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tratto attribuito a Bartolomeo Veneto
체사레 보르자. 카디널 자리를 버리고, 루이12세로 부터 오베르뉴론 알프. 레종의 발랑스 발렌티노. 공작 이란 타이틀이 써있는 초상화인데. 화가가 명확치 않아. 바르톨로메오 베네토. 로 믿어 지금.
Bartolomeo Veneto o Bartolomeo Veneziano (... – 1555) è stato un pittore italiano.
바르톨로메오 베네토. 또는 바르톨로메오 베네치아노. (active 1502–31). 활동시기는 찍히는데 체사레 때 사람이야 아마 동세대로 보여. 에스테 가문의 페라라 코트에서 후원받았어. 이사람이 여기서 만난 여자가 체사레의 여동생 루크레치아 보르자.야
Portrait of a Woman by Bartolomeo Veneto, traditionally assumed to be Lucrezia Borgia.
어떤 여인의 초상화. 바르톨로메오 베네토.의 그림인데. 저 그림 제목은 플로라. Flora . 꽃의 여신이야. 로마 여신이야. 저사람을 루크레치아 보르자.로 추정하는거지. 세번째 결혼으로 알폰소 데스테 페라라공작의 부인일때 이 코트의 화가였걸랑. 루크레치아가 서른 넘어서의 모습인걸로 추정을 해.
Gentile Bellini (c. 1429 – 23 February 1507). 이사람은 젠틸레 벨리니.에서 배운걸로봐. 지오반니 벨리니.의 형.이야. 이 벨리니 형제의 아버지가 Jacopo Bellini (c. 1400 – c. 1470) 야코포 벨리니.야. 르네상스 미술.의 시작으로 봐. 저 형제들이 베네치아 화파를 만든겨. 여기에 그 로라.를 그린 조지오네. 당시 제일 잘 팔린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 미켈란젤로한테 구도좀 배워라 꼰대질 받은.
Studi di testa di un uomo di Leonardo da Vinci. Probabilmente si tratta di un ritratto di Cesare Borgia.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스케치한 사람인데. 체사레 보르자.로 추정을 해. 죽기 1년 전에 만난걸로 봐. 체사레가 점령한 도시들의 설계를 다빈치.가 해. 체사레 죽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체사레를 만날땐 50살이야. 체사레는 미켈란젤로랑 동갑이라 했잖오. 다빈치는 밀라노 스포르차도 별볼일 없이되고. 피렌체도 사보나롤라가 인민민주놀이하면서 완전 맛탱이가 갔고. 이탈리아 전쟁이 완전 한복판이고.
다빈치는 체사레 죽고 피렌체 다시 갔다가 로마갔다가 볼로냐 베네치아 있다가. 프랑수아1세가 성줄테니 오셔 해서 죽기 3년 전에 프랑스로 들어가서리 저기서 살다 죽는겨 프랑수아에게 고맙다고 모나리자 주고.
레오나르도.는 체사레.랑 있을 때 신났을껴. 자기가 익힌 이데아를. 현실에 제대로 구현을 할 기회를 찾은거걸랑. 로망스적인 시선으로는, 체사레가 설득을 한겨 레오나르도에게. 자기와 일할 명분으로. 레오나르도는 체사레를 위해 지도를 상세하게 그려. 공격할 곳의 지도. 수비하는 성을 어드레 견고히 할까. 도시설계를 지금 관점으로 또 설계를 해. 자기가 그린 아키텍쳐로 그 땅의 민들이 다 사는겨. 전국 곳곳을 누벼 레오나르도가. 그러다 걍 갑자기 체사레가 죽으면서 다 날라간겨 그 꿈이. 나중에 레오10세가 오히려 로마 바티칸에서 챙겨주는겨 이사람을. 저때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바티칸에 있었던거지
From September 1513 to 1516, under Pope Leo X, Leonardo spent much of his time living in the Belvedere in the Vatican in Rome, where Raphael and Michelangelo were both active at the time.[49] In October 1515, King Francis I of France recaptured Milan.[35] On 19 December, Leonardo was present at the meeting of Francis I and Pope Leo X, which took place in Bologna.[17][50][51] Leonardo was commissioned to make for Francis a mechanical lion that could walk forward then open its chest to reveal a cluster of lilies.[52][k]In 1516, he entered Francis' service, being given the use of the manor house Clos Lucé,
체사레.가 실질적으로 힘을 잃은 이후 10년 지나서. 프랑스 가기 전 3년 동안 레오10세 교황이 챙겨준거야. 이때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가 여기 같이 있었어.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천장 벽화를 직전에 끝냈고. 우르비노의 라파엘로.는 계속 라파엘로의 방들의 그림들을 그리고 있는 중이었고. 즉 같은 공간에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는 같이 있었어 바티칸에.
그리고 1513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오는거야. 저 해가 중요해.
Pope Julius II (Italian: Papa Giulio II; Latin: Iulius II) (5 December 1443 – 21 February 1513), born Giuliano della Rovere, and nicknamed "The Fearsome Pope"[1] and "The Warrior Pope", was head of the Catholic Church and ruler of the Papal Statesfrom 1 November 1503 to his death in 1513
율리우스 2세 교황.이 10년 하고 죽은겨. 이 다음에 레오10세 이고. 루터 대자보 티나오는거고. 피어썸. 무섭 교황.에 워리어야. 칼든 교황이야. 골때리.
체사레 아버지 알렉산더6세가. 죽고. 다음 교황이 피우스3세. 헌데 이사람이 60이 넘었는데 통풍이 걸리서리 침대에서 죽어. 즉위 한달도 안돼서 죽은겨. 저때도 여전히 병상에 체사레가 누워있는거지. 이 다음이 저 율리우스2세야.
이사람이 시스티나 채플 천장화.의 미켈란젤로 그림을 만든거고. 라파엘로.의 방들의 그림을 이사람이 만든거야. 그 바닥엔. 저놈의 보르자 부자들이야. 저 보르자 놈들을 지우고. 뺏아야 한다는 부들부들.이 무섭 칼잡이 교황 캐릭터를 만들고, 동시에 역사적인 작품들을 만든겨.
하튼. 율리우스2세가 추진한 프로젝트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베드로성당과 아파트 룸에서 각각 작업을 하다가. 율리우스2세가 죽어. 미켈란젤로는 작업을 끝냈고 라파엘로는 죽을때까지 못끝내고 자기 동료들이 마저 작업한거고 라파엘로의 방들은.
레오10세 교황.은 피렌체의 메디치야. 미켈란젤로에게 피렌체의 성로렌스 성당을 재건축하는데 거 성당 앞면의 설계를 의뢰해 대리석으로 조각하고 싶다고. 미켈란젤로가 짜증 열라내면서리 이걸 디자인을 하는겨 나무로.
이때 레오10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부른거야 로마로. 갈 곳없는 이제 60넘은 노인네야 레오나르도는. 미켈란젤로는 팔팔한 40대고. 라파엘로는 막 서른 된거고. 아마 저 셋이 저때 같이 만났을 것이다 하는거고. 마음 좋은 라파엘로는 너무너무 황홀해 했을거라 추정하는거고.
할때 다빈치가 저기서 레오10세 아래 삼년을 있다가. 레오10세가 프랑수아 만날때 같이 만나서리. 거기서 프랑수아 따라서 프랑스를 가고 말년 삼년을 프랑스에서 살다 죽은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생도 체사레 보르자.의 이야기를 뺄 수가 없어. 율리우스2세가 시작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벽화와 라파엘로의 방 그림들도. 체사레 보르자와 그 아버지.를 뺄 수가 없어.
이 보르자 들이. 핵이야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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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 Callixtus III (31 December 1378 – 6 August 1458), also known as Alfonso de Borgia (Spanish: Alfons de Borja), was head of the Catholic Church and ruler of the Papal States from 8 April 1455 to his death in 1458.
보르자.의 시작인 칼릭스투스 3세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외삼촌. 이사람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최초의 교황이 되는건. 사건이야 이건.
이베리아 반도.는. 프랑스 신성로마 입장에선 완전 촌동네야 저긴. 교황이란 자리는 프랑스와 신성로마 세력에서 나오는 자리야. 교황이란 자리는 중세 정치판의 핵이야. 땅은 킹과 엠퍼러가 지배하지만 하늘은 교황이야. 이 교황이 서임권도 쥐고 있어. 교회의 재산들 특히나 수도원 재산은 교황꺼야. 자기 영지들의 실세도 교황인겨. 저 교황 자리를 누굴 올리냐는 건 세속 영주들의 판단으로 그게 콘클라베로 이어져서 올라가는 자리야.
이베리아 반도는 완전 촌동네야 저들 입장에선. 자기들 나와바리에 다른 군주가 끼는겨 또한. 이걸 용납할 수가 없어.
Pope Adrian IV (Latin: Adrianus IV; born Nicholas Breakspear;
c.
1100 – 1 September 1159), also known as Hadrian IV,[1] was Pope from 4 December 1154 to his death in 1159.
Adrian IV is the only Briton to have occupied the papal throne.[2] As Pope, he crowned Frederick I Barbarossa, and successfully removed Arnold of Brescia, who had challenged Papal rule of Rome, to become "to all intents and purposes, master of the city".[3]
교황 아드리아누스 4세. 유일한 브리튼 출신 교황이야. 저사람이 교황재임이 1154-1159. 12월에 취임한겨. 이 두달전에. 헨리2세가 잉글랜드 킹.이 돼. 저 1154년.이 잉글랜드 앙주제국 시작이라는거야. 헨리2세에 사자심왕 리차드.의 시대야 저게. 엄마 마틸다와 외가쪽 스테펜.이랑 싸우는 내전이 다 마무리가 된겨. 스테펜이 병으로 죽어. 이미 두 해전에 아키탄의 엘레오노르.랑 헨리2세가 결혼하면서 판세가 기울어졌어. 프랑스 땅 반이 잉글랜드께 된 시대야. 허트포드셔 수도원 출신 깡촌놈이 교황이 된겨 저 이유로.
이베리아.는 촌동네야 소위 중원애들이 보기엔. 레콩퀴스타 시작을 서고딕이 아스투리아스.에서 했지만. 나바라의 바스크족 쉬메네스.가 통일을 해. 전혀 다른 쌩뚱맞은 애들이야 쟤들 바스크는. 중원 게르만과 전혀 달라. 저땐 트라스타마라 가문이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군주라지만, 저 트라스타마라.는 일리걸한 엔리크2세 카스티야.의 시작이야. 쟤들은 불법이야 중원에서 보면. 이전 부르고뉴 이브레아 의 방계라지만.
포르투갈은 저 왼쪽 구석탱이에서 따로 막 아프리카 점령하는 중이고. 스페인이란 말은 안나올때고 아직. 얘들은 아래 그라나다 무슬림 여전히 있고. 헌데 막바지 인듯 한거고.
중요한건 1453년에. 콘스탄니노플 함락이야. 이건 쇼킹한겨 유럽애들에겐. 천년의 제국이 무너진거에. 고대 로마.가 완전히 지워진거야 저건. 즉 2천년 이상의 고대로마가 사라진겨. 얘들의 마음 바닥은 로마야. 이때 대륙에선 백년전쟁으로 대처못하고 신성로마는 황제자리 공석 대공위시대 이후에 지리멸렬하고 동유럽의 후스애들 전쟁에 마티아스는 비엔나 점령하고. 바르나 십자군이란건 오스만에 대패하고.
교황이란 애들은 아비뇽 교황정에 웨스턴 스키즘으로 지들끼리 싸우고. 하면서 콘스탄티노플이 걍 사라진거야. 고대 로마 2천년이 사라진겨 저건.
쇼킹이야 쇼킹.
이 대안을 이베리아 땅에서 찾는겨. 그 사람이 보르자 가문.의 칼릭스투스 3세 교황인거야.
야 어느 누구도 어떤 사가 도 못보는 위대한 관점이신데.
칼릭스투스3세가 발렌시아 출신이야. 외조카 알렉산더 6세 교황도 발렌시아 출신이야. 발렌시아 주교.자리에서 교황이 돼 칼릭스투스가.
저 발렌시아.가. 바르셀로나 아래인데. 여기서 엘 시드.의 노래가 나오는거야.
El Cantar de mio Cid, literally "The Song of my Cid" (or El Poema de mio Cid), also known in English as The Poem of the Cid, is the oldest preserved Castilian epic poem (epopeya).[1] Based on a true story, it tells of the Castilian hero El Cid, and takes place during the Reconquista, or reconquest of Spain from the Moors
엘 칸타르 데 미오 시드. 나의 시드.의 노래. 영어로 시드의 노래. Composed sometime between 1140 and 1207. 서기 1200년 전후에 쓰여진 걸로 봐. 3730 verses.. 스페니쉬.로 된 가장 오래된 시야. 이게 스페인 문학의 시작이야
작자 미상. 이야. 주인공이 엘 시드.
Rodrigo Díaz de Vivar (
c.
1043 – 10 July 1099) was a Castilian nobleman and military leader in medieval Spain. The Moorscalled him El Cid (
Spanish pronunciation:
[el̟ˈθið]), which meant the Lord (probably from the original Arabic al-sayyid, السَّيِّد), and the Christians, El Campeador, which stood for "Outstanding Warrior" or "The one who stands out in the battlefield". He was born in Vivar, a town near the city of Burgos. After his death, he became Castile's celebrated national hero and the protagonist of the most significant medieval Spanish epic poem, El Cantar de Mio Cid.[1]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 무슬림 스페인때에. 이사람이 그리스도 독립 국가를 만든겨. 이게 발렌시아 프린스령이야. 다시 무슬림에 뺏기지만. 무어족들이 이 사람을 엘시드. 얘들말로 로어드. 군주. 라고 해서 엘 시드.로 불러 이사람을. 레콩퀴스타의 상징이야. 스페인 사람들의 마음의 큰 추상이 이 엘 시드.야. 그건 저 엘 시드의 노래. 라는 엘 칸타르 데 미오 시드.라는 시가 만든겨.
이 조선 바닥은. 저따위 장편시가 없어. 말만 오천년 역사 개대고. 끽해야 용비어천가 몇줄 조선 개 원조들 빨아대는 글. 끽해야 신책구천문 묘산궁지리 네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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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릭스투스3세가. 저 촌동네 이베리아에서 교황이 된거야. 아비뇽교황정때도 아라곤이 아비뇽 편 든 웬수임에도 불구하고 된겨. 이것도 역사적 사건인거야.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2천년 로마가 지워진 쇼킹함의 결과야 이건.
이러면서 말야. 레콩퀴스타.가 마무리가 되는겨. 스페인이 무슬림을 몰아내고. 저 와중에 포르투갈은 바르톨로뮤 지아스가 희망곶을 가는거고 바스코다가마가 인도를 가는겨.
이때 등장하는 교황이 알렉산더 6세 교황이야. 칼릭스투스3세 이베리아 출신이 한번하고 다시 된겨 여기서. 이건 말야. 스페인의 시대를 재 확인하는거야. 절대 개인의 힘으로 저 자리를 얻을 수가 없어. 아직 카를 5세가 나올 때가 아냐.
Pope Alexander VI, born Rodrigo de Borja (Valencian: Roderic Llançol i de Borja
[roðeˈɾiɡ ʎanˈsɔl i ðe ˈbɔɾdʒa], Spanish: Rodrigo Lanzol y de Borja
[roˈðɾiɣo lanˈθol i ðe ˈβoɾxa]; 1 January 1431 – 18 August 1503), was Pope from 11 August 1492 until his death
보르자의 두번째 알렉산더 6세가 교황에 오르는 해가 하필 1492년이야. 8월이야. 콜럼버스가 출발하고 그 다음주에 교황에 오른겨 이게. 콜럼버스는 다음해 봄에 리스본에 오는겨. 하필 풍랑을 맞아서리 리스본에 갈 수 밖에 없었어 카스티야가서 자랑도 못하고. 그래도 주앙2세 앞에서 벅찬 이야기 하는데 오히려 포르투갈 왕은 열 받는거야. 야이 라 알카소바스 조약 위반이다 그건. 저 땅은 다 우리꺼다.
Inter caetera ("Among other [works]") was a papal bull issued by Pope Alexander VI on the fourth of May (quarto nonas maii) 1493,
이 땅가름.을 하는게 알렉산더6세야. 얜 아라곤 크라운 소속이야. 당근 카스티야 아라곤 편이야. 여기서 선을 긋는 게 인터 카이테라. 이사람이 한거야.
아직 미남왕 펠리페와 미친언니 후아나가 결혼하기 전이야. 카를은 태어나지도 않았어. 저 이사벨라 부부는 알렉산더 6세교황이 만든거야. 세컨드 커즌.이라서 교황 특허 없이는 결혼을 못한걸. 당시 추기경인 알렉산더가 힘써줘서 결혼을 한겨. 그리고 알렉산더가 저 부부에게 카톨릭 킹.이라고 유일하게 칭해준거야.
교황이란 자리는, 프랑스애들이 십자군 원정 2백년 하면서, 하늘에서 땅위로 내려오면서 정신차리면서, 교황을 우습게 보게 되는게 아비뇽 교황정이 되는거고. 신성로마황제는 이미 이 전에 카놋사 굴욕 당해서리 열받아서리 교황을 산탄젤로에 쳐놓고 지가 교황세우는 하인리히4세는 훨 이전이었다가 십자군원정으로 주도권을 뺏겼지만. 교황은 이미 아비뇽교황정에서 세속군주들에게 버림을 받은겨.
헌데 유일하게 교황 대접 해주는 애들이. 이베리아반도 땅인거야. 저 카스티야 아라곤.과 포르투갈. 은 피레네 산맥에 갇힌 완전 꼴통 그리스도걸랑.
저게 웃긴겨. 두 세속군주 진영 모아넣고. 자 니네들 말야. 선을 이리 카보베르데 기준으로 왼쪽 얼마까지는 니꺼하고 바깥은 니꺼하는거다.
이걸 포르투갈 주앙2세.가 아잉 너무해. 교황이랑 안놀아. 다이다이로 얘기하자 함시롱 그 다음해 토르데시야스 조약. 한거야. 포르투갈 주앙2세는 이것까지 하고 죽는겨. 교황이 근 선 보다 쫌 왼쪽으로 갔지만.
웃긴건 말야. 저 꼴통 그리스도 애들이. 교황을 중간에 두고. 저런 짓을 하는거며. 그래도 저게 지켜진거야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좋은말로 애들이 순박한겨 저게. 해서 사비에르. 제수이트 애까지도 지들 아르마다에 일부러 태워서 같이가고 가이드를 해주는겨. 그리스도를 저짝에 알려야주.
그만큼 저기가 어찌 보면 꽉막힌 촌구석 들이걸랑. 나쁜말론.
헌데. 저들의 시대가 된거야. 칼릭스투스 3세부터. 외조카 알렉산더 6세가 오르는 시점이 그 정점인겨 저게. 스페인의 시대를 예언하는거고. 카를5세의 출현을 예고하는거야.
저걸 하필이면 보르자 가문이 단독으로 한거야. 헌데 이 보르자 들이. 이탈리아 사람이 된겨 이젠. 체사레부터는 로마 에서 태어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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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are's career was founded upon his father's ability to distribute patronage, along with his alliance with France (reinforced by his marriage with Charlotte d'Albret, sister of John III of Navarre), in the course of the Italian Wars. Louis XII invaded Italy in 1499: after Gian Giacomo Trivulzio had ousted its duke Ludovico Sforza, Cesare accompanied the king in his entrance into Milan.
체사레.가 1498년에 추기경 사임하고. 프랑스 땅 공작이 되고. 루이12세가 다음해에 밀라노.로 들어오는거야. 1494년 샤를8세가 이탈리아 짓밟고 다음해 빈손으로 돌아가서리. 5년 만에 2차 이탈리아 전쟁이 시작이 돼. 1499년. 이때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프리모 스포르차.를 쫓아낸거야. 이때 스포르차 가문은 실질 끝난겨. 프란치스코 이후 다음 대에. 두아들에 어린 손자 잔.이 하곤. 이후 쫓겨난 스포르차가 카를5세의 힘으로 복귀하지만. 합스부르크로 넘어가 밀라노는.
루이.는 나폴리는 카페앙주꺼였고, 밀라노는 스포르차 이전 비스콘티 가문.이 루이12세 친할머니걸랑. 그걸 이유로 황금사과 이탈리아를 먹겠다는 거지. 밀라노 들어갈때 체사레.가 같이 들어가는거야. 둘이 완전한 동맹이야. 루이12세가 잘 고른거야 상대를.
On 10 May 1499, Cesare married Charlotte of Albret (1480 – 11 March 1514). She was a sister of John III of Navarre.
밀라노.에 루이12세랑 같이 입성하는게 9월이야. 이전 3월에. 나바라의 알브레 가문 여자랑 결혼을 해.
이 체사레.는 천하의 난봉꾼이야. 여성편력. 하면 이인간이야. 이탈리아 창녀들을 떼로 모아서리 파티를 즐긴 인간이야. 전형적인 쾌락주의자야. 아 부러분데. 헌데 나중에 매독이 걸려서리 후유증에 얼굴에 가면을 써야했어 감옥 탈출해선.
나바라.의 킹덤과 결혼을 한겨. 프랑스와 동맹을 굳게 하려고. 알브레의 샬롯데.란 부인되는 여자는.
John III (French: Jean d'Albret; 1469 – 14 June 1516) was jure uxoris King of Navarre from 1484 until his death, as husband and co-ruler with Queen Catherine.
장 달브레. 나바라의 존 3세야. 나바라의 캐서린 퀸 신랑이야. 캐서린.의 의 아빠는 퐈 foix 가문이고. 캐서린의 친할머니가 나바라.의 엘레오노르.야. 카스티야에 시집간 언니 블란체.가 카스티야의 엔리케 4세 임포텐트 고자.에게 매력없다 차여서리. 아빠 아가곤의 조안2세.가 불쌍해서 원래 니네 엄마 나바라 땅이니 니가 퀸.해 해서 주었다가. 독살시켰다느니 해서리 여동생 엘레오노르.가 받아서리. 에 엘레오노르.가 가스코뉴. 프랑스의 퐈가문 남자랑 결혼해서리. 낳은 아들의 자식이 이 캐서린이야.
나바라 킹덤이 처음 바스크 쉬메네스 가문에서 시집간 산초 여동생으로 프랑스 샴페인 가문이 되고. 성루이9세 딸이 가고 카페애들 오면서 카페 가문이 되었다가 노르망디 에브회 Evreux 가문께 되고 여기 마지막 여자가. 아라곤의 트라스타마라 가문 조안2세.에 시집가고 죽으면서 잠시 트라스타마라 께 되었다가 다시 조안2세가 본처 딸들 블란체.랑 여동생 엘레오노르.에게 주면서 프랑스 에브회.로 돌아오지만. 이 엘레오노르.가 가스코뉴땅의 퐈.가문에 시집가면서 아들이 퐈가문에 며느리도 프랑스야. 여기서 낳은 아이가 나바라.의 캐서린.인겨. 완전한 프랑스 퐈 가문께 돼 나바라. 킹덤이.
이 캐서린.이 결혼한 남자가. 장 달르베. 알브레 가문의 장. 존인거야. 체사레가 결혼한 여자가 이 나바라 킹.의 여동생이야.
나바라의 존3세. 장달브레.의 아들이 나바라의 앙리2세고. 프로테스탄트가 되고. 얘가 나바라 킹을 수복하려고 카를5세랑 싸우는거고. 얘가 프랑수아1세의 누나랑 결혼을 해서리. 거기서 나온 여자가나바라.의 잔.이고 이 아들이 프랑스 앙리 4세야.
저 허섭한 듯한 나바라.가 프랑스 정치사의 핵이 또한 돼. 프랑스 종교전쟁의 프로테스탄트애들의 힘은 여기 나바라.에서 나와.
체사레 보르자.가 저 나바라. 여자와 결혼을 한 건 프랑스 루이12세의 요구야. 체사레.는 태어나서 스페인땅을 밟은 적이 없어. 저긴 촌동네야. 아빠 고향 발렌시아.의 대주교 라지만 가본적도 없어 저긴. 하물며 나바라.는 깡촌중에 깡촌이야. 듣보도 못한겨. 헌데 프랑스 입장에선 저 나바라.가 이베리아 땅에 발담구는 전초기지야. 킹덤의 전략상 중요해 저기가. 백년전쟁도 저 이베리아 땅 애들 덕으로 이긴겨. 국제적으로 저 나바라.는 프랑스에겐 중요하지만. 저 당시도 아직 걍 촌동네 나바라 일뿐이야. 비록 이베리아 땅을 통일 시킨 원조지만 말야 다 옛날 이야기가 된거지.
헌데 말야. 체사레가 나중에 병상에서 꼼짝없이 잡히고. 아예 병들어 거동을 할 수가 없어진거니까. 1503년에 걍 끝난겨. 이후 4년은 수감생활에 탈출에 전쟁하다 죽은건데.
저때 나바라 킹덤의 국제정세에서의 위치가 웃긴거야.
아라곤의 페르디난도2세가. 부인 이사벨라가 죽은게 1504년이야. 나이 54세에. 파릇파릇 18세 처녀 퐈.가문의 귀족여자와 결혼하는게 1506년이야.
체사레 보르자.가 아빠 죽고 얜 침대누운게 1503년이야. 나이 28세. 다음해 1504년에 스페인 성으로 옮겨지는겨. 율리우스2세가 보기엔 얜 불덩어리 나폴레옹급이야. 이탈리아에 있으면 안돼. 탈출하는게 1506년이야. 얘가 저땅에서 탈출해서 바로 처남 킹 있는 나바라 킹덤으로 들어가는겨. 이게 웃긴 역사적 우연인데.
이탈리아 전쟁 시작 때 샤를8세가 나폴리 처먹으러 올때. 여긴 아라곤 크라운.의 것이 되었지만. 아라곤의 알폰소 5세.의 배스터드. 일리지티메이트. 안적법 자식들이 갖고 있었걸랑. 페르디난도2세.는 알폰소5세의 동생 조안2세의 적통자식이고. 해서 딱히 나폴리에 그리 관시미가 없어. 같은 트라스타마라지만. 헌데 저때 이탈리아 전역에서 들고 일어나서 샤를8세의 귀국길을 막걸랑. 그러면서 페르리나도2세의 아라곤도 그냥 같이 낀거야. 그리고 다시 이전 안적법 애들이 저걸 갖고 가는겨 계속.
얘 입장에선. 나폴리.에 대한 입장이 분명치 않아. 저 안적법 사촌들이 계속 갖고 가는것도 탐탁치 않고, 그렇다고 자기가 강제로 뺏기엔 거시기하다가, 뜬굼없이 루이12세가 저거 나폴리 나눠갖자. 할때 옳거니 한겨 걍. 그러면서 1499년.에 루이12세가 체사레랑 밀라노 들어가면서 나폴리 내려올때 페르디난도2세의 아라곤은 협정대로 나폴리를 나눠먹고는, 바로 얘들을 내쫓은거야. 쫓겨난 루이12세는 포 벨리 북쪽땅이라도 더 갖자 교황령도 더 챙기자 하는거고. 요걸 시기를 좀 보면.
By 1500, a combined French and Spanish force had seized control of the Kingdom of Naples.[24] Louis XII appointed Louis d'Armagnac, Duke of Nemours as viceroy at Naples. On October 12, 1501,[25] the new viceroy took over administration of Naples. However, the new French viceroy proved to be more concerned with extending the French share of the kingdom than he was in ensuring that the Spanish received their share. This did much to aggravate relations between France and Spain.[25] These disagreements about the terms of the partition led to a war between Louis and Ferdinand. By 1503 Louis, having been defeated at the Battle of Cerignola on April 28, 1503[26] and Battle of Garigliano on December 29, 1503,[27] was forced to withdraw from Naples, which was left under the control of a Spanish viceroy, General Gonzalo Fernández de Córdoba.
나폴리를 같이 먹은게 서기 1501년.이야. 그러다가 아라곤.이 마음 돌려서리 전쟁을 하는게 1503년 4월이고. 저해 12월에 프랑스가 아라곤에 패해서리 나폴리를 떠난거야.
저때부터 나폴리.는 페르디난도2세의 아라곤 께 되고. 이게 후아나에 가서리 합스부르크것이 돼.
저 1503년. 저 나폴리 아래서 프랑스와 아라곤이 전쟁할때. 저 와중에 8월에 음식을 먹은겨 보르자 교황 부자가. 알렉산더6세가 저때 죽어. 체사레는 눕고. 잡혀가고.
이러면서. 루이12세의 이탈리아 동맹 한 축이 사라진거야. 원래 이게 샤를8세와의 차별점이고 이게 가장 큰 우위라 생각했걸랑. 이러면서 이탈리아전쟁이 전혀 다르게 전개가 돼. 체사레 보르자.가 이탈리아에서 사라지면서
다음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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