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500년은 엄청난 시대야. 근대의 시작이야 쟤들에겐.
정화의 원정이란걸 중국들이 자랑 . 콜럼버스보다 먼저다 개 대는것도 유치한겨 그건.
오히려 중국가 먼저 갈 수도 있었어 유럽엘. 정화원정이란건 대단한게 아냐 그게. 이전 썰했듯 중국은 숱하게 저길 갔어. 기원전에도 갔어 서쪽에. 고대 로마에도 삼국시대에 오나라에서 중국인을 보내. 기록이 남아있지 않을 뿐이야. 에티오피아도 간걸로 보여. 4세기 말부터는 불경 구하러 가. 7세기까지 현장 갈때 즈음 30여명이 삼백년을 다녀온겨 저길. 바다로는 당나라 송나라 때 저긴 해상무역로야 심심하면 가는겨 인도까지. 그러다 걸프만까지도 가.
중국 입장에선. 뻔히 아는길이야. 마음만 먹으면 지중해도 가고 이탈리아도 갈 수가 있어.
유럽은 알렉산드로스 때부터 가서리 인도가서 막힌겨. 그 너머는 잘 몰라. 인도이야긴 걍 거기 다녀온 그 변경인들 통해 듣는겨.
알렉산드로스 후에 후계자전쟁 디아도코이 하면서. 셀레우코스가 오른쪽 부터 뺏기면서 페르시아 애들이 점점 자리잡으면서 파르티아 서고나서. 저쪽은 다시 뚝 끊겨 소식이. 그때부터 중세 천년이야 포르투갈애들이 갈때까지.
로마는 망하고. 비잔틴은 막기바쁘고. 게르만애들은 야만에서 로마 배우는거고. 이탈리아는 해적막느랴 자잘자잘 쪼개진애들이 살아남기 바쁘고. 중세 천년이 뚝 끊긴겨 그래서 저쪽이. 더군다나 무함마드 이후 무슬림이 더 드세. 위로는 스텝애들이 기세가 등등해. 슬라브애들도 티나와. 천년동안 저길 신경 쓸 수가 없어.
중국은. 바다나 육로나. 완전히 열린 자기들 길들이야. 정화원정이 역사적 사건이 될 수가 없어 그게. 머 대단한 길을 지가 찾은 것도 아냐. 다 뻔히 아는 길이고. 걍 물다라 해변따라 가믄 돼. 지들도 나침반에 이들이 브라마굽타 7세기의 제로와 음수가 나올때. 얘들은 한나라때 음수를 활용했어. 북극성 알아 지들나름의 천문학도 있어 더 들어가믄 허섭하지만 뱃길엔 활용해.
애들은 아예. 안 갈려고 작정을 한거야.
자유는 나쁜거야. 얘들에겐. 자유는 죽음이야. 그게 유교걸랑. 주원장의 가르치심이야. 남꺼 배우지 마라. 하늘 천을 습한 충효절만 외워라 이 개돼지들아. 이게 조선이고. 아랫걸들 노예부리면서 지들만 잘 살면서 말로는 민들을 위함다 정신뽕 가끔 서로 하고 지들 하렘에서 딸딸이치면서 사는겨. 명나라 들에 이은 청나라나 저 울타리에서 조공 바치면서 조선 왕조 오백년이. 저게 먼 국가니 국가는. 오직 선비 들 몇몇 들만을 위한 집단이고 모임이고 단체야. 조선은 국가가 아냐. 저기에 무슨 국가주의 어쩌고. 개소리하고 있는거지.
유럽애들은 가야해. 얘들은 탐험의 애들이야. 황금양모피 찾으러 다니는 이야기로 이천년 이상을 살은 애들이야. 오뒷세이아.가 필독서야 유럽 애들이. 그 데미안 쓴 헤쌔의 수레바퀴 아래서. 를 보면. 오뒷세이아.를 우리네 입시 수준으로 가르치는것에 열받아하는 대목이 나와 ㅋㅋㅋ 저따위 오뒷세이아를 저리 밑줄그며 배워야되냐. 이게 이천년이야. 알렉산드로스의 머리맡에 두는 책이 일리아스야.
엔리케가 도전한건 도마복음의 도마. 동방박사 세명이 어딨누. 요하네스 사제.라는 네스토리우스들이 금은의 나라에 산다는데. 저게 분명 아프리카에 있어. 저 무슬림애들이 갖고 오는 금은덩어리들. 아니면 인도라는 곳에 있는겨 저게. 저걸 찾아야해. 대륙끝 달랑 짝은 구석탱이의 우리 포르투갈이 살 방법은 저 이야기를 실현하는 것 밖에 없는겨.
제노바.도 절박한겨. 오른쪽은 베네치아에 막혔어. 전쟁에 점점 져. 뚫어야해. 살길을 찾아야해. 형제들이 걍 허섭한 배 타고 가다가 실종이 된겨. 또 저들을 찾으러 가 제노바 선원들이. 백년이상을 찾아 의리짱이야 진짜. 이 조선바닥에선 볼 수가 없는겨. 안단이란 청나라 노비 잡혀간 사람도 삼십년만에 도망나온 이를 조정에서 잡아서리 돌려주는 이 조선 들 핏줄은 음청난겨. 이게 한국사람들이 외국나가서도 대사관이니 영사관이니 국민 대접 못받는거고. 지금도 저 무슬림 해적들에게 납치당한 한국사람도 쌩까는게 이땅바닥 조선의 핏줄이야 이 . 명박이때 해적소굴 쳐들어가니까니 저거 쇼다 국정감사해야 한다 명박이가 감히 조선의 전통 조선의 핏줄인 본토 사람 쌩까는 짓 안하고 감히 구출하려 하다니. ㅋㅋㅋㅋ. 조선인 주제에 조선인의 선이 있지 감히 외국에 잡힌 자국민을 구하려 하다니 저건 쇼야 쇼. 우리 민주와 정의의 이름으로 저 뒤의 쇼를 국정조사 하자. ㅋㅋㅋ. 참 골때리는 나라야 이게. 쟤들이 조선.에 환장한. 민주와 정의.야 . 왜 마케팅 해서리 홍보 하고 그래서 누가 위태롭고 ㅋㅋㅋ. 라고 막막 오해의 소리들이 나올수가 있어 민주 정의 야.
국민 나뻐. 국가 나뻐. 국가주의 나뻐. 국민은 박정희가 만든겨 일본꺼 배껴서. 국민따위 신경 꺼. 민. 민주의 민.이 중요해. 조선인민 아 알흠다워. 조선 인민 의 리 배떼기 지도자.한테 왜 한국전쟁 책임 을 물어. 천안함 연평해전 다 조작이야 적폐의. 다 양키들 탓이야. 한민족인데 왜 책임묻고 사과를 요구해. 그런건 일본들 한테만 요구하는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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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빨랑 조선 두마리가 합쳐야지 세계에서 압도적인 대영제국 땅떵어리큼 되어서리 음청난 나라가 될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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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배가 아팠을까. 명박이가 해적 소탕해서 자국민 구출하고. 감히 조선인 주제에 하면 안될 일을 해서리 ㅋㅋㅋ. 괜히 저따위꺼 해서 앞으로 한국인들 보믄 복수할 틴데.
아 저 안단 이야긴 끔찍한거야. 그 안단에 더하여. 청나라 잡혀간 조선인들이 압록강 못건너와서리 백골이 쌓여있다는 상소는 끔찍한겨. 강 건너 조선인들도 발을 동동 굴러. 왜? 데려오면 조선 임금이 찢여죽이걸랑. 감히 청나라간 조선인들을 돕다니!!.
정말 조선 들은 개 새 끼 들도 아니고. 이건 구데기 들이야. 저게 임진란도 똑같애 이 들. 그리곤 자기 귀족들 자식들은 돈 주고 델꼬오고. 해서리 인질값만 게 올리고.
이 들은. 이 조선 왕조 오백년동안의 들은 이 선비 들은. 정말 사람들도 아냐 이게.
저러면서. 민들을 어쩌고 저쩌고. 민을 위한 다스림 개소리 . 위민 정치의 상징이래 저 청동 덩어리가 ㅋㅋㅋ. 참 할말이 없지.
쟤들 저럴때. 더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중국이나 조선은. 아예 작정을 해. 야만으로 돌아가자고. 우리네 몇몇 만 하렘에서 창녀들이랑 놀면서 상대는 역모요 하는 정의놀이 적페놀이만 하면서 살기로 작정을 해.
그나마 좀 나은 들이 일본야. 이들은 그래도. 도쿠가와가 닫았어도 말야. 포르투갈애들 시대부터 멀러커즈 스파이스 섬들을 갈때. 일본들도 배타고 저길 드나들어. 일본들이 유일하게 저때 같이 유럽애들이랑 사귄애들이야.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 의 시대야 저때가. 저 세명은. 유럽애들의 시대가 낳은 들이야 저게.
저때 조선 들어간 하멜은. 도망나와서리. 끔찍한 조선 이야기.를 하는겨. 먼 세상에 저따위 땅이 없는겨 하멜에겐. 헌데 저런 이야긴 백인 우월주의 편협한 시선 ㅋㅋㅋ. 안갈켜. 안알려줌. 저거 끔찍한 이야기다 저게. 아주 적나라한 당시 조선이다 저게. 저게 맞아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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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가 대륙에선. 이탈리아 전쟁을 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넘어가잖아. 그걸 받을만큼 배워서 익힐만큼의 수준이 된거야 게르만이 중세 천년 만에. 자기들의 언어로. 라틴어를 익힌 자기들 각각의 사유로. 이탈리아를 익히는겨. 근대의 시작이야.
이게 그대로 말야. 포르투갈.이 첨병으로 바다에서 또한 바다의 근대화를 하는겨. 근대가 세계에 전파되는겨 저게.
저 서기 1500년은 인류 역사에서 엄청난 시대야. 최고 중요한 시기야 저기가.
저때. 조선은 연산군이 등장해 ㅋㅋㅋ. 얘가 조선의 유교라는 인의예지의 그 추악한 이면을 들춘겨 한편으론. 가 저짓을 한 업적은 있어 ㅋㅋㅋ. 헌데 이 후로. 더 극악해 지는거야 사림들이. 더 추악해지는겨 조선 문명이. 위선의 두께는 더 두꺼워져. 이게 오백년이 지난 지금의 조선민국이야. 지금 조선민국의 이념놀이는 연산군때인 서기 1500년의 후유증이야 이게.
Cristóbal Colón, Cristoforo Colombo en italiano o Christophorus Columbus en latín (Génova,n. 112 31 de octubre de 14513-Valladolid, 20 de mayo de 1506), fue un navegante, cartógrafo, almirante, virrey y gobernador general de las Indias Occidentales al servicio de la Corona de Castilla. Es famoso por haber realizado el descubrimiento de América, el 12 de octubre de 1492, al llegar a la isla de Guanahani, actualmente en las Bahamas Christopher Columbus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451년생. 바스코 다가마.가 1460년생으로 보고. 마젤란을 1480년으로 봐. 루터가 1483년이야.
이사람은 제노바.사람이고. 죽을땐 스페인의 카스티야의 수도 바야돌리드.에서 죽어. 이사벨라 여왕죽고 바로 죽은겨. 라틴어 크리스토포루스 콜룸부스.를 영어로해서리 우리네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하걸랑. 헌데 이사람은. 무덤도 스페인 세비야 성당.이야. 스페인 사람이 된거야. 해서 스페인어로 크리스토발 콜론. 이탈리아어로 크리스토포로 콜롬보. 해줘야해. 영어이름으로 이사람을 불르면 안돼.
다시 정리하면. 시작은 포르투갈의 엔리케 프린스. 킹 주앙2세일때인 1415년.에 세우타. 가 시작이야. 그리고 이어서 마데이라 제도. 아조리스 제도.를 찾아. 아빠 죽고 형 두아르츠.가 킹 되도 계속 엔리케.가 해외는 책임을 맡아. 엔리케가 66살인 1460년에 죽어. 이전에 가는 곳이 카보베르데 섬들.이야. 그리고 아프리카 왼쪽 끝 다카르. 까지 또한 간거야. 저들 섬들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간거고. 카보베르데.는 제노바와 베네치아 사람들을 보낸거야.
콜럼버스.는 이때 태어난겨. 엔리케 말년에. 콜럼버스.는 엔리케.를 못봤어. 성인되서는 죽었어 이미.
In one of his writings, he says he went to sea at the age of 10. In 1470, the Columbus family moved to Savona, where Domenico took over a tavern. In the same year, Christopher was on a Genoese ship hired in the service of René of Anjou to support his attempt to conquer the Kingdom of Naples. Some modern historians have argued that he was not from Genoa but, instead, from the Aragon region of Spain[12] or from Portugal.[13] These competing hypotheses have generally been discounted by mainstream scholars.[14][15]
나이 10살인 1470년에 제노바.에서 옆 사보나.로 이사해 집안이. 아빠가 직조공 잘나갔는데 돈벌고 여관을 인수한겨. 이때 앙주 르네.가 나폴리를 조안나2세에게 받았는데. 이전 약혼자인 시칠리아 아라곤.에 쫓겨났어 무력으로. 이걸 회복하는데 꼬마가 여기 가서 일을 하는겨 제노바 배를 타고. 제노바와 나폴리의 아라곤은 웬수야. 아라곤이 제노바를 항상 먹으려해. 이때 콜럼버스가 앙주르네 편이냐 나폴리편이냐 포르투갈 편의 배에서 일했냐 논쟁이 있대. 하튼 꼬마때부터 배를 탄거야.
In 1473, Columbus began his apprenticeship as business agent for the important Centurione, Di Negro and Spinola families of Genoa. Later, he allegedly made a trip to Chios, an Aegean island then ruled by Genoa.[16] In May 1476, he took part in an armed convoy sent by Genoa to carry valuable cargo to northern Europe. He docked in Bristol, England[17] and Galway, Ireland. In 1477, he was possibly in Iceland.[4] In the autumn of 1477, he sailed on a Portuguese ship from Galway to Lisbon, where he found his brother Bartolomeo, and they continued trading for the Centurione family. Columbus based himself in Lisbon from 1477 to 1485. He married Filipa Moniz Perestrelo, daughter of the Porto Santo governor and Portuguese nobleman of Lombard origin Bartolomeu Perestrello.[18]
그리고 3년 후. 상인들 따라다니면서 사업을 배우는겨. 꼬마니 걍 심부름이나 하는거지. 이전엔 전쟁하는 배에 가서 심부름 한거고.
키오스. 에게해 동쪽이야 터키 서부. 유일하게 제노바 섬으로 남은 곳이야 당시. 또한 북유럽 가는 상선에도 탔어. 잉글랜드 아일랜드 도 다녀와. 17살인 1477년 아이슬란드.도 다녀온듯해. 이때부턴 포르투갈 배를 탔대. 저때 상인 귀족이 센투리오네 집안. 스피놀라 집안. 제노바의 이름난 귀족집안이야. 제노바는 스피놀라와 도리아.들이 짱이야. 이 센투리오네.는 제노바 본토가 아니라 모레아 쪽이야 에게해. 이들이 키오스에 있는겨 또한. 제노바의 중심에서 일을 배운겨 꼬마때. 그러다가. 거주지를 포르투갈로 옮겨. 8년동안. 27세부터 35세까지.
저 직후에. 바르톨로뮤 지아스.가 희망곶 갈때야. 이미 아프리카 서쪽은 죄다 포르투갈의 지배하에 있던 시기야. 세상의 중심은 포르투갈인겨. 갓 파릇파릇 20대 전후를 콜럼버스.가 포르투갈에 있던거야. 이때 결혼한 집안이. 마데이라 제도.의 섬들중에 한 섬의 총독.의 딸이야. 롬바르디아 출신 귀족이야. 얘들은 국적이 의미가 없어. 다들 능력있으면 여기저기서 품으면서 다 살아. 조선에선 꿈도 못꿀일이야 이건.
조선은 반도를 벗어나면 오랑캐니 . 남의 것 배우면 친일파 친미파가 되는 매국노가 되니 .
저 장인.도 탐험가야. 탐험해서 섬 찾아서 짱 해줘. 귀족이고. 콜럼버스.가 맨땅에서 귀족딸이랑 결혼한겨.
In 1479 or 1480, his son Diego Columbus was born. Between 1482 and 1485, Columbus traded along the coasts of West Africa, reaching the Portuguese trading post of Elmina at the Guinea coast (in present-day Ghana).[19] Some records report that Filipa died sometime around 1485, while Columbus was away in Castile. He returned to Portugal to settle her estate and take his son Diego with him.[20] He had left Portugal for Castile in 1485, where he found a mistress in 1487, a 20-year-old orphan named Beatriz Enríquez de Arana.[21] It is likely that Beatriz met Columbus when he was in Córdoba, a gathering site of many Genoese merchants and where the court of the Catholic monarchs was located at intervals. Beatriz, unmarried at the time, gave birth to Columbus's natural son Fernando Columbus in July 1488, named for the monarch of Aragón. Columbus recognized the boy as his offspring. Columbus entrusted his older, legitimate son Diego to take care of Beatriz and pay the pension set aside for her following his death, but Diego was negligent in his duties.[22]
그리곤. 이제 30살이 넘ㅎ었어. 이때 서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무역을 하는거야. 3년간. 지난 70년간 포르투갈이 세우타 이후 다진 땅이야. 기니해안 지금 가나. 아프리카 서쪽 쑥 들어가는 곳이야. 가나. 더가면 나이지리아.고 카메룬이야. 이 기니. 가나 가 금덩어리 나오는 곳이야 이게.
이미 엔리케 생전부터. 아프리카에서 금과 은을 갖고가기 시작해. 저기서 대박을 터뜨려.
There, in what came to be called the "Gold Coast" in what is today Ghana, a thriving alluvial gold trade was found among the natives and Arab and Berber traders.
저기가 골드 코스트. 금덩어리 있는 해안이야. 여기도 간겨 콜럼버스.가 그리곤 포르투갈을 떠나. 포르투갈 8년 있으면서 결혼하고 뒤 삼년은 아프리카 다니고. 금덩어리 해변도 보고. 나서 카스티야.를 들어가. 왜냐믄.
In 1485, Columbus presented his plans to King John II of Portugal. He proposed that the king equip three sturdy ships and grant Columbus one year's time to sail out into the Atlantic, search for a western route to the Orient, and return.
저땐 주앙2세야. 4년전에 아폰수 5세 다음. 삼년 후가 희망곶가는겨. 아직 못뚫었을때야. 콜럼버스.가 킹이랑 대화를 나눌 정도의 수준이 된겨 마누라도 포르투갈 귀족이고 꼬마때부터 바다를 다 다녔어. 서쪽 길을 제안해. 거절당해.
Paolo dal Pozzo Toscanelli (1397 – 10 May 1482) was an Italian astrologer,[1] mathematician, and cosmographer.
n 1488, Columbus again appealed to the court of Portugal, resulting in John II again inviting him for an audience. That meeting also proved unsuccessful, in part because not long afterwards Bartolomeu Dias returned to Portugal with news of his successful rounding of the southern tip of Africa (near the Cape of Good Hope). With an eastern sea route to Asia apparently at hand, King John was no longer interested in Columbus's far-fetched project.
삼년 후에 다시 간겨 포르투갈로. 주앙2세가 사람들을 부른자리에서 피티 하게 하는거지. 헌데 마침 바르톨로뮤가 희망곶 찾아서리 온 직후야. 시간을 못맞춘거지.
콜럼버스.가 펀딩을 못받는겨 다시 간건. 카스티야가 말이 안통하는거지. 완전 꼴통 카톨릭에. 여전히 땅이 평평하다고 믿는 인간들도 태반이고. 하기사 조선과 중국이는 20세기가 되어서야 지구가 똥그란줄 알았으니. 외쿡인이 지구본을 보여주니 조선관료가 하는말. 남쪽있는 사람들이 안떨어지고 매달려 사는겨 대롱대롱? 성리학 공부좀 하셔.
개 미개한 들 이 조선 개
저따위 조선을 여전히 빨아대고 앉아있으니. 참 미개한 이념의 나라야 여기가. 유교이념에 미치다가 이젠 정의와 민족과 민주의 이름으로. 먼 요술공주 밍키냐 참 미개한겨 저것들은.
Ambitious, Columbus eventually learned Latin, Portuguese, and Castilian. He read widely about astronomy, geography, and history, including the works of Claudius Ptolemy, Cardinal Pierre d'Ailly's Imago Mundi, the travels of Marco Polo and Sir John Mandeville, Pliny's Natural History, and Pope Pius II's Historia Rerum Ubique Gestarum. According to historian Edmund Morgan,
콜럼버스.가 열살부터 배를 타면서리 전쟁에 참여하며 심부름하고 다음엔 상선을 타고 제일 잘나가는 제노바 귀족 상선을. 그러면서 걍 포르투갈어 카스티야어 라틴어를 배우는겨. 그리고 선원들이 바다에서 길 찾는 법을 위해 익히는 천문학 지리학을 다 배우고 역사도 배우고 고대 그리스 로마 이야기에 마르코 폴로에 하튼 다 배워. 학자풍의 인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책을 읽었다. 아주 자잘한 주석 같은것들도 다 읽다. 해서 그 나름대로의 간단하고 굳은 때로는 잘못된. 자기나름의 세계관을 갖았다.
뭔 글이든지 철저하게 본겨 사람이.
After continually lobbying at the Spanish court and two years of negotiations, he finally had success in January 1492. Ferdinand and Isabella had just conquered Granada, the last Muslim stronghold on the Iberian Peninsula, and they received Columbus in Córdoba, in the Alcázar castle. Isabella turned him down on the advice of her confessor. Columbus was leaving town by mule in despair when Ferdinand intervened. Isabella then sent a royal guard to fetch him, and Ferdinand later claimed credit for being "the principal cause why those islands were discovered".[39]
7년을 로비를 한겨. 아 음청나 콜럼버스. 바스코 다 가마.는 희망곶 발견한 1488년 다음 11년 후에 출발해서 2년간 다녀온겨. 콜럼버스가 빨라. 마젤란은 훨 나중이고. 아직은 아시아를 못간겨 포르투갈이. 왜 저리 늦게 출발해스까 포르투갈은.
그라나다.를 1492년 1월에 조약을 맺고 갖고와. 아 이제 아래가 완전하게 열린겨 카스티야 이사벨라 입장에선. 아라곤도 무슬림들 사이에서 통과하기 버거웠을 테고.
Antonio de Nebrija (1441 – 5 July 1522),
In 1492, he published the first grammar of the Spanish language. He dedicated this book to Isabella I of Castile, the catholic queen. When the book was presented to her, she asked: “Why would I want a work like this? I already know the language.” He answered:
안토니오 드 네브리하. 네브리하가 스페인어 문법책.을 이사벨라 퀸에게 바치는 해가 또한 저 해야. 대체 이따위 책을 내가 왜 구해야 되냐? 이 무시기 빠나나녀나. 언어가 제국의 힘이야 이 샹녀나.
아 재들 멋져 진짜.
이사벨라.가 콜럼버스.의 제안을 또 뭉게. 참모가 하지 말래. 헌데 옆의 페르디난도. 신랑이 말야. 땡긴겨. 이사벨라 옆구리를 찔러. 따나는 콜럼버스를 다시 불러와 부랴부랴.
그리고는 말야
Columbus before the Queen, as imagined[37] by Emanuel Gottlieb Leutze, 1843
Emanuel Gottlieb Leutze (May 24, 1816 – July 18, 1868) 임마뉴엘 고틀립 로이츠. 뷔르템베르크 에서 미국 이민간 화가. 이사벨라와 콜럼버스.
당시 코트분위기. 저거랑 구한말 조선의 코트.를 비교하는건 너무한거지.
이사벨라 표정이 안좋은데 페르디난도가 관심이 있는거걸랑 저게. 저때도 1월이야. 그라나다를 받은 직후.야 굳이 돈 쓸 이유가 없걸랑. 자기들 땅도 넓은데. 페르디난도가. 왜 그 섬들을 찾아야 하는 지 근본적인 하나.의 이유를 말하란거지.
At 8:00 in the morning of 3 August 1492,
Land was first sighted at 2 a.m. on October 12, 1492,
On 15 January 1493, he set sail for home aboard the Niña.
스페인을 떠난게 1492년 8월 3일 아침. 카나리아 제도 닿고. 출발. 신대륙을 본게 두달 후 10월 12일. 새 무리를 발견하고 얘들이 간 방향을 일주일 따라가서 찾은겨.
이 섬에서 주욱 아래 쿠바 아이티 밟고 네달 후에 귀국 시작을 해 니냐 호를 타고. 그리고 한달 후에 아조리스 제도.의 산타마리아 섬에 닿고. 폭풍때문에 다시 포르투갈 리스본 가고. 여기서 주앙2세를 만나. 그리곤 스페인으로 들어가. 여섯달이야.
The West Indies is a region of the North Atlantic Ocean in the Caribbean that includes the island countries and surrounding waters of three major archipelagos: the Greater Antilles, the Lesser Antillesand the Lucayan Archipelago
서인도. 라는게 서쪽 인도들. 이야. 북대서양과 카리브해를 가르는 세 무리의 섬들. 이 서인도 제도. 섬들 하는겨.
영어로 안틸리즈. 야 안틸레스 라곤 없어 대체 저따위 개그지 표기가 왜 표준 한글발음인지 보믄 일본 가타가나일껴.
The Greater Antilles is a grouping of the larger islands in the Caribbean Sea: Cuba, Hispaniola (containing Haiti and the Dominican Republic), Puerto Rico, Jamaica, and the Cayman Islands.
대 안틸리즈.가 쿠바. 히스파니아(아이티+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까지야. 여기에 쿠바 아래 케이먼제도 와 자메이카.
푸에르토리코 다음부터 남미에 떨어지는 자잘한 섬들을 소 안틸리즈. 해.
The Lucayan Archipelago (named for the original native Lucayan people), also known as the Bahama Archipelago, is an island group comprising the Commonwealth of The Bahamas and the British Overseas Territory of the Turks and Caicos Islands.
쿠바 위의 바하마 섬들과 터크스 케이코스 섬들을 루카얀 제도. 라고해. 원주민이 루카얀족이야.
루카얀. 섬들 중 한 곳인 저 점찍힌 곳이
The Plana Cays are a group of two small islands in the southern Bahama Islands located east of Acklins Island and west of Mayaguana Island. The islands are today uninhabited.
플라나 케이즈. 여기에 처음 닿은겨. 저길 당시 산 살바도르 san salvador 라 해. 바로 아래 보이는 섬을 산타 마리아 했어.
케이.가 작은 섬이야. 케이즈.야 케이스 가 아니라.
저긴 지금 바하마. 라는 국가야.
The Bahamas (/bəˈhɑːməz/ (listen)), known officially as the Commonwealth of The Bahamas
더 바하머즈. 앞에 꼭 더.를 붙이래. 독립국가야. 옆의 터크스 케이코스 섬들.은 영국령이야.
아키펠라고. 라는건 지중해의 에게해의 섬들을 아키펠라고 했걸랑. 아키.가 대빵이고 펠라고.가 바다야. 이게 나중 섬무리.를 대칭해.
첫항해는 바하마의 저 섬들에서 아래 쿠바.와 히스파니올라.의 위만 훑고.
두번째는 소 안틸리제.에 떨어져서 위로 주욱 가서 히스파니올라 아래 자메이카. 쿠바 아래 훑고 돌아가고
세번째에야 남미대륙 맨 동북쪽 트리니다드 에 닿아서리 여기 찔금 만지고 바로 위 히스파니올라 다시 가서리 걍 오고
네번째 다시 두번째 갔던길로 해서리 아래 파나마쪽을 만져서 니카라과 온두라스 정도 만지고 다시 가.
못 뚫은거지 저길.
1492, 1493, 1498, 1502
2년 후에 이사벨라 죽고. 그 다음에 바로 죽어 콜럼버스.는 첫 항해 후 10년 동안 네번을 돌아다닌겨 저길 지나가려고. 남미 대륙도 찔금 보고 만거야.
Isthmus. 이쓰뜨머쓰. 중미와 남미를 이은 저 좁은 띠 땅을 이쓰뜨머쓰 라 하걸랑. 지협 하는데. 코린토쓰 이스트머쓰 하듯이.
Vasco Núñez de Balboa (
Spanish pronunciation:
[ˈbasko ˈnuɲeθ ðe βalˈβo.a]; c. 1475 – around January 12–21, 1519)[1] was a Spanish explorer, governor, and conquistador. He is best known for having crossed the Isthmus of Panama to the Pacific Oceanin 1513, becoming the first European to lead an expedition to have seen or reached the Pacific from the New World.
저길 뚫고 지나서리 태평양을 본 사람은. 콜럼버스 다음 십년 후인 1513년. 스페인의 바스코 누녜즈 데 발보아. 이사람이 파나마 쪽의 저 지협을. 강타고 올라가는겨 배를 직접 타서 상류로. 그리고 걸어서. 그리곤 지나서리 태평양을 본거야. 이 사람이 최초야 아메리카.에서 태평양을 만진 유럽사람은. 서기 1513년.
첫항해 후. 주앙2세 만나고. 발견 이야기 하니 버럭 화를 내. 알카소바스 조약. 13년전에 카나리아.는 스페인주면서 대서양은 포르투갈꺼 했걸랑. 이때 기준점을 다시 잡아. 이전 점령한 카보베르데 에서 서쪽으로 얼마까지만 포르투갈꺼. 콜럼버스가 찾은 곳은 그 거리 밖이라 이거지.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
이것때메. 포르투갈이 때아닌 횡재를 한겨 브라질 땅은. 포르투갈.이 저 거리 안의 땅은 다 포르투갈 땅이다. 라는 교황을 중간에 둔 약속에 힘을 받은겨.
Alonso de Ojeda (Torrejoncillo del Rey, Cuenca 1468 (some sources state 1466) – Santo Domingo 1515) was a Spanish navigator, governor and conquistador. He travelled through Guyana, Venezuela, Trinidad, Tobago, Curaçao, Aruba and Colombia. He is famous for having named Venezuela, which he explored during his first two expeditions, for having been the first European to visit Guyana, Colombia, and Lake Maracaibo, and later for founding Santa Cruz (La Guairita).
일론소 오제다. 콜럼버스.는 남미대륙을 제대로 안밟밨어. 저 파나마 지협쪽만 쭉 만지고 간겨. 베네주엘라.를 처음 만진게 이사람이야 1499년.으로 봐. 콜럼버스 3차 다음이야. 이사람은 스페인사람이고 이땐 수장이 피렌체의 아메리고 베스푸치.야 아메리카 작명한 사람. 이 알폰소.가 베네주엘라를 작명해. 스폰은 스페인이야.
Pedro Álvares Cabral[A] (
European Portuguese:
or
Brazilian Portuguese:
[ˈpedɾu ˈawvaɾis kaˈbɾaw]; c. 1467 or 1468 – c. 1520) was a Portuguese nobleman, military commander, navigator and explorer regarded as the European discoverer of Brazil.
페드로 알바리스 카브랄. 바스코 다가마.께서 첫번째 다녀오시고. 1497-99
바로 다음해 서기 1500년에 포르투갈의 두번째 인도행. 을 지휘하는 사람이야. 이때 포르투갈 킹.이 주앙2세 죽고 마누엘1세. 토르디야스 조약 다음해 킹해. 저 거리 안쪽은 자기들 땅이니 뒤져봐라. 저때 알폰소의 베네수엘라.를 알고 콜럼버스가 트리니다드 를 만진걸 알걸랑. 저기에 먼가 있어. 카보베르데 의 얼마간 거리는 우리꺼야. 이들이 인도 두번째 행에 이것도 갖고 간겨. 이때 상파울로를 찾아. 여기가 조약의 경계점이야. 해서 브라질은 이후 포르투갈 것이 돼. 이 두번째 인도행에서 희망곶은 12년 전에 먼저 도착한 바르톨로뮤.가 동행해. 이때 배들이 12개가 움직여. 바르톨로뮤의 배가 희망곶의 폭풍에 침몰해서 어디로 간지 이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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