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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80–1583 War of the Portuguese Succession
- 1583–1588 Cologne War
- 1585–1604 English-Spanish War – 48,000 killed in action[1]
- 1588–1654 Dutch–Portuguese War
포르투갈 후계자 전쟁.이 1580.이걸랑. 세바스치앙.이 예루살렘 증후군 걸려서리 모로코 가서 죽고. 작은 할배 추기경이 2년 킹하다가 죽고. 스페인 펠리페 2세.가 엄마핏줄로 내꺼다 하면서 전쟁하는거걸랑. 당시 법상으로 후계자 후보가 예닐곱이야. 펠리페2세.가 밀려 순위가. 헌데 가장 적법한 아이.의 아빠가 펠리페2세의 코트 사람이걸랑. 양보한겨. 그 위의 브라간사 가문 여자가 더 순위가 높아. 얘가 밀려도 한참 밀리는걸 저걸 차지를 한건데.
기간은 3년.이지만. 첫해의 하루 전투.로 걍 끝난겨.
포르투갈.은 데니스.가 1317년 킹덤 차원 최초의 해군.을 만들고. 백년만에 1415 주앙1세가 세우타.를 점령하면서 저 결실이 이어서리 인도를 간거걸랑. 더하여 북미도 이들이고 중남미도 포르투갈이야. 2백년 쌓인 열매여 저게. 세상은 포르투갈꺼여야 해. 헌데 얘들이 말야 갑자기 망한겨 이게.
아주 결정적인 시점이. 저 1580년 왕위계승 전쟁.에서 스페인 펠리페2세.가 포르투갈.을 자기 유니온.으로 넣으면서 포르투갈.은 역사에서 힘이 확 꺾인거야. 아주 결정적인 사건이야 포르투갈 입장에선. 스페인도 멀리 봐서는 저 포르투갈.을 가져가서 지금 저 모양이 된거고.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들어가면서. 물론 퍼스널 유니온.이고 포르투갈.의 코트.도 자치를 인정받는거지만. 스페인 영향력으로 들어올 수 밖에 없어. 펠리페2세가 포르투갈.을 외교에서 자기땅인양 다룬거걸랑. 스페인이 당시 80년 네덜란드 전쟁의 중심이야. 지중해엔 오스만이랑 여전히 해전이야. 여기에 포르투갈이 같이 엮이는겨.
포르투갈.은 유럽 본토 이슈.에 관심 갖을 이유가 없어. 자기들은 스페인 반도 끝 대서양 해변에서 신대륙 진출 하는게 데니스 부터. 미션.이고 비전.이었어. 얘들이 이걸 혼동하기 시작하고 잃어버린거야. 반도 끝에서 유럽에 얘들은 끼어 들어선 안돼. 그럴 생각도 없었고. 헌데 이게 펠리페2세.한테 먹히면서. 저 1580년 전쟁.으로. 유럽의 분위기에 휩싸인거야.
얘들은 절대 저 반도 끝에서 말야. 스페인의 저지레.에 끼어선 안되었어. 마찬가지로. 스페인 역시. 스페인 입장에선 카를5세가 신성로마황제 된 것 부터가 애초에 잘못인겨 저게. 반도 끝에서 대륙을 넘본겨 얘들이. 저 네덜란드 라는 부르고뉴 네덜란드.를 갖고 오지 말았어야 해. 얘들이 내치.를 못하고 저기에만 신경쓴거야. 이게 스페인이 근현대사가 비참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야. 더하여 포르투갈.이 1580년.을 기점으로 역시나 자의반 타의반 저기에 휩쓸리면서 후져진겨 지금.
헌데 또한 저것도 포르투갈 지배층. 귀족 들의 책임이 커. 펠리페2세.편을 든게 가장 영향력있는 귀족집단들이었어. 누굴 탓할게 없어. 얘들 역시 반도 끝에서. 불끈 욕심 난겨 이게. 아 펠리페랑 같이 유럽 본토.의 중심이 되자.
이 이베리아반도 애들은 유럽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애들이걸랑. 이방인인겨. 겨우 800년 만에 독립을 한거야 제대로. 이때 자기들 정체성을 안에서 다지고 신대륙에만 신경썼으면 저리 되지 않았어. 헌데 쓰잘덱 없는 우월감이 티어나온거야. 자기 내부 정체성 없는 저런건 허상이야. 저 의사결정이 피그스.라는 구걸받게 되는 포르투갈 스페인.이 된겨 현재에.
저 후유증이 4백년 넘어서까지 온거야. 근현대사.가 더 비참한거고 얘들이.
더하여. 네덜란드.가 황금시대를 만든 이유 역시 저 1580년 후계자 전쟁.이야
- 1568–1648 Eighty Years' War
네덜란드 80년 전쟁.의 가장 극렬했던 12년 째인 1580년이야. 네덜란드.땅 도시들을 잔혹하게 진압하걸랑. 헌데 이게 결말이 안나는거야. 이 와중에 잠시 스톱 하고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병력을 옮긴거걸랑. 너무나 중요한겨 이 포르투갈이. 펠리페2세 입장에선.
포르투갈.이 그야말로 황금사과 인거야. 포르투갈이 바스코 다가마.가고 80년 지난겨. 어마어마한 부.가 쌓여 여기 포르투갈에. 중남미.는 스페인이 차지했지만 거대한 브라질땅은 포르투갈이야. 스페인 킹덤 코트는 갓 들어온 신대륙 금.은. 들이 이전 카를5세와 이어 펠리페2세.가 전쟁 자금으로 다 쓰고도 모잘라서 디폴트를 선언한거걸랑. 초기 투자비용도 만만치 않은거고. 스페인은 콜럼버스 이후 그냥 갑자기 막 시작한거야 아무런 준비없이. 얘들은 아무것도 없어. 카르타스. 차터만 주고 거간비 명목으로 세금 일부만 챙기는거야 이게. 저 자원들이 다 자기들께 아냐. 인간들이 투자 모아서 그 수익에서 세금받는 거일 뿐이걸랑. 의외로 실속이 없는겨 저 초기엔.
헌데 포르투갈은 말야. 1317년부터 1415년 세우타 까지 백년이 준비되고. 이후 헨리 네비게이터.가 사그리스 학파 란 이름이 나올정도로 마스터 플랜.에 상세한 이행계획에 자금 계획 집행 관리 체계를 가진 상태에서 저걸 해 온거걸랑. 음청난 힘이야 이 포르투갈.의 탐험의 시대.의 이야기와 그 성과는.
펠리페2세.가 가장 시급한 저 80년 전쟁 초반.에. 저것보다 더 중요하다며 1580년 포르투갈 후계자 전쟁에 낄 수 밖에 없었던거야.
그러면서. 네덜란드.를 시장.으로 압박을 하는겨. 마켓. 포르투갈.의 신대륙 스파이스와 물건들은 네덜란드의 안트베르펜 중심으로 뿌렸걸랑. 포르투갈이 직잡 가서. 여기서 유럽에 퍼진거걸랑.
이걸 펠리페2세가 막은겨. 네덜란드 땅에 못가져 가게 해. 네덜란드가 시장이 죽은겨. 돈 자체가 목숨줄이야. 펠리페2세가 이걸 노린겨. 헌데 말야. 포르투갈 입장도 거대한 물류망을 잃은겨 얘들이. 네덜란드 만큼 좋은 물류망이 없었걸랑. 얘들이 다른 시장을 만들어야 해 이게. 이게 쉽지 않아. 더하여 궁한 애들이 리스본까지 와라 하는거고. 포르투갈 입장에선 거대한 시장을 잃은거야 역시.
그래서 말야. 네덜란드 애들이 배를 타고 리스본 까지 오는거야. 우리가 가져다 부리겄소. 이것도 금지를 시켜 펠리페가.
그래서 만들어진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야.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고. 이때 같이 만들어진게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고
저때 영국과 네덜란드.는 한쎄트로 움직인겨. 같은 프로테스탄트걸랑. 네덜란드 80년 전쟁의 가장 큰 동맹군도 잉글랜드고. 오렌지 윌리엄.이 1688 명예혁명.이름으로 잉글랜드 킹.도 겸할 수 밖에 없던거고. 해서 영국이 오렌지 애들이 역시나 되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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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1648 Thirty Years' War
The Dutch Republic was recognized by Spain and the major European powers in 1609 at the start of the Twelve Years' Truce. Hostilities broke out again around 1619, as part of the broader Thirty Years' War. An end was reached in 1648 with the Peace of Münster (a treaty part of the Peace of Westphalia), when the Dutch Republic was definitively recognised as an independent country no longer part of the Holy Roman Empire. The Peace of Münster is sometimes considered the beginning of the Dutch Golden Age.
1568년.이 80년 전쟁 시작이야. 40년 후 1609년.때 12년간 휴전하자.고 협약을 해. 이걸 갱신하려했걸랑. 헌데 30년 전쟁터지면서 저기에 다시 휩싸이는겨. 네덜란드 80년전쟁이란 초기 40년. 10년 휴식 후반전 독일30년 전쟁.
네덜란드 황금시기란 17세기 백년을 칭해. 즉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발족 부터야. 전쟁와중인겨 이게. 본격 황금시기.는 전쟁 다 끝나고 50년 을 칭하지만 말야.
In 1592, during the war with Spain, an English fleet had captured a large Portuguese galleon off the Azores, the Madre de Deus, loaded with 900 tons of merchandise from India and China, worth an estimated half a million pounds (nearly half the size of English Treasury at the time).[1] This foretaste of the riches of the East galvanized interest in the region.[2]That same year, Dutch merchants sent Cornelis de Houtman to Lisbon, to gather as much information as he could about the Spice Islands. In 1595, merchant and explorer Jan Huyghen van Linschoten, having traveled widely in the Indian Ocean at the service of the Portuguese, published a travel report in Amsterdam, the "Reys-gheschrift vande navigatien der Portugaloysers in Orienten" ("Report of a journey through the navigations of the Portuguese in the East").[3] The published report included vast directions on how to navigate ships between Portugal and the East Indies and to Japan. Dutch and British interest fed by new information led to a movement of commercial expansion, and the foundation of the English East India Company, in 1600, and Dutch East India Company (VOC), in 1602, allowing the entry of chartered companies in the so-called East Indies.
In 1602, the Ver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Dutch East India Company or VOC) was founded, with the goal of sharing the costs of the exploration of the East Indiesand ultimately re-establishing the spice trade, a vital source of income to the new Republic of the Seven United Provinces.[citation needed]
스페인땅은. 중세에는 유럽에 관여를 안해. 못해. 무슬림 800년때문에. 끽해야 아라곤 킹덤 안의 카탈란 용병이 시칠리아 먹는겨. 더하여 이들이 오스만 몰아내달라 비잔틴이 불러서 바로 저짝으로 가다가 배반당하고 오히려 비잔틴 치고 내려가서 그리스아래를 점령도 하지만. 백년 전쟁 승리하는 샤를7세.의 마누라. 가 앙주의 마리.인데 즉 프랑스 퀸.의 엄마가 아라곤의 조안1세 딸이걸랑. 장모 연줄로 아라곤이 프랑스에 들어오걸랑.
By 1285 the southernmost areas of what is nowadays Aragon had been taken from the Moors.
the Portuguese part in the Reconquista came to an end with the definitive capture of the Algarve in 1249.
아라곤.은 1285년.에 무슬림한테서 땅을 다 찾아. 포르투갈.은 36년 먼저 찾아 1249. 2백년 후에야 카스티야.는 완전히 아래까지 회복하는거고 연합해서. 즉 백년전쟁때 아라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겨. 프랑스 백년전쟁 후반전에 개입해 사위란 이유로 뿌듯하게. 얘들은 이때부터야 유럽에 얼굴을 디미는겨 본격적으로.
백년전쟁 전반전엔 오히려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연합을 위해 이베리아반도 땅의 후계자 전쟁들에 개입을 하는거고.
아라곤의 페르디난도.가 나폴리.의 방계를 내몰면서 이탈리아 전쟁.에 본격 개입을 하지만. 카스티야.는 이제 막 무슬림을 다 몰아낸거걸랑. 카스티야. 레온.이라는 진짜 스페인.은 이때부터 등장하는겨. 이사벨라 말에 저짝 알바니아 해변 그리스땅의 오스만 해군들 몰아내자며 등장하기 시작하는거야.
이걸. 펠리페1세.가 카스티야.의 후안나.랑 결혼하면서. 펠리페.가 받은 엄마 부르고뉴 땅이. 자식 카를5세 에게 떨어지면서 난데없이 중원의 핵으로 등장한겨. 1500년생 카를5세 때부터. 합스부르크,가 뜬굼없이 스페인을 먹은겨 이게. 스페인이 남자핏줄로 엮여서리 유럽의 중심이 된거야. 샤를 8세가 나폴리 원래 앙주꺼 아라곤에 뺏긴거 갖고 오겠다며 프랑스와 아라곤이 시작한 이탈리아 전쟁에. 합스부르크까지 괜히 엮이다가. 아라곤에 시집간 이사벨라.로 스페인 전체가 저기에 개입하게 되다가. 합스부르크와 스페인의 자식인 카를5세.로 아주 중심에 선거걸랑.
스페인땅이 무슬림에서 해방되자 마자. 유럽 역사.의 스타가 된거야. 아주 그야말로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포르투갈은 그냥 자기들 길만 간거걸랑. 아 포르투갈은 정말 안타까운 나라야 이게. 1580년.때 말야. 저 펠리페2세를 지원했던 포르투갈 정치세력이 포르투갈의 미래를 죽인겨 저건.
스페인은 갑자기 저렇게 중원에 개입하면서. 내부적으론 아무것도 해결이 안된체로 덕지덕지 어거지 옷들만 계속 입은겨. 스페인이 실패한 이유야. 어찌할 수 없는. 저때 스페인이 해주지 않았으면. 이 세계는 오스만의 세상이 된겨. 아 그야말로 죽음의 지구가 되어 버릴거였지. 오래 지속되진 않았겠지만. 게르만이 보통 애들이냐. 중세 천년 익힌 게르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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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땅은. 중세에 하이미디벌에 유럽 이야기 지분이 없어. 중세 후기 백년전쟁. 초반에야 제대로 등장해. 그것도 자기들 후계자 전쟁에 개입하는 잉글랜드와 프랑스로.
포르투갈.은 잉글랜드와 친해. 스페인은 프랑스야. 외교적으론.
포르투갈.의 시작이 부르고뉴 공작.의 헨리 이고 이게 포르투갈 킹덤 핏줄들의 끝까지 가는겨. 포르투갈.의 말들 발음이 프랑스어와 비슷한 이유야. 그러나 외교적으론 포르투갈.은 잉글랜드.와 친할 수 밖에 없었어.
스페인.은 이브레아의 부르고뉴.고 이 이브레아.는 부르고뉴 공작령에 접한 백작령.이고 이게 지금 브장송 아래 지만. 얘들은 오른쪽 이탈리아. 에 자리잡으면서 피에몬테.지역까지 정착한 정통 이탈리안.이 되걸랑. 이탈리 사람의 최초 정체성 킹덤.은 이 이브레아 가 킹덤할때야. 마지막 킹덤의 킹은 수도원에 가고 이걸 오토1세가 취해서 이브레아의 핏줄은 이탈리아에서 사라지지만 말야. 부르고뉴 백작령에 있던 이브레아.는 계속 이어갔던 거고 이들이 카스티야 레온.의 우라카.에게 시집가서 스페인의 뿌리가 되걸랑. 해서 말야. 부르고뉴 백작령 땅이 이게 스페인 냄새가 아주 찐한겨. 스탕달 적과 흑.의 중심 도시.가 여기여. 해서 도시는 프랑스인데 스페인 문화가 왜 이리 찐할까 해대는 거걸랑 스탕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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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가 1592년.에 포르투갈 배.를 포획해서리 잉글랜드 포르투갈 전쟁 시작이 되었다. 는 다음으로 미루고. 이건 훨 이전에. 존 호킨스.와 프랜시스 드레이크 이야기 부터 나와야 하고. 잉글랜드가 싸우는 저때의 포르투갈.은 스페인에 넘어간 포르투갈.이야. 3백년 동안 친했던 두 나라가 전쟁을 하게 된겨. 1580년 후계자 전쟁 때메.
네덜란드.가 안트베르펜.도 스페인에 뺏기고. 포르투갈.의 스파이스와 신대륙 물건들을 못 받아. 펠리페 때문에. 암스테르담으로 옮겼지만. 포르투갈 물건이 없어. 시장이 확 죽어버린겨 이게.
1595년.에 네덜란드 상인이자 탐험가.가 포르투갈 배를 타고 저길 다녀온겨. 원래 포르투갈이랑 친한겨 이들은. 포르투갈.은 유럽애들과 다 친해.
Jan Huyghen van Linschoten (1563 – 8 February 1611) was a Dutch merchant, trader and historian. An alternative (modern Dutch) spelling of his second name is Huijgen.
얀 하이게 판 린즈호텐. 이사람이 포르투갈에 85-88. 오년을 다녀오고. 1596년에 책을 난거야. 잉글랜드.는 1592년.에 인도에서 오는 포르투갈 갤리온.을 포획을 처음 한거야. 갤리온.이 갤리선 개조한 데크를 높인 배여. 대형선이야. 어마어마 한겨. 당시 잉글랜드 총 예산.의 반 이였다는겨. 이때 아주 실감을 한겨 잉글랜드는. 저 정도일줄은 모른거걸랑.
네덜란드애들도. 걍 서로들 소문만 전해 듣는거였고. 저게 백년이 지난겨 이미. 포르투갈이 인도 간지.
저사람 책.을 보고서야. 정신이 확 든거야. 잉글랜드.는 갤리온 의 어마어마한 선적물을 보고서야 놀란거야 이건.
잉글랜드.역시나. 헨리7세 부터. 튜더 때부터 야드 만들어주고 대형선박 만들게 했지만. 얘들도 아~무것도 없었어. 스페인과 똑같애. 프랑스도 똑같애. 백년전쟁 하고. 그 이전엔 배런들 전쟁하고. 다음 장미전쟁하고. 배.란건 해변 영지애들 에나 있던거고.
포르투갈이 2백년 준비해서 인도와 중국에 간거야. 그리고 그 백년 후인 1600년 직전이야 저게.
어마어마 한거야. 직접 눈으로 보고. 저때에야 발동이 걸린거야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가. 네덜란드.는 더구나 자기들 목구멍 자체도 막힌거고 펠리페 때문에.
그래서 부랴부랴 만든게.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 서기 1600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서기 1602년.
네덜란드.는 주식회사. 잉글랜드.는 조인트벤처. 이건 부채.도 책임을 지는 회사여. 해서 네덜란드껄 최초 주식회사. 하는거고.
둘이 손잡고 간겨 저짝 인도를. 백년 지나서야.
더하여 잉글랜드.는 다시 아메리카.를 시작하는겨. 발등에 불이 떨어진겨 저게. 그게 1607년 제임스 타운.이야. 저 경쟁심.의 발동. 초조감.이 미국이란 나라를 만든거야. 만약에 말야. 저걸 영국이 안하고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북미.를 시작했으면. 지금 미국이란 나라는 없어. 걍 저 북미 역시 중남미 처럼. 걍 총질만 서로 해대면서 해방된 원주민들이 야만으로 걍 사는겨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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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를 그래서 그야말로. 만들어준 가장 큰 사건은. 포르투갈.이 스페인 펠리페 2세 에게 먹힌 1580년.이야.
포르투갈.은 저 어마어마한 3백년의 내용들이. 스페인에 휘둘리면서 완전히 구조적으로 무너진겨.
세바스치앙이 예루사렘 증후군 걸려서리 모로코에 가서 일찍 죽은게 아주 엄청난 사건인겨 그래서.
물론 이따위 얘기는. 캬자님이 최초로 개소리 하는거고.
A tercio (Spanish pronunciation: [ˈteɾθjo] "third") or tercio español ("Spanish third") was a powerful Spanish infantry division during the time of Habsburg Spain known for its victories on European battlefields in the early modern period.
The tercio was an administrative unit with command of up to 3,000 soldiers, subdivided originally into 10, later 12 compañías, made up of pikemen, swordsmen and arquebusiers or musketeers. '
포르투갈.이 자기들의 어마어마한 부.를 국방에 제대로 활용을 못한겨. 더하여 모로코 에 간 세바스치앙.이 전혀 지리도 모르는 젊은 애가 남의 땅가서 패하고 죽고 병력들은 다 포로가 되걸랑. 이 확 꺾인 기세 에서. 추기경 할배.가 2년 킹을 해. 멀 해봤겠어 할배가. 걍 할배 죽듯이 죽은겨 나라가. 저 상태에서 펠리페2세.가 네덜란드.의 자기 병력을 리스본에 투입시켜. 이 스페인 군대를 당시. 테르시오. 라고 해. 얘드른 이미 백년 가까이 카를때부터 이탈리아 전쟁에 저 네덜란드 전쟁에. 완전히 전쟁에 쪄들은 정예화된 용병인겨 얘들이. 이걸 포르투갈.이 이길수가 없어. 걍 하룻만에 끝나고 리스본에 입성을 해. 잔당 애들은 2년간 걍 망명한거고.
Fernando Álvarez de Toledo y Pimentel, 3rd Duke of Alba, GE, KOGF, GR (29 October 1507 – 11 December 1582), known as the Grand Duke of Alba (Spanish: Gran Duque de Alba) in Spain and the Iron Duke (Dutch: IJzeren Hertog)
저때 사령관.이 이던 언급했던 알바 공작 페르난도 알바레스.여 황금양모피 기사단. 같은 소속이지만. 펠리페2세의 두 팔인 네덜란드의 에흐몬트 백작 호른 백작.을 사형시킨 사람이야. 가족들은 피하라 하고. 다 아들같은 인간들이었어. 이때 조용 윌리엄.은 따로 튄거고. 이사람이 저 네덜란드 전쟁 진압을 진두지휘한겨. 아주 핵심이야 스페인의. 펠리페.가 이사람을 급히 불러들여서리 리스본에 보낸겨. 스페인 인간들에겐 영웅이야 이인간은. 저때 나이가 팔십이 다 되어가. 이사람은 포르투갈.을 펠리페.에게 넘기고 죽은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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