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면. 아마 이 환생이란 시스템이 있는거 같은데

 

이게. 그 땅을 못벗어나.

 

그 땅에서 사는겨 계속

 

그 가족과 친인척의 테두리가 일차야 

 

그 땅을 못벗어나. 그 속에서만 계속 사는거지. 그 천장들 아래서. 

 

그래서 이노믜 땅은 진화가 안되는겨

 

죽기까지의 싸이키.의 정도.를 갖고 다음 생을 살게돼.

 

그 다음 부터 더 넓히던지 더 좁아지던지. 더 좁아지면 더 후진 유.로 태어나는거고.

 

이게 가장 합리적 환생론 이겠어.

 

영어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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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International Version
It is a dreadful thing to fall into the hands of the living God.

New Living Translation

It is a terrible thing to fall into the hands of the living God. 

English Standard Version

It is a fearful thing to fall into the hands of the living God 

 

The Epistle to the Hebrews, or Letter to the Hebrews, or in the Greek manuscripts, simply To the Hebrews  Πρὸς Ἑβραίους .프로스 이브라이오우스. 히브루즈. 히브린들에 서신. 10:31

 

살아있는 갓.의 손들로 떨어지는 건 드레드풀 테러블 피어풀 한 것이다.

 

φοβερὸν ἐμπεσεῖν χεῖρας ζῶντος θεοῦ  

포베온 엠프레세인 케이라스 존토스 테오우.

 

포베오. 가 포비아. 공포.로 쓰잖니. 이건 전투. 싸움 속에 처한 감정이야. 두려워. 데인저. danger 위험에 처한 심정.이야. 데인저.란건 게르만 어지만. 라틴어 도미누스.랑 상통해. 뭔가 신.이나 권력자 때문에 덜덜 떠는 상황.이 데인저.야. 

 

엠프레세인. 이건. 엠. 엔. 쳐 들어가는 접사고. 프레세인.은 추락해서리 얼굴 납작 땅바닥에 정면으로 처박아서 걍 엎어진겨. 심적으로는 비난 받아서 아주 걍 쪽팔림의 극치가 된 상황의 심정이야

 

케이라.는 손.이고. 이게 chirography 글쓰기의 키로. 가 되고. 폰트체여. 존토스.가 사는거에 테오우 테오스. 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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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짓고 못산다. 살아있는 동안 언젠가는 같이 옆에서 살아있는 신.에 추락하면 더 끔찍해질테니. 속죄 하라는 사도 파울로스.의 협박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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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튼 저 형님 공갈은 지상 최고야.

 

 

 

Elizabeth's "commandment"[217]was that the Governor-General immediately resign his post in a formal ceremony in the same place where he had taken it.[218] After much pleading with her and protestations by the Dutch, it was postulated that the governor-generalship had been bestowed not by any sovereign, but by the States General and thereby by the people.[219] The damage was done, however:[220] "My credit hath been cracked ever since her Majesty sent Sir Thomas Heneage hither", Leicester recapitulated in October 1586.[221]  

 

엘리자베쓰.가 더들리에게. 거버너 제너럴. 자리를 사임하고 복귀하라는거야. 이 자리가 애매한겨. 

 

조용 윌리엄이 죽었어. 그 다음자리? 이게 없어. 일곱개 지역들이 

 

  • the Lordship of Groningen and of the Ommelanden
  • the Lordship of Friesland
  • the Lordship of Overijssel
  • the Duchy of Guelders (except its upper quarter) and the County of Zutphen
  • the Prince-Bishopric, later Lordship of Utrecht
  • the County of Holland
  • the County of Zeeland  

그로닝옌(흐로니겐.흐로니옌). 프리즐란트. 오버아이셀. 헬더란트(겔드스). 우트레흐트. 홀란트. 제일란트. (홀란드 질란드).

 

에서. 스타트홀터. 라는 짱 자리는. 조용윌리엄.이 홀란트. 제일란트. 우트레흐트. 만 취해. 헬더란트.와 오버아이셀.은 이 다음에 갖고 오고. 나머지 프리즐란트.와 그로닝옌.은 오렌지 윌리엄 죽고 얘 다음대에서 갖고오는거야. 

 

William IV (Willem Karel Hendrik Friso; 1 September 1711 – 22 October 1751) was Prince of Orange-Nassau and the first hereditary stadtholder of all the United Provinces.[1]  

 

오렌지 윌리엄 다음인 윌리엄 4세.가 첫. 총 7개지역의 스타트홀더.야. 즉 처음 조용 윌리엄이 시작할땐 7개 지역.에서도 세개지역만 말을 제대로 듣고 나머지 네개.는 협의체로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어. 조용윌리엄이 죽고 60년이 지나서 쟤때에야 일곱개.가 그나마 통일이 제대로 된거야. 

 

 

당연히. 외국인 더들리. 가 거너버 제너럴. 이란 명함으로 갔지만. 이게  애매한겨. 스타트홀더 도 아니고. 스테이트스 제너럴.이란 총 사령관 도 아니고. 먼 거버너 제너럴.이야. 저건 윌리엄 땅 세개.의 거버너 제너럴.로 가는겨. 얘의 성격이 애매한겨. 엘리자베쓰.가 그러면 니덜 잉글랜드에게 주권 자체를 줄꺼냐. 이런게 협상 자체가 애매한겨. 이겨도 남 좋은일. 이길 힘도 전혀 없고. 더들리 너 빨랑 돌아와 하는겨. 더들리.가 그렇잖아도 아무것도 안되고. 저 명령으로 얜 더 힘이 안나. 딱 1년 만에 돌아와. 1585년 12월에 도착해서. 1586년 12월에 돌아가. 존 노리스.하곤 처음에 안 맞았지만 그래도 아주 사이가 좋았어. 존 노리스.는 1588년 초.에 돌아가. 스페인 아르마다. 대비하러 부르는거야. 

 

 

Leicester soon realised how dire his situation was and then asked to be recalled. He resigned his post as Governor - his tenure was a military and political failure, and as a result he was financially ruined.[11] After Leicester's departure, the Dutch elected the Prince of Orange's son Count Maurice of Nassau as the Stadtholder and Governor. At the same time Peregrine Bertie took over English forces in the Netherlands.  

 

더들리.는 괜히 와서. 이도 저도 안된겨. 네덜란드에서 거의 참패야. 자기들 요새도 함락도 돼. 면도 안서고. 이사람은 완전히 부도가 난거야. 더들리가 떠나고. 네덜란드.는 스타트홀더.로 그 세개 지역.을 나싸우.의 모리스.로 선출을 해. 세습 외엔 대안이 없는겨 이게. 즉 말야. 이건 더들리.가 스타트홀더. 였던거야. 네덜란드 애들은 아니다 하는거고. 

 

그리고 남은 잉글랜드 용병들을 지위하는게 페레그린 버티.라는 귀족이야. 

 

 

Peregrine Bertie, 13th Baron Willoughby de Eresby (12 October 1555 – 25 June 1601) was the son of Catherine Willoughby, 12th Baroness Willoughby de Eresby, and Richard Bertie.[1]   

 

페레그린 버티. 윌로비 드 어스비 배런. 남작. 피의 마리때 집안이 라인강으로 피난오고 다시 잉글랜드로 복귀를 해서리 독일을 잘 알아. 덴마크도 다녀오고. 외교적으로 해결해주는 집안이 된거야.

 

After Leicester's departure for England in December 1586, he was made general of the English forces. He suffered a major defeat at the Battle of Zutphen but redeemed himself with his victory at the Siege of Bergen. Subsequently, he fought for the Huguenots under Henry of Navarre. He commanded the English contingent at Henry's Siege of Paris in 1590.  

 

줏펜.이 잉글랜드가 지키던 할더란트 땅인데 여기서 저. 베르겐 전투.는 이기고. 그러다 말야 이들은 프랑스로도 가는겨. 네덜란드.는 답이 없는겨. 이때 1590년 파리함락. 

 

앙리4세.가 앙리3세 암살당한 이후에. 킹에 올라. 얜 엄마가 독실한 위그노야 나바라의 잔. 얘도 뼛속깊이 위그노여. 대관식을 못해. 계속 내전하는겨. 파리.를 카톨릭 기즈애들이 갖고 있걸랑 스페인 병력으로. 이걸 뺏으려는겨 킹 권위 갖으려고. 이걸 실패해. 저때 파리시민이 20만 좀 넘어. 파리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는겨 이 위그노 킹개새꺄. 니가 먼데 위그노 킹 주제에 우리 파리를 킹행세 하려하냐. 하면서. 뜬굼포 촛불 들이 티나와. 앙드레 모루아.가 저 20만 파리시민이 다들 촛불을 들었다는겨. 근거 없어 얜 대체 먼 자료를 보고 저따위 소리를 했는지 몰라 이게. 하튼 이 국뽕에 쩐 ..들이 역사를 쓰면서 그 나라가 개 쓰레기가 되는건데. 정작 말이지 빨아도 시원치않을 영국애들 미국애들 사가들은 지들 역사는 또 안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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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ege of Paris took place in 1590 during the French Wars of Religion when the French Royal Army under Henry of Navarre, and supported by the Huguenots, failed to capture the city of Paris from the Catholic League. Paris was finally relieved from the siege by the Spanish army under the command of Alexander Farnese, Duke of Parma.[1] 

 

이놈의 프랑스는 말야. 정말 제대로 된 킹 이 없어 이게. 앙리4세.도 낭트칙령 어쩌고 하며 성군  우대 하지만. 얘도 암살 당해서 띄워주는 거걸랑. 나중 업무는 친구 재상에게 맡기고 얜 연애질 하민서 바쁘고. 이런 애가 그나마 나은겨 먼 이념놀이 하면서 개판 만드는거나 루이14세처럼 전쟁에 미치는 것보단.

 

하튼 이놈의 프랑스.는 머 띄워줄 킹.이 없어. 이 프랑스 역사가 아주 쳐진 이유야. 해서 띄우는게 완전 개 거짓 주작질 프랑스 대혁명 . 완전히 그짓말이야. 대 학살. 10년 사건이야 저건. 

 

Gabrielle d'Estrées, Duchess of Beaufort and Verneuil, Marchioness of Monceaux[1] (French pronunciation: ​[ɡabʁiɛl dɛstʁe]; 1573[2][3] – 10 April 1599) was a mistress, confidante and adviser of Henry IV of France

 

이 앙리4세 ..도. 파리.는 개종할 가치.가 있다며 번역하지만. 원래 말은. Mass 미사.여. 미사할 가치가 있다. 미사.라는 말이 로마 카톨릭.의 대명사야. 얜 개종한 이유가. 여자여 여자. 

 

이 프랑스.의 진보자연 하는 ..들의 대부분 배후.는 또 여자여. 루쏘 도 여자. 이..도 여자. 

 

가브리엘 데스트레. 에스트레.의 가브리엘. 나중에 킹이 되고 이여자한테 주는겨. 보포르 베르누이 공작.에 몽소 후작. 

 

이여자가 설득해. 너 카톨릭으로 바꿔서리 킹해 제대로된. 그리고 얘 말듣고 개종하고 킹자리 제대로 오르고. 낭트 칙령이란게 파리입성 1593년. 즉 저 파리함락 실패.후 3년 만에야 개종한겨. 스페인 배후인 저 카톨릭을 지들이 어쩔수가 없어. 낭트칙령.이 1598년이야 이때서야 1562년 시작 한 종교 빙자 프랑스 내전이 일차 선 그어주는건데.

 

그러다가. 앙리4세가 암살 당하고. 그 복수질로 아들 루이 13세.가 다시  카톨릭 하면서. 더 져스트. 정의의 이름으로 위그노들을 걍 아작을 내면서. 이 후 150여년의 그림자가 터져서 나온게 1789년 프랑스 대학살.로 가는건데. 이런걸 영국사.와 비교하면. 이놈의 프랑스.는 너무나 후진 들이란게 자명해지는데. 넘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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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란건 더들리 떠나고. 페레그린 버티.도 파리 위그노애들 지원하러가다가 물러나고. 여긴 스물도 안된 꼬마애가 일곱지역 중에 세개 짱.자리 형식선거로 물려받고. 네덜란드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겨 이게. 곧 없어질 나라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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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아르마다 1588년.으로 모든게 달라지는겨. 이건 엄청난 사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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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ege of Grave, also known as the Capture of Grave of 1586, took place from mid-February – 7 June 1586 at GraveDuchy of BrabantLow Countries (present-day the Netherlands), between the Spanish army led by Governor-General Don Alexander Farnese, Prince of Parma, and the Dutch-States and English forces under Baron Peter van Hemart, Governor of Grave, during the Eighty Years' War and the Anglo-Spanish War (1585–1604).[1][2]

 

그라브 함락. 1586년. 브라반트 공작령. 저지대. 네덜란드. 더들리.의 네덜란드 잉글랜드 연합군.이 스페인에 빼앗기다. 더들리의 권위 떨어지고.

 

파르마.의 알렉산더 파르네이지(알레한드로 파르네시오). (파르마의 마가렛. 즉 펠리페2세.의 배다른 누나.의 아들).의 스페인부대.가. 이사람이 엄마가 카를5세. 결혼하기전에 눈맞은 상인집 딸이걸랑. 이여자가 파르마의 마가렛.에 저지대 17개 지역 스페인땅의 총 대리야. 이들은 배스타드.지만. 킹 퀸 후계가 없을 뿐 걍 듀크에 카운트.를 줘. 직속 승계권만 안줄 뿐이야. 이사람이 알바공작 페르난도 알바레스. 할배가 포르투갈을 펠리페2세에게 주는 전투.하고 돌아가시고. 다음 군부의 핵심이 되는겨. 전승이야 전투만 하믄.

 

A few days later, the Spanish army, commanded by the Prince of Parma, laid siege to Venlo, garrisoned and supported by Dutch and English troops led by Maarten Schenck and Sir Roger Williams.[6] On 28 June 1586 the garrison was forced to capitulation to the Spaniards.[6][7]  

 

그라브 함락.하고. 벤로.가 림부르흐. 남쪽이야. 여기도 다시 뺏겨 더들리들이. 얘들은 1588 스페인 아르마다 전에. 거의 전패야. 몰락 할 일만 남은겨.

 

이게. 존 호킨스.와 프란시스 드레이크.의 스페인 아르마다.를 개박살 내면서. 이게 완전히 바뀌는거야 상황이.

 

네덜란드. 영국. 이 두나라는. 저 두 인간.과 한 여자.가 만든 나라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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