  

 

다들 귀족이야. 노썸벌랜드 공작.이 대표이고. 총 기획자.가 세바스챤 캐봇.이여. 이사람이 저때 50세즈음 된겨. 존 캐벗.의 아들이야. 잉글랜드에선 최초로 북미 탐험 갔던. 아들이 잉글랜드에서 아빠를 이어가는겨. 출생이 확실치 않아. 자기는 브리톨리. 아빠 있던데서 태어났다고도 해. 이사람도 스페인 코트에서 일하고 저기도 가는겨. 얘들은 국적이 의미가 없어. 후원해주는 애들땅에 가서 일하는겨. 

 

출발하는 이가 휴 윌러비.와 리차드 챈슬러야. 귀족이자 군인들이야. 전쟁 참여하고, 자기들도 콜럼버스처럼 싕기한거 찾고 싶어. 대서양은 스페인때메 못가 아직 1588 아르마다 전이야. 북쪽으로 가는겨. 지구가 둥그니까 위로 가면 먼 수가 나겄지. 이 둘이 배 세척을 갖고 출발해. 이게 서기 1553년 초야.

 

Novaya Zemlya (Russian: Но́вая Земля́, IPA: [ˈnovəjə zʲɪmˈlʲa], lit. new land), also known as Nova Zembla   

 

On 10 May 1553. 이들이 출발하는 날이 서기 1553년 5월 10일. 

 

북동항로.에 스칸디나비아 반도 머리.에 닿아. 여긴 북부 서부 해안이 모두 노르웨이땅이야. 오른쪽 뭉툭 반도가 콜라 Kola 반도.는 무르만스크. 란 항구도시있는 러시아땅이야. 저 중앙과 주변지역.을 Sápmi 사프미.라고 해. 여긴 사미족 Sami people 이 사는 지역이야. 지금도 이들이 저기에 살아. 이들은 핀란드와 같은 계통의 우랄 언어족이야. 사미어.가 있어. 이 사미어.의 글자들을 저때 항해하면서 문서들을 또한 갖고와서 영국이 사미어.를 공식 보고하는거야 저때.

 

휴 윌러비.배 두척과. 리차드 챈슬러. 배 한척이 사프미.의 North Cape 노르드캅. 북쪽 곶.에서 폭풍을 맞고 헤어져. 윌러 윌러비.의 배들이 동쪽으로 가서 처음 닿은 곳이. 바렌츠 해 Barents Sea 와 카라 해 Kara Sea 를 가르는 노바야 지믈랴. 새로운 섬.. 이게 9만제곱키로가 넘어 한반도 절반이여. 휴 윌러비가 저길 닿고 못넘어가는겨. 다시 서쪽으로 빠꾸해서 콜라반도 해변.에 갇혀. 저 북극해 주변은 수시로 얼걸랑 바다가. 이들이 여기서 죽어. 배 두척의 승무원들이. 얼어 죽었다고 알려졌지만 나중에 사가들이 추정해보건데, 아마 선실안에서 일산화탄소 질식으로 죽은걸로 분석을 해. 당시 물자를 넉넉히 갖고 갔걸랑.

 

헤어졌던 리차드 챈슬러.는 콜라반도 따라서 White Sea 백해.로 용케 들어간거야. 들어가고 처음 숙 들어간 만.에  Arkhangelsk 아르칸길스크.에 닿아. 여기가 오블라스트.이자 도시야. 이 도시에서, 잉글랜드인을 처음 본겨. 이걸 모스크바의 이반4세 테러블.에게 보고를 하고. 이반4세.가 모스크바로 데려오라고 하는겨. 

 

모스크바.가 경도상으로 페테르부르크.와 아르칸길스크 정 가운데야. 거리상으론 6백키로와 1천키로여 각각. 챈슬러.가 천키로 떨어진 모스크바로 가는겨. 말이 끄는 썰매.를 타고. 

 

저때의 러시아 상황이.

 

The Russo-Swedish War of 1495–1497 

The Russo-Swedish War of 1554–1557

The Livonian War (1558–1583) 

 

이반3세.가 스웨덴 칼마르때 쳐들어가고. 스웨덴은 구스타브 바싸.가 독립선언하고 이반4세 테러블.때 콜라반도로 쳐들어가 내려가는거고 이전 복수극으로. 이때 스웨덴이 러시아의 서북쪽 카렐리아.와 잉그리아.를 다 먹지는 못하고 군대군대 요새를 만들어놨걸랑. 그리고 1558년.에 리보니안 전쟁이야. 이게 아주 중요한 전쟁이여 이반4세.가 다 커서 28세에 처들어가는. 25년 전쟁을 저때 스웨덴 덴마크 폴란드 연합에 패해서 잉그리아까지 스웨덴에 뺏기는 거걸랑. 이 리보니안 전쟁의 패배 원인을 테러블 이반.이 귀족세력들 탓으로 파악하고 오프리치니키.라는 근위대를 만드는 오프리치니나.제도.를 시작하는 하야쇼를 벌이는건데. 이 테러블 이반은  고단수야. 미친인간이 절대 아냐. 

 

스웨덴 구스타브 바싸.가 독립한게 1523년.이야. 1560년.에 죽어. 리보니안 전쟁 초기에. 저때 러시아.는 핀란드만에 갇힌겨. 발트해를 못벗어나. 스웨덴과 웬수고. 저 너머 사운드해협의 덴마크도 낯선 이들이고. 여긴 한자동맹 애들 세력이걸랑. 자기들은 완전히 을이야. 

 

리차드 챈슬러.가 아르칸실스크.에 온게 서기 1553년.이야. 다음해에 스웨덴과 전쟁에 이어 리보니안 전쟁의 연속이야 30년이. 저때도 스웨덴과 긴장상태인거야. 헌데 쌩뚱맞게도, 잉글랜드인이 다른 루트로 자기에게 온겨. 이반4세.에겐 너무나 반가운 손님인거야. 러시아도 이미 저 북쪽 섬 노바야 지믈랴.는 이미 노브고로드 애들이 11세기에 갖고 온거여. 콜라반도는 13세기고. 헌데 이들은 바렌츠 해. 넘어 노르웨이해.로 가본 적이 없어. 러시아.는 바다에 관심이 없는 애들이야. 걍 대륙의 바랑기안이 시작이었어. 기본적으로 바닥은 바다 모르는 슬라브애들이고. 

 

저쪽 바다로 해서 백해로 들어온 최초의 인간들이야. 노바야 지믈랴.도 서유럽애들 최초여. 

 

QashliqIsker or Sibir  러시아.가 우랄산맥 동남쪽 시브르. 시베리아 칸을 점령한게 서기 1582년.이야. 예르막 티모페이예비치.가 이끄는 코사크 부족을 이끌고.  아니키 표도로비치 스트로가노프. 가 총책임자로 이 스트로가노프.가문이 시베리아 정벌을 한다 했잖오. 잉글랜드 리차드 챈슬러.가 오고 30년 후에 우랄산맥을 넘을 생각을 한거야. 이반4세.가 저 코사크들 보내고 2년 후 죽은겨. 

 

잉글랜드.의 상품은 양모 원단이고 주로. 러시아의 최고 상품은 말야. 모피여. 

 

양털.은 고급진거야. 모피.는 방한용이야. 이게 서로 교환가치가 되는겨. 유럽은 기본적으로. 추운동네야. 쟤들이 중세 천년에도 가장 큰 상품은 모피여. 이 모피. 얻기 위해서 또한 북미 인디언과 거래하는거고 인디언이 줄수 있는 최고상품은 모피여. 

 

러시아가 저 30년후에 시베리아 정벌하러 가는 가장 큰 목적이. 챈슬러.의 잉글랜드가 원하는 모피.를 찾아가는겨 이게.

 

저 시베리아.가 러시아땅에 지금 들어온 가장 큰 동기.는 리차드 챈슬러.의 1553년 모스크바 도착 이반4세와의 만남이야. 이건 아무도 이야기 안하는 아주 나만의 관점이야. 이게 맞아.

 

When Chancellor returned to England in the summer of 1554   

 

챈슬러가 저기서 1년 가까이 있는거야. 다음해 잉글랜드로 귀환해. 자기가 러시아 갈땐 에드워드6세야. 출발할때 5월인데. 이 다음달에 죽은겨 에드워드가. 그리고 재위에 오른게 9일의 퀸 레이디 제인 그레이여. 바로 피의 마리.의 두뇌싸움의 승리로 전세가 바뀌면서 마리가 퀸이 된 후야. 그리고 레이디 제인.이 1554년 2월에 처형을 당했어. 처형직전 위대한 연설을 하고. 앤불린 레이디제인그레이 스콧마리.의 처형전의 연설은  위대한겨 저건. 원래 피의 마리.는 죽일마음이 없었지만, 와이어트 반란으로 프로테스탄트들이 나서면서 어찌할 수 없이 죽인겨.

 

저때 말야. 같이 처형 당한 사람이. 모스크바 컴퍼니.의 대표 노썸버랜드 공작이여. 존 더들리. 

 

Edmund Dudley (c. 1462[1] or 1471/1472[2] – 17 August 1510) The Tree of Commonwealth

 

John Dudley, 1st Duke of Northumberland KG (1504[1] – 22 August 1553)  

The Russians knew of Novaya Zemlya from the 11th century, when hunters from Novgorod visited the area.[9] For Western Europeans, the search for the Northern Sea Route in the 16th century led to its exploration.[9]  

 

Lord Guildford Dudley (also spelt Guilford) (c. 1535[1] – 12 February 1554) 

Lady Jane Grey (c. 1537[3] – 12 February 1554), also known as Lady Jane Dudley (after her marriage)[4] and as "the Nine Days' Queen",[5] was an English noblewoman and de facto Queen of England and Ireland from 10 July until 19 July 1553.  

 

 

존 더들리. 이사람의 아들이 로버트 더들리.라는 엘리자벳1세 시대 구혼자.고 네덜란드 오렌지 암살당해서 열받아 가고 1588 스페인 아르마다.에서 엘리자벳 옆에서 2인자였던 인간이야 레스터 백작 로버트 더들리.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남편이 길포드 더들리.야 부부가 같은 날 처형을 당해. 17세 19세. 이 남자앤 걍 어린애야. 이 길포드의 아빠가 노썸버랜드 공작 존 더들리여. 레스터 백작의 동생이야. 

 

이 존 더들리.의 아빠 에드먼드 더들리.는 헨리7세.때 2인자.야 헨리8세.가 즉위하고 역모혐의로 죽여. 이사람이 재산축적을 많이 했다며. 이사람이 도망안가고 걍 잡혀서 런던탑에서 쓴 책이 더 트리 오브 카먼웰쓰.여 저거 쓰고 죽어. 

 

이 조선 같으면. 구족을 멸하걸랑 역모는. 큰 애들은 다 죽이고 여자와 꼬마들은 노비에 유배에. 쟤들은 걍 당사자에게만 책임 물어. 런던탑에 몇 가두던가. 

 

존 더들리.가 제인그레이.의 장인이야. 사형당하고. 이사람이 아들이 십여명이 돼. 부인이 로비를  해서 자식들 대부분이 살아나. 레스터 백작도 저때 살아남고 나중 스페인에 싸우면서 잉글랜드 승리에 기여하는거야.

 

이 조선은. 그럴 수가 없어. 외적이 쳐들어오면. 이전에 적폐로 다들 서로서로 죽여서. 없어 인간이. 저런 시스템이 구한말까지 오는거고. 저게 지금도 여전해. 이 조선들의 땅빠닥에선 제대로 된 인간은 살 수가 없어. 

 

이 조선들은. 서로서로 안죽이면. 미치는거야 이 피가. 결국 자살이라도 해야해. 어제도 누가 죽었더만. 그나마 제정신 갖고 있는 인간은. 죽어 스스로. 아주 이번정권에 자살 하더만. 그러곤 또 음모론. 적폐가 배후래 적폐가 자살하면.

 

세상에 저따위 인종은 없어.

 

모스크바 컴퍼니.를 그래도 피의 마리.가 그냥 둬. 오히려 리차드 챈슬러.의 보고를 듣고, 더 열심히 하라 독려를 해. 

 

이땅에선. 상상을 할 수가 없지.

 

이 로버트 챈슬러.가 또 출발을 하는겨 물건 싣고. 이때 모스크바 가서. 러시아.의 최초의 대사.를 데리고 와. 헌데 챈슬러.가 오는길에. 배가 네대인대 이미 두대.는 지금도 몰라 소식을. 저당시 탐험의 시대.는 온갖 죽음의 역사야. 탐험의인간들 대부분은 죽었어. 특히나 노르웨이해에 만.들이 피요르드.라 잖니. 이 피요르드.가 노르웨이만의 이름이 아니라 아주 깊숙하고 협곡에 가파른 겨 만.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만들이 노르웨이에 많고. 저 노르웨이 지도를 자세히 보면 해안이 아주 자잘자잘한 섬들이에 해안선이 가장 복잡해. 해안선이 완전히 미로야. 저기 갇히면 걍 죽는겨 저게 잘못 들어갔다간.

 

저러면서 모스크바 컴퍼니.가 러시아와 독점 무역을 하는거야. 이반4세.는 내심 자기들은 저 유럽에 뒤쳐졌다고 생각하걸랑. 이 러시아의 열등감은 끝까지 가는겨 이게. 얘들은 알아 자기들이 촌놈들인걸. 그래서 닥치는데로 유럽껄 갖고 오는겨. 이때 유럽이 모스크바.에 회사를 세운게 처음이야. 이반4세가 잘 몰라. 잉글랜드 모스크바컴퍼니.가 막  맘대로 독점적 이익을 내는겨. 이걸. 아니키 스트로가노프.가 상인 출신이걸랑. 이반보다 40세가 많은 할배야. 저 체계를 만드는겨 외국애들과 거래할때. 이때부터 이반이 스트로가노프.를 신뢰하고 시베리아를 맡기는거고. 

 

 

저 모스크바 컴퍼니.가 말야. 저기서 나온 인간들이 잉글랜드의 핵심들이 돼. 

 

Henry Hudson (c. 1565 – 1611) was an English sea explorer and navigator during the early 17th century, best known for his explorations of present-day Canada and parts of the northeastern United States.[4]

 

헨리 허드슨.이 이 모스크바 컴퍼니.에서 항해했던 사람이야. 이사람이 발견하는게 북미 허드슨 만. 이야. 이후 이 사람 이름을 따서 허드슨만 컴퍼니.가 되서리 캐나다의 전신이 되는겨.

 

Sir Martin Frobisher (/ˈfroʊbɪʃər/; c. 1535 – 22 November 1594[1]) 마틴 프로비셔. 아주 유명한 인간이야 당시. 북서항로 주로 다니던. 이 인간 유명한 이야기가 가짜 금이야. 금괴를 발견한줄 알고 수백톤인지 갖고 오면서 뿌듯했걸랑. 헌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황철석.이야. 파이레이트 했던거 이전 화약할때. 이게 언뜻보기엔 골드.와 비슷해보이걸랑. 헌데 얜 불꽃이 튀어 부딪히면. 해서 저걸 아키버스 다음에 방아쇠 최초.인 휠락.이 생길때 이 황철석.을 매달아서 때려서 불꽃을 일으켜서 발사를 한거걸랑. 이 후 플린트.라는 부싯돌. 이걸 수석.이라 해 한문으로. 이걸로 바꾼거야. 

 

 

저 모스크바 회사.가 성과를 거두면서 저걸 이어서 만든게 레반트 컴퍼니.여. 

 

그리고. 동인도 회사.가 생긴겨. 동인도 회사.는 전적으로 모스크바 컴퍼니.를 모델로 해서 생긴거야. 이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주식회사.로 이어 생긴거고. 

 

 

유럽은 저 모스크바 컴퍼니.가 만든겨. 저 회사들이. 이 체제가 지금도 이어가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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