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astronomy, axial tilt, also known as obliquity, is the angle between an object's rotational axis and its orbital axis, or, equivalently, the angle between its equatorial plane and orbital plane.[1] It differs from orbital inclination.
At an obliquity of 0 degrees, the two axes point in the same direction; i.e., the rotational axis is perpendicular to the orbital plane. Earth's obliquity oscillates between 22.1 and 24.5 degrees[2] on a 41,000-year cycle; Earth's mean obliquity is currently 23°26′12.6″ (or 23.43684°) and decreasing.
축이 기운걸 틸트. 오블리퀴티. 하는데. 지구 자전축이 지금은 23도 정도라는거고 저기서 왔다리 갔다리 하고.
나침반의 북이 가리키는 곳이 기울어진 축의 북.이 잖아. 이건 자기장의 북.이지 진짜 북은 아니걸랑.
The geomagnetic poles are antipodal points where the axis of a best-fitting dipole intersects the surface of Earth. This theoretical dipole is equivalent to a powerful bar magnet at the center of Earth and comes closer than any other model to accounting for the magnetic field observed at Earth's surface. In contrast, the magnetic poles of the actual Earth are not antipodal; that is, the line on which they lie does not pass through Earth's center.
자기장 나침반의 북을 마그네틱 노쓰. 지리상의 북.이 진짜 북.이라 이걸 진북. 하는데 투르 노쓰. 이걸 정식으론 지오그래픽 노쓰. 지리적인 북.이란 거지. 이 두점의 거리가 저 자전축이 기운 각도의 거리인데 저 거리 차이가 천여키로 된대.
진북은 둥근 공의 정 가운데야. 저건 고정이냐. 지금 북극해 바다래. 점을 찍을 수 있는거지. 빙하라 정확한 지점이 바뀌니까 연단위로 러시아에서 북극점을 찍어. 곧 이 빙하도 물이 될 수도 있대.
북극점 가는건 이 지리적인 진북.이고.
헌데 나침반 북.은 바뀌어. 자북.이라 하면. 자북 위에서 나침반을 대면 자침이 수직으로 선다는거지. 직각으로 자기장이 드나드는 곳이니까. 헌데 이 자북.과 자남.을 의 위치가 정반대가 아니래. 즉 저 두개를 관통하는 축을 뚫으면 지구 중심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거지. 이걸로는 축을 못만들어 지구중심을 통과하는.
해서 만든 개념이. 지오마그네틱 폴.이야. 이걸 지자극 축. 지리와 자기장을 합한 말인데. 이건 가상의 축이야. 이 축을 중심으로 자기장축의 이동상황을 봐. 화석의 흔적을 보니까 자북 자남이 이동하고. 이게 자북 자남이 바뀐대. 이때 지구 생명 멸종과 관련 있다 기후변화 관련있다 하는거고. 자기장이 제대로 방패가 안되고 깨지면서 다시 자리를 잡는겨.
하튼 지리적 북 진북. 자기장 자북. 지자기북. 이란게 있어. 그리고 공을 평면도로 구현하면서 그 오차로 생기는 북을 지도북 도북이라해. 하튼 이런게 있어 이 멍충이덜아.
.
Portuguese battles in the Indian OceanCannanore (1501) Calicut (1502) Pandarane (1504) Cochin (1504) Cannanore (1506) Anjadiva (1506) Persian–Portugal war (1507–1622) Ormuz (1507) Cannanore (1507) Chaul (1508) Dabul (1508) Diu (1509) Goa (1510) Malacca (1511) Aden (1513) Calicut (1526) Diu (1531) Diu (1538) Suez Expedition (1541) Diu (1546) Aden (1548) Hormuz campaign Muscat Strait of Hormuz Gulf of Oman Bahrain Malacca (1568) Aceh (1569) Malacca (1606) Cape Rachado (1606) Swally (1612) Ceylon (1612–13) Ormuz (1622) Action of 1 February (1625) River Duyon (1629) Goa (1638) Mombasa (1696–98) Calicut (1752)
이 포르투갈이 처음 전투하는게 칸누르. 캘리컷. 하는데.
Samoothiri of Kozhikode (anglicised as Zamorin of Calicut; Portuguese: Samorim, Dutch: Samorijn, Chinese: Shamitihsi[2]) is the hereditary title of the Hindu monarch of the kingdom of Kozhikode on Malabar Coast, India. The Samoothiris were based at the city of Kozhikode, one of the important trading ports on the south-western coast of India. At the peak of their reign, the Samoothiri's ruled over a region from Kollam (Quilon) to Panthalayini Kollam (Koyilandy)
코지코드의 사무티리. 캘리컷의 자모린. 코지코드(캘리컷)가 1498년도에 바스코 다가마.가 도착한 첫 인도땅이야. 지금 케랄라 주. 인도 서남단 해변이야. 여기의 킹덤이 코지코드. 캘키컷 한거지.
인도가 저당시.는 델리술탄 이고 서기 1500년 지나면서 무굴제국.이 선다지만. 이미 델리술탄은 3백년 전에 서고 바로 자잘하게 쪼개진겨. 이걸 무굴제국이 통일을 하는거야. 이 무굴이 포르투갈이 오고나서 통일을 한거야.
베다 문명이 기원전 1500년에 들어서. 왼쪽 파키스탄 하라판 애들이 온건지. 하튼 인도유러피안이 들어오면서 갠지스강 평행하게 흐르는 북쪽에서 부터 아래로 잠식을 하는겨. 초기 배다 후기 베다 나눠. 이게 천년. 이건 마하바라타 이야기이지 전설이야 이건. 그러다가 기원전 500년 부터 마하 자나파다스. 국가시작들. 로 역사로 볼까 말까하는겨. 싯달타의 아함경으로 겐또를 치는거야. 인도 역사의 시작은 웃기게도 고타마 싯달타야. 얘들이 글을 안남기걸랑. 싯달타 이야기를 글로 남기면서 이게 역사로 들어온겨. 그리고 저리 다이너스티.를 구분하지만. 저들이 전체를 지배한게 아니야. 큼지막한거만 쓴겨. 기원직후에 위 스텝의 월지족 위에지들이 한나라에 쫓겨서리 내려와서 쿠샨왕조를 2백년 해. 그나마 얘들이 제일 크게 한겨. 그리고 자잘하게 다이너스트들이 인도빠닥에 들어서고. 천년 후인 델리술탄 때에야 좀 통일이 된거야 이게. 그리곤 또 백년 지나서 자잘하게 쪼개진겨. 이 중에 저 서남단에 코지코드 킹덤이 해변에 있었던거야. c. 1124 AD–1806 AD 7백년 있다가 뒤의 영국 지배하에 가는겨.
포르투갈이 얘들 땅에 들어간겨. 여긴 이슬람이 아냐. 힌두교야. 사무티리. 자모린. 은 얘들 킹.의 다른말이야.
1498년에 바스코 다가마.가 첫 도착해서리. 상대는 서남단 해변. 말라바 해변 킹덤인 코지코드야. 앞으론 여기에 팩토리.라는 거주지와 감독자 팩토르. 를 두는겨.
"Factory" (from Latin facere, meaning "to do"; Portuguese: feitoria, Dutch: factorij, French: factorerie, comptoir) was the common name during the medieval and early modern eras for an entrepôt – which was essentially an early form of free-trade zone or transshipment point. At a factory, local inhabitants could interact with foreign merchants, often known as factors.[1] First established in Europe, factories eventually spread to many other parts of the world.
팩토리. 라는 공장. 이 뜬금없이 티나온게 아니라. 고대때 부터 있던겨 이게. 라틴어 파케레. 낯익지 않냐. 폰티펙스. 교황할때 퐁 이라는 다리를 파케레. 짓는다 했잖냐. 만드는겨 하는거고. 뭔가를 하는 곳이 팩토리. 이고. 여기의 사람이 팩토르. factor 야.
An entrepôt (English: /ˈɑːntrəpoʊ/
French:
[ɑ̃tʁəpo]) or transshipment port is a port, city, or trading post where merchandise may be imported, stored or traded, usually to be exported again.
앙트허포. 를 파케레.에서 팩토리. 에 팩토르 하면서 포르투갈이 심은거야 저때. 이전엔 앙트허포 라고 창고를 이른 말이야 무역할때. 유통업자가 오면. 그동안 매입해서 쌓놓고 팔거나 주는거야. 한자동맹애들은 콘토르. 하기도 하고. 당근 해변에 많이 있는겨.
Origin
Early 18th century: French, from entreposer ‘to store’, from entre ‘among’ + poser ‘to place’.
저 앙트허포. 는 지금 항구니 도시니 하지만. 시작은 물류창고야 warehouse 창고야 창고. 해변에 있는. 팩토리. 가 똑같아. 다음 배들이 오기전까지 팩토르 들이 물건 사 모아서리. 쌓아놓는 창고나 지역이야.
enterprise
Origin
Late Middle English: from Old French, ‘something undertaken’, feminine past participle (used as a noun) of entreprendre, based on Latin prendere, prehendere ‘to take’.
기업가 정신의. 엔트러프러누어. entrepreneur 기업가.
Origin
Early 19th century (denoting the director of a musical institution): from French, from entreprendre ‘undertake’ (see enterprise).
기업. 기업가.는 뭔가를 시도하는거야. 대상이. 하기 어려운걸 하는거야. 이게 엔터프라이즈. 하는 상인이야 이게. 저걸 라틴어에서 갖고 온 불어 라고 하지만. 앙트허포.나 엔터프라이즈. 엔트러프러누어.의 엔터. 앙트. 가 가운데 쑤시고 들어가서 멀 하거나 쌓는거야.
세상은 저들이 만드는겨. 정치는 저들을 건드리면 안되고. 윤리 도덕이란건 더 갓.이라는 추상명사로 함양이 될 뿐인겨. 재들의 모럴. 이라는 윤리는 저 수많은 앙트허포. 팩토리. 엔터프라이즈. 를 하는 엔트러프러누어. 속에서 수천년 부딪히면서 쌓여온 거야 저게. 그따위 도덕 윤리는 공자님 몇글자 로 되는게 아냐 . 윤리라는건 인간문명사의 체득의 과정일 뿐이야. 아무런 경험없이 공론 공상 질 하는 망상의 언어로 인간들 가르침 하는건 미개.한 원시인만 육성할 뿐이야 이게. 이걸 또한 일본들이 메이지유신할때 외국인들을 보고 깨우쳐.
똑같은 질문을 하는거야 당시도. 쟤들은 어찌 저런 문명을 만들었나. 아 가만보니 쌍놈들도 아냐. 나름 에티켓이라는게 있어. 가만 비교해보니 자기들 민들 수준을 봐. 옷 입는거 하며 행동양식하며. 청나라와 조선은 거리빠닥에서 똥을 싸대고 똥개가 그걸 먹는다지만 북경과 한양거리에. 일본들은 똥은 안싸걸랑 그래도. 헌데 얘들이 기겁한게 길바닥에 오줌싸는겨. 조대라기 꺼내놓고 덜렁덜렁 대는게 아무런 창피함이 아냐. 오히려 지 큰걸 자랑하는겨. 해서 길가다가 큰 조의 인간이 오줌싸는걸 보믄 오 오늘 운수가 좋을래나
가만 보니 인간 윤리라는게. 지들 에도 시대 삼백년 유교를 찐하게 습득했다지만. 비교해보니 미개한거야. 저들은 어떻게 저런 모럴을 갖췄나? 그 질문을 하고 답을 해 쟤들은.
우리네는 저딴 짓들이 전혀 없이. 저딴 반성과 분석이 없이. 여전히 21세기에도 조선 오백년전과 또옥 같이 반미 반일 만 하고 앉았으니. 반일 팔이 하면 지지율 오르니 활용하고. 공작 정치 어쩌고 . 지들은 더해 더.
바스코 다가마.가 처음에 돌아갈때 스파이스 매입하고 남는 장사를 해. 그리고 뒤에 팩토리 팩토르 를 두고 가는거야. 이사람들이 코지코드(캘리컷) 킹덤의 허가하에 세금 내기로 하고. 다음 아르마다 오기전까지 재어놓는겨 물건 사면서.
The Second Portuguese India Armada was assembled in 1500 on the order of King Manuel I of Portugal and placed under the command of Pedro Álvares Cabral. Cabral's armada famously discovered Brazil for the Portuguese crown along the way. By and large, the 2nd Armada's diplomatic mission to India failed, and provoked the opening of hostilities between the Kingdom of Portugal and the feudal city-state of Calicut, ruled by Zamorins. Nonetheless, it managed to establish a factory in the nearby Kingdom of Cochin, the first Portuguese factory in Asia.
두번째.가 페드로 알바리스 카브랄. 이 브라질 찾고. 오면서. 자기들의 팩토리.에서 팩토르 주관하에 물건을 매입을 하는겨. 아직은 여기에 거버너에 자치구를 두지 않은 상태야. 한번 갔다가 다시 오고.
여긴 아랍애들 상권이걸랑. 아랍들이 무슬림들이 이때부터가 끝의 시작이야. 이 무슬림문명이. 포르투갈이 희망곶을 넘어오면서 얘들이 끝난겨. 그 편한 시절이. 이 무슬림 들은 지들 역사를 정말 피터지게 반성해야해 이건. 양키 탓 개 하기전에. 하튼 개 못난 개 들이 남 탓 하는겨. 그걸 사람들에게 또한 뿌리고. 이따위 들의 공통 모토가 민족. 이야. 지들 민족. 민족주의. 여기에 이념이 더해져. 민주 평등 정의. 이건 공식이야 공식.
아랍상인들이. 이 말라바 해변인 코지코드 는 힌두교지만. 오래전부터 아랍애들의 무대야 여긴. 얘들은 아라비아 남단이나 홍해 들어간 헤자즈 지역인 메카 메디나에서 오가며 무역한거야 지들 독점으로.
얘들이 부들부들 한거야. 포르투갈애들 나가라. 완전 깽판을 놓는겨.
헌데 저 킹덤의 킹. 자모린. 이란 자리의 군주는. 니덜이 알아서 해라. 간섭을 않겠다는겨.
이 아랍상인애들이. 기습을 해서리. 저 팩토리.에 거주하던 포르투갈인들과 거주민들을 학살을 하는거야.
.이 아랍상인들이 그래서 부자가 많았던겨 저때 오일 나오기전에.
저긴 스파이스 인센스가 흔한 땅이야. 가격이 싼거야 그래서. 금과 은 쪼금난 주면 노다지를 갖고 오는겨. 저걸 지중해 해변. 알렉산드리아라는 이집트 해변과 북아프리카 해변에서 폭리로 팔아온겨 저걸.
바스코 다가마.가 그래서 첫 원정길에 배 그득하게 실어모면서 남는 장사를 했다는 거야.
아랍애들이. 그동안 놀고먹던 천년 시절이 끝난거야.
September 13, 1500 – Sailing down the Indian coast, Cabral's expedition finally reaches at Calicut (Calecute, Kozhikode, the capital of the Nair Hindu kingdom of same name ruled by Zamorins, or Nediyuiruppu Swarupam).
카브랄.의 2차 아르마다.가 인도 캘리컷.에 도착한게 1500년 9월 13일.
December, 1500 – After two months of operation, factor Aires Correia has only been able to buy enough spices to load two of the ships. He complains to Cabral his suspicions that the guild of Arab merchants in Calicut have been colluding to shut out Portuguese purchasing agents from the city's spice markets which is not unlikely. Arab traders had reportedly used similar collusive tactics to drive out Chinese merchants earlier in the 15th century from various ports on the Malabar Coast. It would make sense if they tried doing so again—particularly as the Portuguese had arrived trumpeting their hatred of 'the Moors' and demanding trading privileges and preferences, a clear danger to their own trade.
Historians cite murkier elements to this, in particular, that the Portuguese traders might have been unwitting counters in on-going quarrels between competing older and newer Arab merchant guilds in Calicut and or used as pawns in the personal power struggles among the Zamorin's leading advisors, etc. There were certainly more dimensions to this affair, the full details of which will likely never be clearly known.
도착하자마사 두달 만에. 팩토르 이리스 코헤이야.는 두 배를 채울만큼 스파이스를 충분히 매입했다. 그는 카브랄 제독에게 불만을 제기한다. 아랍 상인들 캘리컷에 있는. 이들이 포르투갈의 바이어들이 그 도시의 스파이스 시장들 진입을 막으려 한다고 공모한다는 것이다. 그럴 것 같은 분위기다. 아랍 상인들이 이미 이전 백년 전에도 중국상인들을 그런식으로 말라바 해변에서 내몰았다고 알려졌다.
아랍애들에겐 이건 생존문제야 이제. 헌데 저 킹덤이 4백년 되었어. 아랍애들이 저들 귀족들과 끈끈한건 당근이고. 아랍애들이 보기엔. 저 포르투갈애들이 분명 무어족들 증오한다면서 무역우선권도 요구할거다. 이건 우리에게 치명타다. 공모할 수 밖에 없는거지.
Cabral presents the complaint to the Zamorin, and requests that he crack down on the Arab merchant guild or enforce Portuguese priority in the spice markets. But the Zamorin refuses to intervene in the matter—or rather makes only some vague promises, but disdains to get actively involved in the matter, as Cabral demands.
카브랄.이 킹에게 그런 분위기를 전해. 킹한테 아랍상인들을 단속해 달라 포르투갈 거래우선권을 강화해 달라고 요구해 킹이 거절해 그 문제에 끼어드는걸. 모호한 약속만 하다.
포트투갈은 레콩퀴스타 7백년 하면서 무어족이랑 웬수야. 아랍족이나 무어족이나 같이 보여. 둘이 웬수 지간일 수 밖에 없어. 전쟁은 예견된겨.
December 17, 1500 – Frustrated by the Zamorin's inaction, Cabral decides to take matters into his own hands. On the advice of Aires Correia, Cabral orders the seizure of an Arab merchant ship from Jeddah, then loading up with spices in Calicut harbor, claiming that as the Zamorin had promised the Portuguese priority in the spice markets, the cargo is rightfully theirs. Incensed, the Arab merchants around the quay immediately raise a riot in Calicut and direct mobs to attack the Portuguese factory. The Portuguese ships, anchored out in the harbor and unable to approach the docks, helplessly watch the unfolding massacre. After three hours of fighting, some 53 (some say 70) Portuguese are slaughtered by the mobs—including the factor Aires Correia, the secretary Pêro Vaz de Caminha, and three (some say five) of the Franciscan friars. Around twenty Portuguese then in the city manage to escape the riot by jumping into the harbor waters and swimming to the ships. The survivors report to Cabral that the Zamorin's own Hindu guards were seen either standing aside or actively helping the rioters.
At least one Portuguese, a man called Gonçalo Peixoto, survived the massacre, sheltered from the mob by a local merchant (whom the chronicles call "Coja Bequij"). In the aftermath, the wares in the Portuguese factory are impounded by the Calicut authorities.
킹의 뜨뜻미지근함에 열받았어 카브랄이. 자기 스스로 해결하기로해. 홍해만 깊숙히 제다에서 온 아랍상인 배를 나포해. 이배는 이미 캘리컷항에 있는겨 스파이스 가득 실은체. 카브랄이. 킹은 포르투갈 우선권을 줬다 하며 지가 뺏은겨. 아랍애들이 열받아서리 포르투갈 팩토리를 치는거야. 포르투갈 배들은 저길 진입을 못해. 세시간 싸움에 53명에서 70명의 포르투갈인들이 죽어. 팩토르도 죽고 비서도 죽어. 프란시스코 수도사 세명에서 다섯이 죽어. 20여명의 포르투갈인들만 겨우 탈출해서 바다에 뛰어들어 배에 타. 생존자들이 보고하다 카브랄에게. 킹이라는 자모린.의 힌두교 경호원들이 옆에서 보고 있거나 적극적으로 도왔다 폭동을. 포르투갈 팩토리에 있던 상품들은 캘리컷 당국이 압수를 해.
December 18–22, 1500 – Incensed at the attack on the factory, Cabral waits one day for redress by the Zamorin. When this is not forthcoming, Cabral takes his revenge. The Portuguese seize around ten Arab merchant ships then in harbor, confiscating their cargoes, killing their crews, and burning their ships. Then, accusing the Zamorin of sanctioning the riot, Cabral orders a full day shore bombardment of Calicut, doing immense damage to the unfortified city (estimates of Calicut casualties reach up to 600). Cabral proceeds to also bomb the nearby Zamorin-owned port of Pandarane (Pantalayani Kollam, near present-day Koyilandy) as well.[21]
Thus opened the war between the Kingdom of Portugal and the Zamorin of Calicut. The war will drag on for the next decade. Future Portuguese India Armadas have to contend with this conflict, it will dictate Portuguese strategy in the Indian Ocean and draw in other participants. The conflict will also overturn the political order on the Malabar Coast of India, and shape a different future for Kerala.
카브랄이 킹이란 자모린.에게 해결하라 하루를 기다려. 없어. 아랍 배들 열척을 약탈하고 죽이고 배를 태워. 그리곤 캘리컷에 대고 해변에서 대포를 쏘고 가는겨. 전쟁의 시작이야 이게.
이러면서 앞으로 십여년을 전쟁하는겨 이후의 아르마다들이. 이러면서. 홍해와 걸프만에 이란남부해변들의 무슬림들이랑 전쟁 하는겨. 저건 상권의 전쟁이야. 또한 포르투갈 입장에선 7백년 레콩퀴스타의 연장선이야 저게. 홍해는 오스만 관할이야. 오스만하고도 저기서 해전을 해야해.
참 바쁘게들 사는거지.
카브랄은 캘리컷 킹덤 아래.에
Kingdom of Cochin (also known as Perumpadappu Swaroopam, Mada-rajyam, or Kuru Swaroopam; Kocci or Perumpaṭappu) was a late medieval Hindu kingdom and later princely state on the Malabar Coast, South India. Once controlling much of the territory between Ponnani and Thottappally
코친 킹덤. 6th century AD–1949 얘들이 코지코드 킹덤 해변의 바로 아래.에 킹덤이야. 같은 서남단 끄트머리. 저때까진 1천년 된 킹덤이야. 힌두야. 코지키드 오기전엔 다 얘들 땅이었다가 쫓겨나서리 해변에 짝게 도시국가 수준 있는겨. 얘들에겐 바로 위 코지키드 킹덤이 웬수야. 여기 코치. 고치.에 팩토리를 두면서 이 킹덤이랑 연합 맺고 2차 아르마다.를 마무리 해.
13 ships, 1500 men
카브랄.의 2차 아르마다때 13척의 1500명이 갔어.
Diogo Dias, also known as Diogo Gomes, was a 15th-century Portuguese explorer. He was the brother of Bartolomeu Dias and discovered some of the Cape Verde islands together with António Noli.
지오고 지아스. 이사람이 마다가스카르 섬을 처음 본 사람이야. 모잠비크 맞은편 큰 섬. 카브랄.이랑 같이 브라질도 닿은 인간이야 인도가는길에. 13개 배의 한 선장이야. 브라질 찍고 희망곶 지나다가 앞배들을 놓친겨 풍랑때메. 다른 배들 찾다가 홍해까지 들어가. 벼라별 일 다 겪고. 인도도 못가고 걍 빠꾸해. 리스본 왔을때 남은 사람이 6명이야. 백여명이 다 죽은겨.
저 탐험의 시대.의 이야기는 이야기들이 조오오온나게 많아 저게. 뻥쟁이 핀토.이야긴 극히 일부고. 저건 또한 죽음의 항해길이야. 그래도 죽어라 가는겨 저길.
마다가스카르.는 지오고 지아스 이후 칠팔년 후에나 만져. 이 사이 해협인 모잠비크 해협이 길이 위험해. 특히나 올때는. 해서 항로를 다음엔 해협을 안타고 마다가스카르를 우회를 하게 돼. 그리고 역시나 남쪽 아프리카 동부 해변 모잠비크 케냐 등에도 팩토르를 두는겨.
João da Nova (Galician spelling Xoán de Novoa or Joam de Nôvoa, Spanish spelling Juan de Nova;
Portuguese pronunciation:
[ʒuˈɐ̃w̃ dɐ ˈnɔvɐ]; born c. 1460 in Maceda, Ourense, Galicia; died July 16, 1509 in Kochi, India) was a Galician explorer of the Atlantic and Indian Oceans at the service of Portugal. He is credited as the discoverer of Ascension and Saint Helena islands.
3차 아르마다. 의 제독이랄까 대빵은 주앙 다 노바. 이사람은 갈리시아 귀족이야. 갈리시아 내분날때 애비가 아이를 포르투갈에 보낸거야. 얘들은 위 갈리시아 하고 또한 전쟁 했걸랑. 그래도. 이 사람을 총 제독을 시키는겨. 이게 연일 일본에 부들부들 대는 이상한 기괴한 들관 차원이 다른겨 쟤들이.
이 3차때 나폴레옹이 갇혀 죽은 섬인 세인트 헬레나.섬을 주앙 다 노바.이름하에 찾는거야. 그 위 어센션 섬. 천키로 떨어져있어. 이 두섬은 지금 영국꺼야.
The First Battle of Cannanore was a naval engagement between the Third Portuguese Armada under João da Novaand the naval forces of Calicut, which had been assembled by the Zamorin against the Portuguese in order to prevent their return to Portugal.
The battle was fought over two days, between 31 December 1501 and 2 January 1502, and was the first major Portuguese naval engagement in the Indian Ocean. Although badly outnumbered, da Nova's bold tactics, better trained and prepared men and superior weaponry proved decisive for the Portuguese to defeat the blocking force of Calicut, break out of Cannanore, and emerge victorious from the battle.
이전 캘러킷에서 서로 일방적으로 죽고 죽이고 해변에서 대포질 하고 . 이젠 본격적으로 싸우는겨 다음타자부터.
칸누어 전투. 1501년에서 다음해 2월.
This modest armada carried 350-400 men, only 80 of which were armed.
이때 총 인원이 400명 안쪽이야. 배가 네대.는 선장들을 아는데. 다섯째 배는 잘 몰라. 걍 보급선인듯.
캘리컷의 코지키드 킹덤이 만반의 준비를 했을꺼 아닌가. 일방 폭격 맞고. 저때 얘들 배가 220 플러스 알파. 인원 7000명. 이건 2십대 1이냐 오십대 1이냐 백대 일이냐. 물론 배들 수준이 차원이 나겄지. 또한 대포 차이에. 저긴 문명이 아냐 저 인도는. 킹덤이 그아래 코친 은 1500년 킹덤이야. 달리 말해서. 쎈 가 공안왕조 하면서 편하게 지내면서 원시 문명을 저리 사는겨 천오백년을.
조선은 가만히 뒀으면 일이만년을 갔을꺼야. 하기사 지금도 조선을 그리워하니. 참 인간이란 미개한겨 정말. 헌데 지들이 민주적 정의적 진보적 인간이래 ㅋㅋㅋ. 코메디야 진짜.
The naval Battle of Calicut was a military encounter between the 16 ships (10 carracks and six caravels) of the 4th Portuguese Armada and a fleet led by two Arabic corsairs formed under the orders of the Zamorin of Calicut.
캘리컷 해전. 두번째 전투야. 4번째 아르마다. 바스코 다가마.가 첫번하고 다시온겨. 이땐 캘리컷 킹이 고용한 아랍애들 코세어. 아랍애들 해적 용병이야. 이것도 숫자 불리한걸 걍 이겨 바스코가.
The Battle of Pandarane was a naval engagement between the Portuguese forces commanded by Lopo Soares de Albergaria, a famous Portuguese commander, and a large fleet of then Mamluk Sultan. The Portuguese were victorious
세번째 전투가 판다라네 전투. 로포 소아리스 알베가리아. 6번째 아르마다. 이땐 맘룩 술탄이야. 코지코드 위 해변. 델리술탄 쪼개진 무슬림 애야 얜. 이전 캘리컷 힌두가 안돼 고용한 아랍용병해적들 안돼. 본토의 무슬림 술탄이 해보는겨. 다 십대 일이야 인원규모가. 안돼 그래도. 이미 문명은. 천년동안 뒤집어진거야. 중세 천년동안 로마를 배우면서 숱하게 싸우면서 무슬림애들과 얘들은 칠백년 레콩퀴스타에 피레네 산맥 너머의 서유럽 애들이랑도 섞인 문명의 힘으로 온거야 여길. 그 천년동안 이 동양들은 배뚜드리며 민들 부려먹으면서 놀고 처먹기만 한거야. 그러면서 위민 정치 대고.
인류 문명사는 저때인 서기 1500년에. 확실히 보여주는겨. 이게 지금까지의 역사고 앞으로도의 역사야 이게.
저기서 짜진 들이 자기 반성들 없이. 그 쪽팔림을 가정에서 푸는게 중남미의 여성 살해야. 저건 끔찍한겨. 이런 같은 프레임이 이땅바닥 주제야 이게. 그래서 여성부란 우낀 것도 나오고. 원인분석이 개가트니까 투비가 유치찰란하신겨. 이 여자들이 선비질을 해 ㅋㅋㅋ. 조선의 선비가. 남자에서 여자로 바뀐거야 여성 인권 하면서. 코메디도 이따위 코메디가 없어. 이 바닥의 사유는 토지 와 혼불 이야.
이땅바닥 여자들이 저 중남미 이상으로 당한거걸랑 저 선비들때문에. 그 이음이야 여자한테 차였다고 스토킹하고 심심하믄 찔러죽이고. 저건 말야. 조선의 이음이야 저게. 끔찍한거야 이 조선은. 헌데 저런걸 다 일본때의 적폐가 이유래. 군부독재 산물이고. 너무한거야 진짜. 저러면서 조선의 선비를 여자가 해야하는거야. 그럼 해결이 될거란 거지. 신사임당을 모셔.
짜진 애들은 저 당시의 권력이걸랑. 민들은 더 살기 좋았다 오히려. 하면. 칼 맞아. 예전에 구십노인이 말야. 일제시대가 살기좋았오 했다가 뚜드려 맞아죽었어. 이게 이십년전인가. 하기사 누구는 정의봉 던지면서 사람 죽여도 . 걍 패 죽여. 헌데 삼년 받았나? 헌데 또한 가석방으로 나완나 할껄.
걍 민족의 이름으로. 지들 이념에 맘 안들면 가서 줘 패 죽여도. 일이년 살면 돼. ㅋㅋㅋ.
이건 문명이 아냐 이건.
저때 짜진애들이. 민족의 이름으로 뭉쳐. 이건 공통분모야 슬라브 투르크 아랍 페르시안 중남미. 아주 똑같아. 여기에 민들이 주인 하는 이념. 아주 똑같아 이게.
쟤들보다 더 나갈려면. 쟤들 이야기를 다 담고 거기서 먼가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것 외엔 없어.
Dejima island in Nagasaki Bay, first Portuguese and then Dutch factory
나가사키의 데지마 팩토리.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 팩토리로.
'세계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사105. 나르바에스 탐험대. 코로나도 & 데소토 (0) | 2018.11.28 |
---|---|
유럽사104. 엔코미엔다. 뉴스페인. 바이스로열티 (0) | 2018.11.27 |
유럽사102. 카자의 실패. 사그리스 학파. 사비에르 (0) | 2018.11.24 |
유럽사101. 토르데시야스. 사라고사 조약 (0) | 2018.11.23 |
유럽사100. 북미 탐험 ft. 알베르토 칸티노. 파드론 레알 (0) | 2018.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