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eople of quality dislike him for having risen so high from such a lowly family; the rest say he is the main cause of wars.
— Gonzalo González del Castillo, letter to King Philip II, 1592[27]
우수한 사람들은 그를 싫어한다 저급한 가문에서 그리 높이 오른. 그외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전쟁들을 일으키는 큰 원인이라고. 카스티요의 곤잘로 곤잘레스.가 펠리페2세에게 편지.
걍 한두개로 개괄로만 할라다가 이것도 막 늘어나는데. 헌데 말이지. 저 두인간이 제~~일 중요해 저게.
그냥 해적이 아녀 저 두사람이. 지금 영국애들도 맛탱이가 가기 시작해서, 얘들이 지들 역사.를 모르걸랑. 유럽사를 몰라 쟤들이. 왜냐면 너무 방대해. 저걸 중세 인간들은 다들 공부를 해서 알아. 지금 인간들이 어쩌면 중세와 저 근대 초기의 인간들 보다 못한겨. 모르니까 저..들 하는거걸랑 쟤들도.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인민놀이야. 마르크스 엥겔스 니체 ..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듣기 쉬워. 감성팔이 하기가 제일 쉽고. 해서 쟤들이 신앙질 받는건데 어설프게. 너무나 너무나 알아들어처먹기 쉽걸랑. 해서 인간들 선동하기 너무나 좋걸랑 저게.
쟤들 일이퍼센트.가 그래서 세상을 리드 하는겨. 일이퍼.만 저 복잡한 이야기들을 어릴때 부터 습하는거야. 이런걸 쟤들은 나이들 처먹으면서 아는겨. 간밤 씨엔엔보니 미쿡 데모크랫 여론조사 재밌더만. 샌더스 할배가 45세 아래론 지지율이 절대적인데 말야. 45세 넘어선 십퍼도 안돼. 나이 처먹고 아는겨 저런 할배 말글이 위선적에 허영에 아무런 실재도 없는 걸 갖고 인간들 선동질 하면서 지 배만 불리는걸. 저 샌더스.란 애는 어릴때부터 사회주의 빠져서 멀 제대로 본게 없어. 얜 몰라 인간의 역사를.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애들은 환장을 하는겨 저따위 ..한테. 미쿡이 점점 저따위 들에 선동당하는 애들이 많아지냐 적어지냐 에 전세계의 미래가 달린겨 저게.
이삼십대에 멀 아냐 멀알어. 십대에 멀아니. 대체. 아는게 머냐. 대체.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갖고 선동질 좀 그만 해라 이 늙은 ..들아.
이땅은 저딴애들이 모든 권력을 잡고 자빠져쓰니.
맨날 분노하라. 사과하라. 개..만 대고. 인간들 정신병만 만들고. 적폐.. 해대고. 져스티스.란 게 그게 그리 간단치가 않단다
저 위키.도 보면 그래서. 존 호킨스.와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내용이 허섭한겨. 얘들이 자기 역사를 몰라 이게. 잉글랜드.라는 정체성을 몰라. 영국의 정체성을 몰라 대부분. 아 짐의 글을 영어로 번역해서 저 영국사 미국사 전공하는 애들을 갈키야 하는데. 그래봤자 저기도 하트 안줄꺼고. 짱나는데.
With the success of the Panama isthmus raid in 1577, Elizabeth I of England sent Drake to start an expedition against the Spanish along the Pacific coast of the Americas. Drake used the plans that Sir Richard Grenville had received the patent for in 1574 from Elizabeth, which was rescinded a year later after protests from Philip of Spain. He set out from Plymouth on 15 November 1577, but bad weather threatened him and his fleet. They were forced to take refuge in Falmouth, Cornwall, from where they returned to Plymouth for repair.
드레이크.가 1575 아일랜드 다녀오고. 얜 걍 아일랜드 가서 해변만 지킨겨. 아일랜드의 똥은 에식스 백작만 처먹으면 돼. 존 노리스.도 에식스가 하란대로 한 거여. 존 노리스.도 저딴 대접 받을 인간이 아냐. 아 저들을 4백년 만에 캬자께서 제대로 평가를 해주시는건데. 하늘에서 졸 고맙다 할낀데. 아 아이를은 은제 낼 델꼬 갈랑가 이거.
다시 파나마.로 가서리 한바탕 했다는거지. 잉글랜드 스페인 전쟁이 더들리 가 넘어간 1585-1604. 제임스1세 즉위하면서 선을 긋지만. 저건 아녀 저게. 이미 1568년에 베타 쿠르스.에서 가만히 표류에 선박수리중인걸 스페인애들이 공격한 것 부터여. 저때부터 이들은 전쟁이야. 드레이크.는 차터.를 받아서리 공인된 프라이빗티어.가 된겨. 프라이빗티어.는 니가 당한거 니가 알아서 복수하는건 킹덤 차원에서 봐주겄다. 우리네 킹덤은 해결할 힘 없으니 니가 알아서 해결해라 괜히 킹덤 끌어들이지 말고. 하는게 마크. 라는 차터 카리타스여. 스페인은 창피한겨 저 일 개인의 침략을 계속 당한겨 속으로 부글부글 끓는거지. 이게 쌓이고 쌓여서 1588 아르마다 가 되는겨. 이럴 줄 알고 또한 준비하는거고 존 호킨스.가
드레이크.가 파나마.에서 태평양을 본거야. 퀸한테 보고를 해. 우리도 저 너머를 가야함둥. 스폰해주삼. 퀸이 드레이크.에게 이걸 허가를 한거야.
이 허가증이 드레이크.가 파나마 보물섬 이야기 만드는 1573년 다음해인 1574년.에 리차드 그렌빌.에게 먼저 준거야. 이게 스페인의 반발.로 취소가 돼. 엘리자베쓰는 스페인이 무서운겨. 이걸 다시 드레이크.가 갱신해서 드리민거야. 이걸 허락을 받아.
문제는. 엘리자베스.의 속내가 머냐는거지. 저 탐험의 목적이 애매한거야. 단지 신대륙 탐험.의 명목으로 엘리자베스.가 저걸 허락 한거걸랑. 혹시나 다른 세계가 있나 하고. 잉글랜드.는 아직 로어노크.섬 1585년.도 안간거야. 잉글랜드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저때. 아 못믿지 니덜 내말을.
England, which emerged from this first period of European expansion as the leading colonial and commercial state of the modern world, was but a small and weak country after its loss of the Continental territory until the time of Elizabeth.
잉글랜드.는 근대에 선두주자 어쩌고 지만. 백년전쟁때 대륙을 다 잃고는 작고 약한 나라였다. 엘리자베쓰 시절 이전 까진.
존 캐벗 1497년.이 전부야. 잉글랜드에겐. 헨리7세.의 스폰으로. 다행히 저때 나폴리 인간 캐벗.이 브리스톨.에 살고 있었걸랑. 저때 이사람이 다녀오고 뉴펀들랜드에. 그리곤 말야. 기록이 전혀 없어. 그리고서 백년 지나서 서기 1610년.에야 헨리 허드슨.이 허드슨만.을 발견해서 저걸 영국이 먹고 나중 캐나다가 되는겨. 저긴 추워. 살데가 못돼.
이전에 콜럼버스.가 자기동생을 또한 보냈어. 헌데 얘가 헨리7세를 못만나고 그와중에 형이 먼저 발견한거걸랑.
잉글랜드.는 정말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나라야 이게. 포르투갈에 스페인이 떼부자가 되는데 얘들은 거지야 거지. 저런 스페인을. 게다가 포르투갈을 먹은 스페인을 어드래 상대를 해. 엄두가 안나는거야 당근 엘리자베스는.
1574년. 저걸 허가하는것도. 대서양에 태평양에 다른 땅 알아보러 가보란거야. 엘리자베스. 는 이걸로 저 허가증을 줬는데. 이것조차 스페인애들 때문에 못한거야. 얘들은 교황이 인테르 카이테라.에 이어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오직 포르투갈.과 자기들 꺼야. 이 둘은 또 이 조약에 충실한거야. 포르투갈은 북미를 먼저 신나게 다 다녔지만 저 조약 때문에 포기하고 브라질만 챙긴겨. 이 포르투갈애들은 아주 착한겨 이게. 둘다 카톨릭 정통 빠들이걸랑. 교황님이 주관하신겨.
잉글랜드가 저걸 못 대들어. 해서 저걸 취소했는데. 드레이크.가 자기가 설득을 해서 간거야. 당연히 말야. 저건 이전에 허가했던 프라이빗티어.가 아냐. 새로운 땅 찾기를 위한 허가증이야. 얘들은 이걸 이제야 해보는겨 처음으로. 당연히 스페인과 마찰을 일으켜선 안되는겨. 자기들은 스페인을 상대할 수 없어. 그러겠다며 간거야 드레이크는.
저건 프라이빗티어.가 아냐. 킹덤 차원의 항해야. 드레이크.가 귀족이 아냐. 드레이크.를 저기 수장.으로 못앉히는겨. 집단 지도체제.를 만든거야 엘리자베쓰가.
Thomas Doughty (1545 – 2 July 1578) was an English nobleman, soldier, scholar and personal secretary of Christopher Hatton. His association with Francis Drake, on a 1577 voyage to rob Spanish treasure fleets, ended in a shipboard trial for treason and witchcraft, and Doughty's execution.
Vice-Admiral Sir John Wynter or Winter (1555–1628) was an explorer and naval officer in the English Navy Royal.
Drake, Doughty and John Wynter left Plymouth, England in 1577, purportedly on a simple trip to Alexandria. Drake's real mission was to interfere with Spanish treasure fleets in the New World
토마스 도티. 존 윈터. 드레이크.가 1540년 생. 도티.가 다섯살 어린 귀족이야. 존 윈터.가 15세 어려. 얜 저때 22세야. 즉 저기서 말야. 토마스 도티.가 제독 행세.를 하려할 수 밖에 없어. 윈터.는 자기 영지.의 저택을 갖고 있는 작은 영주야.
드레이크.와 도티.가 부딪힐 수 밖에 없는겨 저게.
After this major setback, Drake set sail again on 13 December aboard Pelican with four other ships and 164 men. He soon added a sixth ship, Mary (formerly Santa Maria), a Portuguese merchant ship that had been captured off the coast of Africa near the Cape Verde Islands. He also added its captain, Nuno da Silva, a man with considerable experience navigating in South American waters.
1577년 출발해서. 풍랑을 만나서 다시 빠꾸해. 한달후인 12월 13일.에 출발하는겨. 배 다섯척. 164명. 여기에 포르투갈 상선도 가다가 포획해 카보베르데.에서. 여섯척으로 죽 내려가.
Doughty was given command of a captured Portuguese ship, the Santa Maria (renamed Mary). The tension between Drake and Doughty worsened when Doughty caught Drake's brother, Thomas Drake, stealing from the captured cargo of the vessel.[2] Drake assumed command of the Mary and reassigned Doughty to command his flagship the Pelican. During the long voyage across the Atlantic, Drake's hostility increased, fuelled by the rancor of his brother.[3] Drake eventually demoted Doughty to command of a tiny supply vessel named Swan. This insult proved too much for Doughty to take, and he began to complain bitterly about "the Captain General."
저 포획한 포르투갈 배.로 도티.와 드레이크.가 싸우는거야. 드레이크.의 동생.이 저 배에서 물건을 슬쩍했다는겨. 포획한 것 자체도 잘못이란거야. 아직 1580년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들어가는 해가 아냐. 드레이크.는 스페인애들만 보면 전투태세에 약탈할 생각밖에 없어. 도티.는 그래선 안된다는 주의야. 퀸이 그러지 말라한겨. 이게 동생 절도껀으로 극에 달한겨 둘 사이가.
On his voyage to interfere with Spanish treasure fleets, Drake had several quarrels with his co-commander Thomas Doughty and on 3 June 1578, accused him of witchcraft and charged him with mutiny and treason in a shipboard trial.[34]
The fleet arrived at Puerto San Julián, a natural harbour in Patagonia in the Santa Cruz Province of Argentina on 20 June. Doughty's trial began on the 30th; Drake charged Doughty with not only mutiny, but treason.
드레이크.가 1578년 6월 3일.에 도티.를 기소를 해. 마녀짓으로. 그리고 뮤티니.와 트리즌. 불복종과 역모야.
저기가 프에르토 산 율리안. 파타고니아.가 남미 삐쭉 지역이야. 여기 동쪽 항구(푸에르토) 여. 이 바로 아래가 마젤란 해협.이야. 태평양 으로 돌기 직전인겨. 드레이크.는 자기가 애드머럴. 최고 란 거야. 퀸이 자기에게 그런 권리를 줬다는겨. 문서로 내봐라 하는걸 못내보여. 이때 다른 한명이 존 윈터.라는 22세 애야. 말만 삼두정치.로 세웠지만 얜 아무힘도 없어. 걍 착해.
배 위에서 재판을 하는거야. 6월 30일. 쟤들은 말야. 철저한 법의 나라야. 이게 아주 극똥빠닥이랑 전혀 달라. 이 중국 조선.은 법치주의.가 아냐. 김옥균.이 일본에 도망가서 얘가 놀란게 말야. 아 우리네 조선은 법이란게 없고 법치란게 없어서 이리 야만이 되었구나 하는거걸랑. 이조선 땅빠닥은 사법체제란게 없었어. 맨날 공수처 ... 저건 아프리카 ..들이나 있는 겨. 특별재판소. 를 만들자고 여당..들이 ..대더만 잠잠해지고. 말도 안되는겨 저게. 기본적인 삼권분리.가 뭔지 몰라 지금 21세기 이 조선들의 나라에서 조차. 오직 여론재판. 오직 여론몰이 선동몰이. 청와대 청원. 저게 홍위병 애들 갖고 선동놀이 하는 그 이상 없어 저게. 조선 오백년의 후유증은 어마어마 한겨. 북조선이 법이 없어 그래서. 저게 조선의 연장이야. 유교사회주의. 참 끔찍한 말이야. 오직 조선 땅빠닥에서만 벌어지고 이 조선 ..들만 저걸 찬양하는겨.
the jury of crewmen convicted Doughty of mutiny only, rejecting the charge of treason, and only after Drake prevaricated about whether he would seek Doughty's death.
승무원들로 배심원을 꾸려. 도티 동생도 있어. 도티.를 뮤티니. 저건 불복종이야. 침묵하는겨. 이것만 유죄. 역모.는 무죄. 헌데 드레이크 입장에선 쟤를 죽여야해.
After obtaining the guilty verdict, Drake convened the jury and produced various documents from English nobility in support of Drake; he did not, however, produce a royal commission, which he claimed to have left on board his ship. Arguing that Doughty was a threat to his life and the expedition in general, Drake demanded execution. The men eventually agreed although some reluctantly; Drake then asked if there were any reasonable proposals of alternative solutions. Doughty himself suggested that he be set loose once the fleet reached Peru, but Drake refused, claiming that Doughty would alert the Spaniards to their mission.
유무죄.는 배심원들에 의해 가려졌어. 이젠 형량을 정해야해. 배심원을 모아서리 자기를 변호할 귀족들의 문서를 만들어 보여줘. 헌데 얘한텐 킹덤에서 부여한 권리는 없어 증명서가. 그리고. 뱃사람들은 다 무시기들이고. 귀족층들은 드레이크 편 일수가 없어. 도티 동생 도 있어. 존 윈터.에. 저기 귀족애들이 많아. 얘 혼자 상대하는 것도 벅차 이게. 다수의견.은 도티.를 잉글랜드로 돌려보내자. 도티.는 페루에 닿으면 거기서 내려달라.
드레이크.가 거절을 해. 넌 분명히 스페인에 우리 미션을 알릴꺼라고. 드레이크.는 1568년 복수질이 죽을때까지가. 얜 저 태평양으로 돌면서 중남미 서쪽 해변 스페인 요새들을 다 약탈할 작정을 이미 하고 있걸랑. 도티.를 내려 줄 수가 없어.
존 윈터.가 그럼 배에 감금시키자 내가 지키겠다 하는겨.
John Wynter volunteered to keep Doughty prisoner on his ship, Elizabeth, to which Drake initially agreed, but qualified the statement by saying that the ship would then have to return to England with no share of the treasure they would gain from attacking Spanish ships. Wynter was soon shouted down by his crewmen, and Doughty's fate was sealed
그러면서 얘가 하는말이. 내가 도티.를 엘리자베쓰 호.에 감금하고 지키겠다. 이걸 드레이크.가 받아들여. 헌데 얘가 그 배로 자기는 도티와 함께 잉글랜드로 돌아갈거다. 스페인 배들 공격해서 탈취한 물건들은 자긴 안받겠다. 한거야. 이 건 얘 배의 승무원들 조차도 욕나오는 소리야. 자기들이 개고생 하고 여까지 칠개월 동안 왔는데 아무것도 없이 돌아간다는게 말이 안되는거걸랑.
Doughty requested that he and Drake receive Communion together, and as reported by the contemporary account of Francis Fletcher, "And after this holy repast, they dined also at the same table together, as cheerfully, in sobriety, as ever in their lives they had done aforetime, each cheering up the other, and taking their leave, by drinking each to other, as if some journey only had been in hand." On 2 July 1578, Thomas Doughty was beheaded. Shortly thereafter, Drake changed the name of his flagship from The Pelican to The Golden Hind purportedly to honour Christopher Hatton, whose crest was the hind, perhaps as an attempt to smooth over the Doughty incident.
도티.가 드레이크.와 같이 유카리스트. 를 받자고 제의를 해. 선단에 당연히 사제 지위의 사람이 있어. 이사람이 프란시스 플렛쳐. 기록을 남겨. 유카리스트.를 끝내고, 그 둘은 식사를 했다 같은 테이블에서 같이, 즐거운 듯이. 취하지도 않고, 이전에 같이 살아왔던 듯이. 서로가 상대를 위해 건배를 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술을 먹으면서. 마치 어떤 여행이 예약되어있다는 듯이.
재판이 유월 말이고. 7월2일.에 목을 짤라. 그리곤 자기배 이름을 바꾸고. 태평양으로 진입하는거야.
마젤란이 돌아간 마젤란 해협.이란건. 남미 끝이 말야. 또한 자잘한 섬들로 되어있어. 이곳 전부를 파타고니아. 지역 이라고 하지만. 이게 칠레 땅이 아냐. 오른쪽은 아르헨티나 땅이 마젤란 해협 건너서 큰 섬을 칠레와 나눠 갖고 있어.
드레이크.는 풍랑을 만나서 아래로 내려가. 해서 이인간은 완전히 남미 끝을 돌아서 태평양으로 들어가
이제 완전히 자기세상인겨. 자기 말 막는 도티.도 없고. 귀족들도 잠잠해.
Near Lima, Drake captured a Spanish ship laden with 25,000 pesos of Peruvian gold, amounting in value to 37,000 ducats of Spanish money (about £7m by modern standards). Drake also discovered news of another ship, Nuestra Señora de la Concepción, which was sailing west towards Manila. It would come to be called the Cacafuego. Drake gave chase and eventually captured the treasure ship, which proved his most profitable capture.
Aboard Nuestra Señora de la Concepción, Drake found 80 lb (36 kg) of gold, a golden crucifix, jewels, 13 chests full of royals of plate and 26 tons of silver. Drake was naturally pleased at his good luck in capturing the galleon, and he showed it by dining with the captured ship's officers and gentleman passengers. He offloaded his captives a short time later, and gave each one gifts appropriate to their rank, as well as a letter of safe conduct.
이 남미.의 서쪽이. 특히 페루. 저 쭉 올라가서리. 저기가 잉카.의 금이야 이게. 한배가 7백만 파운드.면 2천원만 쳐도. 140억원. 걍 무수수히 널려 있는 배들을 얘가 다 약탈하는겨. 저긴 스페인 아니면 저짝을 가 본 애들이 없걸랑. 포르투갈은 당근 교황에 조약에 안가 저길. 경계를 전혀 안해. 여긴 아무도 안온 곳이야. 스페인애들이 그냥 널널하게 있는겨.
드레이크.가 1563년 존호킨스부터 해적인생만 15년이야. 1568년에 당한건 진짜 억울한겨 스페인에 대한 적개심이 죽을때까지가. 걍 저기를 훑으면서 노다지를 긁는겨 얘가. 그러면서 올라간 곳이 캘리포니아.야
Juan Rodríguez Cabrillo (1497 – January 3, 1543) was a Spanish explorer born in Palma del Rio, Córdoba, Spain,[3] although he is also claimed by tradition as a native of Portugal.[4] Among other things he was a maritime navigator known for exploring the West Coast of North America on behalf of the Spanish Empire. Cabrillo was the first European to navigate the coast of present-day California. He is best known for his exploration of the coast of California in 1542–1543.
이 서쪽은. 마젤란.이 1520년 에 가면서 걍 마닐라로 간거고. 여긴 발보아.가 파나마 지협 넘어서 1513에 오는거고. 이다음으로 베네수엘라에 콜럼비아 지나면서 여길 걸어서 오는겨. 그리고선 배로 삥돌아서 오는거걸랑.
이전에 저 북미 서해쪽 가는게 코르테스.가 아즈텍 점령하면서. 얘 수하 애들이 멕시코 서해안에서 저길 가는겨. 자기들이 배를 만들어서. 캘리포니아.로 처음 간 사람이 후안 로드리게스 카브리요. 코르테스. 사람이야. 이사람이 센프란시스코 근처까지 가고. 여길 삼십년 후에. 드레이크.가 스페인 배들 다 약탈하고 저길 가보는겨 얘가.
그리고 또한 말야. 스페인은 마닐라.에서 이쪽 멕시코 페루 서해안으로 오걸랑 태평양 건너서. 얘들은 아프리카를 안돌아. 마닐라에서 저 스파이스제도의 스파이스 들을 실고 오는 배들도 얘가 다 약탈을 하는겨.
On 26 September, Golden Hind sailed into Plymouth with Drake and 59 remaining crew aboard, along with a rich cargo of spices and captured Spanish treasures. The Queen's half-share of the cargo surpassed the rest of the crown's income for that entire year. Drake was hailed as the first Englishman to circumnavigate the Earth (and the second such voyage arriving with at least one ship intact, after Elcano's in 1520).[41]
1580년 9월 26일.에 플리머스.로 도착해. 퀸.이 절반.을 먹기로 한겨. 나머지 절반.은 드레이크.가 알아서 나누는거야. 퀸의 절반 몫이 당해 전체 킹덤 코트 수입을 넘고도 남았다. 드레이크.는 지구를 일주한 첫번째 잉글리쉬맨으로 환호를 받았다. 마젤란 따라 돌아온 엘카노. 두번째였다 세계적으론.
The Queen declared that all written accounts of Drake's voyages were to become the Queen's secrets of the Realm, and Drake and the other participants of his voyages on the pain of death sworn to their secrecy; she intended to keep Drake's activities away from the eyes of rival Spain. Drake presented the Queen with a jewel token commemorating the circumnavigation. Taken as a prize off the Pacific coast of Mexico, it was made of enamelled gold and bore an African diamond and a ship with an ebony hull.[41]
퀸은 드레이크 항해의 모든 기록들을 비밀로 붙였다. 드레이크와 다른이들도 맹세했다 비밀하겠다고. 퀸은 드레이크.를 스페인의 시야에서 숨기려 했다. 드레이크.는 퀸에게 보석 토큰을 주었다. 기념으로.
For her part, the Queen gave Drake a jewel with her portrait, an unusual gift to bestow upon a commoner, and one that Drake sported proudly in his 1591 portrait by Marcus Gheeraerts now at the National Maritime Museum, Greenwich. On one side is a state portrait of Elizabeth by the miniaturist Nicholas Hilliard, on the other a sardonyx cameo of double portrait busts, a regal woman and an African male. The "Drake Jewel", as it is known today, is a rare documented survivor among sixteenth-century jewels; it is conserved at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41]
엘리자베쓰.는 답례로. 자기 초상이 박힌 보석을 줘. 드레이크.의 초상화.가 두개 정도 보이는데. 1591년.의 그림엔 이걸 자랑스럽게 자기 목에 걸고 그려.
드레이크.가 저 거지나라 잉글랜드.에 부를 주고. 최강 미국같은 스페인을 존 호킨스.와 막은겨 이 다음 십년 후에.
1588년 이후로. 잉글랜드.는 아주 본격적으로 스페인 배들. 포르투갈 배들을 약탈하는겨. 전쟁이걸랑. 스페인애들이 자기들 영해로 대 선단을 몰고 쳐들어왔걸랑. 드레이크.가 쟤들의 선생님이야.
개거지 나라 잉글랜드.가 영국.이 된겨 저 두인간.과 엘리자베쓰.라는 여자.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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