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 of The Effects of Good Government, a fresco in the City Hall of Siena by Ambrogio Lorenzetti, 1338.

 

Lekianoba (Georgianლეკიანობა) was the name given to sporadic forays and marauds by Dagestani people into Georgia from the 16th to the 19th centuries. The term is derived from Leki by which the Georgians knew Dagestani peoples, with the suffix –anoba which designates attribution. The references to these raids appear in the Epic poetry of Avars; the names of rulers who lead the most devastating attacks, Umma-Khan, Nursal-Bek, and Mallachi, are mentioned in Georgian sources

 

레키. 다게스탄인들. 아노바. 어트리뷰션. 

 

레키 아노바. 다게스탄인들로 인한 일들. 다게스탄인들의 침입전쟁. 1500–1854 Lekianoba

 

1500년부터 350년간 다게스탄인들이 조지아에서 벌인 전쟁. 이란건데.

 

저기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야. 조지아.는 흑해에 붙어있어. 오른쪽엔 지금 아제르바이젠. 아래 아르메니아. 

 

그리고 그 위는 전부 러시아야.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중부 위 부터는. 여기들을 코카서스.하는데 이 코카서스인들은 전혀다른 언어족이야. 인도유러피안도 아냐. 스텝도 아냐. 헌데 스텝성향이 쎄. 

 

 

 

다게스탄.은 지금 저 빨간 영역. 마하치칼라.가 카스피해 왼쪽에 졉해있어. 
체첸.은 바로 옆 그로즈니.가 중심인 다게스탄 왼쪽옆이야. 볼고그라드 지나서 오른쪽 카스피해로 들어가는 강이 볼가.강이야. 바로 아래 볼고든스크.에 접한 큰 호수 같은게 돈강.이야 이건 왼쪽 흑해 위 저걸 아조브해. 라는겨. 세바스토폴 이 크림반도고. 이 세바스토폴 이 크림전쟁에서 제일 피터지는 고지전이 펼쳐져. 저기서의 고지전쟁이 근대 전쟁의 본격적인 근대무기들로 사상가 급증하는겨 고지의 요새함락전쟁. 이 다음 바로 같은 향식의 전쟁이 러일전쟁의 여순함락 203고지전이야. 이건 말도 못하는 비참한거야 이게. 그 시작이 저 세바스토폴이야.
지금 러시아에서 말야. 저 다게스탄.과 체첸 은 리퍼블릭.이야. 얘들은 러시아 연합 안에 공화국으로 있는겨. 이 리퍼블릭이 이십여개가 돼. 그다음 단위가 크라이스.이고. 그다음이 제일 자잘한 오블라스트. oblast 라는겨. 여기에 유대인 자치 오블라스트.가 있어. 이게 저 중국 흑룡강성. 헤이룽장성. 제일 오른쪽 끝. 에 접한 곳이 유대인 자치 오블라스트.야. 왜 이들이 여기있냐는 넘어가고. 이런 이야긴 레닌 썰할때에야 이야기가 풀려.

우크라이나.라고 써있는 저 오른쪽 접해서리 흐르는 강은 드네프르 강이야. Dnieper. 저 강 흘러서리 흑해로 흐르는 저 흑해 북쪽 지역이 코사크족. 이야. Cossacks. 
이 코사크족은. 그야말로 엄청난 인간들이야 이게. 
저기 부근의 스텝족들이. 코사크족 cossacks. 쿠만족 cumans 서카시아족 circassian. 아바르족 avars 킵차크족. kipchaks. 등등의 이름이야. 카자르족 khazars. 족도 있어. 코사크가 여기서 내려갔다고도 해. 
카자크족. Kazahks 하는 카자크스.는 저기가 아냐. 저 우랄 오른쪽. 카스피해 오른쪽이야 이들은. 이들의 나라가 대표적인게 카자흐스탄이야. 
해서. 코사크.족을 한글로 카자크.로 쓰는건 잘못된 번역이야. 코사크. 카자크. 구분을 명확히 해야해. 러일전쟁때 러시아가 기병대로 쓰는 애들은 카자크족이 아니야. 코사크 족이야.
저들이 말야. 스텝에 투르크야. 저기에 슬라브가 섞이는겨. 특히나 코사크는 더해. 
이들이 쎈 사람들이야. 해서리 이들을 병력으로 아웃소싱해서리 이용하는겨 주변 강국들이 중세이후엔 더해 이게. 
폴란드 리투아니아.. 저 코사크를 적으로 만든겨. 오히려 코사크를 없애 자기들에게 위험이 된다고. . 이들을 활용한게 러시아야.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개척할때 그 선두에 세운이들이 이 코사크야. 이 스텝애들이고. 러시아는 말야. 시베리아는 저 코사크 인들이 만든겨. 
저들이 스텝에 기마에 투르크에 슬라브에 코카서스에. 구분이 되는 듯 아닌 듯 하민서리. 이들이 자체적인 문명이 안되고 말야. 이들은 뭉치는 것 자체가 안돼. 몽골때나 한번 합쳐보고. 다음 아래 아나톨리아나 레반트나 이란땅에서 투르크란 이름으로 합쳐보고 이전엔 돌궐국에 서돌궐 동동궐해봤지만 그게 느슨한 조직이걸랑. 애초에 유목 스텝 기질이야. 

이들을 주변 애들이 이용하는겨 용병으로. 너 저쪽 치면 자치권 주고 독립국 만들어 주께.
계속 이 말들에 놀아나면서. 저들이 저 사이서 용병으로 살아간겨.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야 얘들이. 이게 특히나 심한게 저 지역 사람들이야. 저기의 저 코사크 쿠만 킵차크 등등에 저 다게스탄인들이 또한 껴 있는거야
저당시가 서기 1500년이야.

서유럽은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알프스를 넘어가면서 근대를 시작하는 시대. 러시아 이반3세가 등장하면서리 더 그레이트 딱지받는 시대인 동시에. 말야. 오스만 오른쪽엔 사파비 왕조가 들어서는 시기가 또한 서기 1500년이야. 

지진이 나는겨 지금. 저땅들이. 저때 동양들은 디비 자민서리 적폐놀이 마녀사냥질 여전히 할 때걸랑.

세상 천지바닥에 저따위 개 들이 없는데. 저 개 조선왕조 .

하루라도 조선이란 두 글자에 욕을 안하고 침을 안뱉으면 자미 아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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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개 던간에. 조선시대에 대한 향수. 조선에 대한 미련이 있음시롱 그래도 조선이 좋았어 조선은 좋은 면이 있어 라는 말 자체를 꺼내는 
문명인의 적이야. 문명의 적이야. 

그런 들관 상종을 말어. 인생 재수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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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에 뉘에~ 하면서 말야. 말 자체도 섞지 말어. 하루가 재수없어 일년이 재수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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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favid dynasty 

1501–1736
사파비 가 들어서 저 이란땅에. 

얘들은 지들이 정통 알리.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무함마드의 사위.인 알리의 계승이라 주장을 해. 헌데 얘들은 투르크야. 돌궐. 누구들은 쟤들이 페르시안 인이다 해서리 저들 주장이 맞다고도 해. 

저길 다시 정리해보면 말이지. 

키루스 대제가 아케메네스 를 세우면서 얘가 페르시안.의 시작이걸랑. 얘가 바로 위의 메데 제국을 먹어. 이 메데.는 딱히 페르시안 이라 하질않아. 쿠르드의 조상 이라고 헤로도토스는 말하지만 증거가 없어. 얘들은 스텝과 페르시안의 사이야. 본격적인 페르시안은 아케메네스야.
이 다음에 알렉산드로스 오고. 부하 셀레우코스.가 지배하고. 그다음에 파르티아.가 왼쪽 로마를 상대해. 파르티아 부터는 다시 페르시안이야. 이어서 사산왕조도 페르시안. 얘는 비잔틴을 상대해. 
그리고 나서리 무함마드가 등장해. 사산이 없어져. 이때부터. 아케메네스와 파르티아와 사산.의 페르시안은 아랍애들 밑으로 들어가는겨.
무함마드 부터의 정통 칼리프 라시둔칼리프.에서 분열하고 수니 시아. 해서리 우마이야. 압바스 나오고. 얘들은 칼리프가 교황이 되면서 뒤로 물러나고. 셀주크 투르크가 등장해. 이때부턴 투르크야. 돌궐. 
이집트 중심이었던 시아.의 파티마 왕조를 먹은, 셀주크에서 출장나온 쿠르드의 살라딘이 아유비드 왕조를 세워 아래에서. 쿠르드.는 투르크가 아냐. 페르시안에서 나온 애들이야. 
십자군 레반트는 저 셀주크 투르크와. 이 살라딘의 아유비드가 상대하는겨. 
셀주크가 저 아나톨리아와 레반트에 들어서면서 넓힐때. 오른쪽 이란땅에 등장하는게 화리즘 샤 라는겨. 화리즘. 화리즘. Khwarazm. 콰라즘 이라는게. 카스피해 오른쪽에 아랄해. 아래에 있는 오아시스 분지야. 즉 여기서 시작해서리 아래로 내려온겨.
이 화리즘샤 왕조의 시작은. 셀주크 투르크 술탄의 맘룩이야. 노예야 노예. 무슬림 노예. 페르시안에 투르크가 섞였어. 걍 지들은 페르시안 이라고 해. 즉 셀주크 서고 사십년 지나서 오른쪽에 선게 이 화리즘샤. 야. 동시대에 셀주크랑 살라딘의 아유비드랑 화리즘샤가 있었다가. 셀주크 먼저 망하고 화리즘샤 망하고 아유비드가 망한겨. 
바로 몽골애들이 처들어와. 툴루이 아들 훌라구가 바그다드 불지르고 일칸국을 세워. 이 일칸국은 오른쪽 차가타이에서 일하다 떨어져 나온 티무르가 다음을 잇고 제국을 세워.

여기서 눈여겨 볼께 말야. 

 

몽골 일칸국의 수도.는 마라가. Maragha. 타브리즈. Tabriz. 저기가 카스피해 아래 왼쪽이야. 

 

테헤란. 이 카스피해 바로 아래야. 이 테헤란이 저 이란땅에서 수도가 되는건 말야. 카자르 왕조때야. 이건 서기 1800년 전후야. 다음 팔레비 왕조 에 이란혁명 터지는 20세기에 수도가 역시 테헤란.인데. 이 테헤란은 끽해야 저때부터야. 

 

티무르.는 시작을 사마르칸트.에서 한겨. 저기 우즈베키스탄 오른쪽끝이야.

 

셀주크의 수도는 처음이  니샤푸르. Nishapur. 에서 왼쪽으로 가. 테헤란 부근 레이 Rey. 나중엔 하마단. 여긴 마라가 아래야. 

 

화리즘샤의 시작은 저 아랄해 아래야 화리즘. 저기 맨 위 우르겐치. Urgench.  사마르칸트.가 다음 수도였어. 

 

셀주크인 투르크가 화리즘샤인 페르시안애들에게 밀려나가는겨 저기서.

 

그러다가 홀라구.의 일칸국은 수도를 마라가.에 세운겨. 카스피해 왼쪽아래. 서쪽을 치겠다는겨. 

 

그리고 이걸 몰아낸게 티무르야. 티무르는 사마르칸트.에서 저 아래 헤랏 Herat. 지금 아프간. 여기서 왼쪽 오스만애들을 멀리두고 싸우는겨. 오스만이 서고 70년 후에 선게 티무르야. 즉 저때는 오스만이 왼쪽에 아나톨리아 에 있지만 레반트와 이란땅은 자잘하게 지들이 술탄이자 킹이자 샤. 라민서리 춘추전국시대인겨. 

 

이 티무르도 지가 페르시안. 이라 하지만 얜 투르크에 몽골에 다른 스텝들 섞인겨. 

 

즉 이전 아케메네스. 파르티아. 다음 건너뛰서리 사산. 은 페르시안이야. 사산이후엔 아랍애들이 중심이야. 그러다가 셀주크는 투르크야. 아래 아유비드는 쿠르드야. 이 쿠르드는 페르시아에서 나온 방계핏줄이야 딱히 페르시안 하지 않아. 화리즘샤. 티무르. 다 페르시안. 이라 하지만 말야 약해 이 특성이. 투르크에 몽골에 스텝 섞인 거걸랑. 

 

모~두 수니 이슬람이야. 저 레반트 중원을 지배했던 애들은. 단지 아랍이냐 투르크냐 페르시안이 섞인애들이냐.

 

 

이게 처음으로다가. 사산왕조 끝나고서리. The Sasanian Empire 

224–651

 

사파비 왕조가 1501년에 서면서. 천년 만에. 지들이 정통 페르시안. 이라 우기는겨. 이제야 페르시안.인 이란인 왕조가 섰다 함시롱. 하면서 얘들이 시아파. 하는겨. 페르시안 이지만. 무함마드의 정통 싸이키를 지들이 습했다는거지. 웃긴겨 이게. 아랍인과 페르시안은 뿌리부터 전혀 달라 이 둘은. 
어쨋거나 저쨋거나. 지들이 정통 페르시안.이래 헌데 얘들 수도가 보면 저기 타브리즈. 카스피해 아래 왼쪽에서. 다음 카즈빈. 더 내려와 오른쪽으로. 그러다 이스파한. 더 아래로 내려간겨.
사산왕조의 9백년 전 수도는 크테시폰.이야 바그다드 남쪽. 셀레우코스가 만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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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면서 사파비는 왼쪽 오스만을 상대하는겨. 투르크와 페르시안의 싸움이야. 
저 중심이 또한 저기 정말 불쌍한 조지아.야 
이 조지아는 정말 엄청난 나라야 그래서. 

더하여서리 말야. 이제 저 위의 모스크바.가 이반삼세가 더 그레이트 딱지 붙으면서 등장하는거야. 러시아가 위에서 쳐내려와 이제.
이 조지아가 저 사이에서 또한 현대사 까지 피터지는겨 저게. 얘들은 지금 자기들 이름의 땅을 가진겨. 조지아인들을 보면 꼭 구십도 숙여서리 경배 하도록 해.

해서리. 레키 아노바. 라는건. 저 조지아가 쎄걸랑. 같은 비스무레 스텝인듯 하는 코카서스인 옆에 붙은 다게스탄인들을 1500년부터 이후 350년간. 사파비 오스만 나중 러시아 애들이. 배후에서 얘들 이용해서 조지아를 치는겨. 그러면 니덜 독립하게 힘써주께. 
더하여 조지아도 킹덤들이 나뉘어. 서로 싸워. 이때 상대 조지아가 또한 다게스탄인들을 용병으로 쓰는겨.

저게 350년간의 레키아노바.

The Dano-Swedish War from 1501 to 1512 was a military conflict between Denmark and Sweden within the Kalmar Union.

 

The war began with a Swedish revolt against King John and the siege of Queen Christina in her castle in Danish-held Stockholm. Fighting intensified in 1509 and 1510 when the German city of Lübeck and the Hanseatic League helped Sweden to conquer Danish-held Kalmar and Borgholm. The recently established Danish Navy fought joint Hanseatic-Swedish naval forces at Nakskov and Bornholm in 1510 and 1511. In April 1512, a peace agreement was signed in Malmö.

 

덴마크 스웨덴 전쟁. 이전에 러시아 스웨덴 전쟁. 하고 다음 덴마크가 직접 스톡홀롬 치러가. 점령해 다시. 로베르토 전투. 덴마크가 킹 해. 여기 스웨덴 사람들이 반기를 드는겨. 한자동맹이 도와줘. 한자동맹은 스웨덴과 친해. 덴마크가 사이에 삐쭉 낑겨서리 통행세 받는게 못마땅하걸랑 항상. 

 

결국 협상 하고 마무리. 칼마르 유니온은 이후 10년 후에 깨지고 스웨덴은 학실하게 벗어나서 근대로 가면서 강국으로 가.

 

 

The Guelders Wars (Dutch: Gelderse oorlogen) were a series of conflicts in the Low Countries between the Duke of Burgundy, who controlled Holland, Flanders, Brabant and Hainaut on the one side, and Charles, Duke of Guelders, who controlled Guelders, Groningen and Frisia on the other side.



겔더들의 전쟁들. 겔더. 겔더란트. Guelerland. 괼더스 공작령. 은 원래 겔데른. Guelern. 에서 시작했는데 이 괼더른은 저 지금 헬더란트 보다 훨 아래. 현재 독일땅이야. 여기서 저리 올라가면서 괼더 공작령이 된건데.

 


저 저지대 네덜란드 땅들은 이미 부르고뉴 가문이 용감공 필리프가 다 먹었었걸랑. 이 인간이 저기 처먹는 방법이 나쁜말로는 얍삽하고 좋은말로는 머 대단한 전략인거지.
내전할때 도와서 이기고 땅 받고. 또는 말야. 돈을 꿔줘. 미끼인겨. 어차피 갚을 능력이 안돼. 담보로 땅을 잡은겨. 해서리 못갚으면 바로 땅을 갖고 가는거걸랑. 
이미 저땅은 시집간 마리.를 통해서리 합스부르크 땅이야. 헌데 이전에 필리프 용감공에게 돈 안갚아서리 빼앗긴 이전 공작애들이 그 계약 조또 불평등 어쩌고 대민서리 대드는거지. 
이 반기를 든 이전 공작이 동쪽 중심 위의 프리지아. 겔더랜드. 그로닝겐. 을 장악햇었다는거고. 

The wars lasted from 1502 till 1543 and ended with a Burgundian victory. With this outcome, all of the Low Countries were now under the control of Charles V, Holy Roman Emperor.

The latter portion of the wars intersected with the larger conflict between Franceand Spain known as the Italian Wars.

 

40년간 전쟁. 부르고뉴 승리. 저때 카를 5세. 이것도 결국 보믄.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이탈리아 전쟁이야. 프랑스가 이탈리아에서 카를한테 밀려나는 모양새걸랑. 얘가 성동격서로 이쪽을 들 쑤시는겨. 저기 겔더 공작을 이 프랑스가 지원 하는거고.

 

이 프랑스는 안돼 머든지 해도. 나중 태양왕 루이가 제대로 한번 터뜨리지만. 이도 결국 병딱인거고.

 

The War of the Succession of Landshut resulted from a dispute between the duchies of Bavaria-Munich (Bayern-München in German) and Bavaria-Landshut(Bayern-Landshut). An earlier agreement between the different Wittelsbach lines, the Treaty of Pavia (1329), concerned the law of succession and stated that if one branch should become extinct in the male line then the other would inherit. This agreement disregarded imperial law, which stipulated that the Holy Roman Emperor should inherit should a line fail.

 

란트슈트 후계자 전쟁. 바바리아.

 

 

독일 고지대. 즉 독일 남부는 왼쪽이 스와비아. 오른쪽이 바바리아.

 

 

스와비아.는 거점이. 라인강 상류에. 프랑스 알사스 접하는 슈바르츠 발트. 검은 숲지대야. 여기를 넘지 말라고 카이사르가 명했지만 여길 다 포함하는 리메스. 장벽을 만들어. 여긴 로마를 습한겨 그래서. 저 장벽안에서 게르만애들이 귀화해서 살았어. 여긴 말야. 뒤에 프랑크 애들이 통일 할때도 이땅은 제일 늦어 오히려. 지형적 조건으로. 

 

 

바바리아.는 달라. 오른쪽 바바리아.는 프랑크 클로비스 후세들이 바로 점령해. 

 

Around 548 the kings of the Franks placed the border region of Bavaria under the administration of a duke

 

바바리아는 프랑크가 듀크. 공작령으로 시작한게 6세기 중반이야. 

 

 

스와비아는. 4백년이 지나고 나서리 마그레이브. 후작령에. 바로 듀크 공작령이 된겨. 

 

House of Hohenstaufen, 1079–1268
이 스와비아는. 그리고나서리. 호헨슈타우펜. 붉은수염 프리드리히1세 황제. 손자 2세 시칠리아킹.의 가문.때 여기 스와비아.가 터젼이야 이들은. 이 가문이 여기서 공작하면서 신성로마 황제를 저 할배. 아들 하인리히6세. 프리드리히2세. 하면서 저 가문은 끝난겨. 저 자식인 만프레트.는 이태리서 앙주의 샤를에게 죽고. 해서리 저 스와비아 공작핏줄도 끝이난겨.
이 스와비아.는 저 호헨슈타우펜 가문 있을때만 반짝 하고. 대게 이놈저놈 공작하다가. 저 이후에 걍 자잘잘한 카운티. 나 비숍릭.이나 마그레베이트 등의 백작령 주교령 후작령 들로 자잘자잘하게 나뉘다 독일이 되었어. 공작이 없어 여긴. 서기 1300년 이후론. 4백년 잠깐 공작령하다가 끝난겨 걍.
저 자잘자잘 영주들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와 Württemberg 뷔르템베르크. 가문에서 하는겨.
이 뷔르템베르크.가 지금 슈투트가르트.야. 해서 스와비아. 하면 슈투트가르트. 하는겨. 이 뷔르템베르크 가문은 황제를 배출 못했어. 저 스와비아.가 제일 힘이 없었던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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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아.는 달라. 서기 550년 전후부터 프랑크의 공작령 이었다가 샤를마뉴의 카롤링거 찰스의 자식들이 직접 지배해.  이후 손자 게르만루이.가 바바리아 킹덤하면서 킹을 겸하다가 뒤에 다시 후작령 마그레이브.로 잠깐 가다가 저 스와비아.가 공작 할때 여기도 공작령이 돼. 이후 계속 공작령이야.

The House of Wittelsbach (

German pronunciation: 

[ˈvɪtəlsbax]) is a European royal family and a German dynasty from Bavaria.

 
비텔슈바흐. 이 가문이 서기 1180년 부터 공작을 해. 


이 가문이. 나중 뒤에 듀크에서 선제후로 가고 20세기 전후에 킹덤으로 갈때까지. 1차 세계대전 터질때까지 7백년 이상을 여기서 군주로 있는겨. 엄청난 가문이야 이 비텔슈바흐 가문이. 
대공위 시대 후 잠깐 신성로마 황제도 하고. 나중 합스부르크 잠깐 끊길때도 황제 한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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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바리아.가 비텔슈바흐.가 공작 하면서. 얘들이 땅이 넓으니까 이걸 나눠.

저 바바리아.의 중심은 지금 뮌헨. 이야. 이 뮌헨은 도나우강. 다뉴브강 아래에 있는거야. 훨 아래. 

이들이 저땅을 나눠. 1392년에. 바바리아를 고지대 저지대로 나누면. 어퍼 바바리아가 뮌헨. Munchen 이고 저지대 로워.가 란트슈트 Landshut 야. 

란트슈트 후계자 전쟁이란건. 저 둘간의 싸움이야. 역시나 남자핏줄이 끊긴겨. 딸이 남편이랑 같이 나 여서 킹할래. 하다가 저 두 부부가 죽어. 결국 합쳐. 
뮌헨의 공작이 저 나뉘어진걸 다 다시 합치고. 바바리아는 이어가는겨.
.여까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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