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는 갑툭튀가 아냐. 음청난 애들 이 네덜란드. 지금 문명은 이 플랑드르와 프리지아.인간들이 만든겨 또한.
지금 네덜란드 땅은 왼쪽 아래. 벨기에 플랑드르 북동쪽을 약간 들어가서리. 위 해변에 프리지아땅들에 더하여. 그 사이에 독일땅 저지대야. 저기서의 중심은 플랑드르와 프리지아야. 고대로마를 익힌 플랑드르. 바이킹과 싸우면서 상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프리지아. 이 둘의 합이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만들어.
이전에 리에주 전투. 헨트 전투 언급하면서 정리를 개괄로 다시 했는데. 그 이전을 좀 보자고.
문제는 항상 로타르의 가운데 땅이야. 지금 프로방스.와 부르고뉴의 오른쪽 프랑슈 콩테.는 프랑스게 아냐 원래. 그 위 알사스에 고지대 로렌도 프랑스께 아냐. 이걸 월드워 원투 하면서 영미애들 덕에 이게 다 애들께 된겨. 프랑스 벨류없어 얘들. 그래서 지금도 저 데모하는겨. 어설픈 망상 공상이걸랑. 국가가 민들의 삶을 책임을 져. 세금 올리는겨. 돈 벌면 반이상이 세금이야. 인간들이 일할 욕구 가 안생기는겨 저게. 저게 가장 큰 유럽의 문제야. 이걸 깨달은 애가 트럼프야. 아일랜드가 세금 내려서 먹고사는거고. 다들 저럴수 밖에 없어. 북유럽 애들 상속세 다 없애는겨 저게. 저건 당연한거야 세계 인류사를 보면. 로마때도 끽해야 세금이 십퍼야. 상속세도 로마가 만든겨. 육촌 외에 상속될때 상속세 십퍼를 낸겨. 그게 다야. 이건 미친거야 세금을 공무원들 월급에 연금 줄라고 인간들이 개고생 하는거고. 저건 코뮤니즘과 다를게 없어. 소득주도 성장 이란건 인류역사에 잇어본 적이 없는 경제학에도 안나오는 말이야 그건.
이 저지대 땅은 참 싕기한겨. 이전에 지나쳤지만. 저 당시의 그림들. 마르텐 판 클레프. 피터 브리헐 부자.의 그림들. 키르미스 란 종교축제에 아이들 놀이들 그림. 플랑드르 민들의 삶. 결혼. 춤. 그게 네덜란드 독립전쟁 직전의 그림들이야 그게.
엄청난겨 저게. 이탈리아를 그대로 가져온겨. 그러면서도 이탈리아와 먼가 달리 가벼워. 이탈리아의 카톨릭 냄새가 여긴 옅어. 그래서 또한 프로테스탄트가 뿌려진거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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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로렌.을 고지대 저지대 나눌때. 로타르 핏줄은 끊기고. 저 로렌 전부를 받는게 오토1세.의 동생 부르노.라 했잖아. 이게 서기 953년. 이사람은 정치 관심이 없어. 땅을 쪼개 고지대 저지대 로렌으로. 저지대를 몽스 백작. 고지대를 큰누나 시집간 바 공작. 이게 분리된게 959년이야.
저 오토1세와 부르노.는 아부지가. 이전 썰한. 헨리 란 이름을 처음 유럽에서 쓴 파울러. 새잡이 하인리히 1세야. 게르만 킹.
저걸 모젤강.이 흐르는 트리어.와 리에주 지나는 뫼즈강.이 내려서 베르됭 조약의 베르됭 베흐덩 포함 저 아래 메스.까지 삼각형이 고지대 로렌. 베르됭과 트리어 사이가 뤽상부르. 룩셈부르크야. 그 아래가 메스.이고. 저 경계산 위가 저지대 로렌. 이게 서기 959년.
고지대 로렌은 원래 땅이 넓은겨. 지금 뤽상부르 하나 인듯 보이는데 아냐 그게. 오른쪽 알사스 빼고 지금 스위스가 프랑스 독일에 반갈리는데 위가. 그 왼쪽 위가 라인강 접하는 알사스 지방 빼고 다 고지대 로렌인겨 이게. 이걸 다 프랑스가 먹은겨 현재.
저걸 안트베르펜.의 고젤로.가 형 핏줄 끊겨서 저지대 로렌 받고 고지대 로렌도 바공작 끊겨서 이것도 받아서리 합쳤다가. 이사람 아들 망나니 곳프리.가 이미 받은 고지대 로렌에. 저지대 로렌 동생에게 간거 뺏을라다가. 고지대 로렌은 메스 백작이 하사받고. 메스가 여기 수도가 되고. 저지대 로렌은 동생이 죽고 자잘하게 쪼개져 이게 12세기 말이야. 네덜란드 벨기에 의 힘은 여기서 나온거야 이게. 다른곳보다 먼가 자유로와졌걸랑. 더하여 자유의 프리지아. 찰스 아래 들어갔지만 합스부르크 오기 전까지 수백년 자유였어 느슨하게 관리해 황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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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현명공이 저지대를 대부분 점령하고. 이 저지대가 자유.걸랑. 부르고뉴에 반기를 든게 대표적인게 헨트전쟁이야. 뒬레 흐릿. 매드 메그 란 미친년 메그 대포나오는. 이 다음엔 아들 부르고뉴 샤를이 리에주 전쟁하면서 저 저지대를 진압하걸랑 잔인하게.
이때도 보믄. 이들이 이 저 자잘하게 나뉜 저지대에서. 셰펜. schephen 이란 시의회가 있었어. 직조공들이 투표해서 사람을 뽑아. 리에주 에서는 샤를 오기 전에 말야. 대주교를 상대로 전쟁도 한곳이야 대주교가 정치를 개같이 한다고. 엄청난 인간들이야 이들이. 그리곤 리에주 전투에서 아주 잔혹하게 약탈을 당해 부르고뉴 사를 애들한테.
어드래 말야. 저 독일땅 끝에서 말이지. 16세기 르네상스의 대륙의 꽃은 저 저지대 르네상스야. 이탈리아 에서 제일 먼 사람들이 이탈리아를 제일 빨리 습득해. 돌고 돌아 바다를 다녀서리 제노바 상인들을 만나고. 프리지아 상인들이 라인강 상류 끝까지 가서 이탈리아를 만나.
로마 와 가장 멀어. 오히려 사유의 천장. 카톨릭이란 천장의 두께는 얇은겨. 거기에 바이킹 애들이 오른쪽과 위쪽에서 정신차리고 교역질 하기로 하고. 바다건너 잉글랜드 애들과도 만나는겨. 이들이 17세기에 그래서 최고가 돼. 저 갓 생긴 국가 가 말야. 정체성이 어마무시 한거야 저게. 저 힘은 엄청난거야. 그게 바로 네덜란드 제국을 건설한겨. 이 바탕의 힘은 사유야 사유. 정신문명이 엄청 나 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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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러 의 자식들인 오토1세와 부르노. 형제 이전의 저기를 좀 보자고. 그래야 더 깊게 이해되걸랑. 아 이얘기 안할라 했는데. 마저 정리를 해야겄어. 이게 비니 뒤가 정리가 어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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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the Bald (13 June 823 – 6 October 877) was the King of West Francia (843–877), King of Italy (875–877) and Holy Roman Emperor (875–877, as Charles II).
삼형제 중 막내야. 샤를마뉴의 손자. 경건루이.의 후처자식. 대머리 샤를. 머리가 대머리가 아니라. 얜 일리지티메이트.라서 영지를 못 받았어. 해서 맨땅이란 의미로 대머리야. 지금 프랑스.의 진짜 시조님이야. 샤를 마뉴는 독일 포함이고. 독일의 시조는 둘째 게르만 루이. 진짜 시조는 오토1세. 프랑스는 위그대제.
신성로마 황제도 해. 로타를 핏줄들이 못 이어가. 카를2세야. 1세는 샤를 마뉴이고.
이사람이 두번 결혼해. 동양빠닥과 다른게 머냐면. 이전 썰했듯이 쟤들은 그리스도.를 이유로 말야. 하렘놀이를 안해. 유너크 라는 환관을 안둬. 이건 개미개한들의 공통점이야. 얘들은 더하여. 타키투스.의 게르만들 소개 쓴 글을 보면. 그 피델리티. 라는 부부간의 순결이 쎄. 이게 얘들 문명이 지금 세계를 지배한 이유야.
유교는 패밀리즘 이야 아냐 그건. 이 유교는 이기적인 자기들 집안챙기기 주의야. 상대 적폐요 우리집안은 정의요. 충효절의 가장 큰 축이요. 애비가 먼 죄를 저질러도 감옥가서리 면회라란 글자가 부자유친.의 친. 이란 글자야. 기본적으로 말야. 이땅바닥 들은 글자. 언어에 대한 이해가 미개한겨 이게.
플랑드르의 주디쓰. 장녀야. 이여자가 재밌어. 이여자가 플랑드르.의 시조님이셔.
Æthelwulf (/ˈɛθəlwʊlf/;[2] Old English for "Noble Wolf";[3] died 13 January 858) was King of Wessex from 839 to 858.[a] In 825, his father, King Egbert, defeated King Beornwulf of Mercia, ending a long Mercian dominance over Anglo-Saxon England south of the Humber. Egbert sent Æthelwulf with an army to Kent, where he expelled the Mercian sub-king and was himself appointed sub-king. After 830, Egbert maintained good relations with Mercia, and this was continued by Æthelwulf when he became king in 839, the first son to succeed his father as West Saxon king since 641.
시집가는 곳이. 웨섹스.의 에덜울프.
Æthelstan, King of Kent
Æthelswith, Queen of Mercia
Æthelbald, King of Wessex
Æthelberht, King of Wessex
Æthelred, King of Wessex
Alfred, King of Wessex
이 에덜울프.의 자식들이 또한 걸출한 오형제여. 여자 빼고. 다음 잇는 에덜볼드. 그다음 에덜버트. 막내까지 다 킹을 하는겨. 이 사람 막내가 잉글랜드의 통일 시작인 위대한 알프레드 대제.야. 이 알프레드 의 손자. 가 첫번째 잉글랜드 킹.이야.
주디쓰.가 알프레드의 아비인 에덜울프.에게 시집을 가.
Judith of Flanders (or Judith of France) (
c.
843 – c. 870)[1] was queen consort of Wessex and countess consort of Flanders. She was the eldest daughter of the West Frankish King and later Holy Roman Emperor Charles the Bald and his wife Ermentrude of Orléans.
에덜울프.의 첫부인이 죽어. 이 죽는해가 854년. 이때 시집갔으믄 11살이야. 알프레드가 849년 생이야. 이여자보다 6살 어려. 즉 첫부인이 다섯을 다 낳고 죽은겨. 그리고 곧 킹이 죽어. 그 다음 킹인 웨섹스의 에덜볼트.에게 시집을 가는겨. 얘도 바로 죽어.
주디쓰가 남자 잡아먹는 여자가 된겨 이게. 프랑스로 돌아와서리 눈치 봐. 그러다가 눈 맞은 남자가
Baldwin I (probably 830s – 879), also known as Baldwin Iron Arm (the epithet is first recorded in the 12th century), was the first Margrave of Flanders.
플랑드르.의 첫번째 후작.인 볼드윈1세야. 주디스가 열살정도 어려. 둘이 도망가. 아빠 대머리 샤를이 쳐 죽일라그래. 로마 교황한테가서리 결혼 허락해줘유. 빌어. 허락받아. 샤를도 단념해. 그리곤 이 볼드윈이 대머리 샤를. 장인에게 충성하는겨. 이 둘 사이에선 아들이 있어. 얘가 첫 백작이니 아니니 해. 주디스.는 플랑드르의 백작부인. 첫째 타이틀을 취해. 이 여자 후손이 정복왕 윌리엄.이야. 잉글랜드의 어머님이셔 주디스.께서.
저때는 말야. 가장 큰 문제가. 바이킹이야. 잉글랜드가 바이킹에 몸살을 앓어. 이게 어느정도 알프레드 대제와 손자 에덜스탄에서 정리가 되지만 여전해. 여기서 쫓겨난 애들이 프랑스 독일 해변을 약탈하는거야. 플랑드르의 볼드윈.이 이걸 전적으로 수행해서 막아 칭찬받는거지.
노르웨이 스웨덴.은 서기 9백년 전후에야 킹덤 조가 생기고 이때부터 약탈 좀 줄이면서 지들 문명 만드는거야. 서기 천년 되서야 덴마크가 킹덤을 하는거고. 즉 프랑스는 특히나 바이킹들의 밥인겨. 코트의 가장 큰 주제는 바이킹이야.
플랑드르.는 볼드윈때 첫 마그레이브.야 서기 9백년 직전이야. 로마 문명에 더하여. 문명이 여기서 다시 시작한는겨. 바로 지나면서 카운티. 백작령으로 올라.
대머리 샤를.의 다음 킹이 자식
Louis the Stammerer (French: Louis le Bègue; 1 November 846 – 10 April 879) was the King of Aquitaine and later the King of West Francia. He was the eldest son of emperor Charles the Bald and Ermentrude of Orléans. Louis the Stammerer was physically weak and outlived his father by only two years.
루이 더 스탬머러. 말 더듬이. 사람이 허약하고 티미했대. 아빠 죽고 2년 후에 죽어. 동생 샤를 더 차일드.도 죽어.
Louis III (863/65 – 5 August 882) was the king of West Francia from 879 until his death in 882
Carloman II (
c.
866 – 6 December 884) was the King of West Francia from 879 until his death.
말더듬 루이. 의 자식 둘이 공동 킹이 돼. 루이 3세와 카를로맨 2세. 얘들 둘이 다 20이 안되서 죽어.
Boso (c. 841 – January 11, 887) was a Frankish nobleman of the Bosonid family who was related to the Carolingian dynasty[1] and who rose to become King of Lower Burgundy and Provence.
보소. 대머리샤를. 장군이야. 샤를이랑 막판에 어그러져. 샤를 죽고. 말더듬이 루이 죽고. 이사람이 저지대 부르고뉴.와 프로방스.에서 킹덤을 세워. 부르고뉴 공작령은 프랑스 서프랑키아 꺼고. 오른쪽이 부르고뉴 백작령 중 저지대와 아래 프로방스 해변까지 다 이사람 킹덤이 된겨. 879년.
대머리 샤를 핏줄이 끊겼어. 있는데 애기들이야. 가운데 로타르 땅도 끊겼어.
Charles III (13 June 839 – 13 January 888), also known as Charles the Fat, was the Carolingian Emperor from 881 to 888. The youngest son of Louis the German and Hemma, Charles was a great-grandson of Charlemagne. He was the second-to-last emperor of the Carolingian dynasty and the last to rule, briefly, over a re-united Frankish empire.
게르만 루이. 대머리 샤를의 둘째형이야. 이 자식이 샤를 3세 카를 3세. 뚱땡이 샤를. 보소.가 먹은 땅 외의 모든 땅을 다 먹는겨. 로타리땅 귀족들도 뚱땡이한테 가져가라하고. 프랑스땅도 뚱땡이를 킹으로 추대해. 샤를마뉴 이후 다시 한번 합쳐진거야.
Rudolph I (859 – October 25, 912) was King of Upper Burgundy from his election in 888 until his death.
The Kingdom of Arles (also Kingdom of Arelat or Second Kingdom of Burgundy) was a Frankish dominion established from lands of the early medieval Kingdom of the Burgundians in 933 by the merger of the kingdoms of Upper and Lower Burgundyunder King Rudolf II (located in modern southeastern France).
The new kingdom was named after the Lower Burgundian residence at Arles. Its territory stretched from the Mediterranean Seato the High Rhine River in the north, roughly corresponding to the present-day French regions of Provence-Alpes-Côte d'Azur, Rhône-Alpes and Franche-Comté, as well as western Switzerland. It was ruled by independent kings until 1032,[2] after which it was incorporated into the Holy Roman Empire.
저 고지대저지대 부르고뉴.에 프로방스 땅의 두개 킹덤이. 합쳐. 결혼으로. 이게 아를 킹덤이야. 서기 933년. 그리고 백년후인 1032년.에 신성로마제국 땅으로 들어온겨 이게. 이 직전에 로렌 땅 고지대와 저지대은 작센족 하인리히1세의 아들 오토1세의 동생이 갖은거고. 아를킹덤이 신성로마에 들어오는건. 작센 4대 끝나고. 살리안 조.시작인 콘라트2세때야. 즉 말이지. 로타르 가운데 땅은 서기 천년 지나면서 다 독일땅이 된겨. 이걸 얘들이 다 뺏긴겨 현재.
가운데 땅에 대한 집착이. 특히나 프랑스의 대머리샤를 자식들인 카롤라인들이 쎘어. 그이유가 말야.
결국은 이 힘이 지금 저 가운데 땅을 다 프랑스가 갖고 온건데. 상대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은 이게 약했어 이 마음이.
이런 이야긴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야. 짐의 말싸믄 영어로도 외쿡어로도 없어. 정신차리고 드러.
이 멍충이더라.
샤를 마뉴.의 아부지가 소피핀.이고 소피핀의 아부지가 샤를 마르텔. 카를 마르텔. 이야. 이전 썰했는데. 기억할리가 전혀 없을텐데. 이 카를 마르텔.이 카롤라인의 시작이야. 이사람이 아눌핑 가문이야. 모계쪽이 피펭가문이고. 할배 안세기젤.이 피펭의 피펭디엘더.의 딸 베가.랑 결혼해서 나은게 샤를 마르텔 애비걸랑. 피펭 가문이나 아눌핑 가문은 메로빈지언 애들의 귀족들이고. 이 합이 카롤라인.의 시작이야.
Herstal, formerly known as Heristal, or Héristal, is a municipality of Belgium. It lies in the country's Walloon Region and Province of Liège along the Meuse river. Herstal is included in the "Greater Liège" agglomeration, which counts about 600,000 inhabitants.
샤를 마뉴.가 태어난 곳이. 벨기에 에스텔. 여기가 리에주. 에 있는겨. 샤를 마뉴의 할머니 베가 성녀가. 고향이 란덴.이 바로 여기 옆이야.
Lay-Saint-Christophe is a commune in the Meurthe-et-Moselle department in north-eastern France.
리생 그리스토프. 낭시 바로 위야. 그 위가 메스.이고. 로타르때 고지대 로렌인겨 여기가. 여긴 아눌핑 시작의 고향이야.
이 찰스의 조상들이. 프랑크중에 살리안 족이걸랑. 클로비스의 메로빈지언이 살리크 살리안족이고. 이 캐롤라인.이란 샤를 마뉴의 자식들도 같은 살리안 족이나 가깝던 이들이야. 어쨋거나 저 가운데.의 저지대 로렌과 고지대 로렌이. 이들 첫 시작인 조상님들의 땅인겨.
대머리 샤를 때부터. 막내 주제에 말야. 옌 방계걸랑. 해서 그 열등감이 오히려 족보를 더 챙기는겨. 저 가운데를 먹는게 이들 자식들의 유업인거야 저게.
그러면 왜 신성로마땅인 첫째 둘째 게르만루이.의 자식들은 같은 핏줄인데 왜 상대적으로 마음이 약한걸까
프랑코니아. 프랑크.
The Salian Franks, also called the Salians (Latin: Salii; Greek: Σάλιοι Salioi), were a northwestern subgroup of the earliest Franks who first appear in the historical records in the third century
Ripuarian or Rhineland Franks (Latin: Ripuarii or Ribuarii) were one of the two main groupings of early Frankish people, and specifically it was the name eventually applied to the tribes who settled in the old Roman territory of the Ubii, with its capital at Cologne on the Rhine river in modern Germany.
이 프랑크.족을 두개로 갈라. 살리안 프랑크.라는 클로비스 애들. 리푸아리안. 라인란트 프랑크.라는 라인강 프랑크.
이 프랑크 들은 이전 썰했든 저 아이셀강 건너서 저쪽으로 넘어와서 라인강 넘은 이들이야. 거기 남아있는 애들은 작센이고. 이들이 넘어와서 왼쪽은 살리안.족 해서리 파리쪽으로 가는겨 얘들이. 그리고 라인강 프랑크.인 리푸아리이.는 라인강을 올라가. 로마에 언급된겨. 이들이 프랑크 이면서 좀 달라. 이들이 라인강 오르고. 오른쪽으로 가면서 독일 정 중앙에 자리를 잡는겨. 이걸 지금 프랑코니아. 지역 하는거야.
바바리아. 땅의 북부가 프랑코니아. 야. 세 개로 구분해. 고지대 프랑코니아.가 오른쪽 저지대 프랑코니아.가 왼쪽. 가운데 프랑코니아.가 그 위쪽. 여긴 고지대가 북동쪽이야. 이 부근에서 마인.강이 흘러서리 왼쪽 마인츠.에 흘러서 라인강에 합류를 해.
해서 프랑코니아 언어족.을 따로 분류하는 이들이 있어. 저 프랑코니아땅이 제일 많고 하류 라인가면서 옅어져 이게.
이들도 프랑크.야 헌데 좀 달라. 해서 프랑코니아 하는겨. 오토 1세 이후 네명 작센 족 이 하고. 다음 넷은 살리안족 할때 그 살리안은 이 프랑코니아라는 라인강 프랑크족으로 봐. ... 아마도.
그러면서 말야. 프랑스는. 뒤에 카페에 발루아 부르봉 이 이름 바꿔 들어서지만. 다 저 샤를마뉴 핏줄들이야. 이게 끝긴적이 없어 나폴레옹까지.
헌데. 독일땅 신성로마는. 일단 말야. 카롤라인 핏줄인 게르만 루이.도 저 뚱땡이 샤를 때 끊겨. 오토1세는 프랑크가 아냐. 원수인 작센이야. 다음 살리안 족이 그야말로 4대 하지만. 프랑크 살리안족이 아냐 얘들은. 이웃애들이야. 관심이 떨어져. 그리고 또 끊겨. 그러다 나중에 합스부르크.까지 가지만 여긴 전혀 다른 게르만이야.
샤를의 조상들인 아눌핑 피펭 들의 고향땅에. 저들은 그 끈이 약해. 프랑스애들은 반면에. 저게 강한겨. 부르고뉴 현명공도 그래서 저길 먹으려 한겨. 카롤라인의 고향땅을 갖는 이가 오히려 프랑스 왕조 애들보다 정체성이 더 쎈거야 저게. 분명 부르고뉴 애들은 저걸 알고 로렌땅들을 처먹으려 한 것임에 틀림이 없어.
해서. 저걸 결국은. 찰스. 샤를의 자식들인 프랑스가. 다 갖고 온겨. 못 줄 바엔 남은것들은 따로 독립하는걸 보는거고.
그래서 특히나 말야. 저 저지대 로렌.은 중세 지나갈수록 더 피가 터지는겨. 이탈리아 전쟁의 전장은 저기 접경인거야.
저 네덜란드 벨기에.는 그래서 먼가 달라. 과거 바이킹애들과도 섞인거걸랑. 거기에. 양쪽애들과도 뒤섞이고. 부르고뉴니 합스부르크니.니 피터지게 전쟁하고. 저긴 12세기 전에 대부분 프리시티 들에 갈갈이 찢어진 곳이야. 자유의 프리지아에 접해서 자유로운겨. 그 북유럽 르네상스의 그림들은 그걸 그대로 보여줘. 중세 음악인의 시작도 말야 플랑드르야. 플랑드르 뮤지션이 이탈리아 코트에 영입 일순위야. 저 자유로운 곳에서 네덜란드 80년 독립전쟁을 하면서. 그 와중에 세계 바다를 지배하고 먹고 살 꺼리를 만들면서 자기들 문명을 창조한거야 저들이.
여까지만 하자 모미 안조타.
Frans Floris, Frans Floris the Elder or Frans Floris de Vriendt (1517 – 1 October 1570) 프란스 플로리스. Family portr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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