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erdingen Line (named after Uerdingen by Georg Wenker[1]) is the isogloss within West Germanic languages that separates dialects which preserve the -k sound in the first person singular pronoun word "ik" (north of the line) from dialects in which the word final -k has changed to word final -ch in the word "ich" (IPA [ç]) (south of the line). This sound shift is the one that progressed the farthest north among the consonant shifts that characterize High German and Middle German dialects. The line passes through Belgium, the Netherlands, and Germany.
In German linguistics, the Benrath line (German: Benrather Linie) is the maken–machen isogloss: dialects north of the line have the original /k/ in maken (to make)
위어딩엔 라인. 위어딩엔.이 독일 뒤셀도르프 쪽에 있는 마을 이름인데. 여기부터 그은 선이야. 아이소글로쓰. 라는건 말이 같다.는 거야. 같은 말 쓰는 집단. 독일이 크게는 고중저 지대 언어지만 전역이 다들 다르걸랑. 이걸 루터.가 중지대 작센안할트 만스펠트.에 살면서 성서 번역으로 표준화 한거지만. 이 선이 크.와 크. 를 갈라. 나. 라는 이히.를 저 선 북쪽 해변지역은 이크(에크) 하고 이 아래들은 이히. 에히. 라고 발음을 해. 그래서 네덜란드어를 보면. 이 크. 발음이 많아. g--. 그.도 크 발음을 종종하고.
이히 리베 디히.를 해변쪽에선 에크 레베 데크.라 하는거지.
위어딩엔 라인.이나 베르나르터 라인.이나 이게 같은거야.
In German linguistics, the Speyer line, or Main line (Main river) is an isogloss separating the dialects to the north, which have a geminated (lengthened) stop in words like Appel "apple", from the dialects to the south, which have an affricate: Apfel.
위어딩엔 라인. 아래. 즉 더 고지대에. 슈파어어 라인. 마인라인. 마인강 선이야. 여길 기준으론 아펠. Appel. 발음으로 구분을 해. 여기 위엔 P. 피 발음이고. 아래 고지대는 에프 발음을 낸다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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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glo-Spanish War (1585–1604) was an intermittent conflict between the kingdoms of Spain and England that was never formally declared.[2] The war was punctuated by widely separated battles, and began with England's military expedition in 1585 to what was then the Spanish Netherlands under the command of the Earl of Leicester in support of the resistance of the States General to Spanish Habsburg rule.
앵글로 스페니쉬 전쟁. 1585-1604.
잉글랜드사람들을 앵글리칸 anglican 하는건. 그래서. 포르투갈.발음인거야. 이전 앵글로 색슨.의 칠왕국체제의 앵글족 앙글스.의 기억을 포르투갈이 앙글리칸.으로 노르만이 점령한 잉글리쉬인간들로 부른거야. 잉글랜드.는 대륙에서 포르투갈이 퍼뜨린겨 또한. 이 둘이.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이면서도 정치적으론 오랜 동맹관계야. 해서 앵글리카니즘.은 포르투갈의 앙글리칸.에서 앵글리 가 된거라보 보면돼.
잉글랜드가 유럽 대륙에 등장하는건. 헨리8세 때에서야 이탈리아전쟁에 껴들면서 오 쟤들도 있었네 하는거야 대륙에선. 잉글랜드 역시 유럽중세에선 듣보잡이야. 이베리아반도와 마찬가지로. 얘들은 프랑스여. 플랜태저넷의 프랑스야. 노르만이 가서 만든 땅이야 이전 앵글로색슨땅을. 저길 대륙에선 따로 잉글랜드.라고 인식을 안한겨 중세엔. 백년전쟁 이란것도 밖에서 보면 프랑스애들 내전인겨 저건. 그러다가 백년전쟁 초반에 자기들 언어를 잉글리쉬.로 공식화 하고. 정체성을 따로 간거야. 잉글랜드 코트에선 이전엔 노르만언어를 쓴거야. 라틴어와 함께. 코트는 영어를 몰라. 킹도 영어를 못했어.
백년전쟁 초반인 14세기 후반에서야. 잉글랜드라는 정체성이 생긴겨 저건. 이후에서야. 유럽 대륙에서도 아 저기 잉글랜드.라는 애들이 생긴거구나. 한거고. 그리곤 헨리8세.가 잉글랜드 이름으로 이탈리아전장에 뛰어든거야 우리도 있다 하면서.
잉글랜드는 대륙에서 보면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어 저게. 잉글랜드 역시나. 아무것도 없어 여긴. 탐험의 시대 16세기에도 저긴 아무것도 안한겨 포르투갈에 비해서도. 이 존재감이 엘리자베쓰.부터 생긴거야. 이 여자는 아무것도 없는 잉글랜드.를 지금의 영국으로 만든여자야.
이 잉글랜드.는 여자들이 만든겨 이게.
영국.이란 번역어를 쓰는게 디게 애매하걸랑. 지금 영국은 1923년이냐 이때 아일랜드가 나가고 북아일랜드 포함 그레이트 브리튼 을 영국. 이라 하지만. 서기 1700년 지나면서 아일랜드 전체.까지 포함해서 또한 공식 영국. 해도 돼. 제임스1세.가 1603년 즉위하면서 혼자 그레이트브리튼 했지만 이건 퍼스널 유니온.이걸랑. 그래도 이때부터 영국 해도 돼. 공식은 아니지만. 이전엔 스콧.은 별개라 영국하면 안되겄지. 헨리2세부터 반 좀 먹은 아일랜드와 함께 영국 하기도 머하고. 엘리자베쓰가 완전히 점령한 아일랜드.와 해서 또 영국 하기도 머하고. 영국은 1603년 부터 칭해도 무방해. 이전은 걍 잉글랜드여. 엘리자베쓰 때도 잉글랜드라 해야해.
잉글랜드.는 이탈리아전쟁 때 헨리8세가 찔끔 얼굴 내밀고. 나 결혼 무효시켜줘 하미 로마약탈 당한 교황 찾아다니며 징징대는 장면은 코메딘데. 그리곤 앵글리카니즘 맹글고 스콧도 앵글리카니즘 맹글려고 전쟁하고. 대륙에선 관심이 없어. 프랑스만 스콧 찔끔 도와줄까 말까고.
프랑스 종교전쟁때 엘리자베쓰가 잠깐이나마 위그노.를 지원해.
The crown tried to re-unite the two factions in its efforts to re-capture Le Havre, which had been occupied by the English in 1562 as part of the Treaty of Hampton Court between its Huguenot leaders and Elizabeth I of England. That July the French expelled the English.
시작하자마자. 엘리자베쓰.가 노르망디에 르아브르 Le Havre 에 병력을 파견해. 위그노.와 협상을 한거야.
잉글랜드.가 백년전쟁으로 대륙에 있던 땅을 모두 뺏겼어. 진짜로 프랑스와 갈라선겨 이게. 이때부터야 진짜 잉글랜드가 된거야. 유일하게 잉글랜드 땅인게 칼레. Calais 였어. 도버해협 가장 가까운 곳. 이걸 피의 마리. 말년에 뺏긴겨. 1558년. 마리가 자기 심장이 떨어진듯 한탄을 하고 죽어. 이 해에 엘리자베스.가 퀸이 돼. 자기들은 뺏긴 칼레.대신에 르아브르.를 갖겠다는 거걸랑. 헌데 오히려 위그노.가 카톨릭과 손잡고 저 땅을 다시 뺏어 르아브르. 엘리자베쓰가 이때부터 위그노.하면 치를떨어. 못믿을 족속인겨. 해서 프랑스 종교전쟁때 잉글랜드.는 프랑스에 관심이 전혀 없어. 프랑스 종교전쟁은 엘리자베쓰 재임 내에 시작하고 끝나. 또한 바로 네덜란드 80년. 이 초반 35년이 엘리자베쓰 재임시절이야.
엘리자베쓰.는 저 네덜란드.도 관심이 없어. 아니, 관심을 갖을 힘이 없어 자기땅은. 여긴 아무것도 없는 나라여 잉글랜드는. 저 대륙에 비해선. 얘들은 정말 이때 아무것도 없는 거지여. 그렇다니까 진짜?
During the 1570s Leicester built a special relationship with Prince William of Orange, who held him in high esteem. The Earl became generally popular in the Netherlands. Since 1577 he pressed for an English military expedition, led by himself (as the Dutch strongly wished) to succour the rebels.[205] In 1584 the Prince of Orange was murdered, political chaos ensued, and in August 1585 Antwerp fell to the Duke of Parma.[206] An English intervention became inevitable; it was decided that Leicester would go to the Netherlands and "be their chief as heretofore was treated of", as he phrased it in August 1585.[207] He was alluding to the recently signed Treaty of Nonsuch in which his position and authority as "governor-general" of the Netherlands had only been vaguely defined.[208] The Earl prepared himself for "God's cause and her Majesty's" by recruiting the expedition's cavalry from his retainers and friends, and by mortgaging his estate to the sum of £25,000.[209]
레스터 백작 더들리.가 네덜란드.로 가는게 서기 1585년.이야. 잉글랜드가 이때 되서야 개입을 하는겨. 1568 터져서 15년 지나서야 잉글랜드가 끼어들어. 네덜란드 아부지.인 침묵 오렌지 윌리엄.이 암살을 당하걸랑. 권총으로. 펠리페가 현상금을 쎄게 걸어서. 둘이 아주 친했어. 이전에도 그래서 엘리자베쓰보고 우리 저기 가야한다 재촉하고. 엘리자베쓰는 안된다 하는거고. 거지걸랑 자기들은. 프로테스탄트가 어쩌고 앵글리카니즘 저쩌고. 개소리야 그건.
더들리.가 청혼도 하걸랑. 엘리자베쓰랑 애절한 사이여 이게. 더들리가 죽을때. 엘리자베쓰.의 그 소식들은 슬픈 메모.가 지금 전해져.
sending an expeditionary force of 6,350-foot and 1,000 horse under Robert Dudley, 1st Earl of Leicester, to act as governor-general.
보병 6천여명에 기병 천명.이지만. 저건 자기 영지의 바쌀들을 리쿠르팅해서 간거야. 자기 친구들 데리고. 또한 자기 영지 담보로 25,000 파운드를 빌려서 용병 구하고 장비를 산거걸랑. 말로는 네덜란드 윌리엄 다음 짱. 거버너 제너럴. 주께 라고 네덜란드에서 그랬다지만 알길 없고. 엘리자베쓰가 해준건 없어. 더들리 개인돈으로 빚내고 간겨.
잉글랜드.가 유럽에서 스타가 되면서 등장하는건. 1588 스페인 아르마다.라는 이름 붙는 스페인과의 해전에서 대승한 이때야. 이건 말야. 증말 기적이야 기적. 아무것도 없는 잉글랜드가. 스페인을 이긴겨 저게.
이때 더들리도 참전하고 본토에 올라와서 죽지만. 저해에.
영국.이란 나라는 저때 등장하는겨 유럽에.
이 지금의 영국.을 만든 두 인간.이 저때의 존 호킨스.와 프랜시스 드레이크.야. 얘들은 영국 근대사.에서. 최고의 자리에 앉아야 해. 여자 퀸들에 킹들 빼고.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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