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는 연극. 하면 오직 셰익스피어. 걸랑. 이게 참 무식한거야. 햄릿.이 음청나게 대단한 작품인냥 포장이 되고 말야. 

 

이전 세계 유명작가 백선어쩌고 하며 돈키호테.에 다음 햄릿 어쩌고 하지만. 셰익스피어 작품목록에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어쩌고 띄우지만, 한편으론 쟤들도 그만큼 편협한겨 세계적으로. 

 

남들이 대단하다. 하면 같이 대단함둥 해줘야 끼워주걸랑. 

 

헌데 특히나, 이땅바닥은 저게 너무나 너무나 심한겨. 

 

우리네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문학작품 위주로 보는게 말야. 이게 또한 메이지 이후 일본을 통해서 쟤들 이야기를 듣보게 되서리 그 영향이 지금까지 미친건데.

 

일본애들이 메이지때, 가장 먼저 접근한게 프랑스 나폴레옹3세.일때 걸랑. 이때 프랑스로 유학 보낸겨 일본애들이. 이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 보블전쟁에서 패해. 바로 독일로 보내는겨. 그다음엔 영국과 동맹을 맺어. 이 동맹이 월드워 까지 간거야. 원자폭탄 맞고 그래도 일본애들을 봐준건 저 동맹의 역사야 바닥이. 투르크의 터키.를 프랑스가 봐준것과 같이.

 

우리와 일본을 가르는 가장 큰 가름은. 하멜과 벨테브레.인겨. 

 

일본는 포르투갈 하비에르 오고, 오사카 사카이가 유럽애들 배들로 버글버글 한거야 해변이. 

 

조선은. 벨테브레.가 온걸. 포로로 잡고, 얘를 귀화시켜서리 얘한테만 빼먹는거야. 다음에 하멜이 왔어. 벨테브레가 만나면서 눈물을 흘려. 옷이 다 젖어. 이게 기록에 남아있어 이걸 본 사람이. 백석집.에 써 이걸. 

 

여긴 오면 못나가는 곳이오.

 

 

저걸 테레비 돌리다가 며칠전에. 저 조선사 빨고 민주 해대는 사학계 가, 아 쟤 테레비에 보이던데, 원래 말이죠 조선은 외국손님이 오면 융숭하게 대접하고 보내던 곳이었는데, 당시 병란 당하고 조선 정세가 안좋을때 당연히 못보내는 겁니다요. 살살 꼬드겨서리 결혼도 시켜주고 저들 문물을 습득을 한거죠. 참 영특하고 엄청난 조선 님들의 다스림 인듯. 

 

 

참 한심한건데. 이땅바닥은 말야. 저 사학계 애들이. 적폐중에 적폐야 진짜.

 

벨테브레 가 온건 병란 전이야. 인조 직후야 저게. 상관이 없어. 하멜이야 그따위 논리가 될까 말까 겨우. 

 

표류를 하면 대접해서 보냈대. 저때 처음 온 서양인이 마리이. 란 포르투갈인이야. 1582년.이여 임란 십년전이야. 중국 요동사람이랑 같이 배에 타다가 표류되서리, 중국 사신편에 보냈을 뿐이야. 중국이랑 안왔으면 얘도 포로가 된겨 결국.

 

 

다 거짓말이야 저게. 일본들은 그럼 태평성대라서 사비에르를 받고 데지마를 세웠니. 전국시대다 저때. 쟤들이 일본애들 노예장사한다는 이야기에 그리스도 전파로 다 보내도 데지마 만들어서 팩토리 를 유지해준단다 일본들은.

 

 

저게 일본과 조선.을 가르는 가장 큰 분기점이야. 이미 저 전에 서기 1100년 부터 일본이 앞서기 시작한거고, 최씨 무신정권과 일본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세운 가마쿠라 막부 부터 벌어지는겨 조선과 일본의 힘은. 얘들은 막부가 시장을 그냥 둬. 송나라 동전이 화폐로 쓰여. 천황이 이걸 막아라 해도 안들어. 저때부터 일본은 조선은 앞서나가는겨. 그리고 그 절정이 저 하멜 벨테브레.와 데지마.야. 탐험의 시대 16세기.에 일본은 유럽의 최첨단 문명을 삼백년걸쳐 받은겨. 이걸 번역한거고. 이 번역의 힘이 메이지때 자기들 스스로 번역을 해. 중국은 선교사애들이 한문을 배워서 번역을 해줘. 이것도 그래서 암호야 자기들 번역이 아니니.,

 

 

저게 가장 큰 분기점인겨. 벨테브레 하멜 이란 네덜란드인들을 포로로 가두는 애들과, 데지마로 받는 애들.의 이 차이가 구한말과 메이지를 만든겨.

 

 

 

이 사학자들의 자뻑 사관은 정말 개끔찍한겨 이게.

 

 

자기들의 잘못.을 남탓으로 돌리고 이걸 분노질을 유발해. 민족놀이 이념놀이 하면서. 이걸 리더차원에서 조장질을 해대고. 애들 얼굴표정은 다 분노합쇼 항상 미간 주름에 얼굴 시뻘게 져 있고. 적폐놀이나 해대고. 차므로 어처구니가 없는건데.

 

 

해서 저 이음이 구한말에 메이지고. 메이지애들의 통로를 통해서 구한말대 부터 서양애들을 익힌게 지금 까지 이어오는게 셰익스피어 햄릿 밖에 안보고 안보이는거걸랑 그외는.

 

연극.은 말야. 스페인이야. 

 

Spanish Golden Age theatre refers to theatre in Spain roughly between 1590 and 1681.[1] Spain emerged as a European power after it was unified by the marriage of Ferdinand II of Aragon and Isabella I of Castile in 1469 and then claimed for Christianity at the Siege of Granadain 1492.[2]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saw a monumental increase in the production of live theatre as well as the in importance of the arts within Spanish society.

 

스페인 황금 시대.일때 문학의 황금시대와 같이 보는게, 돈키호테 나오는 그 시절에 말야. 문학이 결국 연극으로 공연이 되는겨. 스페인 연극의 황금시대야 그래서. 서기 1590-1682년 으로 본다 할때 말야. 돈키호테 에서 언급을 했지만. 저때 연극이 스페인 전역에 난리가 난겨. 이걸 돈키호테에서 사제랑 교회법학자가 우려하는거고. 

 

 

 

이 스페인.이란 곳이. 점 애착이 가는데. 포르투갈.과 함께. 

저게 얼마나 엄청난 시대냐면. 
참,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가 죽는게.

Miguel de Cervantes Saavedra[b] 29 September 1547 (assumed) – 22 April 1616 NS

William Shakespeare (bapt. 26 April 1564 – 23 April 1616)

 

셰익스피어.랑 같은 해 1616년 4월에. 세르반테스가 22일 날 죽고 셰익스피어.가 다음날 죽어. 완전 동시대 사람이야. 세르반테스.는 직전해에 돈키호테 파트2 를 출판한거고.



셰익스피어. 하면 영국의 연극.이 그래서 떠오르걸랑. 저당시 연극 하면 그래서 영국의 연극.이 가장 최고일듯 하지만 말야. 영국은 저당시 스페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Theatre was an accessible art form for all participants in Renaissance Spain, being both highly sponsored by the aristocratic class and highly attended by the lower classes.[3] The volume and variety of Spanish plays during the Golden Age was unprecedented in the history of world theatre, surpassing even the dramatic production of the English Renaissance by a factor of at least four.[4][3][5] This volume has been as much a source of criticism as praise for Spanish Golden Age theatre, for emphasizing quantity before quality.[6] A large number of the plays of this period (10,000 to 30,000)[3][6] are still considered masterpieces today.[7][8]

 

스페인 연극 르네상스.는 귀족과 낮은계층이 동시에 스폰하고 참여했다 적극적으로. 양적인 측면에서 일단 말야. 유례를 볼수가 없다는 거지. 영국 연극은 비교 상대 조차 되지 않아 스페인에. 질적인 면은 차치하고 양적 면에서 1만에서 3만편의 연극이 있었다. 이게 공연횟수나 극장이 아니라 다른 희곡들 수야 이게. 어마무시한겨. 

 

This prolific production greatly contributed to the accessibility of theatre in Spain.[3] For modern theatre historians, however, it has contributed to the difficulty of researching theatre from this period. The vast majority of plays have remained virtually untouched, in terms of both production and scholarly analysis, since the seventeenth century. Combined with the error prone printing techniques that plagued the publication of Spanish plays, this has vastly undercut the study of Spanish Golden Age theatre.[3] Although a thorough inclusive analysis remains difficult or even impossible, Spanish Golden Age theatre represents an area of active and productive research for theatre historians.[4][3]

 

 

희곡 대본들이 넘쳐나. 극장들이 난립을 하고 끊이지 않게 공연이 되는겨. 그래서 또한 무수한 사람들이 다 보는거야 연극을. 헌데 말야. 저때 백년 동안 저리 넘쳐나던 연극시장이, 이게 그이후로 이삼백년 동안 사라진거야. 그러면서 저때의 이야기들을 잘 몰라, 연구가 안된거야 이게. 너무나 방대해서 연구가 안되었다는 역설에, 삼백년 가까이 저 연극이 뚝 끊긴거야. 저게 완전히 미스테리인거야 대체 뭔일인가 이유가 먼가. 해서 저기 글 보면 에러프론 프린팅 테크닉 해서리. 인쇄기술에 오류가 생겨서 인쇄시장이 죽었다는겨. 이게 말이 안되지. 저건 개그지 해석이고.

 

저 스페인 연극 대본 희곡이 요즘에야 제대로 시선을 받는거야. 

 

 

햄릿 셰익스피어 꺼져. 이건 정말 별거 아닌겨 스페인 당시 희곡을 보면.

 

왜냐믄. 돈키호테를 낳은 저당시의 스페인이야. 이 기운이 연극도 마찬가지야. 조온나게 차원이 달라 이게. 

 

양적인 면 뿐 만이 아니라, 양이 방대하니까 저기서 천재적인 작품들이 나올 확률이 높은겨. 영국은 스페인에 안돼 저당시 문학과 연극이.

 

 

Lope Félix de Vega y Carpio (

Spanish pronunciation: 

[ˈlope ˈfelis ðe ˈβeɣa i ˈkaɾpjo]; 25 November 1562 – 27 August 1635)

 

대표적 작가.가 이전에 언급한. 로페 페리스 데 베가. 이사람이 스페인 연극의 대부야. 아부지야. 

 

Some 3,000 sonnets, 3 novels, 4 novellas, 9 epic poems, and about 500 plays are attributed to him. Although he has been criticised for putting quantity ahead of quality, nevertheless at least 80 of his plays are considered masterpieces.

 

소네트. 소설. 단편소설.외에 이사람 희곡이 500개.야. 여기서 자그마치 80개.가 명작이야. 

 

이사람께 최근에야 몇개 우리말로 번역이 돼 선집 한권으로. 

 

 
저 작품목록.은 기본적으로 봐야 하는겨. 
 
 
Tirso de Molina (24 March 1579 – 12 March 1648[1]) was a Spanish Baroque dramatist, poet and Roman Catholic monk. He is primarily known for writing The Trickster of Seville and the Stone Guest, the play from which the popular character of Don Juanoriginates.[2] His work is also of particular significance due to the abundance of female protagonists, as well as the exploration of sexual issues.[3]
 
로페 데 베가. 가 최고의 희곡 작가였어 당시. 이 사람 작품을 보고 작가.가 된 사람이 티르소 데 몰리나. 이사람은 수도사.야 
 
He was born Gabriel Téllez in Madrid. He studied at Alcalá de Henares, joined the mendicant Order of the Blessed Virgin Mary of Mercy on 4 November 1600, and entered the Monastery of San Antolín at Guadalajara, Spain on 21 January 1601. He was ordained a priest by 1610.[4]
 
다 마드리드야. 이사람은 멘디컨트. 탁발 설교 수도사 였다가. 다음해 32세에 몽크. 독고다이 수도원에 드가고. 41세에 사제.가 된겨. 
 
He had been writing plays for ten years when he was sent by his superiors on a mission to the West Indies in 1615; returning to Europe in 1617, he resided at the Mercedarian monastery in Madrid, took part in the proceedings of the Academia poetica de Madrid, founded by Sebastián Francisco de Medrano, competed in the literary tournaments then in vogue, and wrote copiously for the stage.[1]
 
사제.가 되고 동인도 선교 파견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리. 연극을 써댄겨 이사람이. 몽크에 사제.인 사람이 연극에 미친거야. 저당시 연극이 그리스도의 종교적인 연극.에 더하여 이사람은 세속이야기를 적나라 하게 써댄겨.
 
The preface to the Cigarrales de Toledo states that Tirso de Molina had already written three hundred plays, and at this period of his career he was second only to Lope de Vega in popularity. (Tirso de Molina was one of Lope's most ardent followers.)
 
사제 되서 다녀와서 초창기에 써댄 연극만 3백편이야. 로페 데 베가. 다음으로 가장 인기였던거야 당시. 이사람은 로페.의 연극을 보고 자란 사람이고 존경하는거고. 
 
그러다가 이사람이. 교회에서 경고를 먹어. 당시 한 지역 수도원 원장에. 수도회 리더에 경력이 나름 교회에서 화려하걸랑. 헌데 너무 자유분방한겨. 
 
 in 1634 he stated that he had composed four hundred within the previous twenty years; of this immense production not more than eighty plays, are in existence.
 
나이 65세 인 1634년에 쓰길. 자기가 지난 20년간 4백편의 연극을 썼다. 이중 80개는 탁월한겨. 이건 존재해 지금. 헌데 저들 수백편 각각 썼다는게 다 있는게 아냐 지금.
 
The Trickster of Seville and the Stone Guest (SpanishEl burlador de Sevilla y convidado de piedra) is a play written by Tirso de Molina. Its title varies according to the English translation, and it has also been published under the titles The Seducer of Seville and the Stone Guest and The Playboy of Seville and the Stone Guest. The play was first published in Spain around 1630, though it may have been performed as early as 1616.[1] Set in the 14th century, the play is the earliest fully developed dramatisation of the Don Juan legend.[2]
 
저 트리소 데 몰리나. 가 쓴 작품 중에. 엘 부를라도르 데 세비야 이 콘비다도 데 피에드라. 세비야의 유혹자.와 석상의 초대. 이게 교회에서 경고 쎄게 먹고 출판된 작품이걸랑. 이전에 공연되었을지도 모른다. 하는거고. 
 
저게. 돈 후안. 이야기의 최초야. 이게 나중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로 나오는거고.
 
돈 주앙. 이라하는건 포르투갈애들 발음이고. 이건 스페인 연극이야. 돈 후안. 돈 환. 해야 해.
 
여기서 얘가 나중 백작이 되지만. 아마 네명의 여자를 상대하걸랑. 시작이 나폴리야. 나폴리는 스페인꺼야. 나폴리의 스페인대사가 자기 삼촌이고. 여기 코트에서 공작과 눈맞은 여자를 사기쳐서 어쩌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멀 어드래 했는가는 안나와. 오직 러스트.를 제대로 해소한 상대는 타라고나.의 평민 어부에, 또한 도망가다가 결혼식에 참여해서 알게된 신부. 나머지 둘은 도중에 걸려서 튀는거고.
 
이 캐릭의 저기서 독특한건 말야. 자기가 저런 치정때 죽인 여자쪽 아빠귀신이 무덤의 석상. 돌조각상.에 빙의해서 돈 후안.을 상대하는거걸랑. 이 돈 후안.이란 애는 여자한테는 맹세를 남발하고 신을 내세우고 하는게  흔한데. 이 귀신과의 약속은 또 거절 안해. 
 
얜 여자들을 상대하는 즐거움.이 카널 디자이어.를 푸는거에 더하여 상대들을 속이는 즐거움 이 얘를 부리는거야 그 바닥이. 신.은 없어 얘한텐. 헌데 저런 캐릭이 말야, 귀신과의 약속은 철저해. 얜 자기 나름 명예. 아너. Honor 가 또한 철저해. 속는 여자들이 잘못되고 멍청한겨. 신 따위는 없어. 그런 세계는 주작된 망상이야. 그 자기 나름 자부심이 철저한 캐릭이야 이 돈 후안이. 걍 일개 바람둥이가 아녀. 해서 시안한듯 하지만 귀신이 초대한 건 무섭지만 가는겨. 자기 명예걸랑. 저기서 죽는건데 귀신인 석상과 악수하다가.
 
 
El condenado por desconfiado es un drama teológico del teatro barroco español atribuido por lo general al mercedario Tirso de Molina. Fue publicado en la Segunda parte de las comedias del maestro Tirso de Molina (Madrid, 1635) 
 
이사람의 다른 희곡. 엘 콘데나도 포르 데스콘피아도. 이게 디스트러스트.로 컨뎀. 욕처먹은겨. 불신.으로 징계받은 자. 
 
수도사.가 오직 그리스도. 하며 십년 수도하다가. 믿음에 기쓰가 생겨. 악마가 나타나. 안드레스 란 애를 만나라 아무말도 말고. 걔가 천국에 가면 너도 천국가고 걔가 지옥엘 가면 너도 지옥간다.
 
이 안드레스.란 인간이 자칭타칭 천하의 악마야. 야 이 것도 골때리던데. 이 안드레스.도 신을 안믿어. 사형당할때 까지도 고해를 안해. 죽음 직전까지도 안해. 차마 못하는겨 자긴. 헌데 신이 있다는건 알아. 유독 병석의 아빠만 존경해. 아빠때문에 고해를 해.
 
저런 안드레스.를 보고 저 수도사가 말야. 어차피 악마라서 지옥갈  애 내가  허밋 금욕을 해서 머하고 온니 지저스 해봐야 머해 쟤 지옥가면 나도 따라 지옥갈텐데. 얘가 산적으로 살면서 세속의 러스트.에 빠져 어차피 지옥갈꺼.
 
헌데 안드레스.는 막판에 참회의 고해를 해. 그리고 천당 가.
 
저기서 안드레스.의 말이 재밌걸랑. 
 
햄릿.의 대사들만 멋진게 아냐. 저 돈 후안.이나 불신자 나 저 대사들이 죽여줘 저게. 
 
자기가 하고 싶어도 차마 못하는겨 참회를 고해를. 이게 교회에서 말하는 또다른 운명론이걸랑. 아무나 참회하면 구원이 된다지만 그 참회가 참회할 자만 참회를 할 수밖에 없다는겨 이게. 운명론이 또한 이 그리스도야. 이런게 나와 이 작품에.
 
헌데 말야. 수도사.는 쟤가 지옥간 줄 알아.
 
신.은 품이 넓걸랑 상상 이상으로. 인간이 부족한걸 알아. 신은 모든걸 다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어. 그러니까 신인거야. 헌데 설마 한겨. 안드레스 가 천당을 간걸 죽을때야 알아. 
 
쟨 불꽃에 타 죽으면서. 지옥에 떨어져.
 
.
 
 
돈 후안.이 여자를 버리는건 살벌해. 얜 걍 하룻밤 만 자면. 쌩까. 이 전엔 세상 모든 걸 다 줄듯 하다가. 버릴땐 걍 살벌해 이 캐릭은. 
 
저 불신자. 가 구약의 욥기.야. 이걸 연극으로 만든겨 트리소.가. 이걸 이은게. 괴테의 파우스트. 일 뿐인거야.
 
 
셰익스피어.보다 말야. 저 스페인 희곡이 더 재밌고 깊으면 깊었지. 절대 뒤지지 않아. 
 
작품 수 자체도. 셰익스피어.가 그리 대단한 인간이 아냐 저당시 스페인 작가들에 비하면.
 
 
Pedro Calderón de la Barca y Barreda González de Henao Ruiz de Blasco y Riaño, usually referred as Pedro Calderón de la Barca (Spanish pronunciation: [ˈpeðɾo kaldeˈɾon de la ˈβaɾka]; 17 January 1600 – 25 May 1681), 
 
스페인 연극의 황금시대 절정.이 로페 데 베가. 티르소 데 몰리나. 다음 세대.인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 칼데론 바르카.인겨. 이 삼 세대.를 가르는 이 세사람.이 축이야. 이사람이 절저이야 그야말로. 스페인 황금시대 1681까지 할때 이사람이 죽는 해.를 마감으로 하는거야.
 
La Vida es sueño 라 비다 에스 스웨뇨. 삶은 꿈이다. 이사람 연극 제목이자. 대사야. 이말은 칼데론 이 뿌린거야
 
The Phantom Lady (SpanishLa dama duende) is a play by Spanish playwright Pedro Calderón de la Barca. It was written and performed in 1629 and was published for the first time in the Primera parte de comedias de don Pedro Calderón de la Barca (1636).[1]
 
라 다마 두엔데. 투명인간 여인. 투명인간 캐릭이 등장해. 이건 이탈리아 르네상스때 이미 나온 캐릭이고. 
 
  • Amor, honor y poder (Love, Honor and Power) (1623)
 
사랑. 명예 와 권력. 
 
El gran teatro del mundo es una obra de teatro del dramaturgo español del siglo XVII Pedro Calderón de la Barca. Pertenece al género del auto sacramental. Fue publicado por primera vez en 1655 y escrito probablemente en la década de 1630.1​Es el auto sacramental más famoso de Calderón.2
 
엘 그란 테아트로 델 문도. 세상이란 거대한 연극판. 이게 현대판 메트릭스.야 저 삶은 꿈.이란 연극은 현대판 인셉션.이고. 저런게 다 칼데론 바르카 작품들이야. 이 스페인 연극에서 벌써 저당시 저걸 다 썼어. 이사람은 세계 문학사에서 최고로 치는 사람 중 하나야.
 
 
 
헌데 말야. 저런 사람들에 대해. 저 스페인 문학에 대해. 저당시 황금시대의 문학. 연극. 은 쌩까고 오직 셰익스피어 만 해대는거야 이게. 세계문학전집 도 말야. 스페인께 없어. 스페인 문학이 최고야.
 
아 돈키호테. 엄청난겨 저건. 짐만이 저따위 말쌈을 할 수 있는건데. 이땅빠닥 지성이 워낙에 이게 수준이하라 말이지. 온니 조선 밖에 모르니. 야 저런것과 조선을 어드래 비교를 할 수가 있니 그래.
 
 
.
 
이 연극.이란 잣대.가 문명 수준을 재는 가장 큰 척도야.
 
문명 수준을 판가름 하는건. 사유야 사유. 생각의 정도야. 이게 드러난게 신화.이고 문학.이고 연극.이야. 
 
이땅빠닥 조선이 후진게. 문학이 없고 연극이 없고 드라마가 없걸랑. 조선 오백년이 문학 연극을 죽인 오백년이야 이게. 조선은 공동묘지야. 사람들이 그래서 표정이 없는겨. 이걸 남탓.으로 돌리고 분노유발을 하는거고. 이건 허상이야. 정신병이야. 정신병동이야 여긴.
 
 
고대그리스.가 위대한건. 연극을 보면 알아. 음청난겨 저 연극 대본 수준이.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저 작품들이 어마무시한겨 저게. 고대그리스 삼대 비극 작가여. 아르스토파네스.의 희극. 음청난겨. 저게 기원전 5세기여. 저거 다들 읽도록 해 천병희 번역으로.
 

 

The best-preserved example of a classical Greek theatre, the Theatre of Epidaurus, has a circular orchêstra and probably gives the best idea of the original shape of the Athenian theatre, though it dates from the 4th century BC.[4]
 
기원전 4세기 고대그리스의 극장. 음향을 고려한 설계여.
 
 

Roman theatre at Orange, France

 

 

로마.도 연극의 나라여. 오렌지 공작.의 그 오렌지. 프랑스 오항주. 저런 시설이 똑같이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에도 다 있어. 
 

 

 

Roman mosaic depicting actors and an aulos player (House of the Tragic Poet, Pompeii)
 
폼페이.에 있는 로마시대 모자이크. 배우들과 아울로스(파이프)를 불어 연주하는 사람
 

As the Western Roman Empire fell into decay through the 4th and 5th centuries, the seat of Roman power shifted to Constantinople and the Eastern Roman Empire, today called the Byzantine Empire. While surviving evidence about Byzantine theatre is slight, existing records show that mime, pantomime, scenes or recitations from tragediesand comedies, dances, and other entertainments were very popular. Constantinople had two theatres that were in use as late as the 5th century.[32] However, the true importance of the Byzantines in theatrical history is their preservation of many classical Greek texts and the compilation of a massive encyclopedia called the Suda, from which is derived a large amount of contemporary information on Greek theatre.

From the 5th century, Western Europe was plunged into a period of general disorder that lasted (with a brief period of stability under the Carolingian Empire in the 9th century) until the 10th century. As such, most organized theatrical activities disappeared in Western Europe. While it seems that small nomadic bands traveled around Europe throughout the period, performing wherever they could find an audience, there is no evidence that they produced anything but crude scenes.[33] These performers were denounced by the Church during the Dark Ages as they were viewed as dangerous and pagan.[34]

 
 
서로마.가 망하고. 다른것과 같은 흐름으로. 비잔틴.만 흐름을 이어받는거야. 서유럽은 게르만들이 로마를 익히는 시기고 중세 초기는. 갈리아가 배운 로마를 게르만이 배우는거고. 해서 중세초기는 비잔틴만 화려한거야 이것도 끽해야 서기 500년 전후까지만이야. 바로 슬라브.에 불가르.라는 투르크.에 아바르.들이 발칸넘어 득실대걸랑. 
 
서유럽은 샤를.의 자식들이 10세기 까지 라틴어 익히고 로마문명 익히는겨. 여기는 서기 천년 지나서야 이게 무르익으면서 터지는거야. 연극 또한 사라지다가 그리스도 이야기 중심으로 교회에서 연극이 나오는거야. 서기 천년 지나고 부루즈아.들이 생겨나면서 자본이 생기고 교회를 높이 세워 고쓰족 냄새 고딕으로. 그러면서 교회에서 그리스도 놀이 하는겨. 
 
Performance of religious plays outside of the church began sometime in the 12th century through a traditionally accepted process of merging shorter liturgical dramas into longer plays which were then translated into vernacular and performed by laymen. The Mystery of Adam (1150) gives credence to this theory as its detailed stage direction suggest that it was staged outdoors. A number of other plays from the period survive, including La Seinte Resurrection(Norman), The Play of the Magi Kings (Spanish), and Sponsus (French).
 
12세기 되어서야.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 연극을 하게돼. 드문드문이야. 좀 긴 연극이 나오는거고. 언어가 각 지역언어.로 하는겨. 이제 점점 라틴어.를 바탕으로 자기들 글자가 자리를 잡는게 또한 서기 천년 전후야. 저들 언어는 그리스도 를 축으로 이걸 번역하면서 어휘가 생기는겨 역시나. 자기들 원래 말들인 구어들도 다들 라틴화.가 되는거야. 
 
 
The importance of the High Middle Ages in the development of theatre was the economic and political changes that led to the formation of guilds and the growth of towns. This would lead to significant changes in the Late Middle Ages. In the British Isles, plays were produced in some 127 different towns during the Middle Ages. These vernacular Mystery plays were written in cycles of a large number of plays: York (48 plays), Chester (24), Wakefield (32) and Unknown (42). A larger number of plays survive from France and Germany in this period and some type of religious dramas were performed in nearly every European country in the Late Middle Ages. Many of these plays contained comedy, devils, villains and clowns.[39]
 
중세의 중간.인 하이 미들.이 서기 1000년에서 1250년. 이때가 부루즈아.들이 생기고 도시들이 번창하는 시기야. 돈이야 돈. 여유가 생겨. 극장들이 이때 교회를 벗어나서 생기는거야. 연극이 이때에야 생기는겨 본격적으로. 종교에서 세속적인 이야기들이 생기는거고. 코메디 희극.에 귀신 악마에 광대들. 
 
 
pageant wagon is a movable stage or wagon used to accommodate the mystery and miracle play cycles of the 10th through the 16th century. These religious plays were developed from biblical texts; at the height of their popularity, they were allowed to stay within the churches, and special stages were erected for them.[1]
 
중세 중반부터 등장한게 페전트 외건. 패전트.가 공연하는 마당.이고 이게 외건. 수레로 된거야. 무대장치여 이게. 배우가 가만히 있는데 막막 움직이듯 보이겄지 관객에겐. 신비 기적 놀이 하기 용으로 만든거야. 이게 중세 중반부터 티나온 장치야.
 
그러면서 중세 천년 끝에 연극의 르네상스.가 스페인과 영국과 프랑스에서 터진거야.
 
 

English Renaissance theatre—also known as Renaissance English theatre and Elizabethan theatre—refers to the theatre of Englandbetween 1562 and 1642.

This is the style of the plays of William Shakespeare, Christopher Marlowe and Ben Jonson.

 

스페인은 로페 데 베가.를 시작으로 1590년.으로 보고. 영국은 더 빨라. 1562년. 영국이 더 빨리 뜨고 져. 스페인이 뒤에 지고.

 

영국.은 학교. 스쿨.이 가장 먼저 시작을 한곳이여. 이 스쿨 중에서도 그램머 스쿨. 그리고 뒤에 칼리지.들이 서고 할때. 또한 중요한게 소위 콰이어 스쿨.이란 성가대.야. 성가대를 가기위해서 그램머 스쿨을 가기도 해. 이 성가대.가 연극으로 발전을 하는겨 영국은. 해서 햄릿.을 보면 아동용 연극 때문에 성인연극이 쇠하겄네 라는 대사가 나오걸랑. 이 영국이 또한 아동연극이 발달하는겨 동시에. 이 중심이 성가대야.

 

The Inns of Court in London are the professional associations for barristers in England and Wales. There are four Inns of Court – Gray's Inn, Lincoln's Inn, Inner Temple and Middle Temple.

 

인스 코트. 이게 또한 영국이 다른 곳과 달리 연극 르네상스가 일찍 와. 연극의 주체들 중 하나가 다들 마찬가지로 학교. 대학. 교회. 걸랑. 이 영국은 다른게 카먼로.를 패스한 바리스트 barrister. 지금도 미국 사법시험 면허시험보듯하는게 바. BAR 야. 이것만 패스하면 쟤들은 변호사 자격증주걸랑. 이걸 패스한 애들은 협회.에 가입을 해야해. 당시 잉글랜드 웨일즈.의 바리스터들.은 네개.의 협회 중 하나에 가입을 해야해. 이 협회.가 Inn 하는 여관 이란걸 갖고 오는겨. 이들 협회들이 또한 연극을 주관을 하는겨. 얘들이 드라마작가를 키우고 연극에 후원을 하는겨.

 

물론 어디나 같이. 왕정 코트.에서도 자기들 코트. 에서 연극을 상연하는거고.

 

 

 

저당시의 드라마 작가들 주요 리스트. 저 중에 하나가 셰익스피어. 일 뿐이야 이게. 셰익스피어 가 저들 중에서 독보적 탁월한 것도 아니고. 걍 다들 저 중에 엔분의 일 일뿐이야.

 

 

 

Corral de comedias de Almagro ("Courtyard theatre of Almagro")

라만차.의 알마그로.에 있는 코랄. 이 코랄.이 스페인의 야외 연극 극장이야. 황금시대에 민들은 밖에서 코랄.에서 공연을 보는거야. 중앙 코트.는 따로 자기들 궁전.안의 전용극장에서 귀족들은 보는거고.

 

영국도 저런 극장이야. 하늘은 뚫린곳에서. 그러다가 전용극장들이 생기는거지.

 

 

영국은 저런 연극 르네상스.시대가 청교도란 퓨리튼 이란 이들이 티나오면서. 크롬웰.이 깨끗 순수  해대면서 찰스 목아지 짜르고. 연극도 불결한겨. 얘때메 연극 르네상스.가 문을 닫어. 그리고 다시 이들 쫓아내고 연극이 다시 복원이 되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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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라는건 중세 끝나고. 16세기 말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가운데에 이탈리아 전쟁 지긋지긋이 끝나면서 이탈리아에서 티나오는게 오페라야. 이탈리아 전장의 중심 피렌체.에서 이게 시작한겨. 이게 독일 프랑스 땅으로 퍼진거야. 여기에 유럽 음악가들이 다 들러붙는겨 오에스티.로. 유럽 음악은 여기서 터진거고. 이게 더가서 그랜드 오페라.가 19세기에 티나오는거고. 이 중심이 프랑스여. 프랑스 또한 연극.과 오페라.의 땅이야 이게. 이걸 갖고 가기 시작한건 그 바닥은 앙리2세와 결혼한 개거지 된 메디치의 카테리나.가 프랑스에 심은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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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학살.로 짐이 명명하는 1789에서 십년.의 인민놀이를 그래도 버티고 그나마 프랑스가 지금 버티게 된건. 그래도 그 바닥은 말야. 고대로마에 더하여 저런 문학과 연극과 오페라의 힘이야. 이 프랑스.는 원래 영국 독일보다 압도적이어야 해. 고대로마를 삼사백년 먼저 찐하게 배운 애들이야 얘들이. 얘들이 인민놀이로 한방에 날라간겨 이게. 저건 어마무시한겨 인민놀이는.

 

 

스페인.이 시안한겨. 저 엄청난 문학이. 그리고 저 일만에서 삼만편의 연극의 땅이었던 저 스페인이. 쟤들도 미스테리라 여겨지는 저 갑자기 사라진 연극의 기운 문학의 기운. 얘들이 문학이 죽고 연극이 죽으면서 스페인은 죽은겨. 이게 얘들이 분석이 안되서 미스테리 다 하걸랑.

 

이 스페인 역사가 가장 골때려 보면. 가장 어렵게 다가오걸랑 그래서. 물론 짐의 눈엔 쉽고 애닯기도 한데. 스페인의 역사는 참 안타까운겨. 저 연극이 사라진 이유는 스페인이 근대사가 망가진 이유와 같아. 이것 또한 카를 전후부터 특히나 찐하게 봐야할 이야기야 이전에 썰했듯이.

 

헌데 말야. 앞으로 미래에. 가장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곳이 저 스페인.에 포르투갈 이야. 앞으로 세계를 주도할 나라는 또한 여길 수도 있어. 얘들이 정체성을 잘 만 다진다면.

 

 

José Ortega y Gasset (

Spanish: 

[xoˈse oɾˈteɣa i ɣaˈset]; 9 May 1883 – 18 October 1955) was a Spanish philosopher and essayist. He worked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while Spain oscillated between monarchy, republicanism, and dictatorship. His philosophy has been characterized as a "philosophy of life" that "comprised a long-hidden beginning in a pragmatistmetaphysics inspired by William James, and with a general method from a realist phenomenology imitating Edmund Husserl, which served both his proto-existentialism (prior to Martin Heidegger's)[1] and his realist historicism, which has been compared to both Wilhelm Dilthey and Benedetto Croce."[4]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란 사람이 있어

 

Meditaciones del Quijote, 1914

 

이사람의 책 돈키호테에 대한 메디테이션. 이게 돈키호테 성찰.로 번역이 되었어 우리말로. 

 

안봤는데. 이게 말야. 저 엄청난 자유의 사람 돈키호테.를 만든 우리네 스페인.이 왜 이리 되었느냐 하는겨. 스페인의 힘을 돈키호테.를 통해서 찾아야 한다는겨. 이사람 잘본겨 이게. 스페인의 힘은 저 스페인 황금시기.의 문학과 연극에 있어. 이들은 저것만 찾으면 돼.


이땅빠닥은. 저리 찾아서 꺼낼. 글도 없고. 문학도 없고. 연극도 이야기도 없는거지. 인민놀이 민족놀이 이념놀이 정의놀이에만 혈한이 되어있는 세상에서 가장 개미개한 나라야 이땅빠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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