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 never die.
 
네버. 에버.는 게르만어야. 
 
다이.도 게르만어야. 다이 데드. 
 
라틴어에서 나온게 모탈. mortal. 인간은 죽는겨. 라틴어 mors mort. 모르스 모르트. 
 
살다. live. 는 이게 게르만.만의 언어라 보지만. 라틴어 비베레. vivere 에서 듣고 썼을꺼야. 
 
라틴어.의 비베레. 가 사는거야. 이 명사가 비타. Vita 야. 바이탈. vital. 이 치명적인. 사는데 필수적인. 하는거고. 
 
라이프. lift 라는건. 비베레.에서 리베 하다가 리프. 하면서리 라이프. 하는거야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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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체. vivace. 란건 (especially as a direction) in a lively and brisk manner.
 
 

생기있게 빠르게 상쾌한 스타일로 연주하는겨. 

 

vivacious (especially of a woman) attractively lively and animated.

 

비베이셔스. 산다는 것의 로마사람들의 형용이야. 사는게 그냥 사는게 아니란거지. 여자들이 매력적으로 생기있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산다는 추상을 취하는거야.

비베레. 에서 비고르. vigor 란 라틴어도 만들어내. 비게레. vigere. 사는거야 또한. 영어도 고대로 갖고 와. 

Physical strength and good health.Strong, healthy, and full of energy. 

 

vigor. vigour. vigorous. 육체적 힘. 좋은 몸상태. 에너지로 가득 찬. 

저게 아니면. 모탈. motal  죽음이었던거야. 고대 로마인들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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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몬. demon. 을 악마 데블.과 같이 쓰는데.

Middle English: from medieval Latin, from Latin daemon, from Greek daimōn ‘deity, genius’; in demon (sense 1) also from Latin daemonium ‘lesser or evil spirit’, from Greek daemonion, diminutive of daimōn.

 

데몬.은 중세 라틴어에서 가져다 쓴 중세 영어.

 

중세 라틴. 이라는 미디벌 라틴.은 서로마 망할때전후 부터에서 게르만들 글자 티나올 때즈음 근대 직전인 서기 900년즈음까지야. 저건 고대로마와 많이 달라. 저땐 그리스도의 시대야 저건. 고대 로마는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어.

 

저게 또한 그리스어도. 그리스도가 스며들면서 코이네그리스어도 바뀌는겨. 

 

디어티. deity. 란 신성. 은 제우스. 데우스. 테오스. 테우스. 야. 저기서 다이몬.을 만들어낸겨. 다이몬이 고대 그리스어의 비슷 말을 명사화 한거야 나중에. 수호신 비슷하게 쪼개는겨 저게. 큰신을. 수호신으로 쓰는거야 자기들 각각 창조들 한 수많은 성인들 만들면서. 해서 저 다이몬. 이란 말은 원래 좋은 말이야. 

 

저기서 다이모니온. 이란걸 또 만들어. 저건 짝은 다이몬이야. 이게 악마야. 이게 데몬. demon. 영어로 디먼. 하는겨.

 

 

 

데블. 은 히브리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할때. 히브리어 사탄.을 디아볼로스. 로 연결한거고. 원래 디아볼로스.는 원고 야 법정에서. 공격하고 찌르고. 사탄.을 이글자로 옮기면서 디아볼로스에 악마가 스며들어. 라틴 디아볼루스. 
디아블로.는 스페니쉬고. 

 

해서. 데블. 데몬. 이 그 시작이 달라. 머가 더 쎄겠니. 데블이 쎈 말이야. 데몬은 귀여운겨 데블에 비하믄. 

 

 

쟤들은 저렇게 말야. 고대그리스 고대 로마.에서 워드 를 만들어. 그리고 게르만애들이 따로 독자적으로도 만들어. 또한 유럽 전대륙의 게르만들이 각각에서 자기들 나름의 단어를 만들면 또 그걸 서로들 가져다가 자기들 말로 써서 글자화 해. 저기에 슬라브말 갖고오고 페르시아 말도 갖고와 그어원을 보면

 

 민족 대면서. 순수한 한글 우리말 애용 이.

 

미개해도 보통 미개한게 아냐 저게.

 

미개. 열리지가 않은겨. 완전한 자폐 들이야 저게. 저게 조선의 핏줄이야. 남을 배우면 안돼. 남의 생각 남의 사유.는 배우면 소인배야 . 

 

저게 이땅바닥의 아주 본질이야 저게. 저게 민족 민주 정의 놀이하는 들의 바닥이야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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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혐일. 을 권력에서 대. 일본랑 아주 웬수야. 이건 중국이와 똑같아 행보는. 명나라 들을 하늘로 모시던 개 조선들.

 

야 웬수지간을 따지면. 저 유럽애들 각각 서로가 웬수야. 영국 프랑스 의 육백년간 전쟁질만 웬수냐. 스페인 잉글랜드. 스페인 네덜란드. 잉글랜드 스페인. 프랑스 독일. 저뿐이냐. 크로아티아는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까지 사백년 삼백년 각각 식민지다 그게. 폴란드와 스웨덴. 폴란드와 러시아. 저 동유럽과 터키. 

 

쟤들이 수백년간 서로 식민지에 전쟁에. 웬수중에 웬수다 그리 따지면.

 

 

쟤들이 서로 과거사 어쩌고 사과 해대니. 

 

 

 

 

정말 개미친 들이야. 저 열등감은 말이지. 저 분노질 . 

 

 

지들이 찔끔 당한 역사 외엔 눈깔에 들어오는게 없어. 왜 그리 되었는지는 관시미가 없어. 오직 남탓이야.

 

 

저 똑같은 프레임으로 이명박근혜를 주구장창 디비 자료들 파제끼면서 언론에 알리면서리 적폐 놀이 해대고.

 

 

 

 

추악해도 보통 추악한게 아냐 저게.

 

 

심심하믄 반일 반일 일본 탓 연일 뉴스 . 

 

애들이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이 더 해 더. 저러면서 지들 정권 유지 하고 연장 하는거지. 얄팍 하걸랑 이땅바닥 인간들이란게 위나 아래나. 선동하기 좋은 주제지 저따위 주제들이. 저을 중국이 인민놀이 하는 들도 하는거고.

 

개후진 들의 공통점이야.

 

 

 

유럽 애들은. 웬수들간의 역사다 저게. 헌데 그딴 을 쟤들이 하니? 

 

 

미개한 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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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정의니 . 저게 민주라 ㅋㅋㅋ. 참 한심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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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큰 토마스 반란. 

 

Thomas FitzGerald, 10th Earl of Kildare (1513 – 3 February, 1537), also known as Silken Thomas, was a leading figure in 16th-century Irish history.

 

토마스 피츠제랄드. 얜 헨리8세보다 어려. 헌데 촌수로는 먼 삼촌뻘이야. 

 

킬데어 백작. 더블린 아래야. 아일랜드. 얘가 실크 모자를 써. 그래서 실큰 토마스. 

 

아빠가 런던에 소환돼. 그리고 얘가 대신 

Offaly 오펄리.는 킬데어의 왼쪽. 렌스터. leinster 다 더블린 중심으로 영지야. 얘가 대신 임명되고. 아빠는 헨리8세에게 소환되서 사형당했다는 소문이 나. 자기들 가족들 삼촌들도 다 죽을 듯 헨리8세한테. 라는 분위기가 퍼진거야.

The gallowglasses (also spelt galloglassgallowglas or galloglas; from Irishgall óglaigh meaning foreign warriors) were a class of elite mercenary warriors who were principally members of the Norse-Gaelic clans of Scotland between the mid 13th century and late 16th century

 

갤로우글래시즈. 갤로글래스. 아일랜드에 정착한 스콧랜드 전사들. 용병들이야. 스콧 독립전쟁할때 잉글랜드에 대항해 싸우다가 여기 아일랜드로 옮긴 스콧인들이야. 여기서 씨족들 클랜을 서로 만들면서 정착한겨. 주로 경호나 용병으로 먹고 사는 이들이야. 저들의 헤럴드리가 모자에 실크치장을 하는거야. 이들 중심으로 반란해서리 실큰 토마스.의 리벨리온 해.

 

저 반란이 1534년이야. 앤불린과 결혼한 해가 1533년이야. 헨리가 잉글랜드 교회 최고 수프림 헤드. 란 타이틀 차고 난 다음이야. 카톨릭이 힘을 잃고 헨리의 앵글리카니즘이 막 서는 때야. 

 

얘가 런던을 치려는겨. 삼촌들이랑 같이. 여기에 얘가 쥔 명분 이 또한 종교전쟁이야. 카톨릭을 바로 세우자. 프로테스탄트 인듯 한 저 헨리 몰아내자.

 

 

그러기위해선. 먼저 더블린.을 쳐야해. 그리고 런던으로 가야하고. 

 

The Chancellor, Archbishop John Alen, attempted to persuade him not to commit himself to such a rash proceeding; but the young lord's harper, understanding only Irish, and seeing signs of wavering in FitzGerald's bearing, commenced to recite a poem in praise of the deeds of his ancestors, telling him at the same time that he lingered there over long.

 

존 알렌. 이사람이 더블린의 대주교야. 여기 총 대리인이야 수상자리. 이사람이 저 토마스를 설득하려해. 헌데. 저사람을 만난 존 틸링. 니콜라스 웨이퍼. 얘들이 토마스의 지시를 잘못 이해하고 저 대주교를 죽여. 

He was murdered during the Rebellion of "Silken Thomas" Fitzgerald, who is said to have wrongly believed that Alen had been in some way responsible for the death of Thomas's father, the 8th Earl of Kildare, who had in fact died a natural death. Despite his undoubted grievance against the archbishop, Thomas always maintained that he had intended to spare Alen's life but that his order to "take him away" had been misinterpreted by his followers as a command to kill him.

 

저 토마스 피츠제럴드 집안에서. 토마스가 10번째고 8번째 백작은 아빠가 아니라 할배지. 자연사로 죽은걸 저 대주교때메 죽었다고 얘들이 계속 오해를 한거야. 얘가 저 대주교를 테이크 어웨이 하라. 이건 저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라. 걸랑. 이걸 곧이 곧대로 듣고서리 저사람을 죽인거야.

 

 

카톨릭 대주교야. 이들은 카톨릭 세력의 지원을 받아야해. 헌데 대주교를 죽였어. 민심이 확 돌아선겨. 적이야 적. 더블린의 적이자 아일랜드의 적이돼. 아일랜드가 고리타분한 땅이야. 지금도 아일랜드는 로마 카톨릭이야. 

 

바다 건너보지도 못하고. 다 뒈져. 다 사형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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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말이지. 헨리 8세의 입장이 웃긴겨 저 종교에 대해서. 얜 프로테스탄트.도 금지했어 저때. 대륙의 프로테스탄트 도 불법이었어. 해서 교황한테는 아직 파문을 당하지 않아. 앤불린 죽고나서 파문당해 헨리는.

 

But Henry's new policy also outlawed Lutheranism, and so Henry was not finally excommunicated until 1538.

 

 

이 헨리 8세의 성공회 라는게. 처음에 이게 웃긴겨 그 시대적 상황이. 거기서의 개인적 입장이. 
앤불린 이랑 결혼도 했지만. 얜 카톨릭 위에만 서면 되는거야 처음엔. 아직 몰라 프로테스탄트가 머고 . 입장정리가 애매해. 

William Tyndale (/ˈtɪndəl/;[1] sometimes spelled TynsdaleTindallTindillTyndall

c.

 1494 – 

c.

 6 October 1536) was an English scholar who became a leading figure in the Protestant Reformation in the years leading up to his execution. 

 

영어 성경 번역하다가. 윌리엄 틴들이 죽어. 브뤼셀 근처에서 번역하다가. 사형당해 브라반트 저지대 땅에서 재수없게 체포당하걸랑. 저때가 1536년이야. 목 죽이고. 화형하는겨. 

"Lord! Open the King of England's eyes."

 

주여! 잉글랜드 헨리 눈깔좀 열개해줘. 저 사람의 마지막 말이야.

 

그리고 나서. 헨리는 저사람의 영어 성경.을 쓰는거야 삼사년 후에. 공식적으로. 

 

 

 

 

 

 

Lollardy (LollardismLollard movement) was a pre-Protestant Christianreligious movement that existed from the mid-14th century to the English Reformation. It was initially led by John Wycliffe

 

이전에 잉글랜드는 롤러디. 라는게 있었어. 이건 완전히 민들 바닥에서 주도한겨. 라틴어 몰라. 영어만 쓸 줄 아는 이들을 위해 성경을 영어로 말하는거야. 그 중심인물이 존 위클리프.

 

John Wycliffe (/ˈwɪklɪf/; also spelled WyclifWycliffWiclefWicliffeWickliffe; 1320s – 31 December 1384)[2] was an English scholastic philosopher, theologian, Biblical translator, reformer, English priest, and a seminary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Oxford.

 

옥스포드 교수였던 존 위클리프. 이사람이 영어 성경을 만들어.  

 

He completed a translation directly from the Vulgate into Middle English in the year 1382, now known as Wycliffe's Bible

 

Wycliffe's Bible appears to have been completed by 1384, additional updated versions being done by Wycliffe's assistant John Purvey and others in 1388 and 1395.

 

이게 판금 조치되지만. 사람들은 영어로 이걸 몰래 다들 읽어.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만들어서 게르만 시들을 찍은건 1450년이야. 아직 필사하면서 돌려보는겨 저걸. 저러면서 성경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하는거야. 이게 잉글랜드의 프로테스탄트 바람의 큰 시작이야. 이게 킹의 발정으로 2백년 가까이만에 숨통이 터진거야.

Anne Boleyn (/ˈbʊlɪnbʊˈlɪn/;[3][4][5] 

c.

 1501[2] – 19 May 1536) was Queen of England from 1533 to 1536 as the second wife of King Henry VIII

 

앤 불린.은 중요한 여자야. 단지 헨리의 첩 수준이 아니야 이게. 조선빠닥의 첩은 지 남편 어드래 더 권력 쎄게 갖나. 딴 년들 어드래 독살시키나. 고 생각만 한거고.

 

쟤들은 세상을 바꾸는거야.

 

 

나중에 캐서린이 죽었다고. 앤 불린이 노란 옷 입으면서리 좋아했다는 둥.

 

On 8 January 1536, news of Catherine of Aragon's death reached the King and Anne, who were overjoyed. The following day, Henry and Anne wore yellow, the symbol of joy and celebration in England, from head to toe, and celebrated Catherine's death with festivities.[98]

 

 

저따위 말은 다 주작이야 주작. 노랑이 기쁨의 상징이다. 캐서린의 죽음 축하를 위한 연회를 열었다. 

 

저건 완전한 주작이야. 민비 썅년 해대는 짓들이랑 똑같아. 마이 앙투아네트 이야기 다 주작이걸랑.

 

야, 사람이 죽었는데. 자기도 어찌 될 줄 모르는데. 저딴 을 했겟니. 노랑은 스페인왕가에선 슬픔의 상징이야. 

 

카톨릭에 대한 향수. 거기에 헨리8세가 카톨릭을 탄압비슷하게 하던 분위기.에 더하여 반대하는 사람들 죽었걸랑. 거기에 케서린에 대한 잉글랜드인들의 애정. 이 복합되서 저 여자를 악녀로 만들었을 뿐이야. 거기에 모든 배심원들은. 증거 하나 없는 앤불린과 그 남자들을 만장일치로 사형언도를 한거고.

 

모든걸 앤불린 탓으로 돌리는겨 저때. 헨리 8세 앤 뒤로 빠지고. 

 

 

 

19 May 1536 (aged 28–35)

 

앤불린.이 1536년 5월 19일.에 사형을 당했어. 저건 날짜까지 좀 유념해서 봐야해.
생년은 정확히 몰라. 걍 1501년 해. 

Margaret reported that she was well spoken and pleasant for her young age,[26] and told Sir Thomas Boleyn that his daughter was "so presentable and so pleasant, considering her youthful age, that I am more beholden to you for sending her to me, than you to me" (E.W. Ives, op.cit.). Anne stayed with Margaret from spring 1513 until her father arranged for her to attend Henry VIII's sister Mary, who was about to marry Louis XII of France in October 1514.

 

앤 불린. 아빠가 소위 외교부장관이야. 아빠는 얼. 백작이고. 엄마는 듀크. 공작의 딸이야. 빵빵해. 열살 갓 넘은 여자애를 네덜란드.에 있는 마가렛 이라는 합스부르크 여자에게 보낸겨 말동무겸 공부시키게. 여기서 온갖 교육을 다 받아. 그 마가렛이 앤불린 아빠에게 하는 말.
당신 딸은 아주 프리젠터블. 드러내는거야 자길. 매력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아주 플래즌트. 기쁨 덩어리야. 그애 또래애들과 비교하면. 해서. 나는 당신이 딸을 나에게 보내준게, 당신을 알게된 것보다도 더 헤어나오질 못하겠어. 

네덜란드에서 1513년에서 2년 가까이 지낸거야 얘가. 그리고. 프랑스 루이12세에 시집가는 헨리의 누이 마리.의 메이드 가 되서리. 프랑스엘 가는겨. 메이드는 시녀가 아냐. 말동무야. 이 마리는 루이가 죽고서리 다시 와서 재혼해. 마리가 시집가서 일년 좀 살다가 루이12세가 죽어. 마리는 잉글랜드로 돌아가. 헌데 앤불린은 남아.

당시 루이가 전처에게서 낳은 클로드. 를 마리가 의붓딸로 삼고. 앤불린.이 이 클로드.의 메이드 를 하는거야. 

여기서 또한 앤불린이 프랑스 왕정 코트의 문화를 배우는겨. 여기서 7년을 있어. 둘이 나이가 비슷해. 이 프랑스의 클로드.가 나중 프랑수아 1세의 퀸이 되는겨. 루이가 아들이 없었걸랑. 해서 발루아 오를레앙.은 끊기고. 발루아 앙굴렘 왕가로 가는겨 클로드.로. 
즉 앤불린.은 말야. 프랑스에 7년 있으면서도. 실세야 이여자가. 거기 중앙에서 저쪽 문화를 흠뻑 취한겨 또한. 네덜란드에 더하여.

당연히. 클로드랑 도 친하고 프랑스도 친해. 헨리8세한테 자꾸 프랑스랑 전쟁할래 막 머라 할테고.

저때 프랑스는 이탈리아 전쟁하면서. 역설적으로말야.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가 저 궁정에 싸악 스민거야. 이걸 얘가 흠뻑 마시는겨.

Anne made her début at the Château Vert (Green Castle) pageant in honour of the imperial ambassadors on 4 March 1522, playing "Perseverance." There she took part in an elaborate dance accompanying Henry's younger sister Mary, several other ladies of the court, and her sister.

 

이 앤불린.이 잉글랜드로 와서리. 바로 궁정 연회에 참석을 하는거야. 이전에 같이 프랑스에 있었던 마리.를 에스코트하면서. 이때 헨리 8세가 뿅 간겨. 1522년. 

 

앤불린 언니.가 코트에 메이드였어. 그러다 결혼했지만 애 둘이 헨리8세 자식이니마니 소문 나고. 미스트리스 였다는거지. 헨리가 찝쩍대. 난 언니같은 인생 안살라우. 이전에도 앤불린에 구애하는 남자들이 있는거지.

 

 

In 1526, Henry VIII became enamoured with Anne and began his pursuit.[50] Anne was a skillful player at the game of courtly love, which was often played in the antechambers

 

얘가 4년후에 본격적으로 들이대는겨. 앤은 궁정 연애사에 능수능란한 배우였다. 이걸 프랑스에서 배웠걸랑. 헨리가 애가 닳아. 한번줘. 안돼. 미치는거지 이가.

 

 

Catherine was formally stripped of her title as queen and Anne was consequently crowned queen consort on 1 June 1533 

 

1533년에 앤불린이 정식 퀸이 돼. 첫 만남에서 십년이고. 본격에선 7년만이야. 

 

교황 클레멘스7세에게 편지보내서리 압박한건 1527년. 사코디로마 약탈 직후야. 사신이 개고생해서 가보니 이미 없어. 좀 전해줘유. 

 

이 당시 상황이 보믄. 코메디인겨 이게. 교황네는 처참지경인데. 본격 구애 후 2년째에 아이 좀 지발 이전결혼 취소시켜줘 앤불린이랑 좀 디비 자게. 

 

아 앤불린. 모땐건데.

 

 

 

The Supreme Head of the Church of England was a title created in 1531[1]for King Henry VIII of England,

 

그리고. 수프림 헤드. 교회의 최고 짱. 타이틀을 취한게 1531년이야. 아직 결혼 전이야. 이게 나중 법제화 되는거고. 
즉 앤불린 만날때부터. 시작은 교황과의 쌈질이야. 저 교황 . 이제부터 잉글랜드에서 꺼져. 내가 잉글랜드 교황이야 . 한 것일 뿐이야.

저 이상은 없어 저기선. 
얘도 일이 이따위로 커질지 모른거야 이게.

마르틴 루터.가 자기의 대자보 질 편지질이 그리 큰일이 될 줄 전혀 몰랐듯이.
.
헌데. 가만보니 말야. 저기서 끝날일이 아니게 된거지. 

수장만 바꾼다고. 해결이 되겠니. 
아 전체를 결국 다 건드릴 수 밖에 없구나. 
이걸 깨달은게 오육년이 걸린거야 이가. 

처음부터 스킴을 잡고 간게 아냐 얘가. 걍 얜 앤불린이랑 결혼만 하믄돼. 교황도 해주고 싶어. 그게 머라고. 이전교황의 특허는 변경불가 란 법도 고치믄 되지 그게 별거냐 그게. 헌데 국제정세가. 카를5세 눈치를 봐야하고 이미 로마는 털렸고. 해주고 싶어도 못해.
자기가 잉글랜드 교황 하는겨. 군주도 하는거고. 하믄 만사가 해결될 줄 안거지.

얜 꼴통 카톨릭에서 자란 인간이야. 뼛속깊이 카톨릭이야. 어릴때 하루에 미사를 네번 다섯번 매일 꼬박 꼬박 한 애야. 특별한 일없으면.


아. 여자란 그래서 무서분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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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말야. 로마 자체를 지워야 하는겨 교회에서. 카톨릭을 지울려면. 예배식 미사도 바꿔야해. 로마 라틴어도 영어로 바꿔야해. 카톨릭이 소유한 수도원들 애비 마너스트리 결국 저것도 다 없애고 다시 구조조정해야해. 

아 다 바꿔야해 알고보니. 슈프림 헤드 오브 처치 오브 잉글랜드. 란 명함만 판다고 해결되는게 아니었던거지.

틴들.은 저 과정에서 죽은겨. 이 저따위 생각 정확하게 들기 직전에.
물론. 틴들이 죽은 이유는. 역시나 캐서린과의 이혼은 무효.라는 헨리의 .은 불법이란 거걸랑. 헨리가 이거 하나에 야마 돌아서리 틴들.을 인터폴에 수배해서리 카를5세가 잡아서 죽었을 뿐인건데.
저 애매한 입장일때 말야. 프로테스탄트 는 얘한테 불법이었어. 저때 죽어 잉글랜드에서. 프로테스탄트들이.

 

 The Church in England was now under Henry's control, not Rome's. On 14 May 1534, in one of the realm's first official acts protecting Protestant Reformers, Anne wrote a letter to Thomas Cromwell seeking his aid in ensuring that English merchant Richard Herman be reinstated a member of the merchant adventurers in Antwerp and no longer persecuted simply because he had helped in "setting forth of the New testament in English."[84] Before and after her coronation, Anne protected and promoted evangelicals and those wishing to study the scriptures of William Tyndale.[85] She had a decisive role in influencing the Protestant reformer Matthew Parkerto attend court as her chaplain, and prior to her death entrusted her daughter to Parker's care.[86]

 

앤 불린.이 프랑스에 오자마자 직후에 마르틴 루터.의 대자보야. 그리고 츠비카우 세명 예언자 놀이 이야기. 기사들의 반란으로 티에르 대주교 죽이러 가는 이야기. 다음에 독일 농민전쟁. 다음에 스위스에서 츠빙글리.의 이야기. 가 다 저 앤불린이 프랑스에 마리의 메이드로 가고부터 잉글랜드 와서리 헨리 8세만나서리 결혼하기 전 까지의 일들이야.

 

 

저게 다 퍼지는겨. 잉글랜드도 당연히 알아. 얘들은 다 한 덩어리야. 앤불린이 네덜란드 프랑스에서 저 프로테스탄트를 찐하게 알게돼. 이여자는 저당시 최고의 인문주의자야. 이여자가 잉글랜드의 프로테스탄의 저당시 핵심이야. 왜? 권력의 아주 중심에 있는 여자야. 헨리가 이여자 말이면 깜빡 죽을 때야. 해서리 베네치아 상인이. 저당시. 결혼 전인데도. 모든 로비창구가 앤불린이다 했걸랑. 

 

 

이때 앤불린이 겪은 7년간 프랑스. 프랑스란 나라를 이해해야해.

 

 

 

프랑스는 진짜 재밌는 애들이야. 멍청한듯 위선적인듯 하면서도 진짜 정의.도 구현하는 애들이야. 그 병원기사단에 참여하는 이야기는 대단한거야. 그리고 저들이 또한 말야. 구출 수도회 구출 기사단에 헌금 하는 이들이야. 그러면서도 킹은 얍삽한 짓하고. 여기 웃긴 곳이야. 지금도 마찬가지야. 민주 대지만 허황 허영이 또한 저 프랑스야.

 

 

프로테스탄트.가 위그노의 이름으로 바로 티나오지만. 칼뱅도 티나오고. 여긴 말야. 칼뱅이란 이름으로 티나오는건. 쎈겨 얘들은. 더 극단적이야 루터보다. 하튼 얘들은 극과 극이야 만사가.

 

 

헌데. 프랑스는 십자군 레반트 2백년 하면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애들이야. 예전의 뿌연 미신적인 믿음이 사라졌어 거의. 프로테스탄트가 그게 문제가 크게 안돼 얘들 입장에선. 

 

 

 

 

Catherine de Medici (Italian: Caterina de Medici, 

pronounced 

[kateˈriːna de ˈmɛːditʃi]; French: Catherine de Médicis, 

pronounced 

[katʁin də medisis]; 13 April 1519 – 5 January 1589), daughter of Lorenzo II de' Medici and Madeleine de La Tour d'Auvergne, was an Italian noblewoman who was queen of France from 1547 until 1559, by marriage to King Henry II. As the mother of kings Francis II, Charles IX and Henry III, she had extensive, if at times varying, influence in the political life of France. From 1560 to 1563, she ruled France as regent for her son Charles IX, King of France.

 

저 프랑스의 저당시 중심에. 뒤에 앙리2세 부인인. 프랑스의 퀸. 메디치의 캐서린. 카테리나 드 메디치.

 

프랑수아 1세 죽고. 앙리2세가 승계해. 이 여자의 자식이 프랑수아2세. 앙리3세야. 프랑스 종교전쟁 당시 가장 중심인물이야. 이여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여자야. 르네상스 가문의 핵심이야. 레오10세 교황의 손녀뻘이야. 레오10세는 위대한 로렌초의 차남이고. 이여자의 할배는 장남이야. 불운 딱지 붙은. 저 프로테스탄트에 반감이 없었어 원래. 헌데 나중에 위그노 이전에 인간 자체에 경멸하게 돼. 위그노 라는 인간들도 허섭한들 하는겨.

 

앙리2세도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그리 처음엔 반감이 없었어.

 

이전의 앤불린이 있던 프랑스.가 그래서 또한 열린 코트였던거야. 저기서 네덜란드에서 배웠던 다양한 것들을 프랑스에서 흠뻑 취한 거걸랑.

 

그걸 헨리 8세에게. 막막 들이대는거야. 프로테스탄트 책들도 막막 던져주고.

 

 

저러면서. 헨리 8세가. 카톨릭 얘도 엄청난 카톨릭 이야. 이론으로 똘똘 뭉친인간이야 또한. 그냥 멍청한 킹이 아냐. 그 벽이 깨부숴진겨. 슈프림 헤드. 이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거고.

 

 

그러면서. 영어성경.에 수도원 개편. 하면서. 난리가 나는겨 잉글랜드도.

 

 

틴들은 영어성경 저리 번역 거의 다 하다가 마무리 못하고 돈에 굶주린 의 꼬드김에 넘어가서리 일명 소도 치외법권인 잉글랜드인들 거주지에서 나온거걸랑. 그리고 잡혀 죽고. 당시 옆에서 같이 있던 망명객이 저 나머지 구약을 완성을 해. 그게 그레이트 바이블이야.

 

 

하튼 헨리가 입장정리가 안될때. 틴들은 사형을 당해. 

 

결국 입장정리는 말야. 앤불린 죽고나서 된겨 확실하게. 오히려. 웃겨 이것도. 앤불린이 죽으면 빠꾸했을 수도 있걸랑. 헌데 이미 불은 붙은겨. 유류저장소에. 타오를 수 밖에 없었던거야.

 

 

나중에 하자.



 

『読書』(1892年) by 

黒田 清輝(くろだ せいき、1866年8月9日慶応2年6月29日) - 1924年大正13年)7月15日

쿠로다 세키.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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