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esop's Fables, or the Aesopica, is a collection of fables credited to Aesop, a slave and storyteller believed to have lived in ancient Greece between 620 and 564 BCE.
이솝 우화. 이솝이 기원전 620년에서 전564년 사람. 이사람이 누군지 몰라.
The name of Aesop is as widely known as any that has come down from Graeco-Roman antiquity [yet] it is far from certain whether a historical Aesop ever existed ... in the latter part of the fifth century something like a coherent Aesop legend appears, and Samos seems to be its home.
이사람을 연구한 영국 고전학자.가 말하길. 이솝 이라는 이름은 벌써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 알려진 사람인데. 역사적으로도 실존했는가는 확실치 않다. 하튼간. 키오스 섬 밑에 사모스 섬이 집인거 같다.
가만보면 말야. 고대 그리스 어쩌고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문명은 다 저 이오니아야. 저 아나톨리아 해변과 섬이야. 고대 그리스는 아테네.가 아냐 그 중심이. 이름있는 모든 인간들은 다 저 이오니아야.
페이블.을 우화 라고 번역하는데.
저 이솝의 페이블은 다 동물 캐릭터걸랑. 주인공들이. 해서 페이블.을 영영 정의하길 동물 캐릭터를 빗댄 이야기 라 정의한 거일 뿐이야. 페이블 의 시작이자 고전중의 고전은 저 이솝 페이블 이걸랑.
Origin
Middle English: from Old French fable (noun), from Latin fabula ‘story’, from fari ‘speak’.
페이블은 파불라.야 이야기. 스토리.란건 그냥 생각나는 걸 이바구질 하는겨 생각나는데로. 그게 세이 say 야. 해서 사가. 하는거고. say 보다 조금 공들게 하는 말이 스피크. speak 야 다 게르만어야 이건.
禺,既是声旁也是形旁,表示手持面具。寓,金文(宀,房屋)(禺,手持面具娱乐),造字本义:古代贵族休闲娱乐的居所。篆文将金文字形中的手持面具写成。
우화 할때 우 라는건 집안에서 한가한 귀족가 오락 하는겨. 쉬면서 오락하는 집.이 따로 있는겨. 이걸 귀족이 자기 집 말고 딴집에 몸을 맡기다. 해서리 의탁하다. 더가서리 빗대다 비유하다. 로 진화하는겨. 해서리 빗대서 푼 이야기를 우화. 한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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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솝 우화 중에.
The Lion and the Mouse is one of Aesop's Fables, numbered 150 in the Perry Index.
사자와 쥐. 라는 이야기가 있어. 쥐가 사자한테 잡혔걸랑. 쥐가 사자 주제가 쪽팔리게 나따위를 먹냐 하니까 사자가 그렇긴 해. 하고 풀어줘. 나중 사자가 사람들이 놓은 덫에 잡혀. 쥐가 그 줄들을 갉아서리 끊어 풀어줘.
저 이솝이야기.는 천병희가 제대로 번역을 한게 있어. 딴 거 보지 말고 천병희 꺼만 봐.
The earliest mentioned collection was by Demetrius of Phalerum, an Athenian orator and statesman of the 4th century BCE, who compiled the fables into a set of ten books for the use of orators.
이솝이야기는 가장 오래전 본이. 팔레룸의 데메트리우스. 팔레룸.이 아테네에 있는 항구도시야. Demetrius of Phalerum (also Demetrius of Phaleron or Demetrius Phalereus; Greek: Δημήτριος ὁ Φαληρεύς; c. 350 – c. 280 BC[1]) 이사람이 묶어 편집한것이 가장 오래된 거고. 라틴어로 보이는건 이삼백년 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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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lus Gellius (c. 125 – after 180 AD) was a Latin author and grammarian, who was probably born and certainly brought up in Rome. He was educated in Athens, after which he returned to Rome. He is famous for his Attic Nights, a commonplace book, or compilation of notes on grammar, philosophy, history, antiquarianism, and other subjects, preserving fragments of the works of many authors who might otherwise be unknown today.
아울루스 겔리우스. 서기 125년 에 태어난걸로 추정. 로마 출생으로 보이고. 역시 그리스로 유학을 가. 로마 사람들은 대부분 유학을 아테네나 이오니아로 가. 로마는 다 그리스에 가서 배웠어. 왜냐믄 자기들이 무지한걸 알았걸랑. 이땅바닥에선 상상을 못해. 외국 유학가면 친미파 고 친일파 가 돼. 갔다온 치고 또 독어 영어 제대로 하는 도 없어. 걍 명찰만 유학파야.
이사람이 아틱 나이트스. 아티카의 밤들. 이란 책 한권을 남겨. 앗티카. 가 아테네 도시국가들 있는 반도 이름이야.
The earliest surviving account of the episode is found in Aulus Gellius's 2nd century Attic Nights.[2] The author relates there a story told by Apion in his lost work Aegyptiacorum (Wonders of Egypt), the events of which Apion claimed to have personally witnessed in Rome. In this version, Androclus (going by the Latin variation of the name), is a runaway slave of a former Roman consul administering a part of Africa. He takes shelter in a cave, which turns out to be the den of a wounded lion, from whose paw he removes a large thorn. In gratitude, the lion becomes tame towards him and henceforward shares his catch with the slave.
After three years, Androclus craves a return to civilization but is soon imprisoned as a fugitive slave and sent to Rome. There he is condemned to be devoured by wild animals in the Circus Maximus in the presence of an emperor who is named in the account as Gaius Caesar, presumably Caligula.[3] The most imposing of the beasts turns out to be the same lion, which again displays its affection toward Androclus. After questioning him, the emperor pardons the slave in recognition of this testimony to the power of friendship, and he is left in possession of the lion. Apion, who claimed to have been a spectator on this occasion, is then quoted as relating:
- "Afterwards we used to see Androclus with the lion attached to a slender leash, making the rounds of the tabernae throughout the city; Androclus was given money, the lion was sprinkled with flowers, and everyone who met them anywhere exclaimed, 'This is the lion, a man's friend; this is the man, a lion's doctor'".[4]
The story was repeated a century later by Claudius Aelianus in his work "On the Nature of Animals".[5]
안드로클레스 이야기(라틴 안드로클루스). 이솝이야기나 저 아티카의 밤들.이나 변사 구술사가 이야기를 하는겨. 여기선 아피온. apion 이란 사람이 말해. 아피온 이 아울루스 겔리우스 가 변신한거지.
옛날 이야기를 하는거야 이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라. 백년 전 이야길 하는겨. 칼리굴라 시절 같아. 안드로클레스.가 고대로마의 아프리카 총독이었던 전직 콘술. 프로콘술의 노예였는데 도망을 간거지. 어느 굴로 들어가 숨은겨. 헌데 그 굴에 사자가 낑낑 대고 있던거야. 가만 보니 발바닥인지 발톱인지에 가시가 큰게 박혀서리 낑 낑 하는거지. 안드로클레스 가 이걸 빼내주고 사자가 말을 잘 듣는겨. 여기서 같이 산거야.
삼년을 같이 살았나봐. 그리곤. 다시 문명으로 들어간겨. 이젠 잊혀졌겄지. 추노 안하겄지. 헌데 로마는 기록 하는 날리지 메니지먼트 시스템의 로마야. 이거 도망간 노예구나 하곤 로마로 잡혀간거지. 키르쿠스 막시무스. 큰 서커스장. 길죽하게 지은 벤허 경기장이야. 영화 벤허의 키르쿠스.는 예루살렘에서 빌라도 앞에서 하는거고.
저기서 맹수한테 먹히는 형벌인거지. 사람들이 구경하는거고. 헌데. 그 맹수가 같이 살았던 사자야. 오히려 사자가 좋아서리 머리만져줘 하는겨. 칼리굴라가 둘이 뭔사이였냐 .
나중에 우리들은. 안드로클레스가 사자를 얇은 가죽으로 끄는 듯 하민서리 로마 시내 번화가를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안드로클레스는 돈을 막막 받았고 그 사자는 꽃세례를 받았다. 모든 이들은 그 둘을 보면 외쳤다. 이게 그 사자래. 사람의 친구래. 이 사람이 그 사람이래. 사자의 의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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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en and wash drawing by Baldassare Peruzzi, 1530s
Jerome (/dʒəˈroʊm/; Latin: 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Greek: Εὐσέβιος Σωφρόνιος Ἱερώνυμος; c. 27 March 347 – 30 September 420) was a priest, confessor, theologian, and historian. He was born at Stridon, a village near Emona on the border of Dalmatia and Pannonia.[3][4][5] He is best known for his translation of most of the Bible into Latin (the translation that became known as the Vulgate), and his commentaries on the Gospels. His list of writings is extensive
성 제롬. 은 서기 4백년을 지나는 사람이야. 스트리돈. 출생. 달마티아 와 판노니아 경계. 지금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사 사람이야. 서로마가 망하기 직전후의 시대. 위기의 삼세기 이후의 시대는 저기 다뉴브강 줄기 사람들의 시대야.
제롬이 사자 발의 가시 뽑아낸 이야기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쨌거나 저기서 갖고왔는지 아닌지. 저쨋거나 는 중요한게 아니라 말야.
이 제롬이.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 성경.을 만든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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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ulgate (/ˈvʌlɡeɪt,
만들었다기 보다는 이전의 성경들을 당시의 현대 라틴어로 바꾼거일 뿐이지. 이사람이 총 감수자 역할을 한거지. 불가르 라틴어. 이전 썰. 이전의 라틴어를 카이사르 키케로 등의 정통 라틴어 해서리 클래식 라틴어. 하는거고. 특히나 성경에 쓰여진 라틴어는 베투스 라티나 한겨. 올드 라틴. 이걸 시대에 맞게 사람들이 지금 쓰는 common latin 인 불가르 라틴어로 쓴거야.
해서리 이사람 이전의 라틴어 성경인 베투스 라틴어 로 쓰여진 자료는 흔치 않아. 코덱스로 부분부분 남아있는겨 이게.
중세에 말야. 저 불가르 라틴어.로 쓰여진 걸로 예배를 하면서리 사제들이 설교를 하는거걸랑.
불가르 라틴어가. 제롬 시대에. 고대 로마 후기에야 불가르.라는 카먼. 이라는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쓰는 현대어 라지만 말야. 점점 백년이 흐르고 이백년이 흐르고 하민서리. 저 불가르 라틴어도 올드 라틴어가 되는겨.
저게 먼말인지 점점 모르는거야.
또한 말이지. 계속 썰하는거지만. 저 라틴어를 재료로. 갈리아인들과 게르만인들이 자기들 지역색에서 자기들만의 다이얼렉트. 방언 사투리. 라 썩은 번역 하지만 여하튼 자기들 지역말들이 독특하게 티나오는 시대야. 그게 라틴어를 다 품은 게르만어고 프랜취고 올드잉글리쉬고 로망스 스페니쉬 등등 막막 지들만의 언어들이 티나오면서 이걸 글자로 쓰면서리 자기들 시 와 이야기 를 쓰는 시대가 서기 천년 전후의 시대야.
이제는 말이지. 라틴어로 쓰여진 저 불가타 라틴어.의 성경의 그 글자들을 말로 썰하면.
사람들이 알아듣겠니 그걸.
루터 이전에도 이미. 저 알프스 너머는. 자기들만의 언어로. 성경을 이야기 하는겨.
루터 이전에도. 게르만어 프랑스어 잉글리쉬 스페니쉬 로 예배를 하민서리 성경을 인용할꺼걸랑.
저기 뿐이갔어? 보헤미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헝가리 도 자기들 언어로 썰푸는겨. 자기들 만의 언어로 된 성경이 있었던거야. 이게 표준화가 안되었을 뿐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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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타 성경.은 구약과 신약 을 모두 불가르 라틴어로 번역을 한거야.
구약 이라는 올드 테스트먼트.는 히브리어 로 써진거야 시작이. 이건 이전의 히놈 골짜기의 은돌돌말이 에 예배식에 쓰인 민수기 가 인용이 돼. 기원전 6백년이야. 파편적으로 저때부터 구약이 글자로 써져 있어
저 흩어진 타나크 들을 나중에 합하는겨.
히브리 성경. 이라는 건 유대교인 유대인들의 성경이야. 토라 네빔 케투빔.으로 되어있어.
올드 테스트먼트 라는 구약. 은 로마 카톨릭과 오소독시가 편집한거야.
The books that comprise the Old Testament canon, as well as their order and names, differ between Christian denominations. The Catholiccanon comprises 46 books, and the canons of the Eastern Orthodoxand Oriental Orthodox Churches comprise up to 51 books[3] and the most common Protestant canon comprises 39 books
카톨릭은 46개. 오소독시는 51개. 프로테스탄트.는 39개. 를 지들 구약 이라면서 넣은거야.
타나크는 구약의 부분집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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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은 말야. 시작이. 그리스어야. 처음 글이 그리스어야 이게.
The New Testament is a collection of Christian works written in the common (Koine) Greek language of the first century, at different times by various writers, and the modern consensus is that it provides important evidence regarding Judaism in the first century AD.[1] In almost all Christian traditions today, the New Testament consists of 27 books. The canon or list of the Books of the New Testament is not found anywhere in any book of the Bible. It was the united Catholic Church which defined the 27 Books canon.
코이네 그리스어. 코이네. koine 가 라틴어의 불가르 vulgar 와 같아. 고대그리스어의 진화된 당시 현대 그리스 어야. 정식 발음은 코이네이. 코이니 머 이렇게 읽어라 하는데 걍 코이네 해.
이것도 말이야.
저렇게 가스펠과. 행적들과 서신들.과 끝에 넣을까 말까 계시록을 쑤셔넣었지만. 저게 서기 백년 전후부터 다 각각이 코덱스로 존재한 것일 뿐이야.
이걸 묶은거야 new testament 신약이란 이름으로.
The first time we find the complete list of the 27 books of the NT is in Athanasius, eastern Catholic bishop of the IV Century. The first time that church councils gave us this same list was in the councils of Hippo (393) and Carthage (397) in north Africqa and the pope Innocent I ratified the same canon in 405, but it is probable that a Council in Rome in 382 under pope Damasus gave the same list first. These councils provided also the Canon of the Old Testament, which included the so-called apocryphal books [2].
헷갈리믄 안되는게. 저건 코이네 그리스어. 가 시작이야. 즉 이건 엄격히 말하면 그리스로 번역을 한게 아냐. 그리스어로 써진겨 처음에. 아람어로 쓰여진 걸 그리스어로 번역을 한게 아냐.
모든 27개의 것들이. 시작이 그리스어야. 코이네 그리스어. 4세기에야 편집을 시작한겨. 컬렉션. 모으자. 그것도 사세기 말. 즉 서기 400년에야 모은겨 저걸.
다음. 번역을 보면
Samaritan Torah Dead Sea scrolls Masoretic Text Targumim Peshitta Septuagint Vulgate Gothic Bible Vetus Latina Luther Bible English Bibles
구약에 해당하는건. 사라리탄 토라. 사해 돌돌말이들. 마소레틱 텍스트. 이 마소레틱.은
The Masoretic[1] Text (MT or 𝕸) is the authoritative Hebrew and Aramaic text of the Tanakh for Rabbinic Judaism. It is not the original text (Urtext) of the Hebrew Bible. It was primarily copied, edited and distributed by a group of Jews known as the Masoretes between the 7th and 10th centuries CE. The oldest extant manuscripts date from around the 9th century.[2] The Aleppo Codex (once the oldest-known complete copy but now missing the Torah) dates from the 10th century. The Masoretic Text defines the Jewish canon and its precise letter-text, with its vocalization and accentuation known as the Masorah.
권위을 부여하는데. 이건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되어있는 타나크.야.
타나크.와 올드 테스트먼트.란 구약의 차이는. 분량 자체라기 보다는. 즉 타나크에서 멀 더 유난히 덧대어 붙인게 아니라. 저걸 편집을 좀 세분화 한게 구약이야. 편집력의 차이야 이건. 여기에 히브리 성경 이후의 이야기가 들어가있는게 구약이라는 올드 테스트먼트야
마소레틱 텍스트는 서기 7세기 에서 10세기. 잘 알려진 알레포 코덱스는 10세기로 보인다.
셉투아긴트. 라는 건 이전 썰. 기원전 3세기.의 타나크 를 이집트의 그리스인간인 사트랍 총독이 번역해 달라한겨. 70인 역. 이건 그리스 어로 번역을 한거야. 유대인들이.
저런걸 다 모아서리. 불가타 성경.으로 제롬이 라틴어로 다 합친거고. 즉 이전에 베투스 라틴어. 올드 라틴어로 된 구약이 있었어. 제롬 이 그리스어로 된 걸 새로 보고 번역한게 아냐. 이전 라틴어를 당시의 현대 라틴어로 교정만 했을 뿐이야. 거기서 지 맘에 안드는 걸 어느정도 확 수정한지는 알수 없어.
다시 정리하면.
신약은 코이네 그리스어.로 되어있는걸 서기 400년 직전후에야 27개로 다 모아서리 편집을 했고. 즉 이전에 그 각각이 올드 라틴어로 번역이 된게 돌아다닌거야. 이게 웨스턴 텍스트 타입 하는겨. 비잔틴 텍스트 타입은 코이네 그리스어가 주류고. 또한 알렉산드로스 텍스트 타입.은 이집트 쪽이야 여기도 콥틱어도 있고 물론 그리스어도 있는거고.
저게 다들 가스펠. 행전. 서신 들이. 합쳐진게 아니라 각각 하나씩 코덱스로만 남은겨 사람들이 전체를 다 보는게 아니라. 서기 100년 전후부터. 하나 하나 만 서로들 돌려가면서 보는겨. 그것도 글자 아는 몇몇 만. 대부분 글자를 몰라. 삼백년 이후나 다 합쳐진 것을 볼 수 있기 시작하는거야 신약은.
구약은 좀 달라. 70인역 은 그리스어로 된 타나크야. 좀 모아져 있어 이건. 이거 등등 을 포함해서 구약을 만든거고. 이것도 저 신약 다 모으고 구약 다 모아서리 제롬의 불가타 성경 으로 집대성 한게 서기 400년 전후야.
The first five books – Genesis, Exodus, Leviticus, book of Numbers and Deuteronomy – reached their present form in the Persian period (538–332 BC), and their authors were the elite of exilic returnees who controlled the Temple at that time.[8] The books of Joshua, Judges, Samuel and Kings follow, forming a history of Israel from the Conquest of Canaan to the Siege of Jerusalem c. 587 BC. There is a broad consensus among scholars that these originated as a single work (the so-called "Deuteronomistic history") during the Babylonian exile of the 6th century BC.[9] The two Books of Chronicles cover much the same material as the Pentateuch and Deuteronomistic history and probably date from the 4th century BC.[10] Chronicles, and Ezra–Nehemiah, were probably finished during the 3rd century BC.[11] Catholic and Orthodox Old Testaments contain two (Catholic Old Testament) to four (Orthodox) Books of Maccabees, written in the 2nd and 1st centuries BC.
These history books make up around half the total content of the Old Testament. Of the remainder, the books of the various prophets – Isaiah, Jeremiah, Ezekiel, Daniel and the twelve "minor prophets" – were written between the 8th and 6th centuries BC, with the exceptions of Jonah and Daniel, which were written much later.[12] The "wisdom" books – Job, Proverbs, Ecclesiastes, Psalms, Song of Solomon – have various dates: Proverbs possibly was completed by the Hellenistic time (332-198 BC), though containing much older material as well; Job completed by the 6th century BC; Ecclesiastes by the 3rd century BC.[13]
저 구약은 히브리어로 된 것을 그리스어로. 이걸 다시 라틴어로 콥틱어로 또는 소수 다른 언어들로도 저걸 번역해서 봤어.
신약은 그리스어로 된 것을 라틴어로. 그리고 소수 다른 언어들로도 번역해서 봐.
저걸 다 합한게
불가타 성경.이 그야말로 제대로 모아진 신약 구약 인거지.
물론 오소독시인 오른쪽은 불가타 성경이 아니라. 그리스어로 모은 구약신약 성경을 보는거지. 주로.
그래도 말이야. 10세기 이전까지 발견된 코덱스 들을 보면. 대게가 파편들이야. 없어진것 보다는 저들중에서 하나의 가스펠. 복음에서 또는 서신에서 제일 마음에 와닿는 몇 장만 쓴거야.
일부만 쓴걸 돌려보는겨 기억에 남는. 그리고 경구집이야. 좋은 말만 나름 써있는 것만. 쓴걸 돌아가며 보는겨. 그것도 읽을 줄 아는 사람만.
초기엔. 저것 자체가 엄청난 부적이자 보물이야. 비서야. 저것도 함부로 못 취하는겨.
이게 점점 퍼져가는거야 사람들이게. 자료들이.
잔다르크.는 글을 못읽어. 대부분 민들은 글을 읽을 줄 몰라. 그 인구의 구십퍼는.
해서리. 병인양요때 쥐베르.가 쓴 글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하나는 쪽팔려라 좀. 얘들은 집안에 책들이 많은거 보믄 다들 글을 읽을 줄 아나보다. 우리네는 글 읽는 이들이 몇이냐 하는거고.
우리네는 진짜 말야. 저 언어에 대한 잠재력은 최고야. 헌데 이걸 유교에 쩔은 꼰대들이 완전히 지들만의 사상 이념을 심느라고 오히려 더 바보로 만드는거야. 미친거야 이들.
인쇄술로 오히려 지들만의 이념을 더 쎄게심어. 저따위 인쇄술은 없느니 보다 못하는겨 이게.
한글이 우리네만 배우기 쉬운겨. 우리네만 배우기 쉬어. 외국인들에겐 외계어야.
이유는. 글자는 말의 산물일 뿐이야. 우리말을 우리가 하기때문에 한글이 쉬운겨. 말이 중요한겨 글자가 아니라. 그게 랭귀지야. 저 엄청난 유산의 우리말을 이 들이 자기들 이념 심는데만 활용하는거야. 이걸 지금도 고대로 이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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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말이야. 이제 중세야.
라틴어가 불가르 라틴어간에 . 이제 이 언어도 고물이 된겨 이게. 안써.
알프스 넘어서 각각이 자기들 말을 만들어가고 자기들 글자를 만드는 시대가 되었어.
예배가 점점 어려워져. 불가타 성경의 글은. 갑골문이 된거야 이미.
사제들이 하소연 하기 시작하는거야.
또는.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의 말들을 자기들만의 말들로 번역해서리 자기 사제들 각각이 설교를 하고 인용을 하게 된거야 수백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말이지. 서로들 그땅의 올드프렌취. 올드 잉글리쉬. 올드 게르만 등등을 써가면서 성경을 말하는거야.
그럴 수 밖에 없어.
라틴어는 귀족만 아는거야 점점. 직접 배운 애들만 알 수 밖에 없어.
예배를 귀족에게만 하는게 아냐. 민들에게 하는거야. 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그 사람들의 언어를 쓸 수 밖에 없어.
이미 루터 이전에. 각각들의 성경이 또한. 파편적으로 경구집으로 다들 써서 설교를 한거야.
Bible translations in the Middle Ages discussions are rare in contrast to Late Antiquity, when the Bibles available to most Christians were in the local vernacular. In a process seen in many other religions, as languages changed, and in Western Europe languages with no tradition of being written down became dominant, the prevailing vernacular translations remained in place, despite gradually becoming sacred languages, incomprehensible to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in many places. In Western Europe, the Latin Vulgate, itself originally a translation into the vernacular, was the standard text of the Bible, and full or partial translations into a vernacular language were uncommon until the Late Middle Ages and the Early Modern Period.
우리가 저 질문을 상대적으로 안한거야. 갑툭튀 루터야? 갑툭튀 루터 성경이고 틴들.이야? 아니 그럼 불가타 성경 서기 400년 부터 루터 1500년 까지 천년은 그럼 다들 라틴어랑 그리스어로만 카톨릭과 오소독시가 사용했다는거야? 예배를 그러면 라틴어와 그리스어로만 한겨? 그게 말이돼? 민들이 멀 안다고. 사람들이 멀 안다고 그따위 말 들으러 교회를 갔대?
저게 말이 안된다는겨. 헌데 정작 이 문제에 대한 디스커션들. 토론들이 적다. 하는겨.
레이트 앤티퀴티. 후기 고대. 이게 요즘 저들 유럽애들이 쓰는 단어야.
Generally, it can be thought of as from the end of the Roman Empire's Crisis of the Third Century (c. 235 – 284) to, in the East, the Muslim conquests in the mid-7th century.
위기의 로마 삼세기에서 무함마드 나오는 서기 7백년 까지로 본다고 하지만. 저게 무함마드가 문제가 아니라. 이 중세라는건 서기 5백년 에서 1500년. 하고 딱 나눠서 보는게 문제란거야 저게. 갑자기 로마가 없어진거야. 로마 를 논하지 않는 중세란건 거짓말이고 무식한거야 그건.
쉼
이사람들은. 후기 고대. 다음에 미들 에이지 해야 한다는겨. 후기 고대.는 로마가 위험해지기 부터에서 로마의 색깔이 다 지워질때즘. 까지로 보는거야 저게. 그리고 나서의 중세야. 미들에이지는 서기 8백년 부터야. 이때 로마 라틴어 를 다 담고 그 위의 다른 자기들 만의 언어들이 나오는 시기. 가 미들 에이지야.
무함마드.도 결국 로마 야. 비잔틴 로마를 습한 아이가 무함마드야. 이슬람이 지금 후진건. 비잔틴 만을 습해서 후진겨. 카이사르의 로마를 얘들은 접하지 않았어. 그나마 비잔틴을 습한겨. 무함마드는 색깔이 다한 로마.를 취하고 이으면서 이슬람으로 가는거야. 그게 칠세기 라는거야.
미들 에이지.는 로마와 겹쳐야 한다는겨 그 싸이키는. 그걸 이어서리 딛고 나서의 미들에이지야.
저때는 vernacular . 버네큘러. 각각의 지방들의 자기들만의 언어로 성서를 접했다는겨. 저게 당연한 말이야. 저건 구어야. 각각의 자기들 말이야. 저걸 단지 사투리. 방언 하미 하급인양 느끼는 식으로 쓰는게 아냐 저게. 이땅바닥에 표준아 해대민서리 사투리 쓰지 맙세 방언 무시칸겨 함시롱. 애들이 참 허섭한건데 저게.
이미 자기들만의 언어로 성서를 접하는 시대야. 그게 서기 8백년이야 이제. 저들이 가름 하는 선의 이유는 단 하나. 라틴어. 불가르 라틴어가 사라지면서. 그걸 담은 자기들만의 버내큘러. 자기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겨.
저때 게르만과 게일이. 세상을 주도하는거야. 저때부터 천년 이상을 주도하는거야. 앞으로 천년 수천년은 쟤들 세상이야. 저걸 다 담지 않으면 수천년을 쟤들 뒤꽁무니나 쪼차댕기면서 양키 일본 열폭질에 쪄든 남탓 하는 개 들로만 사는거지.
저때 시작한거야 게르만과 켈트는.
저때 까지는. 조오오오온나게 무식한 들이었어 쟤들이.
꾸역꾸역 . 망한 로마 가 나간 땅에서. 그 로마의 문명을 고개 수그리고 다 받아서 배우면서. 다 익히고서리. 자기들 만의 언어로 사유를 시작한거야 저게.
In a process seen in many other religions, as languages changed, and in Western Europe languages with no tradition of being written down became dominant, the prevailing vernacular translations remained in place, despite gradually becoming sacred languages, incomprehensible to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in many places
언어는. 변하는거야. 종교에서 뿐만이 아니라. 다 변하는거야 시대가 흐르면서. 랭귀지가 스피크 할 뿐이야.
생각을 해봐. 게르만애들 켈트애들이 교회를 가. 사제가 로마어로 설교하면 그게 먼말인지 알겠어 처음에? 사제도 저들 버내큘러. 저들 말을 배울 수 밖에 없어. 구한말에 선교사들이 우리말을 배워야해. 선교사가 영어로 씨부리겠니. 우리말을 배우고. 쟤들이 번역을 한겨 성경은. 일본들은 지들이 번역을 햇어. 니덜은 일본들의 발톱에 털에 붙은 먼지 수준도 안된느겨 이 일본에 열폭질하는
사람들도 로마어를 찔끔 배우기도 하겄지. 사제가 한 저 당시 게르만 갈리아 말들로 어설프게 옮겨진 말들이 자기들 마음에 남는겨. 쿠리오스라는 여호아의 이야기. 예수의 행적 사도 바울 베드로 이야기 중 가슴에 남는 몇구절을 라틴어와 자기들 말들이 뒤섞인 체로 가서 기도 하는겨.
저러면서 점점. 교회의 예배식의 말들이 종교언어가 변하는겨. 점점 그 지방의 버네큘러 구어로. 드문드문 사제는 자기가 말 하고 픈 것만 따로 그 지방의 언어로 번역해서리 사람들에게 카르타 쪼가리 양피지 쪼가리로 나눠주기도 하는겨. 부적이야 그건.
교회는 이미지로 조각이되는겨. 말보다는 조각과 그림이야. 사람들은 그 앞에서 기도를 하는겨. 그러면서 저 사제의 진짜 말을 알고 싶어. 라틴어를 배우는겨. 또한 그걸 자기들 말로 바꾸는겨.
그래도 상당수의 민들에겐. 대부분의 지역에선. 저 전부의 성경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In Western Europe, the Latin Vulgate, itself originally a translation into the vernacular, was the standard text of the Bible, and full or partial translations into a vernacular language were uncommon until the Late Middle Ages and the Early Modern Period.
서유럽의 경우. 불가르 라틴어로 된 성경이 각각의 구어들로 찔끔 찔끔 번역이 되었다. 그런데 말이지. 저 전체를 또는 마가 누가 요한 등 각각 하나라도. 저들의 언어로 스탠다드로. 즉 다들 이게 제대로된 번역이다. 라고 여겨지는 것은. 중세 후기 까지도. 근대 초기까지도 드물었따. 저게 서기 1500년이야. 중세 후기. 근대 초기.
The books of the Bible were not originally written in Latin. The Old Testament was written in Hebrew (with some parts in Greek and Aramaic[2]) and the New Testament in Greek. The Septuagint, still used in the Greek Orthodox church, is a Jewish translation of the Old Testament into Koine Greek completed in the 1st century BC in Alexandriafor Jews who spoke Greek as their primary language.
The whole Christian Bible was therefore available in Koine Greek by about 100 AD; so were numerous apocryphal Gospels. Deciding which books should be included in the Biblical canon took about another two centuries; some differences remain between churches to the present day. The Septuagint also included some books that are not in the Hebrew Bible, which the church accepted due to their use at the time of Christ and because Christ quoted directly from and/or referenced these books in the Gospels of the New Testament.
성서의 책들은 원래 라틴어가 아니다. 구약은 히브리어다. 일부 그리스어와 아람어가 섞였지만. 신약은 그리스어다. 셉투아긴트 라는 70인역은 여전히 그리스 정교회에서 사용되었지만, 유대인들이 구약을 코이네 그리스어로 번역한것일 뿐이다. 이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기원전 1세기에야 완성되었다.
이게 먼말이냐면. 셉투아긴트. 는 타나크야 원전이. 그 위에 덧붙여진 이야기들을 더해서 완전한 구약 컬렉션으로 된 그리스어 번역은 백여년 지난 기원전 1세기에야 제대로된 구약 컬렉션 번역이 되엇다는 거지. 당시 유대인들의 제1언어는 그리스어야. 히브리어는 사라졌어. 종교언어야 이건.
모든 기독 성경은 그래서 코이네 그리스어로 보는거다. 서기 100년 까지는.
나머지 저자를 알길없는 많은 복음서들 역시나 코이네 그리스어다. 제대로 된 기독성서집. 구약 신약의 총체.를 결정하는 시기는 다시 2백년이 지나고서였다. 물론 지금까지 이에 대해서 다른 시선들도 있다. 셉투아긴트는 또한 히브리 성경. 즉 타나크에 있지 않은 것들도 있긴 하다. 헌데 이것 자체가 구약이 아니걸랑.
The Bible was translated into various languages in late antiquity; the most important of these translations are those in the Syriac dialect of Aramaic (including the Peshitta and the Diatessaron gospel harmony), the Ge'ez language of Ethiopia, and, in Western Europe, Latin. The earliest Latin translations are collectively known as the Vetus Latina, but in the late fourth century, Jerome re-translated the Hebrew and Greek texts into the normal vernacular Latin of his day, in a version known as the Vulgate (Biblia vulgata) (meaning "common version", in the sense of "popular"). Jerome's translation gradually replaced most of the older Latin texts, and also gradually ceased to be a vernacular version as the Latin language developed and divided. The earliest surviving complete manuscript of the entire Latin Bible is the Codex Amiatinus, produced in eighth century England at the double monastery of Wearmouth-Jarrow. By the end of late antiquity the Bible was therefore available and used in all the major written languages then spoken by Christians.
성경은 후기 고대. 즉 서기 8백년 직전까지.는 다양한 언어들로 번역되었다. 페시타 디아테사론 같은 아람의 시리아 언어들로도 번역이 되었다. 에티오피아의 게즈어. 서유럽의 라틴어는 물론이고. 초기 라틴어 번역은 베투스 라틴어 라는 올드 라틴어다. 그러다가 4세기 후반. 제롬 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텍스트들을 그 당시의 현대화된 표준적인 당시의 구어로 재번역 하였다. 이걸 벌게이트. 불가타 성경 이라 한다. 비블리아 불가타. 공통의 버전. 우리 모두의 버전. 민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버전. 제롬의 번역은 점점 그 이전의 안쓰는 올드 라틴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헌데 말이다. 이조차도 점점 시대가 지나면서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되지 못한거다 이게. 라틴어가 발전하고 나뉘면서 점점 이게 지금 게르만어 프랑스어 덧치어로 진화되걸랑. 그러면서 라틴어도 점점 불가르 라틴어 이상의 다른 라틴어가 나오는거야. 해서리
The Codex Amiatinus, is the earliest surviving complete manuscript of the Latin Vulgate version[1] of the Christian Bible. It was produced around 700 C.E. in the north-east of England,
코덱스 아미타티누스. 가 서기 700년에 잉글랜드 북동쪽에서 쓰여진 걸로 보이는데. 이게 제롬의 불가타 성경이 나온 후 3백년 지난거야. 즉 저 당시 라틴어야 이게. 제롬의 불가르 라틴어도 시대가 지나서 한물간겨. 저 시대에 맞는 라틴어로 따로 쓴거야 성경을. ㅋㅋㅋ.
아직은 자기들 켈트 게르만 어로 된 글이 나올 때가 아니야 저때는.
올드 잉글뤼쉬로 된 베오울프.는 서기 천년 직전에야 나오는겨.
프랑스어로 된 율라리아 찬송가는 서기 880년에야 나와
독일어로 된 최초의 시.인 힐더브란트의 노래는 서기 830년에야 나와
스페인어로 된 최초의 시인 엘시드의 노래는 서기 1100년이 지나고야 나와.
아직은 자기들 언어를 제대로 만들어서 작품으로 나올 때가 아냐.
Meanwhile, Latin was evolving into new distinct regional forms, the early versions of the Romance languages, for which new translations eventually became necessary. However, the Vulgate remained the authoritative text, used universally in the West for scholarship and the liturgysince the early development of the Romance languages had not come to full fruition, matching its continued use for other purposes such as religious literature and most secular books and documents. In the early Middle Ages, anyone who could read at all could often read Latin, even in Anglo-SaxonEngland, where writing in the vernacular (Old English) was more common than elsewhere. A number of pre-reformation Old English Bible translationssurvive, as do many instances of glosses in the vernacular, especially in the Gospels and the Psalms.[4] Over time, biblical translations and adaptations were produced both within and outside the church, some as personal copies for religious or lay nobility, others for liturgical or pedagogical purposes.[5][6]
라틴어가 각 지역에서 발전해. 모양이 달라져. 이게 로망스 언어들의 초기 버젼이야. 새로운 번역물이 필요한겨. 불가타 성경은 그래도 권위있걸랑. 예배에서도 이 불가타 성경의 불가르 라틴어로 진행을 해. 아직 저들만의 언어는 무르익지 않았어. 단지 말야. 찔끔 찔금 예배할때 한두단어. 또는 세속적 이야기에 자기들 만의 언어를 써먹기 시작하는거지. 저건 중세 초기 이야기야 지금. 민족 대이동해서리 막 이민족들이 서로마 점령해서리 정착하민서리 서로마 망하고 나서의 이야기야. 서기 천년 까지의 이야기야 저게. 앵글로 섹슨도 잉글랜드에서 자기들만의 버내큘러. 올드 잉글리쉬가 점점 보편화 돼. 그러면서 글라시스. 경구집들로 . 경구들 좋은 말들만 모아서리 자기들 올드 잉글리쉬로 쓰는겨. 특히나 복음서와 시편들에 좋고 쉬운 말들이 많아. 여기 번역 파편들이 많다는거지. 그러면서 점점 찔끔 찔끔 자기들 언어를 쓰는거야 예배에서도.
이 부분은. 나름 재밌어서리. 그리고 중요해서리. 이런 이야기가 한글로 된게 단 하나도 없어. 물론 한글검색을 안해봐서리 몰르겠으나. 없을거야 .
해서 저걸 저리 번역질 하는건데. 저게 재밌는겨. 저게 이해가 되어야. 저때의 쟤들 이야기가 제대로 스미걸랑.
그럼 교회 본부인 교황 입장은 어드럴까.
사람들이 말야. 일부의 사례만 들고. 마치 저딴 자기들만의 번역 질로 예배하고 성서 읽는게 당시 사탄 어쩌고 . 교황은 걍 인두겁을 쓴 악마 이미지 밖에 없걸랑. 애들이 배우는게 다 고따위 시선으로만 가르치는겨 이땅바닥 개 들은.
아 난 정말 이땅바닥에서. 미디어에서 말글팔이하는 들 모~~두 경멸 혐오 멸시 하는데 말야.
전혀 그렇지 않아. 쟤들도 그딴을 왜 막겠니. 민들에게. 라틴어만 배우고. 불가타 성경만 보라. 하는 을 해댔겠니. 교황애들도 걍 평범한 사람야. 아무리 개념이 없어도 그따위 을 했겠니 그래 그게.
Church attitudes toward written translations and the use of the vernacular in Mass varied by the translation, the date and location. For example, whereas the acts of Saint-Gall contain a reference to the use of a vernacular interpreter in Mass as early as the seventh century, and the 813 Council of Tours acknowledge the need for translation and encouraged such,[7] in 1079, Duke Vratislaus II of Bohemia asked Pope Gregory VII for permission to use Old Church Slavonic translations of the liturgy, to which Gregory did not consent.[8]
교회의 입장. 각 지역마다의 언어로 미사에서 번역되어 쓰이는 것에 관심을 갖았다. 그럴 수 밖에 없고. 일례로 성 갈루스의 이야기들이 7세기에 한 지방의 언어로 미사에서 사용되었다. 813년에 투르 공의회에서는 이런 번역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오히려 부추겼다. 더 그 지방의 언어로 번역하라고. 1079년엔 보헤미아의 브라티슬라우스 2세 공작이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에게 예배식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하는걸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헌데 이에대해선 동의해주지 않았다.
In the twelfth and thirteenth centuries, demand for vernacular translations came from groups outside the Roman Catholic Church such as the Waldensians, Paterines, and Cathars. This was probably related to the increased urbanization of the twelfth-century, as well as increased literacy among educated urban populations.[9][10]
12세기 13세기. 프랑스 남부 리옹의 왈도파 왈데니지언들. 이태리 북부 파타리아들. 카타르파들 같은 로마 카톨릭 밖의 이른바 초기 종교개혁진영의 그룹들에서 각 지역의 언어로 된 번역들 요구가 있었다. 이건 아마도 12세기에 급격히 도시화되는 것. 더하여 교육을 받은 도시민들 사이의 글에 대한 이해가 급증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A well-known group of letters from Pope Innocent III to the diocese of Metz, where the Waldensians were active, is sometimes taken by post-reformation scholars as evidence that Bible translations were forbidden by the church, especially since Innocent's first letter was later incorporated into canon law.[11]
인노켄티우스 3세가 프랑스 북동부 메스 교구. 이 교구는 왈도파들이 활발했는데. 잘 알려진 편지들이지만. 종교개혁 후기의 학자들에게 이 편지들은 교회가 성서 번역을 금지했다고 증거로 디미는 것으로 유명한대. 특히나 이편지들 중 첫번째는 나중 교회법에 포함되었다 해서리 카톨릭 나뻐 하민서리 들 신나했지만.
Margaret Deanesly's study of this matter in 1920 was influential in maintaining this notion for many years, but later scholars have challenged its conclusions. Leonard Boyle has argued that, on the contrary, Innocent was not particularly concerned with the translations, but rather with their use by unauthorized and uneducated preachers.[12] "There is not in fact the slightest hint that Innocent ever spoke in any way, hypothetically or not, of suppressing the translations at all."[13] The thirteenth-century chronicler Alberic of Trois Fontaines does say that translations were burned in Metz in 1200, and Deanesly understood this to mean it was ordered by Innocent in his letters from the previous year, but Boyle pointed out that nowhere in the letters did Innocent actually prohibit the translations.[14] While the documents are inconclusive about the fate of the specific translations in question and their users, Innocent’s general remarks suggest a rather permissive attitude toward translations and vernacular commentaries provided that they are produced and used within the scope of Christian teachings or with church oversight.
마가렛 딘슬리.의 이 문제에 대한 연구. 1920년. 은 저러한 관념을 심는데 영향을 주었다. 즉 교회가 다른 언어들로 된 번역을 금지질 했다는 주장. 그러나 뒤의 학자들은 그런 결론에 대해 회의적이다. 레오나르드 보일.은 말하길. 그따위 과 반대로 인노켄티우스는 그런 번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정규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실력도 없는 설교사들이 막막 번역 하는 것에 신경이 쓰였을 뿐.
이노켄티우스가 번역에 대해서 탄압했다는 것은 가정하던 말던, 그따위 말했다고 보여지는 자잘한 기미조차 찾아볼 수 없다. 13세기 연대기 학자 왈. 서기 1200년에 메스 에서 번역물들이 태워졌다. 고 하는데. 딘슬리.는 이걸 꼬투리로 해서리 이노켄티우스가 편지에서 명했다고 태우라고 했단다 주장 하지만. 보일은 지적한다. 그 편지들 어디에서도 교황이 번역을 금지한다 라고 쓰여진 것은 없다. 반면에 말야, 그 서류들을 보면 어떤 특정 번역물을 보고 아 저건 좀 거시기한 번역이다 교황이 의아해하고, 저런걸 써도 되나 걱정 비스무레 하는듯 하민서리 저 번역물을 어드래 하라. 라고 교황이 결론내지 않는다. 이노켄티우스의 일반적인 주장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허가하는 태도다. 번역과 그 지방의 언어로 된 예배를 하는 것에 대해서. 만약 그게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교회의 관점에서 나오고 사용되는 번역이라면.
There is no evidence of any official decision to universally disallow translations following the incident at Metz until the Council of Trent, at which time the Reformation threatened the Catholic Church, and the rediscovery of the Greek New Testament presented new problems for translators. However, some specific translations were condemned, and regional bans were imposed during the Albigensian Crusade: Toulouse in 1229, Taragona in 1234 and Beziers in 1246.[15][16] Pope Gregory IX incorporated Innocent III’s letter into his Decretals and instituted these bans presumably with the Cathars in mind as well as the Waldensians, who continued to preach using their own translations, spreading into Spain and Italy, as well as the Holy Roman Empire. Production of Wycliffite Bibles would later be officially banned in England at the Oxford Synod in the face of Lollard anticlerical sentiment, but the ban was not strictly enforced and since owning earlier copies was not illegal, books made after the ban are often simply inscribed with a date prior to 1409 to avoid seizure.
트리엔트 공의회. between 1545 and 1563. 이때 종교개혁자들이 카톨릭을 압박할 때인데. 그러면서 그리스어로 된 신약을 접한 사람들이 번역자들의 새 문제를 제기하는 시점인데. 여하튼 이때까지도 메스 사건에 대해서. 번역을 금지했다고 결론 지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어떤 특정된 번역물은 문제가 되었고 지역마다 물론 금지였다 알비파 십자군 기간동안은. 당시 20만 학살한. 서기 1229년.
여하튼간에 . 교황이. 걱정하는건. 막 개 번역 걱정하는거지. 저따위를 막을 턱이 있겄니.
루터 이전의 영어로 된 번역
There are a number of partial Old English Bible translations (from the Latin) surviving, including the Old English Hexateuch, Wessex Gospels and the Book of Psalms, partly in prose and partly in a different verse version. Others, now missing, are referred to in other texts, notably a lost translation of the Gospel of John into Old English by the Venerable Bede, which he is said to have completed shortly before his death around the year 735. Alfred the Greathad a number of passages of the Bible circulated in the vernacular about 900, and in about 970 an inter-linear translation was added in red to the Lindisfarne Gospels.[20] These included passages from the Ten Commandments and the Pentateuch, which he prefixed to a code of laws he promulgated around this time. In approximately 990, a full and freestanding version of the four Gospels in idiomatic Old English appeared, in the West Saxon dialect; these are called the Wessex Gospels. According to the historian Victoria Thompson, "although the Church reserved Latin for the most sacred liturgical moments almost every other religious text was available in English by the eleventh century".[21]
걍 파편적으로 막 있었던겨. 본 자료는 없지만. 그런 번역물이 있었다는 기록들로 증명이 되고. 서기 735년 즈음의 올드 영어로 된 성서 번역물이 있는 듯. 900년. 990년 등등. 걍 다 있는겨 성서들 번역물이. 부분 부분. 전체 모두가 아니라.
In the late 14th century, John Wycliffe and perhaps Nicholas Hereford produced the first complete English language Bible. Wycliffe's Bible was revised in the last years of the 14th century, resulting in two major editions, the second more numerous than the first, both circulating widely despite their official prohibition at the Oxford Synod.
14세기 후반엔 존 위클리프 와 니콜라스 헤리포드.가 영어본 완집을 낸겨. 틴들 성경 나오기 150여년 전에 이미. 헌데 이건 캔터베리 대주교가 판금조치해. 그래도 사람들이 읽는겨. 불가타 보다는 자기들 말로 되었으니 당연하지.
틴들은 저런 칠팔백년의 번역물에서 틴들 영어 성경이 나왔을 뿐이야.
역사는. 인물을. 갑툭튀로 만들지 않아.
https://en.wikipedia.org/wiki/Bible_translations_in_the_Middle_Ages
저런식으로 말야. 잉글랜드 뿐이 아니라. 프랑스. 카탈로니아. 체코. 등등 이미 다 했던겨. 루터 이전에 수백년 이전에. 신성로마제국의 독일 땅은 저지대 중지대 고지대에서 수두루루룩 하게 지들만의 게르만어들로 각각이 다 번역질 한겨. 이걸 루터가 가운데 티아온 중지대에서 저걸 다 포괄 하는 표준 게르만어로 만든거야 또한.
In the 10th century, Saadia Gaon translated the Old Testament in Arabic. Ishaq ibn Balask of Cordoba translated the gospels into Arabic in 946.[29] Hafs ibn Albar made a translation of the Psalms in 889.[30]
재밌는건 아랍어로 된 성경. 얘들은 구약은 중요하걸랑. 쿠란이 토라는 존중하니까. 코르도바에서 번역을 한거야 아랍어로.
저런 흐름 속에서. 기사들의 리볼트. 독일 농민전쟁. 종교전쟁들이 터진겨. 서기 1500년의 문제들과 엮여서리.
다음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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