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ge of Discovery, or the Age of Exploration(approximately from the beginning of the 15th century until the end of the 18th century) is an informal and loosely defined term for the period in European history in which extensive overseas exploration emerged as a powerful factor in European cultureand was the beginning of globalization.
발견의 시대. 탐험의 시대.
저따위를 왜 대항해시대. 라 댈까.
大航海時代(だいこうかいじだい)は、15世紀半ばから17世紀半ばまで続いた、ヨーロッパ人によるアフリカ・アジア・アメリカ大陸への大規模な航海が行われた時代。主にポルトガルとスペインにより行われた。
다이코우가이 지다이. 일본님덜 께서. 대항해시대. 라 쓰시니까 떠 받들어서리 대항해 시대 하는 거란다
歐洲歷史的地理大发现(英语:Age of Discovery;又名探索时代、海權時代或大航海時代)指从15世纪到17世纪时期
중국이들은 구주역사의 지리대발견. 탐색시대. 해권시대 혹 대항해시대.
저 중국이들조차. 지리대발견 하시고. 일본덜이 쓰란 말은 혹. 붙여서 써준다.
저게 먼 대항해냐 항해는. 15세기 부터의 저 이야기엔 바다 이야기만 있는게 아냐. 러시아 이반4세의 시베리아 이야기도 저때야. 러시아도 저 시대에 당당히 주인공이야. 대항해시대 란 말을 노예적으로 담고 있으니 러시아 이야기는 전혀 알 길이 없는겨 저게.
이땅바닥의 지쩍 수준은 끔찍하다. 지시긴 자연 하는 애들의 온갖 거짓 위선은 끔찍하고 저 무시기 대갈빡들의 이야기들이 서점을 도배하고 미디어를 도배하민서리 마치 진보적인간인양 이념에 쳐먹혀서리 인민 대민서리. 야 이젠 김정은 김정은 최고 지도자님 어쩌고 하민서리 공개적으로 나불댄다미 ㅋㅋㅋ. 참 끔찍한 땅바닥이다 여기가.
민주. 라는 말은 정말 드럽고 드럽다.
정의. 라는 말은 정말 역겹고 역겹다.
민주라는 말 정의 라는 말은 일본가 만들어낸 주작된 말이다 그게. . 일본가 번역한 말도 안되는 저따위 단어와 정의를 쓰민서리 민주주여~ 참 도 개이 아니다 저게. 저러니 저따위 미친 짓들이 대놓고 벌어지는 세상이 된거라. 얼마나 무시카면 저런 짓들을 해대고들 이쓰까
.
야이 들아. 일본님들이 만들어 주신 사유를 그럼 고맙게 떠 받들면서리 숭배하면서 제대로 모시던가. 철저하게 일본가 창조한 생각의 바다에서 살면서 반일에 부들부들 . 먼 정신병동도 아니고 말야. 정신병자 들도 저런 은 안할껴.
일본가 번역한 대부분의 역사 이야기는 다시 번역해야해. 시대를 정의하는 단어 자체도 다 틀려. 그 후에 반일반일 대고 친일적폐 니 적폐 놀이나 하던가
Origin
Middle English: from Old French covrir, from Latin cooperire, from co- (expressing intensive force) + operire ‘to cover’. The noun is partly a variant of covert.
커버. cover. 라는 말은 코 오페리레. 코. 컨. 컴. 이라는 접두어는 응축된겨 먼가. 여긴 힘이 강도가 쎄서 모아진 상황.이야. 오페리레. 덮어. 보호하던 감주던. 디스. 그걸 벗기는겨. 해서 발견. 이라해.
발견의 시대. 좀 약해. 저 바다로던 땅으로던 말야. 저건 낭만 이 전에. 그야말로 개고생에 죽음길이야 저건. 고행의 연속이야. 발견.이란 말은 그 무릅씀이 약해.
해서 만든말이. 익스플로레이션. 이야
Mid 16th century (in the sense ‘investigate (why)’): from French explorer, from Latin explorare ‘search out’, from ex- ‘out’ + plorare ‘utter a cry’.
익스플러오. 라는건. 플로라레. 가 어터. 소리를 내는겨 이건. 울음소리를 내는게 플로라레. 익스. 는 완전한. 울음 소리를 완전하게 내는겨. 울부짖는겨. 먼가 개고생하고 나서리 찾아낸 후에 나오는 탄성이야. 서치 아웃. 완전히 발견하다. 저기엔 개고생의 감정에 발견의 기쁨이 같이 있어.
罙,既是声旁也是形旁,是“探”的本字。罙,金文(穴,洞穴)(口,洞口 )。造字本义:把手伸进看不见的洞穴里摸索。
탐. 이란 글자가. 동굴 더하기 그 입구 더하기 발개. 보카이. 꽉닫혀 있는걸 젖혀 제껴서리 여는겨. 사람이. 사람이 어두컴컴한 무섭무섭한 동굴입구에 무엇이 있으까 용기를 잔뜩내서리 손을 쭉 뻗어서 찾는겨.
僉,既是声旁也是形旁,表示剑。险,
造字本义:比喻陡峭如剑的山峰。
。
험. 이라는 글자는 산 더하기 이검. 날카로운 칼. 비유. 두초여검적 산봉. 험하고 가파르기가 칼과 같은 산봉우리. 험하다 하는겨 저걸. 그 탐 하면서 손을 뻗어서 찾아 쥐는게. 어두컴컴 독사나 짐승이 물수도 있는 공포감이 있고. 장애물이 험하고 가파르는 산.이란겨.
저게 탐험. 이야.
에이지 오브 익스플로레이션.은 탐험의 시대. 라고 번역 하도록 해 앞으로..
저기서 스타트.는 포르투갈이야. 포르투갈.이 왜 주인공이 되었을까. 저기 스페인땅을 좀 보면.
Main language areas, peoples and tribes in Iberian Peninsula c. 300 BC., according to epigraphy and toponymy, based on the map by Luís Fraga
기원전 300년. 에 고대 그리스.와 페니키아.의 해변 식민지.인데 빨간게 그리스 해상도시. 파란게 페니키아. 카르타고 노바. 라는게 신 카르타고. 한니발 아부지가 로마한테 지고 아들데리고 저기서 칼갈어.
저 지도를 눈여겨 봐. 저게 언어족이야 인종지도야 저땅의. 갈라이키. 가 갈리시아 킹덤.이 서는거고. 아스투레스.가 아스투리아 킹덤이 서는거고. 바스코네스 Vascones 가 나바라 킹덤이 서는 곳이야.
저들이 저 지명의 트라이브 종족들이야. 이베리안. 이라는 사람들은 켈트(갈리아)가 오기전의 원주민들이야. 전혀 달라. 켈트는 흑해주변에서 온 이들이고. 나머지 원주민들은 아프리카에서 오스트랄로이후 넘어온 애들인지 하튼 오래부터 있었어. 아키타니안. 칸타브리 산맥 오른쪽에서 피레네 산맥 거쳐서리 있었어. 이들이 피레네 너머서 아키탄.과 같은 족이다 아니다 다르다. 논쟁이야. 고대 서적은 이름으로 같은 부류.로 보지만 현대 사가들은 달리 봐. 그냥 아키탄과 밀접한 애들이다 정도야. 하튼 친한겨. 저 맨 위 지도.의 툴루즈.를 지나는 저 삼각모양의 강이 가론강이야. 카이사르는 저땅의 사람들을 아키탄 했어. 저기가 중세엔 가스코뉴. 오른쪽은 옥시탄.으로 바뀌고 아키탄은 더 위까지 가는겨.
바스코네스.가 바스크.와 밀접한겨. 저 빨간점 지도상. 팜플로나 Pamplona . 여기가 바스크의 중심이고. 여기가 나바라 킹덤의 수도야. 이 바스크 들이 저 피레네의 아키타니안들과 산맥너머 프랑스의 바로 접하는 아키탄과 고대에 비슷한 이들로 봐. 이곳이 나바라 킹덤.이 되고 샴페인 백작이 고모핏줄로 오면서 프랑스가 나폴레옹까지 정체성을 갖고 간겨 그 고대의 찐한 인연으로. 지금 프랑스는 이 나바라 킹덤의 바스크들이 또한 만든겨.
로마가 쇠약해지면서.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이땅에 처음 오는 게르만들이 만든 킹덤이 수에비 킹덤.
The Kingdom of the Suebi (Latin: Regnum Suevorum), also called the Kingdom of Gallæcia (Latin: Regnum Gallæciae), was a Germanic post-Roman kingdom that was one of the first to separate from the Roman Empire.
수에비의 킹덤. 이 수에비는 엘베강너머서 오데르강이 흐르는 발트해변쪽에서 쭉 내려와서리 고지대로. 한무리는 보헤미아 숲 슈마바 까지 가서리 왼쪽 바바리아가고 오른쪽 보헤미아로 가고. 다른 무리는 고지대 쭉 타고 올라서리 스와비아 슈바벤 까지 가고. 지난 이들이 더 아래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땅까지 가. 다른 이들은 여기 이베리아 반도 땅 끝까지 간거야.
Based in the former Roman provinces of Gallaecia and northern Lusitania, the de facto kingdom was established by the Suebi about 409,[1] and during the 6th century it became a formally declared kingdom identifying with Gallaecia
이들이 정착한 곳이. 갈라이키아.와 북 루시타니아.
루시타니아. 가 지금 포르투갈 땅이고. 여기 북부에서 끝 갈라이키아. 즉 이베리아반도 북서부 해안가에 정착해서 킹덤 하는겨.
409–585. 2백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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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동시에 들어온 이들이 서고딕 족이야.
The Visigothic Kingdom or Kingdom of the Visigoths (Latin: Regnum Gothorum) was a kingdom that occupied what is now southwestern France and the Iberian Peninsula from the 5th to the 8th centuries.
서고딕 킹덤. 이들의 영역이 이베리아 반도와. 프랑스 남부 까지야.
Greatest extent of the Visigothic Kingdom, c. 500 (shown in orange, territory lost after Vouille shown in light orange).
왼쪽에 수베이 킹덤이고. 칸타브리아 산맥의 바스크들 빼고 반도 전체에. 가론강 넘어서 중세 아키탄땅까지 다 갖고 있는겨 이 서고딕.이. 원래는 가론강 에 정착해서리 퍼진겨 이 서고딕은.
418–c. 720. 수에비 킹덤도 2백년 지나서리 서고딕에 먹힌거지.
The Goths (Gothic: Gut-þiuda; Latin: Gothi) were an East Germanic people, two of whose branches, the Visigoths and the Ostrogoths,
이 고트족. 고쓰족들은 동게르만이야. 게르만을 크게는 북게르만. 동게르만. 서게르만. 으로 나눠. 게르만의 시작은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라는 스칸디나비아 해변이야 바다를 서로 마주보고. 여기느 북게르만.이야. 이 북게르만에서 내려온 이들이 고쓰족이야. 이 고쓰족들은 동게르만이야.
동과 서를 나누는 기준은 오데르강.이야 비지고쓰족 오스트로고쓰족.이란 서고트 동고트가 이 동게르만이야. 동고쓰족들은 흑해로 정착해서 사라졌어 문화가. 스텝에 먹힌겨.
이 오데르강.에 수에비족 있고. 고쓰족들도 있고. 여기가 반달족이야 또한. 그리고 오른쪽에. 단치히 라는 지금 그다인스크.에 비스와강. 이 흘러.
The Vistula 폴란드 발음이야. 이쪽에 살던 이들이 부르고뉴 라는 동게르만이야. 이들이 아키탄 오른쪽에 부르고뉴 킹덤.을 세운겨.
The Kingdom of the Burgundians or First Kingdom of Burgundy was established by Germanic Burgundians in the Rhineland and then in Savoy in the 5th century.
부르고뉴 족들의 킹덤.
411–534
수에비족들의 킹덤은 서고쓰족 킹덤에 먹히고. 서고쓰족들이 갖고 있던 피레네 넘어의 프랑스 남부땅과 부르고뉴 게르만들의 킹덤은 클로비스1세의 살리안족의 프랑크 킹덤에 들어가는거야.
서고쓰 킹덤이 서기700년 지나면서 망한다는 것은. 아래에서 무어족들이 무슬림이 되서리 올라오는겨. 이 무어족들과 싸우는게 피레네 넘어 아키탄들이었어 이땐 프랑크가 아냐. 프랑크가 넘어온 무어족들이랑 싸우면서 이때 카를 마르텔이 등장하면서 아들 소피핀과 그 아들 샤를마뉴때에야 저 아키탄 아래의 가스코뉴땅이 프랑크 것이 되는겨. 카롤링거가 시작되면서.
카롤링거가 시작될 때에. 이베리아반도에선 무슬림의 이슬람시대인겨. 15세기까지.
Francia, also called the Kingdom of the Franks (Latin: Regnum Francorum), or Frankish Empire
481–843
수에비족 서고쓰족 부르고뉴족 들이 로마 쇠락하면서 킹덤을 갖는데. 클로비스1세가 제일 늦은겨. 이들이 350년 피레네와 알프스 너머에서 확장하면서. 저 프랑크의 방계 카를 마르텔. 때에야 통일 기반을 다지면서 서고쓰애들 내몰고 무어애들 내몰고 카롤링거 시작해.
The Umayyad conquest of Hispania was the initial expansion of the Umayyad Caliphate over Hispania, largely extending from 711 to 788.
History of Al-Andal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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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lim conquest (711–732) |
Umayyads of Córdoba (756–1031) |
First Taifa period (1009–1110) |
Almoravid rule (1085–1145) |
Second Taifa period (1140–1203) |
Almohad rule (1147–1238) |
Third Taifa period (1232–1287) |
Emirate of Granada (1238–1492) |
이베리아반도는 무함마드 다음의 4대 칼리프 다음의 우마이야애들이 넘어오고. 그리고 나서리 우마이야가 압바스에 망해. 이 술탄과 에미르 들이 이리 넘어와서 기존 애들 자리를 꿰찬겨. 그러다가 여기도 다이너스티가 다른 술탄들이 갈리면서 8백년을 가는겨. 모로코 무슬림애가 다이너스티.를 만들기도 하고. 그러면서 북쪽부터 기존 서고쓰 킹덤의 해체된 이들이 킹덤들을 세우면서 아래로 밀리는겨 땅들이.
The Kingdom of Asturias (Latin: Regnum Asturorum) was a kingdom in the Iberian Peninsula founded in 718 by the asturian chief Pelagius of Asturias (Asturian: Pelayu, Spanish: Pelayo). It was the first Christian political entity established after the Umayyad conquest of Visigoth Hispania in 718 or 722.[2]
-910
제일 먼저 무슬림에 대항해서 전쟁하고 세운 킹덤이. 갈리시아와 아스투리아스 지역이야 북쪽 끝 칸타브리아 산맥.
The Kingdom of Galicia (Galician: Reino de Galicia, or Galiza; Spanish: Reino de Galicia; Portuguese: Reino da Galiza; Latin: Galliciense Regnum) was a political entity located in southwestern Europe, which at its territorial zenith occupied the entire northwest of the Iberian Peninsula. Founded by Suebic king Hermeric in 409,
409–1833
갈리시아 킹덤.이란건 수에비족 킹덤.의 공식명칭이야. 이 킹덤이 서고쓰족보다 먼저 선겨. 이게 서고쓰족에게 먹혀. 킹덤은 유지를 한겨. 킹을 서고쓰족이 해. 유니온으로. 서고쓰망하면서 같이 망해. 그러다가 바로 아스투리아스.가 킹덤 하면서 여길 회복하는겨. 여긴 계속 킹덤 으로 간겨. 속국으로 간거지 계속.
The County of Portugal (Portuguese: Condado de Portugal, Condado Portucalense, Condado de Portucale; in documents of the period the name used was Portugalia[1]) refers to two successive medieval counties in the region around Braga and Porto, today corresponding to littoral northern Portugal, within which the identity of the Portuguese people formed.
868–1139
포르투갈.은 아스투리아스.의 바쌀. 임차인 영주야. 포르투갈의 시작이야. 아스투리아스.의 남부. 지금 포르투갈의 북부인 브라가. 포르토.
The Kingdom of León (UK: /leɪˈɒn/, US: /-ˈoʊn/;
Spanish:
[leˈon]; Astur-Leonese: Reinu de Llïón; Spanish: Reino de León; Galician: Reino de León; Portuguese: Reino de Leão; Latin: Regnum Legionense) was an independent kingdom situated in the northwest region of the Iberian Peninsula. It was founded in AD 910 when the Christian princes of Asturias along the northern coast of the peninsula shifted their capital from Oviedo to the city of León. The County of Castile separated in 931, the County of Portugal separated to become the independent Kingdom of Portugal in 1139 and the eastern, inland part of León was joined to the Kingdom of Castile in 1230.
910–1230
레온 킹덤.은 수도를 오비에도.에서 동남부 레온. 으로 옮기면서 따로 만든 킹덤.이야.
The Kingdom of Castile (/kæˈstiːl/; Spanish: Reino de Castilla, Latin: Regnum Castellae) was a large and powerful state located on the Iberian Peninsula during the Middle Ages. Its name comes from the host of castles constructed in the region. It began in the 9th century as the County of Castile (Condado de Castilla), an eastern frontier lordship of the Kingdom of León. During the 10th century its counts increased their autonomy, but it was not until 1065 that it was separated from León and became a kingdom in its own right. Between 1072 and 1157 it was again united with León, and after 1230 this union became permanent.
1065–1230
카스티야 킹덤.은 레온 킹덤.에 하미지를 하는 카운트 백작으로 서기 8백년대에 시작한겨. 포르투갈 카운티 보다 먼저일껴 여기가. 즉 이전엔 아스투리아스.에 하미지 하다가 레온 킹덤 이 더 가깝걸랑. 여다가 하미지 를 하는겨. 그러다가 킹덤이 된겨.
저 레온 킹덤이나 카스티야의 백작이나. 시작은 말야. 아스투리아스 킹덤.이야. 이 자식들에게 첫째는 아스투리아스. 둘째는 레온. 셋째는 카스티야. 식으로 주는겨.
해서 아스투리아스. 가 나중에 스페인에서 세자. 킹의 후계자에게 제일 먼저 주는 자리가 이 아스투리아스 프린스 인거야 그 이유갸.
지금 스페인은 킹덤이야. 여긴 지금 왕이 있는겨. 리퍼블릭이 아냐.
Incumbent
Leonor
since 19 June 2014
Princess or Prince of Asturias (Spanish: Princesa/Príncipe de Asturias) is the main substantive title used by the heir apparent or heir presumptive to the throne of Spain
지금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의 프린스.가 레오노르 여자아이야. 지금 킹 펠레페 6세가 딸만 둘이걸랑. 쟤가 다음 레그넌트 퀸이 되는겨.
아스투리아스.가 스페인 정체성의 시작인거야.
The Kingdom of Navarre (/nəˈvɑːr/; Basque: Nafarroako Erresuma, Spanish: Reino de Navarra, French: Royaume de Navarre, Latin: Regnum Navarrae), originally the Kingdom of Pamplona (Basque: Iruñeko Erresuma), was a Basque-based kingdom[7] that occupied lands on either side of the western Pyrenees, alongside the Atlantic Oceanbetween present-day Spain and France.
824 (traditional)–1841
나바라 킹덤은 달라. 아스투리아스 킹덤 서고 백년 지나 선겨. 창립자가 바스크족이야. 무슬림이랑 피레네 너머 프랑크애들 까지 다 이기고 귀퉁이에서 킹덤이 선겨. 음청난겨 이 바스크.
The Crown of Castile[nb 1] was a medieval state in the Iberian Peninsulathat formed in 1230 as a result of the third and definitive union of the crowns and, some decades later, the parliaments of the kingdoms of Castile and León upon the accession of the then Castilian king, Ferdinand III, to the vacant Leonese throne.
1230–1715
카스티야.가 킹덤에서 레온이랑 합치면서 크라운.이 되는겨. 크라운을 킹덤보다 상위개념으로 쓴거지. 아스투리아스.는 레온 킹덤아래로 들어온 거고. 아스투리아스 는 킹덤 대신해서 프린시팰리티.로 자치성을 더 두면서 작아진겨.
The County of Aragon or County of Jaca was a small Frankish marcher county in the central Pyrenean valley of the Aragon river, comprising Ansó, Echo, and Canfranc and centered on the small town of Jaca (Iacca in Latin and Chaca in Aragonese), an area now part of Spain. It was created by the Carolingians late in the 8th or early in the 9th century, but soon fell into the orbit of the Kingdom of Navarre, into which it was absorbed in 922. It would later form the core of the 11th century Kingdom of Aragon.
1035–1707
아라곤.은 시작이 피레네산맥 내륙이야. 여긴 해변이 아냐 처음엔. 카운트 로 시작을해. 하미지 주인은 카롤링거 애들이야. 그러다가 바로 왼쪽 옆 나바라에 먹히다가. 나바라 킹의 배다른 동생이 독립을 해서리. 옛날 아라곤 자리에 아라곤 킹덤을 세우고 이 사람아들이 나바라 킹덤 킹이 돼. 이전 나바라 킹은 살해되고.
Ramiro I (bef. 1007 – 8 May 1063) was the first King of Aragon from 1035 until his death.
라미로1세. 가 아라곤 킹.하는건 저 이전의 백작과 상관이 전혀 없어.
The Principality of Catalonia
12th century–1714
카탈로니아.는 아라곤 오른쪽에 있는 스페인 동북쪽 해변지역. 피레내 산맥이 위 접하고. 여기의 남부가 바르셀로나.인거야.
The counties that would eventually make up the Principality of Catalonia were gradually unified under the rule of the Count of Barcelona.
바르셀로나.는 백작령이야 카탈로니아 남부의. 저기가 다 프랑크 애들 샤를마뉴 아들 경건루이가 정복한 곳이야. 여기에 하미지 하다가 벗어난겨 얘들은. 카스티야 레온 이라는 서쪽과 전혀 달라 또한. 이 바르셀로나 백작이 카탈로니아 땅을 지배하는겨.
The County of Barcelona 801–1162
나중 아라곤 핏줄이 끊기고 딸만 남아. 결혼으로 아라곤.으로 들어가서리 아라곤 킹이 바르셀로나 백작을 겸하는겨. 이걸 트라스타마라 가문이 받는거고.
.
아스투리아스.에서 레온. 카스티야.가 나오고. 카스티야.가 합치고. 나바라.는 프랑스랑 이어가고. 아라곤은 카탈로니아 바르셀로나. 아래 발렌시아 합치고. 그러다가 카스티야 아라곤 합치고.
포르투갈은 아스투리아스에 하미지 하던 백작령에서 독립된 킹덤을 세워.
The Kingdom of Portugal (Latin: Regnum Portugalliae, Portuguese: Reino de Portugal) was a monarchy on the Iberian Peninsula and the predecessor of modern Portugal.
1139–1910
포르투갈.은 지금 리퍼블릭이야. 킹이 없어.
아스투리아에 하미지 하던 포로투갈 백작이니까 다음 레온 카스티야 속국인겨 여기 하미지 하다가. 이 포르투갈 백작의 딸을 부인으로 들인 프랑스의 부르고뉴 가문.에서 이걸 다우리. 로 받았는데. 적법치 않은 딸이라고 다우리를 안주고 장인이 죽어. 그러면서 다투다가 이걸 뺏는겨 부르고뉴 가문이.
Afonso I[a] (
European Portuguese:
[ɐˈfõsu]; 25 July 1106 / 1109 or August 1109 / 1111 – 6 December 1185), nicknamed the Conqueror(Portuguese: O Conquistador), the Founder (O Fundador) or the Great(O Grande) by the Portuguese,
백작과 딸의 아들이 포르투갈의 Afonso 아폰수 1세. 위와 오른옆으로는 갈리시아 킹에 레온킹이라는 그리스도 들이랑 싸우고. 아래로는 무슬림이랑 싸우면서 포르투갈 킹덤을 세운겨 엄마 를 끈으로 해서리.
현명공 필리프에서 용감공 샤를에 마리 까지 가는 부르고뉴 가문은 정확한 명칭은 발루아 부르고뉴 인거야. 필리프가 아빠 장2세 킹에게 받을 때. 이 장2세 마누라가 저 부르고뉴 핏줄이걸랑. 엄마 핏줄로 받아서리 부르고뉴 하지만. 부르고뉴 가문이 아냐 얘들은 발루아한테 넘어간거야 프랑스 부르고뉴 땅은. 해서 발루아 부르고뉴 가문.이 맞아 원래는. 이걸 아비즈 가문이 이어가다가 합스부르크 펠리페2세가 받았다가 다시 브라간자 가문으로 가지만 이 가문도 아비즈 먼 핏줄이야.
Portuguese House of Burgundy
(1139–1383)
포르투갈의 부루고뉴 가문이 240년을 하다가. 저 막판이 프랑스 잉글랜드 백년전쟁이야. 이 백년전쟁의 진짜 승기 는 외교전이야 이게. 제일 중요한 전장이. 또한 이 포르투갈 인거야. 여기서 후계자 전쟁이 벌어져. 프랑스애들이 보면 자기들 부르고뉴 땅이걸랑. 부르고뉴 시작이 프랑스 킹 앙리1세의 동생이야.
.
이 포르투갈.이 완전히 귀퉁이걸랑. 대륙이랑도 끊겼어. 외부로 갈 곳은 바다 밖에 없는겨. 해군을 키워야 했어 지리적으로 살아남을려면. 레콩퀴스타 하면서 바다에선 얘들이 싸우는겨.
The first historically known battle involving Portuguese naval forces happened in 1180, during the reign of Portugal's first king, Afonso I. The battle occurred off Cape Espichel, with a Portuguese naval squadron, commanded by the knight Fuas Roupinho, defeating a Muslim naval squadron. Fuas Roupinho also made two incursions at Ceuta, in 1181 and 1182, and died during the latter of these attempts to conquer the North African city.
During the 13th century, in the Reconquista, the Portuguese naval forces helped in the conquest of several coastal Moorish towns, like Alcácer do Sal, Silves and Faro. It was also used in the battles against Castile - through incursions in Galicia and Andalusia - and also in joint actions with other Christian fleets against the Muslims.
아폰수 1세가 킹덤 시작하고 무슬림 해상 병력이랑 싸워. 1180년.
레콩퀴스타 할때는 포르투갈이 해군으로 바다에서 자기들 남부 해변의 무슬림과 직접 싸운겨.
King Denis decided to give a permanent organization to his naval forces, appointing Manuel Pessanha of Genoa to be the first Admiral of the Kingdom, on the 12 December 1317. This is considered the official date of foundation of the Portuguese Navy, with its 700 years being commemorated on the 12 December 2017.
In 1321, the Portuguese Navy successfully attacked Muslim ports in North Africa. Maritime insurance began in 1323 in Portugal. Between 1336 and 1341, the first attempts at maritime expansion are made, with the expedition to Canary Islands, sponsored by King Afonso IV.
킹이 1317년에 제노바 사람을 해군 제독으로 임명해. 저들은 킹덤 차원에 해군을 따로 만든거야.
카스티야.는 정가운데서 시작이야. 얘들은 바다를 몰라. 아라곤도 몰라. 그 속국은 카탈로니아.의 바르셀로나 와 아래 발렌시아 가 바다를 알 뿐이야. 이들이 말야 상대적으로 이탈리아 해상도시에 안되는겨 이 바다에 대한 능력이.
아라곤.도 해군 용병대장을 이탈리아의 제노바 베네치아 사람을 쓰는겨. 포르투갈도 여기 사람을 쓰는거야.
이 포르투갈.이 왼쪽 스페인보다 더 절박해. 바다에 대해 더 투자를 해. 잉글랜드도 포르투갈 보다 늦어 바다가. 그 투자하는 속도와 내용이.
포르투갈이 지리적 이유로. 애초부터 바다에 목숨을 건거야. 그리고 땅이 제일 작아. 땅 욕심도 나는겨. 이게 이탈리아와의 차이야 또한.
포르투갈이. 탐험의 시대.의 시작을 하고. 주인공으로 나서는 이유야.
다음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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