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First Italian War of 1494–1498 or King Charles VIII's War
- 2.2Second Italian War or King Louis XII's War (1499–1504)
- 2.3War of the League of Cambrai (1508–1516)
- 2.4Italian War of 1521–1526
- 2.5War of the League of Cognac (1526–1530)
- 2.6Italian War of 1536–1538
- 2.7Italian War of 1542–1546
- 2.8Italian War of 1551–1559
65년간의 이탈리아 전쟁을. 시기별로 나누면 저리 8개로 나누는데.
이 이탈리아 전쟁부터. 본격적인 국제전이 돼. 이 시작이 복잡미요에 얽히고 섥힌듯 하지만 말야. 이게 모든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여기서 다 일어나. 저 쪼끄만 땅바닥에서. 저 이탈리아 반도가 한반도 보다 쪼끔 커. 아주 쪼~~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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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ty of Florence was established in 59 B.C. by Julius Caesar.
피렌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만든도시야. 카이사르가 콘술. 집정관에 있을때 만든겨.
When Caesar was first elected, the aristocracy tried to limit his future power by allotting the woods and pastures of Italy, rather than the governorship of a province, as his military command duty after his year in office was over.[49] With the help of political allies, Caesar later overturned this, and was instead appointed to govern Cisalpine Gaul (northern Italy) and Illyricum (southeastern Europe), with Transalpine Gaul (southern France) later added, giving him command of four legions. The term of his governorship, and thus his immunity from prosecution, was set at five years, rather than the usual one.[50] When his consulship ended, Caesar narrowly avoided prosecution for the irregularities of his year in office, and quickly left for his province.[51]
카이사르가 콘술.을 하고. 원로원이 카이사르 싫어하걸랑. 콘술이나 속주의 일명 총독이나. 재임당시엔 피소당할 수 없어. 재임 끝나고 고소해서리 재임시절의 죄를 물어서리 피박을 씌우걸랑.
카이사르도 이걸 아는겨. 원로원도 카이사르가 콘술 일년 끝나면 걍 땅들이나 줄라고 했걸랑. 속주에 파견안할라 했걸랑. 저거 고소해서리 엿먹이게. 헌데 카이사르.걸랑. 로비 해서리. 그나마 저 속주중에서 후져보이는. 갈리아인들이 거주하는 시스알파인. 로마에서 보기에 시스. 이쪽. 즉 이탈리아 북부야. 롬바르디 지역. 여기와 아드리아해 일리뤼쿰.의 프로콘술.이 되는겨. 콘술했던 사람.이 속주에 총독을 할때 프로. 이전에 한번(했던) 콘술. 해서 프로콘술.
나중에 로마가 제국될때. 땅이 넓어져서리. 프라이토르.란 법무관 경험자도 속주를 하게 해. 이를 프로프라이토르. 라고 하는겨.
피렌체.는 카이사르.가 만든 도시야. 그리고 저 위의 롬바르디. 역시 말야. 카이사르.가 다음해 부터 프로콘술.로 저길 다스렸어. 처음 5년.에서 한번 더 연장해서리 10년 한거야.
저기가 갈리아 원정하러 갈때. 카이사르의 기지야. 갈리아전쟁 9년하면서. 저기서 출발하고 돌아오고 군단 보내고 겨울되면 쉬러 온 곳이야. 그곳이 라벤나야.
원로원에서. 더 이상 연장 안해줄꺼걸랑. 프로콘술 짜르는겨. 갈리아 정복한것도 쌩까임 당하는겨. 짤리면 바로 카이사르는 고소당하고 모욕 당하는겨. 그게 스키피오의 경우였어.
스키피오.는 정말 개인적으로 그건 모욕에 치욕이야. 그냥 참은겨. 아마 속으로 골병들고 죽었을꺼야. 애들이 정말 스키피오 한텐 너무한겨 저거. 그게 대카토야. 그리고 그 소카토에 브루투스 엮이고 카이사르에게 지들 못난걸 풀었을 뿐이걸랑. 그걸 이미 눈치를 깐겨.
저 라벤나에서 군단병 모으고. 주사위는 던져져야 한다. 함시롱 루비콘을 건넌겨.
할때 말야. 저기는 갈리아땅이야. 시스알파인은. 저때는 저기는 바바리안 취급했걸랑. 다 갈리아인들이야. 이 사람들에게 카이사르의 십년 향수는 이게 찐한겨 이게.
카이사르. 위대한 인간이야 이인간이.
나중에 카이사르에겐 저 시스알파인의 갈리아인들에게만 로마시민권을 다 줘. 줘도 돼. 저들은 카이사르에 의해 문명인이 되었어.
저긴 늦어 로마보다는. 헌데 카이사르가 십년 있으면서. 갈리아땅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저기가 문명이 스미는겨 카이사르 덕에.
그러다가. 위기의 3세기때에. 동서분할 디아르키 하면서. 수도를 밀라노.로 옮기고. 그리고 백년더 지나서리 라벤나로 옮기걸랑. 즉 저때 말야. 로마가 저기 이탈리아 북부에 심어지는겨. 얘들이 그냥 움직였겟어. 로마를 고대로 카피하는거야 저 밀라노.와 라벤나 에 가서.
저게 서기 3백년 전후야. 로마가 여기에 심어지는겨. 이 이탈리아 북부에. 물론 그래도 이민족들 침입 열라게 하고 쇠망하는거지만 말야 저기서. 그래도 그 이후. 롱고바르디 킹도 수도는 밀라노 아래 파비아.야 저기가 이탈리아의 중심인거야 저기 북쪽이.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피렌체를 중심으로 저 북쪽에서 터진 이유야. 비록 그 이전 서로마 망하기 전후부터해서리 샤를마뉴 아비 소피핀이 롱고바르디애들 몰아내고부터 서기 8백년에 샤를마뉴가 황제관쓰러 올때부터에서야 그나마 정신좀 차리기 시작했지만. 그후 6백년걸쳐서리. 고대 로마.를 복원한겨 저기가. 그 문명의 정신이 저기에 스민겨. 로마가 이탈리아걸랑. 잊혀진 로마를 . 잊혀진 유전자를 되새겨서리 저기서 복구를 시킨겨 이들이. 여기에 그리스도 가 더해진거야.
즉 중세에. 또한 그래서 시작이 로마 일 수 밖에 없었고. 즉 고대로마.를 익힌 사람들이 중세를 꽃피울수 밖에 없었고. 그때 그 사람들은 피렌체를 중심으로 그 위에 있었던거야. 여기서 르네상스가 터진거야.
이 르네상스.가 지금 의 세상 문명을 만든거야 이게.
역사적으로. 꼭 저기여야 했던거야. 이미 로마 라는 도시는. 서기 286년이냐. 밀라노로 옮기면서. 끝난겨. 그리곤 여긴 종교쟁이들의 도시가 된겨 시안하게. 그러면서 잊혀진 고대로마의 유전자는 북쪽으로 간겨 밀라노 베니스 피렌체 삼각지대로.
캬 멋진 말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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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라고 해서리 꼭 사람들이 말야. 이탈리아 몇몇 도시들만 꼭 찍는데. 저기들은 그중에서도 유별났을 뿐이야. 이탈리아 전체 반도가 말야. 다 저랬어. 약간의 수준차이는 있겠지만.
루도비코. 의 조카. 잔.이 죽고 말야. 이 잔의 부인이 아라곤의 이사벨라. 지만. 루도비코가 이 여자에게 땅을 줘. 저 이탈리아 반도 뒤꿈치에 바리. 라는 도시야. 여기서 이여자가 또한 르네상스를 하는겨. 이여자 딸이 보나 스포르차.야 엄마한테서 배운 문명으로 이여자가. 폴란드의 지기스문트1세의 부인이 돼. 이 폴란드의 지기스문트.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카먼웰쓰 시작의 첫 킹이야. 이여자가 저기 가서리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황금시대 여는데 일조를 하는겨.
라파엘로.가 피렌체 옆에 우르비노. 도시 출생이지만. 여기도 말야. 피렌체 못지않아.
밀라노.도 과거 로마가 이전해서 시작한 고대도시야. 스포르차.의 루도비코가 여기서 르네상스를 일으키고 레오나르도 도 여기에 잠시 오지만 말야. 여기도 원래 그 지식층이 두꺼운겨.
이탈리아 반도가. 대부분 다 저래. 저기서 저 삼각벨트가 눈에 띌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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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때 말야.
The University of Bologna (Italian: Università di Bologna, UNIBO), founded in 1088
세계 최초의 대학 볼로냐 대학이. 볼로냐. 여기가 피렌체 위야. 여기 설 수 밖에 없는겨 이게.
The University of Padua (Italian: Università degli Studi di Padova, UNIPD) is a premier Italian university[1] located in the city of Padua, Italy. The University of Padua was founded in 1222
파도바 대학. 베니스 옆이야.
The University of Naples Federico II (Italian: Università degli Studi di Napoli Federico II) is a university located in Naples, Italy. Founded in 1224,
나폴리 페리데코 대학. 프리드리히2세 황제가 세운겨. 저 사이에 파리대학. 옥스포드 캠브리지.가 있어.
쟤들이 만든겨 지금 세상을. 저 이탈리아 북부에서. 저 대학을 동양빠닥의 국자감이니 성균관이니 그걸 디리미는 는 야 그건. 저건 대학이 아냐. 걍 인간들을 개로 로 만드는 유교경전 달달 외우게 하는. 없느니만 못한겨 저건.
이탁오가 천명하신겨. 저 유교는 인간을 개로 만들 뿐이었구나.
동양빠닥에 그래서 그나마 제일 읽을 만한게. 삼국지야. 저 삼국지를 모종강본 보지만. 모종강은 이탁오 꺼를 걍 뻬껴 쓴거 뿐이야. 저 삼국지 배반 배신이라 애들 읽지 말라는 들이 유교에 쩔은 들인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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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이문열 꺼만 봐. 제대로 번역한거 없어. 최근 번역 나온거 보믄 그 고리타분한 문체 개짜증. 박머시기 그게 그나마 제일 원전 번역한거라 하니 주장하지만. 아 번역 못해 진짜 이땅바닥 들.
어떤 이는 제대로 된 번역 삼국지. 하민서리 민족작가 자랑. 야 증말. 번역한것도 아냐 저건. 걍 요시카와 에이지의 주작 삼국지를 봐라 차라리 쟤껄 볼라믄.
야 어드래 소설을. 표절을 하냐 그래.
저들의 저 부도덕 적폐의 정도는. 정말 하늘을 찔러서리 우리은하계를 벗어날 정도니.
그럼서 . 지들이 정의요. 민주요. ㅋㅋㅋ. 골때리.
이땅바닥엔 작가가 없어. 선생이 없어. 조선건국이래 칠백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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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덟텀을 저리 두는데. 저걸 그야말로 간단히 썰하면 말야.
1492년에 교황 순수 이노센트. 인노켄티우스8세.가 샤를 8세에 황금사과를 던지고. 당해에 죽어. 나폴리 먹으라고. 밀라노의 정통성 약한 루도비코 일 모로.가 샤를 8세를 한번 더 찔러. 저 나폴리 먹으라고.
샤를8세는 어려서 누나가 섭정하고 할때 오를레앙. 로렌. 브리타니 공작들이랑 매드 전쟁도 했걸랑. 그러다가 이제야 스무살 넘어서리. 이얍 멀 하고 픈겨. 항상 킹이나 통이 되믄 멀 할라고 해서리 이걸랑. 아무것도 안하고 사람들 걍 자유롭게 살게 내비두믄 되는데 말이지.
프랑스가 쳐들어와. 무혈입성해. 피렌체 드가기전에 한번 약탈 심하게 하고 공포를 심어. 본보기를 보여주는겨. 이후부터는 나폴리까지 쉬었어 그래서. 헌데 저때 루도비코 스포르차. 밀라노 공작이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아 잘못 부른거구나. 피렌체 지날때 밀라노는 그제야 재무장을 해.
이때 말야. 루도비코.가 섭정할때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불러서리. 자기 아부지 창업자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를 기념하는 거대한 기마동상을 주문을 해. 이때 청동을 모아놨걸랑. 헌데 이걸 녹여서리 무기를 만들어. 결국 이 프로젝트는 수포로 끝나. 미켈란젤로는 어차피 저 스케치론 주물을 못만들거다 하며 비웃는건지 걱정하는건지.
교황도 정신차려. 이때 교황은 그 문제많은 욕 마이 처먹는 알렉산더 6세야. 체사레 보르자 아부지야. 위대한 인간이야 이 인간이. 나중에 썰. 이때 체사레 도 볼모로 같이 잡혀서리 샤를8세의 나폴리 행에 가다가 탈출해. 그리고 군대를 조직하는겨 이때 체사레가.
나폴리가는 명분은. 샤를이 내세운건. 나폴리를 기점으로 레반트 십자군 가겠다는 거였어. 누가 믿냐 그말을. 나폴리 약탈하고. 그소식 위의 중북부에서 다 듣고. 피렌체 빼고. 교황과 동맹을 맺어서리 쫓아내 프랑스를. 프랑스는 퇴각하고.
피렌체는 샤를 입성할때. 사보나롤라.의 시대야. 축제야 얘한텐. 이때 메디치 가문이 다 도망가. 민주공화국이 서. 민주공화국. 인간들을 죽이는 거야. 인민이 먼저야. 곧 다 굶어죽어. 쟤들의 공통점이야. 사람들을 굶겨서리 평등하게 만드는거지. 서민팔이야 역시. 항상 설교할땐 연약한 아이와 여자를 맨앞에 앉혀. 얜 나중에 죽이자.
저게 1차야. 1494-1498
프랑스 가고. 사노라롤라.는 그 이전 왜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이랑 불놀이하다가 뽀록난 얘기. 해서리 이때 죽어.
Charles VIII, called the Affable, French: l'Affable (30 June 1470 – 7 April 1498)
프랑스로 간 샤를8세가 죽어. 테니스 구경하다가 말야. 테니스장 입구의 문 기둥이 아니라 기둥과 기둥에 연결한 들보.라 하지. 이게 좀 낮은듯. 고개숙여야 하는 높이인듯한데 이걸 그냥 들이받은겨. 뇌출혈로 죽은겨 결국.
테니스.는 12세기에 프랑스에서 시작. 마너스트리. 수도사들이 심심해서리 걍 장갑이나 머 쥐고 공놀이 하다가. 저 샤를8세 즈음에 라켓을 들은듯해.
자식이 끊겼어. 방계인 오를레앙.의 루이가 킹이 돼. 이전 매드전쟁 괜히 뎀빈거지 어차피 킹 할거. 그래서 매드 라 붙였나.
Louis XII (27 June 1462 – 1 January 1515) was King of France from 1498 to 1515 and King of Naples from 1501 to 1504.
이 오를레앙의 루이인 루이12세 킹은. 특히나 친할머니가 비스콘티 가문 딸이야. 비스콘티가 밀라노 공작을 처음 받을때의 그 딸이야. 이전 샤를은 엄마가 사보이가문이고 비스콘티에 시집갔던 사보이 여자는 우리엄마의 숙모 어쩌고 면 좀 약한데. 얜 그나마 명분이 서걸랑 내세울껀. 억지지만.
어쨌거나 그 전 왕의 유지를 잇는겨. 이탈리아를 먹자. 이건 프랑스의 백년전쟁 이후에 공통적으로 스미는겨 이게.
Maximilian I (22 March 1459 – 12 January 1519) was Holy Roman Emperor from 1508 until his death
저때 황제 막시밀리언은 황제가 아냐. 단지 게르만의 킹.이야. 아부지 프리드리히3세가 헝가리 마티아스랑 싸우다가 비엔나 뺏기고 마티아스 죽고. 나서 이때 얘가 등장하는겨. 늙은 애비는 빠지고 실세야. 얘가 황제되는건 저기서 세번째인 1508년 부터야. 그래도 이전엔 황제 대리.로 여기 이탈리아에 개입을 한거지.
바로 밀라노.를 다시 먹어. 그리고 내려가다가. 문제는 피렌체야. 피렌체.는 불놀이하다가 뽀록난 도미니코 수도회의 사보나롤라.는 죽었지만. 여전히 메디치가문은 쫓겨났고 여긴 리퍼블릭이야. 여전히 프랑스 편이야.
그 사이에. 피렌체가 갖고 있던 피사.에서 봉기를 한겨.
피사.
중세 유럽에 해양도시가. 아말피 피사 제노바 베네치아. 네개를 들어. 아말피.는 더치. 공작령이고 나머지는 리퍼블릭이야. 초기엔 아말피가 제일 잘나갔어. 이 아말피.는 나폴리 아래야. 나폴리가 쑥 들어간 만. 아래에 있어. 여기가 왼쪽을 보고 아가리를 벌리면. 여기가 천장이고 아래턱이 폼페이.야 고 폼페이 반도 맞은편 만.이 아말피야. 여기가 최고였어 서기 천년 전후에. 해상도시는. 헌데 프랑크 애들 불러서리 반도 아래 먹을때 얘들이 이 아말피를 먹어. 프랑크 애들은 해상 무역을 이해를 못해. 그러면서 이 아말피가 시들어.
그 다음이 저기 피사 공화국이야. 서기 천년 즈음에 선거야. 사백년 하다가. 바로 위 제노바랑 싸우는겨 또한. 그러면서 제노바에 먹히고. 제노바를 먹은 밀라노의 비스콘티가문이 이걸 피렌체에 팔았어. 그러면서 리퍼블릭은 없어지고 서기 1400년대 들어서면서 피렌체께 된겨.
프랑스 샤를이 와서리 어수선할때 얘들이 독립선언한겨.
이탈리아 전쟁이란. 이전 썰했듯이 말야. 밀라노의 시작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와 그 다음 섭정해서리 듀크가 된 루도비코.가 피렌체의 메디치. 위대한 로렌초와 그 할배.가 동맹맺으면서 잘 지내다가. 이 로렌초가 죽으면서. 저기 북부가 분열이 된겨. 이때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는 저 이삼대 걸치면서 잘 지냈걸랑. 이게 깨진겨 로렌초의 죽음과 함께. 그러면서 샤를8세가 들어온겨. 이때 뭉치지를 못한거지
그래도 저때 로렌초의 힘으로 말야. 피렌체가 강국인겨. 이미 분열이 되었어. 저걸 중심에서 누가 묶지를 못해. 교황이 이때 잘 했으면 좋은데. 이 교황이 감정적이걸랑 어느 교황이나. 그리고 또한. 믿을 만한 상대들이 아닌거야 서로들. 해서리 로렌초가 위대했던 건데 그 할배랑. 그 상대였던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랑은.
교황은 말야. 여전히 문제가 말이지. 저 교황령이야. 로마냐 지역까지의 교황령. 즉 아비뇽 교황정에 스키즘 끝난 서기 1417년. 이지만. 이미 저 교황령들의 도시들이 교황의 힘에서 벗어난겨 저게. 저걸 교황이 갖고 오는게 얜 제일 관심사야. 그래서리 나폴리의 조안나2세 에게 또한 돈좀 달라 한거고. 군대가 필요한겨 결국. 헌데 용병들은 이전에 썼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잖오 왜 그 팔인의 성인 전쟁 피렌체. 자기들이 직접 군대를 꾸려야 하는겨. 이시기 교황들의 제일 관심사야 이게.
피렌체가 쎄. 피사가 들고 일어났어. 이젠 온갖 합종연횡 이 벌어지는겨. 이 이탈리아전쟁은 온갖 배반과 동맹의 시기야 이게. 전국시대 소진과 장의의 그 은 여기에 끼지도 못해.
밀라노와 베네치아가 얘들을 지원해. 막시밀리언이 여길 이미 개입을 해. 그 와중에 프랑스 루이가 왔어. 피렌체는 여전히 프랑스가 언덕이야. 프랑스가 피사를 진압하러 가. 헌데 잘 안돼. 헌데 루이입장에서 가만 보니 말야. 이 피렌체 들이 자기가 여기 오기까지 멀 해준게 없어. 피사는 관시미도 없고 저 피렌체를 조져 말어. 하다가 적 만들면 안되니 걍 나폴리로 내려가.
루이12세의 직접 상대는 아라곤이야. 이때 아라곤은 이사벨라의 카스티야가 부인땅이야. 레콩퀴스타 끝나고 쎈 듯. 내려가면서도 찝찝한겨. 쟤들을 이길수 이쓰까?
해서리 이 병딱이가 말야. 아라곤하고 협상을 해.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나폴리는 프랑스. 고 아래 아풀리아와 칼라브리아 전부는 아라곤이 먹어.
이때 나폴리는 이전 샤를8세 내쫓고. 아라곤의 같은 가문애가 킹이었걸랑. 헌데 좀 멀지.
저 아라곤의 페르디난도.는 이거 웬떡이여 하는겨. 저 나폴리랑은 같은 가문이어도 안친하걸랑 멀어 촌수가. 그냥 준다는데 걍 가는겨.
해서리 내려가서리 있던 킹 내쫓고 저길 프랑스와 아라곤이 들어선겨. 헌데 말야 협상이란게. 이게 말이란게 디지털식으로 명확한게 아니걸랑.
중세의 협약들이 다 저래. 협약 협정 하지만. 그게 전쟁 서로 빨랑 끝내려는 명분이지. 윗대가리들은 걍 대충 단어 하나 말 뿌옇게 던지고 마는겨 이건 니땅 저건 내땅. 협약이란건 의미가 없어. 걍 임시변통일 뿐이야.
이 이탈리아 반도 아래에서 서로 붙는겨.
By 1503 Louis, having been defeated at the Battle of Cerignola on April 28, 1503[26] and Battle of Garigliano on December 29, 1503,[27] was forced to withdraw from Naples, which was left under the control of a Spanish viceroy, General Gonzalo Fernández de Córdoba.
저 체리뇰라 가릴리아노. 두곳이 남단에 띄엄띄엄이야. 나폴리. 아풀리아. 이걸 스페인애들이 이긴겨.
이때 불운한 메디치의 피에로
Piero di Lorenzo de' Medici (15 February 1472 – 28 December 1503),[1]called Piero the Unfortunate, was the gran maestro of Florence from 1492 until his exile in 1494.[2]
얘가 로렌초의 아들이걸랑. 로렌초 메디치의 삼형제중 제일 못난 첫째 피에로. 얘가 샤를8세 올때 도망나와서리 피신해있다가. 정작 저 전쟁에 껴서리 프랑스 편을 드는겨. 도망가다가 죽어 저때.
저게 2차 Second Italian War or King Louis XII's War (1499–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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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12세 이 병딱이는 결국 남좋은 일만 시키고서리 이탈리아를 뜬겨. 밀라노만 불안불안 갖고 있고. 이걸 다들 욕질하는거지 저 개 걍 혼자 쳐 내려가서 먹으면 될껄 아라곤은 왜불러서리 개. 아 쪽팔리지. 얘도 이걸 알게되는거지.
쪽팔린체로 걍 짱박혀 있는겨. 다시 갈려 하믄 또 누구가 불지피줘야지 가걸랑. 그 누구가.는 역시 교황.
하튼 이놈의 교황이 결국 다 말아먹은건데. 결국 저 교황령이야. 앞에 썰한.
Pope Alexander VI, born Rodrigo de Borja (Valencian: Roderic Llançol i de Borja
[roðeˈɾiɡ ʎanˈsɔl i ðe ˈbɔɾdʒa], Spanish: Rodrigo Lanzol y de Borja
[roˈðɾiɣo lanˈθol i ðe ˈβoɾxa]; 1 January 1431 – 18 August 1503), was Popefrom 11 August 1492 until his death.
알렉산더 6세 교황. 샤를 8세부터 다 겪은 교황이야. 이사람이 아들 체사레 보르자 포함 사람들이랑 밥먹다가 죽어. 식중독인듯. 이때 체사레.도 침대서 꼼짝을 못하고 스페인 감옥으로 잡혀가. 이게 이탈리아의 끝.의 시작이야.
아빠 교황이 아들 시켜서리. 저 교황령을 싸그리 수중에 넣었어 무력으로. 이 체사레.는 역시 암살 껀도 있고 소문 안좋지만. 이때 제일 이탈리아에 필요한 사람. 이라고 마키아벨리는 말을 해. 그게 맞고.
알렉산더6세의 반대파가 율리우스2세. 피우스 3세 교황은 바로 죽고. 바로 이 율리우스2세가 교황이 돼. 아주 보르자 가문 하면 이가 갈리는 사람이야.
Pope Julius II (Italian: Papa Giulio II; Latin: Iulius II) (5 December 1443 – 21 February 1513), born Giuliano della Rovere, and nicknamed "The Fearsome Pope"[1] and "The Warrior Pope"
1503 to his death in 1513
이 교황이 가장 하고싶은건. 이전 보르자. 체사레가 수중에 넣은 교황령 도시들을 갖고 오는겨. 다 체사레 부하들이 영주들인데 교황령을 벗어났어. 누구한테 부탁할까 하다가 베네치아.를 선택을 한거지. 베네치아 쨈봉하는거지. 다 이기고 베네치아가 찾아줘. 그리고 세금 얼마 내겠소 하는겨 자기들이 영주하면서.
율리우스2세는. 그걸로 안된다. 아예 다 달라는거지. 베네치아는 그리 못하는거고. 줄때는 언제고 . 고생 했구만.
베네치아가 이때 저 교황령들 뿐만 아니라. 위 오른쪽 해변까지 올라가. 지금 우디네. 고리치아. 저기가 합스부르크 가문 경계걸랑.
The circumstances were set for Pope Julius to form the League of Cambrai on December 10, 1508, in which France,[29]the Papacy, Spain, the Duchy of Ferrara and the Holy Roman Empire agreed to restrain the Venetians.[30] Although the League destroyed much of the Venetian army at the Battle of Agnadello on May 14, 1509,[31] it failed to capture Padua.[32]
해서 교황이. 다 부르는겨. 프랑스. 합스부르크. 스페인. 이게 캉브헤 동맹.이야. 저기서 캉브헤 리그 코냑 리그 하면 이건 프랑스야. 교황이 항상 주모자고 교황과 동맹은 프랑스야. 프랑스 땅이름이니.
아무리 베네치아.라도 상대가 안되는거지. 거의 다 뺏겨. 베네치아.가 교황이랑 협상을 해. 교황이 전쟁 중단 선언해.
헌데. 프랑스 루이12세가 지난 번 쪽팔림에 더하여. 이때 신난겨. 기회고. 교황 무시하고 교황령을 공격하는거야.
베네치아와 교황이 연합해서리 프랑스를 막아.
Following a year of fighting over the Romagna, during which the Veneto-Papal alliance was repeatedly defeated, the Pope proclaimed a Holy League against the French in October 1511.[33] This league rapidly grew to include England, Spain, and the Holy Roman Empire.
프랑스에 그래도 안돼. 이젠 프랑스에 대항하는 동맹들을 맺어.
합스부르크 가 부른 스위스용병들이 밀라노를 점령하고. 스포르차 가문을 세워 다시.
On January 1, 1515, Louis XII also died[39] and was succeeded to the throne of France by his nephew, Francis I. Francis I continued Louis XII's war against the League of Cambrai in Italy by leading a French and Venetian Army against the Swiss and routing them at Marignano on September 13–14, 1515.[40]
루이12세가 죽었어. 아들이 없어. 딸의 남편. 발루아 방계야. 프랑수아 1세. 이어서리 계속 해.
이땐 또 베네치아.가 프랑스랑 동맹해. 그리고 이들이 스위스 용병들을 이기고. 프랑수아1세가 밀라노를 다시 차지해.
By the treaties of Noyon on August 13, 1516 and Brussels, the entirety of northern Italy was surrendered to France and Venice.
결론은. 프랑스와 베네치아.의 승리야.
베네치아를 부른 교황. 그 베네치아를 몰아내려 전부 다불러 동맹. 베네치아 이기니 그 와중 이탈리아 먹으려는 동맹의 프랑스. 그 프랑스에 붙은 베네치아. 가 합스부르크 를 이긴겨. 전장의 중심은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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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 of the League of Cambrai (1508–1516) 이게 세번째 단락. 캉브레 동맹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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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야. 이제 선수가 바뀐거야.
Maximilian I (22 March 1459 – 12 January 1519) was Holy Roman Emperor from 1508 until his death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언은. 저 캉브헤동맹때 황제관을 쓰러 로마에 왔다가 저기에 참전한거야.
루이12세는 죽었어. 황제 막시밀리언도 죽었어.
Charles V (Spanish: Carlos; German: Karl; Italian: Carlo; Dutch: Karel; Latin: Carolus; French: Charles Quint; [a] 24 February 1500 – 21 September 1558) was ruler of both the Holy Roman Empire from 1519 and the Spanish Empire (as Charles I of Spain) from 1516, as well as of the lands of the former Duchy of Burgundy from 1506. He stepped down from these and other positions by a series of abdications between 1554 and 1556.
황제기간 1519 - 1556.
Francis I (French: François Ier) (12 September 1494 – 31 March 1547) was King of France from 1515 until his death in 1547.
Henry II (French: Henri II; 31 March 1519 – 10 July 1559) was King of France from 31 March 1547 until his death in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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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VIII (28 June 1491 – 28 January 1547) was King of England from 1509 until his death. Henry was the second Tudor monarch, succeeding his father, Henry VII.
여기서 재밌는게. 잉글랜드의 헨리8세야.
지금까지 20년 전쟁은 시작에 불과한겨. 다음 타자들이 말야. 중세에 제일 쎈 애들이야. 서로.
여기에 오스만의 술레이만
Suleiman I (Ottoman Turkish: سلطان سليمان اول Sultan Süleyman-ı Evvel; Turkish: Birinci Süleyman, Kanunî Sultan Süleyman or Muhteşem Süleyman;[3] 6 November 1494 – 6 September 1566), commonly known as Suleiman the Magnificent in the West and Kanunî Sultan Süleyman(Ottoman Turkish: قانونى سلطان سليمان; "The Lawgiver Suleiman") in his realm, was the tenth and longest-reigning Sultan of the Ottoman Empirefrom 1520 until his death in 1566
엄청. 매그니피슨트 딱지 붙는 술레이만 1세.
이건 월드워 1.2 보다 더 재밌어 이게. ㅋㅋㅋ. 야 인간들이 이 전쟁을 너무 몰라.
이후에는 로마약탈. 사코디로마 1527년. 으로 걍 로마. 이탈리아.는 끝이난겨 이게.
.카를5세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와 스페인의 결합으로 나온 아들이야. 갑자기 어마어마한 제국이 된거야 이게. 신대륙도 있어.
거기에 프랑스는 완전히 낑긴 형국이 된거야. 좌우가 적이야. 이전에도 피레네 넘어의 스페인과는 항상 전쟁이었어 저긴. 나바르 킹덤은 그사이 낑긴거고. 얘들이 제일 불안한거야.
이탈리아는 갑자기 저 나폴리에 시칠리아도 다 합스부르크가 된겨. 프랑스는 달랑 밀라노 뺐겼다가 갖고오고만 말았어.
저때 황제 선출때. 프랑수아1세도 출마를 해. 교황 레오10세가 자길 밀어줄줄 알았어. 헌데 교황도 카를5세 편 들수 밖에 없지 . 얘 혼자 부들부들 한겨.
카를5세가 황제가 되고. 19세야 얘가 이때. 프랑수아는 6살 많아. 형이야. 팔팔한 20대. 헨리8세는 프랑수아보다 3살 많아. 카를보다 9살 많아.
헨리8세의 마누라가 아라곤의 캐서린. 카를 5세의 엄마 미친년 요안나의 여동생이야. 즉 이모야. 헨리8세 9살 많은 형은 이모부야.
이전의 헨리7세랑 프랑스의 루이12세는 사이가 그나마 좋아. 이전 백년전쟁 서로 잊으려 했걸랑. 헌데 아들 헨리8세가 아라곤의 캐서린이랑 결혼하면서 좀 멀어져. 그래도 헨리8세는 프랑수아랑 잘 지내보려 했지만. 이게 원체 안돼 이놈의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헨리8세는 저때 황제쪽편 들었던겨. 가족도 가족이거니와. 프랑스는 주적이야. 프랑스가 이탈리아에서 전쟁할때 잉글랜드는 프랑스를 치는거야.
프랑스의 동맹은 여전히 스콧랜드야. 스콧아 넌 잉글랜드좀 쳐줘. 스콧 제임스4세가 치러 내려가. 스콧과 잉글랜드도 웬수야 스콧독립전쟁때부터. 항상 졌어. 킹은 인질 두번이나 되고.
저 와중에 헨리8세는 캐서린과의 결혼무효.로 교황과 티격태격 서신교환하고. 앤불린이랑 재혼을해. 카를 5세 삐쳐. 이때 무효 시키지 말라고 교황 압박해. 이때 젤 불쌍한게 교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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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5세가 황제 되고. 밀라노를 다시 뺏아. 프랑수아가 치고 들어가. 밀라노 근처에서 잡혀. 포로가 돼. 이때 프랑수아 엄마가 오스만의 술레이만에게 콜하는겨. 이게 갑자기 때아닌 무슬림이 갑툭튀된겨 그것도 메그니피슨트 엄청난 인간이. 걍 입이 찢어지는겨 얜 이 상황서.
아 아무리 그렇다고 무슬림을. 쟤들도 서로 벙 찌는거지. 얘들은 여 와서 프랑스 남부에서 자리세 뜯어내고. 제발 좀 가주라 프랑스는 연일 빌어. 돈 막막 주고. 웃으면서 가 얘들은. 그러면서 내륙에선 합스부르크를 치는거야 프랑스도 도와준다 함시롱.
저게 결국. 앙리2세에서. 이탈리아를 포기하고. 다시 로타르가 던진 중간의 숙제. 알사스 로렌. 그리고 저지대에서 합스부르크.랑 전쟁하면서 끝나는겨 앙리2세가 죽으면서.
저 와중에 독일 농민전쟁에.
그리고 바로. 프랑스 종교전쟁. 80년 전쟁인 네덜란드 독립전쟁.에 30년 독일종교전쟁이 터져.
이탈리아.가 죽고. 뿌린 불꽃이 저 알프스 넘어에서 번지는거야.
Sack of Rome of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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