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bernia is the Classical Latin name for the island of Ireland. The name Hibernia was taken from Greek geographical accounts. During his exploration of northwest Europe (c. 320 BC), Pytheas of Massilia called the island Iérnē (written Ἰέρνη). In his book Geographia (c. 150 AD), Claudius Ptolemaeus ("Ptolemy") called the island Iouerníā (written Ἰουερνία, where "ου"/ou stands for w). The Roman historian Tacitus, in his book Agricola (c. 98 AD), uses the name Hibernia.
Ἰουερνία Iouerníā was a Greek rendering of the Q-Celtic name *Īweriū, from which eventually arose the Irish names Ériu and Éire. The name was altered in Latin (influenced by the word hibernus) as though it meant "land of winter".[1]
아일랜드.는 역사에 처음등장하는게. 히베르니아. 그리스 사람 마르세유.의 퓌테아스. 영어 피띠어스. 가 처음 언급해. 기원전 320년. 이전에는 브리튼.을 알고 있었어. 이 사람이 브리튼.과 아일랜드.를 처음 만진 사람이야. 헌데 항해중 죽은 걸로 봐. 3백년 후에 스트라보.에 의해 전해지는겨. 영어 스트레이보. 그리스어 스트라본.
Pytheas of Massalia (/ˈpɪθiəs/; Ancient Greek: Πυθέας ὁ Μασσαλιώτης Pythéas ho Massaliōtēs; Latin: Pytheas Massiliensis; fl. 4th century BC) was a Greek geographer and explorer from the Greek colony of Massalia (modern-day Marseille, France). He made a voyage of exploration to northwestern Europe in about 325 BC, but his account of it, known widely in Antiquity, has not survived and is now known only through the writings of others.
퓌티아스 오 맛살리오테스. 맛살리오테스.가 지금 마르세유. 프랑스 해변이야. 여긴 그리스 해변도시국가 였던겨. 기원전 4세기 사람. 기원전 325년에 북유럽을 직접 탐사한 사람이야. 기록만 남겨지고, 생존하지 못한걸로 봐. 브리튼. 이란 말도 이사람에 의해 쓰여진 페리풀서스. 항구들 해변 랜드마크들 리스트들.에 있었다고 믿어져.
이사람은 이에르네. 라고 아일랜드.를 작명해. 지리학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가 유에르니아. 라고 써. 켈트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자기들 언어로 소리발음을 쓴거야. 로마에 와서 타키투스.가 히베르니아. 라고 쓰지만. 최초의 작명은 카이사르.야 갈리아 원정했던. 이건 달라. 히베르누스.라는 겨울. 추위. 란 뜻으로 바꿔 쓴겨 로마.는. 지금 아일랜드.는 그리스어 유에르니아.에 가까운거고.
Classical writers occasionally refer to Ireland under a variety of names, but these references contain little reliable information. For example, Diodorus Siculus claims that the Prettanoi of the island of Iris eat human flesh.[1] Strabo, who calls the island Ierne, repeats the accusation, adding that they consider it honourable to eat their dead fathers, and openly have sex with their mothers and sisters (although he is sceptical about his sources)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 기원전 1세기 사람.은 저 아일랜드 섬의 프레타노이. 사람들.은 인간고기를 먹는다. 스트라본.도 같은 말을 한다. 그러면서 자기 죽은 조상들을 먹는게 고귀한 짓이라고 여긴다더라. 자기들 어미와 누이랑 근친교미질도 한다더라.
하튼 고대의 기록은 안좋아. 여하튼 갈리아 땅 드루이드.들이 카이사르에 쫓겨서리 브리튼 스톤헨지에 아일랜드로 넘어가. 카이사르는 드루이드 들의 인간제물놀이에 학을 띄고 다 잡아 죽이려 하고.
여긴 브리튼이 로마 식민지 할때 로마가 오지 않았어.
At the start of the period, Ireland had emerged from a mysterious decline that archaeological evidence suggests had hit population levels and standards of living from c. 100–300 CE, called the Irish Dark Age by Thomas Charles-Edwards.
브리튼이 로마화될때. 서기 100년에서 300년.이 아일랜드 어둠의 시대로 봐. 고고학적으로 보건데 거의 사람이 산 흔적이 잘 안보이는겨. 아마 옆 브리튼에서 노예사냥과 자원 약탈.에 의한 인구 급감으로 보는 견해가 주류여.
The first reliable historical event in Irish history, recorded in the Chronicle of Prosper of Aquitaine, is the ordination by Pope Celestine I of Palladius as the first bishop to Irish Christians in 431 – which demonstrates that there were already Christians living in Ireland.
그리스도.가 들어온게 5세기.로 봐. 이미 서기 431년.에 아일랜드 그리스도들.에 대한 주교 자리로 서임된 기록이 있어.
The Hiberno-Scottish mission was a series of missions and expeditions initiated by various Irish clerics and cleric-scholars who, for the most part, are not known to have acted in concert
히베르노 스콧티쉬 미션. 히베르니아.인 아일랜드 성직자가 스콧랜드로 가서 그리스도 전도 하는겨.
The earliest recorded Irish mission can be dated to 563 with the foundation of Iona by the Irish monk Saint Columba. Columba is said by Bede and Adamnán to have ministered to the Gaels of Dál Riada and converted the northern Pictish kingdoms.
서기 563년.에 성 콜럼바. 아일랜드 수도사.가 스콧 이오나 섬에 교회를 세운거지. 스콧이 아일랜드보다 백년 이상 늦은겨. 스콧의 그리스도.는 아일랜드.에서 전파한거야.
Eoin MacNeill identified the "oldest certain fact in the political history of Ireland" as the existence in late prehistory of a pentarchy, probably consisting of the cóiceda or "fifths" of the Ulaid (Ulster), the Connachta (Connacht), the Laigin (Leinster), Mumu (Munster) and Mide (Meath), although some accounts discount Mide and split Mumu in two.[10] However, by the dawn of history this pentarchy no longer existed
서기 800년 전까지는. 어드런게 있나. 오인 맥닐.에 의하면. 펜타르키. 다섯지역 군주의 시대야.
지금 아일랜드.의 첫 행정단위.인 프로빈스. 주 들이 네개야. 얼스터. ulster 코나하트 connacht. 렌스터 Leinster 먼스터 Munster. 그리고 미드 Meath 가 중세까지 있던 지역이었어. 여기가 아일랜드 가운데 긴 지역이야. 나중 헨리2세가 애들보내서 먹을때 유일하게 버틴 지역이 미드.야.
오인 맥닐.이란 학자이자 정치가가 주장한건데. 증거는 희박해. 이 인간이. 20세기 전후의 인간이야. 아일랜드가 독립할때 발기인 중 하나야. 신페인당.의 핵심중 일인이야. 아일랜드 민족이여 해대었던거지. 얘때 독립하고 얘가 장관직 이거저거 하는겨. 아일랜드 건국의 삼촌정도 돼.
오인 맥닐.이 소위 저당시 민족자결주의.에 미친 이였는데 또한. 이 민족자결주의.가 머 대단한 진보적 이론인양. 저게 후진 이들이 마치 대단한 이론인듯 숭배시해대는거걸랑. 윌슨 이란 허섭한 이 가 망상으로 짖어댄 말을, 얜 인류사에 대한 이해가 없어. 얘논리론 말야. 히틀러가 정당시 되는겨.
오인 맥닐.이 아일랜드 역사학의 핵이야. 지덜 민족은 위대했다는거지. 400년-800년 서기. 로마가 잉글랜드에서 나가고 바이킹 오기까지. 지들 아일랜드는 저리 다섯 군주의 시기로 독자적 킹덤들이 있어서리 문명이 나름 독자적으로 있었단거야.
증거가 없어.
더하여 800년에서 잉글랜드 앙주 헨리2세 애들이 들어오는 시기까지의 역사.는 더 엄청난 킹덤들이 있었단 거지 쟤가 말하길.
증거가 없어.
오히려 말야. 아일랜드 역사.는 저 바이킹 이전과 이후의 시대는. 지금에야 고고학적으로 이야기가 나오는거야.
Due to the rich amount of written sources, the study of Irish history 800–1169 has, to a large extent, focused on gathering, interpretation and textual criticism of these. Only recently have other sources of historical knowledge received more attention, particularly archaeology. Since the modern excavations of Dublin started in 1961, followed by similar efforts in Wexford, Waterford and Limerick, great advances have been made in the understanding of the physical character of the towns established during this period.[1]
The first part of the period from 800 to 1014 is well-studied; the "Viking age" has attracted the interest of historians for quite some time. The period between 1014 and 1169 has received less attention. In the words of Sean Duffy, this period
오인 맥닐.의 서기 400년에서 800년. 이야기는. 고고학적으로 나오는게 없어 이게. 개소리 망상 사학인거야 이건. 더하여 잉글랜드 오기전까지. 이게 최근에야 드러나는겨. 역사는 말야. 증거야 증거. 그외는 다 소설일뿐이야.
오인 맥닐.의 학설은 다 개소리라는겨 저게. 걍 페이건.으로들 걍 지역별로다가 부락을 이루면서 산 것 이상없어 아일랜드는. 야만 바바리언 들이었다.
조선상고사.에서 연개소문 빠는거랑 묘청 빨아대는것도 같은 맥락이고. 이건 역사적 사실 자체에 대한 해석을 조선 민족의 위대함으로 억지 해석하는거고. 묘청이란 이는 희대의 한무당 이고. 연개소문 이라는 애는 고구려의 싸이키를 완전히 말살한 이걸랑. 저 따위 들이 위대했다는거지.
민족 해대는 이들 치고 말야. 실재적인 사고가 없어 이게. 오직 감정이야.
Orpen saw an anarchic country still in ‘a tribal state’; he could see no natio, no wider community in Ireland than the tribe.
오르펜.은 말한다. 잉글랜드 애들 오기까지는 걍 무정부적인 땅이었고 단지 부락체제.일 뿐이었다. 아무런 나티오. 정체성.을 발견하지 못한다. 부락 이상의 넓은 개념의 공동체.는 없다.
저딴 소릴 해대면. 적폐가 되는거지.
없어 없어. 저 오인맥닐 이란 개.의 소리는 망상의 개소리일 뿐이야.
저런 허섭한 망상.으로 테러 해대는거야. 위대한 아일랜드! 우리네 테러는 독립운동!
.을 하는거지 쌩.을. 쟤들이 그래서 지금 그나마 버틴거는, 세금을 확 낮춘거야. 유로 체제에서 지들만 세금을 확 줄여. 머리 잘 쓴겨 이게. 가장 큰 문제가 유럽이 세금이 높은 거걸랑. 아일랜드가 이 세율 낮춘걸로 거지 나라에서 먹고살만한 나라가 된거야 지금. 얘드른 개거지 나라였어 유럽에서. 브렉시트로 유로가 저걸 신경을 못써서 그러지 저 세율 낮춘체로 유로에 있는게 언제까지 버틸지 얘들도 몰라.
해서. 저 아일랜드.의 역사 이야기는 저 오인 맥닐 .의 이야기가 대부분이걸랑. 의미없는겨 이게. 이.가 아일랜드 건국하고 재무부 장관에 교육부 장관도 하걸랑. 주요 보직은 다 꿰차. 얘가 아일랜드 정신의 아부진겨.
Peoples and subdivisions of early Ireland
중세 초기야 아일랜드의. 400년 이전은 다섯개고. 이 다음은 저리 일곱개란거야. 지금 아일랜드가 네개 프로빈스.야 먼스터 코나흐트.는 그대로고. Uí Néill 영어 오 닐.이여. 오닐.이 남북.으로 나뉘고. 남 오닐.과 라이긴 Laigin.이 지금의 렌스터. 이고. 얼라이드.있는 북쪽 세개합이 얼스터. 야. 이 안에 지금 영국땅의 북아일랜드.가 있는거고.
수도 더블린.은 남 오닐.과 라이긴.의 경계 해변지역이야.
이전 다섯 지역.에서의 미드 Meath 가 남 오닐.인거고. 미드.와 남 오닐.은 중첩해서 쓰는겨. 얼스터.가 세개로 쪼개진거고.
걍 저.가 당시 네개 주.에서 주작한겨 저게.
오인 맥닐.의 닐이 저기서 지 성씨 갖고 온거고. 이.가 대략 저리 나누고 저게 다 킹덤들이었고 저기서 하이킹. 힘있는 킹덤이 저들을 다 지배했다는거지. 개소리야. 서기 400년 전의 다섯 킹덤 이야기도, 고고학적으로 지금 보면 당시 아일랜드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사라진 거로도 보이고는거고. 걍 망상이야 얘 이야긴.
The Viking Age (793–1066 AD) is a period in European history, especially Northern European and Scandinavian history, following the Germanic Iron Age.[1]
바이킹 시대가. 서기 800년 직전에서 정복왕 윌리엄의 1066년까지야. 이때 바이킹들이 잉글랜드에 스콧에 아일랜드까지 쳐들어오는겨. 바이킹은 Norse 노르족의 해변사람들이고. 얘들이 스콧의 헤브리즈 안팍 섬들에 아일랜드 해변에 막막 자리를 잡는거야.
The monasteries played an important part in society, not just with regards to religious and cultural life, but also to economy and politics. Christianization had begun in the 5th century, and by the early 9th century the island was almost entirely Christian. However, the Martyrology of Tallaght (written sometime in the 8th or 9th century) hints that paganism had not yet been fully uprooted.
그리스도.가 5세기 초에 시작한 걸로 보이고, 바이킹 오는 9세기 초에는 거의 다 그리스도화 되었다. 헌데 페이거니즘 무당질이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었다.
Áed was connected to the monastic community at Armagh, and a supporter of the familia of Patrick. His rivals for supremacy within Uí Néill, the Clann Cholmáin and the Cenél Conaill, had on the other hand supported the familia of Columba.
당시 부락들이 150여개 있던걸로 봐. 아일랜드애들은 얘들을 다 킹덤의 킹들이라 하는거고. 5세기 그리스도 왔다 할때 이사람이 성 패트릭 Patrick 이야. 아르마 Armagh 에서 시작한겨. 여긴 북아일랜드여 지금. 대주교 자리고.
이전 본 채식서 캘즈북 Kells 의 캘즈.가 미드. 남 오닐.이여 더블린 옆에. 북오닐.의 하이킹.이 콜럼바 가문을 후원해서 남오닐에 수도원을 만들어줘. 여기서 채식본이 화려한게 나오는거고. 아일랜드의 두 성인.하면 패트릭과 콜럼바.
The Vikings were able to exploit internal divisions in order to invade England and France. As Ireland was one of the most politically fractured countries at the time, it was a prime target for Viking conquest. Furthermore, Irish Kings often made alliances with foreign invaders in an attempt to weaken their domestic rivals. The Vikings were able to defeat the centralized Kingdoms of Europe, since the small ruling class was easily removed. However, Ireland was composed of more than 150 different Kingdoms ruling over small territories. This decentralized system of governance made it almost impossible to gain control of a territory, since defeated Kings were easily replaced.
바이킹.들이 잉글랜드.와 북 프랑스 쳐들어가기 위해서 이 아일랜드를 전초기지 확보로 막막 쳐들어오는겨. 아일랜드 또한 말야. 자잘자잘한 세력들이 서로들 안에서 싸우는거야. 얘들이 오히려 바이킹들을 초대하거나 스콧 애들을 초대해서 연합해서 라이벌들과 전쟁도 하고. 당시 아일랜드는 150개 군주들이 있었다 자잘하가게. 분산되서리 힘있는 누구가 통제하기가 어려웠다. 패배한 군주들은 쉽게 다른 군주들이 다시 들어서서리.
그러다가 바이킹들이 꾸역 꾸역 자기들만의 도시들을 만들고 정착을 해. 기존 아일랜드들에 섞여서리.
저러면서 중세 천년 전후엔 나름 킹덤다운 킹덤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이따위말 하믄 아일랜드애들이 열불낼꺼고.
The Norman invasion of Ireland took place in stages during the late 12th century and led to the Anglo-Normansconquering large swathes of land from the Irish. At the time, Gaelic Ireland was made up of several kingdoms, with a High King claiming lordship over the lesser kings.
그리곤. 12세기 후반인 서기 1169년.에 노르만.들이 아일랜드로 쳐들어오는겨. 저당시 하이킹.은 코나흐트 킹덤.이고 얘를 막아달라고 힘없는 킹덤이 외부 노르만을 초대를 해. 얘들 역시 내전의 역사야 문명이 제대로 서기 전에는. 그리스도 먼저 들어선 애들이 힘이 더 쎈거고.
Diarmait Mac Murchada (Modern Irish: Diarmaid Mac Murchadha), anglicised as Dermot MacMurrough, Dermod MacMurrough, Dermot MacMorrogh or Dermot MacMorrow (c. 1110 – c. 1 May 1171), was a King of Leinster in Ireland. In 1167, he was deprived of his kingdom by the High King of Ireland
이때 노르만.을 부른건. 렌스터 킹인 디아메잇 맥 머차다. 왼쪽 옆 코나흐트 킹이 자기 자리를 박탈시킨겨.
Henry II (5 March 1133 – 6 July 1189), also known as Henry Curtmantle (French: Court-manteau), Henry FitzEmpress or Henry Plantagenet, ruled as King of England, Duke of Normandy and Aquitaine, Count of Anjou, Maine, and Nantes, and Lord of Ireland;
이때 노르만들을 뒤에서 스폰한게 앙주제국. 딱지 만든 플랜태저넷 헨리2세여. 얘들이 아예 아일랜드를 다 먹는겨. 그리곤 헨리2세에게 하미지를 해. 해서 헨리2세부터 로어도 Lord 오브 아일랜드. 하는거야.
자기들 내전하면서 외부세력 불러서리 지배당한게 보면 흔한겨. 슬라브 애들이 루스들.의 류릭.을 불러서리 러시아가 시작이 된거야. 비잔틴이 내전하면서 귀족 칸타쿠제노스가 오스만 아들 오르한.을 초대하면서 오스만제국이 시작이 돼. 이탈리아 남부에서도 노르만들을 불러서리 지중해 해적 쫓아달라하면서 이때부터 노르만이 이태리로 와. 저 노르만을 이은 프리드리히 2세의 호헨슈타우펜 가문 쫓아달라고 교황이 앙주 샤를을 불러서리 또한 카페앙주가 나폴리에 자리잡아. 시칠리아는 아라곤의 카탈란 컴퍼니.를 불러들여서리 또한 아라곤 땅이 돼.
잉글랜드에 말야. 앵글로 색슨족이 칠왕국 체제를 만들고 이들이 지금 영국.인건데. 이걸 불러들인 것도. 잉글랜드 게일족 킹이야. 로마 나가고 잉글랜드가 휑해진겨. 아 위에서 스콧애들이 쳐 내려오는겨. 게르만인 앵글족 색슨족을 부른거야 도와달라고. 얘들이 와서 아예 잉글랜드를 점령하고 이게 지금 영국이 된거야. 해서 지들이 초대해놓고 적이 되서리 싸운애가 아서왕.이란 이름이 이야기로 티나오는거고. 이전의 앵글로 색슨 올때 로마 나가고. 게일족 킹이 리어왕은 이보다 훨이전이야.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아서보다 훨 이전이야
아일랜드.도 똑같이 저짓을 한겨. 머 다를게 없어. 헌데 딴 애들관 달리 웃긴게 20세기 와서 독립 하는거지. 러시아나 영국은 걍 그러나부다 하민서리 걍 살어 지들이 초대한 민족애들 바탕으로. 이태리도 걍 저리들 다들 섞여 묻혀서 살아. 먼 노르만 이전 카페앙주 이전의 우리네 민족 독립 이딴게 저기에 어딨어. 그 이전 해봤자 롱고바르디.란 게르만이고 그 이전은 비잔틴애들에 그 이전은 고대그리스에 고대로마가 지배한거일 뿐이고. 저기서 어떤걸 정체성으로 취해서 독립운동 해댈껴 저기서.
시안하게 아일랜드.가 저짓을 하는거지. 해서 지들의 정체성을 주작질 하는겨. 역사를 주작질 해서리.
노르만들이 오기전인 1169 직전엔 위대한 7왕국 체제에 이전엔 5왕국 체제였단거지. 저따위 7이란 숫자도 잉글랜드 7왕국체제의 7을 카피한겨. 한심한건데. 해서리 지들역사는 서기 4백년부터 위대했고. 그 이전엔 로마조차 점령못한 엄청난 나라였고 망상을 하는거지. 그 대표적 인간이 오인 맥닐.인거고 이들이 신페인 당인거고. 테러 해대는거고 위대한 아일랜드 민족 떨던거고.
.
노르만. Norman 이란건. 노르망디.로 온 노르족 Norse 인겨. 바이킹.은 노르족 중에서 해변의 노르족인겨. 해서 attacking norse 공격하는 노르족들.을 바이킹.이라고도 해. 이 바이킹 이란 말은 그래서 서기 800년 직전에야 등장하는거야.
노르족. norse 이란 노르족 언어쓰는 사람들은.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들인데. 이 노르스 Norse 라는 노르족.도 출현이 바이킹 시대.부터 시작하는거야.
Old Norse was a North Germanic language that was spoken by inhabitants of Scandinavia and their overseas settlements from about the 9th to the 13th century.
게르만 언어족을 북게르만 서게르만 동게르만 나눌때. 동게르만은 흑해로 가서리 사라진거고.
The North Germanic languages make up one of the three branches of the Germanic languages, a sub-family of the Indo-European languages, along with the West Germanic languages and the extinct East Germanic languages. The language group is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Nordic languages", a direct translation of the most common term used among Danish, Faroese, Icelandic, Norwegian, and Swedish scholars and laypeople.
북게르만 언어족 해봐야. 스콧위의 패로 군도.에 아이슬람드 언어야. 대부분이 노르족이야. 해서 북게르만 은 노르족. 이야. 이 언어족이 9세기.에 출현하는겨. 바이킹은 여기 부분집합이고.
이전에 있던 애들이. 덴마크 반도에는. 북쪽에 주트족 Jutes 중간에 앵글족 Angles 아래에 작센족(색슨족) 이 있던겨. 이중에 앵글족 색슨족이 바이킹으로 잉글랜드로 가서리 칠왕국체제 만드는 앵글로 색슨족인거고. 노르족. 이란건 이후에 생긴 정체성인거야.
스웨덴에 스위디스.라는 스웨덴족. 베오울프.나는 기트족. 등등이 9세기가 되면 다 노르족.으로 정체성이 바뀐겨 이게.
.
노르만.Norman. Northman 이란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Normandy 에서 바쌀을 받고 프랑스 킹에 하미지 하기 시작한
Rollo or Gaange Rolf[5] (Norman: Rou; Old Norse: Hrólfr; French: Rollon;
c.
860 – c. 930 AD) was a Viking who became the first ruler of Normandy, a region of France. He is sometimes called the first Duke of Normandy.
롤로. 간즈 롤프. 홀롱. 롤롱. 이 롤로.가 서프랑키아 대머리샤를.에게 하미지를 하면서부터 노르만.이 시작인거야. 서기 911년 부터 노르망드 듀크. 공작이야. 바이킹의 시대일때. 덴마크 바이킹들은 잉글랜드가서 데인로. Danelaw 를 차지해서 살다가 서기 954년에 쫓겨났다가. 다시 크누트.가 아예 잉글랜드를 먹기도 해.
다른 바이킹.들은 프랑스 북쪽에 정착을 한겨. 즉 이전에도 계속 전투를 한거를 대머리샤를 때 협상해서 니덜 저기 살아라 공식 인정을 받은거야. 서기 911년에. 잉글랜드 바이킹은 쫓겨났지만, 여기 바이킹들은 노르만.이 된거야. 잉글랜드에서 나온 바이킹들도 이리로 또한 오는겨. 이들이말야, 결국 다시 잉글랜드.를 먹고 영국을 만든거야. 정복왕 윌리엄이 노르망디의 노르만.이걸랑.
또한 이들이 이탈리아 남부.로 가서리 나폴리와 시칠리아. 킹덤을 만든거고. 세계 역사는 이들 노르만.들이 주도를 한거야.
이 노르만.이란게 롤로. 서기 911년 부터 시작되는 말이야.
저 롤로.를 러시아 땅 루쓰들의 시작 류릭. 으로 보는 시선이 있어. 롤로.가 노르망디.에 있다가 슬라브 초대받아 러시아땅으로 갔다는거지. 러시아 사학자들이 특히나 이걸 밀어. 다수는 그리 안봐.
헨리2세.가 아빠 플랜태저넷 제프리.가 앙주. 투렌. 맨 Maine 의 카운트 백작이었어. 그리고 노르망디를 점령해서 노르망디 공작.도 한겨. 이걸 헨리2세에게 넘겨줘. 해서 첫타이틀 앙주.로 앙주제국 하지만. 노르망디.도 헨리2세꺼야. 노르만.들이 초대되서 아일랜드로 쳐들어가서 점령하고 이 주인은 헨리2세.가 되는겨. 아일랜드의 로어드.가 돼 이때부터 잉글랜드 킹들은.
헌데 저 아일랜드.가 노르만들이 1169년 부터 쳐들어갔지만. 또한 제대로 수중에 들어오지 못해. 가운데 미드.땅이 특히 반발이 심해 초기엔.
Ireland in 1300 showing lands held by native Irish (green) and lands held by Normans (pale).
서기 1300년. 섬의 켈트족인 게일족.의 아이리쉬.들은. 북 오닐.과 서남쪽의 먼스터. 에 서부 해안. 내륙 가운데 빼고는 대부분 노르만.들이 먹은겨. 저 안에는 바이킹.들이 이미 스며있는거고 해변에.
The high point of the Norman lordship was the creation of the Parliament of Ireland in 1297, following the Lay Subsidy tax collection of 1292. The first Papal Taxationregister was compiled in 1302–07; it was the first Irish census and list of properties, similar to the Domesday book.
실지왕 존.때 마그나 카르타. 가 1215. 이때 팔리어먼트. 라는 배런들 중심 귀족 연합회의체.가 만들어져. 팔리어먼트의 시작이야 이게. 헌데 이게 제도화된 팔리어먼트.가 아니야. 이걸 아일랜드에서 제대로 만들어본게 서기 1297년 이야. 헨리2세 이후 백년 지나서 만든겨. 이게 뒤에 잉글랜드.가 팔리어먼트.를 제도화 할때 아일랜드 팔리어먼트.의 경험을 갖고 만들어.
스테이트스 제너럴.이라는 프랑스 삼부회는 서기 1302년이 최초 시작이야. 잉글랜드보다 백년이 늦어. 백년전쟁에서 이긴게 오히려 얘들 역사를 후퇴를 시켜 이 프랑스는. 잉글랜드는 백년전쟁 패배가 지금의 영국을 만들었어 오히려.
The 1180 Sejm in Łęczyca (known as the 'First Polish parliament') was the most notable of these councils, in that for the first time in Poland's history it established laws constraining the power of the ruler.
폴란드의 팔리어먼트.인 세임. Sejm 이란건 서기 1180년.이야.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늦게 시작한 슬라브지만 엄청난 나라였어 중세에. 헌데 말야. 얘들은 저 세임.이란 것 때문에 나라가 사라져. 두 나라가. ㅋㅋㅋ. 웃긴겨 이게. 얘들 망한건 그리스의 데모스.로 망한것과 똑같애 그 이야기가. 저런 제도를 인민 민주 놀이로 써먹으면 그나라는 패망하는거야. 이 후유증이 그리스는 2천년이야 이게. 폴리.도 저 후유증이고.
이 인민 민주 놀이는. 그 땅의 역사의 바닥바닥을 아예 없애버려. 그 싸이키를 확 조지는게 저 인민 민주 놀이야.
프랑스 혁명.이라는 삼부회.가 역시나 말야. 제3계급이 자기들을 팔리어먼트에서 나온 용어.를 배워서 코뮌. 으로 작명하고서. 1789-99 십년동안. 수십만을 서로 안에서 죽이는거야. 외부와의 전쟁은 둘째치고. 끔찍한 시기야 저 1789년 이란 프랑스 혁명후 10년의 프랑스는. 대학살의 시기야 빨간모자 애들의. 그 바탕이 인민 민주 놀이였어.
The Hundred Years' War was a series of conflicts waged from 1337 to 1453
백년전쟁.이 서기 1337-1453년. 이때를 전후로 아일랜드에서의 잉글랜드 지배력이 약화가 돼. 아이리쉬 들이 들고 일어나는거야 이틈을 타고.
또한 저 직전에 잉글랜드는 에드워드1세때 스콧의 핏줄이 끊기고 노르웨이에 있던 마가렛이 스콧 킹하러 오다가 꼬마애가 죽으면서. 무정부가 될때. 에드워드가 베일리얼.을 밀고 스콧에 개입을 하걸랑. 해서 스콧과 잉글랜드 전쟁이 이전에 벌어지면서 말야. 이 스콧이 쳐들어가는곳이 아일랜드야. 부르스 가문의 로버트1세.가 킹에 오르고. 베일리얼 애들이 아일랜드로 도망가걸랑 또한.
The Bruce campaign was a three-year military campaign in Ireland by Edward Bruce, brother of the Scottish king Robert the Bruce. It lasted from his landing at Larne in 1315 to his defeat and death in 1318 at the Battle of Faughart in County Louth. It was part of the First War of Scottish Independence and the conflict between the Irish and the Anglo-Normans.
동생 에드워드 부르스.가 아일랜드 쳐들어가는 3년전쟁. 1315-1318. 잉글랜드는 스콧과 변경에서, 아일랜드 에서 전쟁들 하고 백년전쟁을 시작한겨
서기 1300년 전후부터 아이리쉬 들이 들고 일어서는겨. 잉글랜드에 버티던 킹덤애들이 잉글랜드애들을 몰아내려는거지.
Gaelic resurgence (1350–1500)
이때부터. 서기 1500년 까지 150-200여년 아일랜드에서 수시로 들고 일어서는거야. 헌데 말야. 이때 반란의 중심은, 또한 말이지. 기존 게일의 아이리쉬들이 아냐.
Ireland in 1450 showing lands held by native Irish (green), the Anglo-Irish (blue) and the English king (dark grey).
서기 1450년. 북 오닐.과 서해변쪽의 아이리쉬와 미드.의 아이뤼시.가 점점 넓힌거야. 남쪽 데스몬드 오르몬드 칼데어. 북쪽 얼스터 찔끔. 더블린 있는 페일 빼고는 다 아이리쉬 들이 회복을 한겨. 더블린 있는 페일 Pale 은 잉글랜드 킹 직속령이야. 나머지는 얼돔. 백작령들이고.
The most powerful forces in the land were the great Hiberno-Norman Earldoms such as the Geraldines, the Butlers and the de Burghs (Burkes), who controlled vast territories which were almost independent of the governments in Dublin or London.
1169년 노르만들이 헨리2세 배후로. 초대받아 점령하러 갈때 아일랜드에서 자리잡은 가문들이. 제럴드. 버틀러. 버크. 이 셋이야. 얘들이 얼돔 백작령인겨. 그중 이전 썰 버크 내전.이란게 버크 가문애들 안에서 서로 싸우다가 얘들이 얼스터 땅을 기존 아이리쉬애들에게 다 뺏겨 저기 쪼금 남고.
버틀러들이 오르몬드 Ormond 제럴드.애들이 데스몬드 Desmond 에 킬데어(킬다레) Kildare.
The Anglo-Normans were the medieval ruling class in England, composed mainly of a combination of ethnic Anglo-Saxons, Normans and French, following the Norman conquest.
쟤들을 앵글로 노르만.이라 해. 노르만들이 쳐들어가 자리잡고 옆 잉글랜드애들이 같이 이주해서 정착을 하걸랑. 해서 앵글로 노르만.이야
Outside the Pale, the Hiberno-Norman lords adopted the Irish language and customs, becoming known as the Old English, and in the words of a phrase coined in later historiography, became "more Irish than the Irish themselves." Over the following centuries they sided with the indigenous Irish in political and military conflicts with England and generally stayed Catholic after the Reformation
그러다가. 저 앵글족들이 섞인 노르만들이. 점점 히베르노 노르만.들이 되어가는겨. 히베르노.는 아일랜드.의 라틴어야. 겨울. 추위. 갈리아 로만. 식으로. 노르만들이 히베르니안들이 되는겨. 잉글랜드 직속령 페일 빼고. 나머지 땅들이 아이리쉬 화 되는거야. 제럴드 버틀러 버크 애들이. 해서 이전에 썰 실큰 토마스.가 킬데어.의 제럴드걸랑. 헨리8세에 반란한게.
얘들이 아이리쉬 들보다 더 아이리쉬 같아진겨.
지금 아일랜드 민족 . 해대는 애들의 바탕은 저 노르만 애들에 아이리쉬.가 섞인 저 세 가문 애들이 바탕이야.
해서 헨리8세가 앵글리카니즘 하고 카톨릭 엎을때, 제럴드쪽의 실큰 토마스.가 카톨릭을 등에 업고 더블린 점령해서 잉글랜드 건너려다가 오히려 카톨릭 주교를 부하가 죽여서리 망하걸랑. 이때즈음은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의 세력에서 거의 벗어날 지경이 된겨 이게.
From 1536, Henry VIII of England decided to conquer Ireland and bring it under English control. The FitzGerald dynasty of Kildare, who had become the effective rulers of the Lordship of Ireland (The Pale) in the 15th century, had become unreliable allies and Henry resolved to bring Ireland under English government control so the island would not become a base for future rebellions or foreign invasions of England. To involve the Gaelic nobility and allow them to retain their lands under English law the policy of surrender and regrant was applied.
In 1541, Henry upgraded Ireland from a lordship to a full kingdom, partly in response to changing relationships with the papacy, which still had suzerainty over Ireland, following Henry's break with the church. Henry was proclaimed King of Ireland at a meeting of the Irish Parliament that year. This was the first meeting of the Irish Parliament to be attended by the Gaelic Irish princes as well as the Hiberno-Norman aristocracy.
해서 헨리8세.가 아일랜드 킹.을 선언해. 로어드.를 버려. 아일랜드 전체를 지배하던 것도 아니었고. 아일랜드 킹.을 선언하면서 아일랜드 전체를 다 지배하려는겨. 기존 아이리쉬들 군주들도 몰아내고. 하미지를 확실히 받겠다는거지. 사법체제도 잉글랜드의 카먼로.를 저기에 공통으로 뿌리겠다는거고. 얘때부터 잉글랜드 킹.은 아일랜드의 킹.이 돼.
이게 제대로 다 들어온게. 엘리자베쓰1세 죽고 제임스1세 때에야 아일랜드가 다 들어온거야. 그리곤 20세기에 독립한건데.
The Desmond Rebellions occurred in 1569–1573 and 1579–1583 in the Irish province of Munster.
They were rebellions by the Earl of Desmond – head of the FitzGerald dynasty in Munster – and his followers, the Geraldines and their allies, against the threat of the extension of their South Welsh Tewdwr cousins of Elizabethan English government over the province. The rebellions were motivated primarily by the desire to maintain the independence of feudal lords from their monarch, but also had an element of religious antagonism between Catholic Geraldines and the Protestant English state. They culminated in the destruction of the Desmond dynasty and the plantation or colonisation of Munster with English Protestant settlers. 'Desmond' is the Anglicisation of the Irish Deasmumhain, meaning 'South Munster'
엘리자베스 즉위하고 아일랜드의 반란이 데스몬드 반란들 1,2차 야. 4년씩. 제럴드.의 데스몬드 백작이, 엘리자베쓰의 세력이 자기들 침해하는걸 막기 위해 들고 일어난거야. 더하여 똑같이 종교를 갖고온겨. 카톨릭을 회복하겠다. 실큰 토마스.와 똑같어 이게. 같은 제럴드 애들이야. 저기서 다이너스티.라는건 걍 지배하는 가문.의 조.라는겨 왕조따위가 아니라. 다들 쟤들이 기존 노르만 애들인겨 아이리쉬가 아냐 쟤들은.
이 제럴드 애들에게 모든 아이리쉬 애들이 연합을 하는거야. 노르만 귀족애들이 아이리쉬가 된겨.
저게 종교문제와 엮여서리. 특히나 아이리쉬.는 그리스도.가 서기 400년 직후부터야. 카톨릭이. 보수적인 애들이야 얘들이. 프로테스탄트와 아주 살벌해진거야 감정싸움이. 걍 다 태워 프로테스탄트 거주지들을.
데스몬드.가 데스 뭄하인 Deas Mumhain 뭄하인.이 먼스터.여. 먼스터 남부. 아주 참혹한겨 전쟁이 이게.
After three years of scorched earth warfare by the English, Munster was racked by famine. In April 1582, the provost marshal of Munster, Sir Warham St Leger, estimated that 30,000 people had died of hunger in the previous six months. Plague broke out in Cork city, to where the country people had fled to avoid the fighting. People continued to die of starvation and plague long after the war had ended, and it is estimated that by 1589 one-third of the province's population had died. Grey was recalled by Elizabeth I for his excessive brutality. Two famous accounts tell us of the devastation of Munster after the Desmond rebellion.
스코치 전략이야. 이건 다 태우는겨 못먹고 못자게 해서 상대를 걍 몰살하는 겨. 결국 기근이 오는겨. 3만명이 굶어죽다 6개월동안. 역병이 돌고. 다들 이사가고. 인구의 1/3 이 죽다.
'세계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68. 세계최고의 스페인 연극 르네상스 시대 (0) | 2019.03.27 |
---|---|
67. 햄릿. 덴마크 (1) | 2019.03.26 |
66. 천일야화2,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0) | 2019.03.24 |
65. 오데카톤. 베네치아 인쇄기가 만든 근대 (0) | 2019.03.22 |
유럽사151. 유럽 이슬람. 북잉글랜드의 봉기 (0) | 2019.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