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lgrims at the Al-Masjid al-Haram on Hajj in 2008
The Hajj (/hædʒ/;[1] Arabic: حَجّ Ḥaǧǧ "pilgrimage") . 하지. 영어 해찌. 필그리미지. 순례. 이슬람의 하지.는 메카.에 있는 저 가운데 검은 사각 벽.안의 검은 돌. 때메 가는거야.
The Great Mosque of Makkah, also called Al-Haram Mosque (Arabic: ٱلْـمَـسْـجِـد الْـحَـرَام,
al-Masjid al-Ḥarām, "the Sacred Mosque"[5] or "the Sacred Mosque"[6]:471) or Grand Mosque of Makkah
저곳이 마카의 큰 모스크. 알 하람 모스크. 성스런 모스크. 마카. 가 메카. 야. mecca
Map of the Hejaz showing the cities of Jeddah, Mecca, Medina, Tabuk and Yanbu, amongst others that are outside the region. The Saudi Arabian region is outlined in red, and the 1923 Kingdom is in green
저 아라비아 반도 서쪽 홍해 접한 지역을 헤자즈. Hejaz. 라고 해. 메카 메디나 타북 얀보 제다.
월드워 1차때. 오스만 투르크에 반기를 들고 영국이랑 손잡는 아랍은 저 지역이야. 해서 이 땅이 헤자즈 킹덤이 되는거야. 지금 수도 인 리야드. riyadh 가 있는 저 가운데 지역을 네즈드 Nejd.라고 해. 네즈드 술탄체제와 헤자즈 킹덤이 합해서리 사우디 아라비아 가 된건데. 그래도 중심은 저 헤자즈.인거야. 헤자즈의 메카. 메카의 히라동굴에서 무함마드가 가브리엘을 봤걸랑.
저 그랜드 모스크. 알하람 모스크가 메카. 마카 에 있는거야. 저기를 꼭 가야해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다섯기둥 하민서리 과제 하나는 저기 가는겨.
Pilgrims jostle for a chance to kiss the Black Stone; if they are unable to kiss it, they can point towards it on each circuit with their right hand
저 군바리 가. 블랙스톤 을 쥐고 있는데. 저걸 언제 찍었나 몰겄는데. 저럴 수가 없을텐데 이젠. 저거보러 가는거야. 저 작은 돌뎅이.
The fragmented Black Stone as it appeared in the 1850s, front and side illustrations
저걸 지금은 볼수 없고. 누가 보고서리 그린건데.
The Stone's exposed face measures about 20 centimetres (7.9 in) by 16 centimetres (6.3 in). Its original size is unclear and the recorded dimensions have changed considerably over time, as the pieces have been rearranged in their cement matrix on several occasions.[2] In the 10th century, an observer described the Black Stone as being one cubit (46 cm or 18 in) long. By the early 17th century, it was recorded as measuring 1.40 by 1.22 m (4 ft 7 in by 4 ft 0 in).
지금 크기는 20센치 16센치 가로세로. 조각조각 나서리 저것만 남은겨. 원래 모양은 어드런지 몰라. 17세기 기록은 1미터 각각이 넘고. 10세기 기록은 그것보다 작고. 그러다 저리 짝은 크기로 남은거지.
저 돌을 향해 손을 뻗는거야. 만질수는 없으니. 보기도 구멍통해서리 보기도 어렵고. 지금은 단단히 감싸고 세멘트로 공구리질 해서리 넣고 작은 유리창으로만 보는겨.
저걸 놓은. 저 가운데. 큰 사각의 검은벽의 구조물이. 카바.
The Kaaba (Arabic: ٱلْـكَـعْـبَـة al-kaʿbah
IPA:
[alˈkaʕba], "The Cube"),
높이가 13미터야. 커 저거. 저 안에 달랑 저 검은돌 하나 있는겨.
According to Islamic tradition, it was set intact into the Kaaba's wall by the prophet Muhammad in 605 CE, five years before his first revelation.
무함마드가 610년 나이 40에 가브리엘 천사 만나기 5년 전의 일이야. 이슬람 없을 땐 저 땅에서 자기들만의 페이건 신들이 있는겨. 그게 저 검은돌이야. 저 검은돌이 오래전부터 있었던겨. 저게 성스러운거지. 외계인이 두고 간건데. 저걸 보관하던 저 카바. 건물에 큰 불이 난거야. 파괴되어서 리모델링을 한겨 돌을 꺼내고. 검은 돌을 다시 넣어야 하는데. 씨족 클랜들이 막막 자기만 하고 싶을거아닌감. 저 돌을 먼저 누가 올리느냐가 결국 외계인 눈도장 찍는 거걸랑.
고민인거지. 이걸 어드래 해야하나. 무함마드가 지나가다가 그들과 만난거야. 그 추장들에게 옷감 하나를 갖고 오라고 해. 그리고 그 위에 돌을 올려놓고. 추장들이 옷감 끝들을 다 잡아. 제단까지 같이 움직이고 그 돌을 무함마드가 올려 놓아. 5년 후에 무함마드.는 가브리엘을 만나고.
A story is preserved that once when he was a child, his father took him to the Kaaba, and asked him to pray before the idols. His father went away to attend to some other business, and Abu Bakr was left alone with the idols. Addressing an idol, Abu Bakr said "O my God, I am in need of beautiful clothes; bestow them on me". The idol remained indifferent. Then he addressed another idol saying "O God, give me some delicious food. See that I am so hungry". The idol remained cold. That exhausted the patience of young Abu Bakr. He lifted a stone, and addressing an idol said "Here I am aiming a stone; if you are a god protect yourself". Abu Bakr hurled the stone at the idol and left the Kaaba. Thereafter, he never went to the Kaaba to pray to the idols.[30]
아부 바크르. 무함마드보다 세살 어려. 무함마드의 장인이야. 친구고. 무함마드 죽고 1대 칼리프야. 카바반 대상인의 아들이고. 꼬마일때 저 카바.에 간거야 아빠 따라서. 아빠가 볼일보러 자리 비우고. 넌 여기서 기도하고 있어라. 아부 바크르. 오 나의 신아. 나는 좋은 옷이 필요해. 나에게 옷좀 줘. 당근 잠잠하지. 다시 외쳐. 오 신아.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줘. 배고픈거 안보이냐. 그래도 조용해 돌이 있는 카바 큐브가. 열받아서 돌맹이를 들었어. 나 돌들었다. 니가 신이라면 니 자신을 알아서 지켜라. 하고는 돌을 신전에 던진겨. 그리곤 떠났다. 그후론 그는 카바에 가서 거기 신들에게 기도하는 짓들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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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 Domna (AD 160–217) was a Roman empress of Syrian origins, the second wife of Septimius Severus (reigned 193–211).
율리아 돔나.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첫부인이 죽고. 두번째 부인이야. 이여자는 시리아 사람이야.
She was born in Emesa in the Roman province of Syria, into a family of priests of the deity Elagabalus.
에메사.에서 태어났어. 여기가 지금 시리아 홈스 Homs. 다마스쿠스.는 레바논 가운데쯤의 오른쪽이고. 여기는 레바논 넘어 북쪽에 있어. 이여자집안은 이른바 무당집이야. 사제집안이야. 그 신이 엘라가발루스. Elagabalus.
Elagabalus was initially venerated at Emesa in Syria. The name is the Latinised form of the Semitic Ilāh hag-Gabal, which derives from Ilāh"god" and gabal "mountain" (compare Arabic: جبل jabal), resulting in "the God of the Mountain", the Emesene manifestation of the deity.[2] The cult of the deity spread to other parts of the Roman Empire in the second century. For example, a dedication has been found as far away as Woerden, in the modern-day Netherlands.[3]
우리말로. 산왕대신. 인겨. 산신님이야. 저기서 모시는.
로마.는 네로 죽고 나서 아우구스투스 핏줄 끊기고. 스페인의 갈바.가 잡고는 바로 오토.에게 암살당하고. 오토.는 자살하고. 비텔리우스.도 베시파시아누스 부대에 죽고. 베시파시아누스.는 유대인과 전쟁하다가 아들 티투스에 맡기고 황제가 되고. 다음 티누스때 좀 진정되지만 곧 죽고. 동생 도미티아누스.가 좀 하다가 또 암살당하고.
그리고나서리 네르바. 부터 좀 안정이 잠시 되걸랑. 오현제. 라고 평가되는 네르바. 트라이아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우스 피우스. 건너뛰어서 명상록으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때가 다음 위기의 3세기 가기 전의 백년이야. 로마의 마지막. 그리고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콤모두스.가 욕조에서 암살당하면서 끝나걸랑.
그러면서 위기의 삼세기 하는겨. 이때가 세베루스 왕조걸랑.
엘라가발루스. 신을 모시던 율리아 돔나.가 저 당시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에게 가는겨. 황후가 되는거지. 저기서 나온 아들이 카라칼라.야 카라칼라와 게타. 연년생이야. 애비가 이 두 아들에게 공동황제로 임명하고 죽은겨. 형 카라칼라가 동생 게타.를 죽이고 단독황제가 돼.
로마는 이 카라칼라.가 모든 제국의 민들에게 시민권을 주면서. 진짜 망한거야. 인민놀이를 하면. 망해.
동쪽 파르티아.를 정벌하러가. 막사에서. 근위병들이 얘를 몰려가서 죽여. 기도중에.
그리고 근위대장 마크리누스.를 황제로 올려 얘들이. 마크리누스.는 로마에 안가고 자기나름 개혁을 지시하다가. 로마에서 당근 다른 황제를 올리는거지. 카라칼라의 핏줄을.
Elagabalus (/ˌɛləˈɡæbələs/), also known as Heliogabalus (Latin: Marcus Aurelius Antoninus Augustus;
c.
203 – 11 March 222), was Roman emperor from 218 to 222. A member of the Severan dynasty, he was Syrian, the second son of Julia Soaemias and Sextus Varius Marcellus.
얘가 엘라가발루스. 야. 얘 엄마가 율리아 소아이미아스. 이여자는 Julia Maesa 율리아 마이사.의 딸이야. 율리아 마이사.는 저 카라칼라와 게타.의 엄마인 율리아 돔나.의 언니야.
즉 엘라가발루스.는 카라칼라에겐 조카뻘인거야. 헌데 엄마쪽 핏줄로 엮인거지.
카라칼라.가 암살당하고. 이 가족은 다시 시리아로 돌아간겨. 사제집안이야. 꼬마는 저기서 사제로 자라는거야. 그러다가. 외할머니. 즉 율리아 돔나.의 언니 마이사.가 로마에서 얘를 부른거야. 황제로 올리고 이전 황제는 반역으로 몰리는겨 바로. 해서 죽는거고 마크리누스.는
얘가 엄마랑 같이 로마로 들어와. 그때 같이 들고 가는게. 검은 돌.이야 저 엘라가발루스.신의 상징이야.
로마인들은 신들의 나라의 사람들이야. 벼라별 신들을 만들면서 놀아. 아 이제 저따위 검은돌 신도 오시는구나 ㅋㅋㅋ.
해서 저 황제이름이 엘라가발루스.가 된거야.
저때의 검은돌이. 저 메카 카바 큐브의 검은돌인지는. 예전 뒤져봤는데. 매치가 안돼.
외계인님들이 검은돌을 뿌리고 다니는 듯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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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도 일종의 성상이야. 아이콘놀이.
인간은 상징놀이를 할 수밖에 없어. 프로테스탄트 때에 결국 문제제기의 핵심은 저 상징놀이 하는거야. 그 논쟁의 중심이 저 상징놀이야. 저기의 핵심이 새크러먼트. sacrament 라는 상징놀이 절차 예배 의식. 이고. 더하여 아이콘. 성상. 이야. 성스럽다 하는 조각들 이미지들 그림들.
저걸 다 깨부스는겨.
루터.는 성상은 깨부수지마라 하는거고. 칼뱅은 다 깨부셔. 래디칼에겐 더구나 저 성상은 이단이고 우상이야 우상놀이.
로마는 사람들을 성인으로 수호신으로 또 만들걸랑. 로마인들은 재밌는 인간들이야.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자기들 로마 신들로 겹쳐서 보는겨.
오직 그리스도. 오직 주예수. 이게 프로테스탄트 애들이 그래서 만든거야.
저건 진보가 아냐. 더 쫍아지는겨 한편으론. 퓨리튼 한다는 애들이. 정의질 한다는 애들이. 더 살벌하게 사람들을 죽여. 똑같아 이건. 편협한거야.
이슬람이 성상이 없어. 왜 없을까? 그리스도는 성상놀이 하걸랑. 카톨릭이 적이야 쟤들은. 자기들은 반대로 성상 놀이를 안하는겨.
그 결과는?
저 첫 그림이야. 저때만이라도 하고픈거야. 조오오오온나리 몰려가서리. 저 까만돌 하나 어드래 볼 수 없으까. 돌가루 기운이라도 받을 수 없을까. 손이라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뻗을 수 있을까.
저때서야 성상놀이 하는거야. 절박하게. 그동안 못 푼 마음을 저기서 푸는거야.
그림자 찐한거를 저기서 푸는겨.
저들은. 저 프로테스탄트 대면서 말야. 이전으로 돌아가자. 더 순수하게 하면서. 마음은 찐한 그림자가 되는거야 저게. 그러면서 세상이 다 사탄이야. 적폐야 적폐. 저 그림자를. 자기의 마음에 투사되어 보일뿐인 대상을 적폐로 규정해서리 그 그림자를 풀어. 상징놀이를 적폐 란 상징으로 성상을 만들어서 깨부스는거야.
저런건 고대부터 인간의 전형적인 정신병 이야 저건.
성상놀이를 많이해. 그게 건강에 좋아 ㅋㅋㅋ.
루터와 칼뱅. 침례교는 머고. 장로교는 머고. 이딴거좀 정리해보자.
源氏物語絵巻、四十二帖『匂宮』、バーク・コレクション
겐지 모노카타리. 제 42 첩. 내궁. 니오우미야.
土佐光起(とさ みつおき、元和3年10月23日(1617年11月21日)-元禄4年9月25日(1691年11月14日)) 토사 미쓰오키. 의 그림.
저 겐지모노카타리.는 정말 엄청난 이야기다 저게.
내. 匂 라는 한문은. 일본애들이 만든거야 이건. 중국은 저 단어를 쓴적이 없어. 강희대제때 사전인 강희자전에 뜻 설명에 단 한글자로 언급될 뿐이야. 얘들이 일본에서 만든단어를 갖고 온거야.
흉노 할 때 흉은 달라. 匈
우리말 냄새. 내. 가 저 내.야. 향내. 할 때 내.야. 비린내.
물론 이땅바닥 사전에선. 내.는 순수 우리말 하며 향내.는
향내(香-) 이리만 쓰는데.
저런걸 보면 멀 아냐면. 일본이랑 우리말이랑 이 말이 비슷한거야. 글자 이전에 말. 버내큘러.
なら[奈良] 일본의 나라. 저게 우리말 나라.야 쟤들이 왜 나라 하는지 몰라. 저 한문 뜻이 선량. 의미없는 뜻이야. 말을 소리발음 쓴거야.
겐지 다음 세대 이야기야. 저기서 미야. 궁.은 황궁이야. 황손인거고. 향기나는 사람. 알렉산드로스가 몸에 향기가 난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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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ther taught that salvation and, consequently, eternal life are not earned by good deeds but are received only as the free gift of God's grace through the believer's faith in Jesus Christ as redeemer from sin. His theology challenged the authority and office of the Pope by teaching that the Bible is the only source of divinely revealed knowledge from God[4] and opposed sacerdotalism by considering all baptized Christians to be a holy priesthood.[5] Those who identify with these, and all of Luther's wider teachings, are called Lutherans, though Luther insisted on Christian or Evangelical (German: evangelisch) as the only acceptable names for individuals who professed Christ.
루터.의 이야기를 더 들어가면. 요약한거만 보면. 쟤들 참 위키에 말야. 글을 정말 핵심에 정리 최곤데.
셀베이션. 이라는 죄 사함. 고장난거 수리함.은 결국 더 풀면 영생.이라는 건데. 이것은. 선행.이라는 굿워크. 굿 디즈.로 얻을 수 없다. 오직. 신의 그레이스. 라는 완전한 선물.로만 받을 수 있는거다. 이건 오직 페이쓰. 믿는거로 얻을 수 있다. 무얼 믿냐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신 갚아 주셨다는 것.
예수님 예수님 대는게 믿는게 아니라. 대속자 로서의 예수. 이걸 확실하게 믿으면. 구원이 되는겨.
예수.를 믿는게 아냐. 대속자 로서의 예수야.
얘가 이 얘기를 왜 할까? 뒤에 풀려. 성서 만이 선성하게 날리지. 신의 정체를 드러내주는. 유일한 길목이다. 그래서. 새커도탈리즘. 을 반대한다. 모든 세례받은 그리스도들은 신성한 사제정신이 깃들어져있는걸로 간주를 하면서. 그러면서 에반젤리컬.을 강조했다.
Sacerdotalism is the belief that propitiatory sacrifices for sin require the intervention of a priest.
새커도탈리즘. 새서도탈리즘. 다 새크리파이스. 새이크리다. 새크러먼트. sacrament. 다 사크라레. 사케르. 바치는거야 신에게. 신에게 전념하는겨. 이 행위 의식 제례를 새크러먼트. 하는거고. 저기서 바치는 것. 제물을 새크리파이스. 하고. 이런걸로해서 죄가 사해진단다 라는 주장이 새커도탈리즘. 이야.
저기서의 중심은 말야. 사제야. 프리스트.
얘의 주장은. 저따위 프리스트.는 오어데인드 된 공인된 교육을 받은 이에게 정해진 절차대로 의식을 거쳐서리 자리를 차지한. 그런 프리스트.는 프리스트. 라는 사제가 아닌거야.
페이쓰 얼론. 해서리. 대속자로서의 예수. 란 것만 믿은 사람. 은 모~두 프리스트. 사제인거야.
해서리 얘가 던진말이 쎈겨. 사제만 사제가 아니다. 더가서 저 사제도 진짜 사제가 아냐. 저앤 페이쓰 얼론한 가 아냐. 내 말을 믿어서리.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프리스트후드.가 된겨. 말도 웃긴겨. 프리스트 라고 딱 규정을 안해. 후드. 라는 추상적인 말을 붙여. 사제 정신. 정도.
얜 말 하나하나 던지는거 보믄 아 고수야 얜. 연설도 드라마틱하게 해. 얜 정치가야.
저 말의 바닥은. 카톨릭이야. 로마 카톨릭.의 교회.에서 프리스트.가 주관하는 새크러먼트. 로는 구원이 되지 않는다.
카톨릭 교회를 가지마세요.
얜 이말을 하고픈거야.
카톨릭은 썪었어요. 소문에 듣자하니 모두들 강간범이고요 다들 창녀촌다니고요 다들 돈 삥뜯고요. 로마는 맨날 우상놀이들에 축제 하고요. 저건 그리스도가 아녀요. 다 니들이 말야. 저따위 새크러먼트에 의한 구원을 위해서리 결국 돈질 하면서 카톨릭에 힘을 주는데. 쟤들이 하는 짓은 저따위 적폐이니까. 돈도 주지 말어. 인덜전스로도 구원은 안돼. 혼자 믿어 혼자. 교회가지 말아. 새크러먼트 라는 죄사함 제례 미사 다 무의미 한거야.
걍 이말을 하기 위함 이야.
그리곤 일이 커졌어. 자기도 모르게. 저 말도 인덜전스 하면서 하나하나 논리를 만드는겨. 페이쓰 얼론.은 대자보 붙이고 나서리. 만든 말이야. 그러면서. 소우 홧. 다음은?
이걸 하나하나 이제 만들어 나가는거야. 이런 흐름은 모든것이 다 똑같애. 하물며 뒤에 인민놀이하는 애들도 똑같애. 스킴 하나 처음부터 크게 마스터플랜으로 잡고 가는게 아냐. 걍 적폐들 똥 싼거 들추어내서 모든 이들에게 알리자. 부터 시작하는거야. 그러면 거리는 항상 폭동이었던거고. 저게 프랑스 폭동이야. 이걸 나폴레옹이 혁명으로 승화시킨것일 뿐이야. 영화 드라마 따위의 그따위 프랑스 혁명 이야긴 없어. 다 개사기야 사기. 당시의 이야기들을 다 녹취록으로 남겼어. 그 시절을 그리워 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없어요.
저러면서 인덜전스 다음으로 카톨릭 문제들을 계속 들추어 내는거야 서로들. 그래서 그런걸 모두 2년 후 요한에크 와 다 다루는겨 라이프치히에서.
On 15 June 1520, the Pope warned Luther with the papal bull (edict) Exsurge Domine that he risked excommunicationunless he recanted 41 sentences drawn from his writings, including the Ninety-five Theses, within 60 days. That autumn, Johann Eck proclaimed the bull in Meissen and other towns. Karl von Miltitz, a papal nuncio, attempted to broker a solution, but Luther, who had sent the Pope a copy of On the Freedom of a Christian in October, publicly set fire to the bull and decretals at Wittenberg on 10 December 1520,[65] an act he defended in Why the Pope and his Recent Book are Burnedand Assertions Concerning All Articles. As a consequence, Luther was excommunicated by Pope Leo X on 3 January 1521, in the bull Decet Romanum Pontificem.[66]
교황 레오10세.가 얘를 파문하는건 1521년 1월3일이야. 얜 아직도 파문이야.
보름스 회의는 세속에선 그럼 쟬 어드래 처리해야하는가. 즉 얜 교회법 캐논로.로는 사형에 해당하는 파문을 받은겨. 세속에서도 얠 다뤄. 그게 보름스 회의야.
The Emperor presented the final draft of the Edict of Worms on 25 May 1521, declaring Luther an outlaw, banning his literature, and requiring his arrest: "We want him to be apprehended and punished as a notorious heretic."[71] It also made it a crime for anyone in Germany to give Luther food or shelter. It permitted anyone to kill Luther without legal consequence.
교황 파문 이후 4달 후에 나와. 루터는 아웃로. 범법자다. 모든걸 금지한다. 구속될 필요가 있다. 이단으로 처벌되어야 한다. 누구라도 루터에게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면 또한 범법이다. 누구라도 루터를 죽이는걸 허락한다.
그리고서리 바로 작센의 영주가. 얘를 납치해서리. 이들이 가면을 써. 자기성에 가둔겨. 피난처로.
여기서 성경을 번역하면서 동시에.
이제부터는. 자기의 교회를 만드는 구상을 하는거야.
얜 언제부터 저따위 구상을 했을까
Luther's disappearance during his return to Wittenberg was planned. Frederick III had him intercepted on his way home in the forest near Wittenberg by masked horsemen impersonating highway robbers. They escorted Luther to the security of the Wartburg Castle at Eisenach.[72]
중심은 비텐베르크.야.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 헌데 작센 영주가 얘를 숨긴 곳은 아이젠나흐에 바르트부르크성. 이야. 여긴 비텐부르크 남서쪽 이삼백 키로 떨어진 곳이야. 멀어. 당연히 남들 눈에 안 띄는 곳에 숨긴겨.
저때가 1521년. 이야. 편지 대자보 4년 후.
얜 저기서 신약을 번역을 한겨 처음엔. 딴거 없어.
In the summer of 1521, Luther widened his target from individual pieties like indulgences and pilgrimages to doctrines at the heart of Church practice. In On the Abrogation of the Private Mass, he condemned as idolatry the idea that the mass is a sacrifice, asserting instead that it is a gift, to be received with thanksgiving by the whole congregation.[78]
여기서도 쓴 글이. 똑같은 반복이야. 개인적 미사를 퍠기하는것에 관해. 미사하지 말라는겨. 구원이란건 오직 신의 은총. 완전히 외부로부터 받는 기프트. 선물 인거지. 그따위 제물로 미사하며 의례하는 짓들은 다 우상질 이다.
His essay On Confession, Whether the Pope has the Power to Require It rejected compulsory confession and encouraged private confession and absolution, since "every Christian is a confessor."[79] In November, Luther wrote The Judgement of Martin Luther on Monastic Vows. He assured monks and nuns that they could break their vows without sin, because vows were an illegitimate and vain attempt to win salvation
콘페션. 교황이 그것을 할 힘이 있는가. 하면서 혼자 하라는겨 고해도. absolution. 이란것은 살브. solve. 풀리는거야. 애브.는 강조야. 어디에서. 즉 저건 리버티야. 완전한. 구원과 비슷한 말이야. 혼자 개인적으로 고해하고 혼자 힘으로 구원이 되란겨.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 각각이 콘페서. 고해성사 받는 사제.들이다. 교회가서 자격있다고 남들이 말하는 그 한테가서 그 말고. 니가 사제다 니가 스스로 고해해서리 자유가 되라 하는겨. 얜 몽크 였걸랑. 속으론 쪽팔린겨 맹세하고 몽크가 되었는데. 수도원에서의 맹세들에 대한 마르틴루터의 판단. 수도사들과 수녀들은 니덜이 했던 맹세를 깨부숴라 그렇다고 죄 안된다. 왜냐믄 니덜이 했던 맹세 서약은 적법하지 않아. 구원을 얻는데 그건 공허한 짓이었어.
초기엔 저리 처박히면서. 자기 정당화를 하는겨 이가.
Luther made his pronouncements from Wartburg in the context of rapid developments at Wittenberg, of which he was kept fully informed. Andreas Karlstadt, supported by the ex-Augustinian Gabriel Zwilling, embarked on a radical programme of reform there in June 1521, exceeding anything envisaged by Luther. The reforms provoked disturbances, including a revolt by the Augustinian friars against their prior, the smashing of statues and images in churches, and denunciations of the magistracy. After secretly visiting Wittenberg in early December 1521, Luther wrote A Sincere Admonition by Martin Luther to All Christians to Guard Against Insurrection and Rebellion.[82] Wittenberg became even more volatile after Christmas when a band of visionary zealots, the so-called Zwickau prophets, arrived, preaching revolutionary doctrines such as the equality of man,[clarification needed] adult baptism, and Christ's imminent return.[83] When the town council asked Luther to return, he decided it was his duty to act.[84]
헌데. 얘 말고. 칼슈타트. 츠빙글리. 뮌처. 이들은 동시에 막막 터진겨. 루터는 파문당하고 세속법으론 사형수가 도망간겨. 민심이 싱숭생숭해지는거야. 그 중심이 또한 비텐베르크야. 작센 영주.는 이걸 즐기는 사람이야. 저기에 뮌처가 만났던 츠비카우의 세명 예언자 애들이 비텐베르크.에 와서리 들을 해대.
이 츠비카우 세명은. 바닥 출신이야. 얘들 골때리는애들이야. 스스로 깨우친겨 야학하믄서. 뮌처만나고. 뮌처가 그러는겨. 야 지금 세상 중심이 비텐베르크다 거길가라. 얘들이 간겨. the equality of man 인간은 평등하다. 이런소리도 분명 했을꺼야. 출처 불명이지만. 저딴 소리는 바로 터지는 위그노 프랑스에서 소리쳐나와. 민들이 프랑스의 킹이다. 신난겨 . 거리는 폭동 분위기야. 성상은 막막 파괴를 해.
지금 시대의 문제. 자기들의 깝깝함을 투사질 하는겨 프로젝션. 그게 카톨릭 일 뿐이야. 카톨릭의 기존의 것들은 다 파괴를 해야해.
루터가 저기서 다 들어. 씨껍하는거지. 어 저런걸 바란건 아니었는뎅.
Luther secretly returned to Wittenberg on 6 March 1522. He wrote to the Elector: "During my absence, Satan has entered my sheepfold, and committed ravages which I cannot repair by writing, but only by my personal presence and living word."[85] For eight days in Lent, beginning on Invocavit Sunday, 9 March, Luther preached eight sermons, which became known as the "Invocavit Sermons".
비텐베르크.에서 루터에게 부탁하는겨. 아 당신이 와서 여기좀 어드래 해줘봐. 일년 후에 가는겨 저길 바로. 가서 설교를 하는거지. 내가 없을때 사탄들이 나의 양목장에 들어와서리 약탈을 했구나 내가 글로써는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내가 글로 그리 하지말라 했건만. 허나 이제 내가 직접 여기 나타났도다. 생생한 말로 말을 하도다. 곧 회복할 지니. ㅋㅋㅋ. 아 웃겨 얘. 그리고 연설 하러 다니는겨.
아 저걸 다 번역할 수 없고, 저게 재밌는겨 저게.
Do you know what the Devil thinks when he sees men use violence to propagate the gospel? He sits with folded arms behind the fire of hell, and says with malignant looks and frightful grin: "Ah, how wise these madmen are to play my game! Let them go on; I shall reap the benefit. I delight in it." But when he sees the Word running and contending alone on the battle-field, then he shudders and shakes for fear.[87]
니덜 아냐? 악마가 무엇을 생각할지? 그가 사람들이 폭력으로 복음을 전파한다는 짓을 볼때? 악마는 앉아서 팔짱킨체 지옥불 뒤에서 말야 말을 해 악랄한 표정과 썩소를 날리면서. 오우. 이 미친 인간들이 나의 놀이를 하고 있다니 얼마나 지혜로운가. 계속 하거라. 나는 거기서 떡고물이나 챙길란다. 기쁘다. 헌데 만약 악마가. 그리스도의 글만이 홀로 전장에서 다툰다면 악마는 떨면서 공포에 두려워할게다.
하튼 말은 잘해. 헌데 하튼 비텐베르크는 진정이 되었어. 쟤가 저리 나대면서.
얜 하나님의 사도가 된겨. 자뻑 할 수 밖에 없어.
바로 농민전쟁이 터져. 1525년에 본격적으로. 12개 조항들이 날라다녀. 전쟁이야.
Despite his victory in Wittenberg, Luther was unable to stifle radicalism further afield. Preachers such as Zwickau prophet Nicholas Storch and Thomas Müntzer found support amongst poorer towns-people and peasants between 1521 and 1525. There had been revolts by the peasantry on a smaller scale since the 15th century.
저때부터 특히나 난리가 난겨. 이미 이전엔 스와비아와 라인팔라틴에. 루터 이전에 십여년 이른바 농민반란들 분트슈흐.가 있었어. 여기에 더하여 종교가 더해진거야. 이게 터진겨 농민전쟁으로.
he gave his interpretation of the Gospel teaching on wealth, condemned the violence as the devil's work, and called for the nobles to put down the rebels like mad dogs:
농민들을 미친 개들. 매드도그스. 로 규정해. 세례는. 인간들을 몸 과 재산 에서 자유를 주는게 아니다. 오직 영혼에서의 자유다. 복음은 재산을 공통으로 같이 같게 해주지 않는다. 오직 자유의지 를 갖은 자만 빼고. 사도들과 사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사도행전에서 보여줬잖은가. 그들은 요구하지 않았다. 우리의 미친 농민들이 분노에 쩔어서리 하는 것처럼. 빌라도와 헤롯 같은 사람들의 재산은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들 각각만의 재산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농민들은 다른사람들의 재산을 같이 나눠갖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지들것은 지들것이라고 안준다. 훌륭한 그리스도들이구나! 생각해보니 지옥엔 악마가 전혀 없다. 악마들이 모두 농민들에게 빙의를 했으니. 그들의 들은 완전히 정도를 넘어서버렸다.
12개 조항엔 저런 식의 이야긴 없어. 농민전쟁이 사람들에겐 저리 보인거야. 루터의 편협한 시선도 있겠지만. 12개 조항는 멋져 그게. 우리를 더 쓰려면 그만큼 돈을 내라. 그리고 공짜로 쓰더라도 시기와 일의 목적을 분명히 하라.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십일조 같은거 작은건 없애라. 십일조 걷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써라. 세금이라 또 내는 우리의 임차료에 대해 적정한지 감사를 해서리 제대로된 세금을 거둬라. 우리도 사냥이나 상업 거래를 할 권리를 달라.
저런게 농민들과 괴리가 된겨. 글을 쓴 지도부 들과 그 사상가. 바닥 민들과의 괴리감이 커. 그게 농민전쟁이 짧게 끝난 이유야. 아무런 조직 체계가 없었어. 저런 조항들과 강령들이 스며들지가 않았어.
루터.는 12개 조항을 무시하는겨. 저 말은 일리가 있지만. 한편으론 말야. 12개 조항 자체를 깡그리 무시한겨. 쟨 지금 체제 에 대한 개선에 대해서는 관시미가 없어. 저앤 오직 하나. 카톨릭이 싫어 이거 하나야.
어쨌거나 농민전쟁도 바로 끝났어 진압이 되었어.
In 1526 Luther wrote: “I, Martin Luther, have during the rebellion slain all the peasants, for it was I who ordered them to be struck dead.”[98]
나 마르틴 루터.는 반란동안에 모든 농민들을 죽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 죽으라고 명령한 사람은 나니까.
이앤 정말 또라이 야 이거.
Luther justified his opposition to the rebels on three grounds. First, in choosing violence over lawful submission to the secular government, they were ignoring Christ's counsel to "Render unto Caesar the things that are Caesar's"; St. Paul had written in his epistle to the Romans 13:1–7 that all authorities are appointed by God and therefore should not be resisted.
헌데. 로마서에 말야.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의 것.
They said, “Caesar's.” Then he said to them, “Therefore render to Caesar the things that are Caesar's, and to God the things that are God's.”
마테 22장21절.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의 것. 신의 것은 신의 것.
카이사르의 일이 따로 있고 신의 일이 따로 있다. 캬 멋진데 저따위말. 저게 로마서에 비슷 인용이 돼.
해서. 얜 세속의 군주들은 신이 노트. 찍어서 지정을 한겨. 저기에 저항하면 안되는겨.
얜 작센 영주의 보살핌에 잇걸랑.
헌데 저 말들을. 또한 반하여서리. 나중에 인민놀이 하는거야. 프랑스 혁명이란 에도. 모두가 카먼 해야해. 단 자기꺼만 빼고. ㅋㅋㅋ.
해서 저 인민놀이 애들은 루터를 싫어해. 특히나.
헌데 저런 애들이 다 문명의 재료가 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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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닥의 민들의 마음이야 저건. 걍 사는 것에 대한 강한 문제제기야. 저기에 영주의 것을 뺏으면 되는거야 하는 들도 많았겠지. 저런 생각들이 여전 한거야. 적폐 적폐 대면서. 그리 지들이 나눠서리 영주들이 다 되고 권력을 잡아. 그 다음엔? 똑같아 . 결국 다시 수천년전 문명이전으로 돌아가는겨. 똑같은 영주 수준이 되기까지.
저런걸 계속 뽕질 해주면서. 지들은 인마이포켓하면서 세상 즐기는거지. 정의로운척 하면서. 많은 들은 말야. 지들 인생이 정의에 민주에 위인 인듯 인생 살은 줄 알고 뒈지는 가 역시 태반이야.
니 인생 전체가. 였어 이 야. 니가 악마 중의 악마 였어 이 개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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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1525 to 1529, he established a supervisory church body, laid down a new form of worship service, and wrote a clear summary of the new faith in the form of two catechisms. Luther's thought is revolutionary to the extent that it is a theology of the cross, the negation of every affirmation: as long as the cross is at the center, the system building tendency of reason is held in check, and system building does not degenerate into System.[111]
얘가 교회 조직 이야기. 예배 절차 만드는 이야기.는 저때 부터 하는거야.
이앤 이제부터. 지가 하나님이야 . 아 이제. 내가 교회를 만드는거야. 내가 교황을 하는거야. 나만의 교회를 만들어볼까 그럼?
참 개앤데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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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일과 신의 일.은 각각인거지. 헌데 쟨 저걸 근거로. 저 멋진 말을 말야. 그래서 하면서 카이사르는 신이 임명한거다. 란 엉뚱한 전혀다른 명제를 만들어내면서 지 이야길 끌어내.
저게 두부류야. 마르크스 개 들처럼. 맨 바닥에 까는 공리. 자체가 거짓말이걸랑. 인간의 가치는 노동력. 인간의 본질은 노동이다. 라는 전혀 공리아닌 개 명제를 바닥에 깔고 자기만의 온갖 개 주장을 해대면서리 사람들을 분노질에 결국 다 죽이면서 자유를 억압하는 들
또다른 하나는 저따위 야. 나름 공리.를. 바탕으로 전혀 인과가 성립이 안되는 문장들. 그래서. 라는 접속사로 만들어서 사람들 눈을 흐리게 하면서 자기 말을 만드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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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자기 뽕질 하면서. 이전엔 새크러먼트. 새크리파이스. 프리스트. 따위는 전혀 전혀 셀베이션. 이터널 라이프. 앱설루션과는 상관이 없는 우상짓이다. 라고 규정한 가. 자기만의 새크러먼트 새크리파이스 패스터. 를 만드는겨.
참 개앤데 .
해서 묻는겨 사람들이. 너 이새꺄 첨엔 페이쓰 얼론 만 하라민서?
Q. What is the chief end of man?
A. To glorify God and enjoy Him forever!
Q. What rule hath God given to direct us how we may glorify and enjoy Him?
A. The word of God which is contained in the Scripture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is the only rule to direct us how we may glorify and enjoy him.[7]
A catechism ( /ˈkætəˌkɪzəm/; from Ancient Greek: κατηχέω, "to teach orally")
캐터키즘. 을 만드는겨. 설교사들을 위한 교육 지침서. 라아지 캐터키즘. 신도들을 위한 예배지침서. 스모올 캐터키즘.
저런걸 한게. 교부철학에서 다 한겨 이미. 이걸 지가 다시 재해석 해서 그당시의 언어로 게르만어로 나름 쉽게 풀으려 한 것일 뿐이야.
저게 머 새롭고 대단한게 아냐.
다 교부철학 스콜라철학.에서 지가 배운것에서 지 대갈빡에 이해되는 것만 모아서 쓴거야 저게.
Some reformers, including followers of Huldrych Zwingli, considered Luther's service too papistic, and modern scholars note the conservatism of his alternative to the Catholic mass.[122] Luther's service, however, included congregational singing of hymns and psalms in German, as well as of parts of the liturgy, including Luther's unison setting of the Creed.[123] To reach the simple people and the young, Luther incorporated religious instruction into the weekday services in the form of the catechism.[124] He also provided simplified versions of the baptism and marriage services.[125]
해서 정작 사람들이 묻는겨. 저 하는 짓 봐라 저거? 머 교황정이랑 대체 다른게 머야?
물론 달리 가겄지. 예배절차 수 줄이고. 찬송가. 아 이건 이가 독특하게 개발한겨. 찬송가. 이전엔 사제들만 조용하게 읊조릴 뿐이야 성서의 문구들을 운율로. 이걸 얘가. 찬송가 소리높여 다들 같이 부릅시다 한겨. 하튼 독특한 긴 해. 헌데 정작 보기엔 큰 와꾸는 별 다를게 없어. 단지 간소화 시킨거일 뿐.
그래봤자. 애초의 저의 근본 주장과는 전혀 다른 짓이야 저건.
새크러먼트.라는게 한편으로는. 사람들 마음 추스리는데 좋은거야. 새크러먼트 없는 삶이란 팍팍한겨. 그런들이 사람들을 더 죽이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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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하자.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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