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Judgement of ParisPeter Paul Rubens, c. 1636 (National Gallery, London)

 

 

스타시노스.의 퀴프리아. 에 나오는 파리스의 심판. 다음 책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시작하는 글들이야. 트로이 전쟁에 불을 지르는. 

 

불화의 여신 에리스. eris. 가. 왕따를 당해.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 초대를 못받아. 나중 트로이전쟁 영웅 아킬레우스.의 부모야. 

 

에리스.만 있으면 다퉈. 다툼의 여신. 초대 안해. 열받은 에리스. 황금사과에 글을 쓰고 툭 던져. 세명의 여신 아테나. 아프로디테. 헤라. 사이에. 

 

καλλίστῃ Kallistēi ("To the fairest"). 칼리스테이. 가장 아름다운 년.이 가져라.

 

제일 잘 생긴 남충 파리스에게 결정권을 줘. 누구가 제일 이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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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전쟁의 시작이야. 이전 썰. 넘어가고.
이 일이 말야. 2500년 후인 중세에 벌어져. 이게 이탈리아 전쟁이야. 이탈리아 전쟁은 중세를 끝내고 근세로 가는 가름이야..

The Italian Wars, often referred to as the Great Italian Wars or the Great Wars of Italy and sometimes as the Habsburg–Valois Warsor the Renaissance Wars, were a series of conflicts from 1494 to 1559 that involved, at various times, most of the city-states of Italy, the Papal States, the Republic of Venice, most of the major states of Western Europe (FranceSpain, the Holy Roman Empire and England), as well as the Ottoman Empire. Originally arising from dynastic disputes over the Duchy of Milan and the Kingdom of Naples, the wars rapidly became a general struggle for power and territory among their various participants, and were marked with an increasing number of alliances, counter-alliances, and betrayals.

 

1494년 부터 1559년. 65년간의 전쟁. 이게 보믄 언뜻 이상하고 복잡해보이는 전쟁이야. 헌데 쟤들 전쟁이. 그 바닥을 모르면 이해가 안돼. 이땅바닥에 저걸 제대로 썰 푼 한글이 없어. 아마도. 왜냐믄. 안봤걸랑 짐은. 한글로 설명된 글은. 전혀 안봐. 시간낭비걸랑. 

 

some historians consider these wars the dividing point between modern and medieval times.[68]

 

이전에 중세를 언제까지로 보느냐.에 대한 썰을 짐께서 하셨지만. 짐께선 이 중세가 사코디로마 1527로 본다 하셨걸랑. 위대한 말씀이시지. 중세란 말야. 이탈리아.가 끝난게 중세야. 이탈리아 전쟁이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겨. 이탈리아 전쟁이 근대의 시작이야. 몇몇 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한다. 하는데 저 학자들이 제일 잘 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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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이 전쟁은 딴 것보다 좀 더 디비 파 드리는거야. 구찮지만 짐께서 공덕을 베푸는거지. 저걸 영어쓰는 저짝애들도 자세히 푼게 없어. 쟤들도 잘 몰라 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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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야. 밀라노.를 알아야 하고. 나폴리.를 알아야 해. 저 이전에. 

 

그리고 항상 띵킹해야 할 건 말야. 전쟁이 대체 왜 터지냐 하는걸 띵킹해 항상. 대체 왜 저놈의 전쟁이란게 터졌고 앞으로도 터질 것인가. 를 질문하고 찾아야 해 이건. 이건 인간의 문제고 마음의 문제야 더 가서 거창하게 말하면 신의 문제야.

 

 

전쟁은 앞으로도 터져. 이땅바닥도 곧 비참한 전쟁이 터져. 특히나 저 북조선이 결국 저 전쟁의 근원이야 저게. 쟤들이 전쟁을 일으키게 해. 쟤들과 함께 한 이념의 노예들이 전쟁을 불러 일으킬꺼야. 

 

 

니덜이 정의 라고 자처 하는 그 들이. 악마야 악마. 

 

 

끔찍한거야 저게. 쟤들이 정의자연 착한선비자연 하민서리 또 쇼를 해대는거야 저게. 

 

 

슬픈거야 저게. 쟤들이 빨랑 이 인류에서 없어져야 해. 저 망상족들. 쟤들은 공상도 아냐 망상이야. 저 망상들이 인간들을 몰살을 시켜왔걸랑. 저 을 계속 하는겨 배운게 없이. 왜냐믄. 역사를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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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시작은 말야. 나폴리의 조안나야. ㅋㅋㅋ. 아 이놈의 조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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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250년 황제 프리드리히2세 시칠리아 왕이 죽고. 그 자식 만프레트가 형의 아들을 섭정하는걸. 교황이 부른 성루이의 동생 앙주의 샤를.이 알프스를 넘어서리 와서 죽이고. 프랑스 카페 앙주가 나폴리 킹에 시칠리아 킹.을 하다가 시칠리아는 다시 아라곤이 킹.해 이때 아라곤은 카탈로니아의 바르셀로나 가문이야. 카탈로니아는 아라곤에 들어왔던거고. 이때 카탈란 컴퍼니 용병애들이 와서 시칠리아의 만종때 주역이야. 이들이 아나톨리아로 가서리 비잔틴의 용병으로 오스만 애들 초기애들과 싸우다가 비잔틴애들이 뒤통수 쳐서 천여명이 저녁식사에서 죽고. 

 

할때 말야. 저 나폴리는 그래서 앙주.가 나폴리에서 왕조를 이어가걸랑. 여기에 시집온 헝가리 마리의 손자가 헝가리 샤를1세 해서리 헝가리의 앙주가 또 되고. 저 자식이 헝가리 루이대제. 할때.

 

저때 아들이 끊겨서리. 나폴리는 나폴리의 조안나1세.가 킹을 하걸랑. 1세면 당근 2세가 있겄지 이 조안나 1세와 2세가 문제걸랑.

 

나폴리의 조안나.가 저 헝가리 루이.의 동생 앤드류.랑 결혼을 했는데. 그 앤드류.가 독살당하걸랑. 자기 연인 타란토의 루이.의 엄마랑 짜서리 죽이고. 타란토의 루이.가 킹을 하는겨. 이전 썰. 해서리 앤드류 형 헝가리 루이가 나폴리랑 전쟁하다가 걍 돌아가고. 나중에 조안나를 암살시켰다 했잖오.

 

 

이 조안나가. 나폴리 킹을 40년 하는데. 20 January 1343 – 12 May 1382. 

 

이때가 말야. 아비뇽 교황정 시기야. The Avignon Papacy was the period from 1309 to 1376. 저 아비뇽 교황정 이후. 로마와 아비뇽 분열인 웨스턴 스키즘.이 1417년 까지야. 40년간. 

 

저 나폴리의 조안나 킹.기간이 아비뇽 교황정과 그 이후 웨스턴 스키즘이야. 

 

나폴리의 조안나가 첫 신랑 앤드류 가 애매하게 죽고나서. 애인 타란토의 루이.랑 결혼할때도. 명분이 약한거야. 교황의 승인을 받아야해. 그때 교황은 아비뇽이야. 이 여자가 보통내기가 아니걸랑. 뇌물 주면서 승인을 받으면서 아비뇽의 교황들이랑 끈적끈적한겨. 

 

타란토의 루이도 죽어. 이여자가 결혼을 총 네번해. 그 결혼 승인들을 다 아비뇽 교황들이 해준겨. 
그러다가. 로마에서 콘클라베를 하는겨. 아비뇽에서 나와라. 로마랑 합치자. 선거를 해. 이때 아비뇽에서 내세운 사람이 제노바의 로베르. 이사람은 프랑스 캉브헤. 파리위. 의 대주교. 바닥이 아비뇽에서 키운사람이고. 이사람이 나중 클레멘트7세. 안티교황.
로마에서 내세운 사람이 나폴리 킹덤의 우르바누스 6세야. 
프랑스 추기경들의 표가 분산이 되었어. 이때 선출된 교황이 우르바누스6세야. 

이에반발한 아비뇽 교황정 카디널과 성직자들이 아비뇽으로 다시 가서리. 지들이 뽑은게 저 제노바의 로베르. 클레멘트7세.야 이때부터 웨스턴 스키즘 40년인겨. 
이때 말야. 아주 결정적인 사람이 저 나폴리의 조안나1세.

저때는 로마랑 아비뇽이랑 지들이 교황 교황 하면서 처절한 전쟁을 하는거걸랑. 
나폴리의 조안나는 시작부터 아비뇽 편이야. 여기랑 원래부터 친했걸랑. 아비뇽 교황정은 타락의 교황정이야 이게. 머 교황정은 원래 타락이지만. 타락이란 잣대론. 선거때도 아비뇽을 밀었어 이여자가. 이 여자가 저기서 중심이야. 
나폴리의 조안나.가 자식복이 없어. 아들 하나 낳았는데. 이것도 지가 독살한 첫 남편 앤드류의 자식인데 세살에 죽어. 네번 결혼해도 아들을 못낳았어.
나폴리의 조안나.가 후계자로 내세운 애가. 앙주의 루이.야. 이 앙주의 루이.가 당시 장2세의 차남이야. 장남은 샤를5세 킹이고. 그 백년전쟁 초기에 패해서 인질되었던. 해서 이 차남 루이가. 탈출했다고 자랑해서리 오히려 장2세가 열받아서리 대신 런던에 가서리 환영받고 죽고. 이 루이 동생이 부르고뉴 용감공이고. 
해서리 아비뇽에서는 프랑스 킹의 후원도 쎗던겨. 이 배후에 나폴리의 조안나.가 있걸랑. 헌데 정작 선거에서 지들 표가 분열이 되서리 진겨.

정작 더 짜증나는건. 교황이 된 우르바누스6세야. 야 이 나폴리 킹덤에서 대주교.인데 정작 저년은 프랑스 밀고. 그리고 또 계속 아비뇽이랑 정통성 싸움 붙는거걸랑. 여기에도 연일 저 나폴리의 조안나.는 아비뇽 편을 드는겨.

아주 로마의 교황이랑 나폴리의 조안나.는 웬수가 되는겨. 해서리. 이 교황이 돌아선걸 눈치챈. 아직도 살아있는 앤드류 형 헝가리 루이대제가 사람을 보내서리. 암살을 시킨겨 저 조안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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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가 이때부터 골아파지는겨. 

Charles the Short or Charles of Durazzo (1345 – 24 February 1386)

 

두라조의 샤를. 얘는 초기 앙주 샤를. 즉 나폴리의 샤를1세의 손자 핏줄이야. 먼 핏줄에서 갖고 오는겨. 

 

Louis II (5 October 1377 – 29 April 1417) 

 

앙주의 루이. 나폴리의 조안나.가 후계자로 선언한 프랑스왕 장2세의 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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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나폴리의 조안나.가 웬수야. 당연히 조안나가 선정한 앙주의 루이.가 나폴리 킹이 되는건 인정을 안해. 

 

 

쟤들 둘이 서로 저때 자기들이 왕이다 하는겨.  교황은 두라조의 샤를 편을 들겄지.

 

두라조.의 샤를.이 조안나 죽고 4년후에 죽어. 달랑 아들 딸 하나씩. 아들이 죽어. 누나가 나폴리의 조안나 2세.
이 나폴리의 조안나2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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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na II (25 June 1371 – 2 February 1435) 

Reign 1414 – 1435

 

결혼을 두번해. 첫남편은 합스부르크 가문. 일찍 죽어. 다음 신랑은 프랑스 귀족이야. 사이 안좋아 이혼해. 이여자도 자식이 없어.

 

 

이때도 문제는 교황이야. 여전히 아비뇽과 싸우는 시절. 이 교황이

 

Pope Martin V (LatinMartinus V; January/February 1369 – 20 February 1431)

 

마르티누스 5세 교황. 이사람때 아비뇽 교황정이 없어져. 베네딕투스 머시기가 프랑스에서 쫓겨나고 아라곤 고향가서 내가 교황 하민서리 뒈지고.

 

할때 교황이 나폴리의 조안나2세에게 교황직속군 만들기 위한 돈을 요구하는겨. 얘들이 아비뇽 교황정 총 백년이상 동안. 로마 주교.는 돈이 싸악 마른겨. 기댈 곳이 나폴리야. 헌데 조안나가 싫은겨 그게.

 

이때 조안나의 애인이 Giovanni Caracciolo, often called Sergianni (c. 1372 – 19 August 1432)  지오반니 카라치올로. 얘가 훈수 두면서리 나폴리 킹 행세를 하는거지. 조안나가 마음에 안들어서 얘를 암살해 죽여.

 

조안나.가 교황 말을 안들으니까. 교황이 들쑤시는게. 이전 조안나 할매1세가 후계자 찍었던 앙주의 루이. 핏줄이야. 얘가 나폴리에 쳐들어오는겨. 헌데 얘도 이러다가 교황이랑 안좋으면서 걍 짜져.

 

조안나.의 이전 약혼자가 옆 시칠리아 아라곤 킹이야. 이 아라곤에 기대다가 또 얘랑 사이가 멀어져. 그래서 또 싸워 서로.

 

조안나 2세도 오래 살아. 늙어 죽어 그러다가. 후계자를 정해. 그게 조안나 할매가 점찍었던 앙주의 루이.의 아들.이야 

 

René of Anjou (OccitanRainièr d'AnjauFrenchRené d'Anjou; 1409–1480), also known as René I of Naples (ItalianRenato I di Napoli)

 

앙주의 르네. King of Naples (1435–42; titular 1442–80)

 

Alfonso the Magnanimous KG (also AlphonsoCatalanAlfons; 1396 – 27 June 1458) was the King of Aragon (as Alfonso V), Valencia (as Alfonso III), MajorcaSardinia and Corsica (as Alfonso II), Sicily (as Alfonso I) and Count of Barcelona (as Alfonso IV) from 1416, and King of Naples (as Alfonso I) from 1442 until his death

 

 

하지만. 이걸 옆 시칠리아의 킹 알폰소.가 얘가 조안나2세의 이전 약혼남 이었걸랑. 자기한테 나폴리 준다하고 안주고 앙주에 줬다고 삐쳤걸랑. 얘가 무력으로 치고 들어간겨 나폴리를. 그래서 앙주의 르네.를 얘가 몰아내고. 이때 나폴리의 킹을 하는겨. 르네는 저후 쫓겨났지만 다른 타이틀 많아. 나머지 40년을 예술 즐기면서 잘 살아. 

.저 나폴리.가 말야. 고대 로마. 도시국가보다 먼저걸랑 시작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도시국가야. 
저 나폴리가. 저 중세에는. 무슬림들의 약탈에 시달리걸랑 또한. 그러다가 서기 천년 지나면서 노르망디 애들 불러서리 해적들좀 처리해줘유 해서리 와서리 이들 프랑크들이 저때부터 자리잡은겨. 롱고바르디 애들이 배후에 있으면서 물러나고 프랑크가 자리잡다가. 그 프랑크 남자 핏줄 끊기고 시댁인.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잡고 프리드리히2세까지 왔걸랑. 1250년에 죽으면서 혼란 속에. 앙주의 샤를1세 가 삼십여년 후에 킹하면서 프랑스 카페 앙주 왕조 나폴리의 조안나1세까지 1백년 겨우 온거야. 
이때부터. 샤를의 또다른 핏줄의 조안나2세. 에 앙주의 르네.까지 오육십년 더온겨. 총 160년. 
이 다음에 시칠리아의 아라곤.에 먹히면서리 말야. 

이게 프랑스가 열받아서리. 킹덤 차원에서 쳐 들어가게 되는겨. 결국 시칠리아 아라곤의 알폰소가 자기들 발루아 왕조의 르네.를 쫓아낸거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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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noted above, the marriage on 14 February 1451 between Louis and the eight year-old Charlotte of Savoy was the true beginning of French involvement in the affairs of Italy. 

 

프랑스왕 루이11세가. 사보이의 샤롯데.랑 재혼하는 해가 1451년.이야. 앙주의 르네가 쫓겨난 이후야. 이미 저때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대한 의지가 있어. 아비뇽 교황정 끝나고. 르네 쫓겨나고. 백년전쟁은 이미 이겼고. 저 이탈리아가 화산이 될 껄 알고 있는겨. 그때 길목이 이 사보이.야. 루이11세가 저때 사보이.와 결혼한 이유야. 
헌데 저때 부르고뉴의 용감공 샤를 이랑 전쟁이라 바빴걸랑. 샤를 죽고 다음은 샤를 딸이 시집간 막시밀리안과 전쟁. 거기에 저 스페인 반도에서는 카스티야 후계자 문제로 아라곤 포르투갈 전쟁. 
아들 샤를8세. 가 애비 유언을 받아서리 시작하는겨 저걸. 얘도 까먹었겄지. 

Pope Innocent VIII (LatinInnocentius VIII; 1432 – 25 July 1492), born Giovanni Battista Cybo (or Cibo), was Pope from 29 August 1484 to his death in 1492. 

 

문제의 교황이야. 이노센티우스 8세. 순결 교황. 

 

저 나폴리를 먹은 아라곤이. 교황이 돈달라 하는데 안주는겨. 야 니덜 잘 모르나본데 여긴 이탈리아야. 시칠리아 촌놈이라 모르나본데. 여기선 다 교황령이야. 니덜 킹들도 교황이 돈 좀 달라면 줘야해. 교황은 니덜 위야.

 

먼소린지 모르는거지. 

 

 

저 나폴리는. 이전 조안나1세때부터. 어찌보믄 백년이상 웬수야 저긴. 로마 교황 입장에선. 쟤들 때메 아비뇽이랑 더 분열하고. 쟤덜이 아비뇽에 저 조안나할매가 뒷돈 안댔으면 저거 금방 끝나는거 사십년 더가고. 저 쌩뚱맞은 아라곤은 말 더 안통하고.

 

 

 

 Innocent then offered the Kingdom of Naples to Charles VIII of France, who had a remote claim to its throne because his grandfather, Charles VII, King of France, had married Marie of Anjou[2] of the Angevin dynasty, the ruling family of Naples until 1442.

 

 

교황이. 프랑스 샤를8세에게. 저 나폴리 너 먹어야지 머하고 앉았냐. 하는거걸랑. 

 

샤를7세 승리킹도 나폴리 막내딸이랑 결혼했었고. 란 저 명분은 거시기 하지. 어차피 저 나폴리는 카페의 앙주꺼였어 160년간. 
저 황금사과.를 교황이 툭 던져주고. 얜 죽었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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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VIII, called the AffableFrenchl'Affable (30 June 1470 – 7 April 1498), was King of France from 1483 to his death in 1498

 

자기가 태어난 궁전 기둥에 마빡 깨져서리 죽은 샤를 8세. 가 1492년에 저걸 받아. 얘 때부터 시작된게 이탈리아 전쟁이야.

 

문제는 저 나폴리.만이 아냐. 밀라노야. 샤를의 관심은 정작 밀라노인겨. 헌데 저걸 모르고 프랑스를 부른건 또 밀라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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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밀라노가 말야. 바로 왼쪽이 사보이.야. 토리노.가 수도인. 이 사보이. 
이 사보이.가 이때부터 전면에 등장하는겨. 루이11세가 머리 좋은 사람이야. 사보이의 샤롯데를 선택한건. 이건 이탈리아를 먹겠다는 거걸랑.


이탈리아.가 말야. 저 당시. 최고야 최고. 그 문명. 그 문화가. 저때가 르네상스의 시작이자 곧 정점이야. 알프스 넘어의 촌놈들이 와서리 눈이 휘둥그래 해지는게 저놈의 이탈리아야. 

저건 그야말로 황금사과야 저게. 

이탈리아 전쟁.으로 말야. 여기 넘어온 인간들이. 이탈리아를 누비면서. 그 문명을 흠뻑 갖고 간게. 근대의 시작이야. 

종교전쟁이란 건. 다시 보면. 저 로마.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나폴리 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 의해서 시작한거야 저게. 
저게 순결한 척 하는 루터 애들에겐. 저건 사치고 타락인겨. 헌데 그 바닥은 말이지. 부러움이야. 이게 사람들에게 싸악 퍼진겨. 대체 우린 머야. 우리들은 머야. 이게 사람 사는거야?

그 불길을 당기게 한게. 65년간 이탈리아를 다녀간 이들이다. 저들이 알프스 넘어서리. 이후 월드워까지 더 강렬한 부채질을 한거야 저게. 
부는 상대적인거야. 빈곤은 상대적인거야. 저기에서 인간이란 대체 머야 왜사냐 에 대한 질문들이 저때 사람들에게 통한거야. 그리고 그걸 불지필 힘이 있었던거야 저때는..
체사레 보르자.가 말야. 파리에 프랑수와 1세를 보러가. 사람들이 그 화려함에 눈이 뾰옹 가. 아 저게 이탈리아구나..

저걸 갖고싶은거야. 그게 프랑스였고 그게 신성로마제국 이었고. 그 옆에 곁다리 낀게 헨리8세와 걍 아무생각없이 끼들은 스콧랜드야.

저건 국제전이거니와 앞으로의 국제전쟁의 시작이야.

이탈리아 전쟁.은 의미있는거야 저게. 

헌데 저걸. 이땅바닥 들은. 아무도 몰라..


밀라노. 이전 얼핏 한번 썰했듯이. 저긴 비스콘티 가문이 코무네들에서 세력을 갖기 시작해. 150년간 세를 이루다가. 이들이 듀크. 공작령을 받아. 이때 공작을 주는 인간은 보헤미아 킹이야. 얜 게르만의 킹 이었걸랑. 지가 황제된 줄 알고 준거지. 그때는 대공위시대야. 헌데 얜 황제가 못돼.
저때부터 50여년을 밀라노 공작.을 이 비스콘티 가문이 하는거야. 그러다 남자핏줄이 끊기는겨.
이때 등장하는 인간이 스포르차.

Francesco I Sforza (

Italian pronunciation: 

[franˈtʃesko ˈpriːmo ˈsfɔrtsa]; 23 July 1401 – 8 March 1466) was an Italian condottiero, the founder of the Sforza dynasty in Milan, Italy, and was the fourth Duke of Milan from 1450 until his death. He was the brother of Alessandro, whom he often fought alongside.

 

프란체스코 프리모 스포르차. 1세야 프리모. 이탈리아 콘도티에로. 용병대장이야. 
밀라노 공작. 초기 백년은. 처음 50년은 비스콘티 가문. 다음 50년은 이 스포르차 가문. 

이 스포르차 가문은 저 프리모 창업자랑 다음 세대 자식. 이 두 대에서 끝나는겨 결국.

비스콘티 공작밑에서 용병대장 하면서 일을 하는데. 비스콘티 공작은 이사람을 싫어해. 약력보믄 어릴때 부터 쎄. 공작 입장에서 오히려 무서운겨. 스포르차.가 이 비스콘티 가문의 유일한 딸 비앙카 랑 결혼을 해. 그러면서 밀라노 공작이 스포르차 가문것이 되는겨.
이사람 상대가 아래 피렌체의 코시모 메디치. 코시모는 이전 메디치은행 만든 지오반니 메디치의 아들이고. 뒤의 위대한 로렌초의 할배야.
프란체스코.랑 코시모.랑 연대해서리. 이때 이탈리아 동맹을 만든겨. 우리 서로 싸우지 맙세다. 롬바르디 전쟁때 밀라노랑 베네치아 쌈질하고. 나서리 밀라노랑 피렌체랑 동맹맺다가 바로 베네치아도 동맹맺는겨. 이게 뒤에 아들 루도비코 스포르차.와 손자 위대한 로렌초 메디치.까지 가고. 이들 죽고 결국 이탈리아 전쟁 터진겨. 그러면서 이탈리아는 끝의 시작을 가는거고..

이사람의 아들들이 많아. 

Galeazzo Maria Sforza (24 January 1444 – assassinated, 26 December 1476) was the fifth Duke of Milan from 1466 until his death. He was famous for being lustful, cruel and tyrannical.

 

장남이 승계해. 길리아초 마리아 스포르차. 젊을때 루이11세랑 같이 부르고뉴 샤를에 맞서 전투로 하다가. 아부지 죽어서리 온겨. 얜 사이코 패스야. 헌데 르네상스의 음악을 만든 후원자야. 
자기가 싫증난 여자들은 자기 밑의 애들에게 줘. 밀렵꾼을 죽일때는 토끼를 걍 털도 안짜르고 통째로 먹게해서 사형시켜. 사제가 스포르차 가문이 오래 못갈거다 하니까 굶겨 죽여. 사방에 적들이 생기는거지. 귀족들이 암살해. 

암살범들은. 자기들은 권력욕심 없다. 사형판결 받고 죽어. 

Gian Galeazzo Sforza (20 June 1469 – 21 October 1494), also known as Giovan Galeazzo Sforza, was the sixth Duke of Milan.

 

저 갈리아초.의 유일한 아들이 잔. 스포르차 야. 얘가 7살에 공작에 오른겨. 섭정을 하는 인간이 저 암살당해 죽은 갈리아초의 동생. 즉 얘 작은삼촌이야.

Ludovico Maria Sforza (also known as Ludovico il Moro;[1] 27 July 1452 – 27 May 1508), was Duke of Milan from 1494, following the death of his nephew Gian Galeazzo Sforza, until 1499.

 

 

즉 창업자인 프란체스코.의 작은 아들이야. 루도비코 마리아 스포르차. 루도비코 일 모로. 라고 해. 이사람이 스포르차.를 네이밍으로 날린 사람이야. 스포르차 가문은 이사람에서 끝난겨. 뒤는 의미가 없어.

자기 조카. 잔.대신에 섭정을 해. 이때 경쟁자가 잔.의 엄마 사보이 여자야. 이걸 누르고 계속 섭정하는겨. 그러다가. 저 잔. 이 다 커서리. 25세에 죽는겨. 

기록에 의하면. 독살로 죽었다. 아마 저 루도비코 삼촌이 죽인거로 보인다. 이게 걍 소문이 다 난거지. 
잔.의 자식들이 있지만. 다 애기들이야. 루도비코.가 공작에 오르는겨. 저때가 14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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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bella of Aragon (2 October 1470 – 11 February 1524), also known as Isabella of Naples, was Duchess of Milan by marriage to Gian Galeazzo Sforza and suo jureDuchess of Bari.

 

문제는 말야. 저 독살당해 죽은 잔.의 부인이 나폴리 아라곤의 이사벨라. 나폴리가 아라곤것이 되었잖아. 여기 딸이야. 
나폴리의 아라곤.이 저 루도비코.가 자격이 없다는거지. 독살범이야. 자기 딸이 받아야 한다. 즉 아라곤꺼다. 
이때 나폴리의 아라곤은. 그 핏줄이. 직계로 올라가면 카스티야의 후안2세.야 이 후안2세의 자식들이 엔리케4세와 이사벨라. 걸랑. 배가 다른. 해서리 뒤에 엔리케4세의 딸 벨트라네하의 조안나.랑 이사벨라 랑 후계자 전쟁에. 이사벨라가 어린 조안나 이기고 카스티야와 레온의 킹.해서리 아라곤의 페르디난도와 결혼한 상태에서 그 딸 미친년 조안나가 합스부르크 막시밀리언의 자식 필리프 미남이랑 결혼해서리 나은 카를5세 할때.

저 아라곤이 카스티야.랑 레콩퀴스타.가 막 끝난 다음이야. 이제 중원의 실세로 등장할때야. 

 

 

 

 

저때 상황을 더 자세히 보면 말야. 

 

Bianca Maria Sforza (5 April 1472 – 31 December 1510) was a Queen of the Romans and Holy Roman Empress as the second spouse of Maximilian I, Holy Roman Emperor. 

 

On 16 March 1494

 

막시밀리안이 부르고뉴의 마리.랑 결혼하고. 마리가 죽어. 브리타니의 여자랑 결혼할라다가 샤를8세에게 뺏겨. 그리고나서리 찾은 여자가. 저 스포르차의 비앙카야. 독살당한 잔.의 여동생이야. 독살당하기 전에. 삼촌이 이 비앙카.를 막시밀리언에게 주는겨. 
막시밀리언 황제 입장에선. 그다음 눈독 대상이 역시 저 밀라노 인거야. 루이11세는 사보이. 막시밀리언은 밀라노. 얘들이 저 이탈리아.가 욕심이 있는거야 이게. 저 두곳이 전초기지야.


저게 하필 다 1494년이야. 2년 전에 샤를8세에게 교황이 나폴리 먹으라고 황금사과를 줬어.

 

아직 말야.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도의 딸 조안나.랑 막스밀리언의 아들 미남왕 필리프. 펠리페.랑은 결혼 한 상태가 아냐. 2년 후인 1496년 에 하는겨.

 

 

 

 

나폴리의 아라곤.이 밀라노 내놓으라는겨. 막시밀리언 황제에게도 대드는겨. 저 루도비코 개개끼. 인데 너도 스포르차 여자가 마누라 라고 편드는거냐?. 막시밀리언은 뻘쭘한겨. 독살 전에 재혼한거걸랑. 헌데 이게 쟤 죽은 날짜랑 또 잘 안맞아. 이미 잔.이 죽기전에 모든 권력은 루도비코 에게 넘어온겨.

 

 

루도비코.가 불안불안 한겨. 이때 샤를 8세를 꼬시는겨. 너 교황한테 황금사과 받았담시 2년전에. 저 나폴리 니네꺼여. 저거 안먹냐.

 

 

 

Charles VIII gathered a large army of 25,000 men, including 8,000 Swiss mercenariesand the first siege train to include artillery, and invaded the Italian peninsula

 

 

The arrival of Charles's army outside Florence in mid-November 1494[6] created fears of rape and pillage.

 

.샤를8세가 킹이 되고 10년이 지났어. 저때 나이가 24세. 킹이 되믄 말야. 멀 하고 싶걸랑. 사람 맘이 그래. 자꾸 가져가라고 교황은 추근대지. 어라 밀라노에서도 가져가라고 하지. 어린맘에 갈 수 밖에 없는거야 저건.
얘들이 모르다노 요새를 함락할때 힘좀 쓰지만. 걍 무혈 입성인거야 저 나폴리까지. 이때 피렌체의 사보나롤라.는 구세주님 프랑스왕이시여 하는거고. 얜 여기서 이제 애들 풀고 홍위병 놀이 하는거고. 이때 이가 하는짓이. 약자를 위합시다. 여자들과 어린애들을 항상 앞에 모셔. 그리고 피렌체가 완전히 민주의 상징이 되는겨. 부자 적폐 개개끼. 사치 금지. 피렌체가 쫄쫄 굶고 죽어. 나중에 깨달은 시민들. 저를 목걸어놓고서리 죽이고 태워. 

저을 지금 하는거지 이제야. 여기서. ㅋㅋㅋ.


인간들의 무지는 말야. 이건 끔찍한거야. 
여하튼 사보나롤라 이야기. 체사레 보르자 이야기.에 레오나르도.도 스포르차 가문의 스폰 잃고서리 체사레에 붙다가 결국 프랑스로 가는 이야기.는 전에 얼핏 썰했고

저때 얘들이 나폴리.를 걍 약탈하걸랑. 그리고 얘들이 퍼뜨린게 소위 매독. 이란거야.
매독.이란게 이때 등장해.

이 매독.이 아메리카.에서 온걸로 봐 그 매독균이. 이게 저때 콜롬버스가 오면서 그 선원애들이 대륙에 퍼뜨린걸. 저때 프랑스 애들이 나폴리에서 여자들에게 퍼뜨린겨.

저 매독으로 죽는게. 니체 에 슈베르트.야 대표적 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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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peed of the French advance, together with the brutality of their sack of Mordano, left the other states of Italy in shock. Ludovico Sforza, realizing that Charles had a claim to Milan as well as Naples, and would probably not be satisfied by the annexation of Naples alone, turned to Pope Alexander VI, who was embroiled in a power game of his own with France and various Italian states over his attempts to secure secular fiefdoms for his children. 

 

샤를8세는 나폴리.만이 욕심이 아냐. 밀라노.가 또한 목적이었고 궁극은 이탈리아 전부야. 

 

밀라노를 스포르차.가 차지할때. 이전에 비스콘티.에 시집간 여자가 사보이가문이걸랑. 샤를8세랑 그 누나가. 엄마가 사보이 가문이야. 비스콘티.가 핏줄이 끊겼으면 저건 사보이 꺼걸랑. 샤를8세가 그걸 핑게대는거야. 사보이 옆에 밀라노.도 자기꺼. 거기에 나폴리 먹고. 그다음엔 다 먹으려는겨 저걸.

 

루도비코.가 이걸 늦게나마 알아챈겨. 후회해봤자지. 자기가 불렀다는 죄책감. 헌데 안불렀어도 프랑스는 쳐들어갔을꺼야. 어쨌거나.

 

프랑스군대가 잔혹한 짓을 나폴리가서도 하는걸 듣게돼. 전 이탈리아 사람들이 뭉쳐. 그리고 싸우는겨. 샤를8세는 퇴각하는거고. 나폴리에 자기들 앙주 가문을 심고. 결국 다시 쫓겨나지만 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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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면서 말야. 막시밀리언의 아들과 이사벨라 아라곤의 딸이 결혼하고. 거기서 카를 5세가 나와.
발루아의 샤를8세 다음으로. 오를레앙의 루이.의 사위 프랑수와1세가 나와

잉글랜드의 헨리8세. 얘가 단지 앤불린 이야기에 피의 마리 어쩌고 는 둘째치고. 여기에 또 껴야해. 

여기에. 프랑수와는 오스만의 술레이만을 불러들여.


저게 재밌는 전쟁인데.

다음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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