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was the oldest of the twelve sons[12] of Edmund Drake (1518–1585), a Protestant farmer, and his wife Mary Mylwaye. The first son was alleged to have been named after his godfather Francis Russell, 2nd Earl of Bedford.[13][14]
Because of religious persecution during the Prayer Book Rebellion in 1549, the Drake family fled from Devon to Kent.
드레이크. 는 12명의 형제들 중 장남이야. 아빠가 농부였어. 바다의 호킨스.네랑은 달라. 아빠는 정식 수료한 디콘.이야. 교회에서 사제 아래의 간부야. 나이 9세정도에 켄트.로 간겨. 자식들도 많고 봉급생활자 걸랑. 애를 어릴때부터 취직시키는거야. 갓파더.가 베드포드 백작. 이야. 갓파더.란건. 대부 번역하지만. 일종의 스폰.도 해주고 인생 멘토도 해주고. 법적 역할도 들어가. 이게 거저가 아녀. 아빠가 농부지만 나름 인망이 있어. 갓파더 따라서 이름도 지은거고.
A standing "Navy Royal",[40] with its own secretariat, dockyards and a permanent core of purpose-built warships, emerged during the reign of Henry VIII.[41] Under Elizabeth I England became involved in a war with Spain, which saw privately owned vessels combining with the Queen's ships in highly profitable raids against Spanish commerce and colonies.[42]
영국에서. 해군.의 명칭이 Royal Navy 로얄 네이비. 왕립해군. 이걸 1546년.으로 얘들은 봐. 헨리8세 죽기 2년전이야. 헌데 아마 헨리7세.가 상업에 관심갖고 큰배 제작위한 야드도 만든걸로 보고. 킹덤 차원.의 해군 정규군을 만든게 헨리8세 말년 이란거지. 헌데. 킹덤차원에서는 아무것도 없어.
저들은 섬의 나라야. 작센에 앙글족에 주트족에 다음 바이킹들이 온거걸랑. 기본적으로 인간들이 바다.와 친하고 배를 알어. 이 유전자가. 지중해완 또 냄새가 달라 이게. 아 헌데 지중해의 배.는 차원이 달라. 이전 썰.
이 북쪽의 배들은. 지중해의 무역을 위한 상선에서 시작해서 전함용에 돛과 노를 활용하는거에 데크들을 높이다가 다시 낮추고 기민해지다가. 이걸 탐험의 시대에 포르투갈이 캐럭선.에 스페인은 갤리온.으로 진화를 시키걸랑. 이건 대형선박이야.
저 북쪽은. 바이킹들의 배걸랑. 이건 특히나 배 자체가 나무 자체를 통째로 갈아서 휘어 만들고 배 흘수 면들을 시안하게 속도 높이기 위한 무니들로 제작을 해놓걸랑. 배 자체가. 충각.용이야. 더하여 약탈에 최적합하고. 빠르고 기민해. 중세에는 지중해의 제노바 상인들이 지브롤터 를 돌아서 저리로 가걸랑. 저쪽이 이쪽으로도 오고. 그러면서 선박기술이 진화를 하지만. 저 북쪽 선박은 지중해.보다 야만스럽지만 그래도 먼가 쎄보여.
사람들이 또한 바다를 너무나 잘 알고. 헌데 말야. 이건 각 영주들. 의 해군이지. 킹덤 차원은 배를 운영하는게 잘 안보여. 정복왕 윌리엄 시대 이후로 선박 기록이 눈에 안띄어. 희한한겨. 아마 킹덤차원에서 해군력을 죽이려 한건가. 영주들의 힘은 곧 해전이었걸랑. 배런들의 힘도 해변의 배런들이야. 거슬러 올라가는 강가의 배런들이고. 런던.은 바다 에 접한 곳이야. 그러다가 다시 이삼백년 후에 기록들이 보이지만. 이들은 특히나 대륙. 특히 플랑드르에 울. 양털 팔아서리 먹고 살던 이들이었걸랑. 이게 백년전쟁 또 한 이유고. 아예 직조.까지 갖아 오려는.
헌데 로얄 네이비. 자체의 정규군이란건 없어. 헨리7세.가 오히려 민간이 못하는 대형 선박 제조를 위한 야드.를 만들기도 했다고도 해.
해전이야긴 이전꺼로 퉁치고.
전함.이란게 이게 따로 없는겨. 그냥 배야 배. 상인들이 무역하기 위한 배.들이 있는거야 해변 영지들에. 이걸 전쟁에 쓰면 전함이 되는거고.
화약이 유럽에서 대포.로 급속히 진화되면서. 이게 배에 실려. 헌데 말야. 포.라는건 이게 수학이야. 나폴레옹때에나 포 다운 포인거야. 그것도 땅에서만. 위치와 각도야. 해전에서의 포.라는건 위치가 한정이 된겨. 오직 각도야. 이 각도 조절하는 영점사격이 무지 애매한겨. 바다에서 포.로 상대를 맞춘다는건. 이건 로또야.
배위의 포.라는건. 바다에서 육지를 향해 쏠때 의미가 있걸랑 이게. 바다위에서 상대 배를 맞춘다는건 확률이 극히 낮아.
이걸 파악한게 호킨스.와 드레이크.야. 스페인은 이런개념이 없었던겨.
스페인 무적함대.는 주작용어야. 스페인 아르마다.가 무적함대란 뜻이 아냐.
広く知られる「無敵艦隊」の名称はスペイン語Armada Invencibleの訳で、スペイン海軍のC・F・ダロ大佐が1884年に著した論文の題名が原典とされている[nb 2]。イングランド側視点での歴史書では、“the Invincible Armada”の名称が揶揄的な表現として稀に用いられている[8]。本国スペインにおいては、「最高の祝福を受けた大いなる艦隊」「至福の艦隊」(Grande y Felicísima Armada)と呼ばれていた。中立な視点からは、英語の文脈ではSpanish Armada、the Armadaなどと呼ぶ[nb 3]。
스페인 해군사 쓰는 스페인애가. 아르마다 인벤시블레.라고 한걸. 무적함대.라 일본애들이 번역한거걸랑. 스페인 국뽕.의 이야길 전부인줄 알고 일본애들이 스페인 아르마다.하면 무적함대.인줄 알았걸랑. 완전한 오역이야.
스페인.은 걍 갑자기 등장한겨. 이전썰. 포르투갈.옆에서 아무런 역사도 없는 것들이 카르타스 남발하면서 재수좋게 얻어걸린거걸랑 콜럼버스가. 얘들은 인프라.가 전혀 없었어. 모든건 이탈리아 애들이 한겨. 옆에 마요르카.나 발렌시아 애들이 쫌 거들고. 아라곤 도 카스티야. 도 바다는 전혀 몰라. 배란걸 몰라 얘들은.
레판토 해전. 이 1571년.이야. 이것도 중심은 베네치아야. 베네치아 에게 전권을 맡겼으면 피해를 덜 봤어. 이겼지만 이들 피해도 컸어 당시. 스페인은 물자 만 댄거야. 신대륙에서 얻은 금과 은으로. 그러다가 포르투갈.까지 더해진겨 재수좋게.
얘들은 바다를 몰라. 웃기게도. 스페인 아르마다. 1588.은 바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 사령관이야. 이 사람도. 벙쪘어. 왜 나를 제독에 임명하냐고. 헌데 이글은 펠리페가 못읽어. 그래도 간겨. 빵빵하걸랑 배들과 대포들과 테르시오.라는 병력들이.
호킨스.와 드레이크.는 해전.이란게 뭔가.를 안거야. 대포란게 쓸모가 없다는걸 알아. 대서양에서 돌아다니면서 이걸 제대로 직시를 했걸랑. 쏜살같이 상대 배에 접근해서. 보어딩 boarding 올라타서 백병전 하는게 해전인거야.
대포.는 일정거리 피해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겨 저놈의 배 위의 대포란건.
잉글랜드.는 스페인의 캐럭이니 갤리온이니 따위 거창한 배가 없어. 물자도 상대적으로 거지여. 대포싣고 해전해본거도 의미없어. 다른 배들을 만든거야. 바이킹들의 배들이야 이게. 스페인은 바이킹을 몰라.
바다.는 또한. 지중해 바다가 아냐. 저긴 자기들의 바다야. 지중해 애들이 여까지 와서 싸우는건 또한 자살행위여 그게.
남의 바다에 가서 싸우는거 아냐.
대표적인게 러일전쟁의 러시아 함대야 그게. 코메디도 그따위 코메디가 없는겨.
일본이 임란때 해전에선 당연히 져야 해. 어드래 남의 바다에서 이길수 가 있니. 헌데 말야. 저 자잘한 배들을 보고 자기들의 대형선박을 다 버리고 도망쳐. 그게 조선 들인겨. 배 규모가 차원이 다르걸랑. 걍 그 배 타고 쟤들 누비면서 부딪히기만 해도 다 도망갈 애들이야. 헌데. 토껴. 이게 조선 .들 핏줄이야. 강한 애들 보면 도망가고. 약한 애들에겐 적폐놀이하면서 찢어죽이고.
선조.혼자에게 돌려. 야, 도성 비우고 토끼자. 하는건 당시 코트 애들의 다수 의견이야. 선조.는 다수 의견에 따랐을 뿐이야. 토낍시다 얼렁~. 평양성 에서는 가지말라는 민들을 죽여. 그리곤 또 토껴.
세상 인류사.에 저런 똥떵어리 .들은. 정말 고릴라.도 저러진 않어.
저건 인간 .가 아냐 저건. 저 조선 이란 두글자의 .들은
위대한 조선~~. ㅋㅋㅋ. 참 정신병자 .들도 아니고.
Drake's father apprenticed him to his neighbour, the master of a barque used for coastal trade transporting merchandise to France.[15] The ship's master was so satisfied with the young Drake's conduct that, being unmarried and childless at his death, he bequeathed the barque to Drake.[when?] [15]
드레이크 아빠도 나름 명망이 있어. 교회에서. 해군 병력 대상으로 사역하는데 임명을 받아. 드레이크.는 일자리 보내는겨 어린애를. 바르크.의 마스터.에서 일배우는건데. 얘들 배는 바르크.야 barque bark. 이건 돛.의 방향이 배 정면에서 보면 일자.야. 바람들 활용하는 돛.의 수.와 방향.과 모양들이 또한 달라. 넘어가고. 요트.라는게 저런 바르크.의 일종이야. 삼각 돛이. 이게 저런겨. 바람을 감싸서 그 힘으로 전진하는거걸랑. 아 하튼 넘어가 말길어지니.
마스터.가 아마 선주.같은데. 하튼 여기서 배일을 배우는거야. 상선이야. 마스터가 맘에 들어서 죽을때 후손이 없어서 드레이크.한테 배를 물려줬대.
At the age of eighteen he was purser of a ship which sailed to the Bay of Biscay. At twenty he made a voyage to the coast of Guinea.[19] In 1563, Drake, aged 23, made his first voyage to the Americas, sailing with his second cousin, Sir John Hawkins, on one of a fleet of ships owned by his relatives,
18세.에 배의 퍼서.였어. 상선에서 재무.회계관리 하는 자리야. 비스케이만에 갈때. 스페인 북쪽이야. 20세에 기니 해안도 가. 서아프리카 금덩어리 나오는데야. 23세에. 존 호킨스랑 아메리카.를 같이 가는겨. 1963년. 호킨스 31세
드레이크.는 퍼서.가 되기까지 이전에도 사오년 이상 일을 한겨. 배 생활을 십년 이상한거야. 콜럼버스.랑 비슷해 이게.
드레이크.는 바닥부터 시작해서 저리 간겨. 그런데 호킨스.는 원래 아빠가 선주.에 선장.이었어. 살만해. 나이도 열살정도 많아. 호킨스.는 카르텔을 만들어서 선단.을 구성해서 사업을 하는겨. 드레이크. 를 데려간거야. 너 나랑 직접 일하자.
드레이크.는 존 호킨스 형님이 키운겨.
드레이크.는 아마 배운게 없어. 얜 일만 한거야. 기본 쓰기 읽기 산수.만 배운겨.
호킨스.는 있는 집안에서 나름 인문학을 쌓은 인간으로 보여. 그렇게 열심히 배운거 같진 않아. 어릴때 결투 하다가 상대를 죽여. 정당방위가 인정이 되서 풀려나.
Hawkins is thought to have done some services as a young man for the ambassadors from Spain, who negotiated the marriage of Mary I of England and Philip II of Spain. The Spanish claim that Hawkins was personally knighted by the King for this service, which is as yet unconfirmed. Hawkins was known to have referred frequently to King Philip as "my old master"
존 호킨스.는 피의 마리.가 펠리페2세.랑 결혼할때. 1554. 이때 22세야. 얘가 스페인에 가서 결혼 협상 사절단에 낀걸로 봐. 일단 플리머스.인간들이 스페인 항로를 제일 잘 알고. 저 집안은 코트에서 알았고. 얘가 아마 항로.에 대한 인숙함에 낀걸로 보이는데. 펠리페.가 기사작위도 준거로 보여. 스페인에선 이 젊은 호킨스.를 좋아한거야. 이미.
In 1555 John Lok brought five men from present-day Ghana back to England from a trading voyage to Guinea.[2][3] William Towerson was a second London trader who brought Africans to England at that time, landing at Plymouth following his 1557 and 1569 voyages to Africa.
존 록.이 1555년.에 가나땅에서 다섯 사람들 데려오다. 즉 얘들은 포르투갈.이 서아프리카. 가고 백년 후에야. 저길 간겨 바다로. 기니만을. 윌리엄 타워슨.이 두번째야. 아프리카 다녀온. 플리머스에 도착한겨. 호킨스.가 당연히 알게되고.
존 록.이란 인간이. 영국 경험주의 존 로크.의 선조야.
존 호킨스.가 자기도 해보는겨.
However, Hawkins is considered to be the pioneer of the British slave trade, as in 1562 he was the first to run the Triangular trade to the Spanish colonies in the Americas, and making a profit at every stop.
호킨스.가 영국 노예무역.의 개척자. 타이틀을 줘. 삼각무역을 처음 해. 삼각이란게. 자기 물건 주고 받고 땡.이 아니라. 저짝 물건 갖고 저짝 에 가서 팔거나. 자기 물건 저짝 가서 팔고 그 돈으로 딴 물건 사서 다른 저짝 가서 파는겨.
이사람은 아프리카의 노예를 아메리카 스페인 식민지에 파는거야.
스페인의 아메리카.는 엔코미엔다 제도.도 폐지하고 바이스로열티. 왕정 대행체제.로 가면서 원주민을 노예로 못써. 아프리카 노예는 법적으로 허용이 돼. 이때부터 나이저 강. 니게르 강 아래의 흑인들이 노예 타겟들이 되는거야. 호킨스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를 오가면서 물건 주고 팔거나 노예 장사하거나 해서 걍 배 타고 돌아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돈을 벌어. 서기 1562년. 이 해에 드레이크.를 부르는겨 소식듣고. 너 나랑 같이 다니자. 예 형님 하면서 간겨.
서기 1562년 부터. 1569년 까지 7년을 세번 걸쳐서 다녀와. 세번 다 드레이크.가 동행을 해. 드레이크.는 22세-29세. 호킨스.는 30세-37세. 이십대와 삼십대를 각각 보내는겨 저기서. 드레이크.가 1563년도에 합류를 하니까. 첫번째 항해의 말미에 만난거야 이게. 즉 두번째 부터 본격적이라 해야지.
포르투갈 배를 잡아서 그 곳 노예들을 중남미 스페인에 파는거야. 일종의 상단을 꾸린겨 서너개 배.가 처음 시작에. 자기 배 더하기 남들 돈 투자 받고. 이게 규모가 커지는거야.
저때 딱히 marque 마크 라는 공인 차터.를 받은 걸로 보는거지. 엘리자베스.가 즉위하고. 펠리페2세.는 부인 피의 마리. 죽고 다시 청혼하다 거절당하고. 사이가 벌어질 때걸랑. 바로 프랑스 종교전쟁 터진해가 1562년.이야. 초기에 칼레. 대신 르아브르.를 들어가걸랑 잉글랜드가. 프랑스.는 스페인과 같은 카톨릭이야. 잉글랜드는 저 서유럽에서 혼자 앵글리카니즘이야. 초기에 르아브르.갔다가 쫓겨났어 위그노 배신으로. 잉글랜드는 저당시 살얼음 판 걷는겨.
그리고, 곧 네덜란드 전쟁 시작이야 1568년. 요때 말야. 하필 스콧.의 마리.가 도망쳐서 잉글랜드.에 오는겨. 잉글랜드 입장에선 스콧 마리.가 아주 불편한 손님이야. 조카뻘이지만. 카톨릭의 핵이 되걸랑. 잉글랜드 카톨릭 세력의 배후도 스페인이 해주는겨. 더하여 왼쪽에 아일랜드.는 정통 카톨릭이야. 여기도 스페인이 껴. 결국 데스몬드 반란이 일이차로 곧 터지는거고.
잉글랜드.는 저러면서도. 돈이 없어. 거지야 얘들은.
킹덤 이라는 정체성.이 뒤에 국가 가 되지만. 저당시는 아직 잉글랜드인. 이란게 약해 이게. 스페인 프랑스 도 마찬가지야. 지금 시선에서 저당시를 보면 안돼.
당시는 아직 영주.의 영지 시대야. 각 영지의 헤럴드리.가 자기들 나티오.야. 오직 킹덤. 코트만 자기 헤럴드리 만들어서 댕기는겨. 해서 제임스 1세 혼자 유니온 잭 달고 다닌겨 이게. 이 킹덤 이란 정체성이 애매한겨 중세엔. 킹덤은 영주들이 가서 하미지 할때나 아 내가 저짝 킹덤 사람이구나 하는겨. 이게 의미가 없어.
해서 백년전쟁 때도. 잉글랜드 땅 용병들이 프랑스 킹덤에 용병을 가담하는거야. 이게 아주 자연스러운겨. 용병들이 자기 킹덤을 가리는게 아냐. 돈만 벌면 돼. 아주 재밌어 이런게.
프랑스 종교전쟁 때도. 잉글랜드 인들이 또한 소수로 가서 용병을 해. 이것도 애매한겨. 앵글리카니즘.이란 루터파 칼뱅파. 가 서로 웬수야. 자기들이 프로테스탄트 란 같은 정체성이란건 후대에나 하는 해석이야.
더들리.가 1585년. 조용 윌리엄 죽고 복수 하려고 개인돈 모아서 따로 가는겨 저게. 엘리바베스.가 허락을 안해. 가 있던 더들리에게도 편지를 써. 너 빨랑 돌아오라고.
더들리 이전에도 저기 또다른 용병집단이 있어. 얘들도 킹덤이 보낸게 아냐. 자기 이념 더하기. 돈벌러 가는겨.
저런게 유럽 중세 지나서 근대 시작할때도 저런 모습이야.
저 상황에서. 잉글랜드.란 곳은 아주 난처한 위치야. 함부로 저기 휩쓸리다간 아작이 나. 왜냐면. 아무것도 없는 애들이야 이 잉글랜드는. 저짝 먼 덴마크.와 스웨덴.이 프로테스탄트 라지만. 얘들은 너무 멀리 있어. 또한 스웨덴도 갓 구스타브 바싸가 이제야 시작한거고. 연합해서리 멀 할수가 없어. 잉글랜드 혼자야 이 서유럽 쪽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카톨릭 의 합이 이게 어마어마 한 거걸랑. 특히나 저 포르투갈. 엄청난겨 저게. 2백년 이상 준비되서리 신대륙의 부가 다 쌓이는겨 여기가. 이 부를 갖고 스페인이 전쟁을 해왔던거고.
그 와중에. 호킨스.가 저런 장사를 해. 아 당근 차터 줘야지. 제발 부디 돈 좀 벌어와라 좀. 우리 거지다 거지.
얘가 엘리자베쓰 입장에선. 정말 신의 한수야 이 호킨스.가
얘가 발동을 걸러어시. 이게 잉글랜드의 부.의 기초가 된겨 이게. 어차피 늦은거. 도둑질을 하는겨. 언제 따라가. ㅋㅋㅋ.
헌데 말이지. 저 바닥엔. 다른 도둑들과 다른게 있걸랑. 그게 머냐면 말야. 나중으로 넘기고.
Hawkins formed a syndicate of wealthy merchants to invest in trade. In 1562, he set sail with three ships for the Caribbean via Sierra Leone. They hijacked a Portugueseslave ship and traded the 301 slaves in the Caribbean islands. Despite having two ships seized by the Spanish authorities, he sold the slaves in Santo Domingo and gained a profit for his London investors. His voyage caused the Spanish to ban all English ships from trading in their West Indies colonies
처음엔 배 세척으로 시작해. 포르투갈이 서아프리카에서의 노예선을 잡아서 301명의 노예를 왼쪽 산토 도밍고.에 팔아. 두 척은 스페인에 걸리고. 그래도 이익이 남아. 스페인이 이때부터 모든 잉글랜드 배의 무역을 금지해 서인도에서. 헌데 이건 스페인 본토. 차원이고.
스페인의 중남미 식민지 땅에선. 처지가 달라. 노예가 필요해. 원주민은 함부로 못다뤄. 고소당해. 콜럼버스도 깜빵갔어. 헌데 노예는 필요해. 이게 본토 코트.와 달리 가는겨. 해서 뒤엔 오히려 식민지땅의 스페인관료들이 쿠데타.를 하기도 해. 자기들이 본토 코트에서 따로 나가겠다는거지. 물론 진압이 되지만.
In 1564, Queen Elizabeth I invested in Hawkins by leasing the old 700-ton ship Jesus of Lübeck, on which he set forth on a more extensive voyage, along with three small ships. Hawkins sailed with his second cousin, Francis Drake, to the west African coast, privateering along the way.
대게 2년 텀으로 다니는겨. 두번째는 엘리자베쓰가 직접 펀딩을 하는겨. 낡은 킹덤 배.를 아예 리스로 주는거야. 아 재밌어. 1차때 만난 드레이크.가 본격적으로 합류를 해.
Captain Hawkins returned to England in September 1565; his expedition was considered a total success as his financiers made a 60% profit.[citation needed]
두번째도 60퍼.의 이익을 봤다하고. 이때 항상 문제는 스페인 식민지.에서의 관세야. 어디는 관세를 주기로 하다가. 주고. 어디는 왜 세금을 주냐. 하고 뻣대고.
His third voyage began in 1567. Hawkins and Drake obtained many more slaves from traders in Africa, and also augmented the cargo by capturing the Portuguese slave ship Madre de Deus (Mother of God) and its human cargo. He took about 400 slaves across the Atlantic on the third trip to sell in Santo Domingo, Margarita island and Borburata.
문제는 이 세번째 항해야. 1567년.
After completing his business, Captain Hawkins prepared to return to England. Needing water, he sailed to the French colony of Fort Caroline in Florida. Finding them in need, he traded his smallest ship and a quantity of provisions to them for cannon, powder, and shot that they no longer needed as they were preparing to return to France. The provisions gained from Hawkins enabled the French to survive and prepare to move back home as soon as possible. As Laudonnière writes: "I may saye that wee receaved as manye courtesies of the Generall, as it was possible to receive of any man living. Wherein doubtlesse hee hath wonne the reputation of a good and charitable man, deserving to be esteemed as much of us all as if hee had saved all our lives."[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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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항해때인 1564-5. 돌아오는길에. 호킨스가 먹을 물.이 없어서 플로리다.에 닿는겨. 호킨스는 대게 거래처.가 카리브해.에 파나마 지협 오른쪽인 콜럼비아 베네수엘라 해변. 아니면 지금 도미니카 나 오른쪽 푸에르토리코. 이쪽 섬들이걸랑. 다 끝나고 위로 올라가는겨. 그러다가 물이 없어서리. 우연하게 플로리다.의 잭슨빌. 근처에 닿은거야.
플로리다 최초 정착.이 누구라 했냐. René Goulaine de Laudonnière 르네 구론 드 루도니예. 장 리보 따라왔다가. 여기가 포트 캐롤라이나.걸랑. 캐롤라이나.가 샤를이야 당시 샤를 9세. 장 리보.는 루도니예. 애들을 여기 두고 그냥 간거야. 1564년. 이들이 여기서 무기만 갖고 있는겨. 이때부터 최초 정착인겨 북미는. 프랑스 인들이. 이들이 여기 있기가 싫어. 헌데 배가 없는거야 프랑스에 가고 싶어도.
물 먹으로 온 존 호킨스.가 자기가 갖고 있던 배.를 주고. 루도니예 들의 무기들을 대신 산거야. 루도니예.가 나중에 쓰길. 존 호킨스.에 대한 인상이. 아 사람이 너무나 좋았다는거지. 채리터블 맨. 막막 기부천사여. 우리 모두로 부터 극찬을 받을 만 하다. 그는 우리 모두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이 루도니예.가 그래서 다시 프랑스.에 갔다가. 위그노 전쟁 한창중이었걸랑. 1562. 터진지 얼마 안된겨. 해서 다시 온거야 루도니예가 위그노 들을 데리고. 최초의 북미 정착.은 그래서 이리 시작이 된겨.
존 호킨스.가 있는 집 자식에 배운 인간으로 보는겨 저걸. 그리스도.야 헌데 말이지. 드레이크.는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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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San Juan de Ulúa (in modern Vera Cruz), he encountered a strong Spanish force, which had arrived to potentially put down a Mexican independence movement. By edict of 16 June 1567, King Philip II of Spain had ordered an investigative commission to study rumours of a Mexican movement to gain independence from the Spanish Crown. The commission consisted of Licenciado Gaspar de Jarav a, Licenciado Alonso Muñoz, and Doctor Luis Carrillo. De Jarava and Muñoz were from the Council of the Indies, while Carrillo was an official at the Court.
세번째 항해. 1567-69. 에서. 지금 베라 쿠르스. 여기가 멕시코만 해변.이야. 쭉 왼쪽 직선으로 가면 멕시코시티.이고.
호킨스.와 드레이크.가 역시나 지역 관료들에게 뇌물 쓰고 하면서. 친할거 아닌감 세번째니. 갖고 있는걸 다 팔고.
이전에 플로리다.땅 밟은 게 기억나는거야. 저긴 아무도 없걸랑. 아직 말야. 1585년 로어노크 섬. 정착시도 도 안한 시절이야. 우리도 우리땅 갖자. 라는겨. 저긴 잉글랜드가 1497년에 헨리7세 스폰으로 나폴리 사람이 뉴펀들랜드 저 맨위섬이나 밟아봤지. 잉글랜드는 없걸랑 이게. 맨날 굽신굽신 해가미 스페인관료들에 팔고. 남의 배 해적질도 하고. 아 존심 상하걸랑. 저기에 북미 땅이 있지만. 당시 아무도 정착 성공을 못한겨. 스페인은 교황 동의하에 포르투갈과 토르데시야스 조약 맺어서 저기 내땅이다 하지만. 개소리 중에 개소리걸랑. 그딴게 어딨어 먼저 깃발 꼽는 게 장땡이걸랑.
저걸 아마 엘리자베쓰에게 보고도 하고. 저땅 우리가 정착합시다 서로 했을껴. 그래서 다시 간겨 저길. 물건 다 팔고. 헌데 저기 잭슨빌에 가다가 폭풍을 만나서리. 러더. rudder 방향타.가 망가지고. 선단들이 같이 떠돌다가. 지금 베라 쿠르스.에 저들이 닿은거야. 저 위쪽은 처음 가본거걸랑. 저기가 뉴멕시코 바이스로얄티.의 중심이야. 왼쪽이 멕시코 시티.고.
스페인애들한테 바로 협상을 해. 우린 표류된거다. 배 고치고 가겠다. 해서 근처에서 정착을 허가를 받아서 배를 고치고 있는데 말야.
아 마침. 스페인 크라운 본토에서. 새 바이스로이. 일명 뉴멕시코 신임 총독이 오는겨. 지금 바이스로이.가 크라운에서 독립하는 소문을 듣고. 신임 바이스로이.가 온거야. 그것도 저 베라 쿠르스.로. 닿으면서 쟤들 머냐? 하는겨. 잉글랜드애들 불법인거 모르느냐.
지역 관료들은 자기들이 필요한걸 잉글랜드애들이 갖고 오는거걸랑. 이게 본토와 따로 논거야. 현지 실상을 모르는거지.
존 호킨스.와 드레이크.들이 협정 맺아서 편안히 있는데. 아 분위기 거시기 한거지.
스페인애들이 여길 잉글랜드 배들을 덥치는겨.
The English fleet consisted of 5 ships: the Royal carracks Jesus of Lübeck (leased from Queen Elizabeth I) under John Hawkins, the Minion under John Hampton, and the barques Judith under Hawkins' cousin Francis Drake, Angel and Swallow.[8] A captured Portuguese caravel joined the privateers near the coast of Ghana, where the English competed with Portuguese slave traders.
당시 잉글랜드는 배가 다섯.인데. 오래된 캐럭선. 엘리자베스.가 준거. 랑 다른 캐럭. 드레이크.가 갖고다닌 바르크 세척. 그리고 포르투갈 배.도 같이 편들어준건데. 같은 노예장사 배지만 포르투갈은 스페인 싫어해.
당시 가장 잘 나간게 스페인 갤리온.이야. 얘들 이거 두척에 소형선들 십여척 있는겨. 호킨스네는 폭풍 맞아서 맛이간 배들이고.
저기서 둘이. 겨우 수영해서 남은 배 타고. 잉글랜드.로 돌아온거야.
The Battle of San Juan de Ulúa was a battle between English privateers and Spanish forces at San Juan de Ulúa (in modern Veracruz). 저게 산 후안 데 울롸. 전투야. 1568년.
이때부터 존 호킨스.와 프란시스 드레이크.의 스페인에 대한 반감이 터진겨.
완전히 약속을 어기고. 자기들 입장에선 기습을 당한거걸랑. 죽다가 살아난겨 둘이. 물건 다 뺏기고.
Circumnavigation of the Earth (1577–1580). 마젤란.이 세계 일주 1519-22 하고 50여년 지나서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같은 길로 세계 일주.를 해. 이때 드레이크.가 중남미 해변 요새들을 약탈하면서 돌아다녀. 그리고 잉글랜드에 도착해서 어마어마한 선적물.로 엘리자베쓰.가 기사 작위를 주는겨.
스페인 아르마다 1588년.이 1568년 저 사건 이후 20년 이야.
스페인.이 저때 저리 안했으면. 호킨스와 드레이크.는 일개 해적질 하다가 끝난겨. 헌데 저 분노가. 저들을 말야. 더 적극적인 투사들로 만들어. 저기서 나오는 부.가 잉글랜드의 재산이 되고. 이걸 바탕으로 이 돈으로 제임스타운을 시작하는겨 이게. 잉글랜드는 거지의 나라야 당시. 쟤들이 잉글랜드를 먹여 살린겨.
호킨스.는 공직으로 빠져. 전쟁 분위기 인걸 알고. 스페인이 쳐들어올껄 알고. 해군에서 전함 디자인을 이 인간이 해. 이 인간은 배운 인간이야. 여기에 자기의 세번의 항해.를 통한 배의 문제들을 알게돼. 해전이 먼가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설계를 하고. 이것 대로 배를 제조하는겨.
그리고선. 1588 스페인 아르마다.를 아주 걍 조지는겨 이 거지 나라의 저 두 해적 출신이.
스페인 애들이 19세기에 자기 이야기 하면서. 인벤시블레. 무적 스페인 했걸랑. 해군사 쓰면서. 저걸 영국애들이 큭큭큭 비웃는겨. ㅋㅋㅋ 그래 니덜 무적함대야 . 저기서 무적함대.라는건 스페인애들은 국뽕으로 쓰는거고. 저걸 받아 말해주는 영국애들은 비웃으면서 무적함대 하는거고. 우리네는 일본애들이 저걸 소개해준걸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무적함대 하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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