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이 1317년 데니스의 해군 창설하면서 백년 만에 열매를 맺기 시작해. 1415 세우타.를 점령하는 거야. 아비스 가문 시작인 주앙1세와 그 걸출한 자식들로.
역사는 우연이란게 없어. 인간사란 우연이란게 없어. 모든건 이유가 있어.
터닝 포인트.란건 오래된 인과의 보이지 않은 듯한 쌓인 힘들의 보임 일 뿐이야.
포르투갈은 킹덤 차원에서 사유를 쌓고 모아서리 기반을 다 만든거야. 킹덤이 조직적으로 꾸려나가.
스페인은 백년 지나서 시작한거야. 1492년. 외지인 제노바사람 콜럼버스.에 투자한겨. 돈만. 그 배들은 다 민간업자꺼야. 킹덤차원에서 갖고 있는 것은 단지 권리.를 주는 겨. 돈만 처음 대준겨. 이게 다야.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사하라 루트를 뚫으면서 금과 은을 갖고 가고.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직접 교역을 하면서 이익을 챙기는 걸 백년 가까이 보는겨. 레콩퀴스타 하면서 마무리가 되자마자 바로 시작을 해. 헌데 스페인은 갖고 있는게 전혀 없어. 정보가 전혀 없어. 포르투갈을 훔쳐본 콜럼버스.가 다야.
이어서 헨리7세의 잉글랜드. 프랑수아1세의 프랑스도 조바심이 생겨. 이들도 킹덤차원에선 아무런 인프라가 없어. 킹덤이라는 네임벨류란 권력과 투자할 돈 밖에 없어. 사람도 없어. 외지인을 스카웃하는거야. 처음엔 콜럼버스같은 애들이 막와. 시큰둥하다가 콜럼버스가 서쪽항로에서 먼가 발견하고 그제서야 이거 먼가 늦었다 하며 프랑수아는 베라짜노. 피렌체 사람을 스카웃해. 헨리7세는 나폴리 태생의 존 캐벗. 이 사람은 베네치아 시민권을 받아. 베네치아가 만든 인간이야 존 캐벗은. 다음 래브라도 찍은 포르투갈 사람 래브라도.도 받아. 포르투갈의 후원에서 발견한걸 자기들이 갖고오려는겨.
달라 전혀 그 시작들이. 포르투갈은 엄청난 나라였어 그래서. 리더가 비전과 전략을 제대로 본거야 세상의.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자기 처지를 알아. 해서. 이들이 할 수 있었던건 스카웃해서 권리증서를 주는겨.
A charter is the grant of authority or rights, stating that the granter formally recognizes the prerogative of the recipient to exercise the rights specified. It is implicit that the granter retains superiority (or sovereignty), and that the recipient admits a limited (or inferior) status within the relationship, and it is within that sense that charters were historically granted, and that sense is retained in modern usage of the term.
The word entered the English language from the Old French charte, via Latin charta, and ultimately from Greek χάρτης (khartes, meaning "layer of papyrus"). It has come to be synonymous with a document that sets out a grant of rights or privileges.
이게 차터. 라는거야. 차터.가 마그나 카르타 할때의 카르타. 지만 말야. 증서야. 인증서. 권력이 확인해 주는겨. 학교를 세우면 이 차터를 줘. 헌데 더 나아가서. 모든 문서는 이당시 다 차터. 카르타. 야. 이건 문서야.
카르타. 라는건 그리스어 카르테스 khartes. 파피루스의 레이어.라는게 저기서 이파리야. 파피루스.가 파피루스 라는 식물 줄기의 줄기안에 진액들을 발라내서 다져서 말린 거걸랑. 종이가 나오기 전에 문서를 파피루스.로 사용한겨 고대 이집트 부터. 저건 귀한겨. 파피루스.가 하류에서 서식안해. 나일강 깊은 물에서 서식해 저게. 희소한거야 흔하지 않아. 저걸 길게 돌돌말이 한권책으로 쓴게 굴리다 볼륨 하는 책이야. 북은 게르만말이야. 후대에 나온 말이야. 게르만애들이 저 파피루스 한장을 북.한거야. 이게 북 책이 된겨 지금.
한장 끊은걸 카르테스 하는겨. 카르테스란 말은 파피루스.의 이파리 를 칭하는 이름이야. 고대 그리스어로. 짧게 끊은 파피루스 한장을 카르테스 한거야. 이건 귀한 겨 그 상품 자체가. 해서 여기에 쓰는 글도 귀한거야 이 문서 자체가. 여기에 씰을 찍는겨 도장을. 이 카르테스.는 권위가 있는겨 그래서. 씰을 누가 찍느냐에 따라. 물론 귀족이상이 쓰겄지. 편지도 여기에 쓰고. 해서 편지도 귀한겨. 글도 촘촘하게 써야해. 성경이 대부분 저 카르테스 들의 모임.이야 이걸 코덱스 하는겨 지금 책 제본 형태가.
저 항해의 시대. 모험의 시대때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저 카르타. 를 남발하는겨. 니가 찾는 땅은 너에게 그 이익의 얼마를 주마. 땅의 권리도 주마. 그 뒤에는 우리 킹덤이 있다. 그 사버런티. 주권이 이 카르타. 차터 한장에 있는거다. 너와 나의 약속이다.
A letter of marque and reprisal (French: lettre de marque; lettre de course) was a government license in the Age of Sail that authorized a private person, known as a privateer or corsair, to attack and capture vessels of a nation at war with the issuer. Once captured, the privateer could then bring the case of that prize before their own admiralty court for condemnation and transfer of ownership to the privateer. A letter of marque and reprisal would include permission to cross an international border to effect a reprisal (take some action against an attack or injury) and was authorized by an issuing jurisdiction to conduct reprisal operations outside its borders.
프라이빗티어. 공인된 해적이라 하지만. 해적이 아냐 이 유럽애들은. 전쟁 의 용병이야. 자기들 상인들에 대한 자기방어와 보복증서야. 킹덤이 해군이 없어. 상인의 손해를 킹덤이 보유한 해군으로 보복하거나 회복해줄 그런 해군이 없어 킹덤은. 당사자 나 제 삼자에게 그런 권리를 주는겨. 이유가 명확해야해. 피해받은 상인은 그 근거를 상세하게 제출해야해. 그걸 보고 확인해서. 그럼 니가 복수하고 니가 뺏긴걸 약탈해라. 니가 약탈한것은 허가한다 재판않겠다 하는겨 저건. 더하여 용병으로 쓰는거야. 유럽애들은 서로가 전쟁의 중세 천년이었고 근대까지도 이웃끼리 전쟁이야.
마크. marque. 가 mark 이 마크란 같은겨. 마크는 표시하는겨. 확인증이란거야. 카르타 제목이 레터 오브 마크.야 확인증서야. 이걸 카르테스.로 씰을 찍어서 주는겨.
In common law, a writ (Anglo-Saxon gewrit, Latin breve)[1] is a formal written order issued by a body with administrative or judicial jurisdiction; in modern usage, this body is generally a court. Warrants, prerogative writs, and subpoenas are common types of writ, but many forms exist and have existed.
잉글랜드애들의 리트. 라이트 쓰다에서 나온 명사야. 이것도 카르테스.에 써서 주는겨. 킹덤이나 영지의 군주들 공식 문서야 저게. 행정문서 사법문서. 여기에 워런트. 독점적 리트. 소환장. 워런트 라는 것도 권리를 주는 문서인데 먼가를 하다가 혹여나 불법적으로 보이는 행위를 해도 허가해 준다는겨. 저런 워런트. 라는 리트.에 레터 오브 마크. 란 제목을 달아 주면 걘 프라이빗티어.의 자격인거고.
유언장. 윌 will 도 이런거야. 개인의 소망을 담은 권위있는 공식 문서야. 이게 다 카르테스. 였던거야.
이 카르테스.가 파피루스 로 만든 것일 수도 있고. 동물 가죽. 대게 양가죽을 써. 이걸로 카르테스 라는 차터로 쓸수 있어.
Conquistadors (/kɒnˈkɪstədɔːrz/; from Spanish or Portuguese conquistadores "conquerors";
Spanish:
Portuguese:
[kũkiʃtɐˈdoɾis, kõkiʃtɐˈðoɾɨʃ]) is a term used to refer to the soldiers and explorers of the Spanish Empire or the Portuguese Empire in a general sense.[1][2] During the Age of Discovery, conquistadors sailed beyond Europe to the Americas, Oceania, Africa, and Asia, conquering territory and opening trade routes. They colonized much of the world for Spain and Portugal in the 16th, 17th, and 18th centuries.
해서. 저 모험의 시대. 당시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정부 공식 문서 카르테스.를 발행하면서 자기들 땅을 넓혀. 킹덤 차원에서 돈을 투자할 수도 있고. 또는 문서만 줄 수도 있어. 그럼 이 문서. 카르테스. 차터를 쥔 사람이 피티 하면서 마케팅해서 투자금을 모으는겨. 배를 사거나 만들고 돈을 모아서 선원들과 병사들과 무기들을 모으는겨.
개인이 킹덤의 배후 없이는. 그건 불법이거니와 아무런 보증도 안돼. 쟤들은 법의 땅이야. 이 중세는 고대 로마로 부터 법으로 지배되는 세상이야. 킹덤의 잣대로 모든게 정해지는거야. 혼자 아무것도 함부로 취할 수가 없어.
이 법치 라는게 이게 문명의 가장 큰 잣대야.
가장 야만의 땅 들에서 그래서 대는게 인민재판이고 홍위병 놀이야. 여긴 법이 없어. 자기들만의 이념의 잣대가 법이야. 여론재판이 법의 우위에 서는거야. 중국이애들이 이따위 짓 한거고. 북조선이 이런 땅이야. 겉으로만 법이 있는겨. 요즘은 김정은 위인. 공산당이 좋아요. 정부 자체가 저런 분위기로 정치 외교를 하니까 지옥을 만들 놀이들이 시작이 된거지.
이 땅바닥은 참 미개한겨 그래서. 저런 걸 빗대어 보더라도 말이야.
저당시도 그래서. 프라이빗티어. 야 일종의. 공인된 바다의 용병. 헌데 저당시는 저들에 대해서는 닉을 특별히 부여해. 콘퀴스타도레스. 정복자들. 저들에게 킹이 카르테스.를 발행하고 서로간 약속을 보증하고 시작하는거야.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이런 콩키스타도레스.가 신대륙을 가는겨. 이 방법외엔 없어.
포르투갈.은 킹덤차원에서 가는겨. 카자. 카사 의 권위아래. 이 카자.가 모든 계획을 설계해. 선박 수. 제조. 구입. 선원 보급. 병사 보급 계획 등. 그 보상 체계. 포르투갈이 초기에 세상을 다 가진 이유야 저게. 해서 포르투갈의 콩키스타도레스.는 성격이 좀 달라 다른 곳과.
또한 포르투갈.도 개인들이 막 찾아와. 특히나 서쪽항로가 발견되고선. 이들에게 카르테스를 발행하는겨. 이 권위아래 이들은 가는거고. 즉 포르투갈도 부수적으로 잉글랜드 프랑스 애들의 방법을 병행해서 사용한거지.
Juan Ponce de León[1] (
Spanish pronunciation:
[ˈxwam ˈponθe ðe leˈon]; 1474 – July 1521)[2] was a Spanish explorer and conquistador born in Santervás de Campos, Valladolid, Spain in 1474. Though little is known about his family, he was of noble birth and served in the Spanish military from a young age. He first came to the Americas as a "gentlemen volunteer" with Christopher Columbus's second expedition in 1493.
후안 폰세 데 레온. 콜럼버스 두번째 항해때 따라간 사람이야. 귀족이야. 이사람이 플로리다.를 처음 발견하고 만진사람이야. 쿠바 바로 위야. 바다로 간겨.
In 1513, Ponce de León led the first known European expedition to La Florida, which he named during his first voyage to the area. He landed somewhere along Florida's east coast, then charted the Atlantic coast down to the Florida Keys and north along the Gulf coast, perhaps as far as Charlotte Harbor. Though in popular culture he was supposedly searching for the Fountain of Youth, there is no contemporary evidence to support the story, which all modern historians call a myth.[3]
Ponce de León was a member of this expedition, one of 200 "gentleman volunteers."
1513년. 콜럼버스 다음 시대를 여는겨 이제. 이사람은 콜럼버스 2차 갈때. 당시 궁금해서 따라간 젠틀맨들. 귀족애들이야. 자발적으로 간겨 따라서. 200명이. 그러다가 저기에 욕심이 생겨서리 탐험을 시작해. 콜럼버스 장남 디에고.하고도 다투기도 하고. 너 그러지말고 너도 찾아봐라 페르디난도 가 카르테스 주고. 해서 찾으러 가는겨. 여기 원주미들이 드세. 사람들도 죽어. 그냥 와.
The Narváez expedition was a Spanish journey of exploration and colonization started in 1527 that intended to establish colonial settlements and garrisons in Florida. The expedition was initially led by Pánfilo de Narváez, who died in 1528. More men died as the expedition traveled west along the unexplored Gulf Coast of the present-day United States and into the American Southwest. Only four of the expedition's original members survived, reaching Mexico City in 1536.
나르바에스 원정. 엑스퍼디션. 이란건 익스플로어.랑 달라. 특정한 목적이 있는 여정.이야. 저 위에 큰 대륙이 있는걸 알아. 저기가 전초기지가 되는겨. 해서 카를 5세가 직접 임무를 주는거야. 저기에 정착지들과 군 주둔지를 확보하라고. 1527년 출발을 해. 히스파니올라 에서 출발해서 쿠바섬 에서 플로리다.를 가서리. 해변을 쭉 돌아서 멕시코만을 둘러서리 미시시피강 건너서 지금 멕시코 시티.로 오는겨. 멕시코시티.라는 테노치티틀란.은 멕시코 남부야.
Pánfilo de Narváez (
Spanish pronunciation:
[ˈpaɱfilo ðe naɾˈβae̯θ]; 147?[3]–1528) was a Spanish conquistador and soldier in the Americas. Born in Spain, he first embarked to Jamaica in 1510 as a soldier. He came to participate in the conquest of Cuba and led an expedition to Camagüey escorting Bartolomé de las Casas. Las Casas described him as exceedingly cruel towards the natives.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 소위 인권수도사 바르톨로메.를 수행하기도 했는데 정작 이 수도사는. 나르바에스.가 잔인하다고 써. 콜럼버스 죽고 바로 이제 이들의 시대야. 이사람도 귀족이야. 헌데 저 200명의 젠틀맨.이 콜럼버스 1493년 2차에 자발적 참여 하지만. 젠틀맨이야 얘들은. 귀족중에 낮은 귀족에 재산도 별로 없어. 레콩퀴스타 끝나고 직업을 잃은거야 얘들은.
저걸 큰그림으로 보면. 대륙에선 지킹엔과 후텐.이 독일 농민전쟁 전에 기사들. 리터들이 반란할때 말야. 여기에 기사들이 모인거야. 배런 이하 낮은 애들이. 중세가 끝난다는건 상공업이 흥하고 지주 중심의 영지제도가 흔들린다는겨. 땅 중심의 돈벌이가 안되 점점. 땅은 한정되고 기사들은 더 넘쳐나고. 여기 후발주자애들이 모인거걸랑. 이들이 반란하고 더 용병화되면서 더하여 약탈이 더 심해지는거야. 전쟁하러 가는 곳마다 이제는 도시가 달라졌어. 욕심을 발동하는겨. 30년 전쟁이 그 절정이야 이 용병화된 낮은 기사직 애들의 약탈이. 로마약탈이 그 시작점이었던겨 1527년에.
스페인도 레콩퀴스타 끝나면서. 이들이 일자리가 사라진겨. 헌데 바로 콜럼버스가 저길 발견한거야. 200명이 자발적으로 따라간건. 다시말해서 일자리 찾으러 간겨. 젠틀맨이라는 낮은 귀족층들. 먹고 살러 간거야. 기가막힌 타이밍이야. 해서 스페인은 상대적으로 내란이 저당시 적었던거야. 페르디난도 죽고 16살의 플랑드르 출생의 카를5세가 왔을때 귀족층들이 코무네 만들면서 반기든건 얘들은 높은 귀족이야. 아라곤에선 길드들이 반기를 들어. 헌데 바로 실패해. 왜냐면 말야. 정작 낮은 층 들의 기사들이 저기에 합세를 안한겨. 신대륙에 노다지가 있는데 저따위걸 왜해. 이들이 다들 콘키스타도레스.가 되서리 저길 가기도 바쁜데.
나르바에스 이야기를 하기전에. 에르난 코르테스. 를 먼저 걸고 가야해.
Hernán Cortés de Monroy y Pizarro Altamirano, Marquis of the Valley of Oaxaca (/kɔːrˈtɛs/;
Spanish:
[eɾˈnaŋ koɾˈtes ðe monˈroj i piˈsaro]; 1485 – December 2, 1547) was a Spanish Conquistador
콜럼버스가 1451년생이야. 플로리다 처음 발견한 후안 폰세. 나르바에스 원정대의 나르바에스. 아즈텍 점령한 코르테스. 모두 콜럼버스 다음 세대야. 이들의 시대가 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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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tés reached Hispaniola in a ship commanded by Alonso Quintero, who tried to deceive his superiors and reach the New World before them in order to secure personal advantages. Quintero's mutinous conduct may have served as a model for Cortés in his subsequent career. The history of the conquistadores is rife with accounts of rivalry, jockeying for positions, mutiny, and betrayal.[7]
Upon his arrival in 1504 in Santo Domingo, the capital of Hispaniola, the 18-year-old Cortés registered as a citizen;
코르테스.가 1504년. 18살의 나이에 히스파니올라. 산토 도밍고에 처음 도착해. 여기가 본부야. 이때 선장이 알론소 킨테로. 자기 상사들을 속이고 사쩍 이익을 취하는걸 본겨. 이런게 코르테스의 롤 모델이 되었다는거지.
Diego Velázquez de Cuéllar (
Spanish:
[ˈdjeɣo βeˈlaθkeθ ðe ˈkweʝaɾ]; 1465 in Cuéllar, Spain – c. June 12, 1524 in Santiago de Cuba) was a Spanish conquistador. He conquered and governed Cuba on behalf of Spain and moved Havana from the south coast of western Cuba to the north coast, placing it well as a port for Spanish trade.[1]
디에고 벨라스퀘스 데 퀘야르. 쿠바를 정복하고 일명 총독이야.
코르테스.도 하류귀족이야. 저때부터 여기에 취직을 한거지. 나이 26세에 디에고.의 참모로 일을해.
In 1518, Velázquez put Cortés in command of an expedition to explore and secure the interior of Mexico for colonization. At the last minute, due to the old argument between the two, Velázquez changed his mind and revoked Cortés's charter. He ignored the orders and, in an act of open mutiny, went anyway in February 1519. He stopped in Trinidad, Cuba, to hire more soldiers and obtain more horses. Accompanied by about 11 ships, 500 men (including seasoned slaves[10]), 13 horses, and a small number of cannon, Cortés landed on the Yucatan Peninsula in Mayanterritory.[11] There he encountered Geronimo de Aguilar, a Spanish Franciscan priest who had survived a shipwreckfollowed by a period in captivity with the Maya, before escaping.[11] Aguilar had learned the Chontal Maya languageand was able to translate for Cortés.[12]
33세에. 쿠바 총독 디에고.가 코르테스에게 멕시코 안쪽으로 들어가라는거지. 여기 일명 사령관을 하는겨. 그러면서 아즈텍의 몬테주마를 만난거야.
벨라스퀘스.가 코르테스보다 스무살이 많아. 총독에. 헌데 시작부터 코르테스가 반기를 들어. 벨라스퀘스가 확인증. 자기가 쓴 카르테스.를 무효로 해. 그래도 이걸 무시하고 가. 1519년에 출발한거야. 그리고선 가다가 병사들을 더 모아. 배 11척과 5백명 병사들에 말 13마리. 로 쿠바섬에서 유카탄 반도에 닿은겨. 여긴 마야문명이야. 지가 걍 스페인땅 선언하고 얜 북진을 하는거지. 나중 마야애들이 가장 질기게 싸워. 가다가 헤로니모 데 아길라르. 프란시스코 사제를 만나. 난파되어서리 마야족 포로신세. 마야언어를 아는거야.
La Malinche (
Spanish pronunciation:
[la maˈlintʃe]; c. 1496 or c. 1501 – c. 1529), known also as Malinalli
[maliˈnalːi], Malintzin
[maˈlintsin] or Doña Marina
[ˈdoɲa maˈɾina], was a Nahua woman from the Mexican Gulf Coast
라 말린체. 멕시코만 원주민이야. 이여자랑 저 수도사랑 같이 코르테스 통역을 하는겨. 같이 몬테주마도 만나고.
라 말린체.가 문제적 여자야 멕시코와 중남미 에서는. 우리식으론 친일 적폐 중에 적폐야.
이 여자가 코르테스.의 애인이 돼. 코르테스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아. 이 아들이 메스티조. 라는 유럽인과 원주민의 시작이야.
Martín Cortés el Mestizo (
Spanish pronunciation:
[maɾˈtiŋ koɾˈtes el mesˈtiθo]; c. 1523 – c. 1595) was the first-born and illegitimate son of Hernán Cortés and La Malinche(doña Marina),
스페인어론 메스티쏘. 이름이 박혀있어. 마르틴 코르테스 엘 메스티소. 지금 수많은 라틴애들의 시조님이여 이분이
Because of her controversial symbolization, a statue of La Malinche, Cortés, and their son Martín was removed soon after it was erected in Coyoacan, in the outskirts of Mexico City, in 1982. The statue was intended to be respectful of her trials and to emphasize the mestizo (or mixed-blood) character of the nation. However, student protests erupted: the protesters wanted no monument that presented Malinche in a positive light, for in their minds she was too closely associated with domination by outsiders and with betrayal.[5]
1982년에 멕시코시티 부근에 라 말린체. 코르테스. 아들 마르틴.의 동상을 없애. 학생들이 굴욕적이다 하는거지. 저 여자는 외세와 배반의 상징이란 거지.
조오오온나게 유치한거지. 똑같애 저런건. 중남미나 무슬림이나 중국이나 인도나.
그럼 몬테주마.는 위대한거냐? ㅋㅋㅋ. 사람들 태워 죽이며 제사지냈다는건 양놈들의 백인우월주의 사관이고 조작이란거지.
자기들은 위대한 아즈텍 몬테주마의 후손이고. 양키들때메 저리 된거지.
By the time he arrived in Tenochtitlan the Spaniards had a large army. On November 8, 1519, they were peacefully received by Moctezuma II.[15] Moctezuma deliberately let Cortés enter the Aztec capital, the island city of Tenochtitlan, hoping to get to know their weaknesses better and to crush them later.[11]
유카탄 지나서 오른쪽 해변따라서 베라쿠르스 지나고. 당해에 수도 테노치티틀란.인 멕시코시티.에서 몬테주마2세를 만난겨. 환대를 해줘.
이 코르테스.에 대한 기록이 적어. 해서 벼라별 이야기가 많아. 몬테주마애들이 저들을 자기들 전설의 신.으로 여겨 대접했다느니. 왕권을 주겠다란건 반어적인 아즈텍 인사법이라느니.
하튼 대접을 잘 받고 잘 지냈어. 통설은 진짜 신으로 여기다. 원주민들이 막막 칼도 만지고 이게 머여. 싕기해하고. 그런데 말야. 코르테스.가 소식을 들어. 자기들 병사들 수명이 살해를 당해. 원주민애들이 진짜 신이야 의심하고 찔러보니까 피가 나는거지. 몬테주마를 인질로 잡고 배후에 있게 되는거야 코르테스네들이.
이때 코르테스.를 잡을려고 쳐들어오는게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 병력이야. 쿠바총독이 취소했는데 코르테스가 남은 애들 모으고 갔걸랑. 저건 반란군인겨 벨라스퀘스. 쿠바총독입장에선. 나르바에스.를 보낸거야.
나르바에스.랑 전투하기 위해서 코르테스.가 직접 나가 테노치티틀란.을 비우고. 애들에게 맡겨.
The Massacre in the Great Temple, also called the Alvarado Massacre, was an event on May 22, 1520, in the Aztec capital Tenochtitlan during the Spanish conquest of Mexico, in which the celebration of the Feast of Toxcatl ended in a massacre of Aztec elites.[1][2]
이때 터진 사건이 알바라도 학살. 사건이야. 코르테스가 비울때 쟤들 축제일이걸랑. 원주민들이 모여서리 춤추고 놀때 남아있는 스페인애들이 저들을 다 죽이는겨 남녀노소할것 없이.
얘기가 달라. 아즈텍 쪽은. 그때 원주민들이 치장한 금덩어리에 스페인애들이 눈돌아가서리 뺏으려고 죽였다. 스페인버전은. 저 신전에 사람을 태워죽이는 짓을 막다가 일어난 거다. 또는 축제를 핑게로 사람들 모아서리 무기를 갖고 반란을 꿰했다.
지들 보고 싶은 대로 해석하는거지.
Diodorus Siculus asserts that a sacrifice acceptable to the Celtic gods had to be attended by a druid, for they were the intermediaries between the people and the divinities. He remarked upon the importance of prophets in druidic ritual:
- "These men predict the future by observing the flight and calls of birds and by the sacrifice of holy animals: all orders of society are in their power... and in very important matters they prepare a human victim, plunging a dagger into his chest; by observing the way his limbs convulse as he falls and the gushing of his blood, they are able to read the future."
There is archaeological evidence from western Europe that has been widely used to back up the idea that human sacrifice was performed by the Iron Age Celts. Mass graves found in a ritual context dating from this period have been unearthed in Gaul, at both Gournay-sur-Aronde and Ribemont-sur-Ancre in what was the region of the Belgae chiefdom.
디오도로스 시켈리오테스. 시칠리아섬의 디오도로스. 그리스 사람이야. 기원전 1세기. 정확한 생년은 몰라. 카이사르 랑 겹쳐. 켈트족애들 중에 드루이드 족의 이야기. 사람을 희생제물로 놓고 단도로 찔러 가슴을. 그리곤 그 사람이 쓰러지면서 팔다리가 덜덜떠는거. 피가 솟구치는거도 미래를 점친대.
저런건 고고학적으로 증거가 있다 서유럽에. 청동기 켈트에 의해 저런 짓들. 무덤들이 발굴된걸 보믄 저렇고.
카이사르.도 갈리아 전쟁기에서 드루이드 들이 산사람들을 저러는걸 봐. 죄수가 없을땐 아무나 희생제물이 돼. 카이사르가 아무리 관용이라도 어이가 없는거지. 이들이 잉글랜드 스톤헨지로 도망가고. 아일랜드로 튀는거야. 카이사르가 쟤들 잡으러 가는겨.
저따위 드루이드.가 먼 신비한듯이 써대고.
정사일에 점을 친다. 장차 불로 지내는 제사를 하(河, 황하)에 지내려는데, 우리에서 기른 소와 첩을 강물에 빠뜨릴까? (丁巳卜:其燎于河, 牢沈妾?)
저 나무위키에 있는 한문번역 은 정말 눈뜨고 못볼 수준이고. 은나라라고도 하는 상나라. 를 세운 분이 탕왕 이라잖냐. 우리 민주 님들의 민주.란 말이 처음 나오게 하는 분이야. 민노주. 하늘이 상탕왕에게 민의 주인.이 되라 하시다. 민의 주인. 이 뜬굼없이 민.이 주인. 인 이 되서리 민주.란 두글자의 시작이걸랑 데모크라시.를 저리 번역하면서.
조온난게 한심한건데 진짜.
저 민주.의 시작인 탕왕의 상나라.가 인간 제물.로 제사지내는 중국이의 드루이드 선배님들이야 쟤들이.
사람을 제사 제물로 쓰는게 흔한거지 갑골문 조각들을 해석해보니.
西門豹(?-?),中國戰國時代魏國安邑(今山西夏县)人,政治家及水利專家,曾立下赫赫战功。魏文侯在位期間,受翟璜推薦擔任鄴令,而河內稱治。西門豹一生最著名的功績就是鄴令任內,破除「河伯娶婦」的陋習,又帶領民眾開鑿了十二條運河,引河水灌溉民田[1],是为西门豹渠。
서문표. 시멘바오. 중국 전국시대의 위나라 위문후 때의 인물. 위문후가. 지금 업. 여기가 조조 원소나올때 원소가 수도하던곳이고 이후 자잘하게 싸울때 이 업성을 수도로 자주 취해. 하남과 하북의 경계에 하북에 있는겨. 여기 수령자리를 준거야. 하내. 라는 지금 하남성 북부를 다스려. 이사람이 하백취처.로 유명하걸랑. 여전히 애들이 강의 신. 하백님을 위한답시고 마을 처녀들을 수장시키는겨. 무당들이 마을에 여자들 보고 지들이 선택해서리 길일을 잡아서 수장을 시켜 매년. 서문표가 저 무당들을 다 수장을 시켜.
저게 전국시대에도 하는겨 저따위 짓을. 저게 기원전 4세기야.
심청전.이 그게 인신공양이야 그게. 그따위 이야기를 좋다고 .
충효절.이라는 이념에 얼마나 쩔고 쩔었으면. 바닥의 이야기도 저따위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서리 눈물 을 하는거지. 음청난거야 이 유교란건.
Human sacrifice was common to many parts of Mesoamerica. Thus the rite was nothing new to the Aztecs when they arrived to the Valley of Mexico, nor was it something unique to pre-Columbian Mexico. Other Mesoamerican cultures, such as the Purépechas and Toltecs, performed sacrifices as well and from archaeological evidence, it probably existed since the time of the Olmecs (1200–400 BC), and perhaps even throughout the early farming cultures of the region. Although the extent of human sacrifice is unknown among several Mesoamerican civilizations, such as Teotihuacán,[1] what distinguished Maya and Aztec human sacrifice was the importance with which it was embedded in everyday life.
콜럼버스들이 갔을때의 메조 아메리카. 메조가 가운데. 마야 아즈텍 들의 인신 공양.은 조온나게 흔한거다. 기원전 1천전후부터 온 듯. 저때가 서기 1500년이야. 저때도 저을 하는거야. 테오티와칸. 은 특이해서 이런짓을 안했대. 이게 마야와 아즈텍과 달라 얘들은.
Moctezuma had many wives and concubines but only two women were his Queens – Tlapalizquixochtzin and Teotlalco. He was also a King Consort of Ecatepec because Tlapalizquixochtzin was Queen of that city.
His many children included Princess Isabel Moctezuma — and sons Chimalpopoca (not to be confused with the previous huey tlatoani) and Tlaltecatzin.[3]
이런 들의 공통점. 처첩들 조오온나게 많고. 개인전용 창녀촌을 두는겨 저게. 자식들 조오온나게 뿌리고.
조선왕조에선 저러면 정력좋은 대왕님이 어이구 후손도 많으셔라. 을메나 양생을 잘하시쓰믄 저리 하실수 이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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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가 열다섯 여자를 비로 들이면. 어이구 우리 대왕께서 소식을 하시고 회춘도 하시네요. 자 여러분 이 대왕님의 식사를 배우고 우리도 양생해유. 이게 21세기에 서점에서 미디어에서 하하호호 방송하는겨 저딴 . ㅋㅋㅋ.
얘 이전에 오십년 전이 몬테주마 1세. 재임. 1440-1469
His coronation[5] was a large ceremony, involving many human sacrifices of prisoners.
몬테주마 1세.가 아즈텍에선 그래도 성군이야. 코르테스에 죽은 2세때문에 얘가 텀탱이로 같이 욕먹는데 같은 이름이라고. 이 몬테주마 1세 대관식을 성대하게해. 죄수들을 인신 공양 제물로 쓰면서. 성군의 잣대야. 인간들 제물로 쓰는 숫자가 ㅋㅋ.
Moctezuma supported the order for an increase of human sacrifices to please them.[14]Thus, began the war to accumulate as many victims as possible for sacrifice.
이 몬테주마1세때 전쟁을 하는 이유가. 신들을 기쁘게 하려면 인간제물이 많아야 해. 전쟁을 그래서 하는겨.
In 1521, Spanish explorers such as Hernán Cortés conquered the Aztec capital of Tenochtitlan and made observations of and wrote reports about the practice of human sacrifice. Bernal Díaz del Castillo, who participated in the Cortés expedition, made frequent mention of human sacrifice in his memoir True History of the Conquest of New Spain.[2][3] There are a number of second-hand accounts of human sacrifices written by Spanish friars, that relate to the testimonies of native eyewitnesses. The literary accounts have been supported by archeological research. Since the late 1970s, excavations of the offerings in the Great Pyramid of Tenochtitlan, and other archaeological sites, have provided physical evidence of human sacrifice among the Mesoamerican peoples.[4][5][6]
코르테스 들이 본격적으로 마야랑 아즈텍이란 중미와 멕시코로 들어가는데. 인신공양을 직접 목격하는거지. 외계인들이 지은 쟤들 피라미드 보믄 그 흔적이 흔한거고.
The conquistadors Cortés and Alvarado found that some of the sacrificial victims they freed "indignantly rejected [the] offer of release and demanded to be sacrificed".[17]
코르테스랑 알바라도.가 희생 제물이 될 사람들을 풀어줘. 헌데 오히려 욕처먹어. 신에게 바쳐지는게 영광인건지 아니면 신의 뒷다마가 무서운건지.
나중에 미국 남북전쟁할때 말야. 백인들이 흑인노예들에게 그러는겨. 당신들은 자유요. 나가슈.
싫어유. 나가믄 혼자 머먹고 살라꼬. 난 계속 노예할튜. 자유는 나빠유. 자유는 죽음으로 가는 길이유.
이 노예 에 물든 개 들이 쓰잘덱 없는 자유논쟁을 하는겨. 아 참 끔찍한거야. 자유는 나뻐 지워. 인민 민주주의냐 그럼. 민주.의 앞의 괄호는 말야. 인민 이야 저건. 국민 이란 말을 이들은 싫어하걸랑. 국가 나뻐 . 이념이 좋아. 아 저 고매하신 소설가 가 눈빛 아련 하민서리 한손 휘적 대미 하늘 보는 듯. 인간은 이념을 위해 사는 겁니다.
참 미친들의 나라지 저게. 저런들이 이땅바닥에서 존중받아 마땅한 선생님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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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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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축제일 학살이 1520년 5월 22일. 코르테스가 몬테주마 만난게 전해 11월이야. 반년이 지난겨.
코르테스.가 나르바에스.랑 싸우러 갈때 2백명은 남겨두고 3백명 데리고 간거야. 나르베에스.는 1천명 병력이야. 이걸 이겨 코르테스가. 그리고 돌아와보니. 애들은 다 쫓겨난겨. 몬테주마는 죽었어. 스페인애들 말은 몬테주마가 원주민들 투석질로 죽었다. 아즈텍애들은 스페인애들이 죽였다. 몰라.
그만큼 쟤들은 아무 힘이 없는거야. 원주민들이 코르테스쪽에 붙어. 이게 잉카도 마찬가지야. 똑같애 저 야만의 구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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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쿠바.에 지원요청하고. 합세해서 다시 회복해. 해서 아즈텍 점령을 1519-21. 실전은 반년도 안걸린겨.
아즈텍은 몬테주마2세 다음다음즘에 마지막 붙어. 나머지애들이 계속 싸우고. 마야 애들하고도 본격적으로 싸워. 코르테스.가 여긴 자기 부하애들 보내는거야. 그러면서 과테말라 온두라스 점령해나가고. 자기는 멕시코에서 아즈텍애들이랑 싸우면서 저기서 얘가 기반을 다져 카스티야의 스페인 체제를.
코르테스.가 카를5세에게 선물 듬뿍주는겨. 총독 벨라스퀘스.는 저 앤 반역자인겨 카를에게 저거 짤라유 할테고.
카를 입장에선. 다 자기 재산이야 스페인의 힘이고. 이땅같으면 사지를 찢어도 수천번은 찢걸랑 조선이란 왕조는.
Antonio de Mendoza y Pacheco (1495 – July 21, 1552) was the first Viceroy of New Spain, serving from November 14, 1535 to November 25, 1550, and the third Viceroy of Peru, from September 23, 1551, until his death on July 21, 1552.
안토니오 데 멘도사. 이사람이 뉴스페인.의 첫 바이서로이. 이 체제의 시작이야. 1535년에. 코르테스.가 저걸 하고 싶었걸랑 바이스로이 체제 시작할때 첫 바이스로이를. 헌데 카를이 이걸 안줘. 코르테스.의 반골기질을 안겨. 야심이 너무 쎄. 코르테스에겐 마퀴스.라는 후작 타이틀을 줘. 뉴 스페인안에 일부 지역을 다스리게만 하는거지.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 가 쿠바 총독 벨라스퀘스.의 명으로 코르테스 잡으러 갔다가 패하고 왔걸랑. 나르바에스 에게도 코르테스.는 웬수야. 그리곤 다시 아즈텍 진압하고. 카를 5세가 나르바에스.에게 카르타.를 주는겨. 나르바에스.가 자기가 투자를 받아서리 이전에 후안 폰세 데 레온.이 발견한 플로리다를 내가 가겄다 하는겨.
조선같으면 한번 웬수는 평생 웬수 대면서 감정에 목숨걸잖냐. 쟤들은 그런게 의미가 없어. 카를도 고수야. 나르바에스에게 차터.를 발행해. 나르바에스.가 피티 하면서 투자자들 모으고 사람들 모아서리 가는겨. 다녀오는길에 수확물의 오퍼만 킹덤에 주기로 하고 킹덤의 부여한 임무는 정착지와 요새들 차지해보란겨. 킹덤차원의 공무원도 대동하겄지.
이들이 나르바에스 원정대여. 코르테스도 멕시코 먹었어 중미도 코르테스 관할이여. 나르바에스.가 화딱지 나는겨. 복수를 저런 방법으로 하는겨 난 더 큰거 먹을래.
On December 25, 1526, 카를이 라이센스. 차터를 주는 날이야. 크리스마스날. 일부러 날짜 챙긴거겄지.
On June 17, 1527, the expedition departed Spain from the port of Sanlúcar de Barrameda at the mouth of the Guadalquivir River. The total force included about 450 troops, officers, and slaves. About 150 others were sailors, wives (married men could not travel without their wives to the Indies), and servants.
The first stop on the voyage was the Canary Islands, about a week's journey and 850 miles into the Atlantic. There the expedition resupplied such items as water, wine, firewood, meats, and fruit.
스페인에서 출발하는게 그 다음해 6월이야. 육개월동안 로비 하민서리 투자받고 배 수급하고 사람 모은겨. 이전부터 이미 투자자들이 있었겄지. 이들이 나르바에스.를 찔렀을테고. 총 6백명이 가. 전투병은 450명이고. 나머지는 여자들에 선원들이야.
이전에 게오르게 도자.의 십자군 가려다가 반란 할때 말야. 이 십자군에 붙어 가는 이들이 가족들이 따라가걸랑. 이게 머냐면. 가서 밥해주는 취사병들이야 이들이. 여자들이 십자군에 따라가는겨 그래서. 먹을거 없으니 가는 사람도 있고. 여자도 가믄 애 볼 사람없으니 애들도 따라 가는거고. 해서 저 십자군이나 중세 전쟁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 뒤의 따라다니는 민들도 봐야해. 하이랜더라는 스위스용병이나 상대적 저지대 용병인 란츠크네히트 들이 움직일때도 이들을 위한 보급병들이 여자들에 창녀들도 붙어.
하튼 탐험대든 전쟁이든. 여자들도 따라가는겨.
저들 6백명이 스페인에서 히스파니올라 에서 쿠바 해서 플로리다 서쪽해변으로 가는겨.
On April 12, 1528, 플로리다 템파베이. 서쪽 만에 다음해 1528년에 도착해.
By 1532, only four members of the original expedition survived: Alonso del Castillo Maldonado, Andrés Dorantes de Carranza, Álvar Núñez Cabeza de Vaca, and Estevanico, an enslaved Moor.
4년 후에 멕시코시티.에 도착하는겨. 플로리다 서쪽해변부터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텍사스해변을 지나서리. 이들이 미시시피강을 본 최초의 유럽인들이야.
6백명 중에 오직 네명이 살아 온겨. 저기서 한명 에스테바니코.는 아프리칸이야 노예인 . 다 죽었어 4년동안. 처음 플로리다 갈때 허리케인에. 원주민들에게도 죽고. 먼 정착지니 요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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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 이야긴 말야. 저 살아남은 네명을 또 단초로 시작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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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tional Palace (Spanish: Palacio Nacional) is the seat of the federal executive in Mexico. It is located on Mexico City's main square, the Plaza de la Constitución (El Zócalo). This site has been a palace for the ruling class of Mexico since the Aztec empire, and much of the current palace's building materials are from the original one that belonged to Moctezuma II.
지금 멕시코 수도.에 멕시코 궁전. 이 있어. 얘들도 독립하자마자 킹덤 비슷하게 한두번 했걸랑. 멕시코는 지금 연방국가야. 행정부가 여기에 있는겨. 여기에 광장이 있고. 이 시작은 몬테주마2세야 코르테스 만난. 그리고 이걸 코르테스.가 라 말린체. 자기 통역해주던 애인의 아들에게 주는겨. 메스티조의 시조님. 마르틴 코르테스. 이걸 뉴스페인 만들고 이터랑 궁전을 매입을 하는겨 메스티조의 선조님한테서. 뉴스페인의 수도이자 정부가 이 건물이야 그래서. 지금도 이걸 쓰는거고.
Francisco Vázquez de Coronado y Luján (
Spanish pronunciation:
[fɾanˈθisko ˈβaθkeθ ðe koɾoˈnaðo]; 1510 – 22 September 1554) was a Spanish conquistador and explorer who led a large expedition from Mexico to present-day Kansas through parts of the southwestern United States between 1540 and 1542. Vázquez de Coronado had hoped to reach the Cities of Cíbola, often referred to now as the mythical Seven Cities of Gold, which is a term not invented until American gold-rush days in the 1800s. His expedition marked the first European sightings of the Grand Canyon and the Colorado River, among other landmarks. His name is often Anglicized as "Vasquez de Coronado".
프란시스코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 이 루한. 줄여서 바스케스 코로나도. 지금 콜로라도.라는 미국의 지명과 이름은 이사람에서 시작을 해.
Hernando de Soto (
Spanish:
c.
1500 – May 21, 1542) was a Spanish explorer and conquistador who was involved in expeditions in Nicaragua and the Yucatan Peninsula, and played an important role in Pizarro's conquest of the Inca Empire in Peru, but is best known for leading the first Spanish and European expedition deep into the territory of the modern-day United States (through Florida, Georgia, Alabama, Mississippi, and most likely Arkansas). He is the first European documented as having crossed the Mississippi River.[4]
에르난도 데 소토. 미국에 데소토. 라는 도시이름과 지명들이 많아. 중남부에. 데소토 는 이사람에서 시작해.
저 둘이 미국 역사의 시작이야. 나르바에스 원정대에 이어서.
저들이 미국을 탐험하는 시기가 비슷해. 데소토.가 빨라. 시작은 역시나 나르바에스 의 생존자들이야. 이들이 실패하고 겨우 네명 살아온겨. 다시 가는거야. 무장을 더하고. 더하여 말야. 저들을 부추기는건 역시나 호기심에 더하여. 코르테스.가 바하 캘리포니아 까지 올라갔던 이유인 7개의 황금도시들이야. 뉴멕시코주 에 있는 걸로 추정되는. 저 대륙 가운데로 가야하는겨. 길이 금과 은으로 포장되어있다는.
코로나도.는 뉴스페인.의 바이서로이. 몬데사 밑에 있는겨 멕시코시티에. 데소토.는 달라. 이사람은 잉카 점령길에 다녀온 사람이야. 잉카에서 금덩어릴 갖고오면서 부자가 되었어. 헌데 저 나르바에스 원정대의 이야기를 들은겨. 저 네명 중에 한명이 또한 책을 써서 뿌리걸랑.
쟤들 문명은. 책이 만든거야. 인쇄기 없을땐 필사하면서 제본해서 팔고.
조선 인쇄기 . 자부심 . 없느니만 못한거지. 지들 이야기외엔. 이념놀이용 외엔. 딴 이야긴 가짜뉴스지. 듣도보도말어라. 오히려 저따위 인쇄기때문에 이땅 인간들이 더 가 된겨. 생각할 능력을 잃어버리고 선동질에 놀아나는거지. 그러니 저따위 애를 리더로 뽑는거고. 이런게 다 이유가 있어. 아 끔찍기괴한거지.
코로나도.는 뉴스페인 의 멕시코시티에 있는겨. 생존자 네명이 온 곳이야. 여기서 다시 올라가는거야. 바다로 플로리다 갈 필요가 없어. 아즈텍 애들도 코르테스가 어느정도 진압을 했어. 여기서 직접 육로로 올라가는겨 북미로.
Vázquez de Coronado was the Governor of the Kingdom of Nueva Galicia (New Galicia), a province of New Spain located northwest of Mexico and comprising the contemporary Mexican states of Jalisco, Sinaloa and Nayarit. In 1539, he dispatched Friar Marcos de Niza and Estevanico (more properly known as Estevan), a survivor of the Narváez expedition, on an expedition north from Compostela toward present-day New Mexico. When de Niza returned, he told of a city of vast wealth, a golden city called Cíbola, whose Zuni residents were assumed to have killed Estevan. Though he did not claim to have entered the city of Cíbola, he mentioned that it stood on a high hill and that it appeared wealthy and as large as Mexico City.
1539년. 나르바에스 생존자들이 오고 7년 후야. 뉴스페인 체제가 1535년부터야. 코로나도.는 멕시코 북부지역 뉴갈리시아 킹덤의 짱으로 임명된겨. 뉴스페인의 관할이야. 수도사 마르코스 데 니사. 와. 나르바에스.에서 생존한 네명중에 일인 아프리칸 에스테반. 에스테바니코.를 보내는거야. 지금 뉴멕시코. 수도사만 돌아와. 에스테반은 거기 원주민에게 살해당했다고 전해. 그리고 거기에 진짜 황금의 도시. 시볼라. 가 있다고 떠드는겨. 직접 들어가보진 않았는데 걍 빈손으로 왔다하긴 쪽팔리니 과장 하는거지.
Vázquez de Coronado assembled an expedition with two components. One component carried the bulk of the expedition's supplies, traveling via the Guadalupe River under the leadership of Hernando de Alarcón.[3] The other component traveled by land, along the trail on which Friar Marcos de Niza had followed Esteban. Vázquez de Coronado and Viceroy Antonio de Mendoza invested large sums of their own money in the venture. Mendoza appointed Vázquez de Coronado the commander of the expedition, with the mission to find the mythical Seven Cities of Gold. This is the reason he pawned his wife's estates and was lent 70,000 pesos.
직접 가는거야. 뉴스페인 총독 바이스로이.도 투자를 해 마누라 땅을 담보로. 가기전에 먼저 자기 부하를 보내. 수도사 디아스.의 말이 맞나 확인해보라고 해. 다녀오고서리. 눈보라랑 살벌한 바람 때메 더 갈수도 없고. 수도사 말은 뻥인듯 하는겨. 그래도 출발해.
이 코로나도.쪽은. 오직 황금의 일곱 도시들. 찾으러 가는겨 목적이.
Vázquez de Coronado set out from Compostela on February 23, 1540, at the head of a much larger expedition composed of about 400 European men-at-arms (mostly Spaniards), 1,300 to 2,000 Mexican Indian allies, four Franciscan friars (the most notable of whom were Juan de Padilla and the newly appointed provincial superior of the Franciscan order in the New World, Marcos de Niza), and several slaves, both natives and Africans.[5][6] Many other family members and servants also joined the party.
자기 거주지. 북부 넘으면 바로 지금 미국이야. 무장한 300명 유럽인들에 2천명 가까이 멕시칸 인디언들. 나르바에스 원정대보다 규모가 서너배야. 여기에 가족들에 시종들이 줄줄이 가는겨 밥해줄라고.
이게 1540년 2월 23일. 출발이.
Francisco Pizarro González (/pɪˈzɑːroʊ/;
Spanish:
[fɾanˈθisko piˈθaro]; c. 1471 – 26 June 1541) was a Spanish conquistador who led an expedition that conquered the Inca Empire. He captured and killed Incan emperor Atahualpa, and claimed the lands for Spain.
프란치스코 피사로 곤살레스. 아즈텍 마야. 멕시코에서 유카탄 반도 에서 아래 과테말라 온두라스.까지는 코르테스.가 한거야. 이 아래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해서 콜롬비아 잉카로 가는 다른 중남미는 다른 애들이야.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점령한겨 1521년. 마야도 계속 분쟁이지만 어쨌든 선언했어 이전에. 스페인땅으로. 아래에 있던 애들이 조바심이 나는겨 코르테스 때문에.
잉카 를 점령한 인간이 저 피사로.야 잉카의 킹 아타왈파.를 죽여. 이때 이사람 수하에서 저 잉카 쿠스코를 점령하고 아타왈파를 체포할때 선두에 선 피사로의 오른팔이 데소토. 인거야.
데소토.가 저걸 공으로. 과테말라의 짱을 카를에게 요구하는데. 대신 쿠바를 담당해. 쿠바를 주면서 카를이 탐험을 지시하는겨. 게다가 나르바에스 생존자 이야기를 들었어.
Fascinated by the stories of Cabeza de Vaca, who had survived years in North America after becoming a castaway and had just returned to Spain, de Soto selected 620 Spanish and Portuguese volunteers, including some of mixed-race African descent known as Atlantic Creoles, to accompany him to govern Cuba and colonize North America. Averaging 24 years of age, the men embarked from Havana on seven of the King's ships and two caravels of de Soto's. With tons of heavy armor and equipment, they also carried more than 500 heads of livestock, including 237 horses and 200 pigs, for their planned four-year continental expedition.
생존자 이야기를 듣고 들뜬거야. 얘들은 아르고호 선원이야기로 시작하는겨 오뒷세이아 이야기가 얘들을 만든거야. 이들은 이야기로 문명을 만든겨. 쿠바 총독자리 4년 임기야. 지원자 620명을 뽑아. 평균 나이 24세들. 준비도 더 짱짱하게 해. 굶어죽지 않을라고 가축도 챙겨가. 돼지도 2백마리.
데소토.는 쿠바에서 출발하는거야 그래서. 쿠바 짱 자격으로. 킹으로 직접 오더를 받았어.
코로나도. 역시 멕시코 북부의 뉴갈레시아 킹덤의 킹이야 대리킹. 뉴스페인 총독 멘도사.의 오더로 가. 같이 투자하고. 데소토.도 자기가 잉카에서 번돈 넣는겨.
In May 1539, de Soto landed nine ships with over 620 데소토.가 플로리다에 닿는건 1539년 5월. 육지에서 출발한 코로나도 보다 1년이 빨라.
The Coronado Expedition (1540–1542) from Mexico north to the future southwestern United States and east through the modern states of Arizona, New Mexico, Texas, Colorado, Oklahoma, Kansas, Missouri, Arkansas
코로나도.들은 콜로라도 강따라서리 올라가다가 오른쪽 캔자스 까지 다녀오고. 그랜드 캐년도 처음 보고와. 콜로라도 와 그랜드 캐년 하면 이 코로나도 탐험대야. 2년 있다가 돌아오는겨. 낙마사고로 부상도 당해. 건진건 하나도 없어. 전쟁만 하고. 황금의 일곱도시들은 먼 개소리 하미. 완전 파산이 되고. 거기에 저당시 전쟁범죄로 고소도 두번당하면서 재판도 열라 해. 와서 다시 뉴갈리시아 관리를 하지만. 병으로 죽어.
A proposed route for the De Soto Expedition, based on Charles M. Hudson map of 1997.[14]
데소토. 는 이전 나르바에스 탐험대 보다 위의 길을 간겨. 조지아 알라바마 미시시피. 아칸소.도 간듯 해. 최초로 미시시피강을 건넌 사람이야. 미시시피 강부근에서 죽었어 이사람은. 나머지 단원들이 이어가다가. 완전 개거지가 돼. 동물 가죽으로 옷을 해입고. 육로로 더이상 못가고. 배를 어설피 만들어서리. 미시시피강으로 빠꾸해서 저 멕시코 만을 어설피 만든 배를 타고 멕시코 저쪽 해안에 닿는겨. 도착한 사람은 삼백명 내외.
데소토.가 1542년에 죽어. 저들이 멕시코만에서 떠다닌게 50일이야. 도착한게 1543년 7월로 보여. 전년도에 코로나도.가 거지되서 온거고.
데소토.가 1년 먼저 도착했지만. 1년 늦게 돌아온거지.
저들이 멕시코시티로 들어왔어.
멘도사.가 다시 플로리다 갈사람 지원자를 모집해.
아무도 지원을 안해.
나르바에스 탐험대의 길이야. 이들은 해변타고 육로로 들어온겨. 네명의 생존자가.
The approximate route of the Narváez expedition from Santo Domingo. From Galveston in November 1528, Cabeza de Vaca, Alonso del Castillo Maldonado, Andrés Dorantes de Carranza and Estevanico traveled for eight years on foot across the Southwest, accompanied by Indians, until reaching present-day Mexico City in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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