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8–1648 Eighty Years' War
- 1569–1580 Spanish-Turkish War – 48,000 killed in action[1]
네덜란드 전쟁 80년. 시작 1568년에. 아래 오른쪽에선 합스부르크와 오스만 전쟁이 계속이야. 헝가리.의 마티아스. 야기에워의 루이2세. 를 이어받아서.
- 1559–1564 Spanish-Turkish War – 24,000 killed in action[1]
Suleiman I (6 November 1494 – 6 September 1566), from 1520 until his death in 1566
술레이만1세.가 나이 26세에 셀림1세.를 이어서 술탄이자 칼리프.가 되는데. 서기 1520년. 얘때 다시 치고 올라가면서, 메메드2세가 막혔었던 베오그라드. 점령하고 위로 가서 모하츠(모하치) 전투 1526년.으로 헝가리 킹 루이2세죽고. 쭉 올라가서 비엔나 포위 1529년. 하고 걍 오걸랑.
모하츠.에서 루이2세가 죽고. 1526년. 이때 헝가리귀족 사포야이 가문.이 합스부르크.랑 싸우면서. 동헝가리.를 세워. 1526-70. 얘들은 오스만 술레이만에게 하미지를 하는거고. 그래서 쉽게 비엔나 까지 올라간거고 술레이만은. 이당시의 합스부르크 대 사포야이 더하기 오스만.의 내전을 리틀워. 사오십년을 봐. 헝가리안에서 동과 서.경계를 두고 싸우는거야. 그러다가 크로아티아의 츠링스키. 나오는 시게트바 전투.에서 막사에서 죽고서 휴전 하는거야.
동시에 지중해에서는 오스만이 베네치아, 스페인, 병원십자군.을 상대하면서 갈리폴리. 텟살로니카. 로도스섬. 몰타. 해전들 연일 해온거고. 이탈리아전쟁땐 프랑수아1세가 술레이만.이랑 손을 잡은거고.
이 프랑스가 골때리는게.
Muslims make up 4.9% of Europe’s population in 2016
https://www.pewforum.org/2017/11/29/europes-growing-muslim-population/pf_11-29-17_muslims-update-20/
지금 무슬림 분포도.유럽을 보면. 서유럽에서 프랑스가 9퍼 가까이. 독일 영국이 각 6퍼 걸랑. 네덜란드가 많고 비율상. 저게 왜 그러냐면 말이지.
프랑수아1세.가 카를5세.랑 이탈리아전쟁때 파비아 전투.로 패해서 포로신세 되면서, 얘 엄마가 술레이만.을 끌어들이면서 이때 프랑스가 오스만.이랑 손을 잡아. 이 인연이 나폴레옹까지 가는겨 이게. 프랑스와 터키의 인연는 3백년이상이야. 끈끈한겨 웃기게도.
해서, 앙트완 갈랑.의 천일야화.가 나올 수 있었던거고. 이스탄불에 대사가는 길 따라간거걸랑. 프랑스랑 오스만이랑 외교관계가 끈끈한거야. 갈랑이 저기서 오스만 수도에서 마음껏 돌아다니고, 오스만의 땅 레반트도 마음껏 가서 공부를 한거야.
나중에,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이라는 대학살.의 시기에. 툴롱 전투에서 이름을 드러내면서 자코뱅애들 눈에 띄지만 말야. 그리고선 혐의자법 만들면서 적폐놀이로 조오오온나게 사람들 죽이고, 공개적으로 저때 일년간만으로도 기요틴.으로 짜른게 16000명이 넘어. 방데전투에선 20만이 죽어. 죽은 이들의 삼분의 이.는 걍 민들이야.
그야말로 조오온나게 죽이걸랑 이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를 정점으로 한 빨갱이들이. 이들이 빨간모자 써서 빨갱이야. 사람들 죽이는걸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해 이들은. 걍 안죽여. 조오오오온나게 죽여. 지들 눈깔엔 다들 적폐야. 혐의자법.이 적페법이야 저게. 걍 저거 적폐. 지랑 사귀는 창년이 저놈적폐 손가락질 하면 걍 짤리는겨. 저게 프랑스 혁명이란 짓하는건데.
로베스피에르.애들을 몰아내. 바라스.를 중심으로. 이도 똑같은 이지만. 로베스피에르.는 자살을 시도하다가 말야 총을 잘못 쏴서 턱만 날라가걸랑. 저런 사례가 흔해 총을 턱 밑에대고 쏘다가 삐끗 해서 얼굴 앞면만 날라가는게. 사는데 지장이 없어 아파서 그렇지. 이걸 사람들이 그냥 천 둥둥 감아서리. 똑같이 목짤라 죽여.
저따위를 . 혁명가 위대한 혁명가중의 혁명가 ㅋㅋㅋ. 참 코메딘데 진짜.
아파유! 얼굴 좀 건들지 마유!! 하는 걸 걍 킬로틴 에 얼굴 올리고 면상 팍 고정댈때도 턱주가리가 삐끗 하걸랑. 로베스피에르.가 너무 아파서리 소리지르는게 짐승 울음소리 저리가라였어. 오히려 빨랑 짤리는게 고통을 줄여준거지 저게.
저럴때 나폴레옹.이 갈 곳이 없었걸랑. 위원회 애들이 얘를 방데, 라인군단 등에 보내려는걸 나폴레옹이 거부를 해. 저긴 자기가 갈 자리가 아니걸랑. 이때 나폴레옹이 가려했던 곳이. 이스탄불. 이여. 이스탄불 가서리 오스만군 애들 가르치려고. 피해있으려한거지.
저런 인연이 말야. 1차대전.을 오스만이 패할때 그래도 협상 테이블.에서 오스만 편을 들어줘서리 저 국경 유지한게 프랑스여 그래서.
이 프랑스.가 저 슬람이들을 그래서 더 받는겨. 이게 지금 프랑스가 이민애들에 나름 더 관대? 한건데.
더하여 말야.
저놈의 종교전쟁 때. 프로테스탄트.가 카톨릭이랑 싸울때. 이때 프로테스탄트.애들이 손잡는게 또한 오스만이야. 오스만의 이슬람.인겨. 특히나 격렬한 위그노 애들은 성상 파괴주의자들이걸랑. 이게 이슬람애들이랑 느낌이 같은겨. 더하여. 오스만이 유럽으로 쳐들어가는건 종교전쟁을 들고 나오지만, 그 타겟을 갈르는거야. 카톨릭으로. 그러면서 반카톨릭.인 프로테스탄트.와 이슬람이 손을 잡아.
이런건 짐만이 썰할 수 있는건데. 해서 저 이슬람 의 유럽 분포가. 이해가 되는겨 그래서.
저 정말 어마무시한 이슬람의 오스만을 바다와 땅에서 상대한건. 스페인이여 스페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아냐. 스페인 합스부르크야. 저 돈들은 스페인이 뒤에서 댄거야.
카를5세.가 할배 막시밀리언의 베팅으로 우연치 않게 합스부르크.가 스페인을 먹은거지만. 후안나의 스페인입장에선. 정말 시집을 잘 못 간거야 저건. 합스부르크.에 시집가면서, 내치에 신경 못쓰고 외부에 자기들 자원을 써댄거야 스페인은. 이것때메 스페인이 망한거야 근대사가 끔찍하고. 헌데 이것때메 또한 유럽은 이슬람화 되지 않은겨.
이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가장한 종교여 저게. 더 가장 가장한게 유교.이고. 해서 유교국가애들이 이슬람을 빨아대는건데. 헌데 저런것도 보믄 웃긴게. 여자 교수들이야 ㅋㅋㅋ. 이슬람을 소개하는 이들이. 아 증말 웃겨 저게.
그렇다고 그리스도.를 취했으면 괜찮은건가. 아르메니아.가 가장 먼저 그리스도 공인한 거걸랑. 그 아르메니아.는 잘 살았고 잘사는가. 넘어가고.
왜 샌겨 이거. 어디서 샌겨.
1559-64. 의 스페인 투르크 전쟁은. 리틀워.의 연장이야. 사포야이 야노스애들과 오스만이 연합해서 합스부르크.랑 헝가리땅에서 싸우는거야.
Ferdinand I (Spanish: Fernando I) (10 March 1503 – 25 July 1564) was Holy Roman Emperor from 1558, king of Bohemia and Hungary from 1526, and king of Croatia from 1527 until his death in 1564
카를5세의 동생 페르디난트1세 황제.가 1564년.에 죽어. 이사람은 헝가리.를 회복을 못하고 죽은거야. 동헝가리.는 사포야이.가 하미지 하는 오스만 꺼인겨.
그리고 다음해 1565년.이 몰타 대포위전. 이고. 그 다음해 1566년 이 시게트바 전투.로 술레이만이 죽어.
2년후인 1568년.에 80년 전쟁이 시작이고. 다시 새 주자들이 1569년부터 합스부르크.랑 오스만이랑 전쟁하는게 1569-80 스페인 투르크 전쟁이야.
two years after Selim's accession succeeded in concluding at Constantinople a treaty (17 February 1568) with the Habsburg Holy Roman Emperor, Maximilian II, whereby the Emperor agreed to pay an annual "present" of 30,000 ducats and granted the Ottomans authority in Moldavia and Walachia.[citation needed]
황제와 술탄을 이은. 막시밀리언2세 와 셀림2세.가 1568년.에 휴전하면서. 오스만에 몰도바.와 왈라키아.를 정식 인정하는거야. 돈도 주고. 오스만이 우위에 선거지.
저 전쟁은 바다에서 벌어진겨. 스페인의 펠리페2세.가 상대하는거야. 대륙 합스부르크 사촌황제와는 관계가 없어. 셀림2세.가 베네치아가 갖고간 키프러스 섬을 다시 공격을 하걸랑. 이것도 이삼십대 일.의 싸움이야. 몰타 해전도 마찬가지고 말야. 저기서의 중심들은 또한 기사야 기사.
로도스 섬 해전들도. 그 허섭한 숫자들의 기사들이야. 프랑스 에서 특히 와. 개인적으로 걍 가는겨. 숫자가 상대가 안돼. 헌데 이걸 버티거나 이기거나 하는겨. 키프러스.는 대부분 죽는거고. 튀니지 전투에서도 이건 머 백대일의 싸움이야. 이걸 다 버티는게 기사야.
돈키호테.의 기사.라는게 황당하지만 말이지. 그게 또한 그렇지만도 않아. 이 기사.들이란게 이게 음청난거야.
또한 구출기사단 구출 수도회. 노예들 잡혀간거 빼내오는게 저 기사애들 수도사애들이야. 저 대부분 민들이여 노예로 잡혀간 사람들이. 저들의 모럴. 수준이란게. 이게 동양빠닥과는 차원이 달라 이게.
어디 나라에선 중앙 코트.에서 삼십년 만에 남의 나라 탈출한 민.을 다시 돌려보내잖냐. 그러면서 위대한 조선. 해대는데. 아 이런건 비교 자체를 할 수가 없어 이게.
키프러스 전투.의 베네치아 오스만.싸움으로 유럽이 뭉치는게 레판토해전이야. 1571년. 여기 중심역시 스페인이여. 펠리페 2세.가 후원의 중심에 서는겨. 1574년 튀니지 전투. 역시 스페인이고. 이 이야기가 소재로 되서리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쓴거고.
지중해에서 오스만을 상대하는 스페인의 해전.은 베네치아.가 혼자 안되서리 스페인이 끼는거걸랑. 이게 시작이
The Siege of the Castle of Saint George occurred from 8 November 1500 until 24 December 1500, when following a series of Venetian disasters at the hands of the Turks, the Spanish-Venetian army under Captain Gonzalo Fernández de Córdoba succeeded in capturing the Turkish stronghold of Cephalonia.
이오니아 해변 케팔로니아 큰 섬.의 성게오르그 성 함락전이야. 이건 카스티야.의 후안나 있을때야. 카를5세 황제 엄마. 스페인은 이때부터 오스만을 바다에서 상대를 한거야. 지중해의 오스만 상대는 베네치아.에 더하여 이 스페인이야. 베네치아.는 점점 물자가 딸리는거고. 배와 돈과 병력을 대는게 스페인이야. 애들이 바다에서는 베네치아. 육지에서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뒤에서 저 오스만을 막은겨 4백년을.
유럽은 스페인에 어마어마한 부채를 진거야 이건. 지금 유럽 문명은. 저러면서 스페인 자체는 쇠락을 한거야. 그 돈이 유럽의 상공업을 흥한거야 저게. 해외 식민지의 부.는 스페인이 저리 퍼다가 날라 뿌린겨 유럽에.
셀림2세(1566-74) 다음이 무라드3세(1574-95). 얘때 다시 대륙에서 합스부르크.랑 전쟁이야. 해서 해전에서 육지 옮겨싸우는게 스페인 투르크 전쟁 1569-80
Sokollu Mehmed Pasha (Ottoman Turkish: سوکلو محمد پاشا, Sokollu Mehmet Paşa in modern Turkish; Serbian Cyrillic: Мехмед-паша Соколовић, Arebica: صوقللو محمد باشا
pronounced
[měxmet pâʃa sokǒːloʋitɕ];[2] 1506 – 11 October 1579) was an Ottomanstatesman.
오스만.에서 가장 위대한 정치가 중 하나. 소콜루 메메드 파샤. 예니체리. 출신이여. 보스니아 에얄레트 출신. 이사람이 술레이만 셀림2세 무라드3세 삼대를 거쳐 14년 수상.을 해.
오스만이 메메드4세때인. 1683년 비엔나 전투. 하면서. 술레이만이 1529년 갔다가 250년 만에 다시 비엔나로 가지만. 해서 이때가 오스만이 최고 영토라 하지만. 실제 가장 큰 제국일때는 저 소콜루 메메드.가 수상 14년 할 때야. 이때가 가장 정점이야. 막시밀리언2세와의 협상을 만들어낸것도 이사람이고. 해서 대륙은 오스트리아 와 협정을 하고. 바다에서 싸운건데. 이사람이 1579년에 암살을 당해. 예니체리 파 가 죽였다. 해시신 하는 아시신 애쌔씬의 시작 마약쟁이들이 죽였다. 설이 있는데. 이러면서 오스만이 내치가 흔들리는겨. 그러면서 육지에서 이걸 전쟁으로 다시 회피하는겨 오스만은.
오스만.은 술레이만 아빠인 셀림1세때 홍해에 닿았어. 얘들도 인도양을 가는겨. 소콜루 메메드 수상일때 수마트라.로 간거야. 원래 저쪽은 다들 무슬림이걸랑. 오히려 인도 인도네시아 땅은 오스만을 반기는거야. 아 지발 좀 저 포르투갈 그리스도애들좀 쫓아내줘유 하는거걸랑.
오스만과 포르투갈은 홍해와 페르시아만 에서 지나가는 포르투갈이랑 전쟁하다가. 이젠 인도양에서 1580년 부터 본격적인 전쟁을 하는겨. 저 수상이 죽고. 이 인간이. 돈강 볼가강.을 잇는 운하. 수에즈 운하.를 다 계획을 해. 계획만 하고 죽어.
The Celali rebellions (Turkish: Celalî ayaklanmaları), were a series of rebellions in Anatolia of irregular troops led by bandit chiefs and provincial officials known as celalî, against the authority of the Ottoman Empire in the late 16th and early to mid-17th centuries. The first revolt termed as such occurred in 1519, during sultan Selim I's reign, near Tokat under the leadership of Celâl, an Alevi preacher.
젤랄리 반란. 소위 야무사. 군대에서 벗어나서 도적들이 된 사람. 또는 지역 공무원들.을 젤랄리. 라고 해. 오스만의 이 젤랄리 반란들.이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까지 백년 이상 터키 땅에서 꾸준히 있었어.
오스만이 시작은 터키땅 소위트.에 부르사. 서북쪽 귀퉁이걸랑. 이 터키땅도 다른 투르크들 애들을 합친거일 뿐이야. 발칸에서 수시로 반란하듯이. 터키땅의 다른 투르크애들도 반란을 하는겨.
얘들은. 프래트리사이드. fratricide 형제살해.를 하걸랑. 바예지드1세가 앙카라 전투에서 패하고 티무르에 잡혀가서 죽고. 형제들끼리 십년 내전을 하잖오. 메메드1세가 술탄하지만. 이때부터 술탄 오르는 애들이 형제들을 죽이는겨. 이게 얘들 전통이 되걸랑. 이들이 또한 도망다니고 뭉치는게 터키땅이야 말통하는. 해서 저 반란들이 또 생기는겨.
The Rising of the North of 1569, also called the Revolt of the Northern Earls or Northern Rebellion, was an unsuccessful attempt by Catholic nobles from Northern England to depose Queen Elizabeth I of England and replace her with Mary, Queen of Scots.
북쪽의 봉기. 1569년. 북쪽 얼들. 백작들의 반란. 북의 반란.
스콧 마리.가 프랑수아2세.가 이질로 죽어서. 1560년. 스콧에 돌아가. 1561년. 스콧에서 대신 섭정하던 엄마 기즈의 마리.가 당해 먼저 죽어 프랑수아2세 보다. 프랑스에서 아무것도 안해본 마리가 스콧에 레그넌트 퀸.을 하는겨. 나이 19세에. 단리.랑 결혼하는게 4년후 1565년. 단리 암살이 1567년. 유괴당하고 재혼당하고 보쓰웰 도망가고 마리는 섬에 감금당하다가. 1568년에 잉글랜드로 탈출해.
Mary, Queen of Scots (8 December 1542 – 8 February 1587), also known as Mary Stuart[3] or Mary I of Scotland, reigned over Scotland from 14 December 1542 to 24 July 1567.
Elizabeth I (7 September 1533 – 24 March 1603)[1] was Queen of England and Ireland from 17 November 1558 until her death on 24 March 1603. Sometimes called The Virgin Queen, Gloriana or Good Queen Bess, Elizabeth was the last of the five monarchs of the House of Tudor.
엘리자베쓰1세.가 퀸에 오르는게 1558년. 이때는 스콧마리.가 엄마도 있고 프랑스에서 다음 킹 프랑수아2세.랑 같이 있을때야. 앙리2세.는 다음해 죽어. 스콧마리가 아주 빵빵할때야 나이 16세에. 비극은 엄마죽고 신랑죽는 1560년 부터걸랑.
피의 마리.가 죽을때. 프랑스 앙리2세.와 스콧마리 의 엄마 기즈마리.가 양쪽에서 잉글랜드 킹은 스콧마리 꺼다 했걸랑. 엘리자베쓰.는 앤불린 자식이고 이전에 일리짓. 불법된겨. 번복은 했지만. 스콧마리.의 할머니.가 튜더 마가렛.이야. 헨리8세 누나야. 스콧마리가 적통이란거걸랑.
엘리자베쓰.에게 스콧마리.는 조카야. 나이는 9살 차이지만.
잉글랜드.는 프로테스탄트.가 다시 권력을 잡고, 엘리자베쓰.를 올리는겨. 프랑스 스콧 꺼져 하는거걸랑.
헌데 엘리자베쓰.가 25세에. 그래서 레그넌트 퀸.에 오르지만. 정통성 문제가 또한 걸리는거야. 스콧마리.가 도망왔지만 조카지만 불편할 수 밖에 없어. 더하여 카톨릭과 잉글랜드판 프로테스탄트.의 내분이 다시 재현이 되는 상황에서 퀸에 오른거야.
헨리8세.가 수도원 해체 시작으로 반란이 나고. 피의 마리가. 다시 카톨릭 올리고 이번엔 이전 프로테스탄트들의 반란이 나.
실큰 토마스 반란. 그레이스의 순례. 프레어 북 반란. 이건 아일랜드. 북잉글랜드. 콘월데본 서남부 아래. 카톨릭이 헨리8세한테 반기를 든거걸랑. 아일랜드와 콘월 데본.은 원래 핏줄부터 잉글랜드완 다르고. 반란 할 수 있어. 헌데 그레이스의 순례.란건 이건 다른 문제야.
케트 반란.은 에드워드4세때 터진 전형적인 농민반란이야 먹고 살라고. 여기에 카톨릭이 슬쩍 손얹는거고.
와이어트 반란.은 마리.의 카톨릭에 반기를 든 프로테스탄트들이야.
The Pilgrimage of Grace was a popular uprising that began in Yorkshire in October 1536, before spreading to other parts of Northern England including Cumberland, Northumberland and north Lancashire, under the leadership of lawyer Robert Aske.
Bigod's rebellion of January 1537 was an armed rebellion by English Roman Catholics in Cumberland and Westmorlandagainst King Henry VIII of England and the English Parliament. It was led by Sir Francis Bigod, of Settrington in the North Riding of Yorkshire.
은총 순례.와 비곳 반란.이 1536년 37년 연이어 터질때. 이건 헨리8세의 카톨릭 탄압에 반발한거걸랑. 컴버랜드. 노썸버랜드. 북 랭커셔. 웨스트모랜드.
여기가 다 북쪽 스콧 접하는 곳이야. 스콧은 스콧 마리의 엄마 기즈 마리.가 카톨릭 이걸랑. 저긴 프로테스탄트.인 패트릭 해밀톤을 화형시키고, 조지위샤트 연설하는 존 녹스.가 경호해주던 곳이걸랑. 카톨릭 지우려고 헨리8세가 러프 우잉. 거친구애 이름으로 에딘버러 쳐들어가기도 하고, 스콧 마리 아기는 프랑스로 도망가던.
필그리미지 오브 그레이스.라는 후대의 작명.인데. 신의 은총을 받고자 하는 순례.로 작명을 한겨. 저게 북쪽 잉글랜드사람들이 주도를 해서리. 링컨.에 모여. 4만명으로 추산을 해. 링컨 커띠드럴. 즉 주교가 있는 교회야. 일명 촛불집회 하는겨. 헨리가 안 흩어지면 다 죽여뿐다 해서리, 걍 모여있다가 흩어져. 주모자는 죽이고. 저기 주모자들도 말야. 다들 귀족에 수도사에 변호사야. 식자층 리더층이 저런걸 해.
와이어트 반란.인 와이어트도 귀족이야. 비곳 반란인 비곳 도 귀족이야.
이 잉글랜드.의 역사.는. 귀족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해온 역사야.
이 잉글랜드 만이 유일하게 세계 역사를 주도를 했고 해왔어. 앞으로도 역사는 영국이야. 얘들은 이 자부심이 강한데 이게 허상이 아냐 힘이 있어 이게.
프랑스 대학살 따위는 없어 프랑스 혁명이라 포장되는 그딴 짓의 피바다 는 영국엔 없어. 인민놀이가 여긴 없었어.
얘들 역사는 엄청난거야 진짜.
본격적인 영국역사는. 그래서 그 진짜의 힘이. 이 엘리자베쓰 때부터의 역사야. 유럽사는 서기 1600년 부터는 영국 없이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15세기 까지는. 유럽사는. 이탈리아.를 빼면 유럽사를 말할 수 없어. 말하면 안돼. 이탈리아를 모르면 유럽사를 논해선 안돼. 특히나 이탈리아 전쟁 65년간의 이야기를 모르면. 유럽의 중세.는 무지 무식한겨 그건. 이나라에 저 이탈리아전쟁을 썰 할 수 있는 인간이. 없어 없어.
이제부턴 영국이야. 그게 이유가 있는겨. 쟤들은 귀족이 주도해온 역사야. 민들에게 전가를 안시켜. 귀족들이 사유가 없고 사유의 힘이 없으니, 인민놀이하면서 대학살을 일으키고 그걸 대단한 역사.라 포장질 해대는거야.
귀족들이 힘이없으니 남의 나라 들에게 연일 짓밟히는거고.
어디 듣보잡 나라는. 귀족 킹 들이 수도를 버리고 도망을 다니고 다시 와서는 아무렇지 않게 리더자연 하고. 저따위 들을 위대한 조선 . 하면서 지폐와 청동으로 모시고. 세계 인류 역사에서 저런 사례는 없어. 더하여 21세기에 저런 구데기.들을 위대하다 모심질 하는 건 이건 정말 개미친거야. 미개해도 보통 미개한게 아냐. 얘들이 지금 정치 하는 현실이 지금이야. 정치면 보면 별 시안한 일들이 벌어져 지금.
그레이스의 순례.는 리더 몇몇 만 죽여. 비곳의 반란은 처형당한 이들이 216명.이야. 카톨릭을 죽인거야 헨리8세가.
엘리자베쓰.가 킹이 되고 십년이 지난겨. 이 전해인 1568년.에 스콧 마리.가 피신해 왔어. 이 다음해 벌어진게 북쪽의 봉기.라는
The Rising of the North of 1569
다시 삼십년 전의. 저 두사건의 재현이야. 스콧마리.가 잉글랜드에 넘어왔다. 저여인은 카톨릭이다. 엘리자베쓰.는 프로테스탄트.에 배스터드. 앤불린 딸이다. 적법아니다.
다들 귀족들이야. 진압이 되고. 이 사건으로 스콧마리.가 입지가 더 좁아지는겨. 엘리자베쓰.주위의 권력은 스콧마리를 죽여야 한다는거고. 이런 일들로 스콧마리는 죽게 되는거야. 인간들이 뻑하면 반란할때 스콧마리.를 내세우는 거걸랑.
저런일들이 비일비재한겨 세계사보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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