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우타 1415. 가 시작이야

 

카보베르데 1455. 

 

아프리카 남단 희망곶. 바르톨로뮤 디아스(지아스) 1488

 

바스코 다 가마 149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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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1492 1493 1498 1502. 스페인. 제노바인

 

존 캐벗 1497 뉴펀드랜드. 헨리 7세. 나폴리인

 

주앙 레브라도 1499 래브라도 와 뉴펀드랜드. 포르투갈. 

 

가스파르 형제 1501 래브라도 와 뉴펀드랜드. 포르투갈.

 

페드로 카브랄 1500 브라질. 포르투갈

 

지오반니 베라짜노 1524 미동부해안. 프랑수아1세. 피렌체인.

 

자크 카티예 1535 퀘벡. 프랑수아1세. 브리타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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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보는 포르투갈에서 모아서 시작한거야. 엔리케의 형 페드로가 유럽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모아서 주고. 이때도 베네치아와 로마를 가서 지도를 받걸랑. 얘들은 서로 정보를 주는거야. 그깟 지도가 머라고. 서로 여행다닌거 정보 교류 하는겨. 책으로 내서리 돈버는 구조야. 하나라도 듣고 보고 생각난건 써야해. 팔면 돈이야.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1450년이야. 독일땅 전역에 인쇄소가 3천개니 해 저때부터. 베네치아가 인쇄소의 중심이야 또한. 

 

헌데 포르투갈이 인도를 가서리 그린 지도.는 이건 국가 기밀이야. 저길은 자기들만 알아야해. 그 지도가 훔친이름 따서 알베르토 칸티노.야 1502년. 이건 음청난 사건이야. 포르투갈은 땅을 치고. 그 외 세계는 기쁨의 탄성이야. 너도 나도 가는겨. 이걸 업데이트 한게 여러 지도학자들 모여서 만든 스페인의 파드론 헤알. 지도야. 당근 일급 국가 기밀일 수 밖에 없어. 저걸 위해 들인 돈이 얼마냐. 남들은 알면 안돼 이건. 

 

 

헌데 말야. 포르투갈이 1317년 해군 제독이 제노바 선원이야. 카보베르데.를 발견한 이는 제노바와 베네치아 사람이야. 콜럼버스는 제노바 사람이 포르투갈에 8년 살면서 모든 정보 다 보고 아프리카 가나도 다녀와.  마젤란.은 포르투갈 사람이지만 스페인 돈으로 간거야. 저 항해의 선단에 사람들이 타국인들이 버글버글 한거야. 저게 단지 지도 한장.으로 정보가 독점이 될 수가 없어. 다 알게 되는겨 또한. 

 

 

 

저게 저 유럽애들의 힘이야. 서로 섞인겨 자유롭게. 그깟 해안선 측량이 먼 국가 기밀이냐 그게.

 

 

나중에 쟤들이 일본가서도 처음 하는 짓들은 해안선 측량이야. 그게 먼 대단한 일이냐. 일본들도. 저것들 머하냐 하민서 어여 어여 사카이 오사카 들어와라. 스페인 포르투갈 잉글랜드 네덜란드 배들이 드글드글 한겨. 수백척의 배들이 저 항구에 있어 기록에. 

 

 

나중에 강화도 조약 어쩌고. 테레비에서 구한말 할때 함 보니. 사오분. 오잉 일본인들이 우리네 해안선을 측량하는겁니다!! 우리네 신뢰 믿음의 대신들과 회담할때도 모~~올래 따로 비밀 지령이 떨어집니다! 러시아 가 뒤에서 일본을 몰래 서신교환하면서 비밀지침 조언을 받습니다!  우리네 의리와 믿음과 순박과 정의로 뭉친 조선이 저들 악마 들에게 당할 수 밖에 없는거죵

 

 

ㅋㅋㅋ. 저따위 이야기를. 세상에 말이지. 역사학 전문가랍시고 하는 애들의 주뎅이에서 저따위 말을 하면서 방송하는겨 황금시간대에. 저때는 또 갑자기 음향 두둥. 화면 전환. 비밀 지령 내린 사람. 하면서. 이럴수가! 

 

 

참 이땅바닥의 저 지식층 애들은 정말 야 .

 

 

 

쟤들 바닥엔 조선의 그 유교 윤리가 어설프게 자리잡은거야 저게. 한심한겨 저게. 저게 고대로 이어저서리 반일이란 정체성에 반미 에 민주 정의 이념 놀이로 이어진거야 저게. 저따위 감정의 이야기가 고대로 똑같이 북조선애들과 중국이 애들이 몰릴때 반일 반미로 대동단결 하는거걸랑. 아 끔찍한거야

 

 

유럽 이야기에는 저따위 개이 없어.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를 네번가면서. 이들이 점점 그 위와 아래로 가는거야. 이제부턴 타임라인이 의미가 없어. 걍 수시로 덤비는겨. 킹의 후원도 필요가 없는 이들이 있어. 자기만의 재력으로 가. 킹한테는 단지 차터. 증서만 받으면 돼. 머 찾으면 내꺼로 주쇼 어쩌고 함시. 

 

 

북미는 존 캐벗. 나폴리인이 잉글랜드 헨리7세의 스폰으로 가고. 프랑스는 이후 피렌체인 베라짜노 스카웃해서 미 동부 해안을 끝까지 훑어서 그려. 그후 십년 지나서 브리타니인 자크 카티예.가 뉴펀들랜드 그 해협을 뚫고 퀘벡으로 들어가 몬트리올도 찾아. 

 

 

João Álvares Fagundes (

Portuguese pronunciation: 

[ˈʒwɐ̃w̃ ˈalβɾɨʃ fɐˈɣʊ̃w̃dɨʃ]; born c. 1460, Kingdom of Portugal, died 1522, Kingdom of Portugal), an explorer and ship owner from Viana do Castelo in Northern Portugal, organized several expeditions to Newfoundland and Nova Scotia around 1520-1521.

 

주앙 알바리스 파군디스. 포르투갈이야. 자기돈으로 가. 뉴펀드랜드와 노바스코샤.를 탐사해. 1520년. 20년 전에 존 캐벗이 왔고. 노바스코샤.는 이사람이 처음 온겨. 이후 15년 지나서는 자크 카티예.가 저 북미 안쪽으로 들어가는거고. 

 

포르투갈.이 스페인이나 잉글랜드 프랑스 보다 저 북미의 동북쪽을 더 드나들었던거야. 이 포르투갈은 엄청난겨 진짜. 이런 포르투갈이 왜 실패한건가?

 

 

 

나중에 풀려 저 질문이.

 

콜럼버스.가 서쪽을 발견하고. 콜럼버스는 저기가 인도다 쎄웠걸랑. 일이차 항해때는 다들 서로 아사무사 한겨. 나중에야 아닌게 된거고. 마젤란이 남미 돌고 필리핀가면서 확인이 된겨 저게.

 

어쨌거나 처음 다녀오고. 풍랑을 만나서 재수없게도 리스본.에 배가 간단 말야. 스페인 들어가기 전에. 여기서 포르투갈 킹 주앙2세를 만나. 콜럼버스는 아무것도 모르고 신나게 떠들지만. 이미 이전에 스폰 받을려고 안면은 텃랑. 헌데 노발 대발하는거지. 그 대서양은 다 포르투갈 꺼걸랑. 아직 인도를 안갈때야. 인도는 7년 후에 바스코 다가마.가 가는겨. 이거 지금까지 세우타로 부터 80여년. 해군 시작후 180년의 일들이 저 콜럼버스때메 헛수고가 된겨. 쟤가 인도를 찾았다는겨.

 

이건 포르투갈 입장에선 엄청난 충격이야. 당시 권력자애들에겐 공포야 저건. 

 

저것에 뭔가 딴지를 걸거나 대비책을 세워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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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이전 자기 아빠 아폰수5세랑 이사벨라 부부랑 카스티야 후계자 전쟁 끝나고 맺은 조약이 알카소바스 조약이걸랑. 

 

 

 

 

 

 

일본애들이 메이지 유신 할때. 저 유럽애들과의 조약을 안지키는 것에. 유럽애들이 화를 내면서 훈수를 둬. 일본은 저때 프랑스 잉글랜드 네덜란드 그 공사니 공사대리니 하고 애들이 개인들 이야기를 하걸랑. 
조슈.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의 연합함대와 시모노세키에서 대포 전쟁할때. 지들이 머 어쩌겠어. 아주 걍 아작을 내걸랑 네 국가의 함대연합이. 해안가 대포들을 다 파괴하면서 저거 수리 말아라 가 협약 내용중 하나야.
조슈애들이 상선들 군함들을 지나가는걸 대포질 하는겨. 조약 위반이지. 
청나라의 아편전쟁이 똑같은겨. 조약 위반에 따른 대응일 뿐이야 쟤들 입장에선.


훈수를 둬. 당신들말야. 국가간의 조약은 따라야해. 그리고 당신들 외국인들을 무시 하대하고 외교관들 대하는게 미개한데. 그건 문명이 아냐. 일본들이 철저하게 배워. 이걸 갖고 그대로 청일 조약에 조선에 써먹는겨.
페리 오고나서 그건 일본애들 입장에서 불평등 조약이걸랑. 뒤의 유럽애들이 저 미국과의 조약을 기준으로 다 조약을 맺는거야. 저때 벨기에 이탈리아 프로이센 스위스 까지 와. 
저 조약 갱신을. 20년 후에 이와쿠라 사절단. 이름으로 하렸던 거야 저걸. 페리가 오고 기한이 다 되어 가걸랑. 그걸 미쿡 통 만나서 불평등을 갱신하고자 한겨 저 사절단의 일차목적이. 저걸 지침 내린게 이토 히로부미야 워싱톤에서. 세계 관세들 연구하라 하쇼. 사람들 모아서리 빨랑 미국이랑 다시 개정하쇼. 이걸 기준으로 다른 애들에게 적용하걸랑. 
저게 안먹힌거야 저 사절단에. 미국애들이 치외법권 안 풀어. 아직 니덜 나라들 수준을 못 믿겠다는겨. 심심하믄 외인들 칼질하고. 니덜 법체계 미개하고. 일본애들이 이걸 인정해. 이때부터 사절단의 목적이 바뀌어. 배우기 로. 그게 이와쿠라 사절단이야. 그리고 나서 그 불평등 조약을. 자기들 수준을 올리고 보여주면서. 그걸 평등. 으로 고쳐나가.




저 구한말 들 항상 떠들때 강화도 뭔 무슨 불평등 조약에. 어디 불평등 조약에 부들부들 다 악마 제국 주의 들 어쩌고 하걸랑.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무시칸겨 저게. 일본랑 말야. 비교가 너무 되는거야 저게.

 

메이지유신과 조선구한말. 이라고 제목을 감히 쓸 수가 없어 저건. 저건 말이 안돼. 저 조선 빠는 애들이 뭔 조선오백년이 음청난 문명의 수준인 줄 알아. 정신차려라.
.
지금 일본덜이. 그네랑 맺은 조약을 일방적 파기한다고. 한쿡은 국가가 아니다 대는게 저게 개소리가 아냐.
차라리 적폐들의 정권을 불법이다 공식 정부가 아니었다 선언을 하던가 ㅋㅋㅋ. 

이념놀이도 정도껏 해야지. . 

 

.콜럼버스.가 서쪽에서 발견한걸 직접 듣고는. 시껍한거야. 자기들은 아직 인도를 못갔어. 4년 전에 바르톨로뮤.가 아프리카 끝을 발견한겨. 곧 준비해서 오른쪽으로 갈 날만 남은거야. 헌데 콜럼버스가 뭔가 찾은겨. 저게 인도일수도 있어. 아닐수도 있지만 저러다 곧 스페인이 갖는거 아녀?
공포야 이건. 

걸고 넘어져야 해. 이전에 맺은 알카소바스 조약. 이게 재밌어. 1479년

The treaty intended to regulate:

  • The renunciation of Afonso V and Catholic Monarchs to the Castilian throne and Portuguese throne, respectively
  • The division of the Atlantic Ocean and overseas territories into two zones of influence
  • The destiny of Juana de Trastámara
  • The contract of marriage between Isabella, the eldest daughter of the Catholic Monarchs, with Afonso, heir of Prince John. This was known as Tercerias de Moura, and included the payment to Portugal of a war compensation by the Catholic Monarchs in the form of marriage dowry.[3]
  • The pardon of the Castilian supporters of Juana



카스티야 후계자 전쟁.을 마무리하는거야. 이사벨라와 조카뻘 후안나.와의 싸움. 후안나는 엄마가 포르투갈이야. 포르투갈이 카스티야.랑 싸우는겨 결국. 카스티야의 귀족 실세들은 이사벨라에게 붙고.

 

아폰수5세의 포르투갈.과 카스티야의 카톨릭 군주들은 각각 떨어져 나간겨 확실하게. 
포르투갈은 원래 카스티야의 시작 아스투리아스.의 바쌀. 영주였걸랑. 이걸 확실하게 포기해 카스티야가. 
그리고 후안나. 이사벨라의 조카. 갓난 이사벨라의 아들이랑 결혼할래 머리깍고 수녀원갈래. 선택해. 수녀된다고 서리 또 쌩까고 계속 포르투갈에서 퀸으로 살아. 
이사벨라의 장녀와 아폰수의 자식인 나중 주앙2세.의 결혼 계약. 주앙2세가 애 낳으면 가기로 해. 헌데 얘가 죽어. 마누엘1세.가 방계야. 얘와 결혼해. 이 장녀도 죽어. 후안나 동생이자 캐서린 언니인 마리아가 또 시집가. 이 마누엘1세가 이사벨라의 두딸이랑 결혼한겨. 저 조약때문이야. 
그러면서 전쟁 배상금을 딸이 시집가는 다우리.로 받는겨.
그리고 후안나.를 지지했던 카스티야의 귀족들을 사면하기.

두번째가. 대서양과 해외의 관할권이야. 

  • With the exception of the Canary Islands, all territories and shores disputed between Portugal and Castile stayed under Portuguese control; Guinea with its gold mines, Madeira (discovered in 1419), the Azores (discovered about 1427) and Cape Verde (discovered about 1456). Portugal also won the exclusive right of conquering the Kingdom of Fez.
  • Castile's rights over the Canary Islands were recognised while Portugal won the exclusive right of navigating, conquering and trading in all the Atlantic Ocean south of the Canary Islands. Thus, Portugal attained hegemony in the Atlantic not only for its known territories but also for those discovered in the future. Castile was restricted to the Canaries.

 

카나리아는 카스티야의 엔리케가 프랑스 애들 보내고 바쌀을 임명하걸랑. 이전엔 포르투갈이 먼저 갔고. 그 이전엔 마요르카애들에 제노바도 갔지만. 그래도 포르투갈은 메데이라 아조리스 에 기니만까지 가. 주도를 한겨. 카스티야에겐 카나리아.를 인정하고. 포르투갈은 카나리아 아래에 대서양에 대한 독점권을 갖기로 한거야. 카스티야는 카나리아 까지만. 

 

 

이때는 서쪽 개념이 없는겨 전혀. 저기서 어쨋거나 저 바다에 대한 권리는 포르투갈꺼다 라고 쎄우는거야. 이게 1479년이야. 

 

 

저기서 카톨릭 킹은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도.에게만 주어진 타이틀이야. 둘이 세컨드 커즌이야. 증조할배가 같아. 결혼하려면 교황승인을 받아야해. 교황이 승인하면서 둘이 카톨릭을 지켜라 하는겨. 

 

 

This treaty, ratified later by the Papal bull Aeterni regis in 1481, essentially gave the Portuguese free rein to continue their exploration along the African coast while guaranteeing Castilian sovereignty in the Canaries. It also prohibited Castilians from sailing to the Portuguese possessions without Portuguese licence. The Treaty of Alcáçovas, establishing Castilian and Portuguese spheres of control in the Atlantic, settled a period of open hostility, but it also laid the basis for future claims and conflict.

 

저걸 2년 후에. 교황이 정식 승인해. 포르투갈에게 탐사를 계속할 권한을 주고 카스티야는 포르투갈의 허가 없이는 포르투갈이 차지한 곳에 가면 안돼. 

 

 

 

저게 콜럼버스가 신대륙 발견하면서 포르투갈이 절치부심 끌어낸 단서들이야. 어쨋거나 카나리아 아래는 다 포르투갈꺼야. 지금 플로리다 마이애미가 위도상 카나리아 아래야. 카나리아가 높아 ㅋㅋㅋ. 저당시 위도를 측정할 수준은 돼. 

 

 

 

스페인도 문제야 그래서. 저 당시 1492년 이면. 이탈리아 전쟁 시작할때야. 교황의 말빨은 죽어갈 때지만. 이탈리아 전쟁은 아직 사돈도 안된 아직 황제후보인 막시밀리언과 샤를8세의 싸움이지 스페인땅은 여전히 꼴통 카톨릭이걸랑. 교황은 하나님이야 이들에겐. 

The Treaty of Tordesillas (PortugueseTratado de Tordesilhas 

 

[tɾɐˈtaðu ðɨ tuɾðeˈziʎɐʃ],[3] SpanishTratado de Tordesillas 

 

[tɾaˈtaðo ðe toɾðeˈsiʎas]), signed at Tordesillas on June 7, 1494, and authenticated at Setúbal, Portugal, divided the newly discovered lands outside Europe between the Portuguese Empire and the Crown of Castile, along a meridian 370 leagues[note 1]west of the Cape Verde islands, off the west coast of Africa. This line of demarcation was about halfway between the Cape Verde islands (already Portuguese) and the islands entered by Christopher Columbus on his first voyage (claimed for Castile and León), named in the treaty as Cipangu and Antilia (Cuba and Hispaniola).

 

해서 이때 나오는게 토르데시야스 조약.이야 1494년. 이건 나중에야 나오는거고. 

 

On 4 May 1493 Pope Alexander VI (Rodrigo Borgia), an Aragonesefrom Valencia by birth, decreed in the bull Inter caetera that all lands west of a pole-to-pole line 100 leagues west of any of the islands of the Azores or the Cape Verde Islands should belong to Castile, although territory under Catholic rule as of Christmas 1492 would remain untouched.[9] The bull did not mention Portugal or its lands, so Portugal could not claim newly discovered lands even if they were east of the line. Another bull, Dudum siquidem, entitled Extension of the Apostolic Grant and Donation of the Indies and dated 25 September 1493, gave all mainlands and islands, "at one time or even still belonging to India" to Spain, even if east of the line.[10]

 

이때 교황이 알렉산더6세야. 체사레 보르자 아빠. 아라곤의 발렌시아 태생이야. 당근 페르디난도 이사벨라 쪽에 기울 수 밖에 없어. 

 

이전 조약이면. 나중 중남미는 다 포르투갈꺼야. 인도.도 뉴델리. 북쪽에 있어. 여기도 카나리아 아래야. ㅋㅋㅋ. 인도땅도 결국 포르투갈꺼야. 즉 저 조약이 의미가 없어. 

 

 

소위 경도. 왼쪽 오른쪽으로 긋는겨 다시. 아소리스 나 카보레드레 섬들을 기준으로 왼쪽을 100리그 까지는 포르투갈꺼. 그 너머는 스페인꺼. 경도로. 저당시 지도학이 수준이 상당해. 자전축 기운건 기원전 2백년에 이미 밝혔어. 오차가 없어 이것도. 고대그리스가. 다 알아 저걸. 지리학 아부지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 크기 황당하게 쟀지만. 자전축에. 저때도 나름 위도 경도 개념으로 세계지도를 그려. 알렉산드로스가 간 인도까지 그린겨 저사람이. 음청난겨 저들 수준은. 저걸 다 배워서 알아. 

 

 

저기에. 왼쪽 100리그 밖은 스페인꺼다. 그럼 그나머지는 포르투갈꺼란거냐? 이얘긴 전혀 없어. 그리 유추만 할 수도 없어. 오직 스페인을 위한 문구만 넣은겨 알렉산더 교황이. 저게 인터 카이테라. 야

 

포르투갈의 주앙2세가 수정을 요구해도 까딱안해 교황이. 전쟁을 하긴 싫어. 교황빼고 직접 가는겨 이사벨라 부부에게. 

 

 As the Pope had not made changes, the Portuguese king opened direct negotiations with the Catholic Monarchs, King Ferdinand and Queen Isabella, to move the line to the west and allow him to claim newly discovered lands east of the line. In the bargain, John accepted Inter caetera as the starting point of discussion with Ferdinand and Isabella, but had the boundary line moved 270 leagues west, protecting the Portuguese route down the coast of Africa and giving the Portuguese rights to lands that now constitute the Eastern quarter of Brazil. As one scholar assessed the results, "both sides must have known that so vague a boundary could not be accurately fixed, and each thought that the other was deceived, [concluding that it was a] diplomatic triumph for Portugal, confirming to the Portuguese not only the true route to India, but most of the South Atlantic".[11]

The treaty effectively countered the bulls of Alexander VI but was subsequently sanctioned by Pope Julius II by means of the bull Ea quae pro bono pacis of 24 January 1506.[12] Even though the treaty was negotiated without consulting the Pope, a few sources call the resulting line the "Papal Line of Demarcation".[13]

 

포르투갈이 원한건 그 동쪽에 대한 권리걸랑. 서쪽껀 스페인꺼다. 그럼 동쪽은 스페인꺼도 되고 포르투갈꺼도 되냐. 

 

순수한거야. 교황 이름앞에선. 카톨릭 꼴통들이.

 

왼쪽의 거리를 100에서 270 리그로 옮기고. 그 바깥은 스페인이 갖는거야. 포르투갈은 이때 아프리카.에 대한 독점권을 인정받는겨. 그럼 니덜은 저짝 먹어. 이쪽은 우리꺼니 관심끄고. 해서 동쪽의 주어.를 포르투갈이 확실히 밝히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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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라는게. 고대에 쓰던 거리 단위 중에. 성인이 한시간에 걷는 거리. 이게 제각각이야 로마는 이삼키로 저때는 오육키로. 

 

바다도 리그.로 쓰는거지. 헌데 땅과는 약간 달라. 역시나 저때 네비게이터가 있는것도 아니고. 걸음걸이 평균을 재는거고. 배탈때 바람 속도에 시간단위로 평균을 내는거걸랑. 일정 항구 다녀오면서 총 시간에. 리그를 써서 몇리그 하는거지. 

 

십리 할때도 십리가 한시간에 가는 거리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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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저 거리 단위도 정확치 않고. 기준점도 명확치 않아. 저걸 서로 나중 탐사하면서 조정한다는 식인거야. 

 

어쨋꺼나 이제 동쪽의 주어는 확보한겨 포르투갈이.

 

 

 

그리고 나서리 바스코 다가마.가 다녀온겨 인도를. 1499년. 

 

헌데 더 문제가. 마젤란이 서쪽길을 1520년에 뚫고 필리핀가고 죽고 엘카노.가 이어서 온겨. 1522년. 

 

 

아 이 . 머여 이거 하는겨. 지구가 둥글다든디. 정말 둥근거네?

 

 

서쪽은 스페인꺼 동쪽은 포르투갈꺼 했는데. 결국 코메디가 된겨 이게. 

 

저기서 가운데.를 짤라야 하는거야. 지금 생각하믄 180도 찍으면 되걸랑. 그리니치가 기준점이 된건 언제냐 이게. 하튼 훨나중이고. 저때는 아소리스 제도나 카보베르데 제도를 기준점으로 했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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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이 포르투갈 사람이고. 포르투갈 배 타고 똑같이 동쪽항로로 인도다녀와서리. 스페인 킹 카를5세 스폰으로 간겨 하필. 저 둘이서 동양빠닥 바다에서 맞붙는거야. 

 

서로들 친구걸랑. 마젤란도 친구고. 마젤란이 카를에게 얘기 좀 잘넣어줘 하는거고. 헌데 마젤란도 죽었어. 

 

 

저때 저 둘이 싸우는 곳이. 또한 말루쿠제도. 멀러커즈.야 스파이스 섬들. 포르투갈이 먼저 갔지 당근. 

 

Afonso de Albuquerque, Duke of Goa (

Portuguese pronunciation: 

[ɐˈfõsu dɨ aɫbuˈkɛɾk(ɨ)]; c. 1453 – 16 December 1515) (also spelled Aphonso or Alfonso), was a Portuguese general, a "great conqueror",[1][2][3] a statesman, and an empire builder.

 

아폰소 젤부케르키. 고아 공작. 포르투갈의 5번째 인도행.의 짱이야. 이후 또가고. 인도의 고아.점령하고 공작에 바스코 다가마 처럼 인도 거버너도 해. 바스코다가마가 첫번 네번째가고. 두번째는 카브랄.이 가다가 브라질 발견하고. 바르톨로뮤,는 희망곶에서 죽고. 할때 이 아폰소.가 홍해를 배로 처음 들어간 유럽사람인겨.

 

 

무슬림들이 처음으로다가 후장이 뚫린겨. 오스만이지 이땐. 저길은 완전한 아라비아인들의 독점항로였걸랑. 유럽애들한테 뻣대는 유일한 길이야. 이걸 뺏긴데다가 더하여 자기들 안방까지 군함으로 들어와. 그 건너 페르시아만.인 걸프만.의 호르무즈 해협에서도 져. 아폰소 함대에게. 

 

 

어쩌면 저들 가운데 땅에서. 쟤들이 인도 중국 문명과 유럽 문명의 사이에서 세계 최고의 문명을 만들 수 있었어. 제일 유리해. 바다와 육로의 사이야. 가장 좋아 지리적으로. 

 

인도나 중국이나. 아프리카까지 그냥 열린 길이야. 당나라 송나라 때처럼 수시로 가면 돼. 

 

 

지들이 안간거야. 

 

지들이 안한거야.

 

 

걍 안에서 자기들 민들 부려 처먹으면서. 이념놀이만 해대다가. 저런 개그지들이 된거야 결국. 

 

그 결정적 시점이 저 서기 1500년이고. 포르투갈이 홍해에 걸프만 들어가는 아폰소.인겨.

 

세상은 저때 결정적으로 뒤집어 진거야. 헌데 이미 중세 천년간 계속 뒤집히는 중이었고 저때 드러난 것일 뿐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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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젤란의 스페인함대가 필리핀에 들어와. 이들이 바로 아래 멀러커즈. 스파이스 섬들로 가는겨. 이때 아폰소.가 이전에 여길 탐사해서 확보를 한거야. 이때 충돌이 생긴겨 마젤란이 들어오고나서 바로. 

 

The Treaty of Zaragoza, or Treaty of Saragossa, also referred to as the Capitulation of Zaragoza, was a peace treaty between the Spanish Crown and Portugal, signed on 22 April 1529 by King John III and the Emperor Charles V, in the Aragonese city of Zaragoza. The treaty defined the areas of Castilian (Spanish) and Portuguese influence in Asia, in order to resolve the "Moluccas issue", which had arisen because both kingdoms claimed the Moluccas islands for themselves, asserting that it was within their area of influence established by the Treaty of Tordesillas in 1494. The conflict began in 1520, when expeditions of both kingdoms reached the Pacific Ocean, because no agreed meridian of longitude had been established in the orient.

 

사라고사 조약. 1529년. 사라고사.는 아라곤 땅이야. 다 도시 이름이야. 가운데를 가르는겨. 이때 멀러커즈. 섬들의 오른쪽 까지로 선을 거어. 일단 멀러커즈.는 포르투갈이 먼저 아폰소가 십년전에 인도 서쪽 좀 위에 가오. 다음에 콸라룸푸르 옆의 말라카.라는 말레이 반도도 점령해. 이때 멜러커즈.를 확보한거야. 

 

The Treaty of Zaragoza laid down that the eastern border between the two domain zones was 297.5 leagues (1,763 kilometres, 952 nautical miles)[note 5], or 17° east, of the Maluku Islands.[11] The treaty included a safeguard clause which stated that the deal would be undone if at any time the emperor wished to revoke it, with the Portuguese being reimbursed the money they had to pay, and each nation "will have the right and the action as that is now." That never happened however, because the emperor desperately needed the Portuguese money to finance the War of the League of Cognac against his arch-rival Francis I of France.

 

선을 근게. 이전 토르데시야스.는 서쪽 270리그. 사라고사때는 동쪽으로 298리그. 까지가 포르투갈꺼 한거지. 스파이스 섬들.의 동쪽 경계선이야. 이 멜러커즈.가 기준점이 된겨. 이걸 위반하면 배상금 물어라 하는거고. 저때 카를 5세걸랑 스페인은. 이탈리아 전쟁하느라 정신없을때야. 1529년이믄 루터 티나오고 농민전쟁 터지고 프로테스탄트가 막 드셀때걸랑. 카를이 정신없이 걍 한겨 저건. 

 

 

 

The treaty did not clarify or modify the line of demarcation established by the Treaty of Tordesillas, nor did it validate Spain's claim to equal hemispheres (180° each), so the two lines divided the Earth into unequal portions. Portugal's portion was roughly 191° of the Earth's circumference, whereas Spain's portion was roughly 169°. There was a ±4° margin of uncertainty as to the exact size of both portions, due to the variation of opinion about the precise location of the Tordesillas line.[12]

 

딱히 가운데 180도.가 아니란 거지 아소리스 즈음에서 보면. 포르투갈이 10여도 더 먹은겨. 당시 경도 선에대해선 측정수준이 상대적으로 아직 약한거고. 

 

헌데 저것도 웃긴거야. 

 

 

마젤란이 간 필리핀.은 저 경계 안쪽이야. 멜러커즈 바로 위걸랑 필리핀이. 

 

 

저 경계선이 대충 지금 경도 130도야. 한반도가 바로 위야. 조선도 다 포르투갈 꺼야 ㅋㅋㅋ. 아 중국도 포르투갈이야

 

 

걍 코메디 조약인겨 저게. 

 

가만 보니. 카를5세가 보기엔. 이미 점령한 필리핀.이 저 선 안쪽인거야. 포르투갈꺼야. 그냥 내줄 순 없어. 카를5세가 필리핀을 식민지하기로 결심하는겨 그래서 이때부터 필리핀은 스페인땅이 된겨. 아들 펠리페2세가 마닐라를 점령해. 이때부터 펠리페의 나라 필리핀 하는겨.

 

헌데 정작 포르투갈은 저 필리핀에 관시미가 전혀 없었어. 저긴. 스파이스. 가 없어. 스페인이 가지던 말던 눈길도 안줘.

 

Statue of Afonso de Albuquerque, symbolically standing on a stack of weapons, referencing his reply in Hormuz

아폰소 젤부케르키.  포르투갈 리스본. 호르무즈 점령 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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