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론으로 들어가면 끝이 없어. 해서 개괄만 썰 푸는데.

 

저 각각의 글이. 하나마다 더 파고들어서리 수백개의 글제목들이 나오걸랑. 그거까지 할 수는 없고. 다 짐의 머리에 있지만 말야.

 

당신덜이 다시말야 스스로. 짐처럼 먼저 개괄을 잡고나서. 그 각각을 또 풀어. 

 

저 시대의 수많은 인물들중에 하나만 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만 또 걍 개괄로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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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괄. 概括. 
“旡”是“既”的本字。旡,甲骨文(转向背后的“口”)(跪坐着的人),表示吃饱饭后,掉过头,嘴背着面前的餐桌。当“旡”作为单纯字件后,甲骨文再加“食”另造“既”代替。造字本义:吃饱打嗝,转身离席,与“即”相反 。金文、篆文承续甲骨文字形。隶书将篆文的写成,将篆文的“欠”写成“旡”。近食就餐为“即”* ;餐毕离席为“既”。

 

개. 라는 글자는. 나무목 변에. 이미 기. 저 이미 기. 란 글자는 다 끝났다는 의미잖니. 이미. 벌써. 

 

저게 머냐면. 사람이 무릎꿇은 형상에. 입모양이 돌아간겨. 반대로. 앞에 놓여있는건 밥.이야. 

 

밥을 다 먹어서리. 입돌려서리 소리를 내는겨 꺼억 꺼억. 흘포타격. 전신이석. 치바오 다거. 밥 처먹고 다거. 딸국질하는겨. 

 

저것과 반대말이 곧 즉. 이란 글자야. 

 

即,甲骨文(内盛食物的器皿)(人),像一个人跪坐在盛有食物的器皿前面。造字本义:靠近食物,就餐,与“既”相反。金文承续甲骨文字形。篆文略有变形,把装满食物的器皿写成。隶书将篆文的写成,将篆文的“人”写成“单耳旁”。近食就餐为“即”;餐毕离席为“既”* 

 

저건 이미 기.에서 앉은 사람의 입모양이 없어. 나중 변형된 전문보면 밥을 향해있는거고 입이. 앞에 밥을 놓고 앉은겨 밥처먹을라고. 해서 곧 즉. 막 막막 먹을라는거지. 해서 즉시 막 하는겨. 즉식. 이란게 해서 아주 빨리 막 먹는겨. 이게 중국들이 인스턴트 를 번역을 한겨 즉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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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귀지 스픽스. Language speaks. 말이 말을 한다. 하이덱거. 가 말년에 강의한겨. 이게 멋진 말인데. 이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짐 외엔 당신덜 뿐이야. 짐의 말글을 따라온.

 

 

랭귀지.는 우리말로 말. 이야 저게. 중국이나 일본이 언어.로 번역했다고 저걸 언어.로 쓰기 이전에. 말. 이라고 해. 말은 스포큰 랭귀지. 라는 구어가 아냐. 랭귀지.는 말이야. 

 

Origin

Middle English: from Old French langage, based on Latin lingua ‘tongue’.

 

랭귀지. 라틴어 링구아. 혀야 혀. 혀는 단지 혀만 혀가 아냐. 목구멍 깊숙이에서부터의 혀야. 혀가 목이야. 목에서 나온 혀야. 말은 입으로 하는게 아냐. 혀로 하는거야.

 

저기서 애드리 벼라별 정의로 덧붙이지민서리 랭귀지가 의사소통의 여러 의미 포괄 랄지하지만. 인간의 랭귀지는 말이야. 혀에서 나오는 말. 이게 다른 동물과 가름을 하는겨. 

 

랭귀지가 스피크를 하면서. 인간이 의식화안된 신의 세계를 사유하면서 의식화하는게 동물과의 차이고 그게 문명을 이룬 힘이걸랑. 

 

이 말할라는게 아니라. 이건 참 깊으민서도 재민는 주제지만. 이따위 이야기 할 시간은 없고.

 

해서리. 개괄의 개.라는건. 이건 갑골에 없어. 소전체에 보이지만. 이걸 디비보니 설문해자에서도 정의가 없어. 갈 자를 저 개란 글자로 같이 적용하는데 중국은.  글자가 전혀 다르지 이 것들아. 소전체엔 그냥 저 나무목에 저 이미기. 라는 글자가 더해진 거걸랑.

 

 

밥 먹고 자리를 떠서. 꺼억 꺼억 트림을 나무에 가서 하는겨 저게. 옛날엔 밥먹고 나가서 기대는 곳이 나무야. 

 

해서. 저개 대충 대강. 이따위 의미야. 배 아주 부르고. 꺼억 꺼억 해민서리 고순간은 만사가 구찮은겨. 대충 대강 만 하는겨.

 

괄. 이란 글자는 잡는겨. 손으로. 헌데 심하게 일부만 잡는게 아냐
既是声旁也是形旁,是“刮”字的省略,表示干净、彻底地收拾。括,篆文(手,抱)(“刮”的省略,干净、彻底地收拾),造字本义:完全、彻底地抱在手里。隶书将篆文的“手”简写成,失去五指形象

 

표시. 깐징 쳐디더 쇼우시. 아주 바닥 끝까지 철저하게. 전부 총괄해서 쌍그리. 해서 깐징. 너무나 깨끗해진겨. 

 

해서 포괄 괄호 할때 저 괄.이 원래 그런말이야. 해서 저걸 묶고 담고 하지만. 전부 다  싹쓰리야. 괄약근이 괄이 안대면 새는겨 똥오줌이

 

 

 

개괄. 다 보는겨 전부. 헌데. 개. 아주 대충 보는겨. 이게 generalization. 제너럴리제이션. 일반화 하다. 서머리. 요약하다. 라고 대입시킨겨. 

 

 

해서리. 개괄. 적으로 라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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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은제 다 허냐 걍 대충 빨랑 하고 말을거다 이거. 

 

 

이땅바닥의 무식과 무지에 분노가 치밀지도 않는다 이젠.

 

저 천하의 무식들이. 두개의 상징으로 만나서리. 별 개쇼들을 하고 앉아있는 땅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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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청.

 

肃,金文(聿,“律”的省略,限制、约束)(“亚”,古代聚落祭祀等公共活动区),表示依照严格礼仪进行祭祀。造字本义:依照礼仪虔敬祭祀。篆文略有变形。

 

숙청한다 할때 숙. 율. 제한. 약속의 규율 율 모양 더하기. 아래는 도대취락제사등 공공활동구. 제사 지내는 곳에서의 제한된 규율 이야. 저게 엄숙 한겨. 지들만의 정의 인민의 잣대로 모조리 죽여서리 깨끗해진겨. 그게 숙청.이야

 

 

이 조선 들은. 자기들 잣대외의 사람들은 악랄하게 죽이던 애들이걸랑.

 

조선 시작에. 고려 왕씨들을 아주 아작을 내는겨. 해서 왕씨들이. 왕왕.짜를 버리고. 점찍어 구슬옥. 줄 양쪽 거서리 밭전. 위에 사람더해서리 완전 전 씨로 바꿔 산겨.

 

 

 

세상바닥에 말야. 저따위 왕조가 없어. 중국도 그짓은 안했어. 이전 삼국지 얘기할때 언급했지만. 조조도 사마위도 이전 왕조애들은 걍 땅 작은거 주고 살게 했어.

 

 

 

이 조선 들은 말야. 자기 의 잣대가 아니면. 죽이는겨. 

 

 

 

저게 조선왕조 건국이래 지금 칠백년째. 저짓들을 하는겨 저게. 

 

 

 

태종실록 26권, 태종 13년 11월 21일 정유 3번째기사 1413년 명 영락(永樂) 11년 

고려 왕실의 후손을 숙청한 것과 관련 전대 역사를 상고하게 하다

 

예조에서 전대 제왕(帝王)이 전조(前朝)의 군왕(君王)의 자손을 대접하던 법을 상고하여 아뢰라고 명하였다. 임금이 여러 신하에게 일렀다.

 

"역대 제왕(帝王)이 역성 혁명(易姓革命)하여 전대의 자손을 베어 없앤 사실을 나는 사전(史典)에서 아직 보지 못하였다."

 

예조 참의 이지강(李之剛)이 대답하였다.

 

"신 등이 명을 받고 삼대(三代)417) ·한(漢)나라·당(唐)나라·송(宋)나라에서 상고하니 모두 보전하였고, 베어 없앤 것은 오직 오호(五胡)와 오대[五季]의 임금뿐이었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법을 당(唐)·우(虞)·삼대(三代)의 성대에서 취하는 것이 마땅하지, 어찌 족히 오대[五季]의 쇠망한 세대의 일을 논하겠느냐? 태조(太祖)가 개국하였을 초기에 전조(前朝)의 후손이 보존을 받지 못한 것은 본래 태조의 뜻이 아니었고, 한두 대신이 생각하기를, ‘이제 초창(草創)하는 때를 당하여 인심(人心)이 안정되지 않으니, 그 후예를 제거시켜서 여러 사람의 뜻을 하나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내가 어렸고 고전(古典)을 알지 못하여 그 의논을 중지하도록 능히 청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한이 된다."

 

이조 판서 한상경(韓尙敬)이 나와서 아뢰었다.

 

"국초(國初)에 신이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이 사건을 들을 수 있었는데, 실은 태조의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대간(臺諫)에서 상소하여 제거하기를 청하니, 태조가 따르지 않았습니다. 한두 간신(奸臣)이 이해(利害)로써 아뢰니, 태조가 부득이 이를 따랐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나는 보전하고자 하며, 뜻이 이미 정해졌다."

 

옥천군(玉川君) 유창(劉敞)이 말하였다.

 

"신도 또한 이 사건에 참여하여 들었는데, 태조의 뜻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성상께서 이러한 명을 내리시니, 실로 우리 나라 기틀이 만세토록 연장될 징조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이제 왕휴(王庥)의 아들은 본래 죄가 없으니, 죽이는 것은 마땅치 않다. 다만 숨겨 주고 관(官)에 고하지 않는 자는 의논하여 죄 줄 수도 있다."

 

대언(代言) 조말생(趙末生)에게 명하여 순금사에 가서 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와 그 어미와 처자(妻子)를 보방(保放)418) 하였다. 순금사와 정부·대간·형조에서 청하였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니며, 지금 끝낼 것도 아니니 빨리 석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임금이 명하였다.

 

"만약 물을 만한 일이 있다면, 그 삼촌 숙부 이밀충(李密沖)과 공사(供辭)에 관련된 사람 우홍부(禹洪富) 등이 그대로 있지 않으냐?"

 

임금이 또 여러 신하에게 일렀다.

 

"전조(前朝)의 후손이 비록 10인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아무런 혐의(嫌疑)가 없다. 이제 왕거을오미를 놓아 두고 논하지 않으면 죄상을 알고도 자수하지 않는 자도 또한 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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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왕이. 중국 치러가라고 준 병력을 갖고와서리. 그 병력으로 돌아와서리 조선을 세운 정말 엑스엑스야 저건. 조선은 시작부터 쓰레기야. 믿을 신. 충성 충 전혀 없는 애들이야 시작부터. 그러니 충성 충 믿을 신 더 랄지 했던거고.

 

그래도 좀 찔리나 아니면 걍 해보는 소리겄지. 얘들은 꼭 앞에서 착한척 좋은 말. 뒤에선 그대로 왜했냐고 또 죽이걸랑. 아 증말 음청난 애들인데.

 

이방원 이. 야  그래도 너무 죽이는거 아니냐. 왕조세운지 이십여년이야. 중국들도 이전 왕조의 사람들을 이리들 몰살시킨적이 없더라 내 좀 보니까는. 야 참 이거 사람도 아닌거 아니냐 우리네는? 야 내가 추악한 인간임을 나는 아러. 이 조선 세운 나는 사람도 아냐. 이 조선이 앞으로 칠백년이 머여 천년 이상을 정의요 민주요 인민이요 사회주의요 노동이요 랄지댈텐데. 아 말이지. 해서리 상대는 적폐요 소인배요 지는 정의요 군자요 해대민서리 악랄하게 죽일텐데.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중국들도 이짓들은 안했더라. 우리가 천하의 개엑쓰에 똥천지 한양바닥을 만들 애들이지만 쫌 거시긴 하다.

 

하니 말하길. 얘 지들도 보니까유. 하은주 삼대와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도 이전 왕조들은 복원하고 건들지도 않았습디다. 오호 오랑캐들때랑 당말의 오계인 후량후당후진후한후주 일때 그런짓을 했긴 했습니다만.

 

 

야이 그애들시절이 어드래 역사냐. 우리넨 하튼 인간이 아냐. 내가 조선의 킹이지만. 킥킥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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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짓들을 오백년을 하고 말야. 유럽전쟁사 처럼. 전쟁할 일도 없걸랑. 일본들은 바다건너 지들끼리 싸우기 바쁘다가 한번 넘어올까 말까. 위로는 중국 조폭 유교만든 주원장이한테 여자 주고 공물주고 굽신거리면 올일이 없고.

 

 

악랄하게 오백년을 지들 소인배놀이 정의놀이 하면서. 저짓들을 오백년 한거지.

 

 

 

저따위 애들을 여전히 지폐와 동전으로 모시고. 테레비만 돌리면 역사 무슨 그날 왜적이 양놈이 쳐들어와서리 위대한 조선이 어쩌고 저쩌고. ㅋㅋㅋ.

 

 

 

저 숙청질. 저놈의 숙청질을 김일성 부터 삼대를 저짓을 해왔고. 여전히 하고. 저 숙청의 역사에서 죽은 사람들. 은  관시미가 없지. 민주의 민 이 아니니.

 

 

그 숙청질을. 숙청이라 이름 부르긴 거시기 하니까. 정의 구현으로 서로들 해대고 있고.

 

 

가만 보니. 박근혜는 뭔죄냐 저게. ㅋㅋㅋ. 참 불쌍해 저여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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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저 조선이 만나서리. 헤헤 호호. 별 개쇼를 다 하고 자빠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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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제목 은제 하냐.

 

 

왜냐믄.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무시캐서 그래 저게. 해서 짐께서 개괄로만이라도 정리해 주는겨. 생각있는 이들은. 저따위 정신병 속에서 인생 허비 말라고.

 

쉼.

 

고구려백제신라에서고려숙종1100년까지의 싸이키 사람들에게서. 저 조선왕조는 정말 치욕과 쓰레기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 조차 매우 역겨운데 말야. 저걸  한 대한 이란 이름으로 여전히 저따위 들을 모심질 시키는 시대를 사는 것은 더 역겨운겨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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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ographer known as "Anonimo Gaddiano" wrote, 

c.

 1540: "His genius was so rare and universal that it can be said that nature worked a miracle on his behalf ...".

 

그의 천재성은 매우 드물었다. 매우 보편적이었다. 네이쳐.라는 세상의 이데아.는 그를-네이쳐 그자신- 위해 미라클한 기적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들어냈다. 

 

캬 말이 어쩜 저리 멋지냐.

 

Some 20 years after Leonardo's death, Francis was reported by the goldsmith and sculptor Benvenuto Cellini as saying: "There had never been another man born in the world who knew as much as Leonardo, not so much about painting, sculpture and architecture, as that he was a very great philosopher."[53]

 

레오나르도 가 죽고 20여년 후. 프랑스 킹 프랑수아.는 조각가 첼리니가 말했다는 보고서를 받았다. 

 

세상에 태어난 어떤 사람도 레오나르도 만큼 그림과 조각 설계를 아는 사람은 지금까지 결코 없었다. 그는 가장 위대한 철학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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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수많은 평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

 

 

레오나르도.는 위대한 철학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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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

Italian: 

[leoˈnardo di ˌsɛr ˈpjɛːro da (v)ˈvintʃi]

 (About this sound listen)

; 15 April 1452 – 2 May 1519), more commonly Leonardo da Vinci or simply Leonardo, was an Italianpolymath of the Renaissance, whose areas of interest included inventionpaintingsculptingarchitecturesciencemusicmathematicsengineeringliteratureanatomygeologyastronomybotanywritinghistory, and cartography. He has been variously called the father of palaeontologyichnology, and architecture, and is widely considered one of the greatest painters of all time. Sometimes credited with the inventions of the parachutehelicopter and tank,[1][2][3] he epitomised the Renaissance humanist ideal.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 다 빈치. 피레네.의 빈치 마을에서의 피에로 씨. 미스터. 의 레오나르도.
피에로.는 일종의 젠트리 계급 젠틀맨이야. 귀족이 아냐 그렇다고 민.도 아냐. 아주 부자야. 유부남인 상태에서 걍 일종의 바람피다 낳은 자식이야. 엄마는 패전트. 농민의 딸이야. 해서 굳이 말하믄 일리지메이트. illegitimate. 합법적인 아들은 아냐. 
애비 피에로.가 이 아이를 다섯살에 자기집에서 키운겨. 엄마가 다섯살까지 키우다가. 즉 첩도 아냐. 걍 교미 한번 하고 생긴아이 키우다가 애비한테 보낸겨. 
이 피에로가 결혼을 하튼 많이 해. 애들도 많이 생샌해. 직업이 피렌체에서. 리걸 노타리.면 걍 행정보는 애야. 시빌로. 교회법 아닌 법 다루는 곳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는데. 돈이 또한 좀 많아. 피에로가 결혼은 네번 해. 앞의 두번은 자식이 없고. 뒤에 두번에서 12명의 자식을 낳아. 레오나르도 가 제일 큰 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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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거 볼거 없고. 당신덜이 보던가 말던가. 

 

In 1466, at the age of 14, Leonardo was apprenticed to the artist Andrea di Cione, known as Verrocchio, whose bottega (workshop) was "one of the finest in Florence".[23] He apprenticed as a garzone (studio boy) to Andrea del Verrocchio, the leading Florentine painter and sculptor of his day (and would do so for 7 years).[24] Other famous painters apprenticed or associated with the workshop include Domenico GhirlandaioPeruginoBotticelli, and Lorenzo di Credi.[15][25] Leonardo would have been exposed to both theoretical training and a vast range of technical skills,[26] including drafting, chemistry, metallurgy, metal working, plaster casting, leather working, mechanics and carpentry as well as the artistic skills of drawing, painting, sculpting and modelling.[27][nb 4]

 

 

14살에 베로키오의 보테가. 작업장에 심부름꾼 뽀이로 드가서리 일을 배운겨.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피에트로 페루지노. 싼드로 보티첼리. 로렌조 디크레디.

 

 

저기서의 인맥들이  짱짱한겨. 저 선생들이. 다 몰라도 보티첼리.는 들어봤잖냐. 위대한 로렌초. 하면 후원이고 그 대상하면 저 보티첼리.에 레오나르도 잖냐.

 

 

레오나르도.는 갑툭튀.가 아냐. 저시대의 싸이키.가 낳을 수 밖에 없던 인물이야. 

 

 

세상의 인물 인간은. 시대라는. 싸이키라는. 그 마음들의 탯줄이 낳은 것일 뿐이야.

 

 

이땅바닥엔 조선건국이래 칠백년째 인물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야.

 

 

 

아 정말 끔찍한겨 이 조선 빠닥.

 

저걸 정확하게 직시하면. 그 이후부터 여기서 인물이 나와서 문명을 이루는겨. 여긴 문명이 없어. 다 어설프게 베낀겨. 그러니 지금 시대에 저따위 두 멍청한 상징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거야 헤헤호호  대민서리. 저따위 지랄들을 우상숭배질 하는게 이땅바닥의 빠질이고 저따위가 정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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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는 시작이 그림이야. 아빠 피에로.가 꼬마 레오나르도의 방패 그림을 누구에게 그려준걸 보고 놀래서리 고걸 지가 스포르카 가문에 비싸게 팔고 시장가서 딴 그림 사서리 줬걸랑. 그리고 저길 취직시켜준겨.

 

당시 보테가. 라는 작업장은. 모든걸 한사람이 다 하는겨. 분업이 아냐. 왜냐믄. 이제 갓 흑사병이 지나서리 인간이 삼분의 일이 죽었잔아 유럽에. 사람이 없는겨. 혼자 다하는겨. 이런게 또한 역설적으로 르네상스의 인간들을 만든거야. 모든걸 혼자 다해. 다 커버해. 철학에서 그림조각 설계까지 다 혼자 하는겨. 헌데 그게 가능한게 결국 모든건 다 관통하걸랑. 다 똑같아. 학문이라는게. 저걸 격자로 나눠서리 고 하나의 빨대만 본다고 해서리 전체 이데아를 알 수 있는게 아니걸랑. 

 

 

 

오히려 전부를 다 보는게. 제대로 된 이데아. 실재에 접근 가능 확률이 높걸랑. 분야들 이라는건 거기서 특성화된 것일 뿐이지 그 바닥은 그 이치란건 다 같은 거걸랑. 철학이 그림이고 그림이 조각이고 조각이 설계고 설계가 물질문명이야.

 

 

 

누구가 테레비에서 위대한 조선의 정신문명!! 물질문명에 뒤졌지만. 위대한 조선왕조의 정신문명!은 아주 위대해유~~ 우리가 누구인가? 누굴까? 위대한 조선 유교문명의 인간들이 위대한 대한조선민국인들이유~!!! 이따위 말한다고 나를 짤랐슈~~ 투표혀유!! 민주유!!

 

 

 

참 코메디야. 

 

 

내가  통이면. 저따위껀 시민권을 박탈하고 추방을 할꺼다. 정신병도 아니고 말야 저건. 아니지 정신병도 보통 정신병이 아닌거지. 이땅바닥  팔구십퍼가 정신병자지 이게.

 

 

애들이 불쌍한거지.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가 약간 끊겼다가 다시 회복을 한겨. 이전 썰. 특히나 중북부.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삼각지대에. 로마 라는 도시도 보통 도시가 아냐. 이미 종교쟁이 도시가 되었지만. 그래도 로마야. 아래 나폴리가 보통 나폴리가 아냐. 로마보다 먼저야 저긴. 고대그리스가. 그리고 그 말굽에 타란토 바리 크로토네 카탄차로. 여기도 로마보다 먼저 온 고대 그리스부터야. 시칠리아는 무슬림 식민지였었지만 황제프리드리히2세가 그 아랍 무슬림도 다 인정한 별 시안한 도시야. 이슬람에 그리스도에 고대그리스가 섞인 곳이여 저기가. 

 

 

 

이게 쌓이고 쌓이고 해서리 터진게 르네상스야 이게. 여기서의 핵심은 상인들이야. 여기서의 핵심은 돈이야 돈. 저 도시들에 부가 쌓이는겨. 그 부가 쌓여서리. 아트들을 사고 파는겨. 아트들을 살 돈들이 생긴겨 저기가 저기들이. 그 아트들을 만들어낼 창조하고픈 욕망들이 생기는겨. 더 좋은 더 비싼 더 이데아적인 아트들을 만드는겨. 

 

그 소재 역시 또한 종교쟁이들에 전쟁속의 상인들이야. 귀족들이 활발히 드나드는겨. 십자군가면 대부분 여길 거쳐가는겨. 사자심왕 리차드도 여와서리 선발대 보내고 돌아다니다 가는기고.

 

 

여기에 유럽 싸이키들이 더 섞이는겨 여기에. 거기에 비잔틴에 떨어진 이들이.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동서교회에서 다시 합치자 주의로 나가면서 이전 천년동안 독자적으로 만든걸 또한 갖고 와 여기로. 그 이유는 또한 전쟁이야. 오스만애들때메 무서워. 그 핑게로 합치자면서 로마로 오는겨. 그러면서 쟤들이 갖고 갔던 고대그리스를 갖고와 . 비잔틴은 그리스어야. 콘스탄티노플 함락되면서 거기의 모든 자료를 다 갖고 도망나와. 그게 역시 재료가 돼

 

 

 

 

 

저게 르네상스 라는 이름으로 터진겨 저게. 

 

저 르네상스. 를 또한 의식화 해준건 

 

Giorgio Vasari (

Italian: 

[ˈdʒordʒo vaˈzaːri]; 30 July 1511 – 27 June 1574) was an Italian painterarchitect, writer, and historian, most famous today for his Lives of the Most Excell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 considered the ideological foundation of art-historical writing.

 

조르조 바사리. 이사람이 르네상스.란 단어를 만들어. 아티스트 지만 위대한 역사가야 이사람이. 

 

 

인간의 역사는. 또한 이런 사가들이 만들어 주는거야. 보다 넓게 깊게 해석해 주는 사람들이 고대 그리스부터 고대로마부터 이런 사가들이 정리해주는 사람들이 있는겨 제대로 된.

 

 

이전 썰한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Carl Jacob Christoph Burckhardt (May 25, 1818 – August 8, 1897) was a Swiss historian of art and culture and an influential figure in the historiography of both fields. He is known as one of the major progenitors of cultural history.[1] Sigfried Giedion described Burckhardt's achievement in the following terms: "The great discoverer of the age of the Renaissance, he first showed how a period should be treated in its entirety, with regard not only for its painting, sculpture and architecture, but for the social institutions of its daily life as well."[2] Burckhardt's best known work is The Civilization of the Renaissance in Italy (1860).

 

스위스 사학자야. 스위스 지폐 그림이었던. 이사람이 역시 위대한 사가야. 이사람의 쓴 책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 이야. 

 

 

이땅바닥에 저사람 아는 애. 언급하는 애 있냐.

 

 

이탈리아 르네상스. 가 가장 중요한겨 이게. 이걸 제대로 볼 줄 알아야해. 이게 산업혁명을 만든거야. 산업혁명은 잉글랜드에서 만들 수 밖에 없었어.

 

 

 

The universities generally considered as studia generalia in the 13th century were:

 

Universities officially recognized as studia generalia in the 14th century were several, among these:

중세 대학을 스투디움 게네랄리아. 라해. 제너럴. 전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저런게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전에. 이미 볼로냐 파도바 아레초 나폴리 시에나 살레르노 에 생기는겨. 저게 유럽에 퍼지는겨. 

 

(1) received students from all places, (2) taught the arts and had at least one of the higher faculties (that is, theologylaw or medicine) and (3) that a significant part of the teaching was done by masters.[2]

 

국적을 안따져 영지를 안따져. 걍 어디서든 다 와. 마스터들이 가르쳐야해. 저기서 마스터.는 지금의 학사학위 배철러.나 박사의 석사의 마스터.냐 박사의 닥터냐.

 

Originally, masters and doctors were not distinguished, but by the 15th century it had become customary in the English universities to refer to the teachers in the lower faculties (arts and grammar) as masters and those in the higher faculties as doctors.[2] Initially, the Bachelor of Arts (BA) was awarded for the study of the trivium and the Master of Arts (MA) for the study of the quadrivium.[3]

 

초기엔 저게 구분이 없이. 단지 티처 자격증이어야하다가. 배철러.라는 중간 수준의 선생은 트리비움.을 갈켰고. 마스터와 닥터는 쿼들리비움.을 갈켰다.

 

 

The trivium is the lower division of the seven liberal arts and comprises grammarlogic, and rhetoric

 

The quadrivium consisted of arithmeticgeometrymusic, and astronomy

 

트리. 셋. 쿼드리. 스퀘어. 넷. 합해서 세븐 리버럴 아트. 문법. 논리. 수사학. 산수수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

 

 

 

이미 저짓을 해오던겨 쟤들은. 저때는 말야. 이제 각 킹들마다. 이젠 고대그리스어에 고대로마라틴어.는 기본적으로 하면서리. 이걸 바탕으로 자기들의 말. 언어들이 급격히 진화가 되고. 라틴어를 바탕으로 자기들만의 글자를 만든 시대인거야. 

 

 

저러면서. 저기서 포함 안되는. 다른 언어들 역시 배우는거야. 귀족애들이 잉글리 프렌치 덧치 이탈리어 스페니쉬. 를 다 배워. 라틴어에 그리스어도 배워. 히브리어도 배워.

 

 

 

 

저건 기본적으로 무기야. 핵무기야 저게. 저걸 익히면. 그다음은 자기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푸는거걸랑. 

 

 

 

 

 

저 시대에서야 르네상스가 터진겨 터질수 밖에 없었어. 그리고 바로 받아서리 알프스 넘어 유럽에 퍼진겨. 이전 썰했듯 헝가리 마티아스도 이미 받은겨. 폴란드도 가는겨 그게. 리투아니도 가는겨 그게. 더구나 스칸디나비아의 스웨덴 노르웨이는. 얘들은 활발히 섞여살은 이들이걸랑.

 

저지대가 오히려 더빨라 고지대 알프스보다. 오히려 고지대 중지대는 깝깝한겨. 

 

 

이것도 상인이야. 제노바 상인 베네치아 상인이 지중해 넘어서리 걍 저 북해 발트해로 연일 날라댕기는겨. 

 

 

여기를 앤불린.이 또한 간겨 꼬마때. 이때 루터가 막 터진 직후야.

 

 

 

 

레오나르도. 에겐 저걸 다 이어서 말해주고 보여줄 저런 사람들이 있었던거야. 14살 꼬마아이가 간 곳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하늘에서 떨어진게 아냐. 그래서.

 

 

 

 

 

이땅바닥은. 저 15세기 수준의 지쩍 수준은 무슨. 걍 게르만이 갈리아 정착하기 시작한 오세기 육세기 수준이야.

 

 

정말 이땅바닥의. 위선은. 가식은 허식은. 정말 끔찍한거야.

 

 

제일 끔찍한건 말야. 추잡한 지렁이 주제가. 사자 호랑이 주제인줄 안다는겨. ㅋㅋㅋ 아  웃기고  슬픈겨 이게. 여기선. 무슨 아무런 도약 장치가 없는겨. 애들이 다 눈깔엔 쓰레기 거짓 레이저만 뿜어대고 술만 처먹고 남탓만. 일본 탓 양키탓 만 해대민서리. 머리에 넣은건 하나도 없고. 끼리끼리 이바구질만 하고 지들 듣고픈 보고픈 것만 랄지대다가 위대한 조선이여. 민주주여 만세 랄지 발광하다 뒈지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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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를 보고도 기뻐날뛰는 꼴이라니. 파우스트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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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마리의 지렁이. 지렁이들의 땅에서 지렁이 밖에 못만드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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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2년. 레오나르도 30살. 로렌초 메디치 33살. 레오나르도가 이때 라이어. 수금 악기.를 만들어 은으로 된. 이사람은 정말 천재중에 천재야. 

 

당시 로디조약인가 하튼 로렌초 할배 코시모.랑 스포르차 창업자 프란체스코.랑 동맹맺으면서 잘 지내온겨 삼대까지. 이때 상대가 밀라노 스포르차가문의 루도비코야. 선물로 저 레오나르도 가 만든 라이어를. 레오나르도보고 직접 가서 주라는겨. 

 

이때 레오나르도.가 밀라노를 가는겨. 이때 루도비코를 만나서리 친해지게 돼. 

 

 

Leonardo later wrote in the margin of a journal, "The Medici made me and the Medici destroyed me." While it was through the action of Lorenzo that Leonardo received his employment at the court of Milan, it is not known exactly what Leonardo meant by this cryptic comment.[15]

 

 

레오나르도.가 그래서. 피렌체 메디치와 밀라노 스포르차.의 외교관 역할을 하는겨 이때부터. 헌데 나중에 레오나르도.가 쓴 메모가. 

 

메디치가 나를 만들었고 메디치가 나를 파괴했다.

 

 

 

저 말이 참 애매한겨. 저게 먼말인지 몰라. 메디치. 즉 로렌초걸랑. 로렌초가 얼굴이 좀 거무티티하고 인물이 강렬해 인상이. 헌데 숏다리야. 좀 시안해 이사람. 팟지 가문애들이 교황 식스투스4세. 페라라 전쟁했던 그 교황 돈 무지 밝히고 이전 참 순수했던. 이 교황이 메디치가 싫어서리 팟지애들 움직여서 로렌초네를 암살시키다가 동생 줄리아노는 죽고 로렌초는 살아남았걸랑. 로렌초가 복수하고 팟지애들 다 내쫓고. 해도 저 교황이 나폴리 움직여서리 나폴리가 쳐들어올라해. 쳐들어오면 피렌체는 끝이야. 이때 로렌초가 혼자 직접 나폴리를 가. 이때 나폴리는 아라곤이 앙주의 르네. 즉 조안나2세가 후계자로 정한 앙주의 루이 아들.을 내몰고 그 아들이걸랑. 혼자 나폴리로 가서 인질이 되믄서리 담판을 진겨. 이때 나폴리 킹이 로렌초의 싸이키에 감동을 하면서리. 오히려 동맹을 맺고 보내. 인사 꾸벅하고. 

 

저게 그 이후의 일이걸랑. 밀라노에게 레오나르도 를 보낸게. 저러면서 레오나르도 가 얽히는겨. 그리고 로렌초 메디치 죽고. 루도비코가 샤를8세를 부르면서리 이탈리아 전쟁 시작할때도 레오나르도는 루도비코랑 식사를 같이 할때걸랑.

 

 

 

 "I thought I was learning to live; I was only learning to die."[15] 

 

 

레오나르도 일기 중에. 저런 글이 있어. 나는 사는 것을 배워왔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죽는것.을 배워왔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 말은 이게 디게 애매해. 저것도 더 생각해보면 말야. 결국 레오나르도.는. 투 리브. 산다는 것.에 방점이 있어. 죽는다는 것.은 이사람 주제가 아니야. 생명. 삶. 이게 이사람의 의도된 주제였다는 거걸랑. 살고 싶은겨. 더 잘 살고 싶기 위해서 아트를 한겨. 이데아를 찾는 이유는 이 삶 생명의 원리. 삶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 면을 위함인거야.

헌데 점점. 죽음에 대해서리 시선이 더가는거야 이게. 삶을 찾으려했떤게 내 목적이었는데 어라  죽음 이란 주제가 더 눈에 띄네. 인생의 낙관이 비관으로 변해버린겨 저게.

레오나르도.가 해부를 하걸랑. 이것도 이전에 저 식스투스4세가 대학에 해부를 용인 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냐. 레오나르도.는 해부를 찐하게 한 사람이야 보면. 해서리 이사람 작품을 이삼백년 후에나 알게 된겨. 즉 산업혁명 직전의 그 기술들은 많은 부분 그 디자인을 레오나르도가 이미 그려놓았지만 그건 시대에 참여하지 않았어. 독자적으로 그 후에 나온겨. 왜냐믄. 저걸 공개할 수가 없었던거야.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많이 한겨 이 사람이. 그 실재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 컸던거야. 

저런면에서. 디스트로이. 라고 번역되는 말을 쓴거야 저건. 디스트로이.는 끝이야. 이건 죽음이야. 그 죽음에 대한 시선을. 이사람은 루도비코의 밀라노를 가서 알게된거야 저건.

메디치가 나를 만들었다. 그러나. 메디치가 나를 밀라노에 보내고 나서. 거기서 나는 죽는다는 것의 세상에 더 시선이 갔다. 메디치가 나를 파괴한거다.



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그야.


머 레오나르도.도 뒈졌는데 알길은 없으니. 





레오나르도.는 인물 자체가 참 좋아. 외모가 아주 뛰어나. 여자들이 미쳤을꺼야. 헌데 레오나르도.는 이 여자이야기가 없어. 의외로. 해서리 레오나르도는 게이.라는 설이  많아. 게이와 관련된 사건도 있어. 헌데 이건 불기소나 무죄야 혐의가 없어. 게이는 저당시 일리걸이야. 
해서리 이사람이 심리학자들의 최고 연구 과제 대상인거야. 프로이트 의 언급이 그런거걸랑. 대체 저런 사람이 말야. 저런 심리는 대체 머냐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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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a del Verrocchio's bronze statue of David was most likely made between 1473 and 1475. It was commissioned by the Medici family. It is sometimes claimed that Verrocchio modeled the statue after a handsome pupil in his workshop, the young Leonardo da Vinci.

 

스승 베로키오.가 메디치에 수주받아 만든 다비드 상. 저 모델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21에서 23세때.

 

 

 

 

 

 

인물이 너무나 좋아 어릴때 부터. 저 스승 베로키오.도 참 사람 좋아. 레오나르도가 여길 잘 안떠나. 스승도 저 자질을 알고 시기심이 날정도로 지만. 다 알려주는겨.

 

 

이 조선빠닥은. 저런 사제간도 없어. 이들은. 혼자 자기만아는 애만 참 별거 없는거. 뺏길까봐. 해서 이땅바닥에 역사가 사라진겨 이게. 하기사 이해가 돼. 왜냐믄. 멀 알려주면. 이게 재수없으면 또 지들 이념 잣대로 고발 고소 해서리 관아 잡혀가는게 너무나 흔하니까. 이젠 머 정치하는애들이 가짜뉴스 고발 고소 허위사실 고발고소. 지 이념 잣대 아니면 다 적폐 고소 고발. 저러면서 민주 주의. 옘병.

 

아 정말 끔찍한겨. 헌데 저따위 애들을 여전히 저리 빨아대니. 반일감정이 먼 성경이야 이건. 

 

 

지렁이만 낳는겨 저게. 지렁이들이 온갖 미디어를 다 잡고 앉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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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라이벌.이라 는 미켈란젤로.는 전혀 달라 그 냄새가.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or more commonly known by his first name Michelangelo (/ˌmkəlˈænəl/; 

Italian: 

[mikeˈlandʒelo di lodoˈviːko ˌbwɔnarˈrɔːti siˈmoːni]; 6 March 1475 – 18 February 1564) was an Italian sculptor, painter, architect and poet of the High Renaissance born in the Republic of Florence,

 

미켈란젤로.가 태어났을때 레오나르도.는 23세야. 아버지뻘이야. 

 

아빠 이름이. Ludovico di Leonardo Buonarroti Simoni. 레오나르도 부오나로티 시모니.의 루도비코. 

 

 

저게. 레오나르도.는 노멘. 이고. 부오나로티.는 노멘.이란 씨족에서 나온 방계씨족이고. 시모니.는 또다른 코그노멘. 이야. 나름 무슨 지역이니 성질을 같이한 시모니. 라는겨.

저 이름을 보면. 이 사람 집안은 귀족집안이야. 이 부오나로티스들은 토스카나의 마틸다 백작부인 후계라 했다 하는데 아무도 안믿다 미켈란젤로는 믿었다. 하지만. 저 말이 맞아. 적어도 백작 집안의 이름이야 저건. 
아빠가 작은 은행을 했다가 망하다가 토스카나 지방의 사법 행정 직들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겨. 집안이 나름 좋아 이때도. 돈도 있어. 엄마가 여섯살에 병으로 죽어. 엄마도 족보가 있어. 그리고 유모네 집안에서 살아. 아빠는 대리석 채석장에 작은 농장도 있어. 이 채석장이 미켈란젤로를 만들어. 

"If there is some good in me, it is because I was born in the subtle atmosphere of your country of Arezzo. Along with the milk of my nurse I received the knack of handling chisel and hammer, with which I make my figures."[7]

 

 

고향이 아레초.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빈치. 다 가운데 피렌체를 두고 양쪽에 떨어져 있어. 유모가 주는 우유랑 함께. 즉 유모가 또한 저거 보면. 디게 사람이 좋은 사람이야. 저기서 대리석을 만지면서 자기만의 이데아를 창조한겨. 

 

 

미켈란젤로 초상화는 코가 삐뚤어져있어. 

 

 

In 1488, at age 13, Michelangelo was apprenticed to Ghirlandaio.[16] The next year, his father persuaded Ghirlandaio to pay Michelangelo as an artist, which was rare for someone of fourteen.[17] When in 1489, Lorenzo de' Medici, de facto ruler of Florence, asked Ghirlandaio for his two best pupils, Ghirlandaio sent Michelangelo and Francesco Granacci.[18]

 

13살에 기를란다이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베로키오 스승 작업장에 드나들던 그 기를란다이오. 레오나르도 나이때 이사람도 저리 낀겨. 그리고 로렌초.가 캐스팅하는게 1489년. 레오나르도가 밀라노 심부름 간 후야. 이때 여기서 애들이랑 싸워서리 코가 그대로 삐뚤해. 

 

 

 

 

미켈란젤로는. 그림이 아니라 그래서 시작은 대리석. 조각가야. 

 

 

 

인물이 너무나 별로야 레오나르도와는 달리. 해서 나쁘게 말하믄 심하게 구질 구질 구질 한게 미켈란젤로야. 잠자는거 먹는거에 관심이 없어. 배만 채우면 돼. 그리고 오직 그림.

 

연애에 그래서 이사람 시들이 있는겨. 글도 시도 막막 남은겨. 이게 참 재민는건데. 

 

 

구질구질 미켈란젤로는 여자가 연애가 신성한지 어쩐지  밤에 멀 몰래 치는지 알길은 없고

 

레오나르도.는 인물 너무나 좋은 사람이 의외로 연애사가 그리 없어. 여자가 관시미가 없어. 글타고 남색은 아닌듯  기인듯.

 

 

 

저게 저 두사람의 분기점인데.

 

 

어쨌거나 미켈란젤로의 그 그림들은. 해서 신성으로 더 더 들어가는겨. 먹는거 자는거 관시미가 없는건. 삶에 대해 관시미가 없는거야. 시들은  머 아주 삶을 예찬한듯 한 것도 있지만. 이사람은 궁극적으로 러닝 투 다이.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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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는 온갖 세상을 다 해부를 해. 설계를 하고. 이사람은 말야. 술레이만이 그 골든 혼. 그 해협. 콘스탄티노플 함락때 철망으로 막은 거 입구 바다.에 다리 설계도 해줘. 술레이만은 포기를 해. 불가능하다고 기술상.

 

 

이사람은. 정체성이 머냐 하는거야. 아니 그 시대 사람들의 정체성은 머냐. 이게 웃겨.

 

레오나르도는 오스만 이던 말던. 문명을 더 고도화 해주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야. 오스만도 사람 빈치 피렌체인 나도 사람. 

 

 

밀라노가 설계해달라 하믄 해주는거고. 체사레 보르자가 요새 공격 해달라 하믄 지도 아주 상세하게 그려주는거고. 단지 그리고 새기고 하면서 그것에서 삶을 배우는 것인지 죽음을 배우는 것인지 그게 중요한거지 자기가 어디 누구의 영지 의 정체성이다. 라는 것은 약해 보면.

 

 

저때 이탈리아. 이탈리아인. 이란건 없어. 체사레 보르자 혼자야. 마키아벨리가 그 다음이야.

 

 

 

쟤들은 그런 벽이 서로들 없어. 저게 유럽이야. 그게 중세야. 

 

일본애들만해도 옆의 영지는 외국이라했어.

 

 

 

Before 1497, Italian Renaissance humanism had little influence outside Italy. From the late 15th century, its ideas spread around Europe. 

 

 

1497년 전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이탈리아 밖에서는 영향이 거의  없었다. 서기 1500년 직전후에나 유럽에 퍼졌을 뿐이다. 

 

 

 This influenced the German Renaissance, French Renaissance, English Renaissance, Renaissance in the Low Countries, Polish Renaissance and other national and localized movements, each with different characteristics and strengths.

 

 

해서 저게 독일땅. 프랑스. 영국. 독일 저지대. 폴란드.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 각각 다른 성격과 힘의 정도로.  다 퍼졌다.

 

 

 

 

저기서. 종교개혁에 마르틴 루터에 칼뱅에. 잉글랜드도 같은 맥락으로 틴데일. 틴들 성경 나오고 성공회 나오고. 그러다가 바로코 로코코란 희안 괴기한 양식들이 나오고. 해서리 다시 돌아가자 고전주의 신고전주의 나오고. 하다가 로마니즘 낭만주의 나오고 계몽주의 나오고 산업혁명으로 가는거야.


저게 르네상스야. 르네상스.는 저곳만 쓰는겨. 동양빠닥은 일본 외엔. 르네상스란 지금도 전혀 없어. 여긴 인문주의 가 아냐. 이념 랄지주의. 사회 민주 노동 세 글자가 합해서리 지들만의 평등한 바바리안 천국땅을 만들겄다는 주의. 랄지뿐이지.



저때 말야. 저기에 앤 불린. 이 있었어. 



다음에 하자. 힘 다 빠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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