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메.편에 이어서 가면 말야.
헤로디아스.와 헤롯2세와의 딸 살로메. 헤로디아스.가 재혼을 해. 떨거지 헤롯2세.를 버리고. 이 여자 팔자도 기구한데.
崎嶇. 기구. 하다 란게. 기. 가 기이하다. 말위에 선 모양이야. 위험해. 위험산 산. 이야. 구. 구역 구에 산.이 붙어. 구 라는 글자가 땅들을 짤라 나누는겨. 그게 산으로 나눠진겨. 땅 나누는 산은 험해 . 높아. 힘든 인생을 기구하다 해.
Herod (/ˈhɛrəd/; Hebrew: הוֹרְדוֹס,
Hordus,
Hōreḏōs, Greek: Ἡρῴδης, Hērōdēs; 74/73 BCE – c. 4 BCE),[1][2][3][4][5][6][7][8][9] also known as Herod the Great and Herod I,
하스몬 왕조.다음으로 완전히 로마의 선택으로 유대 왕조를 잇는 헤롯. 이 말야. 자식들을 보면
첫째가 안티파테르2세. 얜 첫부인에서 낳고 이혼해서리 밀렸어. 그리고 헤롯.이 하스몬 왕가의 여자랑 결혼하면서 화합하려해 이전왕조와. 여기서 나온 아들 둘이가 알렉산더. 와 아리스토불루스4세.
하스몬 왕조가. 헤롯을 죽인다는 이야기가 도는거지. 헤롯의 부인과. 장모와. 더하여 자기 자식 저 둘. 해서 저 둘이 죽고서. 다음 후계자 순위가 다시 안티파테르2세. 이혼한 첫부인의 아들이 되는건데. 얘도 헤롯2세의 엄마랑 같이 아빠에 반란해서 죽고. 헤롯2세도 팽당하고. 헤롯2세와 결혼했던 헤로디아스.도 쫓겨났다가 안티파스와 재혼하면서 복귀를 하는데. 딸 살로메를 데리고. 그리고 세례자 요한 죽는거고.
Glaphyra (Greek: Γλαφύρα; born around 35 BCE-died around 7 CE) was an Anatolian princess from Cappadocia[1] and through marriage was related to the Herodian Dynasty
글라피라. 하스몬이 반란할때 말야. 더 들어가면. 첫째 알렉산더와 결혼한 여자가 글라피라. 야. 이여잔 카파도키아 의 공주야. 카파도키아.는 시리아 위. 폰투스 아래. 중매를 아우구스투스가 선겨. 동맹국들끼리 혼맥으로 뭉치게 한겨 일부러. 헤롯은 철저한 로마 속국일 수 밖에 없어 시작부터가. 헤롯도 하스몬 왕조랑 잘 지내려 한겨. 장남 밀려나고 저들을 정식 승계 시키기도 하고. 잘 안된거지 이게.
문제는. 알렉산더와 결혼한 글라피라. 인거야. 이여자가 일단은 이뻣나봐. 거기에 외동딸이었다가. 남동생이 갓 태어나걸랑 늦게. 완전히 귀하게 자란겨 카파도키아에서. 나름 어깨에 힘 들어가는거지.
헤롯의 아빠가. 이전 썰했듯. 이 핏줄은 유대가 아냐. 유대 아래 에돔땅이야. 여긴 아랍 냄새 나는 곳이야. 여긴 촌냄새가 나는겨. 유목하다 정착한듯 하고. 카이사르.가 폼페이랑 싸울때 이집트 가서리. 폼페이가 환관에 목짤린거에 열받아하민서리 클레오파트라.랑 놀때에 남동생이 반란해서 죽을뻔한걸 시리아 군단이 가서리 도울때 이 헤롯 아빠가 한 몫 단단히 하걸랑. 이때 카이사르의 눈에 들어서리 저 저역에 국세청 직원이 된거야. 간부가. 그리고 이때 자기 아들들을 등용시키면서 성서에서 헤롯 애들이 보일 수 가 있었어.
다시말하믄. 집안이 족보가 없어 여기가. 갓 로마 힘으로 헤롯대제가 왕조를 막 시작한 상태에서. 카파도키아 킹의 딸이 시집을 온겨 여길. 첫째 후계자 알렉산더.의 부인으로. 카파도키아.는 디아도코이 알렉산드로스 후계자전쟁때 설립된 왕조야. 3백년이 된거야 이게 글라피라 시집올땐.
헤롯대제.쪽에선 귀한 손님이야 이 여자가. 카파도키아 킹은 손해보는 장사를 한거야. 아우구스투스 주선으로 걍 억지로 한겨. 저 막 시작한 왕조를 멀 믿고 줘 자기 딸을. 가문도 족보 따지듯. 왕조들도 따지잖겠어. 더군다나 헤롯은 로마가 꼭두각시로 세워준거고. 쟨 조또 아닌겨 카파도키아 킹이 보기엔.
글라피라. 가 와서 보니까. 그 우월감이 너무 큰거야 이여자가. 왕조의 여자들도 다 후져보이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듯. 누구 천박해 누구 한심해 이러는거지. 이런걸 헤롯. 시아버지가 웃어넘길 수 밖에 없는거야. 헌데 이게 꺼꾸로 소문이 나. 저 시아부지가 며느리 글라피아.를 너무 봐준다. 둘이 저 사이가 수상하다 저거.
She taunted Salome and Herod’s wives about their low birth. Glaphyra sneered at Salome's daughter Berenice, regarding her ‘with indignation’, though they were of equal rank. Her attitude caused Berenice's husband, prince Aristobulus IV to describe Berenice as a commoner, a ‘woman of the people’. Salome in turn spread a rumor that Herod was "smitten with love for Glaphyra and that his passion was difficult to assuage". This angered Glaphyra's husband Alexander and alienated him from his father.[17] The women in Herod’s court grew to hate Glaphyra and Alexander. Glaphyra’s unpopularity led to rumors about Alexander and Aristobulus IV. Herod came to believe that they were plotting against him.[10]
With Augustus’ permission, Herod executed Alexander and Aristobulus in 7 BCE. Herod also questioned Glaphyra to confirm her loyalty to him.[10] Herod then sent Glaphyra back to Cappadocia, but kept custody of her children.[1] The return of Glaphyra didn’t rupture the friendly relations between the two client kingdoms.
저기서 글라피라.가 놀려대는 살로메.는 헤롯대제의 여동생 살로메야. 이 여자가 왕조의 모든 여자들 지적질하면서 천박해 천박해 이을 하는겨. 천민이야 천민 하고.
남편 알렉산더.가 열받아서 자기 아빠랑 못만나게 해. 여자들은 저 글라피라.가 너무 싫어. 이 소문이 커져서리. 하스몬여자의 아들인 왕자 둘인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4세.가 아버지 헤롯을 죽이려 한다.는 음모론이 퍼진거야.
해서. 헤롯이. 두 아들을 죽여. 글라피라.는 카파도키아.로 보내.
모든 것은 이 글라피라. 에서 시작한거야 이게. 이 여자가 없었으면. 성경에서 세례자 요한과 지저스 수난.에서 언급되는 헤롯 안티파스.와 헤롯아그리파.가 안나왔어. 세례 요한과 지저스의 수난.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개가 된거고 아니면 없었을 수도 잇고 그리스도 자체가 이땅에 안 설수도 잇었어 이야기가 없을수도 있었으니. ㅋㅋㅋ.
너무 싕기한게 말야. 끔찍한게 말야. 저런걸 한글검색에 쳐넣으면. 전혀 없다는게 참 끔찍한겨.
없어 없어. 짐의 이 판에 쓰는 대부분의 이름과 지명과 이야기들은. 없어 한글로 된게.
무시칸겨 이땅바다근.
하스몬의 두 아들을 죽이는건 큰 역사적 사건이야 저게. 저걸로 그리스도 와 유대교가 삐끗해지면서 터진거 걸랑.
.
그리스도 이야기 조차 말야. 정말 제대로 이해하는 인간이 대체 이땅바닥에 몇명일까. 로마사를 모르면 신약을 절대 말야 이해할 수가 없어. 로마사 뿐이간 알렉산로스와 디아도코이를 모르면 저 주변이야기를 몰라. 주변을 모르는데 유대땅을 어찌 아니.
헤롯대제가 죽어. 기원전 4년. 안티페테르2세라는 장남도 죽여 반란혐의로. 아우구스투스가 죽이지 말라하는데 죽였어. 헤롯2세 엄마도 저기에 껴서 헤롯2세도 쫓겨나. 남은 아들들이 저기서 안티파스. 아켈라우스. 필피프. 셋인거야. 여기에 헤롯의 여동생 살로메.
The Herodian Tetrarchy was formed following the death of Herod the Great in 4 BCE, when his kingdom was divided between his sons Herod Archelaus as ethnarch, Herod Antipas and Philip as tetrarchs in inheritance, while Herod's sister Salome I shortly ruled a toparchy of Jamnia.
저땅을 네개로 나눠주는겨 아우구스투스.가. 테르라르키. 테트라. 테타레스. 넷. 넷의. 아르키. 다스림.
아켈라우스.에게 유대땅과 사라미아땅에 아래 에돔땅.을 줘. 헌데 얘한테 주는 타이틀이 킹.이 아냐. 에뜨노 ethno. 아르크. 아크론. 걍 민족의 왕. 이름만 준거야 이건. 로마에서 직접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려. 민족대표 닉만 주는겨. 나머지 세땅은 킹이야. 아켈라우스.가 원래 평이 안좋아. 얘한테 유대땅을 못맡겨. 유대는 로마가 또한 직접 다스리기로 한겨. 해서 뒤에 등장하는 인물이 빌라도. 라는 폰티우스 필라투스. 야.
헤로디아스.는 헤롯대제가 죽인 두아들 중 아래 아리스토불루스4세의 딸이야. 이여자 남동생이 헤롯 아그리파.
헤로디아스.가 헤롯2세와의 사이에 낳은 딸 살로메.와 함께. 갈릴리 땅 킹이 된 헤롯 안티파스.에 재혼을 하는겨.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저 결혼 무효 하니까 열받아서리 생일선물로 세례요한 목달라 하렴 살로메야. 해서리 쟁반위에 목 그림 나오는거고. 이건 헤롯 안티파스.야. 이건 지저스의 수난 이전 이야기야.
(눅 23:11) |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
(눅 23:12) |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야. 저때도 헤롯은 헤롯 안티파스.야. 빌라도가 부담스러워서. 갈릴리사람이니까 갈릴리에서 판결하라우 하면서 보내 갈릴리에. 유대땅 킹은 에뜨노아르크야. 권력이 없고 이름뿐이야. 나머지 세땅은 킹이야. 헤롯 안티파스.가 권력이 있는거야. 예수가 왔어. 빛난 옷이란게 스칼렛 빨간 망토야 저게. 킹이 입는 색깔이야. 너 유대왕이 그리 하고 싶었냐? 머리에 월계관을 왕관 처럼 씌운겨. 옷도 걸쳐주고.
게오그게 도자. 반란때 게오르게 도자.를 쇠로 달군 왕관에 쇠로 달군 왕홀을 잡게 하는게 정확히 저걸 카피를 한겨 저들이. 더 잔혹하게. 저땅이 그래서 여전히 야만들의 땅인거고.
조선은 더한 야만의 땅인거고. 오백년 내내내내내 사람들 찢어죽인들 시청 앞바닥에서. 구한말까지. 그러면서 여전히 저딴 개 들을 위민정치 상징하민서리 들 지폐로 모시고 청동덩어리로 숭상하는 그야말로 개 야만 들의 땅.
예수의 저 이야기도 헤롯 안티파스.야
Jesus[e] (c. 4 BC – c. AD 30 / 33)
지저스.의 수난이 서기 30년 또는 33년.
Herod Antipater (Greek: Ἡρῴδης Ἀντίπατρος, Hērǭdēs Antipatros; born before 20 BC – died after 39 AD), known by the nickname Antipas, was a 1st-century ruler of Galilee and Perea,
갈릴리.의 킹 헤롯 안티파스.는 서기 39년까지 저기서 킹을 햇어.
Herod Archelaus (Greek: Ἡρώδης Ἀρχέλαος, Hērōdēs Archelaos; 23 BC – c. 18 AD) was ethnarch[1][2] of Samaria, Judea, and Idumea (biblical Edom), including the cities Caesarea and Jaffa, for a period of nine years[3] (circa 4 BC to 6 AD)
유대 사마리아의 대표를 했던 제일 큰땅 가진 아켈라우스.는 9년 정도 재임했는데. 하도 애가 잔인에 또라이라서. 아우구스투스가 체포해서 갈리아땅에 유배를 보내서 비엔나.에서 살다가 죽어 얜. 그리곤 서기 6년 부터는. 아겔라우스.가 에쓰노아르키.란 이름으로 갖고 있던 유대 사마리아 땅을 유대 프로빈키아. 라는 지명으로 로마에 직접 편입을 시킨거야.
그러다가 말야.
Herod Agrippa, also known as Herod or Agrippa I (Hebrew: אגריפס; 11 BC – 44 AD), was a King of Judea from 41 to 44 AD. He was the last ruler with the royal title reigning over Judea and the father of Herod Agrippa II, the last King from the Herodian dynasty.
헤롯 아그리파.가 서기 41년도에. 다시 유대땅의 킹.이 돼. 이건 에쓰노아르키.라는 명함뿐이 아냐. 권력이 있어. 이걸 다시 갖고와 아그리파가. 헌대 딱 얘때 4년 만 그러고 끝이야. 아들 아그리파2세.는 유대인의 킹이 마지막이란건. 유대땅의 힘있는 킹은 아빠가 잠시한거에 마지막이고. 타이틀 유대인들의 왕은 계속 쥐었는데. 얘때 로마 유대인 전쟁이걸랑. 유대인들이 저땅에서 얘때 끝난겨 헤롯아그리파2세때에. 네로때 터져서리 네로 죽고 예루살렘이 함락이 된겨.
Tiberius (/taɪˈbɪəriəs/; Latin: Tiberius Caesar Divi Augusti filius Augustus;[1][2] 16 November 42 BC – 16 March 37 AD) was Roman emperor from 14 AD to 37 AD, succeeding the first emperor, Augustus
티베리우스. 일때 세례자 요한. 지저스의 수난. 이 다 일어난거야.
Caligula (/kəˈlɪɡjʊlə/;[1] Latin: Gaius Jul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31 August 12 – 24 January 41 AD) was Roman emperorfrom AD 37 to AD 41
바로 다음이 칼리굴라. 얜 티베리우스.의 친동생 드루수스.의 아들 게르마니쿠스.의 아들이야. 티베리우스가 자기 동생의 아들 게르마니쿠스.를 양자로 넣어. 아우구스투스때메. 손자뻘인겨 칼리굴라가. 칼리굴라때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인 유대인 배틀 붙으면서. 결국 이게 나중에 로마 유대인 전쟁이 되는겨 네로때. 이때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이전에 로마화재때 또한 죽는거고 네로한테.
헤롯 아그리파.는 헤로디아스.의 남동생이야. 이 둘은. 헤롯대제가 역모로 죽인 아들 아리스토불루스4세의 자식들이야.
누나 헤로디아스.는 이쁜딸 살로메. 데리고 헤롯 안티파스.랑 재혼을 해.
남동생 헤롯 아그리파.는 로마에 있어. 로마화 시키는겨. 얘가 기원전 11년생. 칼리굴라보다 20살 많아. 칼리굴라랑 놀아준겨 얘가. 칼리굴라의 조언자 역할을 해. 티베리우스가 황궁 비우고 나폴리 해변에 처박혀있었걸랑. 인간들이 싫어서. 아그리파가 칼리굴라를 꼬시는겨 티베리우스를 엎어버려라. 칼리굴라도 그러고 싶어. 아그리파가 이걸 들켜서리 깜빵가. 그러다가 칼리굴라가 황제가 되고. 얘가 공신이 되서리. 유대땅 권력을 다시 준겨 칼리굴라가. 유대와 사마리아.의 진짜 킹 자리를.
저때 갈릴리 킹 자리에 있던 인간이 헤롯 안티파스.잖아. 세례 요한 목짜르고 지저스 희롱했던. 부인 헤로디아스.가 얘 아그리파.의 누나야. 역적의 집안이 다시 킹을 한거야 이게.
헤로디아스.가 남동이 칼리굴라.랑 친한걸 알아. 칼리굴라가 황제가 되었어. 남편 안티파스한테 남동이랑 잘 지내라 하는겨. 헌데 둘이 사이가 안좋아. 싸워. 헤롯아그리파.가 꼰질러. 매형 안티파스 저가 역모 짓 한다고. 무기 쌓아놓고 돈 재여두고 있다고. 칼리굴라가 쟤를 자리에서 내 쫓는거야. 그리고 헤롯 아그리파.를 유대 사마리아 킹에 올리면서 안티파스의 갈릴리도 얘한테 주는겨. 그리곤 전임 안티파스.는 갈리아에 유배를 보내. 얜 여기서 죽어.
칼리굴라.에게 헤로디아스.는 아그리파 누나잖아. 재산도 그대로 보존해줘. 유대땅에 살라고 해 그냥. 헌데 말야 헤로디아스.가 슬플거잖아.
이전에 헤롯2세.랑 첫 결혼했는데. 떨거지 되었다고 이혼하고 안티파스.랑 재혼했걸랑. 형제잖아 배다른.
헌데 안티파스.가 떨거지되었다고. 아 또 차마 똑같이 못살겠는겨 이여자가. 이번엔 그냥 안티파스를 따라가는겨 갈리아에. 이후를 몰라. 아마 가서 죽은듯해. 딸 살로메는 다른땅 퀸에 간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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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대 말야. 다시 저 글라피라. 결국 이여자가 헤로디아스.와 살로메.와 헤롯 안티파스. 헤롯 아그리파.를 만든겨. 여기에서 세례자요한과 예수의 수난사가 나온겨 이 글라피라.
이 여자가 재혼을 하걸랑. 마우레타니아 킹덤에 퀸이돼. 알제 튀니지땅 로마 동맹국. 그러다가 말야 이여자랑 눈이 맞은게
아켈라우스. 아우구스투스.한테 쫓겨난 이름뿐인 왕. 얘가 쫓겨나기 전에. 글라피라. 랑 결혼을 하려 한겨. 얘한테는. 역모로 죽은 배다른 형 알렉산더.의 마누라니까 죽은 형. 형수걸랑. 유대인들 법에. 형이 죽어서리 형수를 취하는 형사취수제는 불법이야.
얘들은 솔직히 유대인이 아니지만. 유대인이 된건데. 하튼 형수 글라피라.랑 결혼할라고. 멀쩡한 여자랑 이혼을 한거야. 글라피라.가 이뻤나봐 하튼. 이게 또한 아우구스투스한테 쫓겨날때 꼬투리가 되었어 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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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s 12:1-2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NRSV)
James Killed and Peter Imprisoned
12 About that time King Herod laid violent hands upon some who belonged to the church. 2 He had James, the brother of John, killed with the sword.
사도행전 12장 시작에. 헤롯.이 요한의 형제 야코브.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하다 할때.
저기서의 헤롯.은 더이상 헤롯 안티파스.가 아냐. 헤롯 아그리파1세야.
James, son of Zebedee (Hebrew: יַעֲקֹב, Yaʿqob; Greek: Ἰάκωβος; Coptic: ⲓⲁⲕⲱⲃⲟⲥ; died 44 AD) was one of the Twelve Apostles of Jesus, traditionally considered the first apostle to be martyred.
제버디.의 야코브. 세베데. 라는건 스페니쉬고. 야코보.도 스페니쉬고. 야고보.는 세상에 없는 발음이고.
12 사도 중 일인. 44년 에 순교한걸로 봐. 헤롯 아그리파.가 킹할때야 마지막년도.
이 사람 이야길 할라고 여까지 온건데. 산티아고.는 이 제임스. 야코브.에서 다 나오는 지명인데 말야.
야코브.는 동생이 또한 요한.이야.
요한이 세명이야 성경에서. 세례자 요한. 12사도중의 요한인 사도요한. 요한복음과 서신의 요한.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John the Evangelist
예수가 사랑한 제자. 란 말은 요한복음에서만 나와. 여섯번. 여기 이름이 요한.이야. 요한 디 에반젤리스트.는 요한복음 요한 서신의 저자 요한이야. 예수가 사랑한 요한과 저자 요한. 이 둘은 같나 다른가 가 영원한 논쟁이야.
야코브의 동생.이 12사도의 요한.인데 말야. 이 요한이 예수가 사랑했던 그 요한.이냐. 요한복음과 서신의 요한이냐. 몰라 이걸.
현대 사가들은. 일단말야. 예수가 사랑한 요한이 저자 요한은 아닌걸로 봐.
.신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말이지. 짐에겐. 딱 하나 뽑으라면. 지저스께서. 고기낚는 법 알려준다면서. 사람들을 부르는 장면이야. 아 저 장면이 가장 아련하고 만화보는 듯 하고. 가장 아름다와 저 장면이.
마태에 말야. 지저스가. 갈릴리에서 어부 둘을 봐. 그 형제 둘이 베드로.와 안드레.야. 그리고 지나가다가 또 불러. 그 사람들이 또한 형제야. 야코브.와 요한. 여기에 아버지 제버디.
저기 예수님이시래. 하며 막막 달려가는 겨. 저 장면이 가장 찐한 장면이야 저게.
Santiago de Compostela[a] is the capital of the autonomous community of Galicia, in northwestern Spain.
The city has its origin in the shrine of Saint James the Great, now the Cathedral of Santiago de Compostela, as the destination of the Way of St. James, a leading Catholic pilgrimage route since the 9th century.[2] In 1985, the city's Old Town was designated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Jacobo, Jacob, Iago, Jaime, Santiago, Tiago y Diego son variantes en español del nombre propio Ya'akov
히브리어 야코브.를 라틴어로 야코부스. 하는거고. 이걸 스페니쉬로 야코보. 야코브. 이아고. 등등 해. 성인 세인트 saint 가 스페니쉬로 산. san 산토 산타. 해. 산 야코보 산트 이아고. 해서리 저게 산티아고. 하는건데.
산티아고 데 콤모스텔라. 콤포스텔라. 라틴어 캄푸스 스텔라이. 캄푸스. 캠퍼스. 땅이야 이게. 스텔라. 별. 스타. 또는 다른 어원 묻혀진 땅 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의 순례길이. 세 곳이야. 예루살렘. 로마. 그리고 다른 하나가. 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라는 곳이야.
The Camino de Santiago (Latin: Peregrinatio Compostellana, "Pilgrimage of Compostela"; Galician: O Camiño de Santiago),[1]known in English as the Way of Saint James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갈리시아 땅에 있는겨. 북서 끝. 포르투갈 위. 성 야코브의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 중세때부터 저길 유럽사람들이 저렇게 간겨. 저곳에 헤롯 아그리파1세에게 죽은 성 야코보.의 유해가 있다는 믿음으로 순례하러 가는거야.
The Via Francigena (
Italian:
[ˈviːa franˈtʃiːdʒena]) is the common name of an ancient road and pilgrim route running from France to Rome,
비아 프랑치제나. 로마 순례가는 프랑스 길이야. 켄터베리 대성당부터 오는겨. 알프스 넘어서리. 이전의 80년 전쟁의 스페인로드.와는 좀 달라. 스페니쉬 로드는 저길보다 훨 오른쪽으로 치우쳐있어.
Santiago de Compostela Cathedral
His remains were later brought back to Galicia, Spain.[5] Following Roman persecutions of Spanish Christians, his tomb was abandoned in the 3rd century. According to legend, this tomb was rediscovered in 814 AD by the hermit Pelagius, after he witnessed strange lights in the night sky. Bishop Theodomirus of Iria recognized this as a miracle and informed king Alfonso II of Asturias and Galicia (791–842). The king ordered the construction of a chapel on the site. Legend has it that the king was the first pilgrim to this shrine. This was followed by the first church in 829 AD and then in 899 AD by a pre-Romanesque church, ordered by king Alfonso III of León,[6] which caused the gradual development of this major place of pilgrimage.[7]
저기의 커띠드럴. 저길 가는건데. 커띠드럴.을 성당. 하는건데말야. 이건. 주교의 자리.가 있는 교회야. 즉 이건 나중에야 나온 말이야. 채플 이란건 건물의 공간.이야. 교회를 위한 건물이 아냐 채플은. 건물안에 예배당.이 시작이야. 커띠드럴은. 교회들 짓다가. 조직이 쎄팅되고 주교 자리 있는 교회를 짓자 해서 나온게 커띠드럴.이야. 이건 로마때 나온 말이 아냐. 중세 뒤에 나오는겨.
야코브.가 전설이 몇개돼. 이베리아반도에서 전도를 했냐 안했냐. 아그리파가 죽여서리 배타고 저기에 진짜 유해를 뒀니 마니. 일단 저기에 뒀는데. 로마때 박해로 사라졌다가. 서기 814년에 발견했다는겨. 하늘에서 이상한 빛들이 비추는겨 저길. 유에프오가 찍어준겨 저길. 유에프오님들이 하다하다 별짓 다하는거지. 그때 바로 지은겨 저 건물을.
저 순례길에 오는 유럽인들을 보호하는 기사단이 산티아고 기사단.
The Order of Santiago (Spanish: Orden de Santiago), also known as "The Order of St. James of the Sword," was founded in the 12th century, and owes its name to the Patron Saint of Spain, Santiago (St. James the Greater).
12세기. 포르투갈 아라곤 카스티야 다 들어가는 기사단이야. 이베리아반도에서 초창기에 세워진 중요한 기사단이야.
The Order of Calatrava (Spanish: Orden de Calatrava Portuguese: Ordem de Calatrava) was the first military order founded in Castile, but the second to receive papal approval. The papal bull confirming the Order of Calatrava as a Militia was given by Pope Alexander III on September 26, 1164.
카스티야.의 최초의 기사단은 1164년. 칼라트라바 기사단.
The Order of Alcántara (Leonese: Orde de Alcántara, Spanish: Orden de Alcántara), also called the Knights of St. Julian,[1] was originally a military order of León, founded in 1166[2] and confirmed by Pope Alexander III in 1177.[3]
알칸타라 기사단. 레온. 1166년.
The Order of Montesa (Valencian: Ordre de Montesa, Aragonese and Spanish: Orden de Montesa) is a Christian military order, territorially limited to the old Crown of Aragon. It was named after the castle of Montesa, its headquarter. Pope John XXII approved it on 10 June 1317, and gave it the Cistercian rule.
몬테사 기사단. 아라곤. 카스티야의 칼라트라바.와 아라곤의 몬테사.는 예루살렘의 템플기사단을 자기 땅에 만든겨. 템플이 이들의 롤모델이었어.
저 기사단들이 나폴레옹때까지 오는거야. 저 기사단 사람들이 또한 탐험의 시대에 중추들이야. 콜럼버스 형제들 감찰하러 파견나가는 보바디야.가 칼라트라바 기사단이야.
부르고뉴 현명공이 만든 황금양모피 기사단.이 또한 스페인도 중요해. 왜냐믄 이게 플랑드르에서 만든거잖아. 이 부르고뉴가 스페인에 넘어오면서 이 기사단이 스페인의 엔분의 일이 된겨 이게.
The Ingenious Nobleman Sir Quixote of La Mancha (Modern Spanish: El Ingenioso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
pronounced
[el iŋxeˈnjoso iˈðalɣo ðoŋ kiˈxote ðe la ˈmantʃa]), or just Don Quixote (/ˌdɒŋ
Spanish:
(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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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pronunciation:
[doŋ kiˈʃote]), is a Spanish novel by Miguel de Cervantes.
돈키호테. 란게 말야. 이전 돈 카를로스 이야기했지만. 그 돈. 이야. 도무니수.의 돈이야. 저건 높은 말이야. 이름이 키호테.야 이걸 높인겨. 키호테님. 이라고 돈키호테가 말야. 기사가 되서리 모험을 하고 싶은겨.
이름을 다들. 족보있는 이름이 뒤에 데. 붙이고 지명을 쓰잖아. 자기도 그리 쓴겨. 원래 이 인간은 허섭 이름만 있는 페티 귀족. 하급 귀족인거야. 아무것도 없어. 거창하게 나도. 그럼 키호테 님. 돈키호테. 하고 라만차. 에 살아. 여기가 마드리드 남부야. 세르반테스가 마드리드에서 낳고 자라고 여기서 죽어. 아 그래. 내이름은 돈키호테 데 라만차. 그리고 말 이름 로시난테.도 짓고. 이 이름짓는걸 삼사일씩 고민 하고 져. 그리고 출발하는겨.
저 소설은. 인류 소설 중에 최고야 최고.
저걸 가만 보면. 저 시대를 지금까지 제대로 훑어보면 말야. 저 시대가. 기사가 사라진 시대야. 이전 마지막 기사.의 슬픈 노래도 있지만 말야. 이젠 기사들이 사라지고. 약탈하는 들만 남고. 다들 장사하러 가고. 신대륙 바다로 다 머 찾으러 가고. 기사 라는 그 이름이 서글퍼진 시대야.
돈키호테.가 그런 기사.에 향수가 흠뻑 젖어서리 기사 작위를 술집가서 받고 미친놈 행세하면서리 돌아다니는거걸랑. 진짜 미쳤어 저 캐릭은. 헌데 말야. 저게 구슬프고 짠한겨 저게. 그 시선에서 보면.
죽은 기사의 시대.에 기사가 너무나 되고 싶은 한 인간의 이야기야 저게. 서기 1600년직후에 나온겨. 기사가 죽었어 이미 저 시대는. 저걸 가만 보면 말야 짠해 그래서. 짐의 경우엔 말야.
저게 조오오오온나게 재밌어 저게.
누구가 돈키호테 루트를 표시한건데. 자세히 보면 빨강 초록.이랑 긴 파랑이야. 1권은 라만차 부근에서만의 이야기야 돌아다니는 듯 하지만. 그리고 십년 후 2권째에 바르셀로나 해변까지 가는겨.
짐은 저거 예전에 볼때. 괜히 짠 하면서 눙물이 곡롬이 될뻔 했걸랑. 짐이 쟤들 이야기가 찐하잖냐.
저 소설은. 스페니쉬로 처음 소설이지만. 최고중의 최고로 쳐. 저건 최고야 그야말로.
헌데 말야. 저 원전 번역이. 2천년대에야 한글로 번역이 돼. 두번째권은 최근에야 번역이 되서리 나왔어.
이땅바닥 들은. 특히나 사오십대 이상 처먹은. 테레비에서 유식한척 떠들어대는 들 있잖니. 대체 말야. 무슨 책을 읽은 걸까? ㅋㅋㅋ. 웃긴겨 이게. 얘들은 . 아는게 없어. 아는게 없어. 끽해야 일본가 번역한 걸 누가 몰래 한글화 해서 허섭 번역해서리. 그걸 다이제스트로 읽고 자란 들이 이땅바닥 소위 문꽈 들이야. 테레비에서 인문주의 하는 들이야 이게. 재들 보면 참 무시칸겨 그래서.
걍 지 조상들이 적폐놀이하면서 상대 찢어 죽이는 것 이상. 할 줄 아는게 없어.
최근엔 보니. 군인 평생 한 사람이 죽더만. 참 신나겠어 들. 적폐들 죽여서 이 들.
정말 저 들은 말야. 이념의 노예들 허연 도포자락 들은 말야. 답이 없어 답이.
이땅바닥은. 문과가 망쳤어. 문치가 망쳤어 조선 오백년을. 선비 들이 망쳤어 조선 오백년을.
이꽈가 겨우 말야. 지금 문명 카피해서 우리가 이리 사는겨. 이꽈애들 때문에. 이꽈애들에 감사해야해. 이꽈의 수준은 나름 괜찮아. 이꽈로 먹고사는겨 우리네가.
헌데 문꽈 들이. 무식해서 말야. 이꽈가 만든 그나마의 문명을 엎고 있어 들 말야.
원전 토론하는것도 보면. 폐기하자는 들은 다 조또 모르는 문꽈 개 들이. 정의 민주 이념놀이 하면서 들이 말야. 인민인민 대고. 완전히 이땅 사람들을 죽이는겨 저 들이.
문꽈 들은. 제발 좀 꺼져라 꺼져 이 들아.
짐이 문꽈 출신이지만. 정말 이 문꽈 들은 인류 진보에 전혀 보탬은 안될지언정. 위선에 떡칠이 되서리 말야. 인간들을 못죽여 안달하는 들이야 이게. 헌데 그런 이바지는 있겄네. 인간들이 죽어야 지구가 산다매. 그게 니덜이 노림수일수도 있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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