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리즘 샤. 알라앗딘 무함마드2세. 그리고 이 아들 자랄 앗딘 밍부르누. Jalal ad-Din Mingburnu
자랄.의 은 엄청난겨 저거. 아빠로 인해 칭기스칸이 콰리즘 땅엘 들어오고. 자랄.의 싱통방통 도망질로 칭기스칸들이 전 중동바닥과 흑해 위 까지 가는겨. 자랄.의 이름은 기억을 해줘야해.
칭기스칸의 콰리즘과 코라산 캠페인.이 1219-1221. 칭기스칸은 저때 막판 파르완 전투 패배후에. 곧 복귀를 해. 정확한 복귀년도는 찍히지 않아. 바로 복귀한듯 해. 그리고 탕구트족의 서하.가 배반해서 다시 재정복하는 길을 직접 친정하는 길에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고 그 후유증으로 죽는겨. 여길 공격하는게 1225년이야. 서하.는 2년후에 사라져. 저때 칭기스칸도 죽어.
수부테이와 제베는 서쪽 흑해 너머까지 가는거고. 조지아 키예프 볼가 불가리아 까지 먹는거고.
할때 쟤들도 있네 하민서리. 지오반니 카르피네. 안드레 롱규모. 윌리엄 루브룩. 이 교황과 성루이.의 지시로 몽골 카라코룸에 가.
1241-1247. 1245-1251. 1253–1255. 각각 가는 년도야. 서기 1250년 전후야. 안드레.는 두번을 가. 몽골이야긴
Ystoria Mongalorum is a report, compiled by Giovanni da Pian del Carpine, of his trip to the Mongol Empire. Written in the 1240s, it is the oldest European account of the Mongols. Carpine was the first European to try to chronicle Mongol history.
지오반니.의 몽골 히스토리. 가 저때 나온겨. 유럽에 첫 몽골사야.
On his return, William presented to King Louis IX a very clear and precise report, entitled Itinerarium fratris Willielmi de Rubruquis de ordine fratrum Minorum, Galli, Anno gratiae 1253 ad partes Orientales.
윌리엄 루부룩이 성루이에 쓴 몽골 보고서야.
Rubruck's account was partly edited and translated into English by Richard Hakluyt in 1598-1600
이게 나중 영역도 되지만. 이 윌리엄 루브룩 이야기로 또 몽골사를 알아. 저들 이야기가 재밌어. 특히나 종교대토론. 유교불교도교에 기독교 이슬람교도들 다 모여서 죽음을 건 논쟁.이야기가 저기에 있어.
저들은 칭기스칸.이 죽고 간거야. 칭기스칸에 대해 간접 경험을 썼을 뿐이고.
Atâ-Malek Juvayni (1226–1283) (Persian: عطاملک جوینی), in full, Ala al-Din Ata-ullah (Persian: علاءالدین عطاءالله), was a Persian historian who wrote an account of the Mongol Empire entitled Tarīkh-i Jahān-gushā (History of the World Conqueror).
제일 특이한 인간이 주바이니. 란 인간이야.
Tārīkh-i Jahāngushāy (Persian: تاریخ جهانگشای "The History of The World Conqueror") or Tārīkh-i Jahāngushāy-i Juwaynī (تاریخ جهانگشای جوینی) is a detailed historical account written by the Persian Ata-Malik Juvayni describing the Mongol, Hulegu Khan, and Ilkhanid conquest of Persia as well as the history of Isma'ilis. It is also considered an invaluable work of Persian literature.[1]
얘가 쓴 책이 세계 정복자의 역사. 페르시안 인간이 몽골사를 쓴거야.
The standard edition of Juvayni's history is published under the title Tarīkh-i Jahān-gushā, ed. Mirza Muhammad Qazwini, 3 vol, Gibb Memorial Series 16 (Leiden and London, 1912–37). An English translation by John Andrew Boyle The History of the World-Conqueror was republished in 1997.
저 인간 이야기는 20세기에나 전해졌는데. 콰리즘이 망하고 태어난 애야. 코라산 출생. 페르시안이야. 이 집안이 콰리즘의 저 부자. 마지막.애들의 장관직집안이야. 귀족인겨. 이들이 다들 몽골 카라코룸에 노예로 다 들어가는거야. 얜 태어나자마자 몽골로 간겨. 이 몽골애들이. 똑같이 말야. 고대 로마애들이 했던 로마니제이션. 로마화.를 한거야. 몽골화. 이 귀족애를 키워서 자기들 인재로 써먹는겨. 이 주바이니.가 몽골속에서 크고 자라서리. 나중에 막내 툴루이 아들 훌라구 따라서리 바그다드 폐허로 만들때 같이 있던 애가 이 주바이니. 얘를 바그다드 거버너 총독으로 임명해. 이가 말야 압바스의 바그다드.의 그 도서관을 다 태운겨.
The Siege of Baghdad, which lasted from January 29 until February 10, 1258, entailed the investment, capture, and sack of Baghdad, the capital of the Abbasid Caliphate, by IlkhanateMongol forces and allied troops.
얜 아마 그리스도 인걸로 기억이 되는데. 즉 몽골서 그리스도를 안겨. 몽골은 신앙의 자유.의 나라야. 헌데 바그다드 가서 이단이라 대며 싸그리 태운가 이가. 몽골도 아니면서. 온갖 잔인한 질 할때 같이 한 야. 저 이야기가 레반트에 전해져서리. 그나마 있던 레반트 십자가 나라들이 벌벌 떨었던겨.
하튼 저들이 저 당시 초창기 몽골애들 이야기의 주요 쏘스야.
서기 1250년 전후에 저리들 세명.이 가고. 루쓰 애들도 갔지만 기록 남긴건 없고.
Book of the Marvels of the World (French: Livre des Merveilles du Monde) or "Description of the World" (Devisement du Monde), in Italian "Il Milione" (
lit.
The Million, deriving from Polo's nickname "Emilione") or "Oriente Poliano" ("Polian East") and in English commonly called "The Travels of Marco Polo", is a 13th-century travelogue written down by Rustichello da Pisa from stories told by Marco Polo, describing Polo's travels through Asia between 1271 and 1295, and his experiences at the court of Kublai Khan.[1][2]
베네치아.의 마르코 폴로.는 저들 이후 이삼십년 후에 간겨. 이사람은 25년간의 이야기야. 제일 심도가 깊은겨. 특히나 이 이야기가 유럽에서 베스트 셀러인거야. 모두 알게돼. 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 때에 간겨. 쿠빌라이때부터 원나라 시작이야. 몽케부터 막내 툴루이의 자식들이야. 이전엔 몽골의 카라코룸.이 수도야. 저들 넷은 여길 가는겨. 이후 마르코폴로는 몽케 동생 쿠빌라이.가 있는 북경엘 가는겨.
저게 13세기.이야기야.
Ibn Battuta (/ˌɪbənbætˈtuːtɑː/; Arabic: محمد ابن بطوطة; fully ʾAbū ʿAbd al-Lāh Muḥammad ibn ʿAbd al-Lāh l-Lawātī ṭ-Ṭanǧī ibn Baṭūṭah; Arabic: أبو عبد الله محمد بن عبد الله اللواتي الطنجي بن بطوطة) (February 25, 1304 – 1368 or 1369) was a Berber Muslim Moroccan scholar and explorer who widely travelled the medieval world.
그리고 나서. 이븐 바투타. 야. 탕게르의 바투타. 탕게르. 가 모로코.의 그 세우타.는 오른쪽이고. 왼쪽 해변이 이 탕게르.야.
Tangier or Tangiers 영어 태니여(탠지어). 포르투갈 탕게르. 스페니쉬 탕헤르
이사람이 탕게르.라는 북아프리카 해변 끝에서. 육로로 동쪽 끝에 알렉산트리아. 카이로.에 레반트가서리 아라비아반도 헤자즈 지역인 메카 메디나 다 훑고 홍해 건너서리 아프리카 뿔 소말리아.에 저 동쪽 남부 탄자니아 해변까지 다녀 온겨.
그리고 중국 베이찡 까지 가. 이때가 원나라 마지막 애 순제.야. 이 순제.를 보는겨. 이때 기황후도 봤을껴. 복건성. 저장성에 소주항주 하는 항저우도 가. 북경갔다가 빠꾸하는겨.
그리고 또 간 곳이. 사하라 존단해서 다녀온거야.
이븐 바투타.는 정말 위대한 인간이야 이 인간이.
나이 21살인 1325년에 시작해서. 중국까지 갔다고 온게 1347년. 그리고 2년 후인 1349년에서 1354년까지 스페인갔다가 아프리카 사하라 넘어 다녀와.
After returning home from his travels in 1354, and at the suggestion of the Marinid ruler of Morocco, Abu Inan Faris, Ibn Battuta dictated an account of his journeys to Ibn Juzayy, a scholar whom he had previously met in Granada. The account is the only source for Ibn Battuta's adventures. The full title of the manuscript may be translated as A Gift to Those Who Contemplate the Wonders of Cities and the Marvels of Travelling (تحفة النظار في غرائب الأمصار وعجائب الأسفار, Tuḥfat an-Nuẓẓār fī Gharāʾib al-Amṣār wa ʿAjāʾib al-Asfār).[129][i]However, it is often simply referred to as The Travels (الرحلة, Rihla),[131] in reference to a standard form of Arabic literature.
이사람이 모로코의 마리니드 때에야. 세우타 뺏기는. 포르투갈.에게서. 이들은 버버 족이야 베르베르. 술탄이 그 위대한 여정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라 해서리. 구술을 시킨겨. 이 책이 도시들의 경이로움들과 여행의 놀라움들을 시도해보까 깊게 고려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 이란 책으로 나온겨.
위대한 책이야 이게. 이게 이븐 바투타 여행기. 로 최근에야 한글 번역되었을텐데. 거의 30년 여행한 기록이야.
헌데 유럽에게는 저사람 이야기가 19세기에나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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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말야. 중국이랑 무슬림이 세상빠닥에서 후진 이유야.
자폐의 땅들이야. 그 사유의 천장 자체가. 지들이 위대해. 좋은 이야기인듯 한건 지들끼리만 봐. 비서. 비밀의 책이야. 몽골들이 망한거랑 똑같아. 칭기스칸 이야긴 돌려보믄 안돼. 핏줄만 봐이돼 후계자만. 참 개들인데.
하물며 조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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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dino (sometimes Vadino or Guido) and Ugolino Vivaldi (sometimes Ugolino de Vivaldo) (fl. 1291) were two brothers and Genoese explorers and merchants.
저런 이야기를 듣고. 소문듣고. 처음 시작한 애들이. 비발디의 형제들이야. 서기 1291년으로 봐. 이들이 모로코 해변에서 사라졌어. 나중에 이들을 찾으러 제노바 선원들. 그리고 자식들이 찾으러 가는겨.
It is believed that when Lancelotto Malocello set sail from Genoa in 1312, he did so in order to search for Vandino and Ugolino Vivaldi. Malocello ended up remaining on the island that is named for him, Lanzarote, one of the Canary Islands, for more than two decades.
Early in the next (14th) century, Sorleone de Vivaldo, son of Ugolino, undertook a series of distant wanderings in search of his father and uncle, and even penetrated, it is said, to Mogadishu on the Somali coast. In 1455 another Genoese seaman, Antoniotto Uso di Mare, sailing with Cadamosto in the service of Prince Henry the Navigator of Portugal, claimed to have met, near the mouth of the Gambia, with the last descendant of the survivors of the Vivaldo expedition. The two galleys, he was told, had sailed to the Sea of Guinea; in that sea one was stranded, but the other passed on to a place on the coast of Ethiopia—Mena or Amenuan, near the Gihon (here probably meaning the Senegal River) where the Genoese were seized and held in close captivity.[1]
저 찾으러 간 사람이. 카나리아 섬들. 중 하나에 머물다가 죽는거고. 이섬이름을 나중에 이사람이름으로 주고. 행불된 형제들의 아들이 또 찾으러 다녀. 모가디슈 까지 갔어. 이걸 어드래 간겨. 아마 아프리카땅에서 배를 띄워서 홍해에서 저길 갔을껴.
다른 제노바 선원이 포르투갈 걸출자식 헨리(엔리케)에서 일할때 그 자손들을 만났다고도 하고. 여긴 세네갈땅.
문제는. 저들이 다 제노바 인간들이란거야.
콜럼버스.가 제노바야.
제노바. 가 망하는것과 사보이.가 흥하는 것이 대비되는데.
쉼.
Sir John Mandeville is the supposed author of The Travels of Sir John Mandeville, a travel memoir which first circulated between 1357 and 1371. The earliest surviving text is in French.
마뉴빌.의 장. 장 드 마뉴빌.의 여행기. 라는게 14세기 여행기있대. 프랑스어로 쓰인게 처음으로 보이고. 이걸 당대에 다들 번역해서 봤다는거지. 콜럼버스도 이걸보고. 여기에 이븐 바투타.의 이야기도 오버랩되서 언급되고. 마르코 폴로 이야기도. 해서 저이야기가 직접 다녀왔냐 아니면 환타지 소설이냐 말이 많은데.
하튼 저시대는 저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 넘쳐나는겨. 저길 가야해.
From the 8th century until the 15th century, the Republic of Venice and neighbouring maritime republics held the monopoly of European trade with the Middle East. The silk and spice trade, involving spices, incense, herbs, drugs and opium, made these Mediterranean city-states phenomenally rich. Spices were among the most expensive and demanded products of the Middle Ages, as they were used in medieval medicine,[34] religious rituals, cosmetics, perfumery, as well as food additives and preservatives.[35] They were all imported from Asia and Africa.
15세기까지. 베네치아. 다른 해상도시 제노바. 피사. 이전 아말피. 가 지중해를 쥐고 있걸랑. 제노바와 베네치아.가 양분을 해. 지중해 서쪽과 거 넘어 네덜란드땅까지 제노바가 가는겨. 지중해 동쪽은 베네치아가 십자군 4차때부터 완전히 독점을 했어. 이들이 중근동의 아라비아 상인들과 만나는겨. 여기서 실크와 스파이스. 인센스.를 교역을 해.
특히나 인센스.라는 향료.는. 고대 이집트.때는 파라오의 신들로 제일 중요한 희소성 품목에. 고대 로마 그리스.도 신들을 모시는 나라야. 다양한 신들의 제전들이 일년에 걸쳐 있어. 다음엔 그리스도.의 제사.를 위한 인센스.가 역시 필요해. 이걸 아라비아 통해서 갖고오는겨. 스파이스.라는 음식 향식료는 꾸준히 필요하거니와.
저 수입 통로는 레반트야. 레반트의 해안 도시들을 통해서. 이제는 다들 무슬림이 된 사람들과 만나면서 갖고 오는거야.
헌데 말야. 오스만.의 메메드 2세가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먹으면서. 그 위에 흑해도 막아 얘들이. 이전처럼 자유롭게 교역을 못해. 베네치아와는 이후 3백년이 전쟁이야. 베네치아가 자유롭게 항해하며 교역하던 시절이 끝난거야.
바닷길 뿐이 아니야. 발칸을 다 점령하고. 다뉴브 하류까지에. 하물며 비엔나 근처 까지 오스만이 다 점령해버린거야.
육로와 해로가 다 막혔어. 오스만이 발칸에 동유럽까지 지배하면서. 이전까지의 구매력 협상력이 얘들이 쎄지는거야. 교셥권이 전혀 달라져. 애들이 필요한건 지배한땅에서 자체적 조달하면 돼. 점점 서유럽애들에게 아쉬울게 적어져.
지중해는 오스만이 고용한 해적들로 넘쳐나. 뱃길을 이제 무장한 군함 비슷한 애들을 붙여서 움직여야해. 그만큼 비용이 들어 또한.
점점 말야. 저 중근동을 통한 구입 보다. 자기들이 직접 갖고 와야 할 수 밖에 없는거야. 아라비아 애들도 지들이 바다 건너서 갖고 오는거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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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이 불을 지른겨. 쓰잘덱없이 유럽땅 처먹으면서. 오스만이 이따위 면에선 문명사에 기여를 한거지.
The Maluku Islands or the Moluccas (/məˈlʌkəz/) are an archipelagowithin Banda Sea, Indonesia. Tectonically they are located on the Halmahera Plate within the Molucca Sea Collision Zone. Geographically they are located east of Sulawesi, west of New Guinea, and north and east of Timor.
인도네시아 반다해.에 있는 저 섬들을 말루쿠 섬들. 멀러커즈.
인도네시아.를 7개로 보면. 가장 큰 섬이. 수마트라. 이 바로 아래가. 자카르타 있는 자바섬. 그 위 보르네오섬은 나라가 세개 있는겨. 아래가 인도네시아의 칼리만탄. 그 위가 말레이시아. 안에 짝은 나라 브루네이. 가 있어.
그리고 말루쿠. 멀러커즈. 옆에 찢어진 괴상한 섬이 술라웨이.
자바섬 끝에서 떨어져 나가는 섬들이 소순다 섬들. 이 시작이 발리. 야
뉴기니. 이 뉴기니.의 동쪽이 파푸아 뉴기니.라는 나라고. 서쪽이 파푸아. 그리고 줄어서 좁아졌다 큰 쪽이 서파푸아. 이 파푸아와 서파푸아.는 인도네시아 꺼야.
인도네시아.가 일곱개. 수마트라 자바 칼리만탄 술라웨이 소순다 뉴기니 멀러커즈.
이 멀러커즈. 말루쿠 제도.를 스파이스 향신료 섬들 하는겨 스파이스 랜드.
The islands were known as the Spice Islands due to the nutmeg, mace and cloves that were originally exclusively found there, the presence of which sparked colonial interest from Europe in the 16th century
여기에 특히나 넛메그 메이스 클러브. 는 여기밖에 생산이 안돼. 여기가 전장의 중심 중 하나야.
The Capture of Malacca in 1511 occurred when the governor of Portuguese India Afonso de Albuquerque conquered the city of Malacca in 1511.
포르투갈.이 말레이지아.의 말라카. 여기가 쿠알라룸푸르 바로 아래야. 여길 1511년에 점령해. 이때부터 저기 스파이스 랜드 가는 무역상들이 줄은겨. 포르투갈이 가면서 환영을 받아. 그러잖아도 왠지 사람들이 안오는데. 여긴 무슬림화 된 땅이야. 여길 이 포르투갈이 이어 접수해.
The Dutch–Portuguese War was an armed conflict involving Dutch forces, in the form of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and the Dutch West India Company,
1601–1661
네덜란드 독립전쟁 80년 전쟁이 터지고. 네덜란드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만들어. 이때 신대륙 발견이 한창이야. 네덜란드는 무역으로 먹고 살던 이들이야. 저기서 뒤쳐지면 죽는겨. 전쟁 중에 저 탐험길에 뛰어들어. 그러면서 선점했던 포르투갈이랑 대서양 인도양 전역에서 전쟁하는거야. 이게 네덜란드 포르투갈 전쟁이야. 포르투갈.은 시작할땐 스페인 속국이었고. 이어 터지는 30년 전쟁때 독립전쟁하면서 스페인을 벗어나는거고.
저걸 spice wars 스파이스 전쟁. 이라해 이들 둘의 전투를. 이걸로 포르투갈은 마카오.를 먹기로 한거고. 네덜란드.가 이 스파이스 섬들의 인도네시아.랑 말라카라는 말레이시아 해변이랑 스리랑카와 대만.을 갖는겨.
네덜란드가 이걸 와서 뺏은겨. 얘들 엄청난 애들이야.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종착지가 여기 말루쿠 제도. 멀러커즈 였던거야. 스파이스.와 인센스.를 갖으러.
몽골과 오스만의 조합의 결과야.
Muslim traders—mainly descendants of Arab sailors from Yemen and Oman—dominated maritime routes throughout the Indian Ocean, tapping source regions in the Far East and shipping for trading emporiums in India, mainly Kozhikode, westward to Ormus in the Persian Gulf and Jeddah in the Red Sea. From there, overland routes led to the Mediterranean coasts. Venetian merchants distributed the goods through Europe until the rise of the Ottoman Empire, that eventually led to the fall of Constantinople in 1453, barring Europeans from important combined-land-sea routes.[36][37]
이 구문이 지금까지의 이야기고.
Forced to reduce their activities in the Black Sea, and at war with Venice, the Genoese had turned to North African trade of wheat, olive oil (valued also as an energy source) and a search for silver and gold. Europeans had a constant deficit in silver and gold,[38] as coin only went one way: out, spent on eastern trade that was now cut off. Several European mines were exhausted,[39] the lack of bullion leading to the development of a complex banking system to manage the risks in trade (the very first state bank, Banco di San Giorgio, was founded in 1407 at Genoa). Sailing also into the ports of Bruges (Flanders) and England, Genoese communities were then established in Portugal,[40] who profited from their enterprise and financial expertise.
시작은 제노바야. 서기 1291년이야. 빠른겨 이게. 콜럼버스는 다음 2백년 후야. 저 형제들과 저 잃어버린 형제들을 찾는 사람들과 자식들. 아 음청난겨 저런 이야기가. 그리고 2백년 지나서리 콜럼버스야.
베네치아의 십자군 4차 비잔틴 가서 동지중해를 다 먹는게 서기 1200년 막 지나서야. 이때부터 제노바.가 베네치아에게 지기 시작한겨.
이 둘간의 경쟁심은 엄청난겨.
The Venetian–Genoese Wars were a series of struggles between the Republic of Genoa and the Republic of Venice, at times allied with other powers, for dominance in the Mediterranean Seabetween 1256 and 1381
저 이후 14세기 까지 백년 이상을 크게 네차례 전쟁을 해. 마지막엔 제노바가. 키오짜.
The War of Chioggia (Italian: Guerra di Chioggia) was a conflict between Genoa and Venice which lasted from 1378 to 1381,
아드리아해 아예 들어가서 베네치아 깊숙한 해변까지 치고들어가서. 대패해. 그리곤 완전히 무릎꿇은겨.
제노바 형제들은 저 베네치아 애들 때메 간겨. 저 속에서 다른 루트를 뚫으러 간거야. 절박감에 간거야. 먹고 살라고. 이야기는 들었어. 모로코 해변에서 사라진걸로 보이는겨.
이 제노바가 보스포러스 해협 지나서 흑해 주변에 역시 상업도시에 진출했걸랑. 여기도 오스만에 막힌겨 그 이후에. 이젠 오스만이야.
베네치아 애들때메 동쪽이 막혔는데 거기서도 낑겨서 그나마 먹고 사는데. 이젠 오스만이 더 막은겨.
이들이 관심을 북아프리카 로 돌리는거야. 특히나 금과 은. 이 아프리카 애들이 시안하게 금덩이 은덩이를 갖고 온단 말이지. 유럽은 중세말에 근대의 시작이 되면서 점점 상공업이 날라다녀. 금은이 귀해져. 부족해져. 당시 화폐는 피아트 머니.라는 게 아냐. 피아트.라는게 명령한겨. 아무런 가치 없는 종이 쪼가리에 만원 십만원 짜리라고 강요하는거걸랑. 당시는 쓸수 없는 개념이야. 불리온 이야. 그 금속 자체의 가치가 화폐 가치인거야. 이 제노바.가 이걸 찾으러 다닌겨. 아프리카 상대로. 베네치아 보다는 늦었지만 첫 국립 은행도 만들었어. 그리고 서쪽과 북쪽 해안의 플랑드르. 잉글랜드. 포르투갈.로 가는거야.
헌데 이들이 가장 큰 문제가 저당시에 말야. 이 제노바 공화국은.
베네치아 한테 줘 터지고서리. 그다음에 이탈리아 전쟁이 1494년. 하고 이어서리 카를5세랑 프랑수아랑 붙을때 말이지.
이 제노바.는. 베네치아 처럼 독고다이로는 못끼는거고. 이 제노바는 위에 바로 사보이야. 사보이는 프랑스가 먼저 결혼으로 자기편 하다가 나중에 갈아타서리 합스부르크에 빌붙어서리 이겼걸랑.
이 제노바.는 사보이와 다른 별도의 리퍼블릭이야. 얘들이 저때부터 특히나 카를 편을 드는거야. 이 제노바는 아주 망할때까지 패를 잘못 쥐어. 줄을 못서.
Christopher Columbus[a] (/kəˈlʌmbəs/;[3] before 31 October 1451 – 20 May 1506)
콜럼버스.가 제노바.에서 1451년에 태어났어.
His father was Domenico Colombo,[4] a middle-class wool weaver who worked both in Genoa and Savona and who also owned a cheese stand at which young Christopher worked as a helper. His mother was Susanna Fontanarossa.[4]Bartolomeo, Giovanni Pellegrino, and Giacomo were his brothers. Bartolomeo worked in a cartography workshop in Lisbon for at least part of his adulthood.[6] He also had a sister named Bianchinetta.[7]
아빠는 중산층 양모 직조. 원단만들어 제노바와 사보나에서. 치즈 스탠드라는게 그중에서도 영향력있는 사람.이란거야. 자기 아들을 헬퍼로 써. 엄마쪽 형제들은 지도 제작 관련 일을 리스본 포르투갈에서 했대.
콜럼버스가. 저러다 나이 20되서리. 이전엔 제노바 아래서 일을 하다가. 포르투갈.로 가고 스페인에 가는거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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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노바.는 위 사보이와 그 옆 밀라노의 사이에서. 이전의 베네치아에 완전 당하면서. 허약해진 체. 또 저 사이에 선겨. 저땐 밀라노의 스포르차.가 창업할때걸랑. 이 밀라노가 제노바를 먹는겨. 프랑스꺼로 하고. 밀라노는 프랑스에 기대면서 나폴리랑 싸우면서 빨랑 나폴리 먹으라고 콜하면서 이탈리아 전쟁 터질때걸랑.
그러면서. 밀라노.가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고. 사보이도 똑같이 저러고. 하다가. 최종으론 사보이나 밀라노나 합스부르크에 들어갔지만 사보이는 전쟁말에 적극 참여하면서 프랑스까지 가서리 카를을 도와서리 나름 독립.을 인정받아.
이 제노바.는 아예 카를5세 쪽에 올인해. 그리고 합스부르크가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로 분리되었을때 스페인으로 올인해. 왜냐믄 일단. 카를5세쪽에 베팅하면서 얘한테 투자를 했걸랑. 카를 5세한테 돈 준게 얘들이야. 여기에 독일 자본가들.
Fugger (
German pronunciation:
[ˈfʊɡɐ]) is a German family that was a historically prominent group of European bankers, members of the fifteenth- and sixteenth-century mercantile patriciate of Augsburg, international mercantile bankers, and venture capitalists.
Welser was a German banking and merchant family, originally a patricianfamily from Augsburg, that rose to great prominence in international high finance in the 16th century as financiers of Charles V, Holy Roman Emperor.
독일 땅에 당시 최고의 자산가들이 푸거. 웰저 가문들이야. 바바리아 지만 아우크스부르크. 가운데 진영이야.
이들이 15세기 16세기 에 독일 땅에서. 파트리쿠스 패밀리. 원체 귀족가문이야. 덧치야. 거기에 상업으로 돈벌고 은행도 세워. 이들이 또한 카를 5세에게 물린겨 돈이.
카를 5세가 이탈리아전쟁과 오스만전쟁에 바다에 투자하면서 돈을 써야만 했걸랑.
이걸 안 갚고 죽어. 이 빚을 받은게. 스페인의 펠리페2세인거야. 오스트리아.는 자유롭고.
이 펠리페2세도 전쟁 할 수밖에 없고. 해서리 이전 썰했듯이. 지금 유럽 문명은 저 카를과 아래 세 펠리페 한테 신세를 진거야 저때.
디폴트를 선언하는겨 돈 갚을 꺼 없다고.
제노바.랑 푸거와 웰저 들은 저것때메 망한거야. 저때부터 포트폴리오 이야기가 나오는겨 어찌보믄.
스페인애들이 미안하잖아. 제노바에겐 그래도. 자기땅 옆이라 자기들 금고를 제노바로 좀 주는거야. 스페인이 신대륙 식민지 금은을 제노바로 주는겨. 제노바가 그나마 이것때메 숨통이 트인겨.
헌데 말야. 결국은 얘들은 나중에 스페인 후계자 전쟁때도 스페인에 붙어. 이땐 부르봉 스페인이지.
사보이는 달라. 얘들은 프랑스에서 나와서 카를에 붙다가 다시 배신하고 프랑스에도 붙어. 그리고 스페인 후계자 전쟁. 이건 큰 전쟁이야. 이땐 오스트리아 에 붙어서 이기는겨 이걸. 붙다 는 여서 연합하다.
저때 사보이가 시칠리아섬을 받고. 오스트리아랑 사르디니아를 맞바꾸면서 사르디니아 킹덤이 되면서 이탈리아를 통일하는건데.
제노바는 저때 망한겨 잘못 붙어서.
이들은 망쪼가 베네치아에 지면서 끝의 시작을 간거야.
저때 하튼. 콜럼버스.는 제노바에서 희망을 못보고. 포르투갈을 가고 스페인을 간거야.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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