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ical Ingria (Finnish: Inkeri or Inkerinmaa; Russian: Ингрия, Ingriya, Ижора, Izhora, or Ингерманландия, Ingermanlandiya; Swedish: Ingermanland; Estonian: Ingeri or Ingerimaa) is the geographical area located along the southern shore of the Gulf of Finland, bordered by Lake Ladoga on the Karelian Isthmus in the north and by the River Narva on the border with Estonia in the west.
잉그리아. 이게 아마 스웨덴이 이름붙인거...같은데. 잉예만란. 해서 영어 잉그리아. 라도가 호수.와 나르바 강 사이의 모가지 땅을 카렐리안 이쓰머쓰. 지협. 이라고 해.
잉그리아.라는건 상트 페테르크.를 포함해서 이 모가지 포함해서 왼쪽 지금 에스토니아의 오른쪽을 잉그리아. 러시아의 노브고로드. 위야. 러시아.가 시작이 키예프 루쓰.가 위에다 노브고로드.를 만들걸랑. 얘들이 바랑기안.이라는 바이킹이 내려와서 슬라브애들 인간만들면서 비잔틴까지 무역하던 애들이걸랑. 이 잉그리아.란 곳이. 북유럽과 러시아.의 사이야.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서 전쟁의 중심이야 또한. 노브고로드.가 대게 여기까지 취했던거야.
지금 핀란드. 지도를 가만히 보면. 얘들은 바다가 아래 발트해 뿐이야. 동쪽은 러시아에 막히고 북쪽은 노르웨이.에 막힌겨. 스웨덴.도 북쪽은 다 노르웨이에 막힌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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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uyezd (Russian: уе́зд, IPA: [ʊˈjest]) was an administrative subdivision of the Grand Duchy of Moscow, the Russian Empire, and the early Russian SFSR, which was in use from the 13th century. For most of Russian history, uyezds were a secondary-level of administrative division. By sense, but not by etymology, uyezd approximately corresponds to the English term county.
Originally describing groups of several volosts, they formed around the most important cities. Uyezds were ruled by the appointees (namestniks) of a knyaz and, starting from the 17th century, by voyevodas.
Volost (Russian: во́лость, IPA: [ˈvoləsʲtʲ]) was a traditional administrative subdivision in Eastern Europe.
In earlier East Slavic history, volost was a name for the territory ruled by the knyaz, a principality
러시아.의 행정구역.은. 다른건 넘어가고. 프라빈스.라는 주.단위.의 이름이. 지금 Oblast 오블라스트. 야. 러시아의 행정개혁 역시나 표트르 대제 부터 하걸랑. 이 인간은 위대한 인간인데. 넘어가고.
19세기 러시아 문학.은 이게 정말 최고야 증말. 아 저 이후 이념놀이 하는 ..들 때문에 러시아가 똥떵어리가 된건데 말야. 이제 곧 이 조선들의 나라는 더한 똥떵어리가 되겠지만. 아예 요즘 보니. 시장을 개 작살 내고. 미세먼지는 중국몽의 중국탓 아니고 공장들 탓이라미 공장문들 닫게 하고. 재벌 적폐 연일 감사.. 해대고 말같지도 않은 최저임금으로 아주 자영업자들 죽여버리고. 해서 기업들은 빨랑 빨랑 어서 이 조선들의 땅을 벗어나고 있는데 말야. 약산 김원붕이가 선생님 호칭받으민서 육이오 쳐내려와서리 민들 학살하곤 북조선에 훈장 받은 것도 조선의 나라에서 서훈을 주니 마니. 저따위 인간이 선생 선생 이땅빠닥의 머가 되는 마냥. 참 끔찍 한 땅이 되버린건데 이게.
우리 이니 하고픈데로 다~~해. ㅋㅋㅋ.
돗톱.이껀 말야. 다들 보도록 해. 아 이 인간 증말 엄청나. 카라마조프 진짜 이건 미친 작품이다 이게. 죄와 벌.에서 결말 허섭한거 보고 이건 멍미 했지만 그래도 거까지 파고드는거에 뿅은 갔걸랑. 저 죄 가 그래서 머냐 란게 아주 이 말년 작품에서 제대로 파들어가는데 돗톱이가. 아 음청나네 이인간. 넘어가고.
톨스토이.는 허섭하지만. 그래도 읽어주고. 쟤꺼도 볼때 말야. 행정단위.를 군. 이니 현. 이니 .. 번역하는데. 걍 말야. 소리 발음으로 번역을 해. 왜 저런 ..을 해대는지 몰겄는데.
주. 단위. 아래가 Uyezd. 영어로 이리 쓰지만. 우예스트. 야. 우예스트 의 하부 행정단위가 Volost 볼로스트. 이걸. 군.과 현. 으로 표기하기로 했나 본데. 걍 우예스트.와 볼로스트. 하라고 전하고 말야.
그래서. 톨스토이.를 봐도. 안드레이.를 공작 하고 굳이 번역하지만. 공작령을 가진 공작이 아냐 얜. 저 우예스트.나 그 아래 볼로스트.의 영주.야. 얘들을 Knyaz 크냐즈. 라고 해. 크냐즈.가 볼로스트.의 영주일수도 있고. 이 볼로스트들을 몇개 합한. 우예스트.의 영주일수도 있어. 우예스트.의 영주.를 이전 중세엔 보이보드(보이보다) 라고 이전에 했었던거야. 동유럽 애들 슬라브들의 말들이 다 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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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July 1588, as the Spanish Armada came nearer, the Earl of Leicester was appointed "Lieutenant and Captain-General of the Queen's Armies and Companies".[240]
드뎌 나온겨 스페니쉬 아르마다.
From the feminine past participle of armar, corresponding to Medieval Latin armāta, from the feminine past participle of Latin armāre, from arma (“arms”).
아르마다, 라는건. 아르마타.라는 라틴어. 이건 아르마. 라는 조합해서 만든 무기. 라는겨. 조합헤서 만들어진. 에 여성형 말이야. 바다.란건 여자야. 배.도 여자야. 해서 바다 군대 무기. 를 여성화 해서 아르마다. 하는거야.
잉글랜드 스페인 전쟁이. 1585-1604.라고 하지만. 더들리.와 존노리스.의 네덜란드 참전.은 이게 퀸의 입장이 아냐. 퀸이 조약 맺었다 어쩌고 하지만. 이것도 의미없어. 생각해보니 좋을거 하나 없걸랑. 바로 불러 들여 더들리를. 얘들은 없어 아무것도. 스페인이 1580년 포르투갈까지 먹어써. 더 어마어마한겨 저건.
1568년 호킨스와 드레이크.의 베라쿠르스 부터 터진거걸랑. 저거 머여 저 잉글랜드 저거. 퀸. 입장에선 일방적으로 당한겨 저건. 그래도 아무 힘도 없어. 니덜이 스스로 알아서 복수 하던 말던. 이때부터 드레이크.의 해적질이 아주 본격적인겨 이건 개인 일탈이야. 그러다 1577-80 중남미 서쪽을 돌면서 아무런 경계태세 없는 스페인 배들을 마음껏 약탈을 하고 세계 일주를 해.
퀸.은 비밀에 부칠것을 서로 다짐 받지만. 스페인의 크라운 차원에서 보복해올건 느낄 수 밖에 없어. 그렇다고 쟤들이 약탈할 잉글랜드 배들이란건 빤하걸랑. 거지 배들 약탈 해봤자야. 그리고 스페인은 저 북쪽 쟤들 바다는 몰라.
Drimys winteri (Winter's bark or canelo) is a slender tree, growing up to 20 m (66 ft) tall. It is native to the Magellanic and Valdivian temperate rain forests of Chile and Argentina, where it is a dominant tree in the coastal evergreen forests.
윈터스 바크. 카넬로. 라는 나무인데. 존 윈터.가 말야. 도티.가 판결 받아서 목 짤리고. 얜 이제 갖 23세걸랑. 세상이 싫은겨. 이사람은 마젤란 해협 입구에서 돌아가. 여기서 발견한게 저 나무야. 얘가 이걸 유럽에 처음 알린겨.
애가 착한겨. 로망의 인간이야. 해서 얜 이후 역사가 없어. 자기의 정의. 져스티스.에 치여서리 걍 죽은겨 지 작은 영지가서. 드레이크 따라 계속 다녀왔으면 다른 세상을 살았을텐데 말이지.
져스티스.란게 그게 그리 단순한 말이 아냐. 넘어가고. 나중으로.
도티.와 드레이크.의 그 마지막 만찬.도 말이지. 참 멋진겨 진짜. 다음날 죽고 죽일 사이지만. 유카리스트 하면서 서로 웃으면서 건배 하면서. 웃으며 헤어지는겨 저 둘이. 서로 철학이 안맞을 뿐이야. 저기서 누가 좋다 나쁘다 할 수가 없어. 킹덤 차원에선 이후의 드레이크.의 행동은 거시적으로 잉글랜드에 영국인 수천만명의 목숨을 살린겨. 져스티스 란게 그리 쉬운 말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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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8 February 1587, the execution of Mary, Queen of Scots outraged Catholics in Europe, and her claim on the English throne passed (by her own deed of will) to Philip. In retaliation for the execution of Mary, Philip vowed to invade England to place a Catholic monarch on its throne.
스페인애들에겐 저 드레이크 땜시롱 10년 이상이 쌓이고 쌓인겨. 더하여 네덜란드엔 더들리.가 갔대. 혼자 개인돈으로 갔다지만 먼가 마음에 안들어. 헌데 결정적으로 말야. 더들리가. 네덜란드에 1586년 12월에 복귀했지만. 이때 스콧 마리.를 여름말에 기소해서 10월에 재판을 하고. 사형선고를 한거야. 엘리자베쓰.가 이걸 싸인을 햇지만. 죽일 마음은 없었어.
Leicester having returned to England, in February 1587 Elizabeth signed Mary's death warrant, with the proviso that it be not carried out until she gave her approval. As there was no sign of her doing so, Burghley, Leicester, and a handful of other privy councillors decided to proceed with Mary's execution in the interest of the state. Leicester went to Bath and Bristol for his health; unlike the other privy councillors involved, he escaped Elizabeth's severe wrath on hearing the news of Mary's death.[163]
버글리의 씨슬.과 레스터의 더들리.가 이 사형을 집행계획해. 퀸 모르게. 이들 입장에선 마리.가 카톨릭의 블랙홀인거야. 그리고 더들리.는 찬성만 던지고 브리스톨로 간거야 몸이 안좋아서. 나중에 퀸.이 자기도 모르게 마리.가 사형당한걸 알고 분노를 하는거고.
William Cecil, 1st Baron Burghley, KG, PC (13 September 1520 – 4 August 1598) was an English statesman, the chief advisor of Queen Elizabeth I for most of her reign, twice Secretary of State (1550–1553 and 1558–1572) and Lord High Treasurer from 1572. Albert Pollard says, "From 1558 for forty years the biography of Cecil is almost indistinguishable from that of Elizabeth and from the history of England."[1]
버글리 남작 윌리엄 씨슬. 이 인간이 엘리자베쓰. 시대를 만든 인간이야. 얘가 또한 영국 이란 나라를 만들었어. 영국은 스콧을 합친게 가장 큰 힘이야. 스콧도 잉글랜드 없는 스콧이란건 의미가 없어. 이걸 스킴을 짜고 퀸.을 설득해서 추진해서 그래도 스콧마리가 죽었어도 제임스1세.를 만든 인간이 이 인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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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마리.의 사형.은 아주 결정적인겨 펠리페2세.가 잉글랜드를 쳐 들어가는. 카톨릭의 퀸.을 죽인겨 프로테스탄트가. 이 펠리페.는 정의의 사도 이념의 사도야. 오직 이것 때문에 네덜란드 80년 전쟁을 한거야. 오직 카톨릭 수호. 프랑스에 그래서 위그노 전쟁도 껴들어간거야. 얘 한테 프로테스탄트.는 악마 그 자체야.
스페인이 아주 망해 처먹은건. 역시나 저 펠리페2세 부터의 이념놀이.에 미친거야. 아무런 실재적 사고가 없어. 여기에 끼어서 포르투갈.이 망한겨.
이념놀이에 미친 나라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있어. 고대 아테네.부터 이건 항진 명제.야
가장 대표적인 게 또한. 이노믜 극똥빠닥 똥떵어리. 조선 오백년이야.
레스터 백작 더들리.를 류트넌트 제너럴. 캡틴 제너럴 에 임명해.
테넌트. tenant 가 바쌀 vassal 의 영어야. 바쌀.은 프랜취고. 임차인. 빌린 사람이야. 주인한테. 하미지 하고. 리우. lieu 대리인이야. 임차인 바쌀 의 대표.야. 류트넌트.란 자리는 이게 아주 높은 자리야 원래.
캡틴.이 지금. 해군,에선 대령.이고. 육군에선 커널 colonel.
류트넌트.가 해군에선 대위. 육군에선 캡틴.이 대위.
전시에서 퀸.이 죽으면. 퀸을 대행 하는 이가 더들리. 가 된겨. 저 오뱅년의 피를 어찌할 수 없는겨. 죽어도 자기들이 정의야. 적폐놀이를 하고 싶어 미치겠는거야 지금도. 저 놈의 피가 오뱅년동안의 아주 ..같은 피야 저게.
반.드.시. 망.해. 이 위대한 조선 민국은.
저런 애들이 주구장창 이땅빠닥에서 분노질 조장하면서 버팅기고 있는한 말야. 저 북조선이 굶주린 크라켄으로 떡하니 있는 상태에서. 망할 수 밖에 없는겨 저게. 이 조선 반도는. 지워져야 해.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난 우리 이니를. 그래서 응원해. 난 꼭 니덜에게 투표할꺼야. 당원은 못되줘도 표는 주께. ㅋㅋㅋ.
고맙징?
1587년 2월 8일.에 마리를 사형시켰어. 펠리페2세.는 전쟁을 선언해. 잉글랜드.도 당연히 알아 마리를 죽이는건 펠리페가 여길 쳐들어올거란걸. 엘리자베쓰가 집행을 안 하려한것도. 조카 니 머니 이전에 스페인 펠리페야. 헌데 이미 일은 벌어졌어.
Philip, no longer co-monarch, deemed Elizabeth a heretic and illegitimate ruler of England. In the eyes of the Catholic Church, Henry had never officially divorced Catherine, making Elizabeth illegitimate. It is alleged that Phillip supported plots to have Elizabeth overthrown in favour of her Catholic cousin and heir presumptive, Mary, Queen of Scots. These plans were thwarted when Elizabeth had the Queen of Scots imprisoned and executed in 1587.
펠리페.는 엘리자.를 이단에 베스타드.로 여겼다. 카톨릭 쪽에서 헨리8세는 아라곤 캐서린과 이혼한게 아니고 엘리자는 따라서 배스타드.였다. 펠리페.가 엘리자.를 내리고 스콧마리.를 올리려 했다. 마리 처형으로 무의미해지고. 교황한테 정식 허가도 받아. 십자군이야. 이단 처벌하는.
Singeing the King of Spain's Beard is the derisive name given[3][4][5][6][7] to the attack in April and May 1587 in the Bay of Cádiz, by the English privateer Francis Drake against the Spanish naval forces assembling at Cádiz. Much of the Spanish fleet was destroyed, and substantial supplies were destroyed or captured. There followed a series of raiding parties against several forts along the Portuguese coast. A Spanish treasure ship, returning from the Indies, was also captured. The damage caused by the English delayed Spanish plans to invade England by more than a year, yet did not dispel them.
씬징 더 킹 오브 스페인스 비어드. 스페인 킹의 턱수염 태우기. 아 이놈의 드레이크. 바로 말야. 4월에서 5월. 저 끝에 카디스.에 있는 스페인 선단들을 침몰시키고 나포를 하는겨. 트레져 쉽. 이란건 인도에서 오는 선적물의 배.야. 이때 침몰하거나 뺏긴 배를 백여척으로 봐.
이걸로. 일년을 지체를 한겨. 1587 아르마다.가 1588 아르마다.가 된겨. 아 음청나 이 드레이크.
On 29 July, Philip obtained Papal authority to overthrow Elizabeth, who had been excommunicated by Pope Pius V, and place whomever he chose on the throne of England. He assembled a fleet of about 130 ships, containing 8,000 soldiers and 18,000 sailors. To finance this endeavour, Pope Sixtus V had permitted Philip to collect crusade taxes. Sixtus had promised a further subsidy to the Spanish should they reach English soil.[12]
On 28 May 1588, the Armada under the command of Duke of Medina Sidonia set sail for the Netherlands, where it was to pick up additional troops for the invasion of England
일년 후 1588년 5월 28일.날 출발을 해. 이 전해에 교황 허가를 받고 교황의 지지를 얻고. 130 척에 8천명 병사에 18,000명 선원들.
유럽에서 전투.라는건. 저때조차도. 한 쪽이 만 명.인건 어마어마 한겨. 이건 그야말로 대전이야.
오스만 애들이 오면서 얘들만이 십만 단위로 떼거지로 오는겨. 몽골이 마찬가지였고. 얘들은 약탈.을 전제로 한 전쟁이야. 유럽애들은 정규군.을 둘 수 없어. 기사들에 용병들이 참전하는겨. 돈이 없으면 안가. 약탈해서 전리품을 뺏는게 아냐 얘들은. 이 전쟁에 대한 개념이 전.혀. 다른거야. 오스만도 결국 저..을 이삼백년을 했지만 비엔나에서 막힌겨. 슬라브 애들하고만 상대한겨 마갸르 족이랑. 코사크 조차도 오스만애들이 함부로 못이겨. 이 오스만이란건 정말 쓰레기 ..들인겨 이게.
Álvaro de Bazán, 1st Marquess of Santa Cruz de Mudela, GE, KOS (12 December 1526 – 9 February 1588), was a Spanish admiral. According to Spanish sources, he was never defeated, a remarkable achievement in a fifty-year long career. His personal galley, La Loba (The She-Wolf), thus called by her golden figurehead, was feared by Spanish enemies and regarded with hope amongst Spanish sailors and allies.
알바로 데 바산. 무델라의 산타쿠르스 후작. 이사람이 62세에 죽어. 출발 세달전에. 무적의 해전 애드머럴.이여. 레판토해전. 포르투갈 리스본 함락.도 하고. 잉글랜드 네덜란드 해적애들은 이인간한테 걸리면 끝났던겨. 아 헌데 이 할배가 죽은겨.
Alonso Pérez de Guzmán y de Zúñiga-Sotomayor, 7th Duke of Medina Sidonia, GE, KOGF (10 September 1550 – 26 July 1615), was a Spanish aristocrat who was most noted for his role as commander of the Spanish Armada that was to attack the south of England in 1588.[1]
알론소 페레스 데 구스만. 데디나 시도니야 공작. 저 할배 죽기 삼일전.에 애드머럴.에 임명이 되는거야. 자긴 감당안된다고 편지를 써. 코트의 애들이 반려를 해. 자긴 전투경험이 없어.
1588 스페인 아르마다. 다음에 2차가.
The 2nd Spanish Armada also known as the Spanish Armada of 1596[9][17] was a naval operation that took place during the Anglo–Spanish War. Another invasion of England or Ireland was attempted in the autumn of 1596 by King Philip II of Spain.[14][18] Cape Finisterre (Galician: Cabo Fisterra, Spanish: Cabo Finisterre)
1596년 이야. 130여척 으로 출발한겨 비슷한규모.로
Before it had left Spanish waters, storms struck the fleet off Cape Finisterre.[6] The storms shattered the Armada causing much damage and forcing the ships to return to their home ports.[7] Nearly 5,000 men died either from the storm or disease and 38 ships were lost, which was enough for a long-term postponement of the Irish enterprise.[7]The material and financial losses added to the bankruptcy of the Spanish Kingdom, during the autumn of 1596.[1][12]
카보 피니스테라. 이 삐쭉이 곶.이 포르투갈.위 갈리시아 서쪽에 있는데. 암초가 수두룩 하게 있는겨. 저긴 자기들 바다야. 리스본 비고 세비야 각각에서 출발해서 저쯤서 모이는겨. 삼분의 1의 배들이 저 암초들에 폭풍맞고 가라앉아. 지들 뱃길도 모르는겨 얘들이. 결정적으로 얘들은 바다를 몰라. 무적함대 라는게 그래서 비웃음으로 써주는 말이고.
아무런 준비.도 안된거야. 날짜도. 날씨도. 서로 공지도 안하고. 막 걍 모아서리 간거야.
왜냐면. 상대를 너무나 우습게 봤걸랑. 헌데 그야말로 잉글랜드.는 진짜 거지였어. 허나 자기들이 엄청난 대단한 애들로 자뻑질 한거야. 스페인은 정말 갑툭튀로 너무나 재수좋게 부를 쌓은거야 저게. 얘들은 인프라가 하나도 없었어. 얘들은 로또.로 부를 쌓은겨. 포르투갈.의 시황상 얘들은 재수없게 마침 질수 밖에 없어서 먹힌거고. 자기들이 대단한 애들인줄 안거야.
더하여 말이지. 이 이념놀이 하는 ..들의 공통점이. 아무런 실재적 사고가 없는겨.
자기는 정의의 사도야. 카톨릭의 배후야. 하나님이 자기를 당연히 보우하삼.이야. 괜찮아 얘들아 그냥 가면 다 알아서 이기게 된단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줄꺼야.
In July, the Earl of Essex had been fed reports from spies and merchants that there were forty-six ships in Lisbon and that new warships were being built at many places on the Biscay coast.[26] This information was conveyed to Queen Elizabeth but she was informed that it would not strike because of the expected autumn storms.[14]
저 2차 아르마다.도 에깃스 백작이 미리 정보받아서 퀸에 보고해. 헌데 아마 안 올겁니다. 가을에 폭풍이 항상 부는데 오면 미친..들이죠. . 헌데 간거야. 하나님이 보우하사.
이 이념놀이 하는 ..들 치고 말야. 제정신인 ..들은 없었어 이게.
On 28 May 1588, the Armada under the command of Duke of Medina Sidonia set sail for the Netherlands, where it was to pick up additional troops for the invasion of England. As the armada sailed through the English channel, the English navy led by Charles Howard, 1st Earl of Nottingham and Francis Drake fought a battle of attrition with the Spanish from Plymouth to Portland and then to the Solent, preventing them from securing any English harbours
1588 스페인 아르마다. 얘가 먼가 자신이 없는겨. 네덜란드 저지대 병력들과 함께 가고싶은거야. 해서 네덜란드로 얜 가는겨. 헌데 이미 드레이크.는 다 준비가 된거야. 노팅햄의 찰스 하워드.가 애드머럴.이야. 이사람은 단지 가우잽이야. 부 제독이 드레이크.야. 존 호킨스.가 Rear admiral 리어 애드머럴. 뒤에서 맡는겨. 이미 1568년 이후 20년간 바다경험은 없어. 행정으로 해군을 만들어오고 선박을 재설계한거고. 진짜 지휘는 드레이크.가 하는거야.
플리머스.에서 포틀랜드.에서 솔렌트.가 남부 해변을 주죽 가면서 스페인애들 자기땅 못 올라오게 같이 가는겨.
The Spanish were forced to withdraw to Calais. While the Spanish were at anchor there in a crescent-shaped defensive formation, the English used fireships to break the formation and scatter the Spanish ships. In the subsequent Battle of Gravelines the English navy inflicted a defeat on the Armada and forced it to sail northward in more dangerous stormy waters on the long way home
쟤들은 걍 네덜란드 가고픈겨 합류할라고. 잉글랜드는 같이 평행하게 가면서 자기들 땅 못올라오게 하려는거야. 그러다 끝에 도버해협. 칼레. 에 정박하는 애들을 잉글랜드가 조지는겨. 그라블린. 은 프랑스 아주 오른쪽 끝 해변이야 벨기에 접하는.
포.라는 건 의미가 없어. 거리만 벗어나면. 저길 개조한 배로 접근해서 보어딩. 해서 백병전으로 조지고. 배 자체를 불질러서 스페인배에 쳐 박는겨. 허섭한 배들을 이 용도로 작전을 이미 한거야.
이때 또한 역풍이 불어. 얘들 방향타. 러더.가 고장도 나고. 스페인 배들이 위로 떠돌아가는거야 스콧 쪽으로. 잉글랜드애들은 올라가면서도 착륙 못하게 막는거고.
The Spanish Armada in Ireland refers to the landfall made upon the coast of Ireland in September 1588 of a large portion of the 130-strong fleet sent by Philip II to invade England.
Following its defeat at the naval battle of Gravelines the Armada had attempted to return home through the North Atlantic, when it was driven from its course by violent storms, toward the west coast of Ireland. The prospect of a Spanish landing alarmed the Dublin government of Queen Elizabeth I, which prescribed harsh measures for the Spanish invaders and any Irish who might assist them.
Up to 24 ships of the Armada were wrecked on a rocky coastline spanning 500 km, from Antrim in the north to Kerry in the south, and the threat to Crown authority was readily defeated. Many of the survivors of the multiple wrecks were put to death, and the remainder fled across the sea to Scotland. It is estimated that some 6,000 members of the fleet perished in Ireland or off its coasts.
이걸 따로 이어서. 아일랜드에서의 스페인 아르마다.라고 해. 얘들이 이게 무슨 작전이 있어서 계획단게 아니라. 어쩔수 없이 스콧 위로 해서 아일랜드 돌아서 가려한겨 바람때문에. 안트림.이 얼스터. 북쪽 그 래쓸린 섬 학살. 에서 아래 뮌스터의 케리. 까지 여기가 다 암초여. 잉글랜드애들은 여길 너무나 잘 알아. 걍 끝까지 다 조진겨 쟤들을.
포획한 스페인애들 배 보니. 무기들에 소총에 대포에 어마어마 한겨. 이걸 거의 못쓴겨 이것들은. 잉글랜드 군은 자기들 무기를 모두 소진하고 물러난거야. 그리곤 스페인배들이 역풍맞아서리 올라가서 도는거고.
남의 앞바다 가서 해전하는거 아냐.
아 헌데 저런것도 안통하는 데가 있었지. 임란때 말야. 걍 아무런 거치장꺼리 없이 걍 벌떼처럼 부산에 닿는겨. 조선 ..들은 그 어마어마한 대형선들을 다 버리고 도망가고.
아무런 힘매가리 없어 집에 가는 애들을 걍 앞바다에서 조지면. 위대한 영웅이 되는거지.
참 괴상한 나라야 이나라는.
그럴 수 밖에 없고.
쟤들은 말야. 저기 드레이크.에 그 존노리스.도 당연히 저기에 있는건데. 당연한거야 해군이 자기 앞바다에서 쳐들어오는 외적 막는건. 먼 성웅 드레이크 성웅 존노리스 이.. 하냐 쟤들이.
당연한거야 당연한거.
Soon after the defeat of the Armada, the Duke of Parma's force stood down from the invasion. In the autumn Parma moved his force North towards Bergen op Zoom and then attempted to besiege the English-held town with a substantial force. The English in a ruse however managed to repel the Spanish and forced Parma's retreat with heavy losses which boosted both Dutch and English morale.[17] The following year Bertie under orders from the Queen left for France with a force to help the Protestants in their fight against the Catholic League. Sir Francis Vere assumed command of English forces thereafter - a position he retained during fifteen campaigns, with almost unbroken success.[18]
저때부터. 무적의 파르마 공작 알렉산데르 파르네즈.의 스페인 군대.가 북쪽에서부터 밀려 내려가기 시작하는겨. 스페인 아르마다 8월 대패하고 아일랜드로 쫓겨나고 아주 직후야 저게. 이 전쟁이란건 기세싸움이야 이건.
윌로비 남작 그 페레그린 버티.가 다시 가는겨. 이번엔 퀸.의 명으로. 아주 제대로 잉글랜드 애들이 가서 네덜란드.와 함께 스페인을 치는겨. 저때 네덜란드 전체 병력에서 잉글랜드가 반을 차지를 해.
In 1590 an Anglo-Dutch force under Maurice and Vere respectively launched a campaign with the aim of taking Breda. In a remarkable feat a small assault force hid in a peat barge before a successful surprise assault that captured the city. With Spanish forces in France supporting the Catholic League as well as in the Low Countries, Maurice was able to take advantage, and thus started the gradual recapture of the Netherlands. This was known by the Dutch as the 'Ten glory years'. Soon after Breda the Anglo-Dutch retook Zutphen and Deventer which restored English prestige after their earlier betrayals. After defeating the Spanish under the Duke of Parma at Knodsenberg in 1591 a new confidence in the army took shape. English troops by this time composed nearly half of the Dutch army. The reconquest continued with Hulst, Nijmegen, Geertruidenberg, Steenwijkand Coevorden all being taken within the next two years.[18] In 1593 a Spanish attempt led by Francisco Verdugo to recapture Coevorden ended in failure when the Anglo-Dutch under Maurice and Vere relieved the place during the Spring of 1594. Finally the capture of Groningen in the summer of 1594 resulted in the Spanish army being forced out of the Northern provinces which led to the complete restoration of the seven provinces.[19]
이때서야. 네덜란드 기존 일곱개 지역 전역을 다시 스페인으로 부터. 저 두 연합군이 회복을 하는겨 저게. 그리고 나싸우의 모리스.는 할더란트.와 오버아이셀. 의 슈타트홀더.를 더 취하는거고. 이건 완전히 잉글랜드애들의 힘이야.
An English counter armada under the command of Sir Francis Drake and Sir John Norreys was prepared in 1589 to torch the Spanish Atlantic navy, which was refitting in Santander, Corunna and San Sebastián in northern Spain. It was also intended to capture the incoming Spanish treasure fleet and expel the Spanish from Portugal (ruled by Philip since 1580) in favour of the Prior of Crato. The English fleet departed from Plymouth on April 13 but was then delayed for nearly two weeks by bad weather. Drake as a result had to bypass Santander where the majority of the Spanish fleet were being refitted.
1차 스페인 아르마다. 이후에. 드레이크.는 존 노리스.랑 같이. 스페인 해변으로 다시 쳐들어가는겨 이걸 잉글리쉬 아르마다.해. 이건 자기들이 또한 함대를 꾸려서 간거야. 비스케이 만. 갈리시아 북부해변.이랑 죽 내려와서 아소리스 제도 까지 가. 헌데 말야 역시나 태풍이야. 남의 바다고. 실패한거로 봐.
그리고 스페인 애들의 2차 아르마다.야 아일랜드라는 카톨릭 연계해서 머 해볼라고. 걍 폭삭 망해 태풍에. 그리고 펠리페2세.는 모라토리엄 선언하는겨. 빚더미에 올라간거야.
저기서 12년간 휴전 협정을 한거야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그러고는 잉글랜드와 손잡고 인도를 가서리.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만드는거야. 지금의 네덜란드를 만들고.
헌데 저 런 잉글랜드.와 네덜란드.는 또 바로 인도 앞바다에서 서로 적이 되어서 전쟁해야지. 국가.를 위해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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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쓰1세 죽을때 까지 하는겨.
존 호킨스.도 책상에서 내려와서. 배를 타고 싸워. 프란시스 드레이크.도 바다에서 스페인을 쳐부서야해.
프라이빗티어.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대서양 바다를 돌아다니는거야. 전쟁이야 전쟁. 호킨스와 드레이크.의 후예들이야.
저게 제임스1세.가 즉위하고. 프라이빗티어들 금지하자. 하면서.끝나는거야. 펠리페 3세.랑 제임스1세.가.
In 1595 Hawkins accompanied his second cousin Sir Francis Drake on a treasure-hunting voyage to the West Indies. They twice attacked San Juan in Puerto Rico, but could not defeat its defences. During the voyage they both fell sick. Hawkins died on 12 November 1595, and was buried at sea off Puerto Rico. Drake succumbed to disease, most likely dysentery, on 27 January, and was buried at sea somewhere off the coast of Portobelo in Panama.
존 호킨스.는 다시 프란시스 드레이크.와 같이 스페인 배들을 샤략했다. 지금 전쟁중이야 이건. 자기들나름 전쟁하는겨. 그들 둘은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을 공격했으나 이기지는 못했다. 그 항해중에 둘다 병이 들다. 호킨스.는 당해 11월 12일.에 죽어서 푸에르토리코 바다에 수장했다. 드레이크.도 두달 후 역시 병으로 죽다. 파나마 해변 어디 바다에 수장했다.
쟤들은 말야. 사가들이 걍 저러고 말아.
저 둘이 말이지. 지금 잉글랜드.와 네덜란드.를 만든거야. 이건 정확한 사실이야.
그리고 그냥 그뿐이야. 먼 성웅 어쩌고. 개소리도 .
걍 해적일 뿐이야? ㅋㅋㅋ 감히 성웅님과 비교를 하다니. 우리 위대한 성웅님과.
성웅님이 도망가는 일본 물리치시고. 그래서 조선에 미친 의미가 머까. 다시 호란당해서리 수십만의 민들을 노예로 잡혀가고. 도망나오는 민들을 다시 돌려보내고 못도망오게 하고 지들 귀족 가족..들은 인질금 올려 돌려받고. 먼의미가 있어 성웅님이.
조선의 역사.는 똥떵어리 그 자체야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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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이야긴. 정말 차원이 달라 이게.
저 존 호킨스. 후손 들이. 2006년에. 자기 조상님 노예무역 해서리 죄송하다고 사죄를 했대.
참 개..들 하는거지.
저 둘이 말야. 가장 역사에서 평가 못받는 사람들이야.
캬자님께서 4백년만에 복원해 주시다. 하늘에서 고마와 할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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