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nglo-Spanish War (1585–1604) was an intermittent conflict between the kingdoms of Spain and England that was never formally declared.[2] The war was punctuated by widely separated battles, and began with England's military expedition in 1585 to what was then the Spanish Netherlands under the command of the Earl of Leicester in support of the resistance of the States General to Spanish Habsburg rule.  

 

잉글랜드 스페인 전쟁.이 1585-1604. 로 처음 끊는데. 이 시작을 더들리.가 네덜란드 가는걸로 잡지만. 이런것도 다 후대에서 잡는거고. 이미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가 취임하면서 전쟁 분위기고. 엘리자베쓰는 저기 휩싸이길 너무나 싫은거고 조심에 조심을 한건데. 그러다가 결정적인건 1568년에 저 베라 쿠르스. 해전인겨 이게. 스페인에서는 원래 금지인데 왜 왔냐 고 잉글랜드는 퀸.의 배.가 있는 선단에서 바이스로이.와 협약을 해서 표류 정착 중인 배들을 칩입당한거걸랑. 

 

저게 일차적으로 가장 커. 그래도 엘리자베쓰는 살얼음 판이여. 감히 못대들어 킹덤 차원에선. 더들리.가 그래서 개인돈으로 개인차원에서 간겨 저건. 

 

저 와중에 1592년.에 아소리스 제도에서 포르투갈 겔리온.을 포획해 잉글랜드가 자기들 예산의 반이야 선적물이. 엄청난겨 눈돌아가. 저건 스페인꺼야 얘들 시선엔. 1580년에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간겨. 

 

이전에 포르투갈 선 포획한건. 스페인과는 상관이 없어. 당시 전혀 다른 두 킹덤이야 이건. 아 헌데 저 해전.은 완전히 잉글랜드애들 입장에선 치를 떠는거야. 자기들 상선이 당한겨 저건. 서인도 제도. 전체가 스페인꺼다며 무역금지.는 자기들만의 논리인거고. 

 

헌데. 아무런 힘이 없어 잉글랜드는. 

 

1568년. 바로 저때. 스콧 마리가. 잉글랜드에 온거야. 

 

As part of the English government's web of counter-espionage, Hawkins pretended to be part of the Ridolfi plot to betray Queen Elizabeth in 1571. By gaining the confidence of Spain's ambassador to England, he learned the details of the conspiracy, and notified the government to arrest the plotters. He offered his services to the Spanish, in order to obtain the release of prisoners of war, and to discover plans for the proposed Spanish invasion of England.  

 

리돌피 음모. 1571년. 로베르토 리돌피.가 피렌체 귀족이고 상인인데. 카톨릭이야. 사보나롤라.의 그 민주짓 피바람의 피렌체. 항상 이들이 이용하는건 여자와 아이 우대. 참 똑같은데. 피렌체.가 저 민주놀이 정의놀이에 거지가 되고 사람들이 분노해서 사보나롤라.를 화형시켰지만 카톨릭바닥이 찐하걸랑. 이 리돌피.가 스콧마리.를 이용해서 잉글랜드에 카톨릭을 다시 세우려는겨. 스콧 마리.는 걍 감옥아닌 감옥에서 이름만 이용당하는겨. 참 불쌍한 여자여 이 스콧마리. 

 

이때 리돌피.가 움직이는 세력이 스페인이야. 호킨스.가 스페인 사절 경험이 있고. 친해 원래. 이걸 스페인 줄을 통해서 알게 되고 코트에 알려줘. 3차 항해 죽다 살아온 직후야. 그리곤 호킨스.가 코트.로 들어가는겨. 팔리어먼트.로 플리머스 지역구 에서. 이사람이 지금 로얄 네이비.라는 영국 해군을 만든겨 이때. 

 

Hawkins' financial reforms of the Navy upset many who had vested interests. In 1582 his rival Sir William Wynter accused him of administrative malfeasance, instigating a royal commission on fraud against him. The commission, under William Cecil, 1st Baron BurghleyFrancis Walsingham, and Drake, concluded that there was no undue corruption, and that the Queen's Navy was in first-rate condition.[7]

 

해군.이란게 헨리8세 말 시작 어쩌고 하지만. 아무것도 없어 얘들은. 거지야 거지. 걍 킹덤차원의 야드.와 배 몇개 있는겨. 이사람이 재정 개혁을 하고 하나하나 만들어나가. 이사람은 귀족이 아냐. 작위도 못받았어. 걍 집안이 상인집안일 뿐. 귀족애들이 고소를 해 부패혐의로. 조사해보니 없어. 계속 가는겨 존 호킨스가. 

 

Hawkins was determined that his navy, as well as having the best fleet of ships in the world, would also have the best quality of seamen. He petitioned and won a pay increase for sailors, arguing that a smaller number of well-motivated and better-paid men would be more effective than a larger group of uninterested men.  

 

최고의 해군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씨멘. 선원들이 우수해야 함을 파악해. 즉 말야. 해전이란 멜레이. 라는 백병전.이 핵심인걸 파악한겨. 그리고 배를 자유자재로 부릴 선원. 보다 빨리 상대 배에 붙어서 올라타는겨. 선원들 우대를 청원을 하고 봉급 인상을 해. 정체성 없는 다수의 인간들 보다 소수 정예의 자기 동기부여하는 몇몇이 낫다. 이들을 키워야 한다.

 

 

Hawkins made important improvements in ship construction and rigging. He is less well known for his inventiveness as a shipwright than for his management. His innovations included sheathing the underside of his ships with a skin of nailed elm planks sealed with a combination of pitch and hair smeared over the bottom timbers, as a protection against the worms which attacked the wooden hulls in tropical seas. Hawkins also introduced detachable topmasts; they could be hoisted and used in good weather and stowed in heavy seas. Masts were stepped further forward, and sails were cut flatter. His ships were "race-built", being longer and with forecastle and aftcastle (or poop) greatly reduced in size.  

 

배를 설계를 다시해. 완전 배 전문가야 존 호킨스가. 태생부터 배야 배. 더하여 대서양 항해하고 전투하면서 배에 대한 문제와 기능을 너무나 잘 알아. 배 제조공이야. 배가 목재라 썩는 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목재를 쓰고. 피복도 다른 레진들을 쓰고. 돛대 마스트.도 개량해. 좋은 날에는 높이 늘리고 거센 바다에선 높이 낮추게끔. 돛대를 보다 앞으로 보내고. 돛 헝겁들을 더 줄여. 배 자체도. 데크들을 줄이고. 길게 만들고. 특히나 이물 고물 의 데크들을 확 줄여. 이게 머냐면 바이킹 배 식으로 만든겨. 배 크기 자체를 줄여. 보다 빨리 움직이게 쓸데없는 공간 줄이고. 상대 배를 쳐 밀고 나가겠다는겨 이게. 아주 해전에 대한 정확한 식견이 잇는겨. 칭찬해

 

 

존 호킨스.가 20년 가까이를. 저걸 한거야. 영국은 해군이 만든거고 말야. 해군은 이 존 호킨스.가 20년 동안 만든겨. 세번의 항해.의 경험과 스페인에 대한 부들부들 당한걸 저런 식으로 발산을 한거야.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달라. 이 인간은 몸으로 스페인을 조져. 아 음청나  이 두 인간.

 

 

Drake's hostility towards the Spanish is said to have started with this incident. Following the defeat at San Juan de Ulúa, Drake vowed revenge.[26] In 1570, his reputation enabled him to proceed to the West Indies with two vessels under his command. He renewed his visit the next year for the sole purpose of obtaining information.[19]

 

열살 어린 드레이크.는 말야 더 부글부글 이야. 존 호킨스.는 해군 공직으로 들어가고. 드레이크.는 자기가 저 스페인의 부.를 직접 뺏아오는게 목표야. 바로 오자마자. 존 호킨스 형님.의 그늘을 벗어나서 혼자 가는겨. 서기 1572년. 정보를 수집하는겨 어디에 더 금은덩어리들의 저장소가 있고 저 배들이 어디서 출발해서 스페인 본토로 가는지.를 알고 가는겨.

 

 

In 1572, he embarked on his first major independent enterprise. He planned an attack on the Isthmus of Panama, known to the Spanish as Tierra Firme and the English as the Spanish Main. This was the point at which the silver and gold treasure of Peru had to be landed and sent overland to the Caribbean Sea, where galleons from Spain would pick it up at the town of Nombre de Dios. Drake left Plymouth on 24 May 1572, with a crew of 73 men in two small vessels, the Pascha (70 tons) and the Swan (25 tons), to capture Nombre de Dios.

His first raid was late in July 1572. Drake and his men captured the town and its treasure. When his men noticed that Drake was bleeding profusely from a wound, they insisted on withdrawing to save his life and left the treasure. Drake stayed in the area for almost a year, raiding Spanish shipping and attempting to capture a treasure shipment.

 

드레이크.는 혼자 전쟁하는겨. 킹덤은 도와줄 수 없어. 마음으로 응원하는거야. 티에라 피르메. 스페인의 메인.으로 알려진 곳.이 지금 파나마.여. 바스코 발보아. 가 1513년 처음 태평양 만질때 건넌 곳의 시작이야. 페루 잉카의 금은 덩어리들을 여기까지 싣고 오면. 스페인에서 갤리온들이 와서 싣고 가는겨. 이걸 알고 플리머스.에서 출발해서 2척 소형선과 73명 선원들 델꼬. 가는겨 저 파나마.의 놈브레 데 디오스. 신의 이름. 이란 마을로. 금은들을 취했어. 1572년 7월. 드레이크.가 부상을 당해서 피가 무지 나는걸 봤대. 사람들이 보물은 버리고 그냥 가자 라고 했대. 드레이크.가 여기서 1년을 버텨. 이건 오직 1568년 에 대한 스페인애들에 대한 적개심 이야.

 

The most celebrated of Drake's adventures along the Spanish Main was his capture of the Spanish Silver Train at Nombre de Dios in March 1573. He raided the waters around Darien (in modern Panama) with a crew including many French privateers including Guillaume Le Testu, a French buccaneer, and African slaves (Maroons) who had escaped the Spanish. Drake tracked the Silver Train to the nearby port of Nombre de Dios. After their attack on the richly laden mule train, Drake and his party found that they had captured around 20 tons of silver and gold. They buried much of the treasure, as it was too much for their party to carry, and made off with a fortune in gold.[28][29] (An account of this may have given rise to subsequent stories of pirates and buried treasure.) Wounded, Le Testu was captured and later beheaded. The small band of adventurers dragged as much gold and silver as they could carry back across some 18 miles of jungle-covered mountains to where they had left the raiding boats. When they got to the coast, the boats were gone. Drake and his men, downhearted, exhausted and hungry, had nowhere to go and the Spanish were not far behind.

 

저기서 부상 심하게 당한 체로. 다른 곳들을 노리는겨. 7월에 와서 다음해 3월이 되었어 1573. 다리엔.이 오른쪽 대륙 접하는 곳이야. 프랑스 해적들이랑, 스페인 탈출한 아프리칸 노예들도 합세를 해. 20톤의 금과 은을 강탈했대. 

 

지금 골드 스팟 시세가. 온스당 1323 달러여. 20톤이면 20,000키로고. 이게 705,479 온스 곱하기 1323 은. 걍 단순히 70만 곱하기 1300 하면 910,000,000 9억 1천만 달러. 곱하기 천원하면 9천억원 이걸랑. 은. 이 있으니 걍 반만 까도 대충 5천억원 이걸랑. 아이 떼부잔데 저거. 

 

그런데 스페인애들이 다시 오는겨. 저걸 못들고 가. 걍 주머니에만 쑤셔넣고 튀는겨. 잡힌애들은 죽고. 저걸 저기 어디에 숨겼다는겨 얘들이. 해변에 닿으니 자기들 배가 떠났어. 뗏목을 만들어서 10마일을 바다에서 가다가 자기 배를 만난거야. 사람들이 그 처참한 몰골을 보고 놀라는데. 너무 힘이 없어서 아무말도 안하다가. 

 

At this point, Drake rallied his men, buried the treasure on the beach, and built a raft to sail with two volunteers ten miles along the surf-lashed coast to where they had left the flagship. When Drake finally reached its deck, his men were alarmed at his bedraggled appearance. Fearing the worst, they asked him how the raid had gone. Drake could not resist a joke and teased them by looking downhearted. Then he laughed, pulled a necklace of Spanish gold from around his neck and said "Our voyage is made, lads!" By 9 August 1573, he had returned to Plymouth. 

 

보이들. 아워 보이즈 이스 메이드. 했대. 스페인 금으로 된 목걸이를 자기 목에다 걸곤. 당해 8월에 플리머스.로 돌아와 

 

저때 저 금은들을 묻었다는데. 저게 어딨냐는거지. 보물섬 이야기의 시작이 돼 저게.

 

Pirates of the Caribbean is a Disney franchise encompassing numerous theme park attractions and a media franchiseconsisting of a series of films, and spin-off novels, as well as a number of related video games and other media publications. The franchise originated with the Pirates of the Caribbean theme ride attraction, which opened at Disneyland in 1967 and was one of the last Disney theme park attractions overseen by Walt Disney. Disney based the ride on pirate legends and folklore.  

 

캐리비언의 해적. 이야기는 디즈니랜드.에서 1967년에 테마파크.로 시작한겨 저게. 저게 영화랑 소설.로 만들어진건데. 저게 주인공이 말야. 존 호킨스.와 프란시스 드레이크.고 그중에서도 저 드레이크.의 저 1573년 보물들 묻고 뗏목 타서 온 이야기야. 그래도 목에 달랑 금목걸인 취했어. 웃으면서.

 

It was during this expedition that he climbed a high tree in the central mountains of the Isthmus of Panama and thus became the first Englishman to see the Pacific Ocean. He remarked as he saw it that he hoped one day an Englishman would be able to sail it—which he would do years later as part of his circumnavigation of the world

 

저당시 파나마 지협에 있으면서. 드레이크.가 높은 나무에 올라서리. 맞은편 태평양.을 본거야. 

 

저 파나마 땅에 닿은 인간도 잉글랜드 인간은 처음인겨. 발보아가 1510년 닿은곳을 60년 만에 밟아봐. 발보아는 1513년에 태평양을 만져. 이때 드레이크.가 자기가 언젠가는 저 태평양을 갈꺼야 하는겨. 잉글랜드 도착해서 4년 후에 출발하는겨 세계 일주를. 

 

위대한 인간이야 이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지금 영국은 말야. 저 두 인간이 만든겨. 

 

아직 말야. 스페인 아르마다. 1588은 나오지도 않았어. 

 

우리넨 이 조선 빠닥은. 너무나 너무나 인물이 없는겨 이게. 그러니 저딴 이야기도 모르거니와 알아도 걍  해적 개개끼 해적질로 먹고 살은 나라 양키 개개끼 . 아 음청난 겨. 이 조선 과 동양 빠닥 들의 인식은. 

 

아~~무것도 안하고. 자기들 땅빠닥 안에서 힘없는 상대를 적폐놀이 하민서리 광장에서 찢어죽이기 해대고. 그러고 남들 이야긴 보지말어 나뽀 해대고. 위대한 조선. 문화적 다양성. 

 

참 끔찍한 족속들이야. 

 

 

유럽애들이 말야. 나중에 동양빠닥 와서 하는 공통적인 말. 왜 아~~무것도 안하는 이 인간들은 대체 머냐. 아  유럽인들의 짐떵어리다 이놈의 동양빠닥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온 인간들.

 

너무나 미개한겨 여긴. 특히나 이 조선. 가~~만히 있어라.의 주어는 조선이야 조선. 니덜이 지폐와 동전으로 모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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