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d War (French: la Guerre folle), also known as the War of the Public Weal, was a late Medieval conflict between a coalition of feudal lords and the French monarchy. It occurred during the regency of Anne of Beaujeu in the period after the death of Louis XI and before the majority of Charles VIII. The war began in 1485 and ended in 1488.
매드 워. 저기서 매드.는 미친 이 아니라. 걍 렬렬한. 뜨거운 으로 보는게 나아.
부르고뉴의 용감공 샤를이. 프랑스 왕정에 대항해서리 귀족들 연합한게 퍼블릭 윌. 해서리 루이11세 대항해서리 몽레리 전투. 할 때는 이 퍼블릭 윌은 부르고뉴 영지들 중심이야.
샤를이 죽었어. 루이11세도 죽었어. 샤를 8세가 꼬마야 왕위 오른게. . 이 프랑스 왕가에 귀족들이 반기를 들으면서 또한 동맹을 맺아. 저 퍼블릭 윌.의 부르고뉴가 아냐 이건. 부르고뉴 샤를.은 저 다른 퍼블릭윌 애들이랑 연합하고 싸워 죽은겨. 낭시전투.
저건 걍 뒤에 사가들이 작명한거야. 샤를 을 이기고. 그 로렌 과 발루아의 오를레앙이 뭉친겨 저건. 저게 좀 이상해 보믄. .
Louis XI (3 July 1423 – 30 August 1483), called "Louis the Prudent" (French: le Prudent), was King of France from 1461 to 1483,
Charles the Bold (also translated as Charles the Reckless) [1] (French: Charles le Téméraire, Dutch: Karel de Stoute, 10 November 1433 – 5 January 1477), baptised Charles Martin, was Duke of Burgundy from 1467 to 1477.
루이11세.가 나이 40 정도에 왕 되서 20년 하면서. 이사람의 상대가 부르고뉴의 현명공 필리프에. 아들 용감공 샤를.이야.
이들이 말야. 레반트 십자군 에서 배운게. 기사단 만든겨.
The Order of the Golden Fleece (Spanish: Orden del Toisón de Oro,[1] German: Orden vom Goldenen Vlies) is a Roman Catholic order of chivalry founded in Bruges by the Burgundian duke Philip the Good in 1430
황금양모피 기사단. 나와 이 황금양모피. 아르고호 원정단이 찾으러 간. 이 기사단이 지금도 있어. 부르고뉴 현명공이 만든겨.
The Order of Saint Michael (French: Ordre de Saint-Michel) is a French dynastic order of chivalry, founded by Louis XI of France on 1 August 1469,
성 미카엘 기사단. 루이 11세가 부르고뉴 있는데 나도. 하민서 맹근겨.
부르고뉴는 장2세가 만든 기사단.
The Order of the Star (French: Ordre de l'Étoile) was an order of chivalry founded on 6 November 1351 by John II of France
별기사단 보고 맹근겨. 별 기사단은 잉글랜드 3세가 맹근 가터기사단
The Order of the Garter (formally the Most Noble Order of the Garter) is an order of chivalry founded by Edward III in 1348
이걸 보고 맹근겨. 이 가터 기사단.과 저 부르고뉴가 맹글어서리 스페인에 간 황금양모피 기사단.은 지금도 있어. 최고의 친목단체야 여기가. 육칠백년된겨.
가터. 는 가터벨트의 그 가터. 가터.가 벨트.야. 밴드야. 쫌맨겨. 켈트가 만든겨 이 가터벨트 다리에 밴드하는 패션은. 벨트는 라틴어. 가터는 켈트어. 로마가 만든 벨트.는 허리를 묶는겨. 여기에 패션이 가미된게 거들.이야. 이 허리의 거들이 다리 허벅지로 내려온게 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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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레반트 2백년일때는. 병원기사단 튜튼기사단 템플기사단. 말고도 30여개 기사단이 있어. 대부분 지금 없고. 성묘기사단 병원기사단 튜튼기사단 등 대여섯개는 지금도 있어.
저 이후에. 또 삼사백년동안 만든 기사단이 수십여개야. 저 레반트 수복 명목.에 종교전쟁 명목으로 각 왕조들이나 귀족들이 세우는겨.
저게 결국은 말야. 레반트 이후엔. 오스만 상대 와 프로테스탄트 상대 등 어쩌고 하지만. 저게 또한 자기들 군대 수뇌부인겨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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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저 루이11세와 부르고뉴 용감공 샤를도 죽었어.
Charles VIII, called the Affable, French: l'Affable (30 June 1470 – 7 April 1498), was King of France from 1483 to his death in 1498,
샤를 8세가 13살이야. 엄마가 사보이가문이야.
Charlotte of Savoy (c. 1441/3 – 1 December 1483) was queen of France as the second spouse of Louis XI. She served as regent during the king's absence in 1465, and was a member of the royal regency council during her son's minority in 1483.
사보이의 샤롯데. 루이11세의 첫부인 스콧 마가렛이 죽고. 자식없어. 재혼한 여자. 헌데 이 여자도 루이 죽고 세달 있다가 같은해 죽어.
Anne of France (or Anne de Beaujeu; 3 April 1461 – 14 November 1522) was a French princess and regent, the eldest daughter of Louis XI by Charlotte of Savoy.
누나가 섭정을 하는겨. 이때 나이 22살. 샤를보다 9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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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보이.가문이. 수도가 토리노. turin. torino. 지금 이탈리아야. 밀라노 왼쪽.
저 사보이.가 근대에 이탈리아를 통일을 하는데. 이 사보이가 위치한 지역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야. 알프스를 얘들이 저 경계에서 갖고 있걸랑. 여기가 종교전쟁 부터 이탈리아를 드나들때에 아주 전장의 핵심이자 요충지야. 이 사보이를 누가 갖고 있느냐가 커.
이 사보이는 등장하는게 서기 1003년이야. 이때는 카운티. 백작령이야. 여기가 그 이전 썰했던 부르고뉴.를 삼형제가 나눌때. 프랑스 부르고뉴는 공작.령 나머지 오른쪽 고지대 부르고뉴 저지대 부르고뉴 해서. 이게 아를 킹덤. 이 되걸랑. 이 아를킹덤안에 부르고뉴 백작령.황제에게 받은게 있고. 이 킹덤에서 받은 땅이 사보이 백작.의 시작이야.
이 사보이.는 4백년 카운트.였다가. 공작.으로 오른게 저 즈음이야. 얘들도 저기서 신성로마황제와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서 눈치만 보는겨 저 4백년을. 그러다가 공작.으로 승진을 한거야. 즉 4백년이 별게 없어. 이전은 부르고뉴 지배하에 있던거고.
그러다가 저 샤롯데.가 루이11세에 시집가면서. 부르고뉴도 이기고 신랑이. 해서리 좀 숨이 터진겨. 거기에 아들이 프랑스 왕에 누나가 섭정을 해. 사보이 가 등장하는 시작이야.
여기에 반발하는게 오를레앙. 이야. 발루아.의 두 방계 중 한 세력인 부르고뉴.는 이미 졌어. 고지대 로렌 부근도 낭시전투에서 이기고 독자적으로 갈라는겨. 이 로타르가 받은 가운데가 항상 문제야 내내. 뒤의 태양왕 루이.가 전쟁에 미친것도 그 빌미는 저 가운데 땅이걸랑. 로렌 알사스. 이게 아주 베르됭 조약 삼형제 부터. 해서리. 결국 히틀러까지 가는겨 이게.
오를레앙. 이 찝찝한겨. 쟤들 머 사보이 남매애들이 저거 머여. 거기에 로렌 주위 애들이 끼는겨. 우리 프랑스 아녀. 오를레앙도 그럼. 이기회에 발루아 엎고 오를레앙 왕조 해뿌까. 하는 정서가 저게 합친겨 보믄.
저기에 또 껴든게. 브리타니. 야. 아키탄의 왼쪽. 노르망디 왼쪽. 툭 삐져나온 반도의 땅.
저기가 브레튼. breton 이걸랑. 켈트야 얘들은. 지금도 있어 이 브레튼언어가. 정체성이 쎈겨. 백년전쟁때도 후계자 전쟁으로 잉글 프랑이 나뉘고 또한. 애들도 프랑스 싫다는겨 하민서리 저 매드 전쟁 후반전에 얘들이 뛰어들어. 이 켈트들은 정말 쎄. 게르만 못지않아 저 지금도 살아남은 켈트들은 이 기질이. 웨일즈 스콧 브레튼. 이게 어찌보면 잉글랜드의 힘이야 그래서. 특히나 스콧은 잉글랜드 라는 재료가 또한 없었으면 저 위대한 스콧의 인간들이 나올 수가 없었어.
결국 다 진압이 돼.
저때 브리타니.의 공작이 달랑 딸 하나야. 이 딸이. 또한 이놈의 막시밀리안. 에게 시집갈려 하걸랑. 프랑스 너무 싫어. 막시밀리안은 당시. 부르고뉴의 마리.가 말타다가 꼬꾸라져 죽었걸랑. 재혼시장에 나와서리. 저 브리타니랑 결혼하려 했걸랑. 그러면 브리타니.도 결국 합스부르크가 되는데 말야. 이걸 프랑스가 알고 끊어. 그리고 샤를8세랑 결혼을 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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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게. 저 상냥왕 샤를8세가 서른도 안되서리. 성의 기둥에 대가리가 빠악 부딪혀서리 죽어. 자식이 없어. 이걸 이은게. 저 매드전쟁의 시작이었던. 발루아 방계 오를레앙 가문인거야.
저 매드전쟁에 참전했었던 오를레앙.의 루이가 프랑스 왕이 돼. 얘가 루이12세.
얘 할머니가. 밀라노.를 통합해서리 공작.을 받은 비스콘티 가문이걸랑. 이게 남자끊기고 그 유메이나한 스포르차 가문에게 넘어간겨. 이걸 얘가 달라하믄서리. 저때 스포르차 조카를 암살했다는 둥 하며 소문 자자한 루도비코 일 스포르차.와 전쟁하고 밀라노 공작도 꿰차. 이때가 이탈리아 전쟁 한창일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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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 가문은 다음에 막시밀리언의 딸 마가렛과 결혼하면서. 합스부르크와 끈적하게 가믄서리. 뒤에 킹덤을 세우게 돼. 그러면서 이탈리아를 통일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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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ttle of Crevola was fought in the spring of 1487, between a marauding Swiss army (from the Valais and Lucerne) [1][12] and troops from the Duchy of Milan,[1] for the supremacy of the Val d'Ossola (Eschental) .
크레볼라 전투. 역시나 스위스와 아래 밀라노 접경지대 전투. 스위스애들이 쳐 내려가. 이건 약탈이야. 스위스 병력 천여명이 죽어. 밀라노 농부들이 열받아서리 머리랑 손가락들 짤라서리 모자에 데코레이션하며 다녔다.
The Battle of Calliano was the decisive battle in the conflict between the Republic of Venice and Sigismund of Habsburg also known as the War of Rovereto.
레베르토 전투. 칼리아노 전투. 베네치아.와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
베네치아.가 해상에서 밀리는걸 자기 본토에서 만회하려는겨. 위에가 트렌토. trento 주교령이야. 알프스 산맥이야. 여 바로 위에가 오스트리아의 튀롤 공작령이야. 길게 뻗은. 트렌토 주교가 합스부르크의 튀롤.에게 지원요청하는겨. 베네치아가 습격을 하는거고.
베네치아.가 치고 올라가는거걸랑 산위로. 고지전은 이건 뺏기가 힘들어. 져.
점점점점 이탈리아 내전으로 가는 분위기야 저게.
이탈리아가. 막 르네상스가 터지는 분위기의 지난 사오백년이야 이 중북부는. 이탈리아는 밀라노로 서기 286년인가에 옮기면서리 끝난겨. 그때부터 이민족들세상이고. 비참한겨 여기가. 그러다가 서기 8백년 오면서 좀 나아지기 시작한겨. 물론 무슬림해적들은 계속 난리를 피지만 말이지.
그러다가. 저 백년전쟁이 끝나고. 시선이 이리 오잖아. 그 시작이. 루이11세가 결혼상대로 찍은 사보이.의 샤롯데야. 사보이.를 통해서 이탈리아로 쳐 들어가겠다는 의지야 저게. 그리고 그 자식들이 쳐들어간겨. 이때의 상대가 합스부르크야.
이탈리아 내전은 저 프랑스 애들과 합스부르크 애들이 주연이야. 저기서 다들 휘둘린거일 뿐이고 어디편에 설까 하민서리. 비참한겨 저게. 베네치아는 콘스탄티노플부터 해서리 계속 쪼그라들고. 저기서나마 버티려는거지.
이전에 롬바르디 전쟁.에서 밀라노 베네치아 전쟁하면서. 이때 동맹을 맺어 이탈리아 강국들이. 밀라노에서 저 아래 나폴리까지. 교황이 중간에 서고. 우리네 서로 싸우지 말자. 지금 분위기 뒤숭숭하다. 아 얘들은 천년이상을 슬프게 살았던겨 이제야 살만한데. 낌새를 챈거야 서로. 해서리 전쟁 안한겨. 그 뒤 페라라 소금전쟁 잠시 했지만. 그리고 저 칼리아노.는 내전은 아니걸랑. 합스부르크가 온거지만.
결국 저 동맹 약속이 다 하고. 슬픈 내전에 남들힘에 휩싸이면서 이탈리아는 끝이 난겨.
프랑스의 개입.은 사보이 샤롯데와의 결혼. 합스부르크의 개입은 저 베네치아와의 칼리아노 전투.
이탈리아 전쟁의 불을 지피는겨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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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scovite–Lithuanian Wars (also known as Russo-Lithuanian Wars, or just either Muscovite Wars or Lithuanian Wars)[nb 1] were a series of wars between the Grand Duchy of Lithuania, allied with the Kingdom of Poland, and the Grand Duchy of Moscow.
모스크바 리투아니아 전쟁들.
1492–1494
쟤들은 서기 1500년 직전부터 본격적으로 터지면서. 이게 결국 세계대전까지 오는겨. 4백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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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리투아니아 전쟁.
Muscovite/Lithuanian Livonian 1605–18 (Dymitriads) Smolensk 1654–67 War of the Polish Succession War of the Bar Confederation 1792 Kościuszko Uprising Napoleon's Invasion of Russia November Uprising January Uprising Polish–Soviet 1939
리투아니아.가 요가일라.의 야기에워 핏줄부터. 폴란드랑 한몸이야. 카먼웰스는 이걸 공고히 한것일 뿐이고. 즉 리투아니아 모스크바 전쟁은. 폴란드 러시아 전쟁과 같은 말이야.
폴란드.가 지금 보믄 졸불 어쩌고. 러시아 개개끼 대겄지만.
인간이 말야. 나라가 말야. 저리 사는건. 다 그만한 역사가. 이유가. 있는겨.
저 폴란드 들도. 저리 안 될 수도 있었어. 지들이 자초한겨 저건.
얼마나 좋은 시절이었냐 카먼웰스. 모스트 서린. 이란 딱지도 하사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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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thuanian–Muscovite War encompasses three raids by Algirdas, Grand Duke of Lithuania, to the Grand Duchy of Moscow in 1368, 1370, and 1372.
이후 모스크바 리투아니아 전쟁들Vedrosha (1500) Siritsa River (1501) Mstislavl (1501) Pskov (1502) Lake Smolino (1502) Smolensk (1502)
Year | Area (approximate) | Explan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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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9 | 930,000 km2 (360,000 sq mi) | Largest extent |
1430 | Lost 21,000 km2 (8,100 sq mi) | Lost western Podolia to Poland during the Lithuanian Civil War |
1485 | Lost 88,000 km2 (34,000 sq mi) | Lost Yedisan to the Crimean Khanate |
1494 | Lost 87,000 km2 (34,000 sq mi) | First war with Russia |
1503 | Lost 210,000 km2 (81,000 sq mi) | Second war with Russia |
1522 | Lost 56,000 km2 (22,000 sq mi) | Fourth war with Russia; included Smolensk |
1537 | Gained 20,000 km2 (7,700 sq mi) | Fifth war with Russia |
1561 | Gained 85,000 km2 (33,000 sq mi) | Gained Duchy of Livonia by the Treaty of Vilnius (1561) |
1569 | Lost 170,000 km2 (66,000 sq mi) | Transferred Ukrainian territories to Poland by the Union of Lublin |
1582 | Lost 40,000 km2 (15,000 sq mi) | Livonian War |
1583 | 365,000 km2 (141,000 sq mi) | Territory after the Livonian War |
리투아니아. 1429년이 제일 넒을때. 93만 제곱키로. 지금 벨로루시와 아래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먹은겨. 이때가 비타우타스. 때야. 요가일라.랑 내전한 인간. 요가일라는 폴란드 킹하고. 결국 다 요가일라 핏줄이 갖고가지만.
둘이 사촌이야. 얘들 핏줄이
The family of Gediminas is a group of family members of Gediminas, Grand Duke of Lithuania (ca. 1275–1341), 게디미나스 가문.이야. 요가일라의 야기에워 가문은 여기에서 뻗은겨. 이들 이전에 시작이 1253년.이야. 두세개 가문이 지배하다가 백년만에 얘들이 먹어. 이들이 뒤에 폴란드랑 카먼웰스.를 열면서 첫 킹도 이 야기에워야. 3백년이야.
저 리투아니아.가 150여년 만에 땅이 삼분의 일로 쭐어들어. 그러면서 이제는 폴란드 까지 먹히는거야. 나중엔. 그러면서. 1795년에.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러시아.가 싸그리 다 나누면서 사라져 저 두나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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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강대국 들에 낀 애들의 대표적인 사례야. 잘 못 처신해서 나라가 없어졌걸랑. 저때 카먼웰스는 유럽의 꽃이었어 쟤들 또한.
쟤들은 사방이 쎘어. 위로 스웨덴. 왼쪽엔 튜튼에 프러시아. 아래엔 오스트리아. 오른쪽엔 러시아.
우리네는 달랑 . 중국이 대 지금 미쿡이야. 저 사이에서 버벅 대는겨. 그리고 마치 말야 우리민족끼리. 이 하믄 엄청난 머가 나오는 줄 알아. ㅋㅋㅋ. 웃겨 진짜.
과거엔 걍 중국이라는 울타리에서 편히 놀았다가. 일본에 걍 달랑 멕힌거걸랑. 육백년을 말야. 중국이 위대해. 일본는 미개한 인간들.
저 뇌구조가 지금도 여전한겨 저게.
걍 육백년을 아무런 짓도 아무것도 안하고. 안에서 적폐놀이 소인배놀이하다가 걍 다 인간들 개돼지로 맹글어놓고서리 저 당했음서 말야. 저 을 지금 또 고대로 해 ㅋㅋㅋ
먼 답이 없어 여긴.
.저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저 사이에서 피티겼어. 저러면서 없어지고. 그러면서 지금 다시 아둥바둥하걸랑. 헌데 여긴 말야. 저리 살지도 않았거니아. 그래서 반성도 없거니와 또 옥 같은 반복을 또 옥 같이 하는겨 이 들이 말야. 지폐와 동전으로 저런것들을 여전히 모심질하고.
The Russian Social Democratic Labour Party (RSDLP; Russian: Российская социал-демократическая рабочая партия (РСДРП), Rossiyskaya sotsial-demokraticheskaya rabochaya partiya (RSDRP)), also known as the Russian Social Democratic Workers' Partyor the Russian Social Democratic Party, was a revolutionary socialist political partyfounded in Minsk, Belarus.
Formed to unite the various revolutionary organizations of the Russian Empire into one party in 1898,
러시아 볼셰비키 멘셰비키 애들의 시작. 소비에트의 시작. 러시아 사회 민주 노동 당.
사회. 민주. 노동. 저 세개가 합치면. 그게 그야말로 끔찍한거다 그게.
저을 못해서 안달이야 들.
쏘셜 쏘셜. 히틀러가 환장하는 말이 저따위 쏘셜이다 이 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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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il Aleksandrovich (Russian: Дани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1261 – 4 March 1303) was the youngest son of Alexander Nevsky and forefather of all the Grand Dukes of Moscow.
류릭.이 862년에 노브고로드.에서 시작해서. 아래 키예프.가고. 이때 흑해 주변과 왼쪽 벨로루시땅까지 먹어. 그러다 이게 자잘한 군주령들이 되걸랑. 키예프는 그랜드 프린스. 대군주. 하는거고. 이게 흩어져 없어지고 블라디미르 대군주.가 서고 아래 자잘한 프린스들이 있는겨. 얘들이 뒤에 몽골 골든 호르드. 주치 자식들이 먹고 얘들의 바쌀. 임차인들이 돼.
이때 좀 위에 자리잡은 류릭의 핏줄이 저 다니엘. 이야 모스크바의 다니엘. 얘가 20대에 여기서 마너스트리. 수도원을 세워.
이 시절 말야. 노브고로드.는 위에 있잖아. 여긴 몽골에 침입받은 적이 없어. 나름 귀족애들. 이전 키예프 내려갈때. 여기에 귀족을 꽂아 두걸랑. 보야르 bojar 라 해. 저쪽애들의 듀크.야 굳이. 슬라브어야. 이 보야르. 들이 계속 나름 노브고로드.에서 자리를 잡았어.
키예프 없어지고. 블라디미르.는 몽골의 영지에. 여기에 조공을 바쳐야해.
모스크바.는 몽골 밖이야. 다니엘이 어릴때 아부지로 부터 여길 받았걸랑. 여기서 수도원을 세운겨. 그리고 여길 거점으로 멀 하기를 시작한겨. 노브고로드.도 당근 류릭 핏줄 꺼걸랑. 세월이 흐르면서 멀어진겨 저게. 저것에 대한 주도권 싸움도 하는겨. 당근 몽골애들의 블라드미르.의 대빵에 대한 권력도 자기들 끼리 싸우는겨. 몽골애들은 구경만 하고.
이 다니엘이. 지금의 모스크바.를 시작을 한겨.
Ivan III Vasilyevich (Russian: Иван III Васильевич; 22 January 1440, Moscow – 27 October 1505, Moscow), also known as Ivan the Great,[1][2] was a Grand Prince of Moscow and "Grand Prince of all Rus'".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gatherer of the Russian lands", he tripled the territory of his state, ended the dominance of the Mongols/Tatars over Russia by defeating the Golden Horde, renovated the Moscow Kremlin, and laid the foundations of the Russian state. He was one of the longest-reigning Russian rulers in history.
모스크바.의 다니엘이 죽고 160년 후에. 이반3세. 얘가 노브고로드.를 모스크바 로 갖고 와.
골든호르드 킵차크칸국도. 이반3세때. 끝인겨. 골든호르드.는 아래에서 티무르. 차가타이에서 나온 티무르가 쳐올라오고 왼쪽에선 이 이반3세가 쳐오고 하면서 없어지고 자잘한 칸들이 들어서.
Zoe Palaiologina (Greek: Ζωή Παλαιολογίνα), who later changed her name to Sophia Palaiologina (Russian: София Фоминична Палеолог; ca. 1440/49[1] – 7 April 1503), was a Byzantine princess, member of the Imperial Palaiologos family by marriage, Grand Princess of Moscow as the second wife of Grand Prince Ivan III.
저 이반3세 부인이. 팔라이올로고스 가문의 소피아. 비잔틴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동생의 자식이야. 동생 둘이가 아래 모레아 에서 같이 영주하다가 알바니안들 봉기하고 메메드2세가 진압하고 얘들이 오스만 아래로 들어갔어. 헌데 그중에 동생은. 자긴 비잔틴 황제다 하면서 따로 망명해. 이 동생의 딸이 저 소피아.야 . 형은 메메드2세랑 있다가 수도원에 들어가.
이반3세가. 비잔틴의 소피아.가 마지막 핏줄이람서. 비잔틴 망하고. 이제 저 마지막 핏줄이 모스크바로 오면서. 자기들이 그리스도의 정통 하는겨. 오소독시 정통 하면서. 이게 더 부글부글 하는겨 속에서. 내가 그리스도 정의의 사도. 함시롱. 왼쪽의 리투아니아 폴란드.는 로마 카톨릭 나뽀. 함시롱 얘가 나름 종교전쟁하는겨.
하튼 이 인간이 야기에워 애들 상대하면서 또한 왼쪽으로 땅을 넓히는겨. 이사람때 리투아니아의 땅을 먹어 저 위의 숫자를 보면.
이반3세가 지금의 러시아.를 또한 만든 사람이야. 그래서.
다니엘이 모스크바.를 세우고 이후 부터 이들은 계속 왼쪽 리투아니아랑. 14세기 후반에 세번 이상 전쟁을 하면서 걍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이반3세가 결정적 승기를 잡아 땅을 넓히고.
시작이 누가 먼저냐. 이전엔 몽골애들이랑 리투아니아랑 싸운거고.
In 1368, Algirdas gathered a large army, which included his brother Kęstutis and forces from Tver and Smolensk
1368년도 가 시작이야. 리투아니아.에서 쳐들어간겨 모스크바로. 이때 요청은 모스크바 아래 블라디미르.가 요청하고. 이 블라디미르.는 이반3세 전에 모스크바로 들어와.
여하튼 굳이 시작이 누구냐 . 하면 리투아니아야. 야기에워고. 폴란드야.
저때부터 나라들 없어지는 4백년간 저 두나라는 웬수야 웬수. 리투아니아를 이은 폴란드랑도 그래서 웬수고.
해서리 류릭왕조 마지막의 고난의 시기.에 러시아 다 굶주릴때도 고걸 기회로 폴란드가 또한 처들어가고. 재미져 얘들.
.
다음에하자.
Ivan's destruction of the Novgorodassemb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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