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therine Swynford, Duchess of Lancaster (born Katherine de Roet,
c.
1350 – 10 May 1403), also spelled Katharine or Catherine,[2] was the third wife of John of Gaunt, Duke of Lancaster, a son of King Edward III. She had been the Duke's lover for many years before their marriage.
캐서린 스윈포드. 곤트의 존. 의 세번째 부인.
곤트.의 존 은 에드워드 3세의 자식이야. 자식이 많아. 흑태자 동생들중 하나야.
이사람이 랭카스터 창업자야. 즉 랭카스터.는 시작이 얼마안돼. 플랜태져넷의 헨리2세에서 나왔으니. 요크 도 마찬가지.
부인들이 다 죽고. 세번째 부인.이 캐서린이 정식부인이 돼. 이여자가 원래 미스트리스. 였어
mistress. 이게 시녀. 가 아냐. 머 상궁에 시녀에. 앤불린이 상궁 이니 머 제인시모어가 상궁이니. 어쩌고 저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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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istress is a relatively long-term female lover and companion who is not married to her partner, especially when her partner is married to someone else.
미스트리스.는 코트. 귀족애들 킹이니 듀크니 얼 카운트 들 애들 집. 이게 맨션.이야. 맨션이 있는 땅이 매너. manor 야. 매너 가 기본 영지 단위야.
킹의 궁전의 중심을 코트 court 라 해.
저기들에 있는 그 대빵들의 여자야 저건. 창녀는 몸만 파는거고. 저건 러버. 애인이야. 얘들은 시녀가 아냐. 걍 독고다이로 군주들하고만 노는애야. 애인이야 완전히. 해서리 여기서 나온 자식들은 일리걸. 일리지티메이트.
illegitimate
불법인겨. 후계자 자격이 안돼. 대부분의 illegal 한 자식은 대게 이 미스트리스.에서 나온겨.
A courtesan was originally a courtier, which means a person who attends the court of a monarch or other powerful person.
courtier. 코티어. 이건 코트.즉 정치판의 중심이야 군주들이 있는. 조정이야. 외정 내정을 다 포함해 저건. 저기의 사람들. 여기에 근무하는 사람이야. 이건 그래서 넓게 말하면 모든 국무위원들도 코티어야. 여기의 여자들도 코티어야. 즉 행정에 참여하는 사람이야 이건.
여기서 코티즌. 을 분류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해 코티어.를 코티즌 이라고도 해. 여기서 여자 코티즌이 있어. 이 여자는 애인이 아냐. 대빵의 마누라를 상대하는 여자가 있어. 정무에 간섭도 하고. 머 남들 뒷담화 여자얘기도 막하고 여자들 입소문얘기도 하겄지. 코티즌. 이라고도 해 이 여자도. 해서 미스트리스.와는 전혀 달라.
Courtesans with their servants by Lancelot Volders
저기서 흰옷입은 두여자가 코티즌.이야. 검은 옷 입은여자들이 써번트. 잡일하는 여자들이야.
A lady's companion was a woman of genteel birth who lived with a woman of rank or wealth as retainer.
저들이 또한 컴페니온. 이야. 여자 코티즌을 콤패니온. 이라고도 불러. 부유한 여자들이랑 어울리는 여자인데. 좀 급이 낮아. 마님들 상대하는 여자들이야. 이들은 젠트리. 계급이야. 젠트리의 남자를 잰틀맨 하는겨. 이 잰틀맨은 noble 노블 노빌리티.라는 귀족이 아냐. 귀족딱지를 얘들에겐 안줘.
A lady-in-waiting or court lady is a female personal assistant at a court, royal or feudal, attending on a royal woman or a high-ranking noblewoman.
코어트 레이디. 레이디 인 웨이팅. 저 대빵들의 거주지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다 코트 레이디야. 코트에 있는 레이디. 이 코트.란 말을 근본적으로 이해를 해야해. 이 코트.란 곳은 대빵이 정치하고 거주하는 곳. 이야. 여기서는 에티켓이 있어야해. 에티켓이 코트에서의 몸가짐.인겨. 코트에서 나온겨 에티켓이.
코트.는 예전 썰했듯이. 로마 군단인 레기온. 아래의 대대장. 코호트. 야. 저게 군대용어야. 코호트.들은 레가투스.라는 군단장에 충성서약을 해야해. 그 현장이 코트야. 그걸 중세에 저 언어와 형식을 갖고 간겨 얘들이.
저걸 막막 구분도 하지만. 걍 기본 개념이 저래. 저들은 서번트. servant. 라는 노예비스무리가 아냐. 청소빨래심부름 하는 사람들이 아냐. 귀족이야 귀족. 대부분. 컴페니온.은 저중에서 급이 제일 낮아. 얘들은 귀족이 아냐. 걍 귀족 부인들이 심심할때 놀아주는겨.
Maids of Honour[1] are the junior attendants of a queen in royal households. The position was and is junior to the lady-in-waiting.
메이드. 는 저 코트 레이디. 에서도 쥬니어야. 그래도 이들은 귀족이야. 어린 귀족여자가 배우기 위해서 메이드.를 시킬수도 있는거고. 여하튼 귀족이야.
저 중세의 귀족들은 말야. 그래서. 귀족교육을 받는거야.
앤불린.은 저 귀족 출신이야. 얘 신분이 간단치가 아나 이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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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내명부에 왕비 밑에 빈. 귀인 소의 숙의 소용 숙용 소원 숙원. 얘들은 다 첩이야 첩.
Concubinage (/kənˈkjuːbɪnɪdʒ/) is an interpersonal and sexual relationship in which the couple are not or cannot be married.
저걸 쟤들이 콘큐바인. 급이야. 쟤들은 미스트리스.야. 헌데 저짝애들의 미스트리스.가 더 편한거지.
조선시대는. 저런 코트레이디.니 코티즌.이니 메이드 오브 아너. 니 하는 건. 없어 없어.
시녀.니 상궁이니 얘들은 저들을 보좌하는. 저기 껌은 옷입은 서번트야. 서번트의 대빵이 상궁일뿐이야.
저걸 막막 저리들 번역하민서리. 마치 말야. 조선이나 저기나 아주 똑같다 이랄지 망상질이걸랑 저게.
조선은 아주 미개한 나라라 했잖냐 짐께서. 저 여자들 관리하기 위해서 유너크.란 환관들을 만든겨. 쟤들은 유너크. 라는 환관은 없어. 왜냐믄. 둘 필요가 없어. 마너크 라는 영주나 킹은 저리 여자들을 첩들을 둘 수가 없어. 미스트리스. 만 두는겨. 여기서 나온 자식은 아무런 권한이 없어.
전혀 달라.
A chamberlain (Medieval Latin: cambellanus or cambrerius, with charge of treasury camerarius) is a senior royal official in charge of managing a royal household.
채임벌린.이란 남자 집사가 있을뿐이야. 얘도 아주 귀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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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코트.에서 나오믄 너무 위험한겨. 저 코트.가 문명인거야. 저기서 나올때 위험해서리 나가면서 보호하는겨. 그게 에스코트.야
A person, vehicle, or group accompanying another for protection or as a mark of rank.
Origin
Late 16th century (originally denoting a body of armed men escorting travellers): from French escorte (noun), escorter (verb), from Italian scorta, feminine past participle of scorgere ‘to conduct, guide’, based on Latin ex- ‘out of’ + corrigere ‘set right’ (see correct).
저게. 라틴어 코리게레. 코렉트의 어원. 에서 나가다. 는 어원이라지만. 저게 아냐. 저건 잘못된 풀이야. 코트에서 나갈때 손잡아주는겨.
에스코트.는 그래서 드러운 말이야 여자입장에선.
A call girl or female escort is a sex worker who (unlike a street walker) does not display her profession to the general public;
콜걸. 이 여자 에스코트야. 성매매 하는 여자야. 코트에서 나온여자야. ㅋㅋㅋ.
에스코트 해주다. 웃긴 콩글리쉬야 이게. 그 여자를 하치리로 보는겨.
저걸 예의바른척 쓰는거지 서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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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캐서린 스윈포드.가 미스트리스. 였어. 러버. 그러다 부인들 다 죽고. 이여자가 정식 결혼한겨. 왜? 기본적으로 귀족이야. 이미 애들도 낳았어. 나은 자식은 일리걸. 일리지티메이트. 에서 리걸.리지메이트.가 되는겨.
저 세번째 부인. 미스트리스. 에서 나왔던 자식의 핏줄이 이어이어서리. 튜더를 만든 헨리7세인겨.
헨리7세의 엄마.의 아빠의 아빠의 엄마냐 더 아빠의 엄마냐. 이 끝의 엄마가. 하필 저 미스트리스. 출신인 거야 이 헨리7세가.
얜 랭카스터.로 안쳐주는겨. 장미전쟁에서 요크.가문이랑 싸울때. 아 난 랭카스터랑께. 하미 걍 끼들은거야 얘가. 그리고 나서리. 요크가문이 이기고. 리차드3세 가 지 조카 에드워드 5세가 일리걸 이라고 몰아내고 킹.하민서리 그 두 꼬마들을 탑에 가둬서리 지금도 유골을 못찾잖냐.
할때 같은 요크가문이지만 열받는겨 리차드의 형인 에드워드4세.를 따르던 무리들이. 여기에 붙은게 헨리7세야. 탑에 갇힌 에드워드5세 동생들의 큰누나가 적의 가문인 랭카스터의 미스트리스 핏줄인 헨리7세와 결혼하면서리. 저 삼촌 리차드3세를 내쫓고. 튜더가문이 이어지는 거걸랑.
할때 말야. 이 헨리7세가. 요크가문 여자랑 결혼도 했고. 이 요크도 플랜태저냇.이지만. 자기는 미스트리스 핏줄인겨. 유럽의 군주들이 이 헨리7세를 인정을 안해. 미스트리스.의 핏줄이라고. 정식 결혼 전에 낳은 자식은 일리걸. 일리지티메이트야. 적법하지 않아. 이게 핸디캡이야 시작부터 헨리7세는.
해서리 말야. 며느리를 아주 신중하게 고른겨. 되도록이면 잉글랜드 핏줄이면서 쎈 곳.
그게 아라곤의 캐서린. 이었던거야.
이 아라곤의 캐서린.은 엄마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인데. 이 여자가. 아빠가 카스티야의 후안2세인데 이 사람 엄마가 랭카스터야. 즉 이사벨라의 친할머니가 랭카스터에서 왔어. 이 친할머니의 아빠가 또한 저 랭카스터 창업자인. 에드워드 3세의 자식 곤트의 존. 이야
헨리7세와 같은겨 쭉 올라가믄. 헌데 헨리7세는 세번째 부인인 미스트리스.의 핏줄이지만. 저 이사벨라의 친할머니는 정부인이야. 카스티야의 콘스탄체. 해서리말야. 헨리7세가 잉글랜드 킹 할때. 카스티야의 이사벨라가 머라고 하는겨. 저거 내꺼다 주장하걸랑. 헨리7세보다 내가 더 정통. 헨리7세는 결혼전 낳은 일리지티메이트. 적법하지 않고. 나는 리지티메이트. 적법한 저쪽 핏줄이다.
헨리7세가 이게 제일 골치아팠어. 정식 결혼 전의 미스트리스.의 비적법했던 핏줄인걸. 거기에 카스티야의 이사벨라.까지 들쑤시는겨. 이걸 자식들 결혼으로 해결한거야. 잉글랜드 입장에서도 랭카스터 본 핏줄녀자가 와서리 좋고 이사벨라도 자기딸 보내서 좋고.
헨리8세에게 원래 다섯살 많은 형이 있었어. 웨일즈의 프린스. 아서.
Arthur Tudor (19/20 September 1486 – 2 April 1502) was Prince of Wales, Earl of Chester and Duke of Cornwall. As the eldest son and heir apparent of Henry VII of England,
Catherine of Aragon (Spanish: Catalina; 16 December 1485 – 7 January 1536), was Queen of England from June 1509 until May 1533 as the first wife of King Henry VIII; she was previously Princess of Wales as the wife of Henry's elder brother Arthur.
Henry VIII (28 June 1491 – 28 January 1547)
아라곤의 캐서린이 아서보다 한살 많아. 헨리8세보다 6살 많아.
Catherine and Arthur met on 4 November 1501 at Dogmersfield in Hampsh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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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 days later, on 14 November 1501, they were married at Old St. Paul's Cathed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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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married, Arthur was sent to Ludlow Castle on the borders of Wales to preside over the Council of Wales and the Marches, as was his duty as Prince of Wales, and his bride accompanied him. The couple stayed at Castle Lodge, Ludlow. A few months later, they both became ill, possibly with the sweating sickness, which was sweeping the area. Arthur died on 2 April 1502; Catherine recovered to find herself a widow.[24]
1501년. 15살 16살일때 결혼을 해서리. 아서.는 웨일즈의 프린스.걸랑. 저길 둘이 간겨. 다음해 4월2일에 아서가 죽어. 스웨팅 시크니스. 이게 지금도 먼병인지 몰라. 저당시 전염병인데 몇십년 확 돌다가 그이후 기록에 없어. 나중에 앤불린.이 헨리8세랑 만날때도 런던에 똑같은 저 땀나는 병이 돌아. 앤불린도 이병에 걸렸다가 살았어. 저때 캐서린은 갈이 걸렸는데 살고. 신랑만 죽은겨. 졸지에 과부.
네달 정도를 살은겨. 저때 캐서린 나이 17살.
헨리7세의 입장에선. 저 아라곤의 캐서린.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 차남인 헨리8세.에게 보내는겨.
아 헨리8세 입장에선.
Henry VII renewed his efforts to seal a marital alliance between England and Spain, by offering his second son in marriage to Arthur's widow Catherine.[11] Both Isabella and Henry VII were keen on the idea, which had arisen very shortly after Arthur's death.[14] On 23 June 1503, a treaty was signed for their marriage, and they were betrothed two days later.[15]
당시 스페인은 레콩퀴스타 끝나고. 요한나와 막시밀리언의 필리프.가 펠리페 되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랑 합쳤어. 무척 강국이야. 이사벨라 입장에선 잉글랜드에 대한 미련이 있어 친할미 핏줄로.
아서 죽고나서. 바로 차남이랑 다시 결혼시키는겨.
이때 문제가 말야. 형수걸랑. 아무리 죽었지만. 형의 마누라였걸랑. 누가 봐도 거시기 하지. 교황이. 이전 둘 사이에 교미가 없었으면 특별히 재가 해주마 하는겨. 캐서린은 당근 어리고 몇달 살지도 않고 교미가 없었슈 하는거고. 코트 레이디.도 불러 증인세우고. 말이 안되지 이건. 애들 나이가 몇인데.
걍 다 서로서로 형식 갖추는겨. 교황이 아마 이때 알렉산더 6세 죽고 율리우스2세. 교황이 세상사 다 보는 사람이걸랑. 다 서로 돕고 사는거지 머. 신세 주는거고 신세 갚는겨 사람사는게. 하는거걸랑. 나중에 돌아오는게 있거찌 하믄서리.
저래서 결혼하겨 헨리8세가. 아라곤의 캐서린.이랑.
그리고 헨리7세는 곧 죽어. 1509년. 18살에 왕위에 올라 헨리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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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had set his hopes upon a direct appeal to the Holy See, acting independently of Cardinal Wolsey, to whom he at first communicated nothing of his plans related to Anne. In 1527 William Knight, the King's secretary, was sent to Pope Clement VII to sue for the annulment of his marriage to Catherine, on the grounds that the dispensing bull of Pope Julius II permitting him to marry his brother's widow,
헨리8세가 앤불린.을 대놓고 쫓아다닌게 1526년이야. 앤불린을 처음본건 4년 전이야. 앤불린이 잉글랜드 코트.에 기념일에 가장무도회때 연기자로 등장하걸랑.
1527년에 자기 사신을 직접 보내는거야 로마에. 이때 클레멘스7세 교황.
On 10 September Knight saw Wolsey at Compiègne, and at his directions went on to Venice to watch for an opportunity to get access to the captive Pope Clement VII.
저때 간 사신이 윌리엄 나이트. 9월에 출발한겨. 베네치아로 가.
저당시가 로마약탈. 사코디로마 1527. The Sack of Rome on 6 May 1527 5월6일 다음이야.
카를5세 세상이야. 프랑수아가 덤비다가 밀라노에서 잡혀서리. 플랑드르. 부르고뉴. 다 준다고 하고 풀려났어. 이때 로마 교황이 클레멘스7세. 레오10세가 죽고 다음교황이야. 사촌이야. 역시 메디치 가문이고.
카를5세의 오스트리아 스페인.이 너무 무서운겨 쎄고. 이젠 카를 을 상대로 한 동맹을 구성해. 이게 코냑 동맹 코냑 리그. 프랑스 베네치아 피렌체 밀라노. 다 들어와. 잉글랜드.도 들어와.
밀라노는 카를이 다시 먹었지만 이전 몇십년 프랑스가 지배해서리 세력이 있어. 프랑스가 롬바르디로 치고 들어가고 베네치아가 왼쪽에서 치고 들어와. 카를5세가 이때 교황에게 메세지. 너 교황령에 주위 애들과 함께 다 내편으로 만들어서리 어쩌고 저쩌고 협박 하는거지.
이 클레멘스7세가 여기에 벌벌 떨은겨. 얘가 안움직여. 이때 교황이 움직였으면 저 꼬냑 동맹은 이겼어. 이 교황령들과 용병들이 발을 다 빼. 베네치아는 특히 손해를 제일 많이 봤어. 베네치아는 앞으로는 절대 교황이 주도하는 동맹은 참여안하겠다 맹세를 하고 이 이탈리아 전쟁에서 이후로 발을 빼.
프랑스는 밀라노만 다시 되 찾고. 프랑스로 돌아가.
갑자기 덩그러니 카를의 독일땅 용병과 스페인애들만 남은겨. 얘들이 로마까지 치고 내려가. 헌데 보급이 안되서 다들 거지에 심하게 굶었어.
The imperial troops were 14,000 Germans, 6,000 Spanish, and an unprecise number of Italian infantry.[1] The troops defending Rome were not at all numerous, consisting of 5,000 militiamen led by Renzo da Ceri and 189[2] Papal Swiss Guard. The city's fortifications included the massive walls, and it possessed a good artillery force, which the Imperial army lacked. Duke Charles needed to conquer the city swiftly, to avoid the risk of being trapped between the besieged city and the League's army.
당시 독일용병1만4천. 스페인 6천. 로마 방어는 스위스 용병 2백명에 총 5천명. 이때 카를 쪽 리더가 죽고 대타인 애가 지도력이 없어. 쟤들이 로마를 함락하고 걍 일이천명 수비병들 죽이고. 강간하고 약탈하는겨 저날.
이때 클레멘스7세 교황이. 6개월 동안 로마 안에 산탄젤로 성에 감금되다가 도망을 가 변복을 하고. 그리고 도망다니는겨.
이 상황에 저 윌리엄 나이트. 가 로마 교황에 편지주러 가는겨. ㅋㅋㅋ. 고생 무지하게 해. 죽을뻔도 했어.
어찌저찌 해서 로마 안에 가보니. 없어. 거기중 아무개에게 편지를 전해주민서리. 이거 꼭 교황님께 부탁드려유.
자기가 형수랑 결혼한거를 특별히 허가한 이전 교황의 승인을 취소하란거지.
Leviticus 20:21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21 “‘If a man marries his brother’s wife, it is an act of impurity; he has dishonored his brother. They will be childless.
레위기 20장 21절. 남자가 자기의 남자형제의 부인과 결혼하면. 그것은 부정한 행위이다. 그는 그의 형제에게 모욕을 준거다. 그 사이에선 자식이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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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8세가 아들이 없었어 캐서린과의 20년 사이에서. 얘가 저걸 들고 나온거야.
헨리8세는 찐하게 독실한 카톨릭이야. 얘들 어릴때의 교육은 상상을 초월해. 그 교육과목이나 신앙놀이는. 하루에 미사를 다섯번시켰대.
앤불린은 영어 불어 라틴어 등등을 해. 앤불린은 아빠가 얼. 백작이고. 엄마가 듀크. 공작의 딸이야. 아빠가 외교관이야 헨리7세의 심복이고. 아빠가 어릴때 앤불린을 네덜란드땅에 보내. 안트베르펜 부근의 귀족집안에 레이디 코트.겸 놀아주면서 공부좀 시켜달라고. 너무 좋아하는겨 얘를. 여기서 저지대의 르네상스와 인문주의를 배워 꼬마일때. 그리고 프랑스에 시집가는 헨리8세 누이따라서리 거기 메이드를 해주면서리 프랑스 코트에서 저기 문화를 다 접해.
In the Queen's household, she completed her study of French and developed interests in art, fashion, illuminated manuscripts, literature, music, poetry, and religious philosophy.
얘들은 이 동양빠닥이랑 차원이 달라. 교육이. 배우는게.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는 그냥 기본이야. 저 아라곤의 캐서린이 헨리형 아서랑 처음 만날때 라틴어로 대화를 해. 헌데 서로 발음이 전혀 달라서리 이해를 못해 처음엔. ㅋㅋㅋ.
앤불린이 저때 프랑스와 벨기에땅에서. 종교에 눈을 떠. 종교개혁 마틴루터 1517. 부터 요이땅 그게 아냐. 이미 3백년전 부터 다 스몄어. 후싸이트들이 또 돌고. 성경에 대한 해석은 이미 다 깨우친겨 다른 방향으로. 루터 만 유별났던게 아냐.
제일 궁금한게 말야. 헨리8세가 언제부터. 카톨릭에 대해서 반기를 들었냐는거야. 저건 물론 로마카톨릭 체제에 대한 반기 이지만. 더하여 저때 말야 역시 성서해석을 다시 하는겨.
The Tyndale Bible generally refers to the body of biblical translations by William Tyndale (
c.1494–1536). Tyndale's Bible is credited with being the first English translation to work directly from Hebrew and Greek texts. Furthermore, it was the first English biblical translation that was mass-produced as a result of new advances in the art of printing.
틴들 성경. 윌리엄 틴들.이 히브리어 그리스어 텍스트를 보고 구약과 신약을 영어로 번역한겨. 이게 1535년.
Luther had published his German translation of the New Testament in 1522, and he and his collaborators completed the translation of the Old Testament in 1534,
마르틴 루터.가 쫌 빠르지만. 저 틴들이 이사람이 번역한 걸 보고 영역한게 아냐.
저 영역 한 성서가 신에 대한 해석이. 땅으로 내려오게 해. 신에 대한 귀속감. 그 끈을 좀 얇게 만들어. 저기에 은총. 이란 말은 없어. 아가페.를 채러티 에서 러브.로 바꿔. 이딴 이야긴 기니 넘어가.
우리네 한글번역은 말야. 저기엔 그 말. 그 글자들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어. 일본번역을 걍 아무생각없이.
저 단어 하나. 글자 하나 에 대한. 느낌이 없어 이땅바닥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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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8세가 처음으로 각성을 한겨 저게. 언제부터냐 이게. 이게 앤불린. 이란 거야.
앤불린. 이 어마무시한 여자야. 이 여자가 영국의 종교개혁. 성공회를 만든 여자야. ㅋㅋㅋ.
그 기여도가 어느정도냐.해서 이 앤불린 을 또 추종하는 이들은 꽂혀서리 막 과장 비스무레 한듯 보이지만. 맞아 저말이. 헨리는 어쨌거나 앤불린 때문에 저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은거야.
얘가 그래서. 성서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라고 자각을 한겨. 저 레위기 20장21절. 완전한 자기이야기.에서 이게 확 꽂힌겨. 이 불을 지핀게 앤불린이야.
자기의 과거 저 형과 캐서린.이 없었으면. 그리고 앤불린.이 잉글랜드도 저 대륙과 같은 종교전쟁을 찐하게 했을거야. 물론 이후부터 명예혁명까지 어찌보면 이들나름 종교전쟁이지만 저곳과는 그 무게가 좀 달라 종교.전쟁에선.
앤불린이 찐한 종교개혁 성향이 있걸랑. 모든 로비가 이여자에게 들어와 이미 결혼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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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입장에선 저거 당근 동의해주고 싶어. 교황은 느글느글이야. 다들 돕고 사는겨. 저게 머라고.
아 헌데 말야. 사코디로마. 를 당했어 교황이. 더군다나말야. 저 캐서린이 카를5세의 외숙모야. 저 캐서린이 이사벨라 카스티야 할머니가 무척 아꼈던 막내 외숙모님이셔.
교황이 저걸 승인을 할 수가 없는겨. 이전에 킹에 대들다가 다구리당해서리 교황이 죽었었어. 그래서 아비뇽에 갔어. 아 헌데 이젠 킹도 아니고 어마무시 엠퍼러여. 이미 털렸어. 아 헌데 이 와중에. 결혼 무효 시키달라니.
교황이 속에서 피눈물이 나는겨. 로마 약탈당한것도 슬픈디. 카를이 옆에서 으르렁 거리지.
The Supreme Head of the Church of England was a title created in 1531[1]for King Henry VIII of England,
헨리8세가. 최고의 짱. 잉글랜드 교회의. 란 타이틀을 만든게 1531년. 이건 앤불린과 결혼 전이야. 파문 당하기 전이야.
저건 무슨 의미냐. 로마 교황정을 무시하는겨. 저때부터 이미. 로마의 수도원 수녀원들 다 없애길 작정한겨. 로마 카톨릭을 몰아낼 작정을 한겨 훨씬 이전에. 저건 단지 앤불린.과의 결혼문제가 아냐. 이미 저걸 통해서 각성이 되면서. 신앙에 대한 자각을 얘가 하게된거야.
이건 그래서 앤불린과 전혀 다른 문제야 이제부터. 헌데 그 제공.은 앤불린이야.
그러면서. 로마로 가는 모든 재산이 잉글랜드 킹.에게 오는거야. 특히나 수도원 수녀원의 재산은 로마교황 직속이야.
저들 재산이 어마무시한겨. 저게 잉글랜드 코트에 나중 엄청난 자산이 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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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말야. 결국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기본 성질은 다르지 않아.
마르틴 루터.도 얘의 가장 큰 반박의 대상은 로마 교황정이야. 얜 교회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가만보믄. 해서 페이쓰 얼론. 이 잉글랜드 저당시 종교개혁에 더하여 얘들도 페이쓰 얼론.이야. 굿 워크 랄지 해서 죄 사하고 천당가고 그러기 위해서 교회가고 그러면서 교회가 타락한단다. 은밀한 다락방 구석에서 기도하라. 거기가 교회니라. 라고 막막 소리가 나오는겨.
헌데 저런 소리는 또 안돼. 왜냐문. 루터입장에서도 돈이 안되지 저런건. 해서 얘도 저 교회 애 대한 말이 너무나 뿌얘. 머 교회를 없애란겨? 라고 질문하면 그건 아니구요 할껴.
해서 얘도. 교황 없애고. 군주가 챙겨라여 교회를. 걍 딱 까놓고 말하믄.
헌데 저게. 저걸. 헨리8세가 한겨. 아주 간단하게.
그럼 앤불린. 을 보면 말야. 볼린. 하면 안돼. 불린 해야해. 왜냐믄 말야.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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