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fred Bernhard Nobel /'alfrəd 'bɛɳhɑ:ɖ noˈbɛ:l /, né le 21 octobre 1833 à Stockholm en Suède et mort le 10 décembre 1896 à Sanremo en Italie1, est un chimisteindustriel et fabricant d'armes suédois. Dépositaire de plus de 350 brevets scientifiques de son vivant2, dont celui de la dynamite3, invention qui a fait sa renommée, il possédait l'entreprise d'armement Bofors.

Dans son testament, il légua son immense fortune pour la création du prix Nobel. L'élément chimique nobélium a été appelé ainsi en son honneur.

 

영어위키.는 깨져보여서리 이걸 갖고 오는데. 노벨상.의 알프레드 버나드 노벨. 서기 1833-1896.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나서 말년에 프랑스 상대로 이태리에 무기팔았다고 역모로 기소가 되서리 이태리로 옮겨. 산레모. 제노바 있는 리구리아 해변 왼쪽 끝. 여기서 죽는데.

 

이사람이. 특허가진것만 350개. DynamiteGelignite, and Ballistite. 이중에 다이나마이트, 젤리그나이트, 발리스타이트. 도 개발한건데. 저게 다 화약의 폭약이야. 발리스타이트.는 대표적인 무연화약이야. 이게 뒤에가서 로켓.의 추진체가 되는겨. 

 

이사람이 보포스 Bofors 회사 주인이었어. 보포스.하면 고사포여. 대공포 비행기 잡는. 이게 스웨덴 사브.에서 인수하고 일부는 영국 BAE에서 인수하고. 세계적인 군수업체여. 

 

이사람이 돈을 번건. 저 폭약 판거에 더해서 말야. 형이 오일 찾아다녔걸랑. 오일 파는데 또한 동생이 개발한 폭약 쓰는겨. 여기 투자해서리 오일을 발견해서리 또 떼돈을 번겨. 

 

 

Immanuel Nobel the Younger (/noʊˈbɛl/; Swedish: [nʊˈbɛlː]; 24 March 1801 – 3 September 1872) was a Swedish engineer, architect, inventor and industrialist. He was the inventor of the rotary lathe used in plywood manufacturing. He was a member of the Nobel family and the father of Robert NobelLudvig Nobel and Alfred Nobel. He also often experimented with nitroglycerin with his sons, which led to his son Emil Oskar Nobel's death because of an explosion at his father's factory Heleneborg in Stockholm in 1864.

Nobel moved to Russia from Sweden in 1838, to sell his inventions in Saint Petersburg, where he lived for two decades with his family. In Saint Petersburg he was attached to the Evangelical Lutheran Church of Saint Katarina along with other Swedes such as Johan Patrik Ljungström, with whom he may have collaborated.[1] Among his successful creations was an improved version of an underwater exploding mine that personally interested Tsar Nicholas I of Russia. Immanuel founded a war supplies factory, Fonderies et Ateliers Mécaniques Nobel Fils, which turned out to be a very profitable business. However, the death of Nicholas Iin 1855 and the end of the Crimean War in 1856 brought about a shift in Russian policies and the new Tsar Alexander II ordered a severe cut in the military budget that eventually placed Immanuel's company in serious economic difficulties. In 1859, the technical management of Nobel Fils was passed to Immanuel's son Ludvig and the former returned to Sweden. In 1862, Immanuel's firm was finally sold by his creditors.[2]

 

이사람 아버지가 임마뉴엘 노벨. 회전식 레이드. 선반을 개발한 사람. 집안에 원래 돈이 없어. 러시아 샹트페테르부르크.로 간거야 여기에 자기꺼 팔라고. 여기사 러시아 수도여. 모스크바가 수도가 아냐. 나폴레옹이 모스크바 주워먹을때 모스크바는 걍 제2의 도시야 수도원 교회 많은. 이때 차르.가 니콜라스 1세여. 이전 형 알렉산더1세.가 나폴레옹과 논거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쟁과 평화 죄와벌.은 다음 차르 알렉산더2세 때 나오는거고. 

 

아빠 임마뉴엘. 역시나 폭파.에 관심이 있었어. 수중 어뢰를 개발하는 거에 차르.가 관심을 표해. 니콜라스 1세.는 국방력 군수에 올인하는겨. 이전 형 시절에 나폴레옹이 모스크바 와서리 한달 찐하게 놀고 다 약탈해서 튀었걸랑. 러시아 입장에선 수치였던거지. 임마뉴엘이 이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투자를 땡긴거야 러시아 차르 한테. 가족들도 부르는겨. 여기서 돈을 벌게 돼 차르의 스폰으로. 그러면서 자식들에게 교육 투자를 한거야 개인과외선생 찐하게 붙이고. 

 

그러다가 나중에, 니콜라스 1세 죽고, 알렉산더2세가 재정에 허덕이걸랑. 군비를 줄이고 임마뉴엘은 빈손이 되는건데. 임마뉴엘이 채권자에게 회사팔때가 1862년. 이때 아들 노벨.은 29세야. 이미 아들은 아빠 품 벗어난 나이가 된건데.

 

Following various business failures, Nobel's father moved to Saint Petersburg in 1837 and grew successful there as a manufacturer of machine tools and explosives. He invented veneer lathe and started work on the torpedo.[8] In 1842, the family joined him in the city. Now prosperous, his parents were able to send Nobel to private tutors and the boy excelled in his studies, particularly in chemistry and languages, achieving fluency in English, FrenchGerman and Russian.[4] For 18 months, from 1841 to 1842, Nobel went to the only school he ever attended as a child, the Jacobs Apologistic School in Stockholm.[5]

 

9살 직전까지 18개월동안만 학교를 다닌게 다란거야 스톡홀롬에서. 아빠가 돈을 버니까 비싼 과외교육을 받았다는거지. 화학과 언어에 탁월했대. 영어 불어 독어 러시아어.는 유창했다. 이건 전적으로 아빠의 자식에 대한 투자 덕이고.

 

노벨.위로 두살차이 씩의 형이 둘 있어. 작은형이 역시 엔지니어.에 오일 탐사에 빠지고 큰형도 작은형이랑 같이 다닌거고. 나중에 노벨이 여기 투자해서 떼돈을 번건데. 막내 동생은 폭약실험 하다가 죽게 되고. 

 

In 1888, the death of his brother Ludvig caused several newspapers to publish obituaries of Alfred in error. One French newspaper published an obituary titled "Le marchand de la mort est mort" ("The merchant of death is dead"). Nobel read the obituary and was appalled at the idea that he would be remembered in this way. His decision to posthumously donate the majority of his wealth to found the Nobel Prize has been credited at least in part to him wanting to leave a behind a better legacy.[13][4]

 

둘째형 루드비히.가 죽어. 이때 신문 부고란에. 노벨이 죽은 줄 알고. 죽음의 상인이 죽다. 란 제목의 기사가 난거야. 노벨이 이 기사를 보고는 노벨상.을 만들기로 한거야. 그리고 3년후 이태리로 가서리, 5년 더 살다가 죽는건데.

 

.

노벨상.이란게 현대 문명.의 제일의 잣대걸랑. 누가 가장 많이 기여를 했는가 지금 문명에. 

 

이걸 만든 사람.의 전공분야.는 화약.이야. 

 

우연인듯이 보이지만, 이 화약이야 말로, 지금 문명의 시작이야 이게. 지금의 과학 문명의 가장 큰 지분은 이 화약이야. 

 

웃긴건 말이지. 이 화약을 중국이 공식적으론 서기 808년에 금단비결.이란 책에 제대로 언급이 되고, 그전에 서기 150년 동한시절에도 쓴걸로 보이고, 유럽애들보다 길게는 천년을 먼저 발명했으면서도, 저걸 문명의 토대로 만든 쪽은 유럽이란거걸랑. 

 

이게 중국과 유럽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예시야. 왜 저렇게 되었냐는 거지. 

 

.

 

 

As a young man, Nobel studied with chemist Nikolai Zinin; then, in 1850, went to Paris to further the work. There he met Ascanio Sobrero, who had invented nitroglycerin three years before. Sobrero strongly opposed the use of nitroglycerin, as it was unpredictable, exploding when subjected to heat or pressure. But Nobel became interested in finding a way to control and use nitroglycerin as a commercially usable explosive, as it had much more power than gunpowder. At age 18, he went to the United States for one year to study,[9] working for a short period under Swedish-American inventor John Ericsson, who designed the American Civil War ironclad USS Monitor. Nobel filed his first patent, an English patent for a gas meter, in 1857, while his first Swedish patent, which he received in 1863, was on 'ways to prepare gunpowder'.[5][10][4][11]

 

학교생활은 어릴때 18개월.이야 아빠돈으로 과외만 받은겨. 그리고 러시아에서 니콜라이 진.이라는 화학자밑에서 연구를 한거지. 아빠가 어뢰.개발자야. 아빠때문에 폭발.에 관심을 갖은거고. 서기 1850년. 17세에 파리가고, 여기서 아스카니오 소브레로. 니트로글리세린.을 발명한 사람이야. 이걸 나중에 다이너마이트.로 만든겨 노벨.이. 18세에 미국에가서 같은 스웨덴계.인 미국인 존 에릭슨.을 만나. 

 

이 존 에릭슨.이 엔진. 전문가여. 증기 기차.에 증기선. 노벨 만남 이후에 미국 남북전쟁때 USS 모니터.라는 해군 증기선.을 디자인을 해. 이전에는 영국에서 노벨티. Novelty 라는 기차로 기차대회 참여를 해. 우승은 못했지만. 

 

산업혁명의 시작은 증기기관.이야. 이 증기기관의 본격적 개발은 서기 1600년 부터 불이 붙어. 유럽 중세 천년의 힘은 무서운겨 이게.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특허.는 백년 이상의 시도 중에 와트.의 방식에서 더 효율을 찾은겨. 이게 상용화된거고.

 

  • Patent 913: A method of lessening the consumption of steam in steam engines – the separate condenser. The specification was accepted on 5 January 1769; enrolled on 29 April 1769, and extended to June 1800 by an Act of Parliament in 1775.

와트.의 특허가 서기 1769년 이야. 이 해가. 자동차.의 원조가 처음 나온 해야. 프랑스에서.

 

Nicolas-Joseph Cugnot's "machine à feu pour le transport de wagons et surtout de l'artillerie" ("fire engine for transporting wagons and especially artillery") was built from 1769 in two versions for use by the French Army. This was the first steam wagonthat was not a toy, and that was known to exist. 

 

니콜라 조제프 퀴뇨.가 프랑스 군대의 대포 수송용 차량.으로 처음 개발한게 와트의 증기방식 특허 나온 1769년.이야. 이게 자동차의 최초야. 

 

이전에 증기방식의 자동차.가 장난감으로 개발된게 있어. 중국에 있는 플랑드르 선교사.가 강희제에게 선물로 만들어줘.

 

Father Ferdinand Verbiest (9 October 1623 – 28 January 1688) was a Flemish Jesuit missionary in China during the Qing dynasty. He was born in Pittem near Tielt in the County of Flanders (now part of Belgium).[2] He is known as Nan Huairen() in Chinese. He was an accomplished mathematician and astronomer and proved to the court of the Kangxi Emperor that European astronomy was more accurate than Chinese astronomy. He then corrected the Chinese calendar and was later asked to rebuild and re-equip the Beijing Ancient Observatory, being given the role of Head of the Mathematical Board and Director of the Observatory.

He became close friends with the Kangxi Emperor, who frequently requested his teaching, in geometryphilosophy and music.

Verbiest worked as a diplomat and cartographer, and also as a translator, because he spoke LatinGermanDutchSpanishHebrew, and Italian. He wrote more than thirty books.

During the 1670s, Verbiest designed what some claim to be the first ever self-propelled vehicle – many claim this as the world's first automobile, in spite of its small size and the lack of evidence that it was actually built.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 플랑드르 피템 출신이야. 벨기에 북쪽 프랑스 접경 쪽이여. 제수이트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 갔다가 강희제.의 고문.을 하는겨. 南怀仁. 난회인. 난후외렌. 어질 인.을 품었다.는 이름 지어준거지. 강희제 에게 유럽의 천문학이 중국보다 더 정확함을 증명하고 중국 달력도 수정하고. 강희제 에게 증기 자동차 장난감.을 만들어준걸 서기 1672년.으로 봐. 이미 유럽에선 증기기관에 대한 연구가 되어있던거고 이걸 장난감에 활용한겨 이사람이. 장난감이 아닌 실용화된 차.가 퀴뇨.에 의해 100년 후에 개발이 된겨.

 

In 1816, a professor at Prague PolytechnicJosef Bozek, built an oil-fired steam car

 

오일로 열을 내서 증기를 만드는 차.는 서기 1816년 요제프 보제크. 체코 사람. 

 

 In 1784, William Murdoch, a Scottish inventor, built a small-scale prototype of a steam road locomotive in Birmingham.[5] 

 

증기기관차.인 기차.는 퀴뇨.의 차.이자 와트 증기기관 특허.인 1769년 후 15년만에 나와. 윌리엄 머독. 이 제임스 와트.와 메튜 불턴.의 회사 직원이야. 와트.의 증기기관에 대한 사업성을 눈치채고 동업을 제의한 사람이 매튜 불턴.이야. 이사람은 버밍햄 출신이고 와트는 스콧 저짝 위 촌놈이고. 버밍햄이 철강업 중심이야. 버밍햄에서 회사를 차린겨. 여기 직원인윌리엄 머독.은 스콧 사람. 걍 프로토타입 견본을 만들어. 

 

 

The Rainhill Trials were an important competition run in October 1829, to test George Stephenson's argument that locomotives would provide the best motive power for the then nearly-completed Liverpool and Manchester Railway (L&MR).[1] Five locomotives were entered, running along a 1 mile (1.6 km) length of level track at Rainhill, in Lancashire (now Merseyside).

 

증기 기관차.는 영국이야. 레인힐 대회. 여긴 랭커셔. 여기서 누구의 엔진이 더 잘나가나. 를 리버풀 맨체스터 철도. 주관으로 시합을 하는겨. 1마일 거리로. 다섯 이 출전해. 로버트 스티븐슨.의 로켓.이란 기관차.가 우승을 해. 이때 출전한게 노벨.이 모시고 일했던 존 에릭슨. 이야. 

 

알프레드 노벨.의 350개 특허 중에. 첫번째 특허가. 가스 미터기. 연료량 재는 거. 세상 모든 연료 측정기의 원조여.

 

.

 

Dynamite is an explosive made of nitroglycerinsorbents (such as powdered shells or clay) and stabilizers. It was invented by the Swedish chemist and engineer Alfred Nobel in Geesthacht, and patented in 1867. It rapidly gained wide-scale use as a more powerful alternative to black powder.

 

다이너마이트.란게 니트로글리세린.을 쓴거야. 이것 자체가 폭발성 있는 물질이야. 노벨.이 스승 아스카니오 소브레로.가 개발한 걸 검증해서 생산한거야. 

 

폭발.이란 익스플로젼.이 하이 폭발 로우 폭발.로 구분을 해. 음속.을 기준으로. 블랙 파우더.란 화약은 음속 아래 속도의 폭발이야. 질산칼륨.이라는 초석.은 연기를 발생하는 로우 폭발이야. 

 

니트로글리세린.은 폭발을 일으킬때 슈퍼소닉. 충격파를 발생하는 하이 폭발을 일으키는겨. 폭발력이 강한겨 이게. 이걸로 다이나마이트.를 만든거고, 이걸로 총과 대포의 추진체로서의 화약을 대체하는겨. 사거리가 더 멀리 더빨리 가는거지.

 

Nitroglycerin and any diluents can certainly deflagrate (burn). The explosive power of nitroglycerin derives from detonation: energy from the initial decomposition causes a strong pressure wave that detonates the surrounding fuel

 

연소.라는 컴버스쳔.은 디플러그레이트.라는 폭연.으로 봐. 니트로글리세린.도 폭연은 물론 이거니와 슈퍼소닉의 폭발.을 일으키는겨. 

 

이 폭발로 에너지 쓰는게 로켓.이야. 우주에 보내는. 화약의 구성인 황.숯. 이라는 연료.와 초석.이라는 옥시다이저.라는 산화제.로 전자를 뺏고 얻는 작용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힘의 원리를 이용해서, 다른 옥시다이저.로 더 큰 폭발에 의한 에너지로 추진체를 만드는겨. 총 대포 라는게 로켓.의 시작이야.

 

 

 

.

이 폭발. explosion 이란게 그래서, 컴버스쳔. 연소.가 급격하게 발생할 때 발생하는 폭발.을 19세기에 연구를 본격적으로 한건데. 이게 화학적 폭발.이야.

 

폭발.이란걸 더 들어가보면.

 

Causes

폭발 원인이 다섯가지로 나눠. 자연현상에서 우리가 보는 화산폭발.과 우주의 별들의 폭발. 화산폭발 이란건 마그마가 끓어오르면서 이게 점점 땅을 녹이면서리 이쪽 압력이 약해지면서 이 약해진쪽을 마그마가 계속 진출을 하는 반복이걸랑. 그러면서 증기의 분출.의 폭발이 있고, 이 화산 근처에 바다나 호수가 있으면 마그마들이 급속 냉각하면서 수축해서들 암석으로 터져나오는 분출도 있어. 이건 맹렬한 증기 발생으로 인한 부피 증가로 터지는 폭발.이고

 

대부분이 화학적인겨. 연소.에서 산화 환원.이라는 전자의 주고받음에서 발생하는 불.의 과정이 급속히 진행될 때의 폭발.이야.

 

다른게 전기적 자기장적 폭발. 이건 전기를 방전. 내보내는겨. 이온화된 가스.인 플라즈마.에. 여기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빛을 내는거걸랑. 이걸로 초창기 나온게 수은등. 이란거야. 이게 형광등이 된거고. LED 엘이디.까지 온겨.

 

The history of gas-discharge lamps began in 1675 when French astronomer Jean-Felix Picard observed that the empty space in his mercury barometer glowed as the mercury jiggled while he was carrying the barometer. Investigators, including Francis Hauksbee, tried to determine the cause of the phenomenon. Hauksbee first demonstrated a gas-discharge lamp in 1705. He showed that an evacuated or partially evacuated glass globe, in which he placed a small amount of mercury, while charged by static electricity could produce a light bright enough to read by. The phenomenon of electric arc was first described by Vasily V. Petrov in 1802; Sir Humphry Davy demonstrated in the same year the electric arc at the Royal Institution of Great Britain. Since then, discharge light sources have been researched because they create light from electricity considerably more efficiently than incandescent light bulbs.

The father of the low-pressure gas discharge tube was German glassblower Heinrich Geissler, who beginning in 1857 constructed colorful artistic cold cathode tubes with different gases in them which glowed with many different colors, called Geissler tubes. It was found that inert gases like the noble gases neon, argon, krypton or xenon, as well as carbon dioxide worked well in tubes. This technology was commercialized by French engineer Georges Claude in 1910 and became neon lighting, used in neon signs.

 

전기와 가스의 충돌로 발생하는 등.에서 최초인 수은등.의 우연한 발견이 서기 1675년. 이게 제대로 된 상용화가 서기 1802년.이야. 옛날에 까스등. 하는게 이 수은등이고 네온등이야. 이때부터 유럽애들은 거리의 가로등.을 수은등 으로 쓰는겨. 백열등 보다 더 밝고 효율적인거지. 우리네는 이 백열등을 몇십년 전까지 쓴겨 이게. 이게 이땅에서 사라진게 얼마 안돼. 

 

메이지때 파리 유학간 애들이 저 거리의 수은등에 뿅간겨. 돌아와서 지들거리에 수은등을 다는거고.

백열등.이란건. 폭발.이 아냐. 이건 열로 발생하는 빛.일 뿐이야. 폭발까지 가지않는.

 

다른 폭발은 밀폐된 곳에서 물끓여서리 발생하는 수증기의 압력과 부피팽창으로 폭발.이건 화산 폭발과 맥락이 같고. 더하여 산화 환원 이라는 화학적 폭발도 여기서 발생할 수도 있어.

 

핵폭발.이란건 전혀 달라. 이건 

 

In nuclear physics and nuclear chemistry, a nuclear reaction is semantically considered to be the process in which two nuclei, or else a nucleus of an atom and a subatomic particle (such as a protonneutron, or high energyelectron) from outside the atom, collide to produce one or more nuclides that are different from the nuclide(s) that began the process. 

 

핵 반응.으로 생기는 폭발인데. 핵반응 이란건  두 원자핵. 또는 하나의 원자 안의 하나의 원자핵.과 양성자 중성자 또는 고에너지 전자 같은 원자안의 하나의 요소가, 충돌해서리. 하나 또는 그이상의 뉴클라이드. 핵종.을 만드는 과정.이야. 이때의 뉴클라이드.는 충돌 전의 뉴클라이드.와 달라. 이게 핵반응 이야. 이때 발생하는게 핵폭발.이고. 이건 전혀다른 폭발이야.

 

The generation of heat in large quantities accompanies most explosive chemical reactions. The exceptions are called entropic explosives and include organic peroxides such as acetone peroxide.[2] It is the rapid liberation of heat that causes the gaseous products of most explosive reactions to expand and generate high pressures. This rapid generation of high pressures of the released gas constitutes the explosion. 

 

이런 모든 폭발들은 열을 수반하는겨. 엔트로픽 폭발같이 열을 수반하지 않는 폭발도 있어. 이건 현재 이론뿐인거고. 아세톤 페록사이드.같은 폭발도 열을 수반하지 않아 오직 폭발을 위한 폭발. 헌데 이런 드문 사례 빼고는 대부분의 폭발은 열을 발생해. 이 열이 압력을 높여서 폭발을 일으키고 이 폭발을 에너지로 활용을 하는겨. 이게 문명의 힘이야.

.

 

steam engine is a heat engine that performs mechanical work using steam as its working fluid. The steam engine uses the force produced by steam pressure to push a piston back and forth inside a cylinder. This pushing force is transformed, by a connecting rod and flywheel, into rotational force for work. The term "steam engine" is generally applied only to reciprocating engines as just described, not to the steam turbine.

Steam engines are external combustion engines,[2] 

 

스팀엔진.이라는 증기기관의 시작은. 실린더 안에 피스톤을 앞뒤로 밀고 밀리는 작용을 일으키는 건데. 이건 압력을 이용해. 이 압력은 외부의 열을 통해서 생기는거고. 이 열은 컴버스쳔. 연소.를 통해서 발생되는겨. 이 연소.는 화학적인 산화 환원 작용의 연소.이고. 해서 산업혁명의 시작은 이 연소.에 의한 열에너지.의 활용인거야. 이걸 더 디다본게 폭발.이라는 익스플로젼.이고.

 

해서 말야. 알프레드 노벨.이 폭발.에 대한 전문가 이전에 이미 이 연소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를 한거야. 연소에 대한 이해 없는 폭발.이란건 없어.

.

 

 

 

cannon (plural: cannon or cannons) is a type of gun classified as artillery that launches a projectile using propellant. In the past, gunpowder was the primary propellant before the invention of smokeless powder in the 19th century. 

 

 

대포.라는 캐논.은 건.의 일종으로 아틸러리.로 분류된다. 건. 아틸러리. 는 전문용어야. 학술용어. 일반적으론 캐논.이라고 한거야. 옛날에는 모든게 캐논.이야. 수총.은 핸드 캐논.이고. 

 

In the modern era, the term cannon has fallen into decline, replaced by guns or artillery if not a more specific term such as mortar or howitzer, except for high calibre automatic weapons firing bigger rounds than machine guns, called autocannons.

 

캐논.이란 말이. 건. 아틸러리.라는 말로 대체가 된겨. 걍 막막 쓰는겨 이걸. 이걸 나중에 학술적으로 분류를 한거야. 가장 큰 어미.는 건. 그 아래 대포.는 아틸러리. 그외는 핸드건. 롱건. 등등. 

 

1874년에 그렸다는, 14세기 후반의 핸드캐논. 수총. 이야. 저게 지금 수총.에 불을 붙이는겨. 지금 저 상태가 조준한 상태야. 저기에 작은 구멍이 있걸랑. 구멍 근처로 불꽃을 쑤셔 넣는겨. 안에 화약에 바로 붙어서리 바로 발사가 되는겨 탄이.

 

해서, 한사람이 한손으로는 수총을 들고 대충 조준하고 한손으로 구멍에 불을 붙여. 끝에 긴게 발포가 된 반동으로 연기가 또한 나가는거고. 그래서 저건 한사람이 조준을 하고 옆사람이 불을 붙이면서 썼던겨 제대로 쏘려면.

 

땅에 있는게 화약주머니에. 꽂을대.라는겨. 화약을 넣고 탄알을 넣어서리 쑤시는겨 골고루. 그리곤 구멍을 통해 불붙이는건데.

 

저 문제를 해결한게. 지금 식의 소총.이야. 이 시작이 아키버스고. 이게 화승총.이라는 매치락.이야. 불을 붙이고 심지가 타들어갈때 조준을 하는겨. 이 심지 또한 화약을 묻힌거야 약하게. 이게 타들어가서리 화약을 재놓은 팬에 불꽃이 튀면 바로 발사가 되는겨.

 

이건 방아쇠.가 없는겨. 

 

wheellockwheel-lock or wheel lock, is a friction-wheel mechanism to cause a spark for firing a firearm. It was the next major development in firearms technology after the matchlock and the first self-igniting firearm. Its name is from its rotating steel wheel to provide ignition. Developed in Europe around 1500, it was used alongside the matchlock and was later superseded by the snaplock (1540s), the snaphance (1560s) and the flintlock (c. 1600).

 

휠락. 스냅락. 플린트락. 화약에 점화하는 방식.을 심지.를 안쓰고. 점화를 일으켜서 불꽃을 내서리 그게 불을 붙이는겨. 

 

점화를 일으키는걸 부싯돌 부딛치는걸 저기서 써먹는겨. 햄머를 얹고 그걸 꽝 때리면 팬.이라는 화약저장실에 불꽃만 얹으면 되걸랑. 이때 햄머에서 잡고 있는 걸 초창기에 파이라이트. pyrite 황철석.을 쓴거야. 이건 태엽을 따로 감는 짝대기가 있어. 태엽을 한두번 감고. 방아쇠를 당기면. 풀리면서. 햄머가 황철석을 쥐고는 팬 앞에서 딱 때리면서 불꽃이 이는거야. 이건 위에서 아래로 때리는 구조고. 스냅락은 그냥 수평에서 쎄게 밀면서 불꽃을 내고. 플린트락.이란건 플린트.라는 부싯돌을 쓴거야 황철석을 안 쓰고.

 

The invention of the wheellock in Europe can be placed at about 1500. There is a vocal group of scholars who believe Leonardo da Vinci was the inventor. Drawings made by Leonardo of a wheellock mechanism date (depending on the authority) from either the mid-1490s or the first decade of the 16th century. However, a drawing from a book of German inventions (dated 1505) and a 1507 reference to the purchase of a wheellock in Austria may indicate the inventor was an unknown German mechanic instead.[1][2][3]

 

휠락.이라는 방아쇠.가 생기는 소총.이 서기 1500년 직후에 나온걸로 봐. 즉 말야 이건 먼말이냐면. 소총의 시작 아키버스.가 이탈리아 전쟁 시작하는 15세기 말에 나오걸랑. 최초의 소총 모델이라는 스위스 두개 총이 1488년이걸랑. 화승총이라는 매치락.이 나오고, 방아쇠 있는 휠락.이 나온게 바로 나온겨 이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에 있다지만, 이사람도 이탈리아 전쟁의 사람이고. 이 다빈치의 그림은 이백년 후에나 스케치들이 발견이 되고 세상과 격리가 된거걸랑. 저건 다빈치와 상관이 없어. 그래도 유럽엔 수많은 다빈치들이 널린겨.

 

다빈치 라는 이름은 유럽중세 천년.의 대명사 일 뿐이야. 유럽애들은 다빈치.들이 걍 막막 생산이 된겨 이게. 직후에 스냅락.으로 디자인이 더 개량화 되고, 플린트 락.이란 부싯돌 점화제 장착이 서기 1600년 직후야. 걍 바로 막막 티나온겨.

 

Dormían en pie, interrompiendo el sueño, mudándose de un lugar a otro. Todo era poner espías, escuchar centinelas, soplar las cuerdas de los arcabuces, aunque traían pocos, porque todos se servían de pedreñales.

 

돈키호테 제2권째 61장 시작에 나오는 말인데. 돈키호테랑 산초가 바르셀로나.로 향할때 산적 로카.들이랑 만나서 가걸랑. 해서 얘들이 서로 앞서 초병들 보내고 보초들도 세우고, arcabuces 아르카부세스.가 arcabuz 아르카부스. 이게 아키버스.의 스페니쉬.여. 쿠에르다스.가 심지여. 아키버스의 심지.에 불붙여서 불을 밝히는겨 이건. 초롱불로 쓰는겨. 헌데 이게 적었다. 왜냐면 수량이 적어. 왜냐믄 대부분은 아키버스.를 갖고 있지않고 pedreñal 페드레냘. 이란 소총을 갖고 있걸랑.

 

Petronel is a 16th or 17th century firearm, defined by Robert Barret (Theorike and Practike of Modern Warres, 1598) as a horsemans peece. It was the fire-arm which developed on the one hand into the pistol and on the other into the carbine. The name (French petrinel or poitrinal) was given to the weapon either because it was fired with the butt resting against the chest (French poitrineLatin pectus) or it was carried slung from a belt across the chest. Petronels are found with either matchlock or wheellock mechanisms.[1]

The sclopus was the prototype of the petronel. The petronel is a compromise between the harquebus and the pistol

 

페드레냘.이란게 영어로 페트로널. 로버트 바렛.이라는 영국인이 발명한건데. 이건 매치락.에 휠락.도 있걸랑. 헌데 말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페드레냘.은 휠락. 이라서 불을 밝힐 심지가 많지 않았다는거야.

 

저 책이 서기 1615년.이야. 휠락.이 이미 저때 다들 쓰는거고. 매치락.이란 화승총보다 휠락.이란 방아쇠총을 더 썼다는겨 강도들도.

 

 

.

저걸 기억하는게 읽다보니 몇몇은 화승총을 갖고 있고 몇몇은 나팔총을 갖고 있다.로 단순하게 번역하고 끝이여. 대체 뭘 화승총이라 하고 멀 나팔총이라 번역한건지 궁금해서 한번 뒤져봤걸랑. 나팔총이란건 blunderbuss 블런더 버쓰.라는 총구가 넓은 총이야. 전혀 상관이 없고. 저 문맥의 심지 부는 이야기를 전혀 이해 못한 번역이걸랑 저게.

 

.

 

소총의 시작인 핸드 캐논.이라는 수총.도 중국이 먼저야 당연히. 이게 공식은 1298년이야. 헌데 이전 백년전에도 쓴것으로 추정을 해. 유럽애들이 화약이 처음 등장하는게 폭죽.으로 서기 1267년.이야. 유럽이 폭죽으로 화약 처음 쓸때 중국은 천년 먼저 화약 비공식적으로 발명해서리 쟤들 화약 처음 폭죽 쓸때 수총.을 쓰던 애들이 중국이야.

 

화약 처음 접하고 2백년만에 아키버스.를 만들고. 바로 휠락. 스냅락. 플린트락.이라는 방아쇠로 간겨. 중국애들은 이걸 수입한거고. 이게 골때리는겨. 유럽 중세 천년의 힘은 어마무시한거야.

 

.

 

대포.라는 아틸러리.는 고대 발리스타.에 캐터펄트.에 트레뷰셋. 이란 것이 화살.을 대형으로 디자인한 거여 이게.

 

중국이 발리스타. 와 같은 노. 쇠뇌(석궁)가 있었어. 캐터펄트.가 활을 크게 한거야. 활을 크게 만들어서 화살대신 바가지를 단 지침목에 바위를 얹고 시위에 당겨놓고 줄을 푸는거야. 이건 중국에 없어. 중국은 트레뷰셋.이라는 포석기가 있어. 이건 사정거리가 훨 멀리 가. 시소 처럼. 지렛대를 사용해서리 반대방향에 큰 무게를 걸어놓고 땡겨서리 놓으면 이게 손 휘젓듯이 날라가는 거걸랑. 고대 그리스 로마.와 중국이 거의 수준이 같아 이게.

 

거기에 화약. 음청난겨 중국은. 왜냐믄. 춘추전국시대의 영지의 영주들이 서로 경쟁을 하던 시스템이걸랑 이게. 중국은 한나라 통일하고 유교 얹으면서 걍 끝난거야 저 극똥빠닥은. 아무것도 안하는겨 이들은.

 

철갑탄.이란 진천뢰. 하늘을 울리는 포탄.이 금나라.에서 발명을 해. 송나라가 아냐. 금나라야. 몽골애들이 이것까지 들고 송나라랑 전쟁을 하는거야. 화약은 이미 몽골이 중국 들어가기전에 다 익히고 간거야 이게.

 

철갑탄.이란건 소리가 큰 날라가는 탄이야. 이건 수류탄 처럼 터져서 흩어지는 파편이 아냐. 걍 투석기나 포석기로 던져서리 상대 진영에 떨어지면 지멋대로 날라다니는겨 이게.

 

 

Round shot or solid shot or a cannonball or simply ballA solid spherical projectile made, in early times, from dressed stone but, by the 17th century, from iron. The most accurate projectile that could be fired by a smooth-bore cannon, used to batter the wooden hulls of opposing ships, forts, or fixed emplacements, and as a long-range anti-personnel weapon.

 

Shrapnel or spherical case shot An iron anti-personnel projectile containing an interior cavity packed with lead or iron round balls around a small bursting charge of just enough force to break open the thin-walled iron projectile. A powder train in a thin iron sleeve led to a time fuse inserted into a holder at the outer edge or the projectile. The fuse was designed to be ignited by flame from the propellant charge. Ideally the case shot fuse would detonate the central bursting charge when the projectile was six to ten feet above the heads of enemy infantry thereby showering them with the iron balls and fragments of the casing. (Invented 1784 by Lt. Henry Shrapnel, Royal Artillery, Great Britain).

 

Shell An explosive anti-materiel and counter-battery projectile, of iron with a cavity packed with a high explosive bursting charge of powder used to destroy enemy wagons, breastworks, or opposing artillery. Two types of fuses were used—impact fuses that detonated the bursting charge by percussion, and time fuse cut to length measured in seconds and ignited by flame from the propellant charge.[2]

 

탄알.이라는 프로젝틸.은 유형이 그냥 덩어리 캐논볼. 과 터지는 포탄.인 셸. 이야. 포탄.이란게 셸.이야. 이게 소위 수류탄.이야. 셸.안에 화약을 넣어서 터뜨리는겨. 화약을 통한 추진체.로 날라가서. 화약을 넣은 포탄. 셸.이 터지는겨.

 

돌덩이의 탄.이나 금나라에서 발명한 철갑탄.이란 진천뢰.는 라운드 숏. 캐논볼.이라는 둥근 탄이야. 

 

유럽에서는 포에서 쏘는 탄.은 둥근 돌이야. 유럽은 17세기 들어와서 돌 대신 철갑탄을 쏜겨. 이것도 진천뢰.란게 아냐. 걍 주물로 만든 철갑 덩어리야. 

 

슈라프넬 sharpnel 이란건 산탄이야. 이건 공성전이 아니라 사람 살상용 탄알이야. 산탄이야. 총에 산탄을 넣고 한번 사격에 여러발을 쏟아내는겨. 맞힐 확률이 높은거야. 서기 1784년 영국인 헨리 슈라프넬.이 발명해서 슈라프넬 탄.이라고 해.

 

셸. 이란게 포탄.이야. 이전 썰 했듯. 서기 808년에 공식 발견 했다는 화약을 쓸때는 불화살.에 불창.은 화살끝이나 창끝에 화약을 종이나 대나무통에 담아서 심지.를 붙여서 쏘거나 휘두른거야. 즉 초창기엔 작은 폭발에 의한 연소.에 의한 발화.를 목적으로 던지거나 휘두른겨. 이 화약을 발사체 추진체로 활용해서 라운드 숏.이란 둥근 탄들을 쏘는 추진체로 화약이 전환된거고. 이게 핸드 캐논.이라는 수총.이야 화약 발견 후 중국은 서기 1298년 이 공식 기록이지만. 즉 5백년 만에 추진체로 활용을 한거야 화약을. 유럽은 이제 막 폭죽으로 화약을 쓸때. 그리고 추진체로서의 화약활용을 유럽이 대포.로 이걸 활용을 한거야. 이어서 소총.이란 아키버스로 진화를 한거고. 

 

몽골애들이 유럽에 올때는. 공식적 기록으론 핸드 캐논.이 없어. 1241년 헝가리에 올때. 얘들은 이때 철갑탄.을 갖고 온거야 금나라에서 발명한. 이걸로 금나라 송나라랑 전쟁한거고 이걸 들고 유럽에 온거야. 또한 불화살. 불창. 이라는 화이어 애로우에 화이어 랜스.를 쏘고 휘두르면서 기선제압을 했던거고. 중국에서 쓰던 트레뷰셋.이란 중력포석기로 공성전에 활용하고 이 바가지에 철갑탄 얹어서리 쏘아 댔을 꺼고. 

 

백년전쟁 때 프랑스.에서 저걸 캐논볼.이란 라운드 숏. 돌덩어리 쏘는 대포 용으로 저걸 만든겨. 부르고뉴.의 용감공 필리프가. 대포 제조공장을 만들고. 이게 퍼져서 프랑스 코트.에서 대포.를 또 만들어 활용해서리 백년전쟁 후반에 잉글랜드와 부르고뉴.를 상대로 대포를 쏘는겨. 돌덩어리를 프로젝틸 로. 이 백년전쟁은 대포전쟁이야. 이 대포로 부르고뉴 자식들인 현명공 필리프에 용감공 샤를이 헨트 전쟁 등에서 뒬레 흐릿. 몽스메그. 등 돌덩어리 포탄에 이름 붙여서리 저지대 로렌에서 반란을 진압하는거고. 그러면서 프랑스와 독일땅에 이 대포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는겨. 이 기술을 습득한 사람이 메메드2세 오스만에 가서리 콘스탄티노플 함락용 거대한 대포를 만들어주고 비잔틴은 끝난거고.

 

화약을 추진체로 활용하는 대포기술이. 화약이 오자마자 이게 급진전 되는겨 유럽에서. 핸드캐논도 또한 개발했지만. 이게 별거 없걸랑. 오히려 활과 그리 다르지 않아 초창기는. 조준도 어렵거니와 불발도 많고 자체가 위험하고 점화할때. 

 

중국을 추진체로서의 대포.로 활용하는게 유럽이 앞서는겨. 화약이 유럽에 오자마자. 중국은 오백년을 썼으면서 그대로고. 

 

핸드 캐논.에서 대포.를 만들고. 이 기술이 1488 스위스에서 지금 갖고있는 소총 모델이야. 바로 티나오는게 아키버스여. 이탈리아 전쟁 직전에. 서기 1500년 직전에. 명나라가 이 유럽애들 소총을 수입해서 쓰거나 개량해서 만드는겨 이게.

 

 

 

 

그러다가. 대포.에서 쏘는 탄덩어리. 돌을. 이걸 쏴 올려서 단지 성벽을 부스는것 외에. 탄안에 화약을 심어서 상대 진영에 폭발.을 일으키자.는 개념이 나온게 셸 Shell 이야. 화약 초기의 용도로 돌아간겨 다시. 

 

이 시작은 철갑탄.으로 봐. 그렇다고 철갑탄.이 셸.이란 포탄이 아냐. 이 진천뢰.란 포탄.은 터지는거지만 산산조각 나는게 아냐. 걍 탄약 재 넣은 구멍을 추진체로 상대 진영에서 날라다니는 거걸랑. 해서 딱히 라운드 숏.이라는 캐논볼이냐. 아니면 셸.이라는 터지는 포탄이냐 애매할 수도 있걸랑. 걍 돌덩어리 그자체로 보믄 돼. 헌데 이게 힌트가 된겨.

 

bomb is an explosive weapon that uses the exothermic reaction of an explosive material to provide an extremely sudden and violent release of energyDetonations inflict damage principally through ground- and atmosphere-transmitted mechanical stress, the impact and penetration of pressure-driven projectiles, pressure damage, and explosion-generated effects.[1] Bombs have been utilized since the 11th century starting in East Asia.[2]

 

폭탄.과 포탄.을 구분을 해야해. 밤. 이란건 폭탄이야. 대포에서 쏴서 상대에서 폭발로 터지는 건 셸 Shell. 포탄. 이야. 

 

이건 지금에 전문적으로 분류를 다시 한겨. 지금은 대포에서 쏘는 폭발탄.이 셸.이고 수중 대잠수함용은 폭뢰. depth charge. 지뢰.는 랜드마인 land mine. 그리고 비행기 에서 쏟아내는 폭발탄. 미사일로 쏘아대는 비사일앞에 탄두.가 밤 bomb 이라고 해. 이게 폭탄.이야. 

 

爆弾(ばくだん、: Bombe)

炸弹是一种填充有爆炸性物質武器

 

밤.을 일본애들이 폭탄.으로 쓰는거고. 중국애들은 작탄.으로 쓰고. 폭발.은 일본말이고 중국말은 폭작.이라 했고.

 

 

砲弾(ほうだん、shell,cannonball)

炮彈是一種內有負載的投射物

 

포에서 쏘는걸 포탄. 이라고 일본말로 쓰는겨. 중국은 같은 포탄.이지만 한문이 달라. 돌석변.이 아니라 불화변.이야.

 

우리네는 저중에 일본말을 그대로 쓰는거고. 포탄 할때도 돌석변 포.라는 일본한자를 그대로 쓰는거고.

 

 

 

.Explosive bombs were used in East Asia in 1221, by a Jurchen Jin army against a Chinese Song city. Bombs built using bamboo tubes appear in the 11th century.[2] Bombs made of cast iron shells packed with explosive gunpowder date to 13th century China.[6] The term was coined for this bomb (i.e. "thunder-crash bomb") during a Jin dynasty (1115–1234) naval battle of 1231 against the Mongols.[6] The History of Jin 《金史》 (compiled by 1345) states that in 1232, as the Mongol general Subutai (1176–1248) descended on the Jin stronghold of Kaifeng, the defenders had a "thunder-crash bomb" which "consisted of gunpowder put into an iron container ... then when the fuse was lit (and the projectile shot off) there was a great explosion the noise whereof was like thunder, audible for more than thirty miles, and the vegetation was scorched and blasted by the heat over an area of more than half a mou. When hit, even iron armour was quite pierced through."[6] The Song Dynasty (960–1279) official Li Zengbo wrote in 1257 that arsenalsshould have several hundred thousand iron bomb shells available and that when he was in Jingzhou, about one to two thousand were produced each month for dispatch of ten to twenty thousand at a time to Xiangyang and Yingzhou.[6] The Ming Dynasty text Huolongjing describes the use of poisonous gunpowder bombs, including the "wind-and-dust" bomb.[4]

 

포탄.이든 폭탄.이든 이걸 시작을 진천뢰.로 봐. 철갑탄이라는. 금나라에서 만든. 이 후부터 철을 외피로 한 폭탄을 대량으로 만들었다는거야. 이걸 주로 성 주위 해자를 파고 여기다 심어놔 어뢰용으로. 해서 접근하면 심지 이용해 터뜨리던 용도로 쓰는데 이게 타이밍 맞추는게 쉽지 않아 이게.

 

The earliest record of shells being used in combat was by the Republic of Venice at Jadra in 1376. Shells with fuses were used at the 1421 siege of St Boniface in Corsica. These were two hollowed hemispheres of stone or bronze held together by an iron hoop.[3]

Written evidence for early explosive shells in China appears in the early Ming Dynasty (1368–1644) Chinese military manual Huolongjing, compiled by Jiao Yu (fl. 14th to early 15th century) and Liu Bowen (1311–1375) sometime before the latter's death, a preface added by Jiao in 1412.[4] As described in their book, these hollow, gunpowder-packed shells were made of cast iron.[4]At least since the 16th century grenades made of ceramics or glass were in use in Central Europe. A hoard of several hundred ceramic grenades were discovered during building works in front of a bastion of the Bavarian city of IngolstadtGermany dated to the 17th century. Lots of the grenades contained their original blackpowder loads and igniters. Most probably the grenades were intentionally dumped in the moat of the bastion before the year 1723.[5]

 

포탄.이란 셸. 대포로 쏘고 폭발하는 탄.의 시작이 서기 1376년 베네치아에서 부터라는데. 그리고 명나라도 셸.의 기록들이 보이지만. 이게 말야 기술적으로 쉽지 않은겨. 셸.에 다가 심지에 불붙여서 장착을 한 다음에. 캐논에 화약과 셸을 장착하고 점화를 시켜서 셸을 날라보내서리. 그 셸에 있는 타들어간 심지가 상대에 가서 터지는 거걸랑.

 

이게 기술적으로 애매한겨. 일단 셸안에 화약이. 캐논에서 쏘아올릴때 추진체로서의 화약의 충격과 발화로 터지기가 쉬워. 날라가다가 심지에 불이 꺼지거나 해서 불발될 확률도 많아 이게. 

 

이게 말야. 셸.로서의 포탄.으로 대포용으로 쓰는게. 늦어.

 

The use of exploding shells from field artillery became relatively commonplace from early in the 19th century. Until the mid 19th century, shells remained as simple exploding spheres that used gunpowder, set off by a slow burning fuse.

 

나폴레옹 전쟁할때 쓰던 포탄이. 단순한 캐논볼.인지 셸.인지 궁금했걸랑. 러시아 원정가는길에 모스크바 이전 전투에서 러시아에 대포를 쏘걸랑. 저때도 전쟁은 대포전쟁이야. 헌데 저 대포알이 캐논볼인지 셸.인지 이게 어디 딱히 언급이 없더만. 톨스토이도 이걸 제대로 말을 안하고.

 

나폴레옹이 쏘던 탄.은 그냥 라운드 숏. 캐논볼.이야. 셸.이 아냐 이게.

 

저 셸.이란 포탄.은 19세기 초.에나 와서야 이걸 쓰게 되는겨. 이전에는 대개 대포하면. 걍 돌덩어리에 쇳덩어리야 이게.

 

이게 초기엔 공성전에 성벽 깨부수기로 쓰다가. 화약 추진력과 대포 기능이 향상 대면서. 더 먼거리를 막막 쏘면서 야전에서 살상용으로 쏘는겨. 해서 재수없으면 걍 대포탄 덩어리에 휩쓸려 가는거고.

 

그래서 말야. 고대에서 중세까지의 해전. 이란게. 역시나 배에 투석기.나 포석기. 라는 캐터펄트.나 트레뷰셋.을 실어서리 돌덩어리 쇳덩어리를 상대 배에 던지는건데. 이건 정말 맞추기가 쉽지 않아. 제대로 한방 맞으면 침몰하는겨 이건. 해서 바다에서 발리스타.라는 석궁.쇠뇌 나. 화살로 쏘아 대다가. 궁극은 상대 배를 걸어서리 넘어가서 멜레. 백병전으로 하는겨. 이때 배의 선박 제조 기술에 노잡이들의 기능.이 더 월등한 쪽이 상대 배를 잡을 능력이 되는가 이고 부딪혀도 견딜 수준의 배기술이 우월하면 해전이 강한거야. 

 

송나라.가 해전할때 투석기에 돌대신 폭발하는 밤. bomb 을 실어서 이걸로 해전을 해. 서기 1129년. 이게 아마 진천뢰.일꺼야 이게. 또는 철갑탄이 터지게 끔 외피를 얇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 이건 배에 불내기 위함이야. 해전에서 활싸움은 위력이 약해. 해전은 이게 육지전 보다 애매한겨. 이건 상대 배를 침몰시키는게 목적이야. 명중 시키는게 쉽지 않아 이게. 직선 포탄.도 힘든데 하물며 투석기 포석기.도 이게 물리적 힘이걸랑. 배위에서 이게 쉽지 않은겨. 화약 재놓은 포탄이 슬쩍 지나가서 불지르는 확률이 높은겨 이게.

 

메이지때 막부랑 삿쵸애들이 싸울때 해전을 하걸랑 또한. 초창기에. 이때 어록이. 서로 배위에서 일이천발을 쏘아댔는데. 서로 한발도 못맞혔다고 하걸랑. 

 

얘들이 해전에서 머 전법이 일자 전법 갈짓자에 학익진 이 말하기 쉽고 썰풀기 쉽고 하지만. 개소리야 저게. 의미가 없어 상대 배를 맞추지 않는한.

 

Volley fire, as a military tactic, is in its simplest form the concept of having soldiers shoot in turns.[1] In practice, it often consists of having a line of soldiers all fire their weapons simultaneously at the enemy forces on command. This is usually to make up for the inaccuracy, slow rate of fire, and limited range of a weapon which requires extensive effort to reload. The volley fire, specifically the musketry volley technique, also known as the countermarch, requires lines of soldiers to fire on command and march back into a column to reload while the next row shoots and, hence, repeat fire. While this tactic is usually associated with Dutch military thinkers in the late 16th century, its principles have been applied to crossbow infantry since at least the Tang dynasty.[2]

 

당시 소총.도 매치락.이야. 화승총이란게. 쏘고나서 다시 화약 을 총구통해 쑤셔넣고 탄알 넣어서. 꽂을대. 이게 원통형이야 끝이. 탄알을 감싸서 화약을 잘 디뎌야해. 이게 시간이 오래가. 활은 걍 쏘고 바로 쏘면 되걸랑. 더하여. 이게 불발율도 높고, 맞추기가 쉽지 않아. 활과 다를게 없어 이게. 걍 막막 쏴야 하걸랑. 해서 말야. 동시에 같이 쏘는겨. 이게 발리 퐈이어.라고 해. 화승총.이라는 아키버스.는 다들 전열해서 동시에 쏘는겨. 피격율을 높이기 위해. 이게 대표적인게 노부나가.의 나가시노 전투야. 얘가 개발한 전법이 아니라, 이건 그당시 화승총을 쓰던 상식인거야 이게.

 

똑같이 말야. 해전에도 발리 퐈이어.가 맞는거야. 이게 이순신.이 똑똑한겨. 이게 실록의 거북선 이야기때 나오는 掩圍則火銃齊發 화총제발. 제발. 동시에 일제히 발사하다. 발리 파이어.가 일종의 제발. 이여. 

 

 

이 사가들이. 해전에 대한 사고. 전쟁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리. 저 기사 한줄도 먼말인지 모르는데 이들이. 해전의 백병전에 대한 개념도 없어서 거북선의 의미인 데크 갑판에 칼 송곳 꽂은 의미를 몰라. 거북선의 모형이 신비한듯 못밝혔다 해대고. 걍 저 실록 기록만 봐도 뻔한걸 뭔 조나게 대단한듯이.

 

저기서. 앞뒤로 총혈. 대포를 만들고. 또한 양옆으로 여섯 총혈씩. 총 14개의 포를 실은겨. 그리고 거기 한문이. 일제. 동시에 사격을 한다 하걸랑. 한쪽에 쏠때도. 옆면의 여섯 포.를 동시에 쏘는거야 이게. 여섯 개가 한셋트로 움직이는겨. 이게 맞을 확율이 높은겨. 저게 이순신 해전의 힘이야 또한.

 

 

러일전.에서 가장 극적인게. 육지에선 끔찍한 203 고지전.이지만. 바다에선 가장 극적인게 발틱함대와의 전쟁이야.

 

東郷 平八郎(とうごう へいはちろう、弘化4年12月22日1848年1月27日) - 昭和9年(1934年5月30日)は、日本幕末から昭和時代初めの武士薩摩藩士)、海軍軍人。最終階級元帥海軍大将日清戦争では「浪速艦長として高陞号事件に対処。日露戦争では連合艦隊司令長官として指揮を執り日本海海戦での完勝により国内外で英雄視され、「陸の大山海の東郷」「アドミラル・トーゴー」「東洋のネルソン」と呼ばれた。各地の東郷神社に名を残す。位階従一位勲位大勲位功級功一級爵位侯爵

 

이때 일본애들 사령관이 도고 헤이하치로.걸랑. 이사람은 정말 인정해 줘야해. 리더의 품.을 보여줘. 얘는. 얜 마음 크기 자체가 차원이 달라 애들 지휘하는데. 전법이 좋은게 아냐. 앞에서. 중심에서. 걍 버티는겨. 애들이 쫄지 않게. 정신적인 지주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秋山 真之(あきやま さねゆき、旧字体: 秋山 眞之、慶応4年3月20日1868年4月12日) - 大正7年(1918年2月4日)は、日本海軍軍人。最終階級は海軍中将位階勲等功級従四位勲二等功三級。勲二等旭日重光章、功三級金鵄勲章を授与された。通称は淳五郎(じゅんごろう)。

 

일본 해군의 작전.은 아키야마 사네유키. 이인간이 짠겨. 저 전쟁할때 나이 36세야. 

 

秋山 好古(あきやま よしふる、安政6年1月7日1859年2月9日)- 昭和5年(1930年11月4日)は、日本陸軍軍人。最終階級及び位階勲等功級陸軍大将従二位勲一等功二級。通称は信三郎。予備役編入後は郷里の愛媛県松山市に戻り、私立北予中学校(現在の愛媛県立松山北高等学校)の校長を死去の半年前まで務めた[1]

 

사네유키.의 형이 요시후루. 9살 위 형이야. 사네유키.가 이 형 집에서 도쿄생활을 해. 단칸방에서 밥이 말야 오직 밥과 단무지여. 저 요시후루.가 최후의 사무라이여. 유럽의 코사크. 나폴레옹도 벌벌 떨게했던 코사크 기병들을 만주에서 조진게 이 요시후루.의 기병대야. 러일전 끝나고 고향가서 중학교 교장하다가 전쟁 후유증으로 다리 절단수술중에 죽어. 아 이인간들 멋져 .

 

사네유키. 동생이 해사를 가서. 도고 밑에서 함대를 얘가 지휘하는겨. 

 

얘가 말야. 자기 함대들을 일렬로 세워서리. 포를 쏠때. 일제사격을 시킨겨. 

 

러일전의 해전.이 증기선으로 함대를 갖춰서리 해전을 하는 시작이야 이게. 증기선으로 전쟁을 이전에 해본적이 없어. 증기기관 제임스 와트. 특허가 1769년이야. 나폴레옹 출생할때야. 나폴레옹이 있을때 증기선이 개발이 된겨. 이걸 전쟁에서 제대로 써먹은건 러일전쟁이야. 캐논에 셸.을 배에 장착한것도 저때야 저게.

 

일본애들이 또한 자체적으로 개발한게 셸.이야 자기들만의. 이 셸.은 강력한 연소작용을 일으키며 터지면서 날라가걸랑.

 

일제사격. 제발. 이란 개념이 없었어 저 때까지만 해도. 대포로. 

 

이걸로 러시아의 기함. 선두 지휘 배.를 맞추는겨. 그것도 사령관실을. 러일전.은 이 한방.으로 께임이 끝난거야. 

 

기함이 무너지면, 이건 끝난겨. 전쟁중에 짱이 죽으면 끝난겨. 국가에 짱이 허섭하면 그건 국가가 아냐. 이 리더란게 중요한겨 이게. 분수효과에 민중역사. 저건 인간사 문명사 우주사에 없는 망상소설 픽션이야.

 

 

사네유키.가 러일전.후 이사람이 미쳐. 종교에 빠져. 일단 무수히 자기들도 죽걸랑. 그 죄책감에. 해전이란건 포전이야. 사상자의 흔적이 육지보다 더 참혹한겨 이게. 

 

저 한방.이 일본애들에겐 신이 내린 한방이야. 저건 우연도 그런 우연이 없다고 생각하는겨. 완전히 재수로 저 한방 때문에 일본.이 러시아.를 이겼다고 앤 생각하걸랑. 헌데 저 한방으로 일본이 러시아를 이긴게 맞긴 맞아 ㅋㅋㅋ

 

헌데 사네유키.는 저게 완전히 재수.에 자기의 자유의지 가 아니라, 신에 의함으로 돌리는겨. 이 세상은 자유의지가 아닌 필연의 힘으로 굴러가는구나. 자기 자식들에게도 머리깍고 중이 되라 하걸랑. 얜 일찍 죽어 그래서.

 

헌데 말이지. 저 한방.은 절대 우연이 아냐.

 

얜 저걸. 이순신.의 앞뒤 총포들.에 양옆 여섯포씩.으로 일제. 일제히 쏘다. 발리 퐈이어. 이걸 본거야.

 

얘들은 이때 자기들 왜구의 배기술에 이순신도 연구해. 마산 앞바다에서 러시아 대비 대기할때도, 이순신 이시여 일본 우리네 도와주소서. 막막 빌어. 얘들은 재밌는 애들이야 이게. 조선들 로서는 상상도 못해. 이 깝깝 한이들. 오직 젹폐 놀이 외엔 할 줄 아는게 없는 이들. 그러면서 힘없는 상대 찢어죽이기 이들은 말야. 개성 평양.으로 토끼면서도. 탄핵 해.  이유가 머냐. 막막 물어봐. 헌데 결국 인간이 원래 안좋다느니 소문이 안좋다느니. 전혀 당시 전쟁상황과 상관이 없는 이유로. 이.들은 틈만나면 상대 탄핵에 죽이기. 참 그야말로 개 쓰레기 .들이야 이 조선 오백년 개.들. 저 전쟁 와중에 도망다니면서도 저 짓 하물며 이전엔 벌써 정여립껀으로 동인들 조오오온나게 죽이고. 이전엔 사화들로 조오오온나게 죽이고. 막상 말야. 외적이 왔는데. 군사지도자들이 없는겨 . 다 죽여서. 저 짓을 구한말 까지 하는겨. 그러면서 이딴 시선은 일제 식민사관이래. 

 

 

이순신.의 자유의지를 평가하는건. 멜레.라는 해전 백병전 대비해서 갑판을 꾸민거에. 저 일제 사격이야. 그 외의 선박 제조 기술에 화약과 포탄.은 이순신께 아냐. 이건 고려까지의 문명의 힘이야. 

 

저 캐논을 발포를 14개를 동시에 쏘는건 배가 튼튼한겨. 지중해 해전 이야기를 보더라도. 대포를 서너개를 실어서 쏘는 거지. 저렇게 14개 까지 실지를 못해. 그만큼 선박 제조기술이 좋은겨 저당시. 그리고 바지선.이란 평옥선을 저런식으로 활용한거야. 바지선.은 이전 프랑스 영국 이야기에서 프랑스가 18세기에 나폴레옹전에 영국침략용으로 만들다 할때. 이거 역시 사병들을 실어날으기 용으로 만든겨. 이건 해전용이 아냐. 헌데 이걸 이순신은 포를 14개를 동시에 쓰는 용도로 이걸 만든겨. 그리고 발리 파이어.라는 일제사격. 이게 이순신 해전의 힘이야.

 

일본애들이 4백여척에 수십명 해서 일차로 만명.이 건너다 할때. 얘들 배들은 걍 실어 태우고. 다시 가서리 또 실어나르는겨 이게. 저 사백여척으로 계속 실어나르는겨. 당연히 명나라 치러 북경엘 못가. 만명 실어나르고 다시 다녀 오는 사이 그 만명 다 뒈지는겨. 지금처럼 수송함이 있어서리 실어나르는게 아니라 걍 쪽배로 리 왔다갔다 하는겨 저게.

 

저건 코메딘겨. 어드래 저런 일본애들에게 말야. 보름도 안되서 지 수도를 버리고. 두달도 안되서 평양에 오고.

 

명나라 조정에서 의심을 해. 조선이 일본들 앞세우고 같이 쳐들어오나부다. 저게 말이 되는가. 

 

ㅋㅋㅋ.

 

정말 말도 안되는겨. 저게. 해서 중국 코트에서 직접 평양에를 가. 두눈으로 애들 다 만나보고. 아 진짜네 저거. 그리곤 파병해주는겨. 저 임란이란건 코메디 중에 코메디야. 세계사에 저런 전쟁은 없어. 호란도 역시나. 구한말도 역시나. 세상사에 저런 일은 말야. 그 어디에도 없어. 하물며 저딴이들을 찬양하는 위대한 조선 21세기. 정말 웃기지도 않고 말야. 정신병동이야 여기가. 

 

아 이 조선만 잠깐 언급하면 말이 막 막 새민서리 딴길로 해매는데. 먼얘기한겨 이거.

 

해서. 캐논볼.이라는 라운드 숏. 과 셸.이란 포탄.은 다른거야. 더하여 밤.이란 폭탄은 쏘는 기계가 다른거고.

 

이 화약.이 현대문명의 기초야. 화약은 연소.의 다음이고. 이 연소.가 또한 산업혁명의 시작이고.

 

이에 대한 모든건. 중국이 천년을 앞섰어. 헌데 유럽애들은 저걸 보자마자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가는겨. 이게 중세 유럽 천년의 힘이야.

 

연소.와 폭발.의 연구로 더 가는게 로켓 개발에. 핵폭발.에 원자력.이야. 이 원자력.이란건 다음 문명을 여는 핵중에 핵이야 이게. 이걸. 원자력은 적폐 하면서리 막아. ㅋㅋㅋ. 얘들은 숨통을 아주 끊는겨 지금. 문꽈가 아주 이 땅빠닥을 개쓰레기 똥떵어리 조선으로 빠꾸를 시키는거지. 

 

저 중심의 인간이 알프레드 노벨.이야. 이 노벨의 상이 현대 문명에 기여한 상의 이름이고. 노벨.이란 이름은 문명의 대명사가 된거야. 문명의 대명사.는 저 연소.를 바탕으로 둔 폭발.인거고.

 

노벨상 중의 노벨상.은 문학상인거야. 문학상이 저수지야. 문학이 우물이야 사유의. 

 

일본애들이 노벨상이 20여개라느니 할때도 문학상이 몇개냐 얘들이. 이 우물로 물리화학등이 나온거고.

 

이땅은. 문학. 이란게 없는거고. 해서 자연과학 노벨상.들이 나올 수가 없는거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