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모든 것은 이 컴퍼니.로 시작해. 

 

중세란건 고대를 다시 시작한겨. 고대 그리스 로마.를 게르만이 다시 배우고 자기들의 로마.를 실현시키는게 중세 천년이야. 고대 로마의 말글을 익혀서 자기들의 말글을 만들면서 천년을 복원한거야.

 

헌데 이 중세 천년의 결과물이 고대로의 반복으로 가지않고 근대.라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근대라는게 현대에 가깝다는 의미의 근대가 아니라. 전혀 다른 문명으로서의 근대야. 

 

고대문명들도 수많은 부침을 겪지만 똑같은 부침은 아니걸랑. 그 부침. 쇠하고 흥하고 하면서 먼가 더해지면서 발전을 한거걸랑.

 

그래도 중세천년의 결과물은. 인류문명사에서 전혀 다른 전환점을 만들어낸거야. 서기 1500년에. 물론 이전 수메르부터의 750.0년간의 쌓임의 결과물이지만. 획기적인거지 이건. 

 

이 시작은. 리포메이션. 이라는 종교개혁이라 번역이 된 거걸랑. 전혀 다른 사유의 전쟁이 일어나. 이게 달라 고대와. 

 

그리고 말야. 컴퍼니.의 출현이야. 이전과 다른 상인조직이야. 이것도 그냥 컴퍼니가 아냐. 차터드 컴퍼니. 카르테스. 카르타. 차터.를 받아서 인증된 컴퍼니야. 

 

시작은. 용병이야. 

 

free company (sometimes called a great company or grande companie) was an army of mercenaries between the 12th and 14th centuries recruited by private employers during wars. They acted independently of any government, and were thus "free". They regularly made a living by plunder when they were not employed; in France they were the routiers and écorcheurs who operated outside the highly structured law of arms.[1] The term "free company" is most applied to those companies of soldiers which formed after the Peace of Brétignyduring the Hundred Years' War and were active mainly in France, but it has been applied to other companies, such as the Catalan Companyand companies that operated elsewhere, such as in Italy[2] and the Holy Roman Empire.

 

얘들은 앞에 프리. 란걸 붙여줘 나중에. 차터 받은 컴퍼니와 구분하기 위해서. 12세기부터 14세기의 용병군대.를 컴퍼니.라 해. 어느 특정 권력에 소속되지 않았어. 그래서 프리.야. 차터 컴퍼니.는 차터를 발행한 권력 안에 소속된 겨.ㅡ 안프리해. 중세때는 저 컴퍼니.를 돈으로 구입해서 전쟁을 하는겨. 카탈란 컴퍼니. 시칠리아 만종때 바르셀로나와 같이 시칠리아를 아라곤에 편입시키고 애게해 건너 오스만애들이랑 싸워 비잔틴과 계약해서. 백년전쟁때 화이트 컴퍼니. 아비뇽교황이 중간에 피렌체 땅 갖고 올라고 써먹으려다가 실패하는. 스위스 용병 하이랜더들. 슈바벤에서 저지대 퍼지는 란츠크네히트 용병들. 다 이 컴퍼니야.

 

 

Brigandage is the life and practice of highway robbery and plunder.[1] It is practiced by a brigand, a person who usually lives in a gang and lives by pillage and robbery.[2]

The brigand is an outlaw who conducts warfare after the manner of an irregular or partisan soldier by skirmishes and surprises, who makes the war support itself by plunder, by extortion, by capturing prisoners and holding them to ransom, who enforces his demands by violence, and kills the prisoners who cannot pay.[3][4]

이들은 시작이 라버리.에 플런더. 강도에 약탈이야. 브리건드. 여기의 개인을 칭하는 말이야. 굳이 번역을 도둑 도적. 하는데. 이들의 집단이 브리게이드 brigade. 이걸 굳이 일본들이 여단. 이란 군대용어로 쓰는 번역한건데. 

 

robbery 나 플런더.는 라틴어가 아냐. 게르만애들이 만든겨. 플런더는 쎈 말이야. 이 말은 독일 30년 전쟁때 나온 말이야 이게. 저지대 독일어에서 플륀데른. 하면서 쓰게 돼. 용병들 약탈의 극치였걸랑. 가정집에 들어가서 약탈을 하는거야. 이전엔 거의 없던 짓들이야 이게. 기사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지되면서 극심해진겨. 이전에 이념전쟁이 터지고 상대를 적폐로 규정해서 아무런 죄의식도 없다고 정당화하면서 더 하는거지. 중세 유럽애들의 전쟁은 동양빠닥과 전혀 달랐어.

 

 

헌데 리포메이션 이후 이념전쟁이 터지고 근대로 접어들면서 상공업 득세하는 과정에서 상대적 박탈감 갖는 애들이 전쟁에서 플런더.를 하는겨. 이 단어는 그래서 나온게 얼마 되지 않은 단어야. 라버리 했다는거지 이게.

 

저런 브리건드. 들이 모인 브리게이드. 라는 집단이 중세에 용병으로 자유계약하면서 전쟁에 참여해. 유럽애들은 군역이란게 없어. 가장 큰 차이야 허섭동양빠닥과. 아무런 정체성이 없는 이들을 병력으로 쓸 수도 없고. 써봤자 무용하고 유지하려면 돈 들어.

 

 

헌데 저런걸 고민 않는게 또한 조선왕조야. 얘들은 참 싕기한 애들이야 진짜루.

 

 

조선 초기. 태종이 상왕에 앉고 세종이 킹할때. 이성계때 쌓은 한양 성곽이 부실해서 다시 쌓아. 전국 팔도의 민들 다 모아. 세금 비율대로 조정해서 수만명이 모여. 할당을 해. 이때 말야. 이 민들은. 자기들 밥을 자기들 돈으로 먹는겨 이게. 중앙 코트에서 지원하는건. 인간들 모이면 병생길까봐 한무당질 의료지원을 해. 공사가 끝났어. 동원된 민들이 자진 해산하는데. 한양에 굶어죽은 저 군역동원된 민들이 백여명이야. 그 시체들이 즐비한겨.

 

대신들은 관시미가 없어. 세종이 착한척 민들이 죽였슈. 대신은 머 죽던 말던. 태종이 그런 대신을 꾸짖는척 착한척해. 

 

저게 실록에 대화가 그대로 있어.

 

일본들도 전국시대 이야기 보믄. 성을 짓는것도 다 돈이걸랑. 돈 주고 밥 주고 부려먹는겨 부려먹어도.

 

 

저런 애들이. 군역도 당연시 하는겨. 조선 왕조에 충성 하는건 당연한 거야. 정체성이 당연히 있어야해. 이들은 미개한겨 이게. 임란이나 호란때 막상 수십만 있어야 하는 군역의 민들이 없어. 아무런 의미가 없는겨 저게.

 

의병들이 싸우는건 저때. 그 양반집에의 노비애들을 모아서리 싸우는겨. 노비들은 주인이 밥을 주걸랑. 그 정체성?이 있는겨. 싸울 이유가 되는거야

 

 

유럽애들은 저 맹점을 당연히 알고. 용병을 쓴거야. 조선 오백년은 저걸 몰라. 당연한 건 줄 알아 저게.

 

 

조폭도 말야. 똘마니애들 돈줘야 형님 소리 듣는걸 알아. 이 조선 들은 조폭 수준도 안되는겨 이게.

 

이 개 들이. 그래서 상인을 적폐 취급을 오백년을 하는겨. 헌데 저따위 개 들을 여전히 위민의 상징이심둥 위대한 조선을 사쿠라가 어찌 암니까요 슨상님.

 

 

참 한심한겨 이땅바닥 수준이.

  

Mercenary groups first appeared in the 12th century, when they participated in the Anarchy (a conflict of succession between King Stephen and the Empress Matildabetween 1137 and 1153).

 

용병 시작은 12세기에 처음 보여 기록상. 이전 썰한 잉글랜드 아나키.라 부르는 무정부 상태. 정복왕 윌리엄 아들 헨리1세의 딸 마틸다.와 윌리엄의 딸의 자식 스테펜. 이때 배런들이 갈라서면서 싸우는겨. 하급 귀족애들이 세를 이뤄서 영지전쟁을 하는겨 저게. 저이후로 계속. 저때부터 마틸다 아들 헨리2세. 이 아들들 리차드 실지왕 존.에 꼬마애 헨리3세. 이 플랜테저넷 초기에 특히나 심한겨 용병들의 전쟁이. 

 

프랑스도 저때부터 잉글랜드에 뺏긴 땅 회복한다고 용병 컴퍼니들을 쓰는거고. 백년전쟁은 컴퍼니들을 더 쓰는거고.

 

신성로마제국은. 처음엔 부족들 간의 전쟁이걸랑. 오토1세가 정리 어느정도 하고. 다음에 각 영지별로 계승권을 빌미고 전쟁들 할때도 기사들 데리고 용병들 델꼬 가는겨.

 

Origin

Late Middle English (also denoting an irregular foot soldier): from Old French, from Italian brigante, literally ‘(person) contending’, from brigare ‘contend’ (see brigade).

 

시작은 브리간드. 라든 도적집단이야. 이건 라틴어.의 브리가레. 에서 갖고 와. 컨텐드 라는게 하나를 두고 다투는겨. 여기서 나온 말이야. 안좋은 말이야. 

 

Origin

Middle English: from Old French compaignon, literally ‘one who breaks bread with another’, based on Latin com- ‘together with’ + panis ‘bread’.

 

이들이 컴퍼니.가 되는겨. 콤패니온. 같어 이게. 같이 빵먹는 동료야. 

 

이들이. 진짜 컴퍼니.가 되는거야. 

 

 

문명의 시작은 군대야. 군대가 정체성의 핵이고. 로마 군단의 군단병들이 유럽 문명을 만든겨. 카이사르.가 군사학의 최고야. 건축학의 최고야. 최고의 설계자야. 모든건 저 군대에서 나왔어. 

 

이들이 콩퀴스타도르스.가 되서리 신대륙으로 간다 했잖아. 이들이 군인에 문학가에 과학자에 역사학자야. 그리고 이들이 상인이야. 투자 하고. 이익 처먹는겨.

 

프리컴퍼니.가 용병을 벗고 시장에 진출하는겨. 권력의 허가서. 인증서를 받고. 

 

chartered company is an association formed by investors or shareholders for the purpose of trade, exploration, and colonization.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최초의 컴퍼니가 아냐. 얘는 걍 최초의 주식회사.라고 해. 여기서 주식회사란. 공모를 해서 투자금을 받은겨 주식을 주고. 공모.가 방점이 있고. 이 주식들을 거래할 수 있다는데 중요도를 줘. 

 

이전엔 걍 몇몇이 조인트. 합작으로 만든 컴퍼니.에 차터.를 받은 거걸랑. 저게 역사가 있는겨.

 

저게 조선때 시전.이라는 상점 개설 권리 따위를 주는 그따위 차터가 아니고. 육의전이니 그따위 것도 아니고. 쟤들은 걍 지들이 상점 열어서리 돈벌어서 세금 내면 되고. 조선은 금난전권 대미 정해진 거 이상 못팔게도 하걸랑 나중엔. 갓 생긴 상점은 없애고. 하튼 골때리는 집단인데. 얘들 이야긴 나중에 하던 말던.

 

 

The Company of Merchants of the Staple of England, the Merchants of the Staple, also known as the Merchant Staplers, is an English company incorporated by Royal Charter in 1319 (and so the oldest mercantile corporation in England) dealing in wool, skins, lead and tin which controlled the export of wool to the continent during the late medieval period. The company of the staple may perhaps trace its ancestry back as far as 1282 or even further.[1]

 

스테이플.의 상인들 컴퍼니. 이게 1319년.에 차터를 받아. 이게 뒤져보니 가장 오래된 차터 컴퍼니로 보이는데. 

 

스테이플. 이 저기선. 시장.이야.

 

Origin

Middle English (in staple (sense 3 of the noun)): from Old French estaple ‘market’, from Middle Low German, Middle Dutch stapel ‘pillar, emporium’; related to staple.

 

게르만애들이 만든 말이야. 저지대에서. 네덜란드땅이 프리지아 플랑드르.가 먼저 깨였걸랑. 스타펠.이 기둥.이야 고정된. 마켓 이란게 고정된 곳이야. 더하여 주춧돌 위의 기둥이야. 이게 없으면 죽어. 

 

잉글랜드가 저걸 차터.라는 걸 주는 이유가 있어 킹덤이. 

 

liberty was an English unit originating in the Middle Ages, traditionally defined as an area in which regalian right was revoked and where the land was held by a mesne lord (i.e. an area in which rights reserved to the king had been devolved into private hands). It later became a unit of local government administration.[1]

Liberties were areas of widely variable extent which were independent of the usual system of hundreds and boroughs for a number of different reasons, usually to do with peculiarities of tenure. 

 

저때는 중세 봉건주의 가장 왕성할 때야. 영지. 지주 중심이걸랑. 모든 땅들이 바쌀이라는 영주가 받은 땅이자 권리인 피프.로 나뉜겨. 상인들이 독립적인 자치구를 요구해. 영주 소속이 아니라. 킹과 다이렉트로 계약하는. 리버티. 라는 자유무역지구.를 달라는거야. 원래는 교회와 관련된 용어야. 수도원땅이나 교회영지가 빌경우가 생겨. 주인없는 상태를 리버티. 해 이걸 킹이 갖고가. 

 

상인들이 이런 리버티.를 요구해. 킹은 여기서 커미션도 삥땅도 안뜯어. 세금만 가져가믄 돼. 이 시작이 잉글랜드의 스테이플 컴퍼니.야 잉글랜드 시장 상인들의 모임. 회사. 차터를 받은겨 킹한테서. 이 상인들을 스테이플러스. 라고 해. 

 

이게 진화된게 신성로마제국의 프리시티. 야 자유도시. 여기도 임미디어시. 영주가 없어. 황제랑 다이렉트야. 헌데 이건 컴퍼니가 아냐. 양 도시야. 

 

From 1314, the Crown required all wool for export to be traded at a designated market, called 'The Staple'. This allowed the Crown to monitor the trade and levy tax on exports.

The staple was first fixed at Antwerp then successively moved to Saint-Omer, Bruges, Brussels, Louvain, Mechelen and Calais. In 1353 the staple was fixed at Westminster which drew so much business it was raised to the dignity of a town, in 1378 it was removed to Staple Inn, Holborn where it continued.[3]

잉글랜드가 양모 수출로 먹고살아. 주 수출처가 플랑드르 해변이야. 차터.를 1319년. 병딱이 에드워드2세 때 줘. 안트베르펜.에 처음 세우고. 플랑드르 와 접경 프랑스 북부에 세워. 칼레 점령하곤 칼레에도 세워. 킹이 세금 걷기위한 모니터링만 하는겨.

 

저기가 일종의 소도야. 치외법권이야. 플랑드르가 저때도 프랑스랑 졸 싸울때걸랑. 그러다 나중엔 신성로마땅으로 학실히 들어가잖오 부르고뉴 마리가 시집가면서. 저기서 영어성경 번역하는 윌리엄 틴데일이 잡힌겨. 틴데일이 헨리8세때 안트베르펜.에서 번역중이었걸랑. 저긴 카를5세 군대가 못들어가. 틴데일을 헨리가 인터폴에 수배령을 내려. 저때가 앤불린이랑 결혼한 상태야. 카를5세 입장이 애매할때야. 자기 짝은 이모 캐서린은 이혼당해 있고. 틴데일.을 돈에 쪼들린 가 저 소도에서 나오도록 꼬셔. 이때 체포를 하고 감금한겨. 그리고 나서리 일년있다가 죽이는겨. 왜냐믄. 앤불린.을 사형시키걸랑. 틴데일이 앤불린 결혼 할때 캐서린 결혼무효는 나뽀 하면서 도망다녔걸랑. 그래도 프로테스탄트야. 그래도 틴데일은 프로테스탄트 핵심이야. 앤불린 죽이고 틴데일을 죽이는겨.

 

 

The Great Bible of 1539 was the first authorized edition of the Bible in English, authorized by King Henry VIII of England to be read aloud in the church services of the Church of England. 

 

잉글랜드가 성공회 기반 다질때. 헨리8세가 공식 영어성경.으로 낸게 그레이트 바이블.이야. 이게 1539년.이야. 최초의 영어 공인된 성경이야 이게. 이건 윌리엄 틴데일.이 다 한겨. 1535년에 저 안트베르펜. 이라는 스테이플 컴퍼니의 리버티에서. 이걸 헨리가 틴데일 다음해 죽이고 3년 지나서 낸겨. 조선이었으믄 역적의 적폐 기록은 다 태웠을낀데말야.

Myles Coverdale, first name also spelt Miles (1488 – 20 January 1569), was an English ecclesiastical reformer chiefly known as a Bible translator, preacher and, briefly, Bishop of Exeter (1551-1553)

 

마일스 코버데일. 틴데일 보다 6살 많아. 이사람이 망명길에 저 안트베르펜 가서 틴데일 번역하는거 도와주면서 같이 번역한거야. 틴데일 체포당하고. 이사람이 나머지 번역을 해. 저 그레이트 바이블.은 틴데일.에 이 마일스 코버데일.이 망명길에 번역한거야.

 

할때. 저 배후는 잉글랜드 스테이플러 상인들의 컴퍼니.의 리버티 인 안트베르펜.이야.

 

 

플랑드르. 그리고 특히나 플랑드르의 이 안트베르펜. 플란다스의 개.의 도시. 루벤스 그림이 있는 도시. 여기가 최고야

 

포르투갈.이 스파이스.를 갖고 오기 시작해. 이걸 유럽에 팔아야 하는데. 어디가서 팔겠어. 포르투갈에 상인들이 오는겨? 아녀 누가 그 리스본 그 먼길에 스파이스를 사러가니.

 

포르투갈 상인들이 스파이스를 받아서리. 안트베르펜.에 가서 파는겨. 이 안트베르펜.이 포르투갈의 중요한 무역거점이 되는거야. 포르투갈 상인들이 여기에 드글드글 한겨. 더하여 유럽 상인들이 다 모이는거고. 모든 인종들이 다모여. 레콩퀴스타 끝나고 유대인이 알함브라 칙령으로 쫓겨날때 바예지드2세 울타리로 가는 사람에. 북아프리카 해변에서 해적질 하게 되는 유대인도 있지만. 상당수가 플랑드르에 가는겨.

 

그야말로 최고 도시가 된거야 이 안트베르펜.이.

 

Subsequently, the city joined the Union of Utrecht in 1579 and became the capital of the Dutch revolt. In 1585, Alessandro Farnese, Duke of Parma and Piacenza, captured it after a long siege and as part of the terms of surrender its Protestant citizens were given two years to settle their affairs before quitting the city.[25] Most went to the United Provinces in the north, starting the Dutch Golden Age. Antwerp's banking was controlled for a generation by Genoa, and Amsterdam became the new trading centre.

 

네덜란드 80년 전쟁.으로 스페인에 반기를 들때. 가장 전장의 중심이 그래서 안트베르펜이야. 펠리페 2세때야. 포르투갈이 자식이 없어서 엄마핏줄로 포르투갈 킹도 받았어. 안트베르펜.은 가장 중요한 도시야. 네덜란드 나 스페인 이나. 

 

저 안트베르펜.이 1585년.에 스페인 것이 돼. 80년 전쟁. 1568년 시작 후 17년 만에. 네덜란드의 아버지가 되는 오렌지 윌리엄이 이 직전해에 암살당해. 펠리페 2세가 현상금 쎄게 걸고. 헌터에게 죽어 그래서. 그리곤 십여년 지나서리 12년 휴전 하는거야. 

 

안트베르펜.의 상인들이. 떠나는거야 저길. 그리고 가는 곳이 암스테르담.이야.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는 안트베르펜.에서 쫓겨난 유럽 상인들이 암스테르담에 모여서 만든거야. 이들이 네덜란드.를 만든거야.
할때의 안트베르펜.이고 플랑드르.고 스페이플 이라는 시장의 상인들의 컴퍼니.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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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자꾸 새면 언제 마무리 하냐 이거

The Company of Merchant Adventurers of London brought together London's leading overseas merchants in a regulated company in the early 15th century, in the nature of a guild. Its members' main business was the export of cloth, especially white (undyed) broadcloth. This enabled them to import a large range of foreign goods.[1][2]

 

 

 

그 다음 컴퍼니로 보이는게. 백년 좀 안되서.  런던 상인 어드벤쳐러들의 컴퍼니. 이것도 해외무역상인들의 모임이야. 

 

Origin

Middle English: from Old French aventure (noun), aventurer (verb), based on Latin adventurus ‘about to happen’, from advenire ‘arrive’.

 

어드벤쳐.라는 모험.은 아드베니레. 도착한겨 낯선 곳에. 막 흥분될 일이 일어날 듯 한겨. 

 

”是“”的本字,而“”又是“”的本字。,甲骨文是象形字,像一个帽子,帽子上部有带球结的角饰,帽子下部是头套的形状。有的甲骨文将头套形状写成“网”(罩),强调“”的“头罩”功用。有的甲骨文在头套里面加一点指事符号,表示头部所在。金文省去甲骨文字形中帽子的角饰,增加“目”,写成会义字:(头套)(目),表示半套头部,露出眼睛。造字本义:戴在头上的帽子

모험 할때 이 모. 란 글자가 웃긴건데. 눈목 위에. 머리에 모자를 덮어쓴거야. 머리에 멀 덮어쓰고서 눈동자만 드러낸거야.

 

 

해서 머리.란 상형때문에. 모두. 란 한문으로 시작글.을 의미해. 모자 할 때 모.는 이 모 란 글자에 옆에 수건이 더한거야. 

 

저건 도둑이 눈동자만 드러내고 먼 짓을 하려는 글자야. 속이다 란 의미가 앞에 오는겨 그래서. 부정적인 글자야 이게.

 

무릅쓰다. 란 우리말이. 어원 을 보면 무릅수다 어쩌곤데. 이것도 덮어쓰는겨. 

 

더하여. 무서워서 다 가리고 눈동자만 빼꼼 내민거야. 하기 어려운걸 억지로 하는겨. 해서 애쓰는거고.

 

모험. 어렵고 무서운걸. 다 가리고 눈만 드러내고. 험한 깎아지른 산을 올라가는거야. 어딘가에 어라이브. 하려고.

 

 

모험. 어드벤쳐.는 상인들의 명사인거지. 문명은 이들이 만든겨. 상인을 적폐로 규정하는 들은 인간이 아냐 이건.

 

 

The company received its royal charter from King Henry IV in 1407,[3] but its roots may go back to the Fraternity of St. Thomas of Canterbury. It claimed to have libertiesexisting as early as 1216. The Duke of Brabant granted privileges and in return promised no fees to trading merchants. The company was chiefly chartered to the English merchants at Antwerp in 1305. This body may have included the Staplers, who exported raw wool, as well as the Merchant Adventurers. Henry IV's charter was in favor of the English merchants dwelling in HollandZeelandBrabant, and Flanders. Other groups of merchants traded to different parts of northern Europe, including merchants dwelling in Prussia, Sconce, Sound, and the Hanse (whose election of a governor was approved by Richard II of England in 1391), and the English Merchants in Norway, Sweden and Denmark (who received a charter in 1408).

 

런던 상인 어드벤쳐들의 컴퍼니.는 로얄 차터를 헨리 4세 1407년에 받아. 백년전쟁중에. 이미 2백년전에 리버티들.이라는 자유뮤역지대들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브라반트 공작이 자기 땅 플랑드르에 공작령의 차터를 줬대 이전에. 안트베르펜.의 잉글랜드 상인들에게도 차터를 발행한겨. 여기 공작이. 아마 이 컴퍼니에. 이전 스테이플 상인들의 컴퍼니.도 여기 소속일수도 있다는거지. 그러다가 헨리4세에게 킹의 차터를 받은겨. 홀랜드 질랜드 브라반트 플랑드르.의 상인들을 위한 차터야. 프러시아. 스웨덴의 사운드해협의 사운드. 한자동맹의 지역. 노르웨이 덴마크.의 상인들의 컴퍼니도 차터를 받았다. 저게 아마도 리버티를 받으면 저 컴퍼니에 해당 리버티의 무역권 차트.를 줬다는거겠지.


The London Company (also called the Virginia Company of London) was an English joint-stock company established in 1606 by royal charter by King James I with the purpose of establishing colonial settlements in North America.[1]

 

The Virginia Company refers collectively to two joint-stock companies chartered under James I on 10 April 1606

 

The Plymouth Company was an English joint-stock company founded in 1606 by James I of England with the purpose of establishing settlements on the coast of North America.[1]

The merchants agreed to finance the settlers’ trip in return for repayment of their expenses plus interest out of the profits made.

In 1620, after years of disuse, the company was revived and reorganized as the Plymouth Council for New England. The Plymouth Company had 40 patentees at that point, and established the Council for New England to oversee their efforts, but it stopped operating in 1624.

 

북미 식민지.를 이전 런던 상인 어드벤처러들의 컴퍼니. 그 이전 스테이플 상인들의 컴퍼니. 1319년.을 경험으로. 투자자들과 상인들이 컴퍼니.를 만들어서. 이건 킹이 차터를 발행하는 시스템으로 간거야. 이게 런던 컴퍼니. 버지니아 컴퍼니. 1606년.이야 

 

플리머스 컴퍼니.는 바로 사라지고.

 

이건 조인트스탁 컴퍼니. 컴퍼니의 부채.에 대해. 자기 지분만큼 책임이 있어. 지금용어로 유한회사. 주식회사. 주식있다고 그 회사 부채에 책임이 없잖아. 다른거지.

 

The Jamestown[1] settlement in the Colony of Virginia was the first permanent English settlement in the Americas.

 

잉글랜드의 첫 정착지.로 자리잡는곳이 제임스타운이야. 이들을 실어나른게 1607년이야. 차터 받고 다음해. 이 회사가 런던 컴퍼니. 다른 이름으로 버지니아컴퍼니 오브 런던. 저게 한 회사에 차터를 두 장 준겨. 구역을 나눠서 정해준거지. 

 

The Roanoke Colony (/ˈrəˌnk/), also known as the Lost Colony, was the first attempt at founding a permanent English settlement in North America. It was established in 1585 on Roanoke Island in what is today's Dare County, North Carolina. The colony was sponsored by Sir Walter Raleigh, although he himself never set foot in it.

 

제임스타운. 전에. 20년 전인 1585년에 바로 아래. 로어노크 섬에. 사람들을 내려주고 왔걸랑. 이건 개인에게 차터를 발행한겨 엘리자베스가. 컴퍼니가 아니야. 월터 랠리. 하급귀족이야. 얘 후원하에 사람들을 배에 태워 보냈걸랑.

 

White landed on August 18, 1590, on his granddaughter's third birthday, but found the settlement deserted. His men could not find any trace of the 90 men, 17 women, and 11 children, nor was there any sign of a struggle or battle.[4]:130–33

 

5년 후에 가보니 내려놓았던 성인 남자 90에 여자 17에 아이들 11명 총118명이 흔적이 없는거야. 아무런 흔적이 없어. 다 죽은거겠지 머. 지금도 알길이 없어.
그리고 나서리. 컴퍼니.에 차터를 주고 컴퍼니.주체로 저게 움직여지게 돼 잉글랜드는. 
시작이 1607년 부터야. 스페인의 히스타니올라.보다도 백년이 늦었어. 저기서 지금 미국을 만든겨 쟤들이. 

San Miguel de Guadalupe, founded in 1526 by Spanish explorer Lucas Vázquez de Ayllón,[note 1] was the first European settlement in what became the continental United States.

Two-thirds of the 600 Spanish settlers of San Miguel de Guadalupe died before they reached the end of their three-month winter stay, most of disease. [1] They also suffered a rebellion by their African slaves and the native Guales before abandoning the site in early 1527,[2] with 100 African slaves escaping to take refuge with the neighboring Guale people. This is the first known such rebellion in the future US, with the African slaves constituting the first non-native settlers.

 

가장 먼저 북미에 정착을 시도했던 이들은 역시 스페인이야. 1526년. 이들은 거주목적으로 간거야. 600명 중에 400명이 겨울 버티다가 죽어. 대게 질병으로. 노예들도 데려갔어. 최초의 노예 반란 을 기록해. 

 

저기가 사우스캐롤라이나 해변이야. 플로리다 바로 위. 조지아 해변 지나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이 위가 노스캐롤라이나.이고 이들의 60년 후에 노스캐롤라이나.의 로어노크 섬에 잉글랜드인들이 왔다가 다 사라진거고. 

 

 

In the spring of 1527, Francis Gomez sailed two vessels, holding some 150-200 survivors, to Hispaniola. One ship sank on the way, requiring survivors to crowd on the single vessel to reach the island.

 

바로 봄에 오는겨. 배 두개를 타고. 한 배가 침몰해. 한배에 몰아타. 

 

스페인은 이후에 나르바에스. 코로나도. 데소토. 의 탐험대들이 북미를 탐험하고 실패하지만. 이후 이삼십년 지나면서 플로리다 를 시작으로 정착을 시작해. 1600년 전후엔 뉴멕시코.에도 자리 잡고. 헌데 상대적으로 더딘거지. 왜냐믄 일단. 이 북미.는 금은 덩어리가 없걸랑. 더하여 황금의 일곱도시들 전설이. 남미 북부로 옮겨가. 저기엔 엘도라도. 가 티나오는겨. 

 

그러면서 17세기 들어오면서. 스페인은 16세기엔 북미에 탐험대들 보내면서 진 다빼고 졸 실망하고. 금이 없으니. 대신 여기에 오른쪽 동부해변으로 잉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들이 들어오면서 정착을 시도하는거야. 가축을 싣고. 가구를 갖고 오는겨. 여긴 아예 유럽사람들이 살려고 들어와. 종교전쟁이란 이념전쟁이 터졌어. 그걸 피해서 오는겨. 북미는 거대한 종교판이 되면서 벼라별 이념의 전장이 되면서리 이게 지금 미국을 만들어. 모든 이념놀이들이 다 벌어져 이때. 여기서 아주 뼈저리게 느끼는겨 개 이념놀이. 커뮤니즘이 극성이야. 너도 나도 민주. 우리가 주인. 다들 굶어죽어 얘들이. 공산주의 하면 이가 갈린게 이때야. 듣기엔 좋아. 현실은 인간들을 죽여. 굶겨죽이고 공론으로 감정에 서로들 죽이고. 인류의 모든 실험장이었어 저기가. 

 

미국은 음청난 나라야 그래서. 

 

저걸. 이제 21세기 대명천지에 조선민국이 하는거고. ㅋㅋㅋ 참 코메디도 이따위 코메딘 없어.

 

중남미의 스페인 포르투갈.은 이념전쟁이 없어. 본토가. 먹고 살려고 저길 들어가지 않아. 오직 금덩이 은덩이야. 이게 중남미가 지금 중남미가 된 이유야. 

 

저따위 이념놀이를 또한 하는겨 삼백년 후에 메스티조들의 나라들이. 체게바라. 참 듣긴 좋지. ㅋㅋㅋ.

 

베네수엘라.가 마두로가 잘못한게 아니라. 시작은 뒈진 차베스.야. 볼리바르 . 마두로 앤 여전히 적폐 놀이. 사람들은 콜럼비아로 탈출하고 먹을게 없어서리. 그러면서 미쿡 시아이에이 음모유. 미쿡 탓이유. 경제 좋은데 언론 선동이 문제유. 엘살바도르가 저렇고. 저 중남미 애들 하나하나 보면 다 끔찍하다 저거. 왜냐믄. 저긴 문명이 서기 1500년에야 시작이 된거걸랑. 생각이란걸 해본게 오백년된겨.

 

이 조선민국은. 1100년 생각좀 하다가. 조선건국 이래 칠백년째. 생각하면 죽음을 당하걸랑. 그래서 또한 저런 전철을 밟는거지. 

 

 

The East India Company (EIC), also known as the Honourable East India Company (HEIC) or the British East India Companyand informally as John Company,[1] was an English and later British joint-stock company

 

인도엔 동인도 컴퍼니.로 진출해. 조인트스탁 컴퍼니야. 

 

On 22 September 1599, a group of merchants met and stated their intention "to venture in the pretended voyage to the East Indies (the which it may please the Lord to prosper), and the sums that they will adventure", committing £30,133.[17][18] Two days later, "the Adventurers" reconvened and resolved to apply to the Queen for support of the project.[18] Although their first attempt had not been completely successful, they nonetheless sought the Queen's unofficial approval to continue. They bought ships for their venture and increased their capital to £68,373.

The Adventurers convened again a year later, on 31 December, and this time they succeeded

 

1599년에 상인들이 모여서리. 돈을 투자 약정하고. 차터를 요구해. 거절당해. 배를 구입하고 자본금을 두배로 늘려. 1600년 연말에 엘리자베스.가 차터.를 발행해줘.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의 시작이야.

 

포르투갈이 백년전에 바스코 다가마.가 가면서 인도 서남부 해변.에 자리잡고. 이 포르투갈은 인도의 해변들에 자기들 팩토리들을 만들어. 걍 거점만 잡아. 이건 컴퍼니가 아냐. 카자.야. 

 

잉글랜드의 동인도회사는. 인도 오른쪽의 벵갈만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아. 얘들도 장사하러 가는겨. 여기에 프랑스 네덜란드가 또 들어와. 이 잉글랜드는 여기서 유럽애들에 무굴애들과 전쟁을 하게되면서 왼쪽 갠지스강 상류로 넓히고 인도 동쪽으로 진입을 하면서 얘들은 땅을 넓혀.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Dutch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VOC) was an early megacorporation, founded by a government-directed amalgamation of several rival Dutch trading companies (the so-called voorcompagnieën or pre-companies) in the early 17th century.[9][10] It was originally established, on 20 March 1602, as a chartered company to trade with India and Indianized Southeast Asian countries when the Dutch government granted it a 21-year monopoly on the Dutch spice trade.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1602년 3월20일.이야. 80년 독립전쟁에서. 가운데 12년 휴전할때 차터를 발행해서 만든 회사야

 

The Twelve Years' Truce was the name given to the cessation of hostilities between the Habsburg rulers of Spain and the Southern Netherlands and the Dutch Republic as agreed in Antwerp on 9 April 1609 (coinciding with the Royal Decree of Expulsion of the Moriscos)

 

12년 휴전.이 1609년 부터야. 1568년 전쟁 시작하고. 40년 만에 휴전하고. 이게 연장되고 지나고나서리 독일 30년 전쟁과 같이 터지는게 나머지 30년이야.

 

네덜란드 가 독립 국가로 인정을 받은겨 저 안트베르펜.에서 스페인과 타국가들 입회하에. 네덜란드 이름으로 무역할 권리를 얻는거야. 이게 얘들 입장에선 제일 중요한거야. 

 

The Brabantsche Company was set up in 1599, by Jacques de VelaerIsaac le MaireHans HungerMarcus de Vogelaer and Gerard Reynst. In 1600, the Brabantsche Company merged with the Compagnie van Verre to form the Vereenigde Compagnie van Amsterdam. Finally this company and other companies in RotterdamWest Friesland and Zeeland merged into the VOC in 1602.

 

이전에 네덜란드는 몇개 컴퍼니들이 있었어. 이걸 모아서. VOC 라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만든거야. 얘들도 컴퍼니.로 하는거야 이제부터. 

 

 

The Danish East India Company[1] (DanishØstindisk Kompagni[2]) refers to two separate Danish chartered companies. The first company operated between 1616 and 1650. The second company existed between 1670 and 1729, however, in 1730 it was re-founded as the Asiatic Company (DanishAsiatisk Kompagni).

 

덴마크도 동인도 컴퍼니. 두개에 차터를 줘. 하나 없어지고. 다른 하나에 준거지. 

 

The French East India Company (FrenchCompagnie française pour le commerce des Indes orientales) was a commercial Imperial enterprise, founded in 1664 to compete with the English (later British) and Dutch East India companies in the East Indies.

 

프랑스 동인도 컴퍼니. 이들이 가장 늦어. 하튼 프랑스는 언젠가 부터 애들이 또라이 망상주의자가 되었는데. 이따위애들의 극치가 육팔 혁명 하는겨. 나치청산때 여자들 거리돌림시키고. 참 들이 되었는데 얘들이. 헌데 이딴 애들을 바라보는 애들이 참 무시칸건데 말야. 무지해서 그래 그건. 

 

저들은 저 인도에서 다 같이 있었어. 걍 팩토리들 두고 장사들 하는겨. 

 

인도를 영국이 식민지배 했다 할때도. 그게 인도땅 전부를 다 먹은게 아냐. 해변은 재들 유럽이 걍 무역 팩토리들이 있는거고. 내륙은 무굴애들과 무굴 다음 인도애들 서로들 싸우고. 인도는 저러다가 뉴델리에 오른쪽 해변부터 자리잡더니 어느순간 컴퍼니가 직접 권력을 잡게 된건데.

 

무굴이 왜 망했을까. 이견이 많다. 라는건 인도들 주장이야.

 

지금 카스트 제도 신분차별이. 이 인도들은 영국 식민지 때 만들어졌다는거야. 골때리는겨 저게. 영국이 정작 인도땅 과반 지배한게 백년도 안돼. 제일 늦게 온 애들이 뭔 전부를 다 지배해서리 삼백년 지배한냥. 팩트로 디비보믄 전혀 달라 이야기가. 모든건 영국애들 탓이야. 무굴은 위대했어. 카스트 따위 영국애들이 맹근겨

 

저런 사관이 말이지. 후진 들의 아주 공통된 교집합이야

 

 

똑같이 서인도제도.를 대상으로한 서인도회사가 덴마크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이 있어. 잉글랜드도 제목은 보이는데 잘 안보여. 있었어도 별로 실적이 없었나봐. 
 
컴퍼니들의 시대가 되었어. 

 

 

A View of Chinsura the Dutch Settlement in Bengal (1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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