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ighty Years' War (Dutch: Tachtigjarige Oorlog; Spanish: Guerra de los Ochenta Años) or Dutch War of Independence (1568–1648)[2] was a revolt of the Seventeen Provinces of what are today the Netherlands, Belgium, and Luxembourg against Philip II of Spain, the sovereign of the Habsburg Netherlands.
80년 전쟁.
이탈리아 전쟁.이 1494-1559.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이 이탈리아 황금사과 먹으려 벌인겨 남의 땅에서. 65년간. 전쟁 종식 싸인은 프랑스 앙리2세.와 스페인의 펠리페2세.가 하는거야.
카를5세가 1558년에 죽어. 황제자리는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줘. 스페인과 독일 저지대.는 아들 펠리페2세에게 줘.
왜냐면. 신성로마제국은 펠리페2세.에게 줄 수 없었어 카를이.
카를5세.는 깊게 디다볼 필요가 있어. 할배 막시밀리언1세와 함께. 이 두사람이 단순한게 아냐. 독일땅의 많게는 1800개의 영지들. 큰단위로는 사백여개의 영지들을 지배했던 사람들이야. 이사람들 시선을 파악하는게 쉽지 않아.
더군다나 말야. 카를5세때는 1517년부터 마르틴루터 대자보가 터진거야. 2년 후 19세. 1519년에 황제자리에 올라. 리포메이션.이라는 전체 판이 뒤흔들리던 종교개혁 시절에 가장 중심에 있던 인물이야. 이 와중에 프랑스와 전쟁하면서 스페인땅 반란들에 나바라 킹덤과의 전쟁에. 더하여 오스만과의 전쟁은 지상과 바다에서 한거고.
더하여. 콜럼버스 1492년 이후 27년 지나서 황제가 된거야. 마젤란.을 자기가 보낸겨 오르자 마자. 코르테스.가 아즈텍. 피사로.가 잉카.를 지배하기 시작하는것도 카를5세가 황제에 오른 뒤인거야.
인류역사에서 가장 큰 판의 한가운데 있던 사람이 이 카를5세야.
Charles V[a] (24 February 1500 – 21 September 1558) 즉위를 1519년에 하고. 39년. 즉 40년을 있었던겨. 통풍 와서 고통받다가 수도원 들어가서 죽어.
저걸 아들 펠리페2세에게 못 줘. 감당을 못해. 더군다나. 얜 카스티야 걍 중심 비야돌리 궁전에서 나고 자란 애걸랑. 걍 꼴통 카톨릭 그 자체야. 얘의 뒤의 삶을 보더라도 카톨릭의 수호신일 수 밖에 없어.
저런 마음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을 다스릴 수가 없어. 카를5세는 미친년 후안나가 플랑드르에서 낳았걸랑. 미남왕 펠리페.가 엄마 마리.가 낙마 사고로 죽어서 묻힌 플랑드르 브뤼허. 여기서 태어났어. 막시밀리언이 포로 생활도 했던. 플랑드르애야 얜. 여기서 자라면서 유럽을 돌아다니다가 나이 16살에 스페인 킹되고 삼년 후에 황제가 된거야. 얜 유도리가 있어. 꼴통 카톨릭이 아냐 그래서. 그 환경 자체가. 그래도 프로테스탄트 애들 모아서리.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이랍시고. 다이어트.도 열어서리 걔들 대는 소리들을 두시간 듣기도 한겨 좋게 보면. 이후 슈말칼덴 전쟁에서 카톨릭이 이기지만. Cuius regio, eius religio 쿠이우스 레기오, 에이우스 렐리기오. 1555년에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각 영주의 종교에 따르기로 한다. 하는거야.
저건 카를5세가 한거야. 퇴임 전에. 시대를 인정한거야. 자기가 슈말칼덴 전쟁 이겼어. 그 중심의 작센과 헤센은 걍 죽은겨 저때. 작센은 저 전쟁 패배부터 프로테스탄트 루터 배후였던 현명공 프리드리히와 동생 끈질공 요한의 에른스트 계열이 선제후권을 알베르트 계열에 뺏긴거야. 이때 부터 작센 하면. 지금 작센 지역이 된겨 이게. 카톨릭 편들은겨 이들이.
카를이 저 분위기를 타고 프로테스탄트들을 다 조질수도 있었어. 그렇게 안한겨 이사람이.
이 사람은 역사에서 평가해 줘야해. 아마 인간사를 제일 넓고 깊게 겪고 성찰한 사람 이라 평할 수도 있어. 그 속에서 시대를 제대로 읽었어 이사람은. 정말 엄청난 시대를. 그 가운데에서 살았던거야.
그럴 아들 혼자에게 준다는건. 세상 망치는겨. 아들을 죽이는거고. 이걸 나눈거야. 어차피 살리크법 상으론 동생은 영지 하나 주면 땡이야. 그리 안한겨. 신성로마제국 자리는 이제부터 편협에 꽂힌 가 하면 안되는거야 저긴. 더욱이. 왜냐면 프로테스탄트.가 출현하고.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알프스를 넘었어. 근대야 이제. 펠리페.는 이걸 감당을 못해. 동생 세살어린 페르디난트.도 카스티야에서 태어났지만. 카를 5세 형이랑 독일땅에 있으면서 자기 수발을 했걸랑. 오스만이랑 싸우로 헝가리쪽도 가고. 동생이 훨씬 유도리가 있는거야. 이 자리를 동생을 적극 추천하면서 황제로 만든겨. 동생이 오히려 감당이 안되서 카를을 말려. 카를은 생전에 은퇴를 하려해. 수도원에 드가서 죽을려고 해. 몸이 안좋아. 헌데 동생이 감당이 안되는겨 당시가. 형 더 있어줘. 더 좀 있어서 나좀 도와조. 하기 싫은 거 억지로 그뒤 이삼년 하다가 죽은겨 카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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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킹 재임이 1515-47. 카를이 다음해 킹에 삼년후에 황제.
이전 샤를 8세.는 나폴리 가서 약탈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다 연합해서리 쫓겨나듯 도망가고. 완전 빈손이 된거고.
다음이 루이12세야. 아예 밀라노 부터 점령하러 가고. 나폴리는 아라곤의 페르디난도와 쓸데없는 나눠먹는 협상하다가 나폴리 뺏기고. 그와중에 베네치아가 교황부탁으로 교황령을 체사레 보르자 애들꺼로 부터 되찾아달라 해서 되찾아주니 쌩까서 다 먹고 이게 캉브헤 동맹 맺어서 루이 다시 부르고. 루이랑 베네치아는 롬바르디아 나눠먹고
그다음이 프랑수아1세걸랑. 카를5세랑 본격적으로 후반전 하는겨.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내란 이용하고. 나바라 킹덤 도와주면서 스페인 본토를 흔들고 카를은 프랑스 땅을 쳐들어가고. 프랑수아는 뺏긴 밀라노 찾으러 직접 전투하다가 포로되서리 꼬마 아들 앙리2세 볼모로 두고 풀려나고 오스만 술레이만 이랑 손잡고. 코냑동맹 맺어서 이젠 카를5세 대항 싸운다 하고 교황은 주저하다가 베네치아는 뒤통수 맞고 그사이에 카를.은 로마 약탈 하고. 이탈리아는 황제땅이 되고
프랑수아는 롬바드리다땅의 밀라노 다시 회복하려 하고. 이때 전장은 프로방스와 롬바르디아. 술레이만 불러서 해변 치게 하고 나폴리도 치고. 카를은 잉글랜드 헨리8세 불러서리 프랑스를 치는거고 파리 근처까지 다 뺏기다가 협공이 주저주저해서리 멈춘상태에서 프랑수아가 죽어. 저게 1547년이야. 다음이 앙리2세야.
앙리는 여전히 술레이만이랑 손잡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다시 찾으려 쳐들어가고 그러다 패하고. 그래도 프랑스 본토땅은 회복을 해. 그러면서 끝나는겨. 프랑스는 아무것도 건진게 없어. 저때 카를은 물러나 은퇴하고.
싸인은 프랑스 동부 플랑드르 접경에서. 앙리2세와 펠리페2세가 둘이 하는거야. 이것도 웃긴겨. 페르디난트 삼촌 황제가 책임자가 아냐. 아들이야. 저 전쟁의 부채를 이후 펠리페가 떠안아. 그리곤 앙리는 싸인 축하 연회 주간에 자우스팅으로 죽는거고. 죽기전에 나싸우의 오렌지 윌리엄.한테 펠리페2세 만나서리 나눈 대화를 말해주는겨. 펠리페가 프로테스탄트 다 조질거라고. 이걸 아무말도 안하고 조용한 체 네덜란드 독립 전쟁의 이유로 삼았다 흥분않고 침묵 지켜서 저때. 해서 윌리엄 더 사일런트. 조용 윌리엄 해주는건데.
그래서. 저 이탈리아전쟁 1559년 싸인을 4월초에 해. 펠리페2세는 이미 스페인킹 이었고. 페르디난트1세는 이전에 황제 즉위 했고. 그러면서 저 와중에 이미 독일땅은 종교전쟁 한창하고는 아우크스부르크.로 서로 줄 근거고. 프랑스는
칼뱅 이름 티나오는 대자보를 프랑스아 태어난 성 침대방에 붙이고 부데스의 메린돌 학살에 어린킹 프랑수아2세 유괴하려는 앙부아즈성 덥치려 하고 기즈 공작 프랑수아.가 지나가는 길에 자기땅에서 위그노들이 머하나 구경하려다 막혀서리 바씨학살 터지면서. 이탈리아 전쟁 후 3년 지난 1562년부터 36년간 프랑스 종교전쟁. 하걸랑. 인구 삼백만이 죽은거로 추정하는데.
바로 6년 후인 1568년에 옆 저지대에서 터진게 80년 네덜란드 독립전쟁이야. 위그노 애들이 여기도 도와주다가. 바로 1572년 성 바르텔레미의 날에. 앙리와 마가렛의 결혼으로 위그노와 카톨릭이 휴전하려다가 위그노 장군 게스파르드 콜리니 암살건으로 위그노들 학살당하면서 저때 프로테스탄트들이 힘이 많이 빠지걸랑 프랑스나 네달란드땅이나.
The Ottoman–Habsburg wars were fought from the 16th through the 18th centuries between the Ottoman Empire and the Habsburg (later Austrian) Empire, which was at times supported by the Holy Roman Empire, Kingdom of Hungary,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and Habsburg Spain.
이때는 항상 오스만 합스부르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걸 바닥에 둬야해. 헝가리가 이전엔 오스만과 160년을 전쟁했고. 헝가리가 페르디난트1세가 군주 겸임하면서 합스부르크가 이후 오스트리아 까지 350년을 하는거야. 이 가름은 모하츠 전투야. 1526년.
오스만이 바다에선 베네치아.와도 18세기 초까지 키프러스 섬과 모레아까지 점령하면서 바다에서 전쟁인거고. 몰타해전 레판토해전 등 합스부르크도 여기 끼는거고.
특히나 콜럼버스 마젤란 이후 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도 전장이 확장이돼.
이때의 중심은 17세기는 네덜란드야. 네덜란드가 갑툭튀 하는겨. 이 갑툭튀 하면서 이들이 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바탕은 프리지아 플랑드르.의 이전 상공업의 힘이야. 여기에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초기에 들어오면서 가장 화려한 르네상스가 또한 여기고. 프리지아는 자유의 프리지아 였었고 합스부르크에 들어가기 전에는
The Frisian Kingdom (West Frisian: Fryske Keninkryk), also known as Magna Frisia, is a modern name for the Frisian realm in the period when it was at its largest (650-734). This empire was ruled by kings and emerged in the mid-7th century and probably ended with the Battle of the Boarn in 734 when the Frisians were defeated by the Frankish Empire. It lay mainly in what is now the Netherlands and – according to some 19th century authors – extended from the Zwin near Bruges in Belgium to the Weser in Germany. The center of power was the city of Utrecht.
프리지아.는 킹덤이 7세기야. 오른쪽 과 위 바이킹들보다 이삼백년이 빨라. 작은 킹덤이지만. 이때 거점은 우트레흐트. 네덜란드의 중심은 이 프리지아 와 플랑드르야. 플랑드르는 고대로마때부터 아우구스투스부터 문명을 시작했던거고. 이 둘이 프랑크에게 먹힌거고. 프리지아는 프랑크 영지로 들어갔지만 이후 칠팔백년은 느슨했어. 자유의 프리지아야 그래서. 이둘의 융합이 힘이 강한겨. 로마문명과 상인들 자유의 힘.이 네덜란드야. 이 프리지아인들이 라인강 상류따라서 무역을 했던거고 바이킹들 장물을 받아서리 내륙에 거간장사 한겨. 프리지아 플랑드르.는 바이킹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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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펠리페2세. 이사람을 봐야해.
Philip II (Spanish: Felipe II; 21 May 1527 – 13 September 1598) was King of Spain[a] (1556–98), King of Portugal (1581–98, as Philip I, Filipe I),[1] King of Naples and Sicily (both from 1554), and jure uxoris King of England and Ireland (during his marriage to Queen Mary I from 1554–58).[2] He was also Duke of Milan.[3] From 1555 he was lord of the Seventeen Provinces of the Netherlands.
카를5세가 포르투갈이랑 친해질라고 사라고사 조약 유리하게 맺고 맬러커즈 섬들에 발좀 담글라고. 포르투갈 주앙3세과 서로 여동생들 끼리 결혼을 해. 결과는 카를이 포르투갈을 먹게 된거지만 자식으로. 포르투갈 여자와 낳은 아이야. 27살에 나온겨 1527년 생이믄. 카를이 아우크스부르크 다이어트 하고. 종교들 인정하고. 그러다 은퇴해. 카를은 일찍 놓아 권력을. 이사람은 깊게 볼 필요가 있어. 아들에게도 일찍 줘 스페인킹을. 섭정을 옆에 붙이고.
밀라노를 1540년. 13살에 공작을 줘. 다음해 나폴리 킹자리 주고. 28세에 합스부르크 네덜란드. 17개 지역을 주는겨. 이 17개 지역 명은 합스부르크때에 나온 말이야. 네덜란드 독립하면서 나온말이 아냐.
13살에 밀라노.를 주지만. 스페인도 저때 얘한테 맡기기로 한겨 섭정 고문들 붙여주면서.
16 January 1556 – 13 September 1598. 스페인킹은 공식은 아빠 카를 죽는 해 1556년. 29살.에 오르지만. 어릴때 부터 아빠가 정치를 배우게 했어.
얜 완전 카스티야 코트 안에서 큰 인간이야. 스페인 사람들과. 엄마가 델꼬온 포르투갈 여자들 속에서 자랐어. 15살 정도엔 직접 접경 프랑스에 이탈리아 전쟁도 경험을 시켜. 저 밀라노 줄때 직후야. 이때 이미. 아 신성로마자리는 자기 동생에게 주기로 마음을 먹어. 이미 자란 환경 자체가 달라.
완전히 카톨릭에 쩔고 쩔은 애야. 아빠 카를5세와 전혀 달라 성장과정이. 28살에 네덜란드의 영주가 돼. 1555년. 저때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프로테스탄트 카톨릭 서로 영주 인정하면서 프로테스탄트가 저기에 본격적으로 자리잡을 때야. 그리고 나중 앙리2세와 싸인하면서. 내 저놈의 프로테스탄트 다 죽여뻔지고 말껴 란 말을 앙리에게 스몰토킹으로 하는거고.
카를5세나 동생 페르디난트1세는 유도리 있는 사람이고.
이사람이 만든거야 네덜란드는. 결국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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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기지 말고 계속 이어가면.
The king-emperor's interactions with his son during his stay in Spain convinced him of Philip's precocity in statesmanship, so he determined to leave in his hands the regency of Spain in 1543. Philip, who had previously been made the Duke of Milanin 1540, began governing the most extensive empire in the world at the young age of sixteen.
카를은 대게 독일땅에 있었어. 이탈리아전쟁의 이탈리아와 함께. 스페인엔 그리 머물지 않은겨. 아들 펠리페2세가 스물 전에 스페인에 머물면서 후계구도를 미리 짠거야 동생과 나누기로. 아들에겐 미리 정치를 경험하게 해. 16살때에 스페인 킹 자리를 이미 시킨거야 실질적으론. 얜 어릴때부터 제국의 킹이 된겨. 공식적으론 아빠 죽고 타이틀을 취한 거지만.
카를5세. 쓰다보니. 참 애정이 찐하게 가는데. 카를.이 찰스.걸랑. 스페인에선 카를로스. 프랑스에선 샤를. 독일어 카를. 스페인에선 카를로스1세야. 즉 카를 찰스 란 이름은 안쓴겨 스페인은.
저 찰스의 시작은 카롤링거 시작인 샤를 마뉴.,야 얘가 1세야. 그리고 땅없다고 대머리 닉 붙은 배다른 막내 손자 대머리 샤를. 얘도 프랑스 킹이면서 독일땅 황제였어. 그리고 뚱땡이 카를이 3세. 뒤에 룩셈부르크가문에 카를이 4세.
이름들이. 성의 시작이 저 유럽애들은. 기본적으론 성서야. 대표적인게 존. 이게 사도 요한.이나 세계자 요한.에서 온거걸랑. 이걸 후안. 주앙. 부르고. 여자이름은 남자이름에 모음 아.를 붙이걸랑. 제임스. 이건 야고보.는 조선 빠닥에서만 쓰는 말이고. 야코브. 제비디의 야코브.에서 다들 쓰는거고. 지저스를 조슈아 하는거고.
헨리.는 중세때 나온 이름이야. 이건 얼마 안돼.
Henry the Fowler (German: Heinrich der Finkler or Heinrich der Vogler; Latin: Henricus Auceps) (876 – 2 July 936) was the duke of Saxony from 912 and the elected king of East Francia (Germany) from 919 until his death in 936.
독일쪽은 하인리히. 이사람 아들이 작센의 오토1세야. 신성로마제국의 실질적 시작. 파울러. 작센집안에서 이사람이 동프랑키아 킹자릴 받아. 킹 소식을 사신이 보고할때 새 사냥 그물인지 새장인지를 고치고 있었걸랑. 그래서 닉이 파울러야.
프랑스 앙리.시작은 위그 카페의 손자부터여. 잉글랜드 헨리1세는 윌리엄 아들이고. 카스티야 엔리케.는 프랑스 앙리1세보다 2백년 늦어.피레네 넘어서는 샤를마뉴 기려서리. 샤를 카를 찰스 를 많이 써 이후로도 계속. 프랑스애들은 요한.이라는 장.은 오히려 안써. 장2세.에서 끊었어. 장1세는 단명에. 장2세는 백년전쟁때 지고 잉글랜드 포로에 잉글랜드 자진해서 가서 웬수땅에서 죽어. 불길한이름인거지.
루이.라는 이름을 오히려 더 쓰지. 루이19세 까지 나오니. 이게 샤를마뉴 아들 경건 루이.도 좋고. 그 자식들 삼형제의 가운데가 게르만 루이걸랑. 이 루이들이 좋았으니 계속 쓴겨 프랑스에서 오히려.
스페인은. 찰스 아들들이 아냐. 카를로스.란 이름이 이게 뒤에 나오는 이름이야. 돈카를로스.라는 펠리페2세 망나니 자식땜에 유명하고. 나바라 킹덤에서 친엄마 죽고 새엄마에게 뺏길까봐 반란하고 죽는 카를로스가 있지만 말야. 늦어. 자기들은 찰스라는 샤를 마뉴완 상관이 없어.
그 처음이 황제 카를5세. 라는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 인데.
Charles left Philip with experienced advisors—notably the secretary Francisco de los Cobos and the general Duke of Alba. Philip was also left with extensive written instructions that emphasised "piety, patience, modesty, and distrust." These principles of Charles were gradually assimilated by his son, who would grow up to become grave, self-possessed and cautious. Personally, Philip spoke softly and had an icy self-mastery; in the words of one of his ministers, "he had a smile that cut like a sword."
애비 카를.이 저때 얘한테 옆에 고문들 붙여주면서 정치에 발들이게 할때 어릴때. 네가지 단어를 주는겨.
파이어티. 페이션스. 모데스트. 디스트러스트.
저 네 단어가 이게 동양빠닥의 정서와 다른거야. 저게 조선이 망한 이유고 조선민국이 여전한 공상 공론에 젖으면서 감정에 미친 애들이 착한척 대민서리 개차반 만드는거의 이음인데.
.이땅은 사전. 이 없어. 이 심각성을 모르는데. 하기사 없을 수 밖에 없는거고. 이 조선이란 두 글자는 끔찍한거야 이게.
파이어티. piety. 라틴어야. 피에타스. pietas.
Derived from pius (“pious, devout”) + -tās (“-ty, -dom”).
피우스. 에 명사형 접사가 붙은건데.
Michelangelo's Pietà in St. Peter's Basilica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폐타.야 이탈리아어. 파이어티.의 이태리어. 사진만으로 봐도 말야. 저 파이어티.를 느끼는데. 미켈란젤로는 진짜 미친인간이야 이거. 최고야 최고 그야말로.
이땅바닥엔 저따위 조각. 은 물론이거니와 소설 그림 음악이 없으니 정말 끔찍한거야 이건. 없다는게 끔찍하다는게 아니라. 대게 없어 후진 들의 문명속엔 저사람들의 수준의 발끝도. 끔찍한건 말야. 이따위 허섭한 지들 이야기를 위대하다며 민족 이념 로 포장질하는게 그야말로 끔찍한겨
쟤들과 이땅포함 무슬림 인도 중국 중남미 애들이 저걸 못한겨. 이중에 이땅바닥 조선 유교 문명들에겐 특히나 없어 저 파이어티. 피에타.가. 신을 죽인 들이걸랑. 이 들이 그래서 마르크스에 열광하는거야. 마르크스 가 신을 죽인 걸랑 이게. 이 땅바닥 학자연 하는 개들이 말야 공중파에서 떠드는게. 근대가 신을 죽인 걸. 근대라 정의 질 하는겨. 우리네 위대한 조선민족은 조선때부터 신을 죽였슈, 우리네야 말로 진정한 근대유. 조선은 근대유
정도전가 불씨잡변 대는 이유야 그게. 그따위 정도전을 천재 대민서리 정도전 다시보기. 이따위 사관이 북조선들이 정도전을 포장하걸랑 똑같아 이 구조가. 쟤들이 이념에 환장하는겨 그래서. 아 이 끔찍한 조선 들의 핏줄이란 말이지. 엄청난거야 이게.
자기가 임기내에 이땅바닥에 정의를 구현하겟때. ㅋㅋㅋ. 한심한겨 진짜.
먼 정신병자들도 아니고 말야 저건.
The quality of being religious or reverent.
Origin
Early 16th century (in the sense ‘devotion to religious observances’): from Old French piete, from Latin pietas ‘dutifulness’, from pius (see pious).
릴리저스. 또는 레버런트.한 거야. 피에타스.란건 듀티풀니스. 한거야. 파이어스. 영어야. 듀티.는 듀.라는 말이고.바닥은 라틴어고. 다른 라틴어는 오블리게이션. obligation. 같은 말이야. 이걸 의무. 속박. 이리 번역 하는데.
Origin
Middle English (originally in the sense ‘life under monastic vows’): from Old French, or from Latin religio(n-) ‘obligation, bond, reverence’, perhaps based on Latin religare ‘to bind’.
이 릴리젼 religion 이란건. 라틴어야. 레길라레. 묶는겨. 속박이야. 무엇과? 신이야 저게. 얘들의 말글의 가장 끝은 신이야 신. 노우. 알다의 대상도 신이야. 얘들은 모든 말이 신. 이야. 그 바닥이. 이게 동양빠닥과 다른겨. 저 신에 대한 탐색의 궁극이. 칸트야. 그 변주가 헤겔이야. 서양사의 사유의 탐색은 저 둘.에서 끝난거야. 뒤의 하이덱거.나 데리다.는 주체 객체 라는 시선으로 저따위 신이야기를 보지 말고. 판 자체를 달리 보자 면서 시작하걸랑. 해서 용어 자체가 전혀 달라 얘들은 그래서 씨부리는 말이 대체 먼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단건데. 별게 아녀 저게. 넘어가고.
해서 카를 마르크스. 라는건 아예 말이지. 인간 문명사를 딜리트 하자는 야 이건. 수메르 이전 만년 전으로 그냥 돌아갑세다 하는 거 이상 없어. 왜? 무식하걸랑 이 개앤 진짜. 이앤 조온나게 무식한 야. 그래서 조온나게 무식한 애들이 떠받드는겨. 저 스킴에선 생각따위가 필요없어. 걍 감정 만 부추기는겨. 분노하라! 란 말이 쏙쏙 들어오는거고 프랑스 노인네가 짧게 분노하세요 쓴 말을 떠받드는거고 어떤 빙딱들은.
이성이 없는겨 저기선. 오직 감정덩어리야. 감정덩어리엔. 파이어티.가 없는겨. 얘들은 신을 부정하고 픈 허섭한 애들이걸랑. 감정으로 몰려난 이성. 지워진 이성으로 생각을 못하고 분노와 혐오 덩어리가 된거야. 그게 다르시.에게 향한 엘리자베스.야. 헌데 영국애들은 저것조차. 스스로 자각을 하걸랑. 아 음청난겨 제인 오스틴.
참 정치를 비정하게 하는군요. ㅋㅋㅋ
자기들은 감성덩어리에 인간적이란 거지. 가만 디다보믄. 저따위 애들의 위선과 허영과 무식은 끔찍한 수준이지. 그렇게 정이 많으시면. 니 전재산 다 퍼내 서 거리나가서 다 나눠줘. 남의 돈 뺏지 말고. 하기사 남의돈은 적폐돈 지 돈은 정의돈.
릴리전. 이란 신앙.은 신에게 묶인겨. 이게 레길라레. 여기서 의무.가 나와. 속박.이란 말이 나오고. 이게 듀티.야. 로마말은 오블리가레.에서 오블리게이션.이야. 리비어 revere 레버런스. 저걸 숭배 존경 하지만. 리비어.의 베레리.는 공포야. 무서운겨. 리.는 강조야. 무서운겨. 숭배의 이유야. 무섭다는게. 인간의 의식으로 대하기가 그 크기나 깊이가 너무 엄청나다 에서 오는 감정이야 저건. 저게 갑골의 신.의 벼락 찢어지는 형상이야. 신. 이 그냥 한줄기 번개가 아냐. 하늘을 갈기갈기 찢는 벼락의 번갯불들.이야.
릴리전.이란 그래서. 저 어마어마한 신.이란 그 무엇에 대해. 인간으로서 묶이는겨. 의무를 다하는겨. 모시
는겨. 그게 릴리젼.이야.
피에타스. 피우스. 라는 라틴어. 로마인들이 꺼낸 이 말은. 저 릴리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감정선인거야. 그야말로 너무나 너무나 무섭?은겨. 경건한겨. 이건 말로 어찌 표현을 못해. 그 이미지가 저 미켈란젤로 오느 피에타.야. 인간의 저 릴리전에서 잡아낸 추상을 저리 표현한 것은 저 작품이 또한 최고야.
저런 피에타스.를 또한 유럽애들의 교회가서 어떤이들은 느끼는거야. 예전에 채널 돌리다가 연예인여자들이 저길 가걸랑. 저 교회에 가서. 갑자기 말야. 눈물이 뚝뚝뚝뚝 떨어지는겨 여자들이.
문제는 말야 이 조선엔. 저리 피에타스. 파이우스. 피에타.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 전혀 없다는거지. 끽해야 한무당들의 쫍다란 방이야 저게. 조온나게 미개한겨 저게.
왜냐믄. 조선이 이놈의 피에타스를 박박 지웠걸랑.
카를5세의 첫단어야. 아들아. 파이어티.를 항상 마음에 담아라.
두번째가 페이션스 patience.
The capacity to accept or tolerate delay, problems, or suffering without becoming annoyed or anxious.
Origin
Middle English: from Old French, from Latin patientia, from patient- ‘suffering’, from the verb pati.
라틴어야. 파티. 저건 서퍼링. 경험하고 겪는거야. 괄호. 나쁜걸. 그래서 환자야. 나쁜 경험중이걸랑. 저게 더 나가서. 그 나쁜일들을 다 억셉트. 하고 탈러레이트 하는겨. 성질부리지 않고. 해서 참다 라고 하지만. 참는 것과 성질이 달라 저건.
저것도 조선바닥이 후진 이유야 이 조선왕조 오백년. 페이션스.는 참다 가 아냐. 참는건. 복수를 전제로 하걸랑 이 조선 들은. 참고 참아서. 적폐놀이 이념놀이 소인배놀이로 나중에 정권바뀌면 조오온나게 칼질 하는겨. 이게 조선 오백년의 가장 큰 줄기야. 아 이들 정말 끔찍한 들이야 진짜. 상대를 수용하고 관용하는게 전혀 없어 이들은. 죽입시다 죽입시다. 죽입시다. 저거 소인배유. 넘어가믄 안돼. 죽여유 죽여. 이게 지금 여전한거고. 단어만 바뀐겨. 소인배에서 적폐로. 그리곤 포용하재. ㅋㅋㅋ. 자기편들의 소외딘 자기편을. 챙겨주지 못한 자기편을 포용하자는겨 저건. 세상에 정권을 잡고 이전 정권애들을 싸그리 깜빵에 처넣는건. 저건 인류사에. 후진 들이나 저따위 을 한거걸랑.
말장난은 해요. ㅋㅋㅋ. 그래도 말야 정은이 한번 오면 지지율 오를생각에 햄뽀까유 ㅋㅋㅋ.
세번째 말이. 모데스트. modest.
Unassuming in the estimation of one's abilities or achievements
Origin
Mid 16th century: from French modeste, from Latin modestus ‘keeping due measure’, related to modus ‘measure’.
이건. 모더레이트 moderate 란 말과 전혀 달라. 모데스트.는 라틴어야. 여기서 파생된게 모더레이트 하지만. 달라. 메져.라는 모데스투스.에서 나온겨. 이건 측정. 하는걸 미루는거야. 떠맡지 않는겨. 듀. 라는게 어떤 옳다고 여겨지는 시기나 때야. 이건 시간이 필요한겨. 그때까지 미루는겨. 메져.라는 건 평가.야. 판단이고. 사람이든 사건이든. 판단을 쉽게 하지 말라는거야. 최대한 심사숙고하라는게 저 모데스트. 야.
마지막 말이. 제일 웃긴겨. 디스트러스트.
Origin
Middle English: from Old Norse traust, from traustr ‘strong’; the verb from Old Norse treysta, assimilated to the noun.
트러스트.란 말은 게르만 말이야. 노르족 애들이 시작한듯 하대. 이건 의미가. 강한. 이야. 페이쓰. 빌리프. 보다 이 믿음이 더 쎄. 페이쓰 faith 는 피데스.란 라틴어고. 빌리브.는 대륙 저지대 앵글로색슨애들 말이고. 트러스트.는 바다건너 노르족 애들이 만든 말이야. 다 똑같은 믿음. 이야. 믿는겨.
카를이 말하는겨. 아들아. 믿지 말아라. 저기서의 대상은. 사람이야.
사람은. 믿을 게 못되는겨. 정말 옳으신 말씀이야.
These principles of Charles were gradually assimilated by his son, who would grow up to become grave, self-possessed and cautious. Personally, Philip spoke softly and had an icy self-mastery; in the words of one of his ministers, "he had a smile that cut like a sword."
펠리페.에게 아부지 카를은 어렵고 높은 인간이야. 카를5세는 이전 설명했듯이. 인류사에서 가장 험난한 시대에서 가장 중심에 있던 사람이야. 이 사람이 만든겨 지금 문명은. 아들이 그대로 따르는거야 저 네 단어을. 그래서 그레이브. 이게 무덤이잖아. 자기 내면을 파는겨. 셀프 포제스트. 자기 통제를 하는겨. 조심하고. 목소리는 부드러운데 얼굴은 차가와. 행정부 사람이 말하길. 그는 웃음을 지은 걸 봤는데. 칼같이 날카로운 웃음이었다.
펠리페2세가 보기엔. 프로테스탄트들이 파이어티 하지 않은거야. 펠리페.가 카톨릭을 수호하려는 이유였어 저게. 그 중에 하나가 팔십년전쟁이었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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