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ly Greek philosophers alluded to a spherical Earth, though with some ambiguity.[15] Pythagoras (6th century BC) was among those said to have originated the idea, but this might reflect the ancient Greek practice of ascribing every discovery to one or another of their ancient wise men.[10]
지구가 둥굴다는건 피타고라스 기원전 6세기.에도 언급이 돼. 헌데 증명은 안했어.
Eratosthenes, a Greek astronomer from Hellenistic Libya (276–194 BC), estimated Earth's circumference around 240 BC.
에라토스테네스. 가 기원전 240년에 지구 구형 크기를 재. 크게. 콜럼버스때는 이 크기를 믿지 않아.
지구가 둥글다는 과학적 확신으로 한바퀴를 도는거야. 최초로 한바퀴를 돈 이들이. 마젤란팀이야.
Magellan–Elcano circumnavigation from 1519 to 1522
Ferdinand Magellan (/məˈɡɛlən/[1] or /məˈdʒɛlən/;[2] Portuguese: Fernão de Magalhães,
IPA:
[fɨɾˈnɐ̃w dɨ mɐɣɐˈʎɐ̃jʃ]; Spanish: Fernando de Magallanes,
IPA:
[feɾˈnando ðe maɣaˈʎanes]; c. 1480 – 27 April 1521)
Juan Sebastián Elcano[1] (sometimes misspelled del Cano;[1] c.1486–4 August 1526)
포르투갈어 페라낭우 데 마가이앙이슈. 물결발음음 콧소리. 걍 마젤란. 마젤란은 포르투갈 귀족.이야. 스페인 후원으로 한바퀴 돌아.
이사람이 필리핀에서 죽어. 권한위임을 엘카노 에게 해.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는 스페인 사람이야. 카를 5세 휘하에서 해군 제독이었어. 이 항해의 주인은 스페인이고 마젤란은 고용된거야. 엘카노가 마젤란.의 선단에 합류를 한거야.
- The flagship Trinidad (110 tons, crew 55), under Magellan's command
- San Antonio (120 tons; crew 60) commanded by Juan de Cartagena
- Concepción (90 tons, crew 45) commanded by Gaspar de Quesada
- Santiago (75 tons, crew 32) commanded by João Serrão
- Victoria (85 tons, crew 43), named after the church of Santa Maria de la Victoria de Triana, where Magellan took an oath of allegiance to Charles V; commanded by Luis Mendoza.[19]
Painting of a carrack attributed to Pieter Bruegel the Elder, circa 1558
캐럭. 마스트 mast 가 돛대.야. 돛대에 돛.이란 헝겁을 다는거야. 대게 북유럽의 배들은 저 돛이 저당시 사각이었어. 베네치아 제노바의 배들은 삼각의 돛을 썼어 지중해에서.
A cog is a type of ship that first appeared in the 10th century, and was widely used from around the 12th century on. Cogs were clinker-built, generally of oak, which was an abundant timber in the Baltic region of Prussia. This vessel was fitted with a single mast and a square-rigged single sail.
코그. 12세기에 널리 쓰이던배가 코그.야 이건 마스트. 돛대가 하나야. 리그. 돛이 사각이야.
The caravel (Portuguese: caravela,
IPA:[kɐɾɐˈvɛlɐ]) was a small, highly maneuverable sailing ship developed in the 15th century by the Portuguese to explore along the West African coast and into the Atlantic Ocean. The lateen sails gave it speed and the capacity for sailing windward (beating). Caravels were used by the Portuguese and Castilians (Spain) for the oceanic exploration voyages during the 15th and 16th centuries in the Age of Discovery.
카라벨라. 포르투갈에서 저 탐험의 시대때 만든거야. 라틴 세일. 삼각 돛을 라틴 세일. 이라해. 포르투갈인들이 무슬림애들 배를 보고 배운겨. 무슬림은 제노바 베네치아 보고 배운거고.
저 카라벨라. 가 진화가 된게 캐럭. 이야. 포르투갈이 카라벨라. 로 탐험하다가 캐럭선으로 바꾸는거야.
A galley is a type of ship that is propelled mainly by rowing. The galley is characterized by its long, slender hull, shallow draft and low freeboard (clearance between sea and railing).
지중해에서 타고다니던 베네치아들이 몰던 배들이 갤리선. 하는겨.
A galley is a type of ship that is propelled mainly by rowing. The galley is characterized by its long, slender hull, shallow draft and low freeboard (clearance between sea and railing).
양옆에 노꾼들이 붙어서리 빨리 가. 생긴거 봐. 도그피쉬 가 갤리래. 하튼 빨라. 돛을 달아서 바람불면 노꾼들은 쉬는거고. 저런 배는 대서양 인도양으로 못가는겨. 바람만 써야해. 포르투갈이 카라벨라. 캐럭. 선을 만들어 간거야.
Galleons were large, multi-decked sailing ships first used by the Spanish as armed cargo carriers and later adopted by other European states from the 16th to 18th centuries during the age of sail and were the principal fleet units drafted for use as warships until the Anglo-Dutch Wars of the mid-1600s
스페인이 만든게 갤리온.이야 저 갤리선의 변형. 이건 돛이 사각이야.
A Spanish galleon (left) firing its cannons at a Dutch warship (right). Cornelis Verbeeck, ca. 1618/1620
이건 순풍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돛의 디자인이야. 삼각 돛은 바람이 수시로 변할때 쓰는 돛의 배야.
하튼 걍 이런게 있는 줄 알어. 더 들어가믄 니덜 대갈 뽀개지니까.
sail. 세일. 을 항해. 하는데. 이 세일 이란게. 저 돛.을 세일 하는겨. 항해 항.은 걍 배 그자체 뜻일 뿐이고. 돛이 없으면 세일.을 못해.
August 10: Departure from Seville. 세비야.를 떠난게 1519년 8월 10일
September 8: Victoria arrives at Seville, technically completing the circumnavigation.
September 20: Departure from Sanlúcar de Barrameda.
September 6: Victoria returns to Sanlúcar de Barrameda under the command of Elcano, two weeks shy of three years after setting sail.
세비야. 옆에 바라메다.에서 출발할때 한달을 지체하걸랑. 여길 시작으로 봐. 9월20일. 여기 들어온게 삼년후 9월 6일.이고 이틀후에 세비야를 가걸랑. 이걸 기록으로 만 삼년에 2주가 모자른겨.
Circumnavigation of the earth (1577–1580)
두번째로 지구를 돈 사람이. 바로 프랜시스 드레이크.야 잉글랜드의. 이 드레이크.는 위대한 인간이야. 브리튼은 이 인간이 만든겨. 마젤란 이후 60년 후에 간거야. 마젤란 비슷한 길을.
이 얘길 할라는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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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olemy's world map (2nd century) in a 15th-century reconstruction
프톨레마이오스.가
The Geography (Greek: Γεωγραφικὴ Ὑφήγησις, Geōgraphikḕ Hyphḗgēsis,
lit.
"Geographical Guidance"), also known by its Latin names as the Geographiaand the Cosmographia,
게오그라피케 휘페게시스. 지리학 지침서. 를 썼는데 그걸 보고 그린겨.
Claudius Ptolemy (/ˈtɒləmi/; Koine Greek: Κλαύδιος Πτολεμαῖος, Klaúdios Ptolemaîos
[kláwdios ptolɛmɛ́os]; Latin: Claudius Ptolemaeus; c. AD 100 –c. 170)[2] was a Greco-Roman[3] mathematician, astronomer, geographer, astrologer, and poet of a single epigram in the Greek Anthology
Agathodaemon of Alexandria (Greek: Ἀγαθοδαίμων Ἀλεξανδρεὺς, Agathodaímōn Alexandreùs) was a Greek or Hellenized cartographer, presumably from Alexandria, Egypt, in late Antiquity, probably in the 2nd century A.D.[1
이집트 알렉산트리아의 아가토다이몬. 이 그린걸로 봐. 서기 150년.
프톨레마이오스.의 다른 책이. 수학책이자 천문학서적 알마게스트.
The Almagest (/ˈælməˌdʒɛst/) is a 2nd-century Greek-language mathematical and astronomical treatise on the apparent motions of the stars and planetarypaths, written by Claudius Ptolemy (c. AD 100 –c. 170).
지구가 둥글고 천동설 내용인데. 여하튼 간에 말야. 저런것과. 동양빠닥 중국이와 중국이 유학을 아무런 고민없이 의문없이 받은 조선 선비들의 우주론이랑
야 정말 비교가 비교를 할 수가 없어. 그 무지 무식함은.
개천설. 혼천설. 개 가 뚜껑이여 덮어. 혼. 이란건 흐린겨. 저게 머냐면. 땅은 평평한데 위에 뚜껑 하늘이 있어. 이게 개천설이야. 여긴 하늘만 있어. 땅 아래가 없어. 아 가만 보니 이십사수가 떠서 져서 아래로 가서리 다시 올라오는겨. 그 아래가 흐릿한 곳이야. 그래서 혼 이란 글자를 맹글고 대단하답시고 만든겨.
땅은. 조선 후기때도 여전히 평평한겨. 구형. 이란게 먼지 몰라. 이 개 들은. 그런걸 주장하는 아가리는 불충하고 소인배인겨. 규일영 영조가 언급하듯이.
저 평평한 땅 가운데에 중국이 님들이 계신거고.
저 런 망상을 여전히 저 조선의 핏줄을 이어받아서리. 중국몽을 함께 해유~~~ 하는거고.
이땅바닥은 말야. 민주 민족 이 하는들이. 저 조선의 대갈빡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이건.
참 무시칸 들이야 이건.
이 조선이란건 말야. 가만히 있어라 가 아냐.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이게 조선 오백년의 모토야 이게. 성리학 이야기. 공자님 주자님 이야기 외에 아무것도 하지 말어.
조선 민족. 민족 말 외엔 아무 말도 하지 말어. 다 적폐야
참 골때리는 나라가 된건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壹疆理歷代國都之圖) 또는 단순히 강리도(疆理圖)는 조선 태종(太宗) 2년(1402년)에 제작된 세계 지도이다
고려 망하고 바로 나온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저게 1402년.이야. 그래도 저걸 그린게 어디냐.
해동지도(海東地圖)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회화식 군현지도집.
삼백오십년 후에. 해동지도 에 천하도.를 봐. 야 저게 세계지도야. 조선 오백년동안. 대갈빡이 저리 된겨.
저 강리도. 말하는 거 보믄. 동시대 최고의 지도래.ㅋㅋㅋ 참 얼마나 무시카믄 저따위 소리를 해댈까.
창피하고 부끄럽기가 그지업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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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가 가장 중요한겨. 11세기 다음으로.
고대근동사의 이야기를 담은 고대그리스를 이어서 한 덩어리로 나온 고대 로마. 이 고대 로마가 위대하고 위대한 이름이야. 이 로마가 없었으면 여전히 야만과 고대문명의 반복일 뿐이야.
이 고대 로마.를 습한 갈리아 애들을 지배하면서. 인정하고 배우고 익힌 게르만.이 오백년이 흘러 11세기에 오면서 다시 이전 로마의 모습을 회복하려해. 이탈리아는 더빨리 가는겨 본토걸랑 로마의. 저러면서 게르만들이 라틴어를 익힌 바탕에 자기들 언어로 그리스도를 습하고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자기들의 언어로 만들어가면서 부르조아들이 생겨나. 본토 로마의 땅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를 일으켜. 르네상스야. 이걸 자기들만의 사유와 언어로 문명을 배운 게르만들이 이 르네상스를 해석하면서 리포메이션. 종교개혁이 아냐 사유의 개혁이야 이건.
문명이 터지는겨. 근대의 시작이야. 16세기야.
대륙.안에서 터진겨. 대륙을 벗어날 수 밖에 없는거야. 어디로든 나가야 해.
Technological advancements that were important to the Age of Exploration were the adoption of the magnetic compass and advances in ship design.
테크니칼한건 어느정도 갖춰진겨. 아랍 상인들이 한몫을 해. 여기에 몽골애들이 중국이 문명을 들고 와. 나침반. 종이 들이 이게 아랍 바그다드에서 갖고 오는거야
The first usage of a compass recorded in Western Europe and the Islamic world occurred around 1190.[6][7]
지구가 둥글다는것 다 알아. 이전 2천년동안 쟤들은 지구는 둥글어 저때도.
이땅바닥 조선은 20세기에나 저걸 아는겨 이 개 들은.
지구 크기도 에라토스테네스.의 크기보다 훨 작다는 것도 파악을 했어. 배도 더 크게 안전하게 더 쉽게 항해 할 수 있게 만들었어. 카라벨라. 캐럭 선 같은 걸 만들어. 돛 모양도 바꾸고 돛 갯수도 경험적 사유로 개발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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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uzhat al-mushtāq fi'khtirāq al-āfāq (Arabic: نزهة المشتاق في اختراق الآفاق, lit. "the book of pleasant journeys into faraway lands"), most often known as the Tabula Rogeriana (lit. "The Book of Roger" in Latin), is a description of the world and world map created by the Arab geographer, Muhammad al-Idrisi, in 1154. Al-Idrisi worked on the commentaries and illustrations of the map for fifteen years at the court of the Norman King Roger II of Sicily, who commissioned the work around 1138.[1][2]
타불라 로게리아나. 로게르의 책. 아랍 학자 알이드리시. 가 시칠리아 킹 로게르2세.의 코트에서 만든 세계 지도야.
로게르2세. 아빠 로게르1세.의 형제들이. 노르망디에서 온 기사들의 이탈리아 해적 쳐 없애는 백년전쟁을 마무리해. 이 로게르1세가 시칠리아의 카운트.로 시작해 무슬림을 몰아내고. 아들부터 킹. 하는겨. 이들은 오트빌 가문이야. Hauteville 이 가문이 나중에 딸 콘스탄체만 남아서리 이 신랑이 프리드리히2세 황제 아빠야. 호헨슈타우펜 가문이 이걸 받는겨 백년 후에.
당시 아랍은 이전 고대 인도사 언급하면서리 이슬람이 동남아시아.에 퍼진 이야기를 개괄로 썰했듯이. 이 이슬람은 인도 서쪽에서 막혀. 무함마드가 시작하고 막 뻗을때. 알렉산드로스 가 막힌 곳에서 막혀. 그러다가 인도양을 건너서리 뱅골만 으로 가는겨 이 이슬람이. 물론 나중엔 인도 자체도 무슬림노예가 델리 술탄으로 권력 잡으민서 이슬람화 되지만.
즉 아랍이 시작한 무슬림은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를 간겨. 얘들은 저짝 동네를 알아.
A modern copy of the Tabula Rogeriana made by Konrad Miller, upside-down with North oriented up.
이 아랍학자가. 시칠리아 로게르2세 코트에서 그린 세계 지도.가 흑해 카스피해.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이야기를 한겨 저 책에서. 서기 1154년이야.. 아프리카 북부에.
더하여. 레반트 십자군 할때. 교황이 동쪽으로 사람을 파견해. 니덜 그리스도 라매. 십자군 와라. 이전 썰.
Christian embassies were sent as far as Karakorum during the Mongol invasions of the Levant, from which they gained a greater understanding of the world.[citation needed] The first of these travellers was Giovanni da Pian del Carpine, dispatched by Pope Innocent IV to the Great Khan, who journeyed to Mongolia and back from 1241 to 1247.[20]
레반트가 살라딘과 그 조카의 아유비드가 지배해. 프리드리히2세는 조카랑 놀고간 가다가. 성루이9세가 괜히 이가 이집트 본토 카이로 가서리 인질이나 당하고 개차반이 돼 레반트가. 이때 교황이 칭기스칸에게 보내는겨 사신을. 그러면서 저짝 길을 알게돼 다녀온 이들 통해서.
William of Rubruck (c. 1220 – c. 1293) was a Flemish Franciscan missionary and explorer.[1] His account is one of the masterpieces of medieval geographical literature comparable to that of Marco Polo and Ibn Battuta. Born in Rubrouck, Flanders
윌리엄 루브룩. 플랑드르 사람이야. 프란치스코 수도회. 이전 썰
Giovanni da Pian del Carpine, variously rendered in English as John of Pian de Carpine, John of Plano Carpini or Joannes de Plano (ca 1185[1] – 1 August 1252), was a medieval Italian diplomat, archbishop and explorer and one of the first Europeans to enter the court of the Great Khan of the Mongol Empire. He is the author of the earliest important Western account of northern and central Asia, Rus, and other regions of the Mongol dominion. He was the Primate of Serbia, based in Antivari, from 1247 to 1252.
지오반니 카르피네. 대주교야. 교황명에 가는겨 이사람도. 윌리엄 루브룩보다 먼저야.
마르코 폴로. 베네치아 상인 은 이 다음이야
Marco Polo (/ˈmɑːrkoʊ ˈpoʊloʊ/ ( listen);
Italian:
Venetian:
[ˈmaɾko ˈpo.lo] 1254 – January 8–9, 1324)[1] was an Italian[2] merchant, explorer, and writer, born in the Republic of Venice
마르코 폴로.는 진짜 다. 라고 밝혀졌어 최근에.
Muhammad Ibn Battuta (or Ibn Baṭūṭah) (/ˌɪbənbætˈtuːtɑː/; Arabic: محمد ابن بطوطة; fully ʾAbū ʿAbd al-Lāh Muḥammad ibn ʿAbd al-Lāh l-Lawātī ṭ-Ṭanǧī ibn Baṭūṭah; Arabic: أبو عبد الله محمد بن عبد الله اللواتي الطنجي بن بطوطة) (February 25, 1304 – 1368 or 1369) was a Moroccan scholar who widely travelled the medieval world.
여기에 무함마드 이븐 바투타. 모로코 학자. 인도까지 가 이사람도.
저게 13세기 14세기야. 다 알아 저길을. 이사람들이 이야기를 남기고 이걸 다 보는겨.
하물며 지도.도 저런 로게르의 타불라 지도 만 있는게 아냐. 많아 저따위 지도가.
저러다가 몽골애들도 모스크바까지 머물면서 러시아 사람들이 중국엘 가는겨. 이 이야기들도 서로 공유를 해. 러시아는 몽골애들이 쳐들어 온 길로 다가 시베리아 힌트로 저 드넓은 시베리아를 갖는거야.
The Periplus of the Erythraean Sea or Periplus of the Red Sea (Koine Greek: Περίπλους τῆς Ἐρυθράς Θαλάσσης, Latin: Periplus Maris Erythraei) is a Greco-Romanperiplus written in Koine Greek that describes navigation and trading opportunities from Roman Egyptian ports like Berenice Troglodytica along the coast of the Red Sea, and others along Horn of Africa, the Sindhregion of Pakistan, along with southwestern regions of India.
바닷길은. 페리플루스 오브 더 에뤼트라이언 씨. 홍해야 이건. 페리플루스.는 해변 항구 도시들 리스트에 거리가 몇키로 등 목록이야 이건. 이게 파키스탄 신드 지역과 인도 서남부 도시들이 줄줄히 찍힌겨.
he text has been ascribed to different dates between the first and third centuries CE, but a mid-first century date is now the most commonly accepted.
고대 로마 1세기에서 3세기. 저때부터 저쪽은 어느정도 알아. 저기가 암흑 이 아냐. 유럽 애들은 저길 다 알아. 바다와 육지에 대략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그냥 깜깜한 동굴속에 손을 넣어서 휘저어 찾는게 아냐 저게. 저건 우연의 산물이 아냐 유럽애들이 탐험의 시대를 연것과 지금 문명을 만든건 쟤들의 실력이야.
이제 가기만 하면돼.
참 그래도 모르는 곳이 있어. 아프리카야. 아프리카.는 이슬람 애들이 북부 아래로 가는걸 아예 막았어. 여긴 미지의 땅이야. 아프리카 규모를 잘 몰라 의외로.
鄭和(1371年9月23日-1433年),原姓馬,漢族,小名三宝,又作三保,雲南昆陽(今晉寧昆阳街道)寶山鄉知代村人,明成祖賜姓鄭,故稱鄭和。中國明代偉大的航海家、外交家、宦官及武術家。鄭和奉明成祖之命開始他的七次遠航,歷時二十八年,访问了三十多個西太平洋和印度洋沿岸的國家和地區,史稱「鄭和下西洋」,總航程達七萬多海里,足繞地球三週有餘[1][需要更好来源],其航程之遠及船隊規模之大,為当时罕見。
명나라 정화. 쩡허. 성은 마씨. 한족. 삼보. 환관에서 시작을 해.
郑和下西洋是指中国明代早期1405年至1433年間的七場連續的大規模遠洋航海,跨越了東亞地區、印度次大陸、阿拉伯半島、以及東非各地,被認爲是當時世界上規模最大的遠洋航海项目。
정화하서양. 정화가 아래 서양으로 가는겨. 이게 1405년 에서 1433. 저걸 하믄 머해.
海禁(又稱洋禁),是一种鎖國政策,旨在禁止民间私自出海,有謂「尺板不得出海」[1],也限制外國商人前往本國通商。具体实施隨著时間變遷而有张有弛,即「严禁」及「弛禁」之分。
[來源請求]然而,實際上真正受到打擊的是本國對外的貿易及漁業。海盜和走私商人的活動亦反而因為海禁而更加猖獗,對本國及其周邊國家的社會和經濟發展產生了消極影響。
中国历史上,海禁最早實行于14世紀末,橫跨元、明、清三個朝代。元朝曾經4次實行海禁,每次持续时间都比較短,共約11年,对海外贸易並未产生全局性的負面影响。而明清两朝的海禁,不仅在政策上有所强化,而且持续時間長達多年。中國的海禁也成為東南亞陶瓷業發展的契機。另一方面,藩屬國例如琉球等國家,亦因為海禁的關係,利用獨佔與中國貿易的契機而獲取大量利益。此外,朝鲜王朝及日本德川幕府皆執行海禁逾200年,規定指定國籍和商人外,官民禁止与別國商人貿易。
해금. 하이진. 원나라 말 14세기 말부터 이걸 해. 이 정화 원정은. 해금 시절중에 영락제가 걍 한겨 이걸. 애가 마스터 플랜도 없어. 걍 의미없는 을 한겨. 원래부터 얘들은 해금에 쇄국이야. 조공 무역으로 조선이 이익을 챙기다 오히려. 정말 개소리도 저따위 개 소리가 없어. 이 사학자들은 정말 야 이건.
떠돌이 거지 주원장이가. 강렬한 힘으로 정말 하늘의 도움을 받았는지. 그 아수라장 원 말을 통일하고 살아남아서리. 저 기운을 누르기 위해서 유교 를 쎄게 심걸랑. 그것도 주자 만의 유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라. 이 유학 말씀 외엔.
이 유교 란건 인간을 개돼지로 만드는데 세상에서 최고의 매직이야 이건.
중국이는 저 유교 로 망한거야. 저 닫음 으로 망한거고.
의미 없는게 저 정화 원정이야.
아무런 피드백이 없어. 이삼십년 다녀왔어. 다녀왔냐? 그래 가서 디비 자라. 다녀온 기록은 똥이나 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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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중국몽의 중국이님들이 유럽애들보다 먼저 했슈. ㅋㅋㅋ. 잘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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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이 지리적으로 제일 구석탱이에 바다만 접해. 얘들이 먼저 나설수 밖에 없어. 아프리카 카나리아제도 부터 북아프리카 땅도 다녀보다가 그 서북해의 섬들부터 해서리 점점 내려가는겨 서 아프리카 해변으로.
더하여 동쪽에서 말야. 오스만이 쳐올라와. 콘스탄티노플 함락이 되고. 다뉴브강 까지 넘어오려해. 바르나 십자군 다뉴브 하류에서도 오스만이 이겨. 저 동쪽 루트는 아예 못가는겨 이젠 오스만애들 때문에. 동쪽의 육로가 막혀버렸어.
수에즈 운하.는 나폴레옹 이 뚫으려고 이집트를 원정했다는 썰도 있걸랑. 나폴레옹이 수에즈를 탐사하고 포기를 해. 저 바닷길로는 홍해를 못가.
바다로 가는겨.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계속 내려가. 가다보믄 돌아가는 길이 있겄지. 바스코 다가마 때에야 그 길을 찾아.
포르투갈의 바다 사람들은 말야. 가만 보믄 귀족들이야.
이 포르투갈이 재밌어 보믄.
하튼 이제 가기만 하면 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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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들은 역사 자체가 모험이야 탐험이고. 물리적 탐험은 사유의 모험에서 시작을 해.
리포메이션 이라는 생각의 재정비 가 있었으므로 몸이 모험을 하게 되는거야.
가장 개소리가 말야. 조선의 정신문명이 위대함메다.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은 별개가 아냐. 물질문명을 보면 정신문명을 알아.
정신이 후지니까 똥천지 한양빠닥이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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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선은. 가만히 있어라 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말아라. 야. 모험도 탐험도 하지말아라. 딴생각 하지말아라. 조선민국에선 이념놀이만 쳐해라. 민주 정의 공정. 요즘은 또 공정 ㅋㅋㅋ. 지 펜카페 지기가 먼 연봉 얼마에 무슨 자리라메. 아니지. 자기의 위대한 이념을 지키는 지기인데 공정한거겠지.
저따위 이념놀이하는 들 치고 . 제대로 된 역사에 단 하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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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마라라. 의 핏줄이야 이 조선민국이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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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들 다음 가는 이야기나 보자 저따위 들에 정력낭비말고.
다음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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