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1세. 1299-1323

오르한 1323-1362

무라드1세. 1363-1389

바예지드1세. 1389-1402

 

 

The Bulgarian–Ottoman wars were fought between the kingdoms remaining from the disintegrating Second Bulgarian Empire, and the Ottoman Empire, in the second half of the 14th century

 

불가리아 오스만 전쟁들은. 1345-93. 또는 1371-96. 으로 페이지마다 달라. 결국말야. 1345-96. 51년간.으로 보면 돼. 불가리아 마지막 황제 스트랏시미르.가 니코폴리스 십자군 에 참여해서 지고. 다음해 죽는걸로. 다뉴브 하류 아래 있던 도브루자.의 바르나 가 살아남아 오스만에 하미지 하면서 살아남지만. 여기도 1444 바르나 십자군 때 패하면서 오스만이 직접 다스리면서 지워지지만. 1444로 안보고 1396년. 으로 봐. 도브루자.의 바르나는 불가리아 차르 핏줄이 아니라 귀족이 반기들고 독립해서 오스만에 하미지 한거걸랑. 불가리아 역사에서 안쳐준다는 거지. 

 

 

비잔틴 내전으로 오스만이 들어오는건데. 
비잔틴 내전은 서기 1320년대.는 안드로니코스 2세와 3세. 할배와 손자.의 내전으로 보내고. 1340년대는 칸타쿠제노스 가문이 섭정에 공동황제 오르는 내전이고. 1350년대는 다큰 꼬마 팔라이올로고스 황제와 칸타쿠제노스 황제부자.와의 내전.이야.
오스만의 2대 오르한.때 저 내전이 다 벌어진겨. 할배 손자 내전일때 아나톨리아에서 비잔틴을 내쫓고. 칸타쿠제노스.가 황제오를때 쟤 딸을 술탄 마누라로 챙기면서 갈리폴리.로 정착해서 발칸을 시작한거지. 
불가리아가 오스만과 전쟁하는건. 1345년이냐 1371년 이냐. 걸랑.

The Battle of Peritheorion on 7 July 1345 between the forces of Momchil, the quasi-independent ruler of Rhodope, and an allied Byzantine-Turkish force headed by John VI Kantakouzenos and Umur Bey of Aydin. The two armies met in front of the walls of the city of Peritheorion (near Amaxades, now in ruins),

 

칸타쿠제노스.가 섭정하기 위해서 팔라이올로고스.랑 내전할때. 얘들이 바다건너 투르크애들을 부르걸랑. 

 

그러면서 비잔틴땅은 세르비아와 불가리아가 야금야금 먹는겨. 로도피즈 산맥.이 발칸산맥에서 우하향 사선을 그면서 트라키아 땅을 감싸. 이 산맥 왼쪽에 흐르는 강이 네스토스 강(메스타 강)이야. 이게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의 경계 강이고. 이 강 오른쪽 즉 트라키아 왼쪽 끝지역에 있는 도시가 페리테오리온. 이란 도시야. 여기서 불가키라 의 몸칠. 과 아나톨리아의 아이딘.이란 베일리크.의 우무르.라는 베이.와 전쟁하는게 시작이야.

 

 

 

몸칠.은 불가리아 차르에서 독립해 나가서리 로도피즈.에서 군주를 하는거고. 아이딘. 이란 베일리크.는 오스만 베일리크.의 아래에 있는 키오스 섬에 마주한 베일리크야. 칸타쿠제노스.가 얘들을 부른겨. 이걸 몸칠.이 팔라이올로고스.와 손잡고 얘들을 막는거고 발칸땅에서.

 

 

불가리아.나 세르비아.나 꼴통 옥소독시야. 투르크.의 이슬람애들은 싫은겨 얘들이. 비잔틴은 맛이 갔고. 결국 이 두 나라가 투르크를 막는겨. 비잔틴은 완전히 쓰레기가 된거고 얘들은.

 

아이딘.도 결국 오스만으로 봐. 나중 아이딘 베일리크.는 오스만에 먹혀. 해서 걍 시작을 1345년 으로 봐. 

 

칸타쿠제노스.가 아이딘의 저 우무르 베이.에게 배를 제공하고 물자를 제공해서 실어날르는겨. 투르크 애들을. 얘들이 결국 옆 로도피즈.에 있는 불가리아 몸칠.을 이겨. 

 

아이딘 베일리크.는 저 우무르 베이.일때가 자장 쎄. 얘들도 위 오스만.이 베이 할때 독립선언하면서 얘들도 독립선언하는겨 룸셀주크로 부터. 비슷한 애들이 저기에 막막 서. 오히려 오스만보다 아이딘.이 더 쎘어. 애들은 바로 바다 접하걸랑. 발칸 가서도 비잔틴 귀족애 황제로도 앉히는거고. 하다가 아래 로도스의 병원기사단이랑 베네치아 애들한테 저 우무르. 베이가 죽어. 그러면서 여기 아이딘.은 오스만에 하미지 하면서. 없어지는겨 오스만으로.

 

 

아이딘.이 길딲은걸 오스만애들이 날름 먹는겨 저걸. 그러면서 쟤들 다시 내전할때 칸타쿠제노스 돕는단 핑게로 다 처먹는겨. 해서 칸타.는 오히려 비잔틴에서 쫓겨나고. 할때 저걸 막는게 불가리아 세르비아야

 

Stefan Uroš IV Dušan known as Dušan the Mighty (Serbian: Душан Силни / Dušan Silni; 

c.

 1308 – 20 December 1355)

 

세르비아. 차르 자칭했던 두샨.이 또 저때 죽은겨. 서기 1355. 

 

Ivan Alexander as John Alexander,[3] ruled as Emperor (Tsar) of Bulgaria from 1331 to 1371

 

두샨.이 죽을때가 비잔틴의 팔라이올로고스 조.의 요아네스 가 20이 되서리 칸타쿠제노스 부자랑 찐하게 내전할때걸랑. 이때는 저 칸타.가 오스만이랑 딸 주고 손잡을 때고. 저때 세르비아 두샨.이 죽은겨. 그러면서 세르비아는 각각 쪼개지고 아들 차르는 더 위크. 약한 딱지붙은애고. 불가리아 알렉산더 차르가 동맹세력을 못 잡는겨 저게. 세르비아에 정치세력이 없어진거야. 혼자서 오스만을 상대하다 병으로 죽어. 오스만은 동시에 애들 보내서 왼쪽과 위로 다 처들어가는거고.

 

세르비아도 쪼개지고, 불가리아도. 귀족이 독립해서 바르나에서 군주하고 아들 둘이 쪼개서 막고. 

 

The Battle of Maritsa, or Battle of Chernomen (Serbian: Marička bitka/ Маричка битка, Bulgarian: Битката при Марица, битката при Черномен, Turkish: Çirmen Muharebesi, İkinci Meriç Muharebesi in tr. Second Battle of Maritsa) took place at the Maritsa River near the village of Chernomen (today Ormenio in Greece) on 26 September 1371 between the forces of Ottoman commanders Lala Shahin Pasha and Evrenos and Serbian commanders King Vukašin Mrnjavčević and his brother Despot Jovan Uglješa[10][11][12][13] who also wanted to get revenge after the First Battle of Maritsa.

 

에디르네. 옆의 마릿사강변 전투 일차이차. 모두 세르비아가 하는겨. 에디르네.를 오히려 세르비아.가 여까지 와서 오스만을 막다가 패해. 그리곤 이때부터 오스만의 수도가 에디르네.가 돼. 하드리아누스 폴리스. 2차 전투는 세르비아가 뺏으러 가는거고. 비잔틴은 오른쪽 구석에서 걍 있고. 비잔틴은 쓰레기야

 

 

 

불가리아.나 세르비아.는 저리 전쟁하러 오는거 맞서면서 싸우다가 죽어. 

 

The siege of Tarnovo occurred in the spring of 1393 and resulted in a decisive Ottoman victory. With the fall of its capital, the Bulgarian Empire was reduced to a few fortresses along the Danube.

 

불가리아.는 중심이 타르노보.걸랑 당시. 발칸산맥 넘어. 여기 차르.가 쉬쉬만.이여 애들이 함락된게 1393년.이고. 쉬쉬만.은 니코폴리스.로 가고. 여기도 먹힌겨 1395년.에. 이때 비딘.에 있던 이복형제 차르.인 스트랏시미르.도 여 십자군에 간거고. 해서리. 쉬쉬만.도 1395년에 죽고. 스트랏시미르.는 다음해 1396년에 죽는거야. 

 

 

 

 Serbian–Ottoman conflicts include

 

세르비아와 오스만.은 1352년. 부터로 봐. 즉 비잔틴 칸타쿠제노스.가 오스만 아들 오르한을 부를때. 이걸 상대한게 세르비아야. 

 

 

 

 

오스만때 갈리폴리.넘어오는걸 세르비아.가 비잔틴에 껴서 얘들을 막아. 오스만이 니카이아 니코메데이아 못 점령하니 바다건너 갈리폴리를 먹으러 온건데. 이 오스만은 허섭하걸랑 이땐. 비잔틴이랑 세르비아가 합세해서 이걸 막아. 

 

본격 시작이 1352년. 칸타쿠제노스.가 비잔틴 황제하겠답시고 아들까지 황제시키려는겨. 데모티카.는 에디르네 아래.야. 그다음 1364년 전투가 에디르네 근처여. 무라드1세때 이 전투에서 이기고 에디르네.가 수도가 돼. 저기서 중심은 세르비아야.

 

 

세르비아 두샨.이 1355년에 죽고. 불가리아 이반 알렉산더.도 1371년에 죽고. 세르비아에서 다시 에디르네.를 회복하려는게 1371년 마릿사 전투. 오스만이 이겨. 

 

오스만이 동시에 위로 발칸산맥 넘고. 왼쪽과 그 위로 세르비아를 처들어가는겨. 

 

쪼개진 세르비아땅들이 연합 혹은 각개로 오스만이랑 전쟁하고. 차르 직계는 데스토테스. 이름으로 베오그라드.쪽으로 갔다가. 오른쪽 불가리아가 먹혔걸랑 오스만에게. 비딘. 그 다뉴브 강 따라 오면 베오그라드여. 해서 이들은 점점 코소보.와 그 옆 해변 몬테네그로 쪽으로 옮기는거고. 

 

해서 그 결정적 전투가. 1389년 코소보 전투야. 여기서 오스만의 무라드1세.가 죽어. 

 

얘 아들 바예지드1세.가 불가리아 망. 니코폴리스 십자군도 얘가 이기고. 불가리아 두 차르들 죽이고. 오스만에 먹힌 세르비아 땅의 애들은 오스만의 병사들이 되어서리 불가리아 쳐들어갈때 오스만편에 서고. 그 위 왈라키아 땅 쳐들어가는것도 세르비아가 앞장을 서. 반대로 세르비아 쳐들어갈때는 불가리아 사람들 앞에세우고 가는겨. 비참한겨 이게. 

 

이 세르비아.가 독실한 오소독시야. 1453년 때 메메드2세가 또한 용병으로 부르는게 세르비아 기병대야. 이들은 소집될때 아나톨리아 투르크들과 전쟁하러 가는줄 알았어. 헌데 자기들 성지인 콘스탄티노플을 처들어가는데 예니체리들 앞에다 세우는겨. 비참한겨.

 

 

쟤들이 저런거에 대고, 지금 사과하라 사과하라. 대는지 마는지.

 

다 지들 탓에 저딴 지옥을 당하는걸 말야. 대체 상대한테 사과하라는 건 먼지 . 대체 말야. 왜 그따위 짓 당하게끔 한 그 당시 권력 그 당시 치자 들 에겐. 대체 왜 아무말 안하는거냐 저거.

 

 

이 조선 들 정말 너무나 끔찍한 논리가 . 지들 정체성은 임시정부.라 하면서. 즉 말야. 조선은 자기들 정체성이 아니야 이따위 논리는. 즉 말이지. 조선은 지금 조선 민국의 이음이 아냐. 건국절 논쟁 이. 조선왕조는 대한민국이 아니고 임시정부 부터란거야. 해서 임시정부 부터의 일.은 다 일본 탓인겨. 임시 정부.는 공식 정부가 아니라 임시. 걸랑. 해서 임시.한테는 화살을 못돌려. 조선왕조는 건국 이전의 전혀 다른 족속이란 거고. 이래저래 말이지 지들의 책임은 다 회피하고 남탓만 하는겨 저게. 그러면서 또한 저따위 들을 지폐와 동전으로 모시는거지.

 

 

 

 

In 1471, the Serbian Despotate was renewed in exile as a vassal of Hungary. Up until its demise in 1540, it spent its entirety fighting the Turks. The state provided support and auxiliary troops to the Kingdom of Hungary.

 
 
세르비아는 불가리아 보다 1백년 후에 최종 망 하는거야. 
 
쟤들은 저리 처절하게 싸우면서 죽었어. 차르들 조차. 귀족들 조차.
 
 
 
전 세계사에서 말야. 이땅바닥 구한말 같은 정말 개쓰레기 역사는 없어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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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of the Western Balkans around 814 AD.

 

서기 814년 경 지도인데. 게르만 이동 후에, 슬라브애들이 넘어와서 자리잡으신겨 발칸반도 서쪽에. 


AVARIA 아바리아. 써있는 모퉁이 떨어지는 다뉴브강 점이 부다페스트.야. 쭉 내려서리 sinnium 이라 써있는 곳이. 소리발음 정식은 시기두눔 sigidunum 지금 베오그라드. 인데 말야. 
 
저때는 서기 814년.이야. 헝가리땅에 마갸르 족이 온건 서기 895년.이야. 얘들이 오자마자 백년 만에 킹덤 하는겨 로마교황에 하미지 하면서. 이전 저때는 아바르.족 avars 들. 스텝이여. 얘들 땅이야. 슬라브애들에 스텝애들이 엉키다가 우랄족 마갸르가 오시는겨 곧. 
 
저때는 불가리아.는 7세기에 오자마자 차르.야. 얘들 스텝이야 1차 제국은. 불가리아.와 아래 비잔틴과 왼쪽 프랑크.가 저거 발칸 서쪽에서 다퉈. 불가리아가 쎈겨 저게. 투르크 칸국 서기 550년-750년 간략 보면. 오른쪽 광활한 스텝하다가 여기 와서 불가리아 만들고 뻗치는거걸랑 일부애들이. 저때 온 슬라브는 크로아티아쪽에 기 들어가서리 카롤라인 프랑크쪽에 하미지 하는겨. 
 
저때 다른 슬라브들이 지금땅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에 쑥 쳐박혀 있는거야 저게. Bar Kotor 바르. 코토르.란 지금 도시는 몬테네그로.에 있어. 두브로브니크 Dubrovnik 라구사 공화국 도시였어. 이건 지금 크로아티아 땅이야. 아드리아 해변에 달마티아. 파그나니아 pagnania. 자클루미아 zachlmunia. 트바부니아 travunia 디오클에아 dioklea(지도 오타) . 에 세르비아.에 슬라브들이 삐집고 들어가 산거야. 
 
Bar 바 도시 아래에 뒤라키온 Dyrrachion 이 있어. 여기가 지금 두레스. Durres 란 알바니아 도시.이고. 저리 보면 몬테네그로에서 땅이 아래 직각으로 확 꺾이면서 알바니아 인거야. 
 
고대그리스.는 저 아드리아해변 전체를 일뤼리아. illyria. 에 로마는 일뤼리쿰 illyricum 했걸랑. 
 
그러다 고대 로마때 다뉴브강 아래까지 진출하고 그리스 점령하면서 선을 그을때. 저 아드리아해변을 달마티아 Dalmatia 라하고 90도 꺾여서리 아래를 에피루스 Epirus 를 새 에피루스. 헌 에피루스. 라 하는데 말야.
 
 
에피루스(그리스어 에피로스) 라는 피루스.의 에피루스.라는건 원래. 알바니아 남부와 그리스 서쪽해변. 을 차지한 지역.이 에피루스.라고 해.
 

Map of ancient Epirus by Heinrich Kiepert, 1902

 

 

저 오른쪽이 핀도스 산맥 Pindus 이여. 디나르 알프스에서 내려와서 가지야. 이게 원래 에피루스.인건데. 로마때 저 위 알바니아 북쪽 에서 왼쪽 확 꺾이는 접점 까지를 신 에피루스 라 하고 기존 에피루스 저걸 구 에피루스.라고 해. 
 
 

에피루스 노바. 가 위. 에피루스 베투스. 옛날 이 아래. 이 아래 가 원래 피루스.의 에피루스야. 저 섬이 코르푸 corfu 섬여. 저건 지금 그리스 꺼고. 저 경계가 지금 알바니아 그리스고. 

 

저 코르푸 섬이 베네치아 목숨줄이야. 저길 뺏기면 자기 도시엘 못들어가 배들이. 이 코르푸섬이. 오뒷세이아.의 주인공 오뒷세우스.가 이타케 Ithaca 의 킹 이라하는데. 이 이타케 섬이 저 코르푸 섬이란 설도 만만찮아.

 

이 코르푸 섬 아래가. 지금 이타케섬.이랑 붙어있는 카팔로니아 섬이야. 

 

 

다시 돌아가서. 저 814년 지도에서 비잔틴은 뒤라키온.이라는 지금 두레스.위. 즉 90도 꺾이는 알바니아땅까지 지배를 하는거야. 즉 신 에피루스 땅까지야. 슬라브애들은 그 위에서 걍 바바리안 비슷하게 있는겨 투르크족 불가리아와 프랑크와 비잔틴 사이에서. 저기가 지금 몬테네그로.에 코소보.야 알바니아 와 접한 곳이.

 

 

코소보.는 지금 유엔가입국.이지만. 세르비아.가 쟤들 주권을 인정 안해줘. 코소보는 알바니안.이 팔구십퍼야. 

 

알바니안.은 저 슬라브애들이나 스텝애들보다 훨 먼저 온 애들이야. 얘들이 원래 주인이야. 헌데 그리스에 로마에 치이다가 불가리아 스텝에 이젠 슬라브도 오고. 20세기에야 자기들 나라 만든겨 에피루스 땅에서.

 

코소보.에 알바니안이 대다수이지만 말야. 저곳이 세르비아란 이름으로 시작한 이 슬라브애들의 시작지역이야. 코소보와 몬테네그로.가. 얘들이 이땅에서 시작해서리 세르비아.를 만든겨. 떨거지들이 왼쪽 보스니아.를 만들었지만. 해서 코소보.는 원래 세르비아의 시작지역이라 못벗어나게 하는 거고. 몬테네그로.는 이 정체성이 말야.

 

The Vojislavljević (Serbian CyrillicВојислављевић

pl.

 Vojislavljevići / Војислављевићи) was a Serbian medieval dynasty, named after archon Stefan Vojislav,[3] who wrested the polities of DukljaTravuniaZahumljeRaška and Bosnia from the Byzantines in the mid-11th century. His successors, kings Mihailo I Vojislavljević (d. 1081) and Constantine Bodin (d. 1101) expanded and consolidated the state. During the 12th century, the main line of the Vojislavljević family was ousted by their cadet branch, the Vukanović (which became the Nemanjić dynasty), in the late 12th century.

 

원래 세르비아.를 터를 닦은 가문은 보이슬라블예비치. 가문이야. 이 다음 부카노비치 조.가 비잔틴에서 떨어져나가서리 그랜드프린스.에 킹덤을 하고. 이 다음 네마니치 조.에서 차르 선언하면서 바로 망하는데. 저들이 모두 시작인 보이슬라블예비치.의 핏줄이야. 다 방계 핏줄이야.
부카노비치.조에 의해 저 원조 핏줄 집안이 쇠한겨. 이들 시작이 원래 저 몬테네그로에 코소보였어. 다음에서 점점 위아래로 확장한거야 세르비아가. 그러다가 쪼개지고. 여긴 나중에 몬테네그로.란 걸로 떨어져 나가는데. 여기가 원래 시작이야 세르비아의.
.
저런 제일 늦었던 세르비아.가 주변 슬라브들을 다 묶고. 1071년. 부카노비치 조.부터 그랜드프린스.시작하고 1217년 킹덤.에 1346 짜르. 하고 1371년에 제국 해체 해서 1499년에 공식 망.하지만 말야. 즉 3백년간 발칸의 강국이야. 불가리아는 저때는 기존 투르크애들 사라지면서 2차제국 부터는 슬라브화 되면서 오히려 정체성을 막 다지고 시작하려할때 오스만에 망한거고.

오스만1세. 1299-1323

오르한 1323-1362

무라드1세. 1363-1389

바예지드1세. 1389-1402

 

불가리아.는 무라드1세때 망하고. 세르비아는 쪼개진체 계속 오스만제국이랑 전쟁할때. 1402년에 바예지드1세가 죽어. 

The Battle of Ankara or Angora was fought on 20 July 1402 at the Tchubuk plain near Angora between the forces of the Ottoman Sultan Bayezid I (Bajazet) and Timur (Tamerlane), ruler of the Timurid Empire

 

터키 앙카라. 근처에서 1402년에 티무르제국.을 세운 오른쪽 티무르.랑 싸우는겨. 바예지드1세.가 이때 티무르한테 잡혀

 

 

티무르.는 몽골핏줄로 보고. 이전에 흑사병 오고 아래 몽골 일칸국은 사라지고 중구난방 칸에 에미르애들을 차가타이에서 뻗어 나온 티무르.가 다 통일을 해. 

 

The empire was founded by Timur (also known as Tamerlane), a warlord of Turco-Mongol lineage, who established the empire between 1370 and his death in 1405. 

 

Timur[3] (Persianتیمور‎ TemūrChagataiTemür; 9 April 1336 – 18 February 1405),

 

저때 티무르.는 수도가 사마르칸트야. 오른쪽이야. 카스피해 아래 지나서리 흑해까지 와서리 앙카라에서 바에지드 1세랑 전쟁을 한거야 저게. 저땐 티무르.가 66세여. 바예지드1세는 갓 40 넘은거고. 바에지드1세가 티무르한테 포로가 되서리 사마르칸트 까지 이송이 되어서 저기서 죽는겨. 
저때도 세르비아 갈갈 흩어진 땅애들이 오스만에 하미지를 하고. 앙카라 전투에 티무르.랑 싸우러가는 길에 세르비아 군대를 파견시키는겨 세르비아들은. .
오스만 애들은. 비잔틴땅 대부분 먹고. 불가리아 망 시키고. 세르비아 들이랑 전쟁 중에. 갑툭튀 티무르 한테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겨.

술탄이 갑자기 사라졌어.
바예지드1세는 네번째야. 오스만 이후로. 점점 역사에서 마누라들 이름들이랑 자식들 줄줄이 낳는게 써지는거지 점점. 이들은 들 열라 까야 하걸랑. 마누라들 하렘에 넣어야 하고.

The Ottoman Interregnum, or the Ottoman Civil War[1] (20 July 1402 – 5 July 1413TurkishFetret Devri, "Interregnum Period"), was a civil war in the Ottoman Empire between the sons of Sultan Bayezid I following the defeat of their father at the Battle of Ankara on 20 July 1402. Although Mehmed Çelebi was confirmed as sultan by Timur, his brothers İsa ÇelebiMusa ÇelebiSüleyman Çelebi, and later, Mustafa Çelebi, refused to recognize his authority, each claiming the throne for himself.[2]Civil war was the result. The Interregnum lasted a little under 11 years until the Battle of Çamurlu on 5 July 1413, when Mehmed Çelebi emerged as victor, crowned himself Sultan Mehmed I, and restored the empire

 

10여년간 술탄 자리를 두고 내전을 하는거야. 

 

티무르.가 재밌는데 말야. 얘들은 몽골 이지만. 페르시안 을 채택을 해. 얘들이 공식 1370-1507 . 130여년을 하는데. 그리곤 저당엔 사파비 가 서지만 말야. 사파비가 서고 오른쪽 인도에 서는게. 무굴제국이여. 16세기에 서양애들 오는 그 혼란의 시기에 서는 인도땅에. 이 무굴이 티무르 핏줄이여 이게. 즉 저 무굴이란게 몽골애들인겨. 

 

저 인도 역사가 조오온나게 허섭하고 골때리는겨 저게. 인도가 말야. 칭기스칸때는 안먹혔지만. 결국 무굴이란 이름으로 먹힌겨.


티무르.가 바예지드를 잡았지만. 상대국 술탄이야. 자식들이 티무르를 바라보는겨. 우리 아부지 쫌... 그러면서. 오히려 티무르 한테서리 술탄 승인을 받아. 우리 아부지 잘 챙겨주시구유. 내가 술탄 할깜유? 
바예지드1세는 바로 다음해 죽었어. 사마르칸트에서.

전을 십년 하는거야. 저런 와중에도 세르비아.나 비잔틴.은 아무것도 안하는거지 저 좋은 타이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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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vil war broke out among the sons of Sultan Bayezid I upon his death in 1403. His oldest son, Süleyman, with his capital at Edirne, ruled northern Greece, Macedonia, Bulgaria and Thrace. The second son, İsa Çelebi, established himself as an independent ruler at Bursa[3] and Mehmed formed a kingdom at Amasya.[4] War broke out between Mehmed and İsa, and following the battles of Ermeni-beli[5] and Ulubad(March–May 1403),[3] Isa fled to Constantinople and Mehmed occupied Bursa.[6] The subsequent battle at Karasi between Mehmed and Isa resulted in a victory for Mehmed and Isa fleeing to Karaman.[7] Isa was later killed in a bath by agents of Mehmed

 

 

당시 메메드1세.는 아마샤. 여긴 앙카라 훨 오른쪽에 잇는 흑해 아래 지역. 첫째는 에디르네 수도고. 얘가 다 다스리는거지. 둘째는 부르사. 에디르네 이전에 수도가 여기여. 메메드1세가 왼쪽으로 가면서리 에디르네의 첫째형을 치러 가는겨. 음청나지 . 부르사 에 있던 둘째는 콘스탄티노플로 도망가고. 다시 건너와서 터키땅에서 전쟁하고 도망간게 카라만. 터키 남부. 자객에게 암살당해 죽다.

During the stalemate in Anatolia, which lasted from 1405-1410, Mehmed sent Musa across the Black Sea to Thrace with a small force to attack Suleyman's territories in south-eastern Europe. This maneuver soon recalled Suleyman to Thrace, where a short but sanguinary contest between him and Mûsa ensued. At first Suleyman had the advantage, winning the battle of Kosmidionin 1410, but in 1411 his army defected to Mûsa at Edirne and Suleyman was executed on the orders of Musa.[12][13] Mûsa was now the ruler of the Ottoman dominions in Thrace

 

에디르네 있던 진짜 술탄 후보. 첫째가 바다를 건너서리 메메드를 치러 가는겨. 메메드.에게 무싸.Musa 가 있어. 바예지드1세.랑 같이 잡혔던 형제야. 티무르가 보내준겨. 첫째가 부르사.랑 앙카라.까지 다 재점령하고 바다건너 에디르네.로 돌아가. 무싸.가 다시 가서리. 저 첫째형을 치는겨. 얘가 이겨. 첫째 술레이만 형은 죽어. 이 무싸.가 갑툭튀 짱이 된겨.

 

 

비잔틴 콘스탄티노플이 첫째 술레이만.에 붙어 연합했걸랑. 무싸가 손보는겨. 콘스.에서 메메드1세에게 구원요청하고. 메메드와 무싸.형제가 콘스.를 두고 싸우는겨. 여기서 메메드1세가 이겨. 바예지드1세 핏줄의 유일한 승자야 살아남은.

 

 

저러면서. 이제 술탄은 형제들을 죽이는겨. 이 오스만은 후계자 전쟁이 특히나 심해 이게.

 

Before 1603 it was customary for an Ottoman Sultan to have his brothers executed shortly after he gained the throne (Mehmed III had executed 19 of his own brothers). 

 

형제들 죽이는게 아주 흔한거야. 메메드3세같은 경우는 19명의 형제들을 죽였다. 하렘에 마누라들이 쌓여있으니. 걍 까는거야. 이 프레임은. 이 유너크 두고 하렘 두고 자식들 줄줄이까고 자식들이 킹 오르면 형제들 죽이는건. 중국이나 조선이나 저 무슬림 쓰레기나 아주 공통적인겨 이게. 유교와 이슬람은 아주 비슷해 이 개 쓰레기 들은

 

이 들은 정말 사이코패스 교본을 인간들에게 심으면서 위선의 극치를 달리면서 인간들 정신병자 맹그는. 그래서 참으로 별 이들이 리더자연 하면서리 사람들 죽이는걸로 외에는 할 짓거리가 없었던 것들인데 이 이슬람과 유교가.

 

해서 이땅바닥에서 이슬람 띄우는 애들에 이슬람 좋아유 하는 애들 그 면 가만 히 봐. 저 속엔 유교에 대한 살앙 조선에 대한 경배가 있나 없나. 참 시안한 족속이야 쟤들은.

 

 

저런 들이 아름다운 추상명사들은 또 날리지. 아 추악하기 그지없지 역겹기가 끝이 없고.

 

 

Mehmed I (1379 – 26 May 1421), also known as Mehmed Çelebi (Ottoman Turkish: چلبی محمد‎, "the noble-born") or Kirişci(from Greek Kyritzes, "lord's son"),[3] was the Ottoman Sultan from 1413 to 1421. 

 

얜 20대 갓 되어서 10여년 전쟁한거고 형제들 상대로. 그러다 나이 34 세에 술탄되서리 8년 재임하고 일찍 죽어. 42세.

 

Sheikh Bedreddin (1359–1420) (Ottoman Turkish: شیخ بدرالدین‎) was an influential mystic, scholar, theologian, and revolutionary. He is most well known for his role in a 1416 revolt against the Ottoman sultanate, in which he and his disciples posed a serious challenge to the authority of sultan Mehmed I and the Ottoman state. His full name was Sheikh Bedreddin Mahmud Bin Israel Bin Abdulaziz.

 

셰이크 베드레딘. 이 사람이 메메드1세와 마지막 다퉜던 동생 무싸.Musa 쪽 리더였어. 이사람은 기본 학자에 신학자에 미스틱 독실 신앙인이야. 여기에 신돈 귀신이 낀겨. 무싸.가 죽고 소아시아로 토끼는겨. 그러면서 흡수된 투르크 베일리크. 저 다뉴브강 너머의 왈리키아. 머 반란할 꺼 껀덕지 많걸랑. 이사람이 막막 들 쑤시는겨 반란 내전을. 메메드1세가 이걸 수습하면서 전투하다가 죽는겨. 베드레딘.은 잡혀서 공개처형당하고. 결국 메메드1세.는 내전하고 그 잔당세력 반란에 죽은거고.

 

 

Murad II (June 1404 – 3 February 1451) (Ottoman Turkish: مراد ثانى Murād-ı sānī, Turkish:II. Murat) was the Ottoman Sultanfrom 1421 to 1444 and 1446 to 1451.

 

Mehmed II (Ottoman Turkish: محمد ثانى‎, 

translit. 

Meḥmed-i sānī; Modern Turkish: II. Mehmet 

Turkish pronunciation: 

[ˈikindʒi mehmet]; 30 March 1432 – 3 May 1481),

 

이 다음이 무라드2세.야 음청난 인간이야. 결국 술탄을 30년 한건데. 중간에 12살 된 아들 메메드2세한테 잠시 줬다가 예니체리 반란때메 걍 하기싫은거 억지로 하는 듯 다시 오르곤 전쟁마저 하다가. 병걸려 에디르네에서 죽지만 말야.

 

무라드2세때 바르나 십자군 오는겨 1444. 이걸 이기는게 무라드2세야. 얜 그리고 은퇴한겨. 12살 아들에게 술탄자리 주고. 그리곤 다시 오르고는 알바니아

 

Murad II led his army into Albania and unsuccessfully besieged the Castle of Kruje in an effort to defeat the resistance led by Skanderbeg. In the winter of 1450–1451, Murad II fell ill, and died in Edirne. He was succeeded by his son Mehmed II (1451–81).

 

크루야. 가 저 두레스. 오른쪽이야. 여까지 가서리 함락 못시키고. 걍 와서 죽은건데. 그리고서리 7년 동안 방탕생활하고 19세에 다시 술탄 오른 메메드 2세.가 2년 후에 바로 콘스탄티노플 처먹는 건 이전 썰했고. 

 

 

저러면서 남은 땅들 발칸에. 다 점령하는거고. 메메드2세를 commonly known as Mehmed the Conqueror (Turkish: Fatih Sultan Mehmet) 퀑커러. 정복자 타이틀 붙여주는데.

 

 

 

콘스탄틴 함락하고. 바로 세르비아.쪽으로 가고. 후반에 모레아. 즉 필로폰네소스 반도로 가서 다 점령하고. 다음엔 아나톨리아.로 가는겨. 흑해주변에 트레비존드.가 얘때 망하는겨. 1461년. 250여년 된겨 얘들도. 다뉴브 넘어 왈라키아. 도 점령해서 하미지 받고. 몰도바엔 처음으로 그레이트 딱지 붙는 스테판 있을때. 지만 져야지 메메드2세때. 저때 참 헝가리 마티아스 한테 잡혀있던 드라큘라 백작께서 오시는겨. 메메드2세님께 뒈지시는거고. 더하여 알바니아 점령에 베네치아랑 해변에서 싸우는겨 발칸 그리스 해변. 메메드2세가 이겨. 

 

그리고 아나톨리아 땅. 터키 지금땅의 베일리크들 남은 걸 이때 다 제압 통일하는거야 메메드2세. 아 음청난 띠바. 그러다 마지막 말년엔 이탈리아. 발굽 도시도 한번 찔러보는겨. 

 

다음 바예지드2세.에 셀림1세.에 위대한 술레이만.이 나오지만 말야. 쟤들은 정말 술레이만까지 인물들이 후덜덜 한겨 저게. 

 

 

메메드2세까지. 150년이 대단히 긴 세월인듯 느껴지지만. 음청 짧아 저건. 오스만 오르한 무라드 바예지드 메메드 무라드 메메드. 딱 7대야. 헌데 께임은 오르한 시작때 벌써 비잔틴은 끝난거고.

 

 

헝가리까지만 나중에 보고. 다시 유럽으로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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