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ugh Wooing (December 1543 – March 1551) was a war between Scotland and England. Following its break with Rome, England decided to attack Scotland, partly to destroy the Auld Alliance, and prevent Scotland being used as a springboard for future invasion by France, partly to weaken Scotland, and partly to force Scotland to agree to a marriage alliance between its child Queen Mary and the English heir apparent Edward, son of King Henry VIII.
woo. 우 라는건. 바라는 것을 찾는 거야. 게르만어야.
Origin
Late Old English wōgian (intransitive), āwōgian (transitive), of unknown origin.
저게. 의성어야. 인간의 언어란건. 글자란건. 소리와 형상에서 갖고 오는겨 기본은. 이건 지구 전 구석이 똑같아. 자기들 땅에서 각각 느끼는 것들의 다름.이 그 지역의 언어를 만들었을 뿐이야. 우리네 한글 이란 글자는 우리네가 이땅에서 살면서 형성된 집단 무의식에서 쌓여온 소리와 형상.의 추상을 글자화 한 것일 뿐이고.
아 멋진 말쌈만 하시냐 짐께선.
러프 우잉. 거친 구애. 나중에 만든 작명인데.
스콧과 잉글랜드의 리포메이션.시대의 일이야. 저것도 종교전쟁이야.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의 싸움이야 구실은.
스콧의 리포메이션. 의 시작은. 소위 장로교야. 장로교는 스콧에서 나온겨. 존 녹스. 이사람은 이걸 스위스에 망명갔다가. 칼뱅 만나서리. 여기서 힌트를 얻어서리 자기땅 가서 적용을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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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는 이미. 롤러디. lollary 란 이름으로. 벌써 2백여년 전에. 존 위클리프.가 영어성경 만들면서. 프로테스탄트 기운이 벌써 태동을 했어. 그리고 나서리 2백년이 흐른거야.
Protestant ideas were popular among some parts of the English population, especially among academics and merchants with connections to continental Europe.[44] The first open demonstration of support for Luther took place at Cambridge in 1521 when a student defaced a copy of the papal bull of condemnation against Luther.[45]Also at Cambridge was a group of reform-minded university students that met at the White Horse tavern from the mid-1520s, known by the moniker "Little Germany". Its members included Robert Barnes, Hugh Latimer, John Frith, Thomas Bilney, George Joye and Thomas Arthur.[46]
1521년에 캠브리지.에서 루터를 지지하는 공개 데모를 하는겨. 교황이 루터 파문 압박하면서 루터 반대하는 칙령의 카피본들을 찢어.
쟤들의 문명은 말야. 대학이 만든거야. 노블 들이 만든거야.
인민들이. 역사를 만드는게 아냐.
인민들이란 민중들이. 제대로 된 노블들을 만들어낼 수준이 되도록 하는게 중요한겨.
동시에. 노블 들이 제대로 된 들이 나와서 인민 민중 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거고.
이땅바닥은 말야. 조선건국 이래 칠백년째. 제대로 된 노블들이. 지식인들이 없어. 이 들이 후진 들이걸랑. 이 지식인 들 수준이 저 중세 유럽의 민들 수준 조차 되지 않는게. 슬픈겨 이게.
별 개 그지 지렁이 들이. 노블 행세 지식인 행세 하면서 선동 질 하는게 이땅바닥 칠백년째 권력 이라는 노블 이걸랑. 아 슬픈건데. 헌데 이따위 이 역사늦은 아시아랑 중남미랑 똑같은겨. 일본들 빼고.
The University of Oxford is a collegiate research university in Oxford, England. There is evidence of teaching as far back as 1096,[2], with a mythical foundation dated in 873 (by King Alfred the Great)[13] making it the oldest university in the English-speaking world and the world's second-oldest university in continuous operation.
캠브리지. 전에 옥스포드. 대학이 1096년이야. 유럽 최초 대학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 1088 다음 두번째로 쳐. 혹자들은 이미 서기 873년 도에 알프레드 대제.가 대학을 세웠다고도 해.
옥스포드.는 칠왕국 체제 앵글로섹슨.에서 웨섹스야. 웨스트. 여기가 알프레드 대제.고 손자 애덜스탄이 통일해서 잉글리쉬 킹 타이틀 받는 곳이야. 옥스포드 대학이 여기 있는 이유야.
The University of Cambridge (formally The Chancellor, Masters, and Scholars of the University of Cambridge) is a collegiate publicresearch university in Cambridge, England. Founded in 1209 and granted a Royal Charter by King Henry III in 1231, Cambridge is the second-oldest university in the English-speaking world and the world's fourth-oldest surviving university.[9]
캠브리지 대학. 서기 1209년. 세계 네번째 가장 오래된 대학. 세번째가 스페인 마드리드의 살라망카 대학이야. 해서리 옥스포드 랑 캠브리지 의 경쟁심은 엄청난거야. 세계는 얘들 둘이 주도하는거야. 이 캠브리지.는 바로 오른쪽이 툭 티나온 반도야 둥그스름. 여기가 노퍽 서퍽. 하는 칠왕국체제의 이스트 앵글리아.고. 캠브리지가 나중에 이 이스트앵글리아.에 편입이 돼. 여기 아래 반도 가 캔터베리 있는 캔트. 인거고. 저들 가운데가 런던.이야.
As long as Wolsey had his ear, Henry's Roman Catholicism was secure: in 1521, he had defended the Roman Catholic Church from Martin Luther's accusations of heresy in a book he wrote—probably with considerable help from the conservative Bishop of Rochester John Fisher[4]—entitled The Defence of the Seven Sacraments, for which he was awarded the title "Defender of the Faith" (Fidei Defensor) by Pope Leo X.
루터 이야기가 이미 싹 퍼진겨. 대자보 1517년 후 4년 만에 저리 거리로 티나왔으면. 교황 칙령까지도 찢어. 헨리8세는 카톨릭이야. 얜 뼛속 깊이에 더하여 이론도 완전히 중무장한 인간이야. 저때 책을 헨리8세가 내는겨.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일곱 성사를 수호한다. 교황 레오10세가 감동 처먹어서 신앙의 수호자.란 닉을 부여해.
그리고 나서리. 앤불린이 프랑스에서 온겨. 저 다음해 만나. 그리고 나서리 사년후에 직접 들이대. 잦잦해조. 발정이 난겨. 더하여. 아라곤의 캐서린은 꺽인 칠십이야. 앤불린은 언니처럼 미스트리스 안해. 결혼하믄 주던가 할께.
1527년 사코디 로마 터진 해에. 사신 보내서리 결혼취소 시켜줘 막막 징징대고. 1531년에 슈프림 헤드 오브 처치 오브 잉글랜드. 를 선언해.
저때도 말야. 프로테스탄트.는 이단이야. 헨리 8세에게선. 앤불린 죽는 해에 수도원 철폐 시작할때도 프로테스탄트는 이단이야. 죽어. 영어 성경 번역한 틴데일도 죽여 어쨋거나.
Henry VIII (28 June 1491 – 28 January 1547) was King of England from 1509 until his death.
헨리 8세가. 1547년에 죽어. 마지막 부인은 캐서린 파. 이여자는 프로테스탄트야. 4년 가까이 살았어 둘이. 캐서린이 엘리자베스.랑 마리.를 복원해준겨 헨리 쫄라서리.
앵글리카니즘.이란게 어중간해진거야 두 계파 사이에서. 프로테스탄트는 초기에 죽여 헨리가. 그러다가 앤불린 만나면서. 점점 프로테스탄트로 기우는 거지만. 그래도 프로테스탄트는 이단이야. 이게 흐지부지 된겨 어느새. 틴데일 성경도 그레이트 바이블.로 2년 전 죽이고서 쓰는거고 공식으로. 걍 헨리 생전에 어중간한 프로테스탄트 가 된겨 얘가. 루터 반박한 글도 썼으니 또한 난 루터요 할 수도 없는거고. 앵글리카니즘은 저 당시 걍 앵글리 카톨릭. 일 뿐인겨 로마 지운. 해서 카톨릭이랑 프로테스탄트랑 킹에 복종 서약하고 같이 있는거야 지도층은.
어쨌거나 로마 카톨릭은 버렸어. 1536년에 수도원들 해체를 해. 그리고 앤불린 죽여. 그리곤 더 쎄게 가. 법령 다 만들었어. 로마 카톨릭은 확실하게 죽이고자 한겨. 이게 헨리 8세의 후반 십년이야.
얘 재임기간이 38년. 죽은 나이 햇수로 56세. 어릴때부터해서 40년 가까이는 카톨릭에서 쩔고 쩔은 인간이야. 이걸 앤불린에게 들이댄 해 1526년 부터. 결국 앤불린 죽는 1536년. 십년 동안 카톨릭에서 나와서리 자기만의 종교.를 만든거야.
스웨덴의 구스타브 바싸.는 자기가 권력을 잡고. 필요를 느껴서 프로테스탄트 해야만 했어.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프레데릭.도 자기가 권력을 잡고. 프로테스탄트.를 해야만 했어.
헨리8세.는 특이한 경우인거야. 권력자가 스스로 한거야 저건. 저런 면에서 보면. 특히나 앤불린.은 인정해 줘야해. 앤불린이 저 과도기의 헨리 옆에 있으면서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탄압도 주춤할 수 밖에 없는거야.
The Book of Common Prayer (BCP) is the short title of a number of related prayer books used in the Anglican Communion, as well as by other Christianchurches historically related to Anglicanism
앵글리카니즘. 성공회 만의 것이 저 공동기도서.라는 성공회 기도서야. 토마스 크랜머.가 주도해서리 대륙에가서 루터애들꺼 다보고 반영해서 만든거걸랑. 결국 저들이 잉글랜드의 프로테스탄트가 된거야.
러프 우잉.이 1543년에서 1551년. 즉 저기간은 이미 헨리가 자기들의 프로테스탄트.를 다질때야. 그리고 나서리. 곳곳에서 카톨릭의 주도로 반란이 일어나고. 이들이 스콧으로 망명을 하는거야. 저기 스콧.도 로마 카톨릭을 지워야 할 수 밖에 없어 헨리8세의 입장에선. 캐서린 파와 결혼하는 해. 사년 후에 죽어. 스콧에 유일한 적법한 자식이 딸 스콧의 마리. 자기 자식 애드워드랑 결혼하면 저 문제가 해결이 될거다. 라고 믿은거지.
Roman Catholic theology enumerates seven sacraments:[15] Baptism, Confirmation (Chrismation), Eucharist (Communion), Penance (Reconciliation)(Confession), Matrimony (Marriage), Holy Orders (ordination to the diaconate, priesthood, or episcopate) and Anointing of the Sick (before the Second Vatican Council generally called Extreme Unction). These seven sacraments were codified in the documents of the Council of Trent (1545-1563), which stated:
헨리가 1521년에 카톨릭 지지하면서 쓴 일곱 성사 수호. 즉 새크러먼트 신에게 바치는 예식이 로마 카톨릭은 일곱개야. 뱁티즘 세례. 컨퍼메이션 견진. 유카리스트 성체. 패넌스 고해. 매트리모니 혼인. 홀리 오어더스 성품. 어노인팅오브더식 병자.
루터는 저따위 새크러먼트. 하지 말고 페이쓰 얼론. 하라했걸랑. 그걸 헨리가 반박하는겨 미친 하면서. 그러다가 루터.도 이제 자기 교회를 세워 이 가. 페이쓰 얼론 하라민서. 벽보 붙이고 십년후에 세우는겨 그걸. 가만보니 지가 교황 해보까? 한거야. 처음엔 이따위 생각이 없었어 이앤. 완전히 자뻑에 미쳐서리 농민들아 죽어라! 나 루터가 주장하니 농민들이 다 뒈져서리 농민전쟁이 끝나따. 아 내가 예언자니라. 교회 세워볼까 그럼?
지도 쪽팔리걸랑. 새크러먼트 하지 말라고 댄 가. 교회를 세운다는건 새크러먼트.를 하기 위함 이야. 이앤 자기가 쪽팔린걸 알아. 해서 일곱개를 다 안해. 저기서 세개만 하는겨. 뱁티즘. 유카리스트. 페넌스. 뱁티즘 이란 세례.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아냐 얘 말 보면. 헌데 두개는 해야해. 유카리스트랑 패넌스 는 절대적인겨. 유카리스트.로 츠빙글리랑 헤어지는거고. 빵과 포도주는 진짜 예수의 살과 피.라는겨. 해서 저건 해야해. 패넌스. 이게 페이쓰 얼론과 엮이는겨. 이왕 페이쓰 얼론 할 빠엔 패넌스.라는 고해 찐하게 성사로 하는 것도 머 다를건 없걸랑.
그러면서. 이제 나 예언자 루터 가 맹근 교회에. 돈 들 내거라..
스콧은 이전에 비지땅.이라는 탁월한 안목으로 짐께서 정리를 개괄로 했지만. 그 이전꺼도 스콧 관련된건 복습을 하고.
짐의 말쌈은. 지금까지의 수백개 글의 이해 없으면. 먼말인지 못 처먹는다 니덜.
스콧.은 킹덤 시작이 케네쓰 맥알핀.
Kenneth MacAlpin 서기 850년 전후에 죽어. 이때부터해서리. 스콧의 데이빗1세. 이사람이 서기 1150년 즈음에 죽어. 킹덤 작게 서고. 3백년 지나면서 스콧의 데이빗1세.가 봉건제도를 도입하면서 제대로 된 스콧을 만든겨.
그러다가
John Balliol[1] (
c.1249 – late 1314)
스콧의 존 베일리얼. 데이빗1세가 죽고 백년 후 태어난 사람. 백년전쟁 시작 전이야.
스콧의 데이빗1세 핏줄이 끊기고 여자만 남았어. 노르웨이에 있는 마가렛. 꼬마여자애가 스콧에 퀸 하러 오다가 죽어. 잉글랜드의 에드워드1세가 자기 자식 2세랑 결혼시킬라 했걸랑.
스콧에 일명 대공위 시대가 온겨. 이때 경쟁이 베일리얼 가문과 브루스 가문.이야. 에드워드1세가 베일리얼.을 밀어. 헌데 얘가 프랑스랑 동맹 맺으면서 이때부터 스콧 프랑스는 동맹이 돼. 잉글랜드와는 웬수가 되고. 존 베일리얼은 전쟁 중 런던탑에 갇히고. 브루스 가문이 킹을 해. 얘가 스콧의 로버트 1세. 스콧의 영웅이야. 이 아들이 스콧의 데이빗2세. 프랑스 피신에 잉글랜드에 포로생활. 이 외조카 나이많은 로버트2세. 스튜어트의 시작. 이사람이 짱짱한 자식들을 많이 낳아. 로버트 3세. 형제들이 드세. 아들이 제임스1세. 즉 삼촌들이 킹을 하려는겨. 꼬마 제임스1세가 북쪽에 피신하다가 프랑스 넘어가려다가 잉글랜드에 잡혀. 잉글랜드의 헨리4세 에게. 제임스1세가 잉글랜드에서 18년간 포로생활을 해 궁정에서. 런던탑에도 갇히다가.
즉 다시 보면. 잉글랜드에 인질생활 한 스콧의 킹이. 존 베일리얼. 데이빗2세. 제임스1세.
제임스1세가 보석금 걸고. 18년 인질생활에서 벗어나서리 스콧의 킹이 돼. 얘가. 삼촌들 때문에 도망다니다가 잉글랜드에 잡힌 거걸랑. 얘 형들 두명도 삼촌들이 죽인듯 하걸랑.
Robert Stewart, 1st Duke of Albany (c. 1340 – 3 September 1420), a member of the Scottish royal house, served as regent (at least partially) to three different Scottish monarchs (Robert II, Robert III, and James I). He also held the titles of Earl of Menteith (28 February 1361), Earl of Fife (1361; resigned in 1372), Earl of Buchan (1394; resigned in 1406) and Earl of Atholl (1403, for the duration of Robert III's life only), in addition to his 1398 creation as Duke of Albany.
이 삼촌들 중에. 즉 제임스1세의 아빠 로버트 3세의 동생들이야. 이중 알바니 공작.의 로버트 스튜어트. 얘가 조카 제임스1세.의 형들을 죽인 거고 그래서 도망다니다 잉글랜드에 잡혔고. 해서 이 알바니 공작. 이라는 삼촌이 자기 형 로버트3세가 죽고 섭정을 한거야.
Walter Stewart, Earl of Atholl, Strathearn and Caithness (c. 1360 – 26 March 1437) was a Scottish nobleman, the son of Robert II of Scotland.
다른 삼촌. 월터 스튜어트. 로버트3세의 막내 정도야. 어린 삼촌이야. 자기 형. 알바니 공작 로버트.가 죽었어. 이사람이 잉글랜드에 있는 조카 제임스1세.를 데려오기로 한거야. 그리고 대신 자기 아들을 인질로 보내 잉글랜드에. 제임스1세가 스콧에 18년 만에 오는게 1424년. 나이 30 되어서야. 즉 이 작은 삼촌이 만들어준거야. 자기 아들을 인질로 보내고 조카를 데려온거걸랑.
그리곤. 이 월터. 주도하에. 정리를 하는거야. 알바니 공작. 자기형의 아들.을 죽여. 반란죄로. 얘도 이미 성인이고. 저 아들의 자식들도 죽여.
제임스1세가 왕위에 오르게 하고. 자기형의 자식들도 이 월터 라는 작은 삼촌이 주도적으로 해줘. 얘한테는 은인이야.
헌데. 월터 삼촌의 자식. 대신 잉글랜드 인질이 되어 간. 애가 죽어. 거기서. 그리고. 제임스1세.가 이 월터 삼촌에 대해 경계감이 있는거야.
월터가 처음부터 계획 한거냐. 아니면 나중에 어찌할 수 없는 변심이었던거냐.
제임스1세 입장에선. 그 삼촌들과 그 자식들이 무지 신경 쓰일 수 밖에 없는겨 얘 입장에선. 아무런 세력도 없걸랑. 이가 월터 삼촌이랑 잘 으쌰 으쌰 하믄 될 껄 괜히 먼 경계감이 든건지 알 수 없지.
제임스1세가 복귀하고. 죽게된 알바니 공작 쪽의 사람들이 다 스러졌어. 여기서의 사람이 제임스의 체임벌린에 들어가서 집사를 하고. 얘와 월터와 사람들이 엮여서리. 저 제임스1세를 암살을 해.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자다가. 집사가 문열어주고. 얜 테니스장으로 도망가다가. 개구멍이 있었는데. 수도사들이 테니스 공 치다가 공이 저 개구멍으로 나가서리 여길 아예 막아놨걸랑. 탈출을 못하고 여기서 죽어.
얘 아들이 제임스2세. 원래 같이 죽이려 했는데. 엄마랑 살아 남은겨.
저때 월터 스튜어트.는 죽일 생각만 한거지. 그 이후 세력을 어드래 만들을까 어떻게 권력을 잡을까 가 없었어 전혀. 바로 잡혀서리 걍 판결받고 사형당해.
이때 권력을 잡은 애들이 더글라스 가문이야. 제임스2세 꼬마의 외사촌이야. 로버트2세의 딸의 자식.
이 더글라스 가문. 이 말야. 스콧틀랜드의 짱짱한 역시 귀족가문이야. 데이빗1세 그때 티나온 집안이야. 이 더글라스 가문이 스튜어트 여자랑 엮여서 또한 실세가 된건데.
나중에. 제임스2세가 도망다니다가. 하튼 1세도 잉글랜드 18년 인질생활. 아들도 도망다니고. 얜 스콧에만 도망다녀. 그러다가 성인이 되서리 권력을 잡는데. 역시나 로버트2세 그 짱짱한 아들들의 핏줄과 엮인 귀족들이 세력이 쎈거고 이게 두려운겨. 얘가 더글라스 가문애를 걍 불러서리. 설득안된다고 걍 수십번 찔러죽인거야. 이게 얘의 아주 오점으로 남아.
제임스 1세 2세가 앤드류 대학 글래스고 대학을 세워. 나름 인문주의를 만들어. 정치 외교도 잘했어.
다음 제임스3세. 저 더글라스 들이 복수심으로 뭉칠수 밖에. 잉글랜드 지원 받아서리 내전하고. 더하여 차남 아끼다가 장남이 대들어. 제임스4세.
제임스4세.가 프랑스와 엮여서리. 이탈리아 전쟁때 프랑스 루이12세 협박 비슷. 잉글랜드랑 싸우는겨. 이게 플로덴 전투. 이때 헨리8세는 대륙에 있었고. 여길 배후에서 지휘한게 아라곤의 캐서린이야. 잉글랜드가 압승 거두고 제임스4세가 저 전장에서 죽어.
그리고나서리 아들 제임스5세. 가 한살 아기때 킹 이 된거야.
James V (10 April 1512 – 14 December 1542) was King of Scotland from 9 September 1513 until his death, which followed the Scottish defeat at the Battle of Solway Moss. His only surviving legitimate child, Mary, succeeded him when she was just six days old.
제임스 5세도 결국 말야. 나이 30에. 솔웨이 모쓰 전투. 헨리 8세랑 전투야. 여기서 패배하고 스콧인들이 수백명이 익사로 죽어. 이 전쟁 패배감으로 이 사람도 죽어. 그리고 나서리 마리가 6일만에 퀸이 된건데.
저걸 보면 말야. 잉글랜드와 스콧은 존 베일러 부터 특히나. 3백년이 웬수 중에도 웬수지간이야 여기가. 그 와중에 또 인질 되었던 데이빗2세. 제임스1세.는 또 잉글랜드 코트에서 잉글랜드를 배우고 가서 심어. 데이빗2세는 오히려 잉글랜드한테 내땅 가져가. 하기도 해.
쟤들은 조오오오온나게 웬수야. 이 유럽 애들의 역사를 보면. 서로서로 정말 미치도록 웬수지간이야.
쟤들이 저 시절에 대고 사과하라 마라. 너 내 웬수. 이을 지금 하냐
저런거 보면 말야. 이 조선민국의 일본에 대한 반감과 열폭질은. 이건 기괴하기까지 한거야. 이게 왜 그러냐면. 유교 걸랑. 유교에 쩔고 쩔은 마음이 웃긴건데. 이 유교란게 인간에게 말야 허섭한 존심 만 심어 이게. 인간에게 온갖 위선만 채우는겨. 개 조또 아닌 들이 지들이 대단 하다. 란 포장을 심게 해 이 유교란건 말이지. 해서 자기들은 조오오온나게 위대하고. 상대는 조오오오온나게 오랑캐고 적폐야.
조오오온나게 위대한 자기가. 조오오오온나게 미개한 적폐에게 당했다는 관념이 있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오오오오오온나게 미개한 가. 수백년간 조오오오온나게 자폐로 살면서 아~!~~~무것도 배운게 없는 정말 조오오오온나게 미개한 들이. 상대는 조오오오온나게 피터지면서 모험하면서 문명을 만들어낸 인간으로 진화된 건 전혀 모르고 말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저게 중국이들의 반일 감정과 또 옥 같은거야.
중남미 가 대단한 진보적인냥 타자의 은폐. 하며 책 쓰고 위대한 학자니 . 자기들의 조상들이 조오오온나게 자기들을 태워죽이면서 신전에 바치는 이야기는 은폐 하고 적폐 오랑캐때문에 지들이 그리 되었다는 거. 랑 또 옥 같은거야.
중국이들이 지들의 한족 이란 들이 오랑캐에 섞여서리 자기들을 조오오온나게 죽인건 싸악 덮고 말야. 그래서 조오오온나게 후지게 되서리 일본에게 당한건 싸악 덮고. 한족 중국이 만만세 일본 개개끼. 또 옥 같은거야 저게.
지구상에 저따위 웬수지간이 지들 그 몇십년 당한 것이 조오온나게 사탄에 의한 질 이라고 작위하는 거걸랑.
니덜이 웬수라 여기는 그들과의 관계가 말야.
저 애들 에 비하면 그건 웬수 감정 품을 턱이 될 수가 잇니 없니.
남을 적폐 하기 전에 이 들아. 니덜이 모시는 니덜들의 그 추악하고 더러운 짓을 상기해 이 들아.
똑같애 저들이. 민족 민족 대는거걸랑. 저 아시아 저 열폭질 들에 저 중남미 볼리바르 대민서리 카스트로에 체게바라 영웅에 차베스 개에 페론 .
쟤들을 배워 저 수백년간 끔찍한 웬수 지간 들한테. 이 개들아.
제임스6세가 잉글랜드의 제임스1세가 되면서 스콧의 킹에 잉글랜드 킹이 돼.
제임스가 말이지. 나는 브리튼의 킹.이라 해줘. 라고 말을 해 잉글랜드 팔리어먼트에.
팔리어먼트가 거부해. 넌 걍 잉글랜드 킹에 스콧의 킹이야. 스콧과는 하나가 될 수 없다는거야. 너 가면 다시 잉글랜드 랑 스콧 은 딴 나라 일 뿐이야 하는겨.
제임스가 잉글랜드 킹에 오를때 약속을 해 스콧 의회에. 매년에 한번 오겠다나 하튼 자주 오겠다고 해. 말년에 딱 한번가.
스콧에 가서야 그래. 나는 브리튼의 킹이다.
오히려 제임스가. 주장을 하는겨. 잉글랜드랑 스콧이랑 합치자.
지금 브리튼은. 영국은 말야. 제임스 6세이자 1세가 만든거야. 자기 조상들이 잉글랜드의 인질들에 포로생활들에 잉글랜드와의 전장에서 죽었어 저렇게. 그래도. 잉글랜드랑 스콧이랑 싸우지 말고 하나가 되자 라고 하던 인간이 스콧의 인간이야.
위대한 나라야 스콧랜드는.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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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선 민족에 열광질 하는 민족 민족 대는 들에겐 저따위 마음은 꿈도 못꾸는거지.
오직 적폐 놀이 외엔 할 줄 아는게 없어.
적폐 놀이 하면 지가 정의로운 짓 하면서 선한 인간이 되는 줄 알면서 자위 해. ㅋㅋㅋ. 인생 개 허섭한 들이. 자기가 못난 삶을 저따위 투사질로 대리만족하는 전형적인 정신병이걸랑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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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ttle of Solway Moss took place on Solway Moss near the River Esk on the English side of the Anglo-Scottish border in November 1542 between English and Scottish forces.
The Scottish King James V had refused to break from the Roman Catholic church, as urged by his uncle King Henry VIII, who then launched a major raid into south west Scotland. The Scottish army that marched against them was poorly led and organised, and many Scots were either captured or drowned in the river. News of the defeat is believed to have hastened the early death of James V
솔웨이 모쓰 전투. 1542년. 이야. 다시 저 처음으로 돌아가서 말이지. 헨리 8세가 로마카톨릭을 지우자. 가 확실하게 굳은 상태인거야 저때는. 프로테스탄트 하자. 가 아냐 ㅋㅋㅋ. 로마 카톨릭을 지워라 없애라 하는겨. 그다음은 앵글리카니즘 세팅된거 심어라 하는 거겠지.
그것에 대한 반기야. 제임스 5세는. 그래서 싸우는겨. 종교전쟁이야 저것도.
Patrick Hamilton (1504 – 29 February 1528) was a Scottish churchman and an early Protestant Reformer in Scotland. He travelled to Europe, where he met several of the leading reformed thinkers, before returning to Scotland to preach. He was tried as a heretic by Archbishop James Beaton, and burnt at the stake in St Andrews.
제임스 5세가 루터 벽보 1517년의 5년전에 태어났어. 얘때 스콧에 프로테스탄트 가 들어오는겨. 여긴 잉글랜드의 롤러디 같은 이백년 전의 이야긴 없어. 이때 시작이야 카톨릭에 대한 재해석은. 그 시작이 패트릭 해밀턴. 귀족집안이야. 아빠는 해밀턴가의 일리짓. 부적법 자식.이지만 엄마가 제임스2세의 핏줄이야. 수도원장. 자리가 생겨 얘한테. 여기서 나오는 돈으로 파리 대학에 유학가는겨.
The University of Paris (French: Université de Paris), metonymically known as the Sorbonne (
French:[sɔʁbɔn], one of its buildings), was a university in Paris, France, from around 1150 to 1793, and from 1806 to 1970.
파리대학. 1150년. 에 생겨서리. 지금은 산산히 흩어져서. 저 대학이 가장오래 대학에 안보일 뿐인데. 옥스포드 보다 오래된겨. 이게 볼로냐 다음이야. 이사람이 여기서 16살에 마스터 학위를 받아. 여기서 루터 이야기를 알게되고 에라스무스 이야기도 알게돼. 이걸 갖고 스콧에 가는거야. 앤드류 대학가서 퍼뜨리는겨 나이 20에. 1528년. 나이 24살에 태워죽인겨. 이단이걸랑.
패트릭 해밀톤.은 대주교이자 추기경 제임스 비튼. 이 화형을 시켜.
George Wishart (c. 1513 – 1 March 1546) was a Scottish religious reformer and Protestant martyr.
조지 위샤트. 패트릭 보다 9살 어려. 패트릭과는 만난 적이 없어. 스콧의 킹스 칼리지.에 있다가 벨기에땅 루벤 대학.가서리 익힌겨 루터를. 스콧에서 카톨릭 비판 열라게 해대다가.
Thence he was handed over to Beaton, who had a "show trial", with John Lauder prosecuting Wishart. He was hanged on a gibbet and his body burned[3]
저때 비튼. 은 데이빗 비튼. 패트릭 해밀톤을 화형한 제임스 비튼.이 죽고. 조카야. 데이빗 비튼. 역시 대주교에 추기경. 화형 판결. 이때 화형은 대게 교수대에 목 죽이고서리 죽은 몸을 태우는거야.
패트릭 해밀톤.은 제임스 5세 시절 죽은거고. 조지 위샤트.는 스콧의 마리.가 꼬마 재임 퀸 시절에 죽은거고. 같은 비튼 애들한테서리.
저 데이빗 비튼을. 프로테스탄트들이 저 3월 달 말에 암살을해 죽여.
저 데이빗 비튼. 이란 는. 스콧의 마리.가 아빠가 나이 삼십에 죽고서리 갓 6일 된 아기가 퀸이 되는데. 섭정을 누가하느냐. 가 문제걸랑. 이가. 지 삼촌 빽으로 추기경에 대주교가 되어서리. 죽은 킹 제임스 5세가 유언장을 남겼다는거야. 자기가 섭정하라고. 그 유언장을 디밀어서리 이가 섭정을 해. 그러다가 저 유언장이 위조 란게 밝혀지고 바로 투옥되걸랑.
헌데 문제는. 저 스콧의 아기 마리.가 즉위에 오르자 마자. 헨리 8세가. 자기 아들 에드워드6세. 마리보다 6살 많은 꼬마야. 스콧 마리랑 결혼 시켜라 하는거야.
The Rough Wooing (December 1543 – March 1551)
Mary, Queen of Scots (8 December 1542 – 8 February 1587). 스콧의 마리가 즉위하고 다음해 부터. 저걸 팔년 혹은 구년 전쟁 하는데. 잉글랜드 병력을 에딘버러에 침투시켜 공격도 하민서리 협박 하는겨 헨리 8세가.
제임스5세한테 로마 카톨릭 없애라 하면서리 전쟁하고 바로 제임스 죽고. 딸 마리 랑 결혼 시키면서 탑다운으로 로마 카톨릭을 없애려 하는 거지.
스콧의 제임스 5세는. 엄마가 잉글랜드 헨리8세의 두살 많은 누나야. 스콧의 마리.는 외손녀인겨 튜더의 헨리8세 에겐. 결국 튜더 끼리 합치려 한건데.
In 1543 Beaton regained power, having earlier drawn up the Secret Bond. Two English invasions followed - and for these many blamed Beaton.
스콧이 저 압박으로. 다시 데이빗 비튼을 꺼내서리 카톨릭을 세운거야. 추기경에 대주교 자리가 비면 카톨릭 공백이 스콧에 크걸랑. 카톨릭을 수비하는데 핵심 자리야. 다시 복귀하고 얘가 헨리8세를 맹공하는거야. 사악한 짓 한다면서. 헨리8세에게 이 데이빗 비튼.은 최고 방해물 중 하나가 된거야. 얘가 저러다가 바로 조지 위샤트. 화형시키고. 그 달에 암살을 당한거야.
특히나 저때 분위기는 스콧에서. 프로테스탄트 는 그래서 더 탄압이 심할 수 밖에 없었던거야. 러프 우잉. 거친 구애 시기엔. 더 쎄게 카톨릭 하는거고. 잉글랜드를 상대로.
John Knox (
c.1513 – 24 November 1572) was a Scottish minister, theologian, and writer who was a leader of the country's Reformation. He is the founder of the PresbyterianChurch of Scotland.
프레스비테리안 장로교.를 만든 스콧의 존 녹스. 는 저때의 사람이야.
아 드뎌 나왔네.
. Patrick Hamilton's initials, set into paving at the place of his execution, to commemorate his martyrdom.
여까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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