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4월 14일 계묘 1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14일 왜적이 군사를 일으켜 부산진을 함락시켜 부사 정발과 송상현이 전사하다


14일 왜적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 침략해 와서 부산진(釜山鎭)을 함락시켰는데 첨사(僉使) 정발(鄭潑)이 전사하고, 이어 동래부(東萊府)가 함락되면서 부사 송상현(宋象賢)도 전사하였다. 평수길(平秀吉)이 우리 나라가 그들에게 명나라를 공격하는 길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침내 여러 섬의 군사 20만을 징발하여 직접 거느리고 일기도(一岐島)까지 이르러 평수가(平秀家) 등 36명의 장수에게 나누어 거느리게 하고, 대마 도주 평의지(平義智)와 평조신(平調信)·행장(行長)·현소(玄蘇)를 향도로 삼아 4∼5만 척의 배로 바다를 뒤덮고 와 이 달 13일 새벽 안개를 틈타 바다를 건너왔다. 부산에서 망을 보던 관리가 처음에 먼저 온 4백여 척을 보고 주진(主鎭)에 전보(轉報)하였는데, 변장(邊將)이 단지 처음 보고받은 것을 근거로 이를 실제 수효로 여겼다. 그리하여 병사(兵使)가 장계하기를 ‘적의 배가 4백 척이 채 못되는데 한 척에 실은 인원이 수십 명에 불과하니 그 대략을 계산하면 약 만 명쯤 될 것이다.’고 하였으므로, 조정에서도 그렇게 여겼다.

 

임진왜란.은 음력 4월 13일.에 일본애들이 상륙을 해. 이달 그믐에 선조와 코트. 조정은 새벽에 튀는겨. 임란 1592년 4월의 기사는 저 14일 기사 하나로 퉁쳐. 이달 그믐에 토끼다.라 기록을 하걸랑. 

 

이 조선 이란 이들은. 인류사 문명사.에 있어 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쓰레기 중에 쓰레기 들인데.

 

다이너스티.라는 조.를 이름으로 하는 치자들이 수도를 버리고 튀면 그 조.는 망. 이란 글자를 부여하걸랑. 인류사에 자기 수도를 버리고 튄 이들은 없어 없어. 양아치 들이나 망한거 인정하고 리더가 튀걸랑. 걍 죽기 싫어서리 도망가는겨 칭기스칸 올때 화리즘 샤.의 아빠와 아들처럼. 이 애비는 바로 죽고 아들 자랄 앗딘.의 지랄.은 도망중에도 몽골애들을 쳐부스기나 하지. 이 조선 들은 천자의 나라께서 도와줄껴 함시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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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말야 새벽에 수도를 버리고 튀어. 민들이 열받아서 불을 질러. 헌데 말야. 지금 사학계 들이 하는말, 저날은 비가왔는데 불을 지를 수 있으까. 일본들이 불낸겨 저거. 일본 나뻐. ㅋㅋㅋ. 참 끔찍한건데 이땅빠닥 사하계 란 그야말로 민족의 등뿔들의 선두주자들.

 

이 조선 들이 말야. 개성에로 가잖니. 또 바로 토껴. 마치 계속 있을 듯 개성민들 안심시키다가.

 

평양으로 가. 또 토낄라해. 평양민들이 반발해. 군부대를 동원해서리 우리임금 도망간다며 소동부리는 민들을

 

죽여.

 

 

이건 정확한 팩트야.

 

그리고. 또 토껴.

 

 

인간사에 말야, 수메르 이후 8천년의 문명사.에 저따위 개 쓰레기 .들은, 있어본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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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 자기 수도를 버리고 여전히 조.를 갖고 간 .들은 저 조선 들이 유일하걸랑.

 

인류사에 자기 수도를 두 번 버리고도 여전히 왕조를 유지한 .들은 저 조선 들이 유일하걸랑.

 

인류사에 자기 수도 두번 버리고, 이어서리 자기 권력을 외적에게, 전쟁 한번 안하고 넘겨준 이들은 저 조선들이 유일하걸랑.

 

인류사에 자기 수도 두번 버리고, 전쟁 한번 없이 권력을 주고도, 조선 조선 위대한 조선. 하는 땅빠닥은. 이 망상질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지폐와 동전이란 화폐로 모시는 땅빠닥은.

 

이 조선 민국.이 유일하걸랑.

 

참 이 조선 이란 두글자는. 세상에서 가장 드러운 두글자인데 그래서.

 

정신병자 .들의 땅인데 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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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인물 이 없걸랑. 사람죽이기 좋아하는 땅이걸랑. 상대는 소인배요 적폐요 손가락질로 오백년 인물 죽이기를 낙으로 살아온 저 개쓰레기 .들의 땅이걸랑. 그게 여전한거걸랑. 이럼 또 일제식민사관에 쪄든 적폐네 어찌 위대한 조선을 적폐놀이 오백년 했다고 해대냐 적폐야 하는 방패 쉴드질 하는 땅빠닥이걸랑 여기가.

 

인물이 없어서리, 그나마 하나 건진게 이순신.이란 이름이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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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 5월 1일 경신 20번째기사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전라 수군 절도사 이순신이 거제 앞 나루에서 왜적을 격파하다. 

전라 수군 절도사 이순신(李舜臣)이 경상도에 구원하러 가서 거제(巨濟) 앞 나루에서 왜병을 격파하였다. 왜병들이 바다를 건너오자 경상 우수사 원균(元均)은 대적할 수 없는 형세임을 알고 전함(戰艦)과 전구(戰具)를 모두 물에 침몰시키고 수군 1만여 명을 해산시키고 나서 혼자 옥포 만호(玉浦萬戶) 이운룡(李雲龍)과 영등포 만호(永登浦萬戶) 우치적(禹致績)과 남해현(南海縣) 앞에 머물면서 육지를 찾아 적을 피하려고 하였다 
....
언양 현감(彦陽縣監) 어영담(魚泳潭)이 수로(水路)의 향도가 되기를 자청하여 앞장서서 마침내 거제 앞 바다에서 원균과 만났다. 원균이 운룡과 치적을 선봉으로 삼고 옥포에 이르렀는데, 왜선 30척을 만나 진격하여 대파시키니 남은 적은 육지로 올라가 도망하였다. 이에 그들의 배를 모두 불태우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노량진(鷺梁津)에서 싸워 적선 13척을 불태우니 적이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이 전투에서 순신은 왼쪽 어깨에 탄환을 맞았는데도 종일 전투를 독려하다가 전투가 끝나고서야 비로소 사람을 시켜 칼끝으로 탄환을 파내게 하니 군중(軍中)에서는 그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均使雲龍、致績爲先鋒, 到玉浦遇倭船三十隻, 進擊大破之, 餘賊登陸而走, 盡焚其船而還。 復戰于鷺梁津, 燒賊船十三隻, 賊皆溺死。 是戰也, 舜臣左肩中丸, 猶終日督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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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순신 하면 말야. 뭔 갑툭튀로 슈퍼맨이 등장해서리 인류사 전무후무한 위인입네. 하걸랑. 코메디도 이따위 코메디가 없는데 이게. 여긴 이성이 없는 땅빠닥이걸랑 이게. 논리가 없어. 신을 죽인 땅빠닥이다보니 인문학이 무당질이 되어버린겨 또한. 

 

저기서, 도망간 원균이 합류하고 이순신네랑 합해서리 왜선 30척을 대파하고 왜는 도망가서리 왜선을 불에 태우고 돌아오고 노량진에선 13척을 불태워서 다 빠져 죽었다.

 

三十隻, 進擊大破之, 餘賊登陸而走, 盡焚其船而還。 復戰于鷺梁津, 燒賊船十三隻, 賊皆溺死

 

실록 원문을 보면 전격해서 대파했다. 그 왜선을 분. 불태운겨. 노량진엔 소적선. 이것도 불태운겨. 

 

저걸 진격해서 대파했다고 해서. 마치 영화에 머 왜선을 배로 다 부딪혀서 뽀개는 영상을 만드는데 임진왜란은.

 

고증도 안된 장면이고, 이땅바닥은 하기사 고증받을 사학자가 없는거걸랑 이게.

 

 

 

해전.에 대한 기본 이해가 안된겨 저따위 영상은. 우리네는 역사를 영화 드라마로 공부하는 참 시안한 딱빠닥이걸랑.

 

 

영화 드라마로 본 장면으로 미디어에서 정론을 펼치는, 참 기가 막힌 땅빠닥이걸랑 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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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화약 이야기할때 썰했듯이 말야. 해전.이란건 박치기가 아녀. 바다위 백병전이야. 화약이 나오기 전까지는.

 

지중해 이탈리아의 해전은 저기에 더하여 기중기에 집게를 올려서리 상대의 돛을 부스고 배를 잡아 훼손하는겨 이게.

 

더하여 캐터펄트. 트레뷰셋.이라는 투석기 포석기.의 바가지에 돌을 얹어서리 상대배에 쏘아 올려서리 맞으면 재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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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해전.에서의 중심은. 화약이야. 이 화약은 고려의 최무선.의 연장인거고. 더하여 배. 이 배의 기술도 신라에 고려를 이는 역사의 쌓임 일 뿐인거고. 

 

학익진이 어떻고 판옥선이 위대하고 저쩌고는 개소리고 . 이땅빠닥은 모든게 사기인데.

 

 

 

쪽바리 배들은 바닥이 뾰족에 막막 대열없이 돌아댕기는걸 속도없는 판옥선으로 학익 정렬해서 막 잡는겨? ㅋㅋㅋ. 속도 없는 평저선이 학날개 편성하면 갑땨기 막 선단에 학의 신끼가 빙의가 되서 날라댕기는겨? ㅋㅋㅋ. 참 코메디도 . 설혹 모아 넣었어. 그다음은? 바다 한가운데서? 막막 부딪히능겨? ㅋㅋ. 진격해서 막 영화처럼 깨부셔? ㅋㅋㅋ.

 

 

픽션으로 만들어도 저따위보단 낫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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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순신은 전투 장비를 크게 정비하면서 자의로 거북선을 만들었다. 이 제도는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十字)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 그리고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입은 대포 구멍으로 활용하였으며 뒤에는 거북의 꼬리를 만들어 꼬리 밑에 총 구멍을 설치하였다. 좌우에도 총 구멍이 각각 여섯 개가 있었으며, 군사는 모두 그 밑에 숨어 있도록 하였다. 사면으로 포를 쏠 수 있게 하였고 전후 좌우로 이동하는 것이 나는 것처럼 빨랐다. 싸울 때에는 거적이나 풀로 덮어 송곳과 칼날이 드러나지 않게 하였는데, 적이 뛰어오르면 송곳과 칼에 찔리게 되고 덮쳐 포위하면 화총(火銃)을 일제히 쏘았다. 그리하여 적선 속을 횡행(橫行)하는데도 아군은 손상을 입지 않은 채 가는 곳마다 바람에 쓸리듯 적선을 격파하였으므로 언제나 승리하였다. 조정에서는 순신의 승보를 보고 상으로 가선 대부(嘉善大夫)를 가자(加資)하였다.


是戰也, 舜臣左肩中丸, 猶終日督戰。 戰罷, 始使人以刀尖挑出, 軍中始知之。 先是, 舜臣大修戰備, 自以意造龜船, 其制船上鋪板如龜, 背上有十字細路, 纔容我人通行, 餘皆列揷刀、錐。 前作龍頭, 口爲銃穴, 後爲龜尾, 尾下有銃穴。 左右各有銃穴六, 藏兵其底, 四面發砲, 進退縱橫, 捷速如飛。 戰時覆以編茅, 使錐、刀不露, 賊超登, 則掐于錐、刀, 掩圍則火銃齊發。 橫行賊船中, 我軍無所損, 而所向披靡, 以此常勝。 朝廷見舜臣捷報, 賞加嘉善。

 

저 5월 1일짜 기사에 이어서리 쓴겨 말미에. 거북선.이야기가 여기에 등장해 이걸로 거북선 형태를 추측하는거고. 저게 번역된게 대포구멍에 총에 화총 어쩌고 하는데. 원문을 보면 말야. 배위에 鋪板 포판. 펼친 판대기.를 여구. 거북이 처럼 만들었다. 이게 별게 아니라. 갑판. 데크를 만든겨. 이 갑판을 열십자 길로 낸거고. 이 좁은 길로만 선원들이 돌아댕기고 나머지는 빽빽하게 칼과 송곳으로 꽂은겨. 이물, 뱃머리에는 용대가리.란걸 만들었는데 이게 다른게 아니라, 총혈. 총의 구멍을 낸 입형상이란거고. 고물, 꼬리부분에도 총혈. 총구멍인거고. 저걸 번역을 머리는 대포구멍 꼬리는 총구멍. 

 

똑같은 총혈.이야. 죄우에도 총혈 각각 여섯. 병사가 바닥에 있어서 다들. 머리 꼬리 좌우 사면에서 발포.를 하는겨. 진퇴종횡하는게 첩속 여비. 나는듯이.는 소설이고. 

 

칼과 송곳을 드러내게 꽂은게 아냐, 編茅. 편모. 풀로 엮어서리 노출을 안시킨겨. 해서 적들이 걍 뛰어 올라올때 찔려서리 못움직이는겨 저게. 적의 배가 둘러쌓면 掩圍則火銃齊發. 화총을 쏘아댄거야.  그것도 제발. 齊發. 동시에 사면에서 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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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전은 멜레. 멜레이. 백병전이야. 이게 기본이야. 이것에 대비한 걸로 거북선을 만든겨. 거북선은 불뿜는거에서 형상을 딴게 아냐. 저 십자로 길.과 그외 칼 송곳으로 위장한 갑판.이야. 이건 머리 잘 쓴겨. 적군이 이 배에 못올라와. 처음 싸울땐 멋모르고 올라가서 찔려 다치고, 다음부턴 십자로 길로 다녀서리 백병전 하는거지만. 그래서 말야 적군이 불리한겨 이게, 백병전을 적군배에서 하는겨. 아군은 좁은 길에서 넘어 오는 적을 일대일로 싸우면 되고.

 

 

일본애들 입장에선, 저 거북선 상대하기가 골치아픈겨. 

 

이길라면, 상대의 배에 올라타서 싸워서 이기는거야. 헌데 올라갈 수가 없어. 떼거지로 올라갈 수도 없어. 그럼 상대가 자기 배에 올라타서 싸우자 할 수밖에 없는겨 아 이건 자기 배 다치는거걸랑. 이럴 수도 없어 전략 짜는데.

 

문제는 말야. 화약이고. 저 총이라는 화총.이야.

 

 

화약 이야기 하면서 썰했지만. 총.이란건 지금 쓰는 말의 총.이 아냐. 일본애들 번역때문에 저런 번역이 헷갈려진건데. 포.를 대총.으로 번역하면서 지금 총을 소총.하고, 대총은 대포로 바뀌게 되면서 대총은 사라지고 소총.에 총만 남아서리 총.하면 소총으로 알걸랑.

 

저건 포야 포. 

 

 

총이란건. 조선시대에 없어. 구한말때 일본들이 저 임란때 쓰던 매치락의 아키버스와 머스킷.을 3백년 지나서리 써보는겨 이게. 히데요시가 대마도에 시켜서리 임란 전에도 조총을 선물로 줘 선조한테. 얘들은 이게 머여 하고 창고에 쑤셔 쳐 박는거고. 운요호 사건후 강화도 조약때도 쿠로다 기요타카.가 신헌이랑 조약맺으면서 대포에 포탄에 육연단총 칠연총. 즉 따발총이랑 리벌버 총에 탄약을 줘. 야 이 니덜 양놈.들한테 먹혀 그러다가. 세상에 이딴게 있어 지금, 제발 좀 정신차려서리 대비해. 신헌.이 고종한테 일본가 우리네 걱정 무지 해줌둥. 이게 실록 기록이야. 

 

 

아무~~것도 안하는겨 저 개 쓰레기.들이. 그리곤 남탓. 지들 욕하면 일제식민사관.

 

 

조선이 고려를 박박 지우걸랑. 왕씨들은 보이는 족족 죽이고, 그게 태종 실록 기록이고., 정권 잡고 20년 지나서도 조오온나게 죽이는겨 고려인들은. 그래도 바닥엔 고려께 살아남은게 말이지. 배. 와 화약. 이야

 

 

전 세계 문명사에서 이전왕조를 다 지우고 자기들만의 이념으로 인간들 개돼지로 만든건 조선.이 유일하걸랑 이게. 

 

고려가 망하고 임란이 2백년 째야. 그나마 고려의 문명이 남은건 배.,와 화약.이야. 

 

 

일본애들이, 유일하게 조선에 뒤진게. 배.와 화약이야.

 

 

이순신.이란 이름은 걍 저 차이.의 상징일 뿐이야. 이순신이 배를 만들고 화약을 만든게 아냐. 걍 고려문명이 잊혀지지 않고 명맥 유지한걸 이순신이 써먹었을 뿐이야.

 

 

16세기 넘어서면서, 유일하게 뒤진게 일본이 배.와 화약이야. 조선이 그렇다고 배.와 화약을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앞선게 아니라. 명나라까지의 중국문명을 잘 훔쳐서리 유지를 한겨. 일본은 저 명까지의 문명의 혜택 중에 배.와 화약.을 습하지 못했던 것 뿐이고.

 

이게 포르투갈 선교사 하비에르(사비에르) 오고부터 저것도 뒤집어 지는거고. 

 

 

배. 라는게 말야. 선박제조기술이, 이건 유럽을 따라갈 수 가 없어. 

 

지중해.라는 건방진듯 작명을 했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때 이들의 삶의 터전은 바다야. 고대 그리스.는 해상무역으로 먹고 산겨 또한. 지중해 해변 곳곳에 해변도시국가들을 만들어. 이전 페니키아.도 무역상인들이야. 북아프리카. 해변으로 가서리 자기들 나라를 만들고 스페인반도까지 가 이들도. 이 중심은 이집트야. 이집트 나일강 하류.가 천국이여. 여기가 이전엔 무역의 중심이야. 

 

지중해 바다바람들이 살벌해 계절별로 풍향별로. 씨로코 Scirocco 리베쵸 Libeccio  미스트랄 Mistral  남풍 서풍 북풍 등 바람 이름들만도 십여개가 돼. 바람을 잘 타기 위해서 돛의 모양도 삼각이 등장해. 돛의 갯수도 제각각이여. 겔리선 노젓는건 기본이야. 바람에 마주해서 이기기 위해 노꾼을 더 쓸 궁리를 해. 노꾼들을 층을 이루는겨. 이게 바이림. bireme 에 트라이림 trireme 이야.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의 전선들은 트라이림. 삼층으로 된 노잡이들의 배야. 

 

배의 갑판. 데크. 라는 저 거북선의 거북등의 그 데크.가 시작은 이 노잡이를 더 쓰기위함이야. 바이림. 2층을 만들기 위해 배에 갑판을 만들고 아래 배바닥이랑 나누는겨 이게. 이게 알렉산드로스 때는 10층 노잡이들배인 데케레스 Deceres 로 전함을 만들고. 심지어 이후엔 40층 노잡이 배도 있다 했잖오. 이 배가 어마어마한 크루즈 저리 가란겨. 층을 앉아서리 50센티로 잡아도 20미터 짜리 배여 이게. 미친겨 이 지중해 문명이란건.

 

그러하다 다시 중세에 갤리선 단층으로 돌아가는겨. 저런 기술로 탐험의 시대때 대서양 지나 인도양 가기 위해서리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카라벨라.와 캐럭선을 만들어서리 아시아로 간겨.

 

기원전 1천년부터만 따져도. 선박 기술이 말야 동양보다 2500년이 앞선겨 16세기엔. 저 선박에 대한 기술 차이는 어마어마 한겨 이게. 정화 원정의 그 배들도 보물선.이란 이름으로 대형선단이 명 초기에 항해를 하지만 말야. 이건 지중해의 선박에 안돼 이게. 그러다가 또한 바로 해금. 바다를 막걸랑 주원장바로 직후에. 지방 영주들도 저 조공무역용 항해가 자기들에게 이득이 전혀 없어. 얘들도 선박제조를 포기해. 정권자체에서 바다를 막아. 이때부터 중국문명은 죽은거야. 하물며 바다기술은 더. 

 

고려는 삼국시대에 통일신라에 고려 장보고에. 이들은 열린문명이었걸랑. 중국이랑 바다로 수시로 왔다갔다 하능겨. 중국의 선박기술이 이땅의 선박기술이 되능겨 당근. 명 이후 부터 뚝 끊기고. 조선은 이후 고려까지의 해양문명 잔재기술로 산거야 이게. 

 

조선은, 세금을 조운선.으로 걷어. 강원도 세금 쌀도. 동해로 모여서리 돌고돌아서리 한강으로 돌아오는겨. 민간업자들의 해양활동은 당근 막아. 명의 해금처럼. 이 조선에겐 자유는 적이야. 자유는 적폐야. 헌데 조운선.을 통해 세금을 걷는겨. 얘들은 바퀴. 를 몰라. 얘들은 길.을 몰라. 길을 내면 자기들 중심 한양으로 쳐들어오걸랑 반란군이 ㅋㅋㅋ. 길을 안내 이 개쓰레기 .들은. 그리고 배.로 세금을 거둬 가. 왕조 차원에서 배.에 관심을 갖을 수 밖에 없는겨 이게. 참 쓰레기 .들인데 이 개.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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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배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간 때는 정권이 수없이 교체되고 정변이 속출하는 등 나라가 크게 흔들렸고, 민간 해양활동은 통제된 반면 수군과 조운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이다.

고려말부터 극성을 부리던 왜구의 세력을 막기 위해 수군제도를 확립하였으며, 세종 1년(1419년)에 상왕()으로서 병권을 쥐고 있던 태종()은 군선 227척과 17,285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세종()대에는 대선(), 중선(), 병선(), 쾌선(), 맹선() 등 829척의 군선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세조()대에는 신숙주의 건의에 따라 군용과 조운에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병조선()이 만들어졌으며, 『경국대전』의 반포와 더불어 대맹선, ·중맹선,·소맹선으로 명칭이 개칭되어 조선전기 대표적인 군선으로 발전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시대의 배 소개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전통한선 복원),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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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애들에겐 안되지만 그 수준이. 그래도 중국이나 조선은 선박에 대한 기술이 있어. 원나라때 몽골애들이 일본 침입할때 고려랑 같이 연합해서 일본 갈때도 그 배.는 고려가 만드는겨. 고려가 지금 마산에서 원나라 애들 실고 갈 배를 만든겨. 이 선박제조 기술은 고려가 세계랑 겨룰만한겨 이게. 이때 고려 충렬왕이 쿠빌라이한테. 제발 좀 배 만드는 품삭이나 줘유~ 하능겨. 쿠빌라이가 아무것도 안주고 걍 만들라 한거걸랑. 하도 징징대서리 좀 주기도 하지만. 하튼고려말부터 이땅은 코메디 그 자첸데 이게.

 

 

일본.은 선박 제조 기술이 허섭한겨 상대적으로.

 

安宅船(あたけぶね)は、室町時代の後期から江戸時代初期にかけて日本で広く用いられた軍船の種別である。

巨体で重厚な武装を施しているため速度は出ないが、戦闘時には数十人の漕ぎ手によって推進されることから小回りがきき、またその巨体には数十人から百数十人の戦闘員が乗り組むことができた。室町時代後期以降の日本の水軍の艦船には、安宅船のほか、小型で快速の関船と関船をさらに軽快にした小早があり、安宅船がその中核を成した。

近代艦種でいえば、安宅船が戦艦に相当し、関船が巡洋艦、小早は駆逐艦に喩えられるともされるが、安宅船・関船・小早の用途としての分担は、戦艦・巡洋艦・駆逐艦のそれとは異なるため、あくまで船体の大きさによる連想であり、比喩としては適切ではない。

 

아타케부네

 

関船(せきぶね)は、日本水軍で中世後半(戦国時代)から近世(江戸時代)にかけて使われた中型の軍用船。大型の安宅船と、小型の小早との間に位置する規模の軍船である。

 

세키부네

 

小早(こはや)は、中世(戦国時代)から近世(江戸時代)にかけて使われた日本の軍用船の種類のひとつで、大型の安宅船と中型の関船とで三分される内で最も小型の軍船を指す。名称の“小早”は、“小型の早船(関船)”という意味である。小早船(こばやぶね)の略ともされる[1]

 

코하야. 16세기에 일본애들의 상선이자 전선이야. 굳이 지금 전함에 순양함 구축함으로 구분하는건 억지고. 걍 똑같은 기능의 크기 차이야. 가장 큰게 안택선(아타케부네). 중간이 관선(세키부네) 가장 작은게 코하야. 

 

 

鉄甲船(てっこうせん)は、戦国時代から江戸時代初期にかけて大型の安宅船に鉄板を張った船。主に織田信長と、豊臣秀吉が建造を命じた鉄甲船が知られる。

 

가장 큰 배.인 아타케부네.에 철갑을 씌우고 포를 설치한게, 철갑선. 텟코우센. 이걸 히데요시.가 임란 준비할때 만들었다.라고 주장하걸랑. 헌데 이게 임란때 활용된게 잘 안보이는겨. 해전용으로 안쓰고 해안을 향해 대포를 쏠때 활용된 듯. 이건 조선과 해전할때 언급이 잘 안돼. 당시 일본에 간 선교사.도 이 철갑선 언급은 없어. 일본배들은 후져.라는 소식을 전할 뿐이걸랑.

 

 

일본애들은 화약을 쿠빌라이.의 일본원정 때 처음 접해봐. 그리곤 없어 거의. 이 기록이. 

 

중국의 수총. 핸드 캐논.을 수입해서 썼던 흔적이 몇개 있을 뿐이야.

 

얘들은. 포르투갈 하비에르.오고 부터. 조총.이랑 대포.가 들어오는겨. 이때의 조총.은 종자도.라는 타네가시마.로 불리는거고. 이건 매치락.의 아키버스.로 추정해. 

 

저당시 명이든 일본이든. 조총이나 대포나. 포르투갈 산.이야. 포르투갈.에서 수입을 하능겨. 포르투갈이 탐험의 시대 시작이야. 포르투갈이 유럽산 물품을 갖고 오는겨. 포르투갈 산.이 단지 포르투갈이 제조한게 아녀. 

 

The first European visitor to reach China by sea was the explorer Jorge Álvares, who arrived in 1513.[16] Merchants first established a trading post in Hong Kong waters at Tamão (present-day Tuen Mun), beginning regular trade with nearby settlements in southern China.[16] Military clashes between the Ming and Portuguese navies followed the expulsion of the Tamão traders in 1521.[17] Despite the trade ban, Portuguese merchants continued to attempt settling on other parts of the Pearl River estuary, finally settling on Macau.[17]

 

배로 중국에 처음 닿은 유럽인은 포르투갈.의 조르제 알바레스. 거시 1513년 5월. 이때 닿은 곳은 홍콩 앞바다의 섬.으로 추정으로 해. 여기서 포르투갈이 중국이랑 무역을 하다가. 전투도 하다가. 마카오.로 거점을 옮기는겨. 이 마카오.의 반도 왼쪽이 송소제 죽은 애산전투.의 애산이고. 오른쪽 만 건너서리 홍콩이여. 

 

The use of Macau as a commercial port dates back to 1535 during the Ming dynasty, when local authorities established a custom house, collecting 20,000 taels in annual custom duties.[8] Sources also call this payment a rent or bribe.[9] In 1554, the custom house was moved to Lampacao likely due to threats of piracy.[8] After the Portuguese helped the Chinese defeat the pirates, they were allowed to settle in Macau.[8][10] By 1557, they established a permanent settlement,[11] paying an annual ground rent of 500 taels.[12] In 1573, the Chinese built the Barrier Gate to regulate traffic and trade. The rent and boundary delimitation showed both the Portuguese subsidiary position to the Ming government and China's tacit acceptance of Macau's de facto foreign occupation. By 1583, the enclave had a municipal government with a Senate Council.[11]

 

포르투갈.이 마카오.에 자리잡은게 서기 1535년.이야 여기서 뇌물조던 세금조던 돈을 내고 자리를 잡아. 그리고 서기 1557년. 중국온지 40년 지나서리 영주권을 갖는겨. 이후 명이 해금정책을 하고 바다무역 금지할때 유일하게 거래할 수 있는 곳이 마카오가 된거야. 

 

명나라던 일본애들이던. 유럽의 젖줄은 이 포르투갈.의 마카오.를 거점으로 하는겨. 

 

일본애들이 임란갈때 포르투갈에서 대포.를 갖고 가려 했는데, 포르투갈이 이때 일본에 대포를 안줘. 포르투갈의 주고객이 또한 명나라걸랑. 명나라 치러간다는데 대포를 못 파는겨.

 

일본애들은 아키버스.라는 화승총 매치락.만 들고 간겨 저걸.

 

고니시.부대가 평양성을 먹는게 음력 6월 중순이야. 부산에 닿고 두달 후여. 선조 .들은 가지마세유 반란하는 민들 죽이고 가는겨.

 

 

그리곤 바로 먹히는겨. 이게 1차야. 다음해 4차 때 이여송이 갖고 온 포르투갈 대포. 로 일본애들이 패하는거야.

 

그리고 그 여세로 쫓아 가서리 벽제관 전투에서 또 조명연합군이 대패하는겨. 포르투갈 대포.를 못갖고 가걸랑. 조선군들이 막 칼만들고 뎀비능겨 이전엔 도망만 다녔다가. 일본들이. 머여 저거. 무뎃포여? 뎃포.가 철포.라는 당시 소총.의 일본말이여. 저때부터 무대뽀.란 말이 생긴거고.

 

이 조선이란 두글자는 무대뽀여 이게. 미개한 .들의 땅. 이념놀이 천국. 개돼지.들.

 

 

 

임란.은 포르투갈 대포 대 포르투갈 아키버스.의 전쟁이여 이게.

 

.

 

저게 아타케부네.라는 안택선.이야 일본애들의 당시 가장 큰 전함.이라는 배.

 

저건 다이묘들이 유람선으로 타는겨 걍. 

 

推進にはも用いたが、戦闘時にはマストを倒して、だけで航行した。艪の数は少ないもので50挺ほどから多いもので150挺以上に及び、50人から200人くらいの漕ぎ手が乗った。大安宅では2人漕ぎの大艪を用いる場合もあった。戦闘員は漕ぎ手と別に乗り組み、やはり数十人から数百人にのぼる。

 

노.가 50-150 개여 양쪽에. 즉 노꾼이 백여명.에 별도로 전투원이 수십인에서 수백명. 이라지만. 저게 배구조가 튼튼하지 않어 저게. 이 큰 것 자체도. 조선의 판옥선보다 못해

 

4월 14일 실록 기사에. 4백여척에 한 배에 수십명.으로 보이다. 해서 대략 만명.으로 추산한다.고 하걸랑.

 

저 안택선.은 걍 대장이 뒤에서 지휘하는 배일뿐이고. 대부분은 세키부네. 코하야. 라는 중선 소형선.에 이 코하야.가 대부분이야. 이걸 임란전에 히데요시 명으로 규슈 북부해변이랑 사카이 에서 조오온나게 급조를 한겨.

 

걍 바다 건너서 부산 갈라고.

 

쟤들은 해전.하러 가는게 아냐. 쪽빼타고 짐실듯 애들 실어서리 걍 줄줄줄줄 건너가는겨.

 

해서 말야. 애덜이 명을 치려면 황해를 건너서 직접 가지 왜 부산거쳐서 힘들게 걸어오냐 하면서 사학자애들이 질문을 던지걸랑. 무시칸겨 그건. 일본들은 바다를 건널 엄두가 안나는겨 자기들 선박 기술로는. 저 인원들을 황해를 건널 엄두를 낼 수가 없어 저게. 저러다가 바다에서 명나라랑 붙으면 끝이걸랑 또한.

 

일본애들은 왜구애들이나 규슈 해변 애들이 쪽배에 노저어서리 약탈에 튀는 거고, 전국시대.는 해전이 없어. 육지전이야. 다이묘들이 배에 관심이 없어. 나중에 이에야스.가 사쓰마를 못치러 가는게 해전을 할 엄두가 안나는겨 이게. 해서 사쓰마 죽이기.는 메이지때 세이난 전쟁으로 죽이는겨. 이때는 가고시마 해안에서 전함으로 대포쏘면서 함락을 하는겨.

 

얘들은 포가 저때 없어. 있어도 걍 명나라애들 수총.을 갓 모방한 것일 뿐이야. 이것도 그림만 알뿐 몰라 얘들. 이건 극비야 그 배합비율은. 

 

그리곤. 이에야스.가 히데요리.네의 반란을 접수하는 오사카 전쟁에서 천수각을 향해 쏘는 포르투갈 대포.로 히데요리네를 진압을 하는겨.

 

 

저 중국.의 탑 시크릿.을 훔쳐갖고 온게 최무선.이여 고려의.

 

최무선(崔茂宣, 고려 충숙왕 12년(1325년) ~ 조선 태조 4년(1395년) 4월 19일)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이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화약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이를 통해 왜구 진압에 큰 역할을 했다.

 

최무선,이 오래 살은겨. 고려 충숙왕. 이면 열선숙혜목정공.의 숙혜목정공. 다섯왕 에 우왕 창왕에 조선 태조 이성계 까지 시절을 지난거야. 고려 사람인겨 이사람이.

..

 

가까스로 최무선은 원의 강남 지방에서 온 염초장 이원(李元)을 통해 화약 제조에 관한 몇 가지 비법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3] 집에서 부리던 종 몇 명에게 그 기술을 배우게 해서 효과를 시험해 보고 난 뒤 최무선은 도당에 자신이 화약을 만들었다며 시험해볼 것을 건의하였지만, 도당에서는 최무선의 말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최무선을 사기꾼이라 부르는 자도 있었다.

 

..

 

문익점 목화 훔치듯이. 원나라 애들한테서 저 기술을 전해들어서 만든거야 이게. 문익점과 최무선이 완전 동시대사람이야. 

 

이 고려.란 나라는 안타까운 나라야 이게. 무신정권과 일본 막부애들 차이인데. 넘어가고. 이것도 긴얘기니. 

 

문명은. 훔치는겨. 카피하는거고. 그 훔치고자 하는 욕구가 쎄야해. 이건 절박함이야. 

 

조선 .들은 절박함이 업어. 이 개.들은. 오직 상대 찢어죽이기 적폐놀이외엔. 그리고 남탓 하면 돼. 남들은 적폐야. 남들은 제국주의고. 그리곤 지들은 성인도덕 군자란 거지. 그럼서 하렘에 유너크 두면서 권력 몇몇만 배떼기 처나오는거고.

 

야, 요즘 김정은이 찬양질 해대는거 보믄 참 기가 막히다 진짜.

 

저.들이 사람.들이냐 저게. 저 사람죽이는 .들을 찬양하는 저.들.

 

 

 

러더. rudder 라는 방향키.의 핀틀 과 거젼. pintle 핀틀.은 고리의 숫놈.이고 거젼.gudgeon 은 고리의 암놈이야. 저게 16세기에 캐럭선 카라벨라선 겔리선.의 방향키에 적용한 제조 기술이야. 

 

저걸 연결고리 를 또한 다른 제조에 쓰는겨. 

 

저런게 공업 제조기술의 바탕이 되는거고. 

 

판옥선.이 위대해서리. 이걸 설명하는거 보믄 말야. 배가 평평해서리 안전성이 있고, 이음을 쇠가 아닌 목재로 이어져서리 일본배보다 튼튼햇다

 

 

참 코메디도 저따위 코메디

 

 

안택선.이라는 아타케부네. 그림을 보면 이물고물이라는 배 앞뒤가 말야. 뾰족하질 않아. 평평해. 

 

저런 배와, 16세기 이전 썰한 겔리선에 카라벨라.에 캐럭선을 비교를 해봐. 이건 말야 비교가 안돼. 

 

조선배와 저 아타케부네.와 그리 디자인은 다를게 없어.

 

flat-bottomed boat is a boat with a flat bottomed, two-chined hull, which allows it to be used in shallow bodies of water, such as rivers, because it is less likely to ground.

The flat hull also makes the boat more stable in calm water, which is good for hunters and anglers. However this design becomes less stable in choppy water. This is because it causes the boat to travel on the water, instead of through it, as a boat with a rounded or V-shaped hull would.

Flat hulls are simple to construct, making them popular with boat-building hobbyists.

In Britain they came to popular notice during the planned French invasion of Britain in 1759, when a large-number of flat-bottomed boats were prepared by the French to ferry their invasion force across the channel and a number were destroyed during the British Raid on Le Havre. The flat-bottoms are mentioned in the song Heart of Oak written by David Garrick during 1759.

 

먼놈의 대단한 기술인양. 걍 바닥이 평범한 배야. 이걸 평저선. 이라고 해. 이건 배의 종류.중 하나일 뿐이야. 이건 속도가 안 나. 걍 안정적이야 평평해서. 배위에서 사냥용 총질 하거나, 물고기 잡이 용이로 쓰는겨. 걍 그뿐이야. 이건 전선.으로 전쟁때 쓸 배가 못돼. 프랑스에서 영국 침입하려할때 이 평저선을 만들다. 이걸 영국애들이 다 파괴해. 이건 바지선이야. 즉 프랑스애들이 해전하려고 지은게 아니라 다수의 인간들 실어날으기 위해 만든겨. 

 

 

 

명종실록 32권, 명종 21년 3월 13일 갑진 3번째기사 1566년 명 가정(嘉靖) 45년 

대신과 비변사가 진·포의 판옥선과 경강의 판옥선에 대해 아뢰다
대신과 비변사가 함께 의논드리기를,

"각처 진·포(鎭浦)의 판옥선(板屋船)은, 처음 설치할 때 그 수효가 많았는데 그 뒤에 점차 줄여 지금은 맹선(艋船)을 약제(略除)하고 판옥선으로 《대전(大典)》에 기재된 맹선의 수효를 채우고 있습니다. 또한 옛날에는 적왜(賊倭)가 다 평선(平船)을 타고 왔으므로 우리 나라에서도 평선을 사용하여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적왜가 다 판옥선을 이용하고 있으니 부득이 판옥선을 사용해야 서로 맞설 수 있으므로 더할 수도 줄일 수도 없는 실정입니다. 다만 《대전》에 기재되지 않은 각처의 판옥선은 민력이 많이 소요되고 폐단 또한 적지 않아서 그 중에 신·구의 것을 분별하고 다시 수효를 줄였는데, 지금 줄인 각처 선척의 수효를 서계하겠습니다.

또한 경강(京江)의 판옥선을 여러 차례 줄여서 지금 15척이 되는데, 수리하고 개조하는 즈음에 그 폐단이 몹시 많으므로 의논하는 이들 중에, 개수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 그 말도 자못 이치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전조(前朝)의 일을 미루어 본다면, 적변을 예기할 수 없고 또 예비 기구가 이미 설치되어 있는 이상, 경솔히 철수시킬 수 없습니다. 경연관이 아뢴 대로 현존한 15척만 보존해 두고 나머지는 더 설비하지 마소서."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판옥선.이 명종때 처음 나와. 저게 판.옥. 이야. 판 위에 옥. 집을 지은겨. 갑판을 만들고 그 위에 설치를 한겨. 왜.에들 배가 평선.이었고 우리네도 평선이어서 이겼다. 헌데 왜가 저걸 더 개조한 판옥선을 만들어서리 우리네도 판옥선으로 대체해서리 이걸 계속 만들고 써야하는데 인력과 비용과 폐단이 적지 않다. 

 

일본애들 배 바닥도 평평해. 더하여 저 판옥선.을 나중 임란 끝무렵에 선조에 보고할때, 판옥선이란건 왜놈 배를 보고 만들었다는 말도 나와. 바닥 평평한 평선에 위에 데크. 갑판을 올리고 그위에 집을 지은게 판옥선이야.

 

 

판옥선이란게 대단한것도 아니고, 왜놈 애들 것을 베낀듯 아닌듯. 한 바지선이야. 조운선으로 식량 실어나르기 좋은 용도일뿐이고. 노략질하고 짐들 많이 실어가기 위한 거고.

 

조선배는 저보다 더 크고, 선박제조를 더 튼튼히 한겨. 이건 이전까지의 선박 제조기술의 힘이야 이게.

 

 

여기에 최무선이 훔쳐서 개발해온 화총.이라는 대포야. 

 

핸드 캐논.이 덩치로 두갈래로 가는겨. 대포.라는 대총.이라는 것으로 시작하다가. 크기가 작아지는 소총.으로 진보를 하는겨. 이 소총.을 정작 중국.은 만들지 못하고 포르투갈 마카오를 통해서 알게된겨 이게. 비공식적으로는 서기 150년 직전에 화약을 알아서리, 유럽애들보다 천년 이상을 화약 을 먼저 개발한 중국이. 정작 소총.은 유럽애들이 먼저야.

 

또한 대포.도 유럽애들꺼를 갖다 쓰는겨. 비교를 해보니 그 수준차가 너무나 나걸랑.

 

유럽애들이 화약을 알게된게 천년 후야. 그리고 2백여년 만에 지금 소총의 시작 아키버스.를 만들고 말야. 걍 급진전하는겨 이 기술이. 기술 원조 중국은 천년동안 거의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저게. 유럽 중세 천년의 힘이야. 

 

엄청난겨 이 유럽 중세 천년이란건. 이 천년의 사유. 이 천년의 운동장. 이제 무슨 아이디어 비슷한것만 떠오르면 저 천년의 운동장에서 몇차원 이상의 문물들이 쏟아지는거야. 이게 유럽애들의 힘이야. 이건 유럽 중세 천년의 힘이야.

 

.

 

조선의 임란 해전.은 저 선박기술의 힘에. 최무선의 화포.가 합해졌을 뿐이야.

 

대신. 얘들은 아키버스.가 없어. 매치락.이라는 화승총이 없어. 50년 전에 일본애들은 유럽애들 만나서리 적극적으로 인사시키고 선교사도 부르고 펙토리.를 만들어줘서리 유럽애들꺼 적극적으로 배우는 반면에.

 

조선은. 유럽인이 오면. 음모야 이건. 적폐야 해외 적폐. 오면 가둬. 못 나가.

 

 

대포.라는게 공성전할때나 써먹는겨. 대포라는건 큰 돌멩이 큰 쇳덩어리를 던져 올리는겨. 

 

이전 투석기.나 포석기.라는 캐터펄트. 트레뷰셋. 대신에 화약을 이용한 추진체일 뿐이야. 해전에서는 필수품 이야. 해전에서 써먹을 때도, 근접해서 쓰는겨 이건. 멀리서 맞추기는 희박한게 해전의 대포싸움이야. 일본애들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어. 배도 후진데다가 얘들은 대포가 약해. 배위에서 대포를 쏜다는건 그만큼 포의 반동을 견디는겨. 저 네개 면에서 14개 포가 동시에 쏘는 반동을 배가 견딜 만큼 조선배는 튼튼한겨. 일본배는 이런 포.나 이 발포를 견딜 만한 선박이 약해.

 

육지에선, 소총의 싸움이야. 조선엔 소총이 없어.

 

더하여 쟤들은 육지에서 전쟁하면서 큰 애들이고. 걍 오기만 하면 도망가는겨 조선은.

 

선조가 한양에서 나와서리 임진강을 건널때. 소위 근위대 라는 경호처.들도 도망가. 

 

조선.은 왕조던 나라던 개도 소도 아닌겨 이건. 아무런 정체성이 없었어 이 조선이란 두글자는.

 

 

 

전 세계사에서

 

전 인류사에서

 

조선.이란 개후진 개쓰레기 똥떵어리 애들은 있어본 적이 없어.

 

조선.이란 애들 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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