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nights' Revolt (autumn 1522 – 7 May 1523) was a revolt by a number of Protestant and religious humanist German knights led by Franz von Sickingen, against the Roman Catholic Church and the Holy Roman Emperor. It has also been called the "Poor Barons' Rebellion." The revolt was short-lived but would inspire the bloody German Peasants' War of 1524–1526.
기사들의 리볼트. 1522년 가을에서 1523년 3월7일. 프판츠 폰 지킹엔. 게르만 기사. 나이트야. 이사람이 저날 죽은겨.
루터파야.
Franz von Sickingen or Francis of Sickingen (2 March 1481 – 7 May 1523) was a German knight who, along with Ulrich von Hutten, led the Knight's Revolt and was one of the most notable figures of the early period of the Reformation.
루터보다 두살 많아. 나이 40에 저 기사들의 리볼트.에서 죽어.
Ulrich von Hutten (21 April 1488 – 29 August 1523) was a German scholar, poet and satirist, who later became a follower of Martin Luther and a Protestant reformer.
울리히 폰 후텐. 같은해 죽어. 35세.
지킹엔. 의 족보는 몰라. 걍 기사야. 배런. baron. 급인거야. 이전 썰. 잉글랜드의 배런. 대륙의 배런. 하미지를 한 용병.이야. 어떤 영주.밑에서 전쟁하면서 보상을 받는겨. 연봉제던 성과급이던.
시대가 달라진겨 어느새. 서기 1500년.
알프스 넘어에서. 이걸 가장 먼저 눈치챈 인간이 잉글랜드의 헨리 7세야. 이 시대가 변한걸.
잉글랜드가 제일 빠른겨. 잉글랜드는 위대한 들이야.
얼마전 어떤 개병딱 사학으로 돈 쳐벌어 사는 가 그랬다민서. 우리가 통일하면 땅덩어리가 영국과 같습니다. 우리가 영국 처럼 강국이 되는 겁니다.
야 정말 이땅바닥에서. 민족 대면서. 테레비를 연일 도배하면서. 서점에 저딴 가 역사코너에 연일 베스트셀러.
참 끔찍한건데 진짜. 아 진짜 특히 민주 진보 정의 이따위 이념놀이 하는 들은 정말 너무나 너무나 끔찍한 들이야 이거.
On the throne, Henry VII sought to strengthen and centralize his government.[3] To do that he needed funds. When his predecessors on the English throne had attempted to raise additional funds, they sought to obtain additional lands for the crown.[4] Under the feudal system, more land would result in more income. However, Henry VII realized that a more efficient way of raising money for his government, was to tax the income of the rising class of merchants—especially those in the trade in wool and woolen cloth.[5] Indeed, as a "good businessman" and as a politician, Henry VII was aware that "to enrich the merchants was to enrich himself through increased customs duties"[5] At the same time, Henry VII would "win the gratitude of the business classes.[5] It was this mechanism that weakened and finally ruined the feudal system in England.
헨리 7세가 장미전쟁의 최후의 승자가 되면서. 다시 권력을 중앙으로 모아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게 돈이야. 세금이란 체제가. 땅이야. 땅에서 나는 작물에 대한 매출의 몇프로 또는 땅 자체에 대한 임대료. 이 구조는 고대 로마와 아주 똑같아. 헌데 로마.는 십프로야 이게. 매출의 십프로. 기원 전후.는 . 머 매출에서 매출원가 빼고 판관비 빼고 거기서 영업이익에 과세 하는게 아니라. 걍 매출이야. 거기에 십프로. 그리고 처음 임대료 받는거.
세금을 더 걷을려면. 저걸 올리는겨. 세율을 저기서 올려. 결국 죽어가는건 민들인거야. 생산은 한정이 된 상태고. 세금은 계속 더 더 걷어야 하고.
저게 중세. 뿐만이 아니라. 고대 로마때부터 이어져 온겨. 그러다가 고대 로마는 저기에 관세.를 더 눈치채서 파악하고 무역에 의한 세금을 확보하다가. 로마가 망한겨. 즉 중세 구조란게 다시 고대 로마 이전. 으로 돌아간겨. 빠꾸야 이건. 다시 땅 중심체제야. 그러다가 다시 로마 시대로 회복을 하는 과정일 뿐이야 아우구스투스의 제정시대의 그 스킴으로 다시 가는거야. 게르만 애들이. 별개 없어. 고대 로마라는건 엄청 난거야.
계속 땅 에만 관심을 가졌었걸랑. 그 구조야. 이게 중세 봉건주의야. 아직 고대로마의 흥하던 수준이 아냐 이건. 중세란건. 게르만애들이 로마를 배우는게 중세 봉건주의야 . 걍 까놓고 말하면. 무시기 게르만들이. 즉 주어 만 바뀐겨 저 시대구분이.
드디어 로마처럼 말야. 얘가 이제 스스로 눈치를 챈겨. 깨달은겨. 아 . 국부. 라는건 상인들 머천트 들에게 생기는 거구나. 특히 우리네 잉글랜드는 울. 그리고 울로 된 옷감. 이건 이전 썰. 백년전쟁 의 양모. 와 원단. 이들을 흥하게 해야지 거기서 부가 더 커지고. 매출이 커지니까 당연히 같은 세율 이라도 들어오는 세금은 더 커지는거구나.
저게 아담스미스.가 걍 헨리7세의 저 깨달음을 정리한 것일 뿐이야 스콧의 아담 스미스가.
쟤가 5백년전에. 그 이전 천오백년전의 로마.의 경제정치.를 드디어 1500년 만에 깨달은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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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의 잉글랜드는 저걸 눈치를 챘어. 헌데 아직. 알프스 너머는 이걸 몰라. 여전히 중세 봉건 주의 의 땅 중심인거야. 그 바닥은. 이게 머냐면 다시말해서. 전체 땅의 사람들은 이미 저 시대의 저 분위기대로 사는데. 큰 와꾸인 체제.는 그대로인거야. 헨리는 이걸 눈치채서 바꾸기 시작한거고. 저 대륙애들은 저 시스템을 고수를 하는거야.
이탈리아전쟁과 함께 더하여 터지는 이제부터의 피터지는 전쟁들은. 기존 바닥의 상인 중심의 민들과 저기에 부응하는 농민의 민들이 저 구조를 깨트리는 전쟁인거야. 저걸 이전의 사유. 이전의 체제.로 계속 가두려는 것에 대한 반발인거야. 단지 그뿐이야.
리버티야 그게. 프리덤이고. 보다 리버티 보다 프리덤. 의 세계를 위해서 인간은 전쟁을 해온거야.
저 시선의 전쟁 관점이. 이념놀이 시작하는 마르크스 애들부터 다시 빠꾸를 한겨 이게.
이게 지금 이땅바닥의 일이야 역시.
자기들이 극 보수 중에 쌍 꼴통들. 조선 위대한 민족 임둥. 일본에 대한 열등감에 휩싸여서리. 과거로 회귀하려 발악하는 애들이. 자기들이 진보. 라는 이 코메디 상황인겨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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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킹엔. 은 기사야. 영주에 하미지를 하면서리 밥벌이 하는겨. 기사.는 그리스도야. 또한.
당시 이탈리아 전쟁이야. 이사람이 저기 참전을 하는거야 막시밀리언 깃발 아래에서. 교황이 베네치아 때찌해줘. 할때 간겨. 가서 싸우고. 또한 자우스팅. jousting 처럼 말야. 일대 일로 붙어. 이게 허용이 돼 중세에. 저기서 이기면 진 사람 재산이 자기꺼야. 사채업자의 일도 해결해 주는거고. 대신 빚 받아 주는거고. 영주와 함께 나가서 이기면 땅이던 머던 보상 받고. 또한 전장에서 생기는 것도 있고. 헌데 중세 초기엔. 약탈은 드물어. 이게 이즈음때 약탈이 점점 생기기 시작하는거야.
He made war on Antoine, Duke of Lorraine, and compelled Philip I, Landgrave of Hesse, to pay him 35,000 gulden. In 1518 he interfered in a civil conflict in Metz, ostensibly siding with the citizens against the governing oligarchy. He led an army of 20,000 against the city, compelled the magistrates to give him 20,000 gold gulden and a month's pay for his troops. In 1518, Maximilian released him from the ban, and he took part in the war carried on by the Swabian Leagueagainst Ulrich, Duke of Württemberg.[1]
로렌 공작과 전쟁하고. 헷세의 랜드그래이브. 이것도 후작이야. 전쟁하고. 즉 프랑스경계에가서도 싸우고 신성로마제국 안에서 다른 영주랑도 싸우고. 메스 라는 프랑스가서도 싸우고. 용병 하는겨. 하면서 부를 쌓아 이사람이.
나중엔 스와비안 리그에 껴서 뷔르템베르크 공작 울리히 에 대항 전쟁도 하다.
뷔르템베르크.가 이전 썰. 슈튜트가르트. 스와비아의 중심. 여기서 그 푸어 콘라드. 란 불쌍한 콘라드. 농민 반란 난 곳이야. 그때의 울리히. 얘가 사치에 세금 못걷으니 도량형 조작해서 반발하걸랑 농민들이.
저때 가서 만난 사람이. 7살 어린 후텐. 인겨. 울리히 폰 후텐. 지킹엔.과 같이 기사들의 반란 지도자 둘 중에 한명.
이 후텐.은 아빠가 기사야. 역시나. 가난한. 아빠가 열살에 수도원.에 얘를 넣어. 넌 기사따위 말라. 헌데 수도원 생활을 못해 헌데 글을 좋아해. 시를 잘쓰고. 얘가 수도원을 탈출해서리. 아빠한텐 혼나고. 혼자 어드래 수완이 좋아서리 어린나이에 공부를 하게돼. 후원이 붙은겨 애가 글을 잘쓰니까. 마인츠 대주교가 얘를 후원할 지경이니. 그러다 이사람이 이탈리아.도 가서 배우는겨. 이때 페라라 전쟁 나서리 공부중에 막 도망다니고. 당시 이탈리아 전쟁이야.
헌데 로마에 가서리. 자기 눈엔 로마가 부패 덩어리로 보이는겨.
숲속 어두운 게르만애들이. 로마 가면. 로마는 사치와 부패의 상징이 되는겨.
로마는 화장창창한 한 날씨가 많아. 저 숲속의 게르만은 숲속의 그림자들 속에 사는겨.
해서리 관념 철학 생각만 하는거고.
이 후텐.의 친척이. 살해를 당해. 저 문제의 뷔르템베르크 훌리히 공작 에게. 이가 결혼을 했는데 마누라랑 사이가 안좋아. 헌데 지눈에 꼴리는 여자가 저 후텐 친척의 마누라야. 해서리 찝쩍대다가 그 본신랑이 알게되고 말싸움질하다가 죽이는겨. 이 후텐이 저 공작을 치러 가.
저기서. 둘이 만나는겨. 후텐이 저 울리히.를 살려줘.
그리고. 로마갔을때. 의 심정을 글로 써. 유명한 책이야. 여기서 로마 욕을 해. 교황 욕을 하고. 교황이 보고 노발대발하는거지.
한사람은 용병으로 대륙 전역에서 돈벌이 한 사람.의 기사.
한사람은 몽크에서 인문학 공부 열심히 하다가 로마 가서 교황 카톨릭에 실망한 가난한 기사의 아들.
지킹엔.은 보기완 다르게. 학자를 좋아했어. 얘가 사채업자들 뒷배를 봐줬지만. 해서 채무자 협박으로도 돈벌이를 하지만. 자기가 보기에 좋은 사람은 오히려 채권자를 줘패. 그리고 채무자들을 피신시키고 보호해줘.
여기에 루터 애들이 도망나오면서. 이사람이 피난처를 제공해.
라이프치히. 요한 에크와의 이바구 논쟁이 1519년이야
보름스 다이어트.가 1521년 이야. 저 이전에 교황은 파문을 경고해. 빨랑 입장 번복하라우. 안해.
On 18 April 1521, Luther appeared as ordered before the Diet of Worms.
보름스 다이어트.에 루터가 나타나 직접. 저건 죽겠다는거야 자기가. 나름 쎈겨. 헌데 당시 분위기가. 루터 파들이 많아. 영주들이 은근 루터를 지지해.
이전 후사이트 와는 분위기가 달라. 얀 후스 시절과는. 여긴 얀후스가 사형당할때의 아비뇽 교황정 말이 아니야. 그리고 보헤미아 촌구석도 아냐.
그리고. 걍 황제칙령으로. 저 루터가 잡혀서 처벌받기를 원한다. 즉 아무나 잡아서리 패죽여라 하는겨. 그걸 작센 영주가 성으로 데려가서리 칩거시키는거고.
할때야 저때가.
루터애들도 저기 저사람에 가는겨 또한.
더하여. 저 기사 둘. 가난한 기사의 아들. 공부 열심히 한 인문학 나름 시인. 글도 써서 책도 냈어. 전장터에서 누빈 기사. 그 속에서 나름 시대의 문제를 절절히 느낀거야.
여기사 두뇌.는 후텐. 이야 어린사람.
우리 둘이서. 이 체제를 엎자.
아 단지 이 마음 하나야.
여기에 의외로 기사들이 몰리는겨. 사람들이 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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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당근. 마르틴 루터.의 우산.인 작센 선제후.는 반대하는거지. 이건 자기를 죽이는거걸랑. 이사람이 진압에 앞장서 저걸.
저들이 이빨로 카톨릭 나뽀 할때. 이 둘은 직접. 카톨릭을 칼로 쳐부수기로 한겨. 더하여 봉건 영주들까지.
이때부터. 점점 카톨릭 체제가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행동으로 옮기는거야 사람들이.
A tithe 타이드. 십일조를 안내기 시작해.
그러다가 농민전쟁이 터지는겨. 여기서의 중심은 토마스 뮌처.
다음에하자.
Self-Portrait, 1556, Lancut Museum, Poland
Sofonisba Anguissola (c. 1532 – 16 November 1625). 소포니스바 안귀쏠라.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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