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Philip Melanchthon in 1524 he wrote:
I know nothing of your church; at the very least it contains people who will, I fear, overturn the whole system and drive the princes into using force to restrain good men and bad alike. The gospel, the word of God, faith, Christ, and Holy Spirit – these words are always on their lips; look at their lives and they speak quite another language.[48]
필립 멜란히톤. 에게 편지. 얘가 루터파의 핵심이야. 에라스무스.가 말해.
난 당췌 니덜 교회의 정체가 먼지 몰겠다 새꺄. 내 그나마 니덜 하는 짓 보니까 알겠는건 니덜 루터파란 들이 하는짓이, 아 내는 무섭기까지 한데, 전체 체제를 다 엎어버리고 군주들을 선동하민서리 좋은 사람들 나쁜 사람들을 똑같이 대하게 하는데 보니까 니덜.
복음, 신의 말, 신앙,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 이따위 말들이 니덜 입술에서 항상 붙어다니는데 말야, 니덜이 사는 걸 봐라, 니덜은 다른 말을 하는거야 지금.
Desiderius Erasmus Roterodamus (/ˌdɛzɪˈdɪəriəs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로테르다무스. 로데르담.의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 네덜란드땅 그리스도 인문주의자.
저걸 공식적으로 한글발음을 말야.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 라 대는데.
덧치어로도. 데시데리 우 스. 에라스 무 스.야
세상 어디 빠닥에서도 저 이름을 에라스뮈스. 라고 읽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 대체 저따위 은 머냐 이거.
대체 어떤 가 저걸 에라스뮈스. 라고 시작을 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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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종교개혁 에 대한 직시.는 저 에라스무스.의 저 말 이상 없어.
루터가 1483년생이야. 나이가 17살 더 많은 형님이야 에라스무스.가 루터가 처음엔 따랐어 이 에라스무스.를 에라스무스.는 카톨릭 개혁주의자야. 헌데 로마 카톨릭 체제를 전복하는건 전혀 관심이 없어. 단지 좀 깨끗해지자 란 정도야 에라스무스.는 해서리 처음 저 꼬마들이 날뛰면서 댈때 아 들 잘하네 하며 언뜻 지지해줬걸랑. 걍 열심히 해라 정도야. 루터가 고마운겨. 에라스무스.는 유럽 전역을 다 돌아다닌 사람이걸랑. 로마 교황청에서도 에라스무스.하믄 깜빡 죽어. 그런 에라스무스.가 자기를 지지하는겨.
이 루터앤 말야. 애가 똘아이야 이게. 가만 보믄 . 허영심 많은 걸랑 이가.
이가 쓰는 글들 제목 다는 거 보면
The Judgement of Martin Luther on Monastic Vows.
A Sincere Admonition by Martin Luther to All Christians to Guard Against Insurrection and Rebellion.
지 이름 마르틴 루터. 를 언급해. 말할때도 나. 마르틴 루터.는. 아 지를 삼인칭화 해서 언급하는 연예인들은 귀엽기나 하지. 저건 자뻑걸랑 저게.
"Free will does not exist", according to Luther in his letter De Servo Arbitrio to Erasmus translated into German by Justus Jonas (1526) in that sin makes human beings completely incapable of bringing themselves to God. Noting Luther's criticism of the Catholic Church, Erasmus described him as "a mighty trumpet of gospel truth" while agreeing, "It is clear that many of the reforms for which Luther calls are urgently needed.”[47] He had great respect for Luther, and Luther spoke with admiration of Erasmus's superior learning. Luther hoped for his cooperation in a work which seemed only the natural outcome of his own.
프리윌.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루터가 에라스무스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인간을 신에게 다가갈 수 없게 하는 것이 죄.때문이라면서. 저렇게 썼다. 루터의 카톨릭 교회 비판을 인용하면서. 에라스무스는 루터를 진짜 복음의 강력한 트럼펫 소리. 라고 걍 꼬마에게 어구구구 칭찬말을 해줬다. 그러면서 루터가 부르짖는 시급한 개혁의 안건들은 분명해 보인다. 자기 나름 분명하게 즉 어슴프레 추상적으로 말하는게 아니라 구체적 확실한 주장을 하고있다.라고 평을 하는겨. 에라스무스는 루터에 대해 존중했따. 이건 개뼈다귀 해석한거고. 걍 좋은 말 해준거야.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한차원높은 학식에 대해 감탄한다고 했다.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협조를 바랬다. 루터가 보기에 자기가 하는 짓의 업적은 내추럴 아웃컴 오브 히스오운. 자기만의 독자적인 힘의 결과 란 걸로 보인다.고 자뻑하는거걸랑 . 자기만의 대단한 짓들을 지금 하고 있는데. 에라스무스.형 내 일에 동참좀 해줘.
In their early correspondence, Luther expressed boundless admiration for all Erasmus had done in the cause of a sound and reasonable Christianity and urged him to join the Lutheran party. Erasmus declined to commit himself, arguing that to do so would endanger his position as a leader in the movement for pure scholarship which he regarded as his purpose in life. Only as an independent scholar could he hope to influence the reform of religion. When Erasmus hesitated to support him, the straightforward Luther became angered that Erasmus was avoiding the responsibility due either to cowardice or a lack of purpose.
처음의 서신교환들에서는.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건강하고 이성적인 그리스도 정신에서 나오는 모든 것. 에 대해 무한한 감동을 표현했다. 그리곤 에라스무스에게 자기 루터파로 참여해달라고 막 막 위협의 수준정도로 빌고 빌었다. 에라스무스는 거절했다.
저걸 에라스무스.의 편지글을 말야. 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돼 저 쓴 이도 그걸로 저리 쓴거지만. 에라스무스.는 걍 꼬마 노는거. 우쭈쭈 해준겨. 에라스무스는 그리스어로된 성서 번역에 수정하느라 정신이 없어. 아 구찮게 하는겨. 걍 이핑게 저핑게 대는겨 에라스무스가 좋은 말로.
직설적인 루터는 화를 냈다. 에라스무스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겁쟁이거나 목적의식이 부족해서리.
에이 참 저따위 들 때메. 결국은 말야. 사람들이 무수수수히 죽어나간 거걸랑. 그 이후로.
루터. 막시스트 레닌이나
쟤들은 다 똑같아 그 구조가.
쟤들이 결국. 히틀러따위나 스탈린따위나 모택동 따위나 저 북조선에 삼부자따위나. 다 똑같은 들이걸랑.
걍 민들이 들고 엎으면.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겨. ㅋㅋㅋ.
이전 세력은 다 적폐야. 저걸 다 갈아엎어. 그러면 새로운 엄청난 세상이 오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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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덜의 이바구질 하는 혓바닥과 입술들에 놀아나는 아름다운 말들이. 가만 디다보면 역겨운 말들이란다. 니덜의 하는 니덜이 사는 니덜 스스로의 삶을 봐라덜. 얼마나 역겹냐. 니덜이 하는 말글이 그게 무슨 뜻인지나 알고 쓰는 말글이냐? 니덜은 전혀 다른 말글을 쓰는 거란다. 그 말글은 그따위 니덜이 데피니션한 그따위 규정된 말글이 아니란다 그게.
라고 에라스무스. 가 말하는겨. 세상의 모든. 자칭 정의 라 칭하는 개 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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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가 티나오면서 말야. 세상이 본격적으로 피바다가 되는겨. 얜 걍 재료일 뿐이지만. 그래서 루터탓은 아냐. 걍 불쌍한 하나의 인간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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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Desiderius Erasmus by Albrecht Dürer, 1526, engraved in Nuremberg, Germany.
You declaim bitterly against the luxury of priests, the ambition of bishops, the tyranny of the Roman Pontiff, and the babbling of the sophists; against our prayers, fasts, and Masses; and you are not content to retrench the abuses that may be in these things, but must needs abolish them entirely...
Look around on this ‘Evangelical’ generation,[50] and observe whether amongst them less indulgence is given to luxury, lust, or avarice, than amongst those whom you so detest. Show me any one person who by that Gospel has been reclaimed from drunkenness to sobriety, from fury and passion to meekness, from avarice to liberality, from reviling to well-speaking, from wantonness to modesty. I will show you a great many who have become worse through following it....The solemn prayers of the Church are abolished, but now there are very many who never pray at all....
I have never entered their conventicles, but I have sometimes seen them returning from their sermons, the countenances of all of them displaying rage, and wonderful ferocity, as though they were animated by the evil spirit....
Who ever beheld in their meetings any one of them shedding tears, smiting his breast, or grieving for his sins ?... Confession to the priest is abolished, but very few now confess to God.... They have fled from Judaism that they may become Epicureans.[51]
니가 지금 격정적으로 사제들의 사치. 주교들의 욕망. 로마 교황의 분수에 넘는 다스림. 그리고 신학자들 어리석은 말들. 이라 해대고. 우리의 신도들, 단식핑게 이라며하는 축제들. 그리고 미사들.에 욕질해대면서 말야. 니는 그런 것들에서 생기는 그런 남용들을 좀 줄이자 란 것에 대핸 관심은 없고 오직 저 모두를 싸그리 엎고 없애야만 한다고 대는데.
지금 에반젤리컬. 이라며 복음전파한다는 들을 한번 봐라. 그 들의 지금 자행하는 사치 성욕 탐욕 은 그럼 면죄가 덜 되겄다 니가 지금 혐오하는 들보다. 내헌테 단 한라도 보여줄래? 니들이 말하는 복음으로다가, 취한가 제정신이 되었거나. 분노질 격정질만 해대는 가 젠틀 온순한 로 변했다던가, 탐욕에 미친가 그로부터 자유로와졌는지. 말만 해댄 가 언변이라도 좋아졌는지. 개망나니 가 순해진로 길들여지기라도 했는지. 아는 있으면 단 한라도 보여줘봐 어디. 내 니헌테, 니들 말듣고서리 더 개 가 된 들은 많이 보여줄 순 있다.
교회의 고독한 기도들은 다 사라졌다. 이젠 그곳에 기도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나는 니덜의 몰래 모임장소엔 전혀 가본적이 없다. 헌데 니덜 설교를 듣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은 보이더라 얼굴엔 화낸 표정과 열받은 듯이. 마치 악마에게 조종된 사람들 처럼.
대체 누가 그런 모임장소에서 눈물을 흘려대며 가슴을 찢으며 자기 죄를 한탄하디? ... 사제에게 고해하는 것은 사라졌어. 아주 극소수만 신에게 직접 고해하는 지경이 되었어... 마치 예전에 말야 유대교를 버리고 세상과 단절한 에피큐리언들이 된거야.
Again, in 1529, he writes “An epistle against those who falsely boast they are Evangelicals”[49] to Vulturius Neocomus (Gerardus Geldenhouwer). 에라스무스가 프로테스탄트 누구에게 쓴 편지.
똑같아 저게.
저게 말야. 지금 이땅바닥에서도 벌어지는 일이야.
세상에 개혁이나 혁명은 딱 세개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독립혁명. 나폴레옹 혁명. 메이지 시대 애들의 유신.
저들은. 고대 로마가 이어 받은 인간의 사유에 그리스도를 더하여 르네상스 인문주의에 계몽주의 를 더한 이들이. 이전의 체제를 엎었어. 이때의 기존 체제는 저 싸이키를 담지를 못해. 저들이 기존 체제보다 압도적으로 시대를 다 품고 더 나아간 스킴을 갖은거걸랑.
저들은 그 이전까지의 이야기를 다 담고 그 위에서 새로운 이야기의 세상을 만들은거야.
그 이외의 아이들은. 걍 기존 이야기는 다 . 자기만의 힘. 저 왈
a work which seemed only the natural outcome of his own. 어 워크 위치 심드 온니 더 내추럴 아웃컴 오브 마이 오운. ㅋㅋㅋ.
기존껀 적폐야. 자기만의 힘으로 인한 새로움으로 다 씌워야 해. 기존의 역사는 적폐야. 의미없어. 정의인 내가 세 세상을 만드는기야 ㅋㅋㅋ
또라이야 저건.
지금 기독교가. 카톨릭 보다 그럼 깨끗하냐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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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말하는 들의 아가리에서 나오는 단어들 보면 아름다운듯. 허나 그 행실을 봐라. 추잡하고 역겹고 더럽도다.
강남에 살아봐서 아는데요. 강남 안 좋아요
내딸이 외고나오고 말하는데요. 외고 안좋아요
우물안의 개구리로 살아요. 내가 용 되서 아는데요 개구리가 좋은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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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말야. 또 옥 같은겨 저게.
개 무시기 애들이나 놀아나는거야. 개무시기의 역사를 갖은 땅에서나 저따위 말글에 놀아나는거야. 그게 러시아고 그게 중국이고 그게 북조선이고 그게 또 어디야 그게.
중남미 애들이 저따위 말글에 놀아나는거고. 해서리 몇몇은 다시 정신차리까 마까 하는 지경이지만. 워낙에 개판을 만들어놨어야지. 그게 지금 아르헨티나 상황이야. 헌데 저걸 기회로 또 이전의 저 썅년이 또 대통령 또 나와 또. ㅋㅋㅋ. 아 불쌍해 저땅. 특히나 저 아르헨티나. 자원이 남아도는 저 아르헨티나가 왜 저따위 들 때메 저따위로 살아야 하냐. 왜냐믄 역사가 너무나 없걸랑. 자기들만의 사유로 세상을 살아온게 아냐 저게.
더하여 자원도 없는 가진것 하나 없는 이땅바닥에선 말이야. 아 끔찍한거지.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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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로마 약탈을 해대는 독일 용병들은. 프로테스탄트들이야. 그들이. 낄낄낄낄 대면서 약탈을 하는겨. 그게 1527년이야. 루터의 대자보란게 1517년이야. 대자보를 진짜 붙이긴 한걸까? 는 전설이고 걍.
루터는 지가 대단한 줄 알아.
걍 새꺄 당시 영주들이 널 이용했을 뿐이야. 너보다 더 더 더 엄청난 사람들이 수백년 전부터 있었어. 걍 니는 거기서 엔분의 일일 뿐이야. 얜 정말 자뻑 심해.
쟤가 만든 성경 신약은.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번역 성경을 보고 번역한 거일 뿐이야.
에라스무스.가 불가타 성경을 재번역한거야. 헌데 이사람은 이때 이걸 그리스어로 하는겨. 그 당시 그리스어로. 코이네 그리스어가 아냐 이건. 왜 라틴어로 안하고 그리스어일까 한겨. 또는 왜 그 시대 덧치나 불어나 잉글리쉬도 스페니쉬도 아니고 왜 하필 그리스어로 했을까.
왜냐믄. 신약의 시작이. 그리스어걸랑.
제대로 된 그 시대의. 그야말로 제대로 된 정통 그리스어로 된 신약을 만들고 싶었던거야.
Novum Instrumentum omne was the first published New Testament in Greek (1516). It was prepared by Desiderius Erasmus (1469–1536) and printed by Johann Froben (1460–1527) of Basel.
이게 최초 판이 1516년이야.
The fifth edition of Erasmus, published in 1535. 이걸 다섯번째 개정판.을 내. 20년 가까이 걸린겨. 이게 마지막 판이야. 그리고 다음해 죽었어.
저건 교황청의 절대적 후원에 의한거야 저게.
저거 하기도 바빠죽겠는데 별 개그지가 세상을 바꾼다미 귀찮게 하는거지 에라스무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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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Luther, O.S.A. (/ˈluːθər/;[1]
German:
[ˈmaɐ̯tiːn ˈlʊtɐ]; 10 November 1483[2] – 18 February 1546) was a German professor of theology, composer, priest, monk,[3] and a seminal figure in the Protestant Reformation.
마르틴 루터. 1483년 생. 생일 전 죽어서 62세.
얜 이전 썰했지만 광산업 리스 하는 아빠야. 아빠는 얘를 공부 시켜서리 일명 사시공부해서 집안좀 밝혀주었으면 하는거지 정치권 비스무레 갔으면 하는거고.
얘 태어난 곳이 아이슬레벤. 작센 안할트.주 지금. 여기가 당시 작센 선제후 관할인겨. 비텐베르크 Wittenberg 가 수도야. 그 프러시아 만드는 알베르트 랑 만나는 곳.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 루터가 저 선제후.의 우산으로 살아남는겨. 제 후원으로 성안에 짱박혀서 성서를 번역하는거고.
왜? 작센 선제후가. 쟤가 필요했을 뿐이야.
얜 지가 대단한 듯이 아 저 선제후가 내를 예수로 생각하는거일껴 함시롱 자뻑 해쓸껴
The religious scholar Martin Marty describes Luther's mother as a hard-working woman of "trading-class stock and middling means" and notes that Luther's enemies later wrongly described her as a whore and bath attendant
나중 누구가 말하길. 루터 엄마는 일 열심히 하는 상인층의 중산층 정도 였다. 해서 루터의 적들은 그녀를 매춘부나 목용탕 때밀이로 악랄하게 공격했다.
하튼 부모가 얘를 공부를 시켜. 신학만 한게 아냐. 신학은 기본으로 하고 아리스토텔레스 관심 많았고 이전 철학자들 다 공부하는거고. 얜 그러다가 법공부 중이었어.
원래 루터는 이성. 리즌. 이란 것에 관심이 있는겨. 그리고 이성과 신은 별개라고 선을 거. 그러다가 말야.
On 2 July 1505, while returning to university on horseback after a trip home, a lightning bolt struck near Luther during a thunderstorm. Later telling his father he was terrified of death and divine judgment, he cried out, "Help! Saint Anna, I will become a monk!"[22][23]
1505년. 나이 햇수로 22살이야. 대학교에서 집에 말타고 가다가. 번개가 바로 옆에 친거야. 나중에 루터 아버지가 말하길 그는 죽을까봐 벌벌 떨었고 신의 심판이 왔구나 하민서리 울부짖었다. 도와줘 성 안나! 살려주면 몽크 가 될께!
하필 말야. 불러도 말야. 성서에는 없는 안나.를 불러. 이것도 웃긴겨. 안나.는 마리아의 친정 엄마야. 즉 지저스의 외할머니. 쿠란에 언급이 될까 하는.
마리아가 성처녀면. 마리아의 엄마는 또 성처녀로 마리아를 낳았을까 말까 하는 것도 할일없는 인간들이 또 끄집어낼꺼 아녀? 하튼 걍 넘어가 말 길어지니.
얜 저런거 보믄. 튀고 싶어 안달인겨 그 성질이.
해서 저때 몽크. 라는 수도사가 된겨. 몽크. 는 마너스트리야. 프라이어.는 메디컨트 탁발수도사고. 몽크 마너스트리. 다 라틴어야 시작이. 모노 할때 그 모노 고 마너스트리고 몽크. 혼자 대드는겨 신한테 갈라고.
해서리. 세속의 친구들과 빠이빠이 하고 몽크가 된겨. 저 번개 한 방으로. 아부지는 열 받는거지. 기껏 공부시켰더만 하는거고.
얜 신학에 저때 올인한겨. 이때 시작한겨 결국. 그리고 들어간 곳이 성 아우구스티노. 히포의 그 서로마 망할때 반달족 넘어와서리 죽는 사람.의 수도회에 들어간거야.
그러면서 저기서 부터 해서리. 영적으로 들어가는거고. 공부를 하는거지. 작센 선제후의 땅에 비텐베르크 대학이 이때 생겨. 여길 들어가서 갈키믄서 배철러 학위 받고. 닥터 학위 받고. 한게 1512년. 7년 후. 나이 29살.
그러면서. 작센과 그 아래 투링키아.의 비카리우스. 종교 대리인. 좀 높겄지. 자리 하나 맡고. 그 지역의 11개 모너스터리들 수도원들을 감독하게 되었다. 1515년 나이 32살. 즉 번개 에 떨고서리 십년만에 자리 하나 잡은거지.
On 31 October 1517, Luther wrote to his bishop, Albrecht von Brandenburg, protesting the sale of indulgences.
그리고 나서리. 사건이 벌어진건 2년 후인거야. 번개 후 12년. 나이 34살. 이때 문제의 편지를 써. 95개 논제. 이건 그 위의 브란덴브루크 주교. 자기 지역의 담당 주교야. 이사람한테 편지를 쓴겨. 인덜전스.라는 면죄부 파는 걸 항의하면서.
이걸 대자보로 성당에 루터가 붙였다. 란 건 역사적 사실이 아냐. 증거가 없어. 아마도 저 편지 사본을 본 친구들이나 사람들이 벽보를 붙였는 지는 모르겄고. 하튼 저 사본들이 저 이후에 돈거야 유럽 전역에. 저 지역부터 시작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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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웃긴게 말야.
루터가 저걸 최초로 한게 아냐. 왜 유독 유난히 루터의 껀 만 세상에서 쳐주는건가.
He was a "secular" cleric with no official ties to any monastic order. His beliefs were challenged during his stay in Rome, where he alleges he saw large-scale corruption in the Roman Catholic Church, and on a document dated 16 September 1516 he wrote a series of 151 theses. (These should not be confused with Luther's 95 theses (1517) that attacked indulgences.)[2]
루터 보다 일년 전이야.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이야. 이사람은 일년전 9월이야. 151개 주제로 편지를 쓴거야. 이 사람은 수도회에 어떤 자리도 없어. 걍 로마에 공부하러 간겨. 헌데 로마에 머물다가 자기 믿음과 배치가 되는 상황들에 접한거야. 해서리 저걸 직접 로마 교황청에 보낸겨. 아마도. 어디에 보냈다는 없는데.
Andreas Rudolph Bodenstein von Karlstadt (1486 in Karlstadt, Bishopric of Würzburg in the Holy Roman Empire – 24 December 1541 in Basel, Canton of Basel in the Old Swiss Confederacy), better known as Andreas Karlstadt or Andreas Carlstadt or Karolostadt,[1] or simply as Andreas Bodenstein, was a German Protestant theologian, University of Wittenberg chancellor, a contemporary of Martin Luther and a reformer of the early Reformation.
안드레아스 칼슈타트. 루터보다 3살 어려. 헌데 루터는 늦게 시작한거고 이사람은 일찍 시작해 신학을. 저 비텐베르크.에 루터가 수도원에서 공부하면서 강사 비슷한 할때 이사람은 저기 챈슬러.면 대빵이걸랑. 루터가 1512년 닥터 학위 받을때 이걸 준 사람이 이 세살 어린 칼슈타트야. 그리고 이사람은 로마에 간거야. 새논로 시빌로 두개 학위 받으러. 정통으로 공부해서 받겠다 이거지. 그러니 로마에선 자리가 없는겨. 거기서 저 자기만의 논제 151개를 제출한겨 로마에. 루터보다 1년이 빨라.
헌데 정작 스포트라이트.는 루터가 받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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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enzo de' Medici (
Italian pronunciation:
[loˈrɛntso de ˈmɛːditʃi], 1 January 1449 – 8 April 1492)[1]
이야기를 건너 뛰어서. 위대한 로렌초. 라는 인간을 보면 말야. 증조 할배 지오반니 로렌초가 메디치 은행을 세우걸랑. 얘는 정말 위대한 인간이야. 저 돈을 얘가 다 써. 어차피 있었어도 피렌체 정세가 이사람 사후에 저 재산이 남아나지 않아. 사보나롤라의 미친 인민의 시대가 오걸랑
In 1471, Lorenzo calculated that his family had spent some 663,000 florins (about US$460 million today) on charity, buildings and taxes since 1434. He wrote,
로렌초는 지금돈으로 4억6000만 달러. 5000억원을 썼다. 후원과 건물과 세금으로. 그는 이렇게 글질을 했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좀 지갑에 넣어놓았으면 더 좋았을걸. 하지만. 내가 그런 후원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국가에 위대한 존경심의 발현이었다 라고 여긴다. 즉 내가 그리 할 수 있었다는 것도 감사하다는겨. 그 돈이 잘 쓰여졌고 나는 그래서 너무 기쁘다.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사람은 말야. 정말 돈을 제대로 쓴거야. 남들이 보기엔 사치 화려 졸부 짓으로 보였을 지언정.
저사람 때문에 르네상스가 더 꽃을 피운거고. 저사람때문에 레오나르도 가 자기의 말로 말했듯이 저사람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든거고. 당시의 르네상스 인간들을 만든거야. 그리고 그게 사유로 퍼져서리 지금 문명에 엄청 기여를 한거야 저게.
그래서 저사람을 위대한 로렌초 하는거걸랑.
로마 교황이 쟤들 루터 애들의 표현으로도 처럼 보기엔. 사치에 탐욕에 정욕에 악마들 처럼 보이지만. 다 카더라 가 많은거고. 세상은 음모놀이로 처먹고 사는 들이 많은거고. 하는거걸랑. 그 속내를 가만 디다보면 그게 아냐.
체사레 보르자.의 아부지 알렉산더 6세 교황이. 자기 군대 만들고 거기에 자기 자식가 사령관 해서리 로마령들을 다 진압해서 마치 교황 땅으로 만든 듯이 보여서리 저 부자 및 저 보르자 가문 개개끼 하지만 말야. 저당시 저 둘이 이탈리아에 가장 위대한 사람들이었을 뿐이야. 이탈리아는 저 두사람이 아무 대책 없이 죽고 나서리 바로 로마 약탈.을 당한거고 이탈리아가 끝이 난거야.
위대한 로렌초.의 차남 레오10세 교황이 죽고서리 끝이난거야 이탈리아는.
저 레오10세의 면죄부야 루터가 욕질하는건.
칼슈타트.의 로마교황청 비판하는 그 로마의 교황은 레오10세야.
얘들이 보기엔. 저 숲속의 게르만애들. 숲은 게르만의 어머니 이다. 라며 자란 그 게르만 촌놈 저 고지대 중지대 들 눈깔엔 맨날 축제에 화려한 새깔에. 레오 10세가 금화를 막막 뿌려대는 그따위 로마가. ㅋㅋㅋ. 완전히 이건 개 난장판인거지.
저런 곳에서. 관념 철학이 득세한겨. 게중에 낑긴가 카를 마르크스 일 뿐인거고.
청렴. 이 문명의 주제가 아냐. 이 개들아.
조선왕조 오백년을 청렴 청렴 개. 끝까지 청렴이야 맨날 .
머 처먹고 살게 있어야지 청렴 을 하던 말던 하지 .
오직 처먹고 살수 있는건 과거 봐서리 급제 하는거고. 임용 되서리 한자리 하는거고. 거기에 낑겨서리 아전바치 하는거고. 그래야 겨우 처먹고 사는거 그자리에 있을때에 어드래 더 처먹고 사는가 할 수 밖에 없는거고.
해서 일제 직후에 나오는 소설이야 그게. 채만식의 논이야기. 과거 회상하는 이야기.
아까우냐? 왜 아까우냐? 그거 몇마지기 아까우냐?
애들이 지들은 처먹고 살게 많으니 지들은 깨끗한척. 세금 면세도 가만보믄 쟤들과 비해서 쟤들 양반들은 세금도 내는것도 아냐 그래서.
하는 일은 없고. 맨날 오백년 동안 적폐 놀이. 소인배 놀이. 해댐시 상대 죽이고. 그 재산 뺏고 그 재산에서 부풀리고
구한말에 일본한테 넘어가니. 남은 재산 정리해서 간도 갈때의 그 재산 봐라. 얼마나 어마어마어마 하냐. 지주라는 시스템에서 여전히 몇몇 살아남은 들이 어마어마어마한 땅을 갖고 있는겨 .
그걸 처리해서리 저쪽가서 머 세우면 위대한 머시기가 되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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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 해대는 들의 모습을 에라스무스.가 보는겨. 정작 저들 하는 짓들을 보거라. 얼마나 사치에 얼마나 탐욕에 얼마나 정욕덩어리던가.
인간이 별다르간 .
똑같은겨 지금 현재 대한민국 21세기가. 저 들 면상들이 미디어를 점령질 해대는거 보믄 역겹고 토가나올 지경이니 .
그렇다고 개중엔 말야. 정작 지는 비단옷 안입고 똑같이 서민 행세 하는 인간이 간혹은 있어.
그게 사보나롤라.야 그런 가 더 무서운겨 오히려. 저런 세상은 살벌한겨. 차라리 남들에겐 아름다운 추상명사 날리믄서 지는 비단옷 챙겨입는 가 그나마 나은거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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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상호간의 인식 차이가 있는거야 저때.
저 숲속의 게르만 애들이 갓 문명을 이제야 익힌 그 시선에서. 저 이탈리아 로마.를 저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를 경험했던 저 들에겐. 그 내부의 사람들과 알프스 넘어의 사람들에겐.
더하여 말야. 그래서 말이지. 저 알프스 넘어의 교회들 사제들 원장들 조차도. 갓 게르만 갈리아 애들이 윗자리에 앉은거걸랑. 그 수준이 이탈리아 기원전 750년 부터 온 2천년 가까이 된 그 정서가 될 수가 없어. 당연히 더 육욕 덩어리로 살 수도 있는거야. 헌데 그건 점점 문명이 쌓이고 시간이 해결해 줄 수 밖에 없는거야. 그걸 엎는 그 는 그 즉시 그가 욕하던 그 이상의 가 되는거지. 그게 저 에라스무스.의 처음 글들이야.
에라스무스.는 저당시 제일 시대를 직시했던 인간이야.
The Leipzig Debate (German: Leipziger Disputation) was a theological disputationoriginally between Andreas Karlstadt, Martin Luther, Philipp Melanchthon, and Johann Eck. Eck, a defender of Catholic doctrine and a highly respected Dominican friar, had challenged Karlstadt, a Christian theologian, to a public debate concerning the doctrines of free willand grace. The Leipzig Debate took place in June and July 1519 at Pleissenburg Castle in Leipzig, Germany.
라이프지히 토론. 1519년. 6월에서 7월. 두달사이에 벌어진 일이야.
2년 가까이 흘러가면서. 로마 교황청과 루터 사이에서 이단이다 아니다 어쩌고 저쩌고. 그동안 저 루터의 95개 논제는 유럽 전 바닥에 다 뿌려진겨.
저기서 만나는겨. 라이프지히.
이 라이프지히. 바로 옆이 마이센. Meissen. 이건 마그레이브 땅 후작령이야.
저 작센 선제후땅 중심 비텐베르크.가 엘베강이야. 즉 여긴 말야. 중세 11세기 말했듯이. 서기 천년 직전후에나 들어가는겨 게르만들이. 샤를마뉴 손자들 이후야 여긴. 이때 마그레이브 가 많은겨 그래서. 이때 세워진게 마이센 후작령이야. 여기에 저때 이전 4백년전부터 영주가문이 된 곳이 베틴 가문이야. Wettin.
여기에서 뻗은 게 작센 베틴베르크 공작령.이야 저 마이센 후작령 왼쪽이야.
The Duchy of Saxe-Wittenberg (German: Herzogtum Sachsen-Wittenberg) 작센 공국이 쪼개지면서 그 하나야 이게. 그리고 여기랑 마이센 후작령이랑 합쳐지게 돼.
이게 소위 작센 선제후 령. 하는겨. The Electorate of Saxony (German: Kurfürstentum Sachsen, also Kursachsen) . 즉 선제후 권리가 있는 공작령 이야.
즉 말이지. 베텐베르크. 나 라이프지히. 나 다 똑같은 베틴가문 의 지배하에 있는 곳이야. 저곳에서 벌어진거야 루터의 프로테스탄트는. 해서 주도권은 항상 베틴 가문에게 있는거야.
Frederick III (17 January 1463 – 5 May 1525), also known as Frederick the Wise (German Friedrich der Weise) was Elector of Saxony from 1486 to 1525, who is mostly remembered for the worldly protection of his subject Martin Luther.
저 내용은 나중에 썰하던 하고.
칼슈타트.가 말빨과 기억력에서 에크.에게 밀려. 그리고 루터가 왔어. 에크.가 말빨과 기억력에 이건 또 루터에게 밀려.
문제는 인덜전스. 란 것부터 시작이걸랑.
Origin
Early 17th century (in the sense ‘treat with excessive kindness’): from Latin indulgere ‘give free rein to’.
indulge. 인덜지. 라는건. 라틴어 인둘게레. 자유를 주는겨. 해서리. 기쁘게 하는겨.
저걸 카톨릭에서. 인덜전스. 명사를 자기들도 갖고 오면서 말야. 자유롭게 해주는건데. 여기에 덧붙여지는거지 그 개념이. 죄를 씻어서리. 괄호 하고. 해서 저게 면죄부가 되는겨.
저따위 면죄 개념은 서기11세기 전에 없었어. 이건 이전 단테 이야기에 썰. 연옥이란 번역은 고. 정죄. 정계. 가 맞아. 씻는겨 죄를. 그런 연옥.이란 건 단어조차 성서 구약신약에 없어. 루터는 이걸 물고 늘어지는거걸랑. 헌데 저걸 모르겄니. 다들 알지 신학을 공부했으믄.
저게 단테 신곡때문에 특히나 유행을 한거걸랑. 더 잘 통하는겨 민들에게. 더 잘팔려 그래서.
저 인덜전스 면죄부.란건. 연옥의 기간을 줄이는겨. 단테가 신곡에서 창조한 연옥.
저건. 이전의 콘페션.하는 새크러먼트.라는 성사 가 아냐. 페넌스. 리팬턴스. 하면서 회개 자책하면서 죄를 씻고 세례를 받아서리 샐베이션에 다가가는 게 아냐.
이건 연옥이야. 그 중심 주제가. 이건 새로 만든겨. 로마에서. 돈이 없어서. ㅋㅋㅋ
In 1392, more than a century before Martin Luther published the 95 Theses, Pope Boniface IX wrote to the Bishop of Ferrara condemning the practice of certain members of religious orders who falsely claimed that they were authorized by the pope to forgive all sorts of sins,
저게 제일 먼저 문제를 제기한 건. 교황이. 다른 주교애들한테 머 이상한 면죄부 니덜 남발한대매. 그따위 하지 말어 좀 하는겨.
저때가 보니파티우스 9세 교황. 이 머냐면. 아비뇽 교황정 좀 로마로 들어와라. 하고나서리 투표하고. 그 제네바의 로베르트. 아비뇽에서 민 가 프랑스 표가 갈려서리 안되고 삐쳐서리 다시 아비뇽 들어가서리 지들 교황 다시 어쩌고 할때. 로마 교황으로 당선된 사람이야 보니파티우스 9세. 즉 웨스턴 스키즘 처음 시작할때야. 이때부터 40년간 웨스턴 스키즘. 해서리 나폴리의 조안나랑 나폴리 대주교 출신 이 교황이랑 막 막 싸우고 하던 얘기. 기억날리가 읎지.
아비뇽 교황정.이 문제의 중심이야 이게 역사적으로. 저 웨스턴 스키즘까지 아비뇽교황정이 백년 이상 있걸랑. 이때 로마 교구.가 중심을 못 잡으면서리. 저때 저을 하는겨. 그러면서 또한 돈이 잘 안걷히는거고. 영주들이 힘이 쎄진거고. 그러면서 저런 면죄부 이 극심해진거야.
아비뇽 교황정은 또한 결국 레반트 십자군 의 종말 로 야기된 거고. 해서 막막 물리는건데 이야기들이.
저러면서 아비뇽 교황정도 다 끝나고. 로마 교황정이 새로 시작하면서리. 그 이전의 권위 찾기. 특히나 로마교황령. 에 대한 권리. 이게 이탈리아 전쟁때 중반 부터 뜬굼없이 베네치아 상대로 프랑스 신성로마 등 다 랑 연대해서리 다시 불러들이면서리 후반전이 시작하는거걸랑. 그러면서 로마 약탈 당하는거고.
계속 그 여진 인거야 저건. 레오 10세 교황 도. 돈이 마른겨. 핑게는 베드로 성당 신축이지만. 이때 저 브란덴부르크 주교냐 대주교냐 역시 얘도 선거하민서리 돈이 말랐걸랑. 내가 로마에 보낼 돈 여기서 좀 깎아주셈. 하는거고 루터가 이것에 반기를 든거로 시작하는겨 저게.
할 때 말이지. 어쨌거나 쟤들은 돈 걷으믄. 다 로렌초 처럼 걍 다 뿌리고 마는겨.
저게 쟤들 눈에는 정의의 사도들의 순수한 척 마음에는 개개끼들도 보통 개개끼가 아닌겨 이게.
시작은 저거여. 해서 저런 논쟁에 더하여. 얘가 95개 를 갖고 나온건. 인덜전스 그 각각을 자기 입장 정리해서리 문제다 한게 아니라. 제목만 갖고 디민겨. 인덜전스의 이러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문제가 있다. 란게 95개 논제야.
중심은 저 면죄부 란 거였어.
헌데 얘가 더해서리. 처음엔 감정으로 접근한거야 저게. 아 애들 더럽다 저 로마 교황청.의 저 유럽 전역의 카톨릭 교회들.
그러다가. 저걸 뒷받침하기 위한 논리들을 만드는거야.
그게. 저기 나오는 페이스 얼론. 이 굿워크 . 보다 낫다. 혼자 믿어라. 굿워크 란 이름으로 돈기부하며 좋은 일 한다고 면죄가 되서리 연옥기간 줄이고 더하여 구원되는게 아니다.
란 말을 얘가 만들어 내는거야. 이 페이쓰 얼론. faith alone 이 얘 주제야 특히나. 해서리 성서 번역을 그래서 이가 하는겨 게르만어로. 사도 바울.의 이야기에 없는 뜬굼 얼론. 을 삽입하고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마땅히 있어야 할 얼론. alone 을 넣는다 함시롱.
하면 페이쓰 얼론.을 주구장창 밀어야지. 그것도 아냐. . 뒤에가믄 다시. 페이쓰얼론 보다 굿워크 이 해대. 해서 사람들이 묻는겨. 너 왜 새꺄 말이 다 다른겨? 하니 화내 이가..
저때 참여한 인간이. 요한 에크. 카톨릭 진영은 저사람 혼자야.
루터.는 애들 델꼬 온겨.
그게 저 안드레아스 칼슈타트. 닥터 학위 준 세살 어린 선생.
처 처음의 에라스무스.가 보낸 편지 수신자.인 필리프 멜란히톤.
Philip Melanchthon[a] (born Philipp Schwartzerdt;[b] 16 February 1497 – 19 April 1560)
루터보다 어려. 14살 어린겨. 얘가 완전 루터교.의 교리를 만든애야. 루터와 함께. 얘가 루터 다음으로 루터파들에게 제일 중요한 애야.
Nicolaus von Amsdorf (German: Nikolaus von Amsdorf, 3 December 1483 – 14 May 1565) was a German Lutheran theologian and an early Protestant reformer.
니콜라우스 폰 암스도르프. 루터랑 동갑이야. 얘도 루터의 죽을때까지 동지야. 최초의 신성로마제국 땅에서의 루터파 주교야.루터랑 저 세명.이 루터의 프로테스탄트.의 교리 시작인겨. 저기서 칼슈타트.는 루터와 뒤에 결별하고 래티컬로 가는겨. 여기서 티나오는 이들이 아나뱁티스트. anabaptist 재침례교 가 나온겨.
침례교.란 뱁티스트. baptist 는 저 이후 백년 지나서 나오는거야. 재침례교.라해서 이게 더 늦은게 아니라. 루터 직후에 티나온 제일 래디칼 한 애들이 이 재침례교 마나뱁티스트 들이야.
여기에 더하여. 이런 분위기를 보고 더 새로운 인간들이 나와. 전혀 다른.
그 중 핵심인물이 토마스 뮌처.야 이인간이 제일 싕기한 인간이야. 이사람이 독일 농민전쟁의 사상을 제공하면서. 걍 장렬히 죽는거야. 루터는 이들을 악마 들 하는거고.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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