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liz navidad
Prospero año y felicidad

 

펠리스 나비다드.

프로스페로 아뇨 이 펠리시다드.

 

메리 크리스마스.를 스페인애들은 펠리스 나비다드. 펠리스. 가 해피. 명사가 펠리시다드. 다드 가 여성명사접사야.

 

프라스페로. 영어 프라스퍼러스.야 번성하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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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다드.를 그리스도 탄생일. 성탄절.하걸랑. 왜 그르까.
걍 스페인어로 사전에 한글로 되어있으니 그런거지.
네이션. nation. 이 처음엔 민족이었다가 이게 국가로 쓰이는거야 지금은. 스페인어 나시온. nacion.
나티부스. nativus 나티오. natio. 태어난거야 이건. 정체성의 시작이야. 너의 집단 정체성이 머냐 할때 그래서 와츠 유어 내셔널리티. 라 물으면 대개 자기 나라 이름을 대는겨. 이땅바닥 민족 하는 들은 여전히. 저 질문에. 마이 내셔널리티 이즈 더 그래이트 초선. 콩산당이 초아요! 김정은이 위인이얌. 예의가 게 바르대. 개 대는거고.

참 미개한 정체성인 거지. 왜냐믄. 초선에 대해 반성을 해 본적이 없는 역사걸랑 이땅바닥이. 똑같아 중남미 인도 중국 베트남 것들에 무슬림에. 모든건 외세탓 지들은 위대해. 
태어난겨. 나티오. 나티부스. 해서 네이션.이고. 저 형용사가 네이티브 native 야. 스페인어로 나티보. nativo. 이게 명사화 되서 태어난 곳의 사람.으로 쓰는겨. 
네이티브.에서 명사를 또 만들면 그게 네이티비티. nativity. 태어남. 이게 스페인어로 

Natividad. 나티비다드. 태어남 탄생 출생.의 이 나티비타드.,를 스페인애들은 또한 성탄절.이라고도 해. 그러다 새로 만든겨. 그리스도의 생일.은 먼가 달라야해. 저걸 줄여서 나비다드. 를 스페인애들이 크리스마스.로 독자저그로 쓰는겨. 그리스도 크라이스트.가 스페인어론 크리스토.야. 나비랑 전혀 관계가 없어.

 

 

영어로도 이따위 설명은 없어. 아 짐이 위대하신겨. 알어 니덜이 감탄하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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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말할라는게 아니라. 

 

Barra de Navidad is a small town located on the western coastline of the Mexican state of Jalisco.

 

멕시코 할리스코 주.에 바라 데 나비다드. 란 마을이 있어. 멕시코시티.의 완전히 왼쪽 정방향 끝 해변이야. 바라. 가 바. 짝대기야. 여기에 모래언덕 사주. 작대기처럼 모래언덕이 있어. 저 언덕에 성탄절.을 붙인겨.

포르투갈사람 마젤란이 카를5세의 지원으로 필리핀 갈때는 스페인 본토 세비야.에서 출발해서 카나리아제도에 카보베르데 지나서리 바로 브라질 거쳐서 남미 끝으로 간거야. 

The Casa de Contratación (

Spanish pronunciation: 

[ˈkasa ðe kontɾataˈθjon], "House of Trade") or Casa de la Contratación de las Indias ("House of Trade of the Indies") was established by the Crown of Castile, in 1503 in the port of Seville(and transferred to Cadiz in 1717) as a crown agency for the Spanish Empire

 

마젤란.이 계약한 갑.은 카스티야.의 카사.야. 포르투갈을 완전히 카피한겨. 이사벨라가 죽기전에 만들어. 이것은 킹덤 산하기관이야. 포르투갈을 카스티야애들이 고대로 베낀거야. 

In March 1505 at the age of 25, Magellan enlisted in the fleet of 22 ships sent to host D. Francisco de Almeida as the first viceroy of Portuguese India. Although his name does not appear in the chronicles, it is known that he remained there eight years, in GoaCochin and Quilon.

 

마젤란.은 1505년에. 25세에 포르투갈 7번째 아르마다.에 갔었어. 포르투갈사람이야. 여기서 8년을 지내면서 전쟁들에도 참여해. 그러다가 돌아온거야. 그리고 스페인이랑 계약을 하고 서쪽항로를 간거야. 1519년 9월에야 제대로 출발해서. 다음해 1520년 말에 남미아래를 지나면서 태평양에 들어가고 3월에 필리핀에 닿은겨. 여기서 원주민의 한 군주.랑 전투하다 부상당해 죽는거야. 얘가 필리핀 영웅이야 지금 외세를 물리친. 동상도 세웠어. 마젤란 시체도 어딨는지 알길없어. 남은 이들은 그냥 다들 떠난겨 필리핀서. 그러면서 인도네시아 섬들에 맬러커즈.가서 스파이스 구입하고. 여긴 이미 포르투갈이랑 동맹맺은 원주민 군주들이고. 그리고 돌아가 다들 스페인으로.

 

 

When Victoria, the one surviving ship and the smallest carrack in the fleet, returned to the harbor of  departure after completing the first circumnavigation of the Earth, only 18 men out of the original 237 men were on board. 

 

처음 출발할땐 대형선박 다섯에 237명이 출발해. 필리핀 떠나서 맬러커즈 스파이스섬들에 도착할댄 115명이야. 그리고 항해중에 역시 굶어 죽고 병으로 죽고. 다들 죽어서 18명만 살아남은겨 배 하나에. 1522년 9월. 만 3년. 필리핀 떠나서의 돌아오는길이 최악인거지.

 

저기서 포르투갈 애들을 다 만나걸랑. 더하여 마젤란 배에는 포르투갈인들이 또한 많은겨. 같이 인도나녀왔던. 생존자 18명중 두명은 이탈리아야. 
다 소문나고. 포르투갈이 또 열받는겨. 알카소바스 조약 쌩까고 콜럼버스 시켜서 대서양 땅 먹질 않나. 그래서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갱신해서 오른쪽은 포르투갈 꺼. 했는데. 정작 저긴. 스페인입장에선 왼쪽이 된겨. 사라고사 조약으로 경계선을 거. 이게 1529년에 정리된 걸로봐. 맬러커즈 스파이스 섬.오른쪽을 경계선. 저때 카를5세가 프랑수아1세랑 이탈리아 전쟁 한창 할때걸랑. 교황과 프랑스 베니치아가 다 동맹맺어서 뎀빌때걸랑. 카를이 저걸 대충 한겨. 완전히 손해보는 장사걸랑. 10도 손해를 봐
정작 필리핀도 저 경계선에 들어가 포르투갈께 된거야. 아 조선도 포르투갈꺼야 가만 보믄 나중에. ㅋㅋㅋ. 
왜냐면. 저 조약이 1520년 초에 시작하걸랑 문제를 느껴서. 저게 10년 가까이 걸린겨. 왜냐면. 아직 저 섬들의 정확한 경도 위도.를 못 잡는겨 당시. 그만큼 저 지역이 숙지도 안되었어. 이게 10년 걸린겨. 그리고 카를이 이탈리아 전쟁 때문에 돈이 없어. 포르투갈이 저땐 떼부자야. 스페인은 아직 금은이 들어올때가 아냐. 아즈텍은 코르테스.가 갓 차지하면서 다지는 중이고. 잉카엔 저 코르테스 이후 20년 되서 시작한겨. 포르투갈 돈을 땡겨야해. 이탈리아전쟁때문에. 양보 한거야. 

 

On 10 February 1525, Charles V's younger sister Catherine of Austria married John III of Portugal, and on 11 March 1526, Charles V married king John's sister Isabella of Portugal. These crossed weddings strengthened the ties between the two crowns, facilitating an agreement regarding the Moluccas

 

저 협상기간중에. 카를5세의 여동생이 포르투갈의 주앙3세와 결혼해. 그 다음해 카를이 포르투갈 킹의 여동생이랑 결혼해. 다들 20대야. 첫결혼이야.
저걸 보믄. 정작 말야. 저당시 세계 주도권은. 포르투갈이 쥐고 있는겨. 카를이 목매는겨 저건. 포르투갈에게. 무엇보다 저 맬러커즈 란 스파이스 섬들이야. 저건 산술적으론 스페인꺼야 하걸랑. 저 결혼으로 친해지면 가져올까 했는데 결국 실패한겨 카를이. 왜냐믄. 이탈리아 전쟁의 돈이 없어 카를이. 저때 떼부자는 포르투갈이야. 
주앙3세가 카를동생과 낳은 아들이 어려서 죽어. 딸 하나. 카를이 포르투갈 주앙의 여동생과의 자식이 펠리페2세.야 

 

저 딸과 펠리페2세.가 결혼하는겨 사촌끼리. 헌데 여자가 곧 죽어. 그래서 펠리페가 재혼한게 마침 잉글랜드의 마리.인겨 카톨릭 회복한. 그동안 포르투갈은 아비즈 직계 죽고 마누엘이 오르고 이 핏줄도 끊기고. 이걸 펠리페2세가 받으면서. 포르투갈이 카를의 결혼때메 정작 스페인으로 들어가는거야. 펠리페가 오래 살았걸랑. 더하여 3세 4세도.

The Loaísa expedition was a 16th-century voyage of discovery to the Pacific Ocean, commanded by Garcia Jofre de Loaísa (1490 – 20 July 1526) and ordered by King Charles I of Spain to colonize the Spice Islands in the East Indies. The seven-ship fleet sailed from La Coruña (Spain) in July 1525 and became the second naval expedition to cross the Pacific Ocean in history, after Magellan-Elcano's voyage. The expedition resulted in the discovery of the Sea of Hoces, south of Cape Horn and, the Marshall Islands in the Pacific. One ship ultimately arrived in the Spice Islands on New Year's Day of 1527

 

Juan Sebastián Elcano[1] (sometimes misspelled del Cano;[1] c.1486–4 August 1526) 

Garcia Jofre de Loaísa (1490 – 20 July 1526)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 가르시아 호프레 데 로아이사.

 

로아이사 탐험대. 마젤란이 간 길을 다시 가는겨. 이전 18명만 왔어. 2백여명 죽고. 마젤란의 후임이 엘카노야. 엘카노는 살아남았어. 3년 후 1525년에 다시 가는겨 같은 길을. 엘카노.와 로아이사.를 공동 짱으로 임명해 카를이. 이들은 갈리시아에서 출발해. 여긴 포르투갈 위 스페인 서쪽 해변이야. 남미 돌아서 멕시코시티 옆해변인 저기 나비다드 부근엘 가. 유럽애서 북중미 해변 닿은건 이들이 처음이야. 코르테스.는 저기서 머물다가 바하 샌프란시코 찍은거고. 

 

 

de Loaísa was assigned seven vessels and a total of 450 men including tradesmen and administrators for the Spice Islands settlement

 

규모를 더 늘린겨 마젤란보다.. 배 일곱에. 인원 두배 450명.

 

Loaísa himself died of scurvy on July 30, 1526, Elcano a few days later, and Alonso de Salazar three weeks after that. Yñigez reached the islands of Visayas and Mindanaoin the Philippines and the Moluccas, but died of food poisoning. Only Andrés de Urdaneta and 24 other men survived to land in the Spice Islands. They returned to Spain in 1536 in the Portuguese India Armada and under Portuguese guard.

 

필리핀 닿기 전에. 로아이사. 죽고. 며칠후 엘카노.도 죽어. 대단한겨 첫 항해때 다들 죽고 살아남아서리. 그걸 다시또가. 가다가 죽어. 엘카노. 저들이 이전애들 같은 길을 가고 맬러커즈 에 도달했는데. 겨우 25명이 생존한겨. 이들은 포르투갈 아르마다 배를 타고 스페인에 오는거야. 1년 걸린겨. 다 거지인 거지.

 

 

 

저들을 공식적으론. 마젤란 1522년 이후. 1526년 . 두번째 세계 일주한 걸로 기록해.(혹자는 그리 안보지 올때는 포르투갈배에 난민으로 실려온겨. 프랜스시 드레이크.를 두번째로 봐 다른이들은. 언오피셜.)

 

Friar Andrés de Urdaneta, OSA, (November 30, 1498  – June 3, 1568) 안드레스 데 우르다네타. 바스크 수도사. 저 항해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야. 이사람이 저걸 기록을 해. 뉴스페인에 가서 필리핀을 다시 가려해. 친구들이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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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도사.들이 음청난데. 저 탐험길에 단골손님들이야. 콜로라도 시조님인 코로나도.가 플로리다 가고 거지되서 올때도 정작 수도사 두명은 북미에 그냥 남아. 거기서 그리스도 전파할거라고.

 

 

 

Álvaro de Saavedra (d. 1529) On October 31, 1527, they sailed from Zihuatanejo,[4] Guerrero. On 15 December,

 

실종된 저 로아시아.들을 찾으러 가는 알바로 데 사베드라. 시와타네호. 바라 데 나비다드.의 아래야. 아즈텍을 코르테스.가 점령하고 4년 후야. 아직 바이스로이 체제 아냐. 알바로.는 코르테스의 친척으로 봐. 코르테스가 보내는 탐사대야

세번째 필리핀행은. 이제부터는 멕시코 서해안.에서 시작하는거야 스페인은. 

 In 1534, the surviving eight members of his crew made it back to Spain.

 

1527년에 필리핀으로 출발하고. 맬러커즈 섬에 갔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을 두번 다 실패해. 포르투갈 애들에게 잡혔다가. 7년만에야 스페인으로 돌아와 생존자 8명이. 전체 규모는 알수 없어. 한배 백여명 이면 최소 백여명은 죽은거지.

López de Villalobos was commissioned in 1541 by the Viceroy of New Spain, Antonio de Mendoza, who was the first colonial administrator in the New World, to send an expedition to the Islas del Poniente, meaning Islands of the West, now known as the Philippines. His fleet of six galleon ships, the Santiago, San Jorge, San Antonio, San Cristóbal, San Martín, and San Juan, left Barra de Navidad, Jalisco, Mexico with 370 to 400 men on November 1, 1542. 

 

로페스 데 비얄로보스. 알바로.의 생존자들이 오고 7년 후에 가는겨 1541년. 이때 출발지가. 바르 데 나비다드. 

 

아 이걸 얘기하려고 지금까지 씨부린건데. 짜증 나. 이때부터 여기서 출발해. 이젠 바이스로이 체제야 뉴스페인. 총독 멘도사. 이전에 코로나도.를 보냈걸랑 뉴멕시코로. 마누라 땅 담보로 돈 땡기고. 황금도시 찾아서 때돈벌라고. 코로나도 파산되고 이 총독도 빚쟁이가 돼. 비얄로보스.가 출발하는 1542년이. 코로나도가 거지 되서리 돌아온 해야. 그걸 보고 간겨 얘들은. 

 

이들도 대부분 죽어. 작물 심으려다 실패하고. 비얄로보스.는 포르투갈 애들이랑 싸우다 포로상태서 병으로 죽었다 하고. 이탈리아 생존자가 또 기록을 남겨 출판하고. 여기서 그린 항로 지도는 20세기에야 발견이돼.

얘들은. 자기 이야기들을 바로 다 출판을 해. 저게 쟤들의 힘이야.

하튼 저때부터. 나비다드. 뉴스페인 멕시코 서해안에서 가는겨. 해서 필리핀도 당근 뉴스페인 관할이 되는거야.

나중말야. 에도막부 여는 이에야스.를 방문하는 스페인애들도 저기 바라 데 나비다드 에서 가는겨. 스페인 본토에서 출발할 필요가 없어. 저기서 출발해서 만난 이에야스 의 이야기도 또 스페인 군바리가 남겨. 그 만나는 슨푸성 입구 부터. 복도. 이에야스 인상. 이에야스 말기에 독안룡 다테 마사무네.가 쿠데타인듯 아닌듯 하튼 스페인애들이랑 접선해서 배를 만들때도 그 스페인애들의 본부는 저 뉴스페인이야. 이때 에도 초기에 일본애들이 가는 곳이 저 뉴스페인 멕시코 서해안 바라 데 나비다드.야 저길 통해서 바이스로이 총독 궁전엘 가는겨 몬테주마가 건설하고 코르테스가 아들 마르틴. 메스티조의 시조한테 넘겨서 받은 곳. 


하튼 걍 그런줄 알어.

 

 

View of Commercial Square (now known as Raffles' Square) in Singapore circa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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