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 n'existait pas dieu il faudrait l'inventer

실 네지스테 파 듀 일 푸드라 라방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들어라도 내야한다. 볼테르

 

The Rathlin Island massacre took place on Rathlin Island, off the coast of Ireland on 26 July 1575,[1] when more than 600 Scots and Irish were killed.  

 

1575년 7월 26일. 래뜰린 섬 학살. 600여명의 스콧과 아리리쉬 들이 킬 당했다. 

 

아일랜드.가 영국에서 나가지만 1920년 즈음에. 북아일랜드. 만 영국에 가고. 

 

헨리2세 의 배런들이 여길 들어온게 1171년. Henry II (5 March 1133 – 6 July 1189), 1154년 즉위. 

 

아일랜드 애들이 불러서 헨리 아이들이 간거야. 세상 모든 대부분의 역사.는 본토 애들이 불러서리 먹힌겨.

 

저때 헨리2세.가 아일랜드 역시 저 건너간 노르만들을 아일랜드의 바쌀.들로 나눠. 아일랜드.가 이때부터 봉건주의.를 시작을 해. 스콧.은 이 직전에 데이빗1세.가 잉글랜드껄 배워서 시작한거고. 아일랜드는 헨리2세.의 속주가 된건데. 

 

King Henry II of England granted three Palatinates or seigniories in Ireland to Norman nobles during the Norman invasion of Ireland,   

 

아일랜드.에 세 팔라타인 palatine 을 줬다. county palatine 백작령.인데 팰리스.란 말이 붙은겨. 이 말은 자치성이 강한거야. 얘들 백작은 earl 얼.이란 게르만 말이고. 이게 북쪽에 얼스터 Ulster .중간에 Kildare 킬데러. Meath 미드 정도여. 그리고 더블린 을 Pale 페일 이라해. 걍 동쪽 해안과 그 주변 정도 점령한거야. 이들이 대부분 아이리쉬.가 되는거고. 해서 지금 아일랜드.의 아이리쉬.라는게 노르만과 앵글족이 지도부로 가서리 이들이 아이리쉬화 된겨. 

 

아일랜드.를 크게 네개로 얼스터. 코나흐트 렌스터 뮌스터.로 지금 나누고. 얼스터 대부분이 북아일랜드.인데. 원래 얼스터.라는건 저때 팔라타인 카운티.일때는 이게 북동쪽 비쭉 반도 덩어리.여. 이게 사분의 일을 대명사로 지금 쓰는건데.

 

그러다가 헨리2세 이후.에 리차드.가 십자군 간사이 동생 실지왕 존.이 쿠데타 하고 땅 다 뺏기고 리차드가 땅 회복하다 죽고. 꼬마 헨리3세에  잉글랜드의 배런들 내전에 에드워드 123세부터 정신차리민서 백년전쟁 어쩌고 하면서 아일랜드.는 다시 아이리쉬 세상이 되걸랑. 저걸 헨리8세.때 와서야 킹덤 명목상 만들고 다시 재정벌하면서 엘리자베쓰1세 때서야 어느정도 잉글랜드화가 될둥말둥 하는거걸랑. 즉 여긴 엘리자1세 1603 까지 4백년 가까이 잉글랜드에 버팅기는겨. 이 후도 역시나고. 더불어 올리버 크롬웰.은 아주 와서 인종학살을 시키는거고. 휘그님들의 조상님이걸랑. 저 영국애들 선거할때 진보자연 하는 들이 저 노동당. 지금 영쿡은요 토리당의 음모로 세상의 배후가 되서리 모든 사건들을 일으킵니다. 휘그들이 일어나야 함둥 참세상 만들어야 함둥. 개.. 하걸랑 저게. 

 

영국은 말야. 지금 영국은 토리.가 배후가 아녀. 토리.는 쪽도 못써온 애들이야. 일방적인 휘그 애들 의 나라야 오렌지 이후로. 1688. 3백년 이상이 휘그가 배후여. 인간들 학살 한 들이 영국 노동당.의 뿌리야. 그리곤 지들은 피해자 요 진보요 .. 대는거고. 

 

전 세계사에서. 이 진보 자연 해대는 애들의 무지와 위선은 어디나 똑같은데 이게. 

 

트럼프 왔다고 피켓 시위 ..들 하는거 보문. 유치 ..도 은하계급이야.

 

테레비를 정말 볼게 없걸랑. 아 증말 말야 볼게 없어. 해서 가끔 저 시엔엔이나 엔에치케이나 몇분 보다가 지나간 미드나오는거 몇분 보다가. 아 재미가 읎는데 사는게. 똥파리 뚝배기 끝나고. 먼재미로 사냐 이거. 

 

래쓸린 섬.이 1575년 이야. 아래 데스몬드 반란.이 1569-73. 2차 데스몬드.가 이 후 1579-83. 스코치드.로 아주 잔혹하게 진압해. 래쓸린 섬 학살.은 저 사이에서 벌어진겨. 이때 여길 가는 사람이 프란시스 드레이크.야

 

 

 

파나마.와 이 지협 동쪽 끝 지금 콜럼비아땅에서. 금은 20톤 탈취하다 걸려 죽다가 살아나서리 뗏목 만들어 타고 하나 건진 금목걸이 차고. 아워 보이지 이즈 메이드 래드즈. 애들아 우리 항해는 이걸로 성공한거다 마무리된거다. 하미 돌아가고. 그 다음에 다시 파나마.에 또가서 스페인애들이랑 싸워. 그리고는 킹덤의 명을 받아서 아일랜드 북쪽 래쓸린에 가는거야. 저 반란 진압하라고. 프란시스.는 완전 독고다이여 이게. 존 호킨스 때문에 킹덤 코트.에서 눈에 익히는거고. 존 호킨스.는 로얄 네이비. 갖추는 일에 매진하고. 저 아일랜드 북쪽은 바다야. 해군이 필요한겨. 프란시스 드레이크 만한 바다 경험 인간이 없는겨. 스페인 상대 해적질 하다가 부름 받고 저길 간거야. 짜증 지대로야 저건. 드레이크.가 저길 가는데 땡기겠어. 

 

Rathlin Island was used as a sanctuary because of its natural defences and rocky shores; when the wind blew from the west, in earlier times it was almost impossible to land.[2] It was also respected as a hiding place, as it was the one-time abode of St. Columba.[2] Installing themselves in Rathlin Castle, the MacDonnells of Antrim made Rathlin their base for resistance to the Enterprise of Ulster. Their military leader, Sorley Boy MacDonnell (Scottish Gaelic: Somhairle Buidhe Mac Domhnaill) and other Scots had thought it prudent to send their wives, children, elderly, and sick to Rathlin Island for safety.[2]

Acting on the instructions of Sir Henry Sidney and the Earl of Essex,   

 

아일랜드의 아이리쉬.에겐 1171년 부터 잉글랜드.는 웬수야 웬수. 스콧과 아일랜드.는 스콧이 데이빗1세.의 핏줄들 끊기고. 남은 꼬마여자애 노르웨이에서 오다가 풍랑으로 죽고. 얘랑 결혼으로 엮을라고 에드워드1세.가 자식을 스콧킹에 앉히려다 날라가고. 이때부터 스콧 내전.하면서 잉글랜드가 개입하면서 1290년대 부터 스콧과 잉글랜드.는 역시 웬수야. 나중에 오렌지애들땜에 쫓겨나서 자코바이트.가 돼. 명예혁명이후엔. 더 웬수야. 

 

아이리쉬.와 스콧.은 그래서 친해지는겨. 아이리쉬.에겐 지금가지 8백년 불천지 웬수고. 스콧에겐 7백년 웬수야. 아이리쉬.의 원한이 스콧보다 백년 깊어. 이걸로 테러 해대다가 이젠 안하께 하고. 저따위 테러.를 또 진보자연 하는 애들은 아  위대한 아이리쉬 빨아주고. 테러란 건. 무슬림 ..들의 테러나. 쌍둥이 타워 폭파나. 저따위 테러나. 도시락 폭탄이나. 다를게 없단다. 

 

 

그래서 쟤들이 같이 서로 연민 하는겨 연대 하는거고. 저 이름이 문화적 다양성.이야. 가장 드러운 말이야 이 문화적 다양성. 다문화. 아주 골때리는 말이야 이게. 나중으로 넘기고. 

 

 

자기들의 똥떵어리 역사. 똥떵어리 이야기는 비단으로 사악 덮고. 우리네는 유럽애들과 같은 수준의 문화.이며 다문화 인정해야 함니다. 하는거걸랑. 저 지독하고도 추악한 이야기는 외면하고. 아주 끔찍한 위선이야. 저 중심이 프랑스야 역시. 그 대표적 영화제가 깐느.란 거고. 아무도 보지도 알아주지도 않는 영화제.가 머 세계 삼대 영화제 어쩌고.

 

프랑스가 영국 독일에 대한 열폭질을. 똘마니들 데리고 만회하는 정서여. 북유럽애들이 여기 끼는거고. 북유럽이란 나란 서유럽애들이 피터지게 만든걸 그냥 얻은 아이들이야. 더하여 저 어마어마한 자원. 에서 지들 복지놀이 하는거고. 이 북유럽도 점점 애들이 맛탱이가 가는겨. 배운 젊은애들은 저길 떠나 지금. 

 

 

세계의 중심은 영국과 미국. 그리고 독일이야.

 

해서, 아이리쉬 와 스콧.은 연대감이 강해. 오직 적폐 잉글랜드 때메. 저기서 중심이 안트림.의 맥오도넬. 클랜.

 

The MacDonnells of Antrim (GaelicMac Domhnaill),[1] also known as the MacDonnells of the Glens, are a branch in Ireland of the primarily Scottish-based Clan Donald. Initially part of Clan MacDonald of Dunnyveg (Clan Donald South), the MacDonnells of Antrim became their own branch in 1558 when Somhairle Buidhe MacDonnell obtained the lordship of the territory in Ireland  

 

얘들 땅은 얼스터 얼돔. 백작령 바로 위야. 저때 수장이 솜헤얼리 부이에 맥도넬. 영어로 솔리 보이 맥도넬.

 

맥도날드. 맥도넬. 이란게 성씨 지만. 저것도 두 성이 합한거야. 맥. 이란 클랜과. 도날드.란 클랜.이 합쳐진겨. 도날드(도넬) 클랜은 스콧.이고. 맥.은 아이리쉬.야 이둘이 합한 가문이 맥도날드.야. 이 성씨는 그래서 스콧 아이리쉬. 하는겨. 이 성이 이때부터 시작하는겨. 이들이 잉글랜드에서 쫓기면서 해변 넘어 래쓸린 섬.으로 사람들 데리고 간거야.

 

이일랜드 킹덤 대행.이 헨리 시드니.고 총 사령관이 에식스 백작.이야. 드레이크.는 여 밑에서 전투하는거고. 총 작전 사령관은 저 킹 대행과 에식스 백작인겨. 드레이크.는 걍 딱깔이야. 같이 간 사람이.

 

Sir John Norris or Norreys (ca. 1547 – 3 July 1597), was an English soldier of a Berkshire family, the son of Henry Norris, 1st Baron Norreys, a lifelong friend of Queen Elizabeth.  

 

존 노리스. 역시나 영국사.에서 평가 못받는 인간이야. 드레이크 보다 7살 정도 어려. 실재 병력을 이끄는 두 인물은 드레이크.와 노리스. 인거야. 드레이크.가 존 호킨스 형님과 이별하고 호킨스.는 해군 행정으로 들어갈때, 같이 짝이 되는 인간이 이 존 노리스야. 저때 처음 만난겨 이 둘은. 

 

드레이크.는 아무 족보 없는 인간이야. 존 노리스.는 얜 귀족가문이야. 아빠가 배런.이야. 엘리자베쓰의 친구야. 

 

존 노리스.의 친할아버지.가 헨리 노리스. 앤불린이 간통 역모.혐의로 죽을때 남자 네명. 중에 하나야. 근친.은 앤불린 남동생 따로고. 외할아버지.가 피의 마리 때 사람이야. 엘리자베스.가 감금당할때 이사람이 잘해줬어. 엘리자베쓰에겐 애정있는 집안이 이 노리스 가문인겨. 

 

Norreys's great uncle had been a guardian of the young Elizabeth, who was well acquainted with the family. She had stayed at Yattendon Castle on her way to imprisonment at Woodstock. The future Queen was a great friend of Norreys's mother, whom she nicknamed "Black Crow" on account of her jet black hair. Norreys inherited his mother's hair colour, so that he was known as "Black Jack" by his troops.  

 

노리스.의 엄마가 엘리자베쓰 의 베프야. 얜 아들뻘이야. 엘리자가 이 엄마.의 닉을 블랙 크로우. 검은 까마귀. 젯 블랙 헤어. 머리가 껌꼬 직모로 막 뻗은겨. 해서 노리스 부대 이름이 블랙 잭.으로 알려져. 

 

In 1566, Norreys's father was posted as English ambassador to France, and in 1567, when he was about nineteen, Norreys and his elder brother William were present at the Battle of Saint Denis. They drew a map of the battle which formed part of their father's report to the Queen.  

 

1566년. 19세 에. 프랑스.에 대사.로 아빠가 가. 여길 따라간겨. 생드니 전투. 현장에 있었어. 1562년 프랑스 종교전쟁 중인겨 여긴. 이걸 옆에서 보고 지도 그려주고 이게 퀸에게 정보가 들어가. 

 

When his father was recalled from France in January 1571, Norreys stayed behind and developed a friendship with the new ambassador, Francis Walsingham. In 1571, Norreys served as a volunteer under Admiral Coligny, fighting on the Huguenot side during the French Wars of Religion.

Two years later, Norreys served as a captain under Sir Walter Devereux, recently created first Earl of Essex, who was attempting to establish a plantation in the Irish province of Ulster.  

 

아빠가 4년 뒤에 다시 콜 당해서 돌아가고. 노리스.는 남는겨. 신임 대사랑. 이사람이 프란시스 월싱햄. 엘리자 퀸 뒤에서 당시 모든 세계정세의 배후의 정보들을 알려주는 인간이야. 당시 영국 정치판의 배후야 이 인간이. 

 

이 존 노리스.가 저 프랑스에 있다가. 나이 24세에 위그노 편을 들면서 같이 참전한겨. 이건 개인 용병으로 걍 지 혼자 한거야. 킹덤이니 영주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저때 위그노.의 사령관은 콜리니. 야. 이 인간이 1572년 성 바르텔레미 학살.로 죽는 그 사람이야. 

 

Gaspard de Coligny, Seigneur de Châtillon (French pronunciation: ​[ɡaspaʁ d(ə) kɔliɲi sɛɲœʁ d(ə) ʃɑtijɔ̃]; 16 February 1519[1] – 24 August 1572) was a French nobleman and admiral, best remembered as a disciplined Huguenot leader in the French Wars of Religion and a close friend and advisor to King Charles IX of France.  

 

카스파르 콜리니.가 애드머러. 제독이야. 바다사람이야. 

 

바다.의 총사령관.은 Admiral. 애드머럴. 육군의 총사령관.은 Marshal 마샬. 이야. 아빠가 마샬.이었어. 프랑스 군권의 핵심 가문인겨. 이사람이 위그노가 된겨. 해서 위그노 전쟁 전에. 당시 탐험의 시대야. 위그노들 땅 알아보기 위해서 장 리보.를 보낸겨. 이들이 포르투갈의 브라질 리오네자데이로.도 갔다가 쫓겨나. 그리고 정착시작 한 땅이. 그 루도니예.의 포트 캐롤라이나. 잭슨빌.이야. 여길 존 호킨스.가 와서 만났던거고. 할때 루도니예.의 최고 상관.이 저 가스파르 콜리니.야. 성 바르텔레미. 1572년 에 죽는. 이사람 암살껀으로 저게 시작해. 정작 암살시도땐 안 죽고. 

 

존 노리스.가 저 사람 밑에서 용병질을 해댄겨. 그리곤 바로 성 바르텔레미 사건이 터져서. 콜리니.가 죽었고. 위그노.는 중심을 잃어서 도망다니는 신세야. 노리스.는 그냥 잉글랜드로 돌아가. 그리고 에식스 백작. 따라서 아일랜드.로 가는거야. 얼스터 주변.의 아이리쉬.들 진압하러. 이 에식스.가 아주 잔인해. 오닐 들을 불러서리 식사하자곤 하곤 죽이고. 그러다가 2년 후에 래쓸린 섬 학살이 터진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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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라서 이때 불려온 사람이. 파나마에서 돌아온 드레이크.야 얜  해변에서. 저 래쓸린 섬으로 건너가려는 스콧 아리리쉬.를 못 가게 바다에서 지키는겨. 존 노리스.가 저 섬의 병력들을 직접 상대하는거고. 얘가 600명을 죽이는데 200명이 군인이고 400명은 늙은이들에 아이에 여자였걸랑. 항복 조건 무시하고 얘가 다 죽이는겨. 얘 나이 28세.야.

 

Walter Devereux, 1st Earl of EssexKG (16 September 1541 – 22 September 1576), was an English nobleman and general. From 1573 until his death he fought in Ireland in connection with the Plantation of Ulster, where he ordered the Rathlin Island massacre. He was the father of Elizabeth I's favourite of her later years, Robert Devereux, 2nd Earl of Essex.   

 

저때 지휘자.가 에식스 백작 월터 데버루. 이거 역시 얘가 명령한겨. 얘가 솔리 보이 맥도날드. 가문 사람들을 다 죽이라 했걸랑. 이들이 저기 섬의 동굴로 다 숨은거야. 존 노리스.는 얘 명에 따른거고. 드레이크.는 단지 해변 감시를 한겨. 이 둘 한테 이게 아주 흑역사가 돼 영국사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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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577 Norreys led a force of English volunteers to the Low Countries, where he fought for the States General, then in revolt against the rule of the Spanish King Philip II at the beginning of the Eighty Years' War.  

 

아일랜드의 속주화.가 흐지부진해지고. 노리스.가 1577년.에 네덜란드로 가는겨. 용병들 데리고. 나이 30에. 네덜란드 80년 전쟁이. 1568년.이야. 저때 네덜란드 짱이. 슈타트홀더.란 이름이 영어론 스테이트스 제너럴.이야. 제너럴.은 모두의 짱.이야. 조용 윌리엄.인겨. 이사람이 1584년.에 암살을 당하고. 친구 더들리.가 1585년.에 자기 돈으로 빚내서 여길 올때. 네덜란드.에서 있던 용병집단.의 짱이 이 존 노리스.여. 

 

더들리.는 거버너 제너럴.로 오는겨. 실질적 짱이야. 네덜란드.의 제 2대. 짱.은 이 잉글랜드의 더들리.여야해. 헌데 네덜란드애들은 이걸 빼. 싫다 이거지. 저때 조용 윌리엄 아들이 어리걸랑. 네덜란드 애들 입장에선 더들리.는 슈타트홀더.가 아니라 걍 용병대장에 대행 일 뿐이란 거야. 

 

존 노리스.의 상관이 잉글랜드 사람.이 된거야. 즉 더들리의 잉글랜드군의 실세.는 이 존 노리스.야. 

 

더들리.가 쌩전 남의 땅.의 사람들을 지휘하는데. 이게 말이 안먹히는겨. 대체 왜 저 인간이 자기들 수장이냔 거지. 더하여 

 

The Dutch Republic, or the United Provinces, was a confederal republic that existed from the formal creation of a confederacy in 1581 by several Dutch provinces—seceded from Spanish rule—until the Batavian Revolution of 1795. It was a predecessor state of the Netherlands and the first Dutch nation state.  

 

The republic was also known as the Republic of the Seven United Netherlands,   

 

침묵 조용 윌리엄.이 독립선언을 1581년.에 해. 죽기 3년전에. 이름을 리퍼블릭이냐 걍 유나이티드.냐 딱히 없어. 저때 가담한 주.들이 7개야. 이전 스페인 네덜란드.의 주들은 17개야. 10개가 저기 안들어가기로 한겨. 이걸로 무지 위축이 된 상태야 조용 윌리엄은. 이 상태에서 암살당하고. 더들리.가 온거걸랑.

 

저게 연합이 잘 안되는겨. 얘들은 이 전에 뭉친 적이 단 한번도 없어. 걍 서로들 각 땅들에서 부르고뉴.에 합스부르크.에 반란들 하고 뒤에서 프랑스가 지원하던 게 전부걸랑.

 

저들은 같이 멀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야. 저 당시 네덜란드 80년 독립전쟁 시작은.

 

걍 분위기에 휩쓸리면서리 루터니 칼뱅이니 뮌스터 반란에 막 교회 처부스고 성상 파괴하고 인민놀이 민주놀이 평등놀이에 금은 덩어리 도둑질하고 이런게 걍 신난겨 사람들이. 저게 머 별게 아녀 저게. 그러다가 두 백작. 에흐몬트 호른 백작이 걍 죽은 거걸랑. 남은 한 사람 조용 윌리엄.만 피한상태에서 이 사람 중심으로 모이자 하지만. 이게 대체 당시 먼 난리인겨 한거걸랑.

 

시작하자 마자. 걍 스페인 군대에 걍 아작이 나는겨 네덜란드 애들은. 이 와중에 10개는 떨어져 나가고. 남은 7개. 즉 가장 북쪽애들이야. 바다와 강물들로 방어막이 쳐져서 가장 진압하기 힘든 곳이 이곳이야. 이들만 버팅기고 있다가 1831년에 독립 선언을 한거야. 

 

더들리.가 1585년.에 와서 제너럴. 총사령관 을 맡아. 네덜란드 애들은 아니다 대행이다 하는거고 역사에서 나중. 

 

저 해.에 더들리 오기 전에. 안트베르펜.이  스페인에 떨어지는겨. 아주 결정적인 사건이야 이건. 이후 안뺏겨 여긴 스페인이.

 

 

 

더들리 입장에선. 이 네덜란드 병력들. 자잘자잘한 다양한 이 인간들이 통솔이 될 수가 없어. 더하여 얘들 입장에서 저 더들리.는 뜬굼포 외국인이야. 네덜란드 자기들도 이방인 아웃사이더 지만. 저놈의 잉글랜드 저거 저건 머여 완전히 깡촌노믜 애가 자기들 짱인겨.

 

잉글랜드.는 말야. 진짜 거지라니까 저당시에? 네덜란드 애들 조차 저 잉글랜드는 촌노믜 인간이야. 걍 자기들한테 양모 털 깎아서리 팔아줘 하던 애들이걸랑 쟤들은. 

 

존 노리스.가 더들리.의 완전 오른팔이 된겨. 얘가 먼저 8년 경험이 있어 중간에 아일랜드 갔다가 다시 오지만. 

 

더들리.가 말 안듣는 네덜란드 애들을 사형을 시켜. 여기서 더 어긋나 네덜란드 애들관.

 

 

네덜란드 80년 전쟁 어쩌고 하지만 말야. 걍 저건 초기 20년은 의미가 없어. 스페인의 완승이야. 단지 지리적 이유 때문에 더 이상 못가는겨 스페인애들이. 저 일곱개 주.의 네덜란드.는 곧 없어질 애들이었어. 네덜란드 라는 나라는 지금 있을 수가 없어 원래. 

 

더들리.도 저기서 멀 할 수가 없어. 자기도 빚 내서 온거야. 기병 천명에 보병 육천 데리고. 이걸 갖고 멀하냐. 스페인의 테르시오.애들은 전쟁만 해 오던 애들이야. 

 

저걸 말야. 역시나. 

 

역전이 된게. 

 

스페인 아르마다. 1588년.의 대 패배.야. 저게.  이때부터 잉글랜드.가 적극적으로 네덜란드에 개입을 하는겨. 더들리.가 간 것은 잉글랜드 코트.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엘리자베스.가 너 더들리 빨리 복귀하라우. 재촉을 해. 저 사정을 너무나 잘 아는겨. 자기들이 스페인을 이길 수 없어. 저 네덜란드 애들이 조각조각의 애들이 전혀 힘없는 아이들이란 걸 너무나 잘 아는겨. 

 

헌데 말야. 저 와중에 터진게 1588년 스페인 아르마다.야. 저 직전 해 1587년에 스콧 마리.가 죽어. 펠리페 2세.는 기사도이자 그리스도.에 미친 인간이야. 감히 카톨릭의 퀸.을 죽인겨. 저놈의 앵글리카니즘 이란 프로테스탄트가. 더하여 막막 드레이크.가 이전에 또 중남미 요새들 돌면서 약탈하고 불지른게 생각이 나. 드레이크는 아일랜드 다녀오고 자기 의 꿈 태평양 가고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온겨. 이 드레이크 엄청난 인간이야 진짜. 

 

 

저걸 잉글랜드.가 존 호킨스.의 20년 준비.의 힘.에 프란시스 드레이크.라는, 존 호킨스.가 만든 해군을 맘껏 활용할 수 있던 이 드레이크.라는 인간이 스페인 아르마다.를 걍 조진겨.

 

이때부터 네덜란드에서의 스페인의 기세가 확 꺾여. 이때부터 잉글랜드.는 본격적으로 개입을 하는겨 네덜란드에. 이때 잉글랜드 병력들을 직접 파견하는거야 엘리자베쓰가. 네덜란드 병력의 반이 잉글랜드인들이야. 

 

 

저 네덜란드. 라는 나라는 말야. 그래서. 잉글랜드.가 만들어 준 나라야. 엘리자베쓰.가 만들어준 나라가 네덜란드야.

 

더하여. 프란시스 드레이크.와 존 호킨스.가 만들어준 나라가 네덜란드야.

 

저 세사람.이 영국과 네덜란드.와 미국을 만든겨 저때. 

 

위대한 인간들이야 저 세명이. 

 

스페인 아르마다. 1588. 이 끝나고. 잉글리쉬 아르마다.를 하는겨. 드레이크.가 스페인에 대한 적개심은 엄청나.

 

이때 같이 가는 짝꿍이 저 존 노리스.여.

 

존 노리스.도 말야. 영국사에서 당당한 이름 하나 넣어줘야 해. 네덜란드도 마찬가지고. 

 

헌데 존 노리스.는 엑시스 백작 따라서 아일랜드 갔었던 저 경력이 계속 발목을 잡아. 이 사람은 아일랜드 로 발령을 받는겨. 아일랜드 에서 한탄하면서, 죽어 이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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