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 

 

Casablanca (Arabicالدار البيضاء‎, 

translit. 

ad-dār al-bayḍāʾBerber languagesⴰⵏⴼⴰ

translit. 

anfa; local informal name: Kaẓa), located in the central-western part of Morocco bordering the Atlantic Ocean, is the largest city in Morocco. It is also the largest city in the Maghreb, as well as one of the largest and most important cities in Africa, both economically and demographically

 

모로코.의 도시. 마그레브 지역이라는. 이집트 빼고 왼쪽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야. 모로코의 수도.는 카사블랑카 보다 위에 있는 라바트 Rabat. 

 

마그레브의 베르베르. 버버족의 땅이야. 안파. 이걸 무슬림애들이 무함마드 이후에 먹고. 포르투갈이 탐험의 시대에 점령을 해. 이름을 바꿔 카사 브랑카.로.

 

카사블랑카.는 영어야. 포르투갈어로 카자 블랑카.야 

 

The original name of Casablanca was Anfa, in Berber language, by at least the seventh century BC.[citation needed]After the Portuguese took control of the city in the 15th century AD, they rebuilt it, changing the name to Casa Branca (

 

[kazɐ'bɾɐ̃kɐ]). It derives from the Portuguese word combination meaning "White House" (branca "white", casa "house").

 

카자. 가 집이야. 브랑카. 가 하양. 화이트 하우스. 

 

 

포르투갈이 압도적이었걸랑 저 탐험의 시대는. 헌데 얘들이 결국 먼저 망해. 그리고 근현대사가 스페인이랑 같이 찌그러진겨. 왜일까?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는 문명을 리드하고 미국을 낳은 애들이야. 얘들이 세계 최고의 문명이야 지금. 왜일까?

 

 

포르투갈은 저때 카자. 로 망한거야.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는 컴퍼니.로 흥한거야. 

 

 

위대한 짐의 말씀이야. 이따위 말싸믈 하는 들은 유럽빠닥에도 읎어.

 

 

뭔말이냐면.

 

 

 

 

일단 저 포르투갈.이라는 나라가 역시나 재밌는거야. 이전 썰했듯이. 무슬림 이베리아때 제일 먼저 생긴 킹덤인 아스투리아스.에서 백작령으로 시작한땅이 포르투갈이야. 이 카운트는. 프랑스 부르고뉴 집안이야. 

 

House of Burgundy (1139–1383)

House of Aviz (1385–1580)

House of Habsburg (1581–1640)

House of Braganza (1640–1910)

 

포르투갈이 합스부르크의 펠리페2세3세때 결혼으로 묶이다가 4세때에 독일땅 30년 전쟁할때 독립을 다시하면서 브라간자 가문이 20세기 초까지 와. 

 

아비즈 가문이 브루고뉴의 자식이 시작을 해. 브라간자 가문도 아비즈가문 핏줄이야. 즉 얘들은 말야. 프랑스애들이야. 

 

 

해서 포르투갈어가. 콧소리 맹맹 나민서리 나는 소리나. 존. John. 을 포르투갈어는 주앙. 스페니쉬는 후안. 하는 이유야. 포르투갈이 프랑스 부르고뉴 애들때메 그래. 포르투갈은 프랑스야 이게. 스페인은 이탈리아고. 스페인은 시칠리아 점령하고 사르디나도 같이 지배하고 이탈리아전때도 깊이 개입하면서 스페니쉬가 이탈리아어에 깊이 영향을 받은거야. 

 

 

역사는 말이야. 노블 들이 만드는겨. 민중들이 만드는게 아냐 역사는. 민중들이 만드는 역사는 말야. 야만이 되는겨 그게. 카를 마르크스 들이나 저따위 이야길 하는거야. 아름답게 믓지게 들리걸랑 민들이 주인이요 민들의 역사. 참 한심한거지. 무시칸겨 그딴 은. 그것도 .

 

민들의 역할은 머라고? 제대로 된 노블들을 만들어내는겨. 조선건국이래 7백년째 이땅바닥은 노블들이 없는겨. 유교의 개돼지들 땅에서 여전히 유교와 조선을 찬양질하는 땅바닥에선 당연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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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무슬림 이베리아에서 반기를 들고 바로 킹덤을 세운 곳이 아스투리아스. 라 했잖아.

 

이들은 누굴까

 

 

Pelagius (SpanishPelayoAsturianPelayuc. 685 – 737) was a Visigothicnobleman[1] who founded the Kingdom of Asturias, ruling it from 718 until his death. 

 

시작이 펠라요. 라틴어 펠라기우스. 비지고쓰족. 서고트족사람이야. 이 펠라요 핏줄에서 레온 킹덤이 나오고 갈리시아 킹덤이 나와. 

 

펠라요. 의 아들.에서 끊겨 남자가. 이 펠라요의 딸.이 결혼한 남자가 칸타브리아의 피터. 듀크 공작이야. 펠라요.와 친척간에 노블이야. 서고쓰족인지 아닌지 몰라. 

Alfonso I of Asturias, called the Catholic (el Católico), (c. 693 – 757) was the third King of Asturias, reigning from 739 to his death in 757. His reign saw an extension of the Christian domain of Asturias, reconquering Galicia and León.

 

펠라요와 피터의 자식이 알폰소 1세. 이사람이 왼쪽 갈리시아.와 오른쪽 레온을 점령을해. 이게 나중에 각각 킹덤이 또한 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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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왕조의 시작은 저 펠라요.이고. 딸의 핏줄로 이은 알폰소1세.부터

 

The Asturian or Astur-Leonese dynasty (dinastía asturiana or astur-leonesa), known in Arabic as the Beni Alfons or Banu Alfonso ("sons of Alfonso"), was the ruling family of AsturiasGalicia and León from about 740 until 1037

 

아스투리아 레온. 이 3백년 가는거야. 아스투리아. 갈리시아. 레온. 여기서 중심은 레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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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티야.의 시작도 아스투리아스.의 카운트. 백작이야. 

 

Rodrigo (died 873) was the first count of Castile, governing from about 862 to his death

 

저 아스투리아 레온 가문의 자식이다 아니다. 확실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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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의 시작은. 프랑크 왕국에 하미지 하는 백작으로 출발해

 

Aureolus (died 809) is traditionally thought to have been the chief of the Franks in the region of Aragón.

 

.나바라의 시작은. 독자적이야. 바스크족이야. 프랑크도 아스투리아스에도 속국이 아냐. 수도 팜플로나.가 킹덤의 이름이었어 시작은.

Íñigo Arista (BasqueEnekoArabicونّقه‎, Wannaqo, c. 790 – 851 or 852) was a Basque leader, considered the first King of Pamp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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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의 나바라 킹덤이. 프랑크에 하미지를 하는 아라곤 백작령을 점령해. 그리고나서리 킹덤.으로 올려.

 

It was created by the Carolingians late in the 8th or early in the 9th century, but soon fell into the orbit of the Kingdom of Navarre, into which it was absorbed in 922. It would later form the core of the 11th century Kingdom of Aragon.

 

 

 

 

 

카스티야.가 핏줄이 끊기고 나바라에 시집간 딸에게 가는거야. 이딸이 나바라의 퀸 이었어. 이때 신랑인 나바라의 킹.

 

 

Sancho Garcés III (

c.

 994 – 18 October 1035), also known as Sancho the Great (SpanishSancho el MayorBasqueAntso Gartzez Nagusia), was the King of Pamplona from 1004 until his death in 1035. 

 

위대한 산초3세. 당시 나바라 킹.에 아라곤 백작이겠지. 카스티야.가 이사람 부인에게 들어온거야. 


산초3세의 장남이 나바라.를 이은 킹이 되고. 차남이 카스티야 백작을 물려받아. 그리고서리 이사람이 레온을 먹는겨. 레온 안에는 아스투리아스 갈리시아에 포르투갈 백작령이 있는거니까 얘가 아래 무슬림 빼고는 그리스도 국가들을 다 통합한거야.

Ferdinand I (c. 1015 – 24 December[1] 1065), called the Great (el Magno), was the Count of Castile from his uncle's death in 1029 and the King of León after defeating his brother-in-law in 1037.

 

위대한 페르디난도1세. 서기 1037년에 얘가 다 통일한거야 아래 무슬림 빼고는. 형이 나바라 킹덤일 뿐이고.

 

 

스페인을 다 통일한 산초3세의 아들 레온의 페르디난도1세. 즉 바스크족의 나바라.가 지배를 하는거야 먼저. 이 가문이 쉬메네스. 히메네스 가문이야

 

The Jiménez or Giménez/Ximenes (

Basque pronunciation: 

[ʃimenes̺]), alternatively called the Jimena, the Sancha, the Banu Sancho, the Abarca or the Banu Abarca,[1] were an Basque/Iberian ruling family from the 10th century to the 13th century.

 

바스크발음으로 스페니쉬도 읽어 이걸. 쉬메네스. 바누 산초. 산초의 자식들. 바누 아브라카. 아브라카의 자식들. 

 

 

 

Sancho Garcés I (Basque: Antso Ia. Gartzez; c. 860 – 10 December 925),[1] also known as Sancho I, was King of Pamplona from 905 until 925. He was the son of García Jiménez and was the first king of Pamplona of the Jiménez dynasty.[2] 

 

 

페르디난도1세의 아부지들 핏줄.인 쉬메네스 가문의 시작이 가르시아 쉬메네스. 인거야. 원래 나바라 땅에 이름모를 킹덤의 킹이었어. 이 아들 나바라의 산초1세.가 팜플로나.라는 나바라 킹덤을 점령하면서 쉬메네스 가문이 나바라 킹을 시작하다가 백년 후에 페르디난도1세가 다 먹는거야. 서기 1037년.


이들 역시 바스크족이야. 

즉 바스크족들의 땅이 된겨 무슬림 위에는.

Vímara Peres[a] (Vímara Pérez in Spanish; died in Galicia, 873)[1] was a ninth-century nobleman from the Kingdom of Asturias and the first ruler of the County of Portugal.

 

포르투갈.도 9세기에 아스투리아스.의 카운트로 시작을 해. 아스투리아스 핏줄로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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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스페인을 통일한 레온의 페르디난도1세가 죽어. 자식들에게 나눠저. 3남2녀. 

 

산초.에겐 카스티야. 알폰소.에겐 레온. 가르시아에겐 갈리시아. 딸 엘비라. 우라카.에겐 도시들. 카스티야는 이때부터 킹덤이야. 

 

the eldest, Sancho, received Castile; the second, Alfonso, León; and from the latter the region of Galiciawas carved off to create a separate state for García. Ferdinand's two daughters each received cities: Elvira that of Toro and Urraca that of Zamora

 

첫째 둘째가 연합해서 막내 갈리시아 땅을 먹어. 그리고 둘이 다투고. 둘째인 알폰소가 졌다가 다시 이겨서 다 먹어. 그리고 알폰소가 아들이 없고 딸들만 있어. 장녀 우라카. Urraca. 레온의 우라카. 가 두 킹덤의 레그넌트 퀸. 킹이 돼.

 

 

우라카.의 남편이 

 

Raymond of Burgundy (c. 1070 – 24 May 1107) was the ruler of Galicia from about 1090 until his death. He was the fourth son of Count William I of Burgundy and Stephanie. He married Urraca, future queen of León, and was the father of the future emperor Alfonso VII.

 

부르고뉴.의 레이몬드. 우라카와 이 사람 자식인 알폰소7세. 부터 부르고뉴 2백여년 카스티야.와 레온.을 다스리는거야. 이 가문을 이브레아 가문. 이라고 해. 

 

이 부르고뉴.는 포르투갈의 부르고뉴이자 프랑스의 부르고뉴 가 아냐. 프랑스의 부르고뉴는 덧치 라는 공작령의 공작애들이고. 카스티야 레온의 부르고뉴라는 이브레아.는 로타르땅의 부르고뉴 카운트.의 부르고뉴야. 전혀 달라 핏줄이. 

 

The Anscarids (LatinAnscarii) or the House of Ivrea were a medieval Frankish dynasty of Burgundian origin which rose to prominence in Italy in the tenth century, even briefly holding the Italian throne

 

이들을 안스카리드즈. 안스카리이. 라고 해. 이브레아.는 이탈리아의 서북부 피에몬테.의 마그레이브 땅이야. 이 피에몬테가 사보이의 거주지야. 사보이 수도 토리노 있는곳이야. 오른쪽 밀라노는 피에몬테 옆이야. 

 

쉬메네스 가문이 2대에 걸쳐서 카스티야 레온 60여년 하고. 딸의 남편인 이브레아 가문인 부르고뉴들이 2백여년 이어가. 이 부르고뉴는 그래서 프랑스가 아니고 이탈리아야. 

 

 

알폰소7세가 겸임하다가 자식들이 각각 하다가 1230년에 킹을 같이 하는겨 다시. 헌데 다시보면 그 이백년 전부터 같은 나라야.

 

 

Monument of Pelagius at Covadonga where he won the Battle of Covadonga and initiated the Christian Reconquista of Iberia from the Islamic Moors.

 

스페인의 시작. 펠라요. 펠라기우스. 아스투리아스 킹덤 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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