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라 킹에 아라곤 카운트였던 위대한 산초3세.의 부인이 카스티야 백작을 승계해.

 

장남.이 나바라 킹에 아라곤 카운트.

 

차남 위대한 페르디난도1세.가 카스티야 백작.을 받고 킹.하고.  레온 을 점령해서 레온 킹.이 돼. 서기 1037년

 

 

이들이 쉬메네스 가문.Jiménez 이야. 위대한 산초3세의 선조. 산초1세.가 나바라 킹덤이 세워진지 백년 좀 안되서리 이 나바라의 킹이 돼. 같은 바스크야. 서기 9백년 직후. 쉬메네스가  150년 안되서 무슬림 뺀 이베리아반도를 다 통일을 한거야.

 

 

바스크가 일차로 통일을 했어. 바로 페르디난도의 자식들 역시 삼형제 싸우고 차남 레온의 알폰소.가 다 먹고. 큰딸 우라카. Urraca 가 전부 이어받아서. 신랑 로타르땅 부르고뉴 백작령의 가문. 사보이 지역 피에몬테.의 이브레아 가문.이 갖고 가는거야.  House of Ivrea

 

 

Urraca (April 1079 – 8 March 1126) called the Reckless (la Temeraria),[1]was Queen of LeónCastile, and Galicia from 1109 until her death in childbirth. She claimed the imperial title as suo jure Empress of All the Spains[2] and Empress of All Galicia.

 

우라카. 가 레온 카스티야 갈리시아. 의 권력 퀸.이 서기 1109년. 

 

 

Alfonso VII (1 March 1105[1] – 21 August 1157), called the Emperor (el Emperador), became the King of Galicia in 1111[2] and King of León and Castile in 1126. Alfonso, born Alfonso Raimúndez, first used the title Emperor of All Spain

 

아들 알폰소7세가 서기 1126년에 물려받아. 이사람이 모든 스페인의 황제. 타이틀을 처음 사용했다. 

 

Imperator totius Hispaniae is a Latin title meaning "Emperor of all Spain". In Spain in the Middle Ages, the title "emperor" (from Latin imperator) was used under a variety of circumstances from the ninth century onwards, but its usage peaked, as a formal and practical title, between 1086 and 1157. It was primarily used by the Kings of León and Castile, but it also found currency in the Kingdom of Navarre and was employed by the Counts of Castile and at least one Duke of Galicia

 

스페인의 라틴어 히스파니아이.해서 모든 스페인의 황제.란 타이틀은. 9세기에도 썼던 명함인데. 우라카. 이전과 후에도 쓰고. 사가들이 말하는 첫 황제는 페르디난도1세.로 봐. 

 

헌데 아직은 말야. 페르디난도1세의 형이 승계한 나바라 와 아라곤 은 따로 가고있는거야.

 

 

 

저 알폰소 7세가 엄마껄 고대로 이어받지만. 다음 자식들 부터 또 나뉘어지다가. 1230년에 다시 한 사람이 킹 하는겨. 이때부터 쭈욱 카스티야와 레온. 은 따라붙는거야. 헌데 가만보믄 페르디난도1세가 합친 1037년. 즉 2백년 전부터는 바스크족인 쉬메네스.가 서고쓰족의 것을 결혼과 전쟁으로 주인 종족이 바뀐거야. 그리고서리 우라카의 아들 서기 1126년 부터는 이브레아 가문이 이어가는거고.

 

서기 1230년에. 갈리시아 킹덤. 아스투리아스. 가 이 카스티야와 레온. 이라는 이름으로 다 들어오는거야. 킹덤들 이지만. 킹 한명이 모든 타이틀을 취해. 아스투리아스.는 카스티야의 후계자 자리로 프린스.란 이름으로 주로 주고 따로.

 

.

 

 

 

포르투갈.은 아스투리아스 킹덤의 바쌀 임차인으로 카운트로 시작했잖아. 이게 레온에 합쳐 지면서 킹덤대신 자치령으로 가고. 이때는 서고쓰족이야. 이게 바스크족 페르디난도1세에게 먹혔걸랑. 서기 1037년에.

 

 

이 포르투갈.이 저 주인 종족이 서고쓰족에서 바스크족으로 갈릴때에. 얘들이 저길 안들어가는겨. 얘들은 서고쓰족이걸랑. 

 

 

.

Vímara Peres[a] (Vímara Pérez in Spanish; died in Galicia, 873)[1] was a ninth-century nobleman from the Kingdom of Asturias and the first ruler of the County of Portugal.

 

 

포르투갈.은 아스투리아스 킹덤의 백작령. 868년 부터 시작해. 비마라 페레즈. 

 

 

팔레요.가 무슬림과 싸워서 이베리아 최초의 그리스도 킹덤 아스투리아스.를 세우고. 다음대에서 핏줄끊기고 제 3대 킹.이 아스투리아스의 알폰소1세.가 레온과 갈리시아.를 점령하면서 아스투리아스 레온 왕조를 이어갈때. 이 알폰소1세.도 서고쓰족 핏줄이야. 

 

비마라 페레즈.가 알폰소1세의 핏줄이야. 서고쓰족인거야. 이들이 포르투갈 백작령을 따로 갖고 가는거야. 2백년을. 그러다가 페르디난도1세가 티나와서리 오른쪽이 다 먹힌겨 바스크 애들에게. 삼형제 중 막내 가르시아2세가 갈리시아 킹덤을 갖고갈 때. 여기가 포르투갈 북쪽이야. 

비마라 페레즈.의 백작 가문.은 서고쓰족. 얘들 밑에 안들어가겠다는거지.

The Battle of Pedroso was fought on 18 January 1071,[1] in Pedroso, near BragaPortugal.[2]

 

페드로소 전투. 포르투갈 백작이 죽어. 가르시아.가 포르투갈 킹.을 자칭해. 갈리시아 킹.에. 그러다 위 두형에게 지고 감금당하고. 둘째형이 다 먹고. 

 

 

할때. 이 둘째 알폰소.가 이 포르투갈을 막내딸 테레사.에게 주는거야. 테레사.는 엄마가 미스트리스. 애인이야. 안적법한 딸이야. 남편이 부르고뉴의 앙리.야

 

 

장녀 우라카. 가 카스티야와 레온.을 승계해. 남편이 부르고뉴 이브레아 가문의 레이몬드. 테레사.가 포르투갈.을 받아. 남편이 카페 부르고뉴의 앙리. 

 

 

저 자매들의 남편들. 동서지간이 이름이 같은 부르고뉴야. 레이몬드는 백작령 부르고뉴. 앙리는 프랑스 공작령 부르고뉴. 헌데 이들도 옆에 이웃이라 비슷한 클랜.이지만 하튼 이후는 전혀 달라. 한쪽은 프랑스가 되고 한쪽은 이탈리아가 돼.

 

 

 

 

 

Alfonso I (1073/1074[1] – 7 September 1134), called the Battler or the Warrior (Spanish: el Batallador), was the king of Aragon and Pamplonafrom 1104 until his death in 1134.

 

아라곤과 나바라의 알폰소 1세. 나바라와 아라곤은 페르디난도1세의 형인 쉐메네스가문이 계속 이어가는겨. 왼쪽 삼형제에서 통일한 알폰소6세가 죽고 큰딸 레온의 우라카.가 킹.을 하다가. 신랑 이브레아 부르고뉴의 레이몬드가 죽어. 두번째 남편이 아라곤 나라바의 킹 알폰소1세야. 세컨드 커즌. 증조할배가 같아. 이 알폰소.가 우라카의 자리를 넘보는거야. 우라카.는 자기자리를 못줘. 부부가 싸우는겨. 포르투갈의 앙리가 이 우라카.와 연합해. 결국 버텨. 결혼은 취소되고.

 

 

포르투갈의 앙리가 알폰소1세와의 전쟁 후유증으로 죽고. 마누라 테레사.가 이어받고서리. 이 아들인 포르투갈의 Alfonso 아폰수1세.가 진짜 포르투갈 킹. 더 퍼스트 가 되는겨.

Afonso I[a] (

European Portuguese: 

[ɐˈfõsu]; 25 July 1106 / 1109 or August 1109 / 1111 – 6 December 1185), nicknamed the Conqueror(Portuguese: O Conquistador), the Founder (O Fundador) or the Great(O Grande) by the Portuguese, and El-Bortukali [in Arabic البرتقالي] ("the Portuguese") and Ibn-Arrink [in Arabic ابن الرَّنك or ابن الرَنْق] ("son of Henry", "Henriques") by the Moors whom he fought, was the first King of Portugal. 



포르투갈의 아폰수1세. 가. 카스티야 레온의 알폰소7세. 즉 우라카와 레이몬드의 아들. 에서 떨어져 나가는거야. 아래 무슬림들이랑 계속 전쟁도 하면서리. 

House of Burgundy (1139–1383)
이 가문이 250년을 가는겨. 
아폰수1세의 아빠. 포르투갈의 앙리 백작. 부르고뉴.의 할아버지가 이 부르고뉴 공작령 창립자야. 로베르1세. 이 로베르1세의 할아버지가 위그 카페. 인겨 카페 창립자. 

얘들은 시작이 프랑스야 그래서. 다음 아비즈 가문도 시작인 주앙1세.도 부르고뉴야. 엄마가 미스트리스야 그래서 가문을 따로 만든겨 전쟁하고. 이 다음다음인 브라간자도 여기 핏줄이고.
이 포르투갈은 그래서 말야 . 결국 프랑스인겨 이게. 해서 포르투갈어가 프랑스어랑 비슷한거야

.

아라곤은. 위대한 산초3세의 장남 라미로1세. 페르디난도1세의 형. 이 나바라.랑 같이 받으면서 아라곤 킹.으로 올리고. 쉬메네스 가문이 계속 이어가. 

레온의 우라카.의 남편이 죽어서 재혼할때 가는 나바라 아라곤의 알폰소1세. 다음부터 나바라.와 아라곤.이 따로 킹을 가는거야. 이때부터 분리가 된겨 아라곤과 나바라는.

아라곤은 부인 우라카랑 전쟁하면서 자식없이 죽어. 동생이 받고. 얘도 딸만 낳아. 이딸의 남편이 바르셀로나 가문이야.

House of Barcelona, 1164–1410
바르셀로나.가 250년 아라곤의 킹을 하는거야. 


나바라.는 우라카 신랑의 다른 형제가 받아서리 삼대 마지막이 그 산초.야 샴페인 백작의 고모부.가 아니라. 외삼촌이야. 산초의 여동생 아들. 얘가 프랑스 샴페인 땅 사람이고. 이때부터 나바라.에는 프랑스가 들어온겨.

Theobald I (French: Thibaut, Spanish: Teobaldo; 30 May 1201 – 8 July 1253), also called the Troubadour and the Posthumous, was Count of Champagne (as Theobald IV) from birth and King of Navarre from 1234. He initiated the Barons' Crusade, was famous as a trouvère, and was the first Frenchman to rule Navarre.

 

나바라.의  테오발도(티보) 1세. 1234년 부터. 이 사람 아들이 성루이9세의 딸이랑 결혼하면서. 샴페인 가문이 끊기고 뒤에 카페 가문이 이걸 받아. 계속 프랑스 가문이 받아 이 나바라.를. 나중 프랑스 킹 앙리4세의 부르봉이 마무리 하는겨 잠시 쉬고 킹덤 없어질때까지.

 

 

.

 

백년전쟁 당시에 이전에 언급한. 이베리아땅에 후계자 전쟁이. 큰게 두개야. 두 피터의 전쟁과 포르투갈 후계자 전쟁.

 

 

 

Peter (Spanish: Pedro; 30 August 1334 – 23 March 1369), called the Cruel (el Cruel) or the Just (el Justo),[a] was the king of Castile and Leónfrom 1350 to 1369. Peter was the last ruler of the main branch of the House of Ivrea.



카스티야 레온의 우라카 아들.인 이브레아 가문(부르고뉴 백작령의 부르고뉴)이 250년 후에 마지막이 이 피터.야 

 

 

Henry II (13 January 1334 – 29 May 1379), called Henry of Trastámaraor the Fratricide (el Fratricida), was the first King of Castile and Leónfrom the House of Trastámara. 

 

카스티야의 엔리케2세. 피터와 형제인데. 생일이 7개월 빨라. 엔리케2세는 엄마가 미스트리스.야 안적법한겨 얜. 얘가 배다른 일곱달 아래 피터.에 반기를 들고 세력을 모으는거야.

 

 

카스티야 레온의 킹 피터.가 첫결혼부터 삐걱해. 미스트리스랑 비밀 결혼. 이여잔 너댓낳고 흑사병으로 죽어. 딸들이 있는데 이걸 코트에서 안적법 자식으로 쳐. 다른 부인들 들이는걸 다 내 차고. 얘가 

 

자식이 없는거야 또한. 적법한 자식이. 여기에. 다른 피터.가 아라곤의 피터.야 바르셀로나 가문인. 

 

 

 

엔리케2세가 아라곤의 피터.랑 연합하고. 여기에 프랑스가 들어오고. 백년전쟁의 상대 잉글랜드는 카스티야의 피터를 지원하고. 카스티야의 피터가 무능력해. 

 

 

The War of the Two Peters (Spanish: La Guerra de los Dos Pedros, Catalan: Guerra dels dos Peres) was fought from 1356 to 1375 between the kingdoms of Castile and Aragon.

 

저 전쟁이 20년. 애인의 자식인 엔리케2세가 이기고. 얘가 카스티야 레온의 킹이돼.

 

House of Trastámara 
트라스타마라 가문의 창립자야. 엔리케2세. 헌데 우라카의 남편 집안인 부르고뉴 이브레아 가문.과 다를게 없어. 여자가 미스트리스 였다는 거일 뿐.

.

아라곤.은 바르셀로나 가문에서 시칠리아 만종으로 따로 여기 형제가 호헨슈타우펜에 프랑스 앙주 내몰고 시칠리 킹을 아라곤이 할때 바르셀로나 가문.이야.

아라곤.도 바르셀로나 가문이 핏줄이 끊겨. 카스티야로 시집간 아라곤의 딸의 아들이 오는거야. 즉 카스티야의 투라스타마라 가문이야.

Ferdinand I (Spanish: Fernando I; 27 November 1380 – 2 April 1416 in Igualada, Catalonia) called of Antequera and also the Just (or the Honest) was king of Aragon, Valencia, Majorca, Sardinia and (nominal) Corsica and king of Sicily, duke (nominal) of Athens and Neopatria, and count of Barcelona, Roussillon and Cerdanya (1412–1416). He was also regent of Castile (1406–1416).

 

아라곤의 페리디난도1세. 페르난도1세. 카스티야 시작인 엔리케2세.의 손자.야. 삼대째에 아라곤이 트라스타마라로 들어와. 페르난도의 엄마.가 아라곤 공주였어. 아라곤의 마지막 킹이 엄마의 오빠야 적법자식없이 죽어. 이걸 승계해.

 

 

 

즉 말이야. 나중 카스티야의 이사벨라와 아라곤의 페르디난도2세. 가 같은 트라스타마라 가문인데. 끽해야 엔리케 2세. 창업자의 아들. 카스티야의 후안1세.의 자식들 부터 갈린거야 이게. 

 

카스티야와 페르디난도.는 같은 세대 사촌간이야. 증조할배가 같아 후안1세. 카스티야의. 세컨드 커즌이야. 

 

 

카스티야와 레온. 은 미친 딱지 붙은 후안나.까지 6세대인겨. 이게 아라곤과 같이 카를 5세가 합스부르크 이름으로 가는거야. 

 

 

 

시칠리아.는 바르셀로나 가문의 것을 똑같이 아라곤의 트라스타마라.가 갖고 오는거고.

 

나폴리.는 앙주의 르네를 쫓아내는 알폰소는 아라곤 트라스타마라 가문이야. 

 

 

 

.

John I (Portuguese: João[1] [ʒuˈɐ̃w̃]; 11 April 1357 – 14 August 1433), also called John of Aviz, was King of Portugal from 1385 until his death in 1433. He is recognized chiefly for his role in Portugal's victory in a succession war with Castile, preserving his country's independence and establishing the Aviz (or Joanine) dynasty on the Portuguese throne.

 

포르투갈은 카페 부르고뉴가문이 앙리백작에서 시작해서 250년 하다가. 후계자 전쟁이 붙는거야. 이때도 똑같아 그 상대가. 카스티야.는 피터와 배다른 형제. 애인의 자식 엔리크.

 

여기도 포르투갈의 페르난도1세보다 열살 아래 배다른 동생이야. 엄마가 미스트리스 애인이야. 이 둘이 붙어. 

 

 

카스티야 나 포르투갈이나 피터랑 페르난도는 또한 아들이 없어.

 

.

 

이걸 주앙1세. 카스티야랑 같은 입장인 안적법한 아들이 이기는겨.

 

 

 

 

이때부터 아비즈 가문. 하는건데. 그래도 아빠핏줄은 카페 부르고뉴야. 이름만 달리 한거야. 

 

 

포르투갈.은 이사람이 제대로 만드는거야.

탐험의 시대.의 막을 활짝 열어 제끼는 사람들은. 바로 이 포르투갈의 주앙1세의 자식들이야.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여는 16세기를 이해하려면. 저런 과정이 정리가 먼저 되어야 했기에 짐이 정리를 한건데.



나바라. 는 이전에 해서리 그걸로 퉁치고. 

 

포르투갈도 프랑스고. 카스티야와 레온.은 이브레아 가문.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야. 아라곤은 나바르라는 바스크족에 갔다가 바르셀로나는 프랑크 영지였다가 그리고 트라스타마라로 갔으니 바스크족에 프랑크에 이탈리아가 섞인거걸랑. 헌데 여긴 바르셀로나 가문 부터 시칠리아를 먹었걸랑. 카탈란 컴퍼니들의 시칠리아 만종부터. 그러면서 이탈리아에 무지하게 들어가는겨 이게. 즉 이전 찐했던 바스크에 프랑크가 점점 이탈리아가 되는거야 이게. 더하여 카스티야 레온은 원래 이탈리아.고. 

 

 

해서 지금 스페인.이 이탈리아 냄새가 찐한거고. 포르투갈이 프랑스 냄새가 그 위에 얹혀진거야.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기존 고대로마의 라틴과 이탈리아에 더하여. 프랑스 냄새의 차이야 이건. 

 

 

 

이런걸. 역사 이야기를 길게 봐서야 알 수가 있는거야.

 

 

진짜 탐험의 시대는 다음에 하자. 

 

Equestrian statue of Vímara Peres in Porto

비마라 페레즈. 포르투갈의 시작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