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relle (

French pronunciation: ​

[aʁɛl]; from haro) was a revolt that occurred in the French city of Rouen in 1382 and followed by the Maillotins Revolt a few days later in Paris, as well as numerous other revolts across France in the subsequent week.

 

1382년 아렐. 또는 메유통 반란. 

 

아렐. Harrelle. 이 아로. haro. 에서 왔어. 아로. 라는건 Clameur de Haro 클레머 드 아로. 법정에서 크게 울부짖는겨. 저가 범인이라고. 중세 법정에서 증언하는겨. 이걸 소위 피고인이 얘의 말을 반박을 못하면 유죄야. 증언하러 울부짖는 클레머 드 아로.를 하는 인간이 저 피고인과의 논쟁에서 지면 얜 벌금을 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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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문명사에서. 그 문명 수준을 측정한다 할때 가장 중요한 잣대중 하나가 이 사법시스템이야. 
법전이 있었다 없었다. 그게 중요한게 아냐. 그 내용이 어드렇다 그게 중요한게 아냐. 어드래 사법시스템이 돌아가느냐 가 핵심이야. 


조선이 였던건 말야. 이 조선왕조 오백년 동안 그야말로 조선은 똥천지가 되었걸랑. 수레가 없어 . 로마애들이 2천년 이전에 수레바퀴 소리로 밤에 잠을 못자. 낮에 워낙 수레들 짐차들이 나댕기니까 금지를 할 정도야. 
일리아스 전쟁에서 싸우는 장면은 기마병이 아냐. 말타고 싸우는 기사는 저때 없어. 저때는 마차를 타고 싸우는겨. 바퀴달린 마차로. 그게 벤허야. 경기장을 지어서리 마차 경주를 하는겨 말 네마리 앞에 달고. 일리아스에 나오는 전쟁전의 축제야 지들끼리 상품걸어서 경주하는. 그걸 재연하는겨 로마애들이 놀이로. 로마는 이제 마차따위는 전쟁에 안써.

일리아스 때에는 기마술이 없었던겨. 마차안에서 창질 하는겨 서로.

쟤들 삼천년 전에 쓰던 수레가 없어.  정말 세상바닥에서 이따위 들이 없어 이 조선왕조.

저걸 또 청나라 북경 구경 간 박지원이가 벽돌로 짓는 성곽 우왕 벽돌이 돌보다 더 낳아. 수레가 있는 북경 대단해. 우왕 우리네 조선의 선비께서 분석력 쩔어. 저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이땅바닥엔 사학자 가 없걸랑. 이 역사학자 수준을 보면 그땅바닥 수준을 알아. 이 역사 해석 하는 게 그 땅바닥 집단무의식을 형성하는거걸랑.

 

 

이땅바닥 애들이 다 정신병자애들인 이유야 저게.

 

 

저기서 벽돌 얘기 웃겨. 

 

 

야. 이집트 모세 이야기가 벽돌이야. 모세가 지금부터 삼천년 이전으로 봐. 로마는 벽돌 공장의 나라야. 이집트에서 배운 벽돌로 로마가 건축의 신들이 돼. 

 

저걸 삼천년 후에. 북경가는길에서 보고. 벽돌이 좋은 이유. 어쩌고 저쩌고. 조선 르네상스의 선비님의 분석.

 

 

 

아 얘들 참 끔찍한 애들이야.

 

저 조선 이야기 푸는 이유가. 위대하다 조선. 이걸 막막 짖어대고 싶걸랑. 넘어가자.

 

이얘길 왜한거냐 재수 없게. 저 빨랑 중세 마무리 해야하는데. 아 두세시간 타이핑 하다보믄. 이젠 힘 빠져서리 못 앉아계신다 짐께서. 이야기 할 시간 읎다.

 

아, 저 사법체계. 조선이 저리 된 건. 저따위 사법 체계 가 없는겨. 저 허섭한 하로. 클레머 드 하로. 따위 도 없어.

 

The procedure is performed on one's knees before at least two witnesses, in the presence of the wrong-doer, and in the location of the offence. The Criant with his hand in the air must call out —

Haro! Haro! Haro! À l'aide, mon Prince, on me fait tort.

(Hear me! Hear me! Hear me! Come to my aid, my Prince, for someone does me wrong.)

 

하로 하러 나오는 애의 절차. 하로 하로 하로 아 레대 몽 프랑스 옴메 페토르. 내말 들어줘 들어줘 들어줘. 나좀 도와조 나의 지배자여. 누군가 나에게 나쁜 짓 했걸랑.

 

 

조선은. 그 실록만 봐도 . 그 조정에서 말야. 국무회의 하면 말야. 저 소인배. 저 적폐. 이게 죄야 . 조선 팔도가 다 압니다요. 소문이 증거야. 그랴? 국문해라. 고문하는겨. 실토하디? 네 처음엔 버티다가 아프니까 빨리 죽여달랍디다요. 목짤라라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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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저따위 들이 없어. 저걸 구한말에 외국인이 보는겨. 대체 저게 먼 개들이냐 그래 하는겨. 

 

 

저 사법 체계가. 얘들은 저따위 쟤들의 법문화를 겪은 적이 없어. 그게 지금 우리네 사법체계야. 

 

 

이따위 땅바닥에 그래서 잘 스미는게. 인민재판이야. 여론재판. 넘어가자 말 길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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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엔 사법 시스템을 게르만애들이 어드래 쓴걸까? 

 

역시 머겠니. 로마야 로마.

 

 

오른쪽 비잔틴

 

The Corpus Juris (or IurisCivilis ("Body of Civil Law") is the modern name[1] for a collection of fundamental works in jurisprudence, issued from 529 to 534 by order of Justinian IEastern Roman Emperor. It is also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Code of Justinian, although this name belongs more properly to the part titled Codex Justinianus.

 

이전 썰한 유스티니아 법전. 이 이름도 언제 지은거라고? 1583년에야 저 이름 지은겨. 이름 없어 걍 판례법들 모아놓았을 뿐이야. corpus. 컬렉션이야. 걍 모음집이야. 저걸 Civilis 키빌리스. 라고 천년 후에 누군가 걍 지은겨. 저 키빌리스. 라는 말은. 중요한 말이야 이전 썰했듯이.

 

Byzantine law was essentially a continuation of Roman law with increased Christian influence. Most sources define Byzantine law as the Roman legal traditions starting after the reign of Justinian I in the 6th century and ending with the Fall of Constantinople in the 15th century.

 

저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은 이전의 법들 모음이고. 전에 보여준 그 수백여개 렉스. Lex 들 모음이야 로마가 시작할때부터의. 천년 이상의 법 자료집이야.
저것이 잘 적용하기 어려운겨. 그리스도화 되면서. 해서리 진화된 법 자료들이 비잔틴 법.이야. 저 유스티니아누스 법을 담고 더 시대적인 법체계 이겠지.

서쪽은 게르만이 지배하잖니. 

Several Latin law codes of the Germanic peoples written in the Early Middle Ages (also known as leges barbarorum "laws of the barbarians") survive, dating to between the 5th and 9th centuries. They are influenced by Roman lawcanon law, and earlier tribal customs.

 

지금 몇개 보이는겨. 열두세개. 여기에 살리카법도 있고. 얘들이 만든게. 5세기에서 9세기. 머로 되어있어? 라틴어야. 게르만애들의 법전.이 라틴어로 되어있어. 즉 로마애들꺼 영향을 받은겨. 
캐논로. canon law. 이건 은제 생겼겄니? 교회법이잖오. 밀라노 칙령 하고 다음에 생기는겨 이게. 

 

In 325, when the first ecumenical council, Nicaea I, was held, kanon started to obtain the restricted juridical denotation of a law promulgated by a synod or ecumenical council, as well as that of an individual bishop.

 

니케아공의회. 에서 저 캐논. 이 나오는겨. 카논. Kanon. 그리스말이야. 쿠리아콘. Kuriakon. 다스리다. rule. 여기서 다스리는 자. 쿠리오스. kurios 해서리. 이게 얘들이 구약 번역할때 그리스어로 신을 쿠리오스 퀴리오스 한겨. 예수님을 퀴리오스 한거고. 

 

로마.가 저 카논. 에 해당하는 말이. regulare. rule 이야. 얘들은 자기들 말이 따로 있었던겨. 모든 말을 그리스에서 갖고오지 않았어 또한. 자기들이 쓰던말이 더 나으면 자기꺼 쓰는겨. 해서 저 레굴라레. 룰. 에서 다스리다. 렉스 rex 가 킹. 왕짱이야. 저기서 라이트 right 란 법.이고 옳음. 이고. 
해서. 로마 교황 행정지도부.를 로만 쿠리아. Roman Curia 할때. 저 쿠리아. 가 저 라틴어의 쿠리오스. 야. 
하튼 캐논로. 는 4세기 초에야 그래서 나오는 말이야. 

저건 대륙의 게르만.이고

 

Anglo-Saxon law (Old English ǣ, later lagu "law"; dōm "decree, judgment") is a body of written rules and customs that were in place during the Anglo-Saxon period in England, before the Norman conquest

 

저 잉글랜드의 칠왕국체제.의 주인공들 앵글로 색슨족.이 또한 법이 있어. 얘들은 로마가 망할때 얘들이 점령한겨 바다건너서. 즉 이전 켈트 애들이 배운 로마를 얘들이 습하는겨. 헌데 얘들만의 독자성이 더 짙어 어찌보믄. 이게 잉글랜드 와 대륙의 차이의 시작이야. 
이 게르만 애들. 아 참 묘한 애들인데. 

To the first division belong the laws of the Kentish kings, Æthelberht, Hlothhere and EadricWithraed; those of Ine of Wessex, of Offa (now lost), of Alfred the GreatEdward the ElderÆthelstan (The Judicia civitatis Lundoniae are a guild statute confirmed by King Æthelstan), Edmund IEdgarÆthelred and Cnut; the treaty between Alfred and Guthrum and the so-called treaty between Edward and Guthrum.

 

일차로 알프레드.가 통일 시작해서리. 손자 애덜스탄.이 첫째 잉글리쉬 킹. 작명 해줘. 얘들이 계속 법 코드를 지속 생산한겨. 우리네도 물론 삼국시대에 법령 반포 하듯이. 쟤들 시작할때 우리네는 문명이야. 쟤들은 이제 갓 로마 배우기 시작한거고. 쟤들 늦어 이땅바닥 삼국시대보다. 헌데 쟤들 발톱 의 때 수준도 안되는게 이땅바닥 사유.야. 대갈빡이야. 무식해진겨

쟤들은 저 섬에서, 로마 냄새를 더하여. 완전히 자기것으로 만들어서리. 자기들이 재창조 하는겨. 저게 잉글랜드와 대륙의 차이의 시작이야.

대륙은 말이야. 여전히 중세에도 로마법이야. 알프스 넘어의 로마.를 계속 붙들고 있었어.
잉글랜드.는 달리 갔어. 이제 로마.는 안맞아. 쓸모없는건 버리는겨 쟤들이. 
그게 바로 카먼로. 라는겨 Common Law. 
https://onlinelaw.wustl.edu/blog/common-law-vs-civil-law/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Common Law and Civil Law?

 

January 28, 2014 by Piyali Syam
카먼로.와 시빌로.의 차이가 먼가. 처음 뜨는 게 저건데. 쟤들도 보믄 무식해진겨 저게. 그래서 유럽이 점점 애들이 맛탱이가 가고. 소위 레프트 대민서리 개 하는겨 저게. 자기들의 역사를 쟤들이 또한 잘 몰라 점점. 왜냐믄 자기들 안에선 잘 못봐 이전 썰했듯이. 밖에서 더 잘보여. 일본들이 지금 세계사는 제일 잘보는겨. 그래서 우리네가 더 잘볼수 있는겨. 짐 혼자 인 거고. 아 니덜도 세계 사유학회에 들어올 수 있어. 아직 회원이 없어서 문젠데.

쉼. 
시빌로. 민법 카먼로는 관습법. 불문법. ㅋㅋㅋ. 코메디야 코메디 . 일본가 번역한걸 걍 그대로. 

아 짜증 나지.

Medieval Roman law is the continuation and development of ancient Roman law that developed in the European Late Middle Ages. Based on the ancient text of Roman law, the Corpus iuris civilis, it added many new concepts, and formed the basis of the later civil law systems that prevail in the vast majority of countries. Some exceptions are, for example, common law countries of the English-speaking world

 

잉글랜드.는 켈트애들이 배운 로마를 더해서리 자기들만의 앵글로섹슨법을 계속 덧붙여서 만들어.

 

대륙은 달라. 갈리아애들과 로마때의 로마시민이나 보조병이었던 서로마후기 의 로마를 게르만애들이 점령하면서 역시 로마를 바탕으로 한 자기들만의 게르만 법들을 만들어. 

 

헌데 더하여서리. 대륙의 로마가 여전히 찐하걸랑. 걔들 법들이 여긴 찐하게 남아있어 이게. 잉글랜드는 떨어져있어. 잉글랜드는 먼가 달리 독창적으로 가는거야. 그게 지금의 영국이고 그래서 미국이야.

 

미국은 저런 잉글랜드애들이 만든거야. 스페인이나 프랑스가 미국을 발견했으면 지금 중남미 꼬라지가 지금 미국일뿐이야.

 

Justinian's Corpus Juris Civilis was distributed in the West[14] but was lost sight of; it was scarcely needed in the comparatively primitive conditions that followed the loss of the Exarchate of Ravenna by the Byzantine empire in the 8th century. The only western province where the Justinianic code was effectively introduced was Italy, following its recovery by Byzantine armies (Pragmatic Sanction of 554), but a continuous tradition of Roman law in medieval Italy has not been proven.[15] 

 

저 유스티니아법전이 서로마 망하고 만든겨 비잔틴에서. 서쪽엔 이 법 이야기가 안보여 사가들에겐. 걍 이전 로마가 해오던 사법의 냄새를 계속 이어간겨. 구두로 또는 부분부분 남아있는 법쪼가리덜이 있었겠지 그 전쟁들의 와중에. 비잔틴에서 받은 법전이 있었겠지. 헌데 이 흔적이 없어 서쪽 유럽에. 나중에 1070년에 다시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사가들은 안믿어. 이게 걍 부분부분 쓴겨. 
그러다가. 다이제스트. 요약본. 간추림본. 이 발견이 된겨. 

The Digest, also known as the Pandects (Latin: Digesta seu Pandectae, adapted from Ancient Greek: πανδέκτης pandéktēs, "all-containing"), is a name given to a compendium or digest of juristic writings on Roman law compiled by order of the Eastern Roman emperor Justinian I in the 6th century CE (530–533). It is divided into 50 books.

 

 

The Digest was discovered in Amalfi in 1135, prompting a revival of learning of Roman law throughout Europe. Other sources claim it was discovered in 1070 and formed a major impetus for the founding of the first university in Europe, the University of Bologna (1088).[citation needed]

 

저게 1135년에 아말피.에서 발견이 된겨. 저걸. 볼로냐 대학에서 얘들이 교정해서리 출판해서리 전 유럽에 뿌린겨. 이 볼로냐 대학이 유럽 최초의 대학이야. 이 다음이 옥스포드 파리 캠브리지 . 이 대학 얘긴 넘어가고. 나중으로. 성균관 아 저따위가 대학이냐. 쟤들 커리큘럼이랑 비교를 해봐라. 어드래 하면 빠가들만 맹글어볼까.를 고민하던 조선왕조

 

 

저 서유럽 대륙은. 저 다이제스트. 디게스타. 가 발견 되기 이전에는 이전 로마가 해오던 대로의 로마법을 계속 써먹은겨. 변호사 있고 검사 있겄지. 증인 있고. 그래도. 그래도 자기들만의 로마법 코드가 나름 부분부분 있었던겨 저게. 그러다가 저 유스티니아 법전이 다이제스트 라도 발견이 되서리 저때 저걸 다 뿌린겨. 선고할때 저걸 기준으로 하라고. 

 

 

저게 시대에 안맞아. 이제 더이상은. 

 

 

로마. 이후의 중세.는 로마와 또한 전혀 달라. 이미 시대가 육칠백년이 흘렀어. 로마 판례법이란건 그 천년동안의 과정이 쌓인 거걸랑. 특정화된 시기의 법을 적용하는게 아냐 일괄적으로. 계속 누적되면서리 시대변화를 탄겨 저게. 헌데 그 기간이 오육백년이 뚝 끊겼어. 저걸 그대로 적용할 수가 없어.

 

 

헌데 저걸 꾸역 꾸역 써 먹는겨. 그게 유럽 중세야. 

 

 

저기에 캐논로. 라는 교회법.이 로마에겐 없었어. 서로마 망할때 교회가 등장하는겨. 저건 캐논로.가 아냐. 

 

 

헨리2세.가 그래서 잉글랜드에서. 사법개혁.의 상징이 되는게. 저걸 교회법과 세속법을 구분을 한겨. 교회의 힘이 저건 확 줄어든겨 한편으론. 

 

잉글랜드.는 칠왕국 체제 가 지나면서. 통일을 하잖아. 에덜스탄 이름으로. 

 

 

 

The common law—so named because it was "common" to all the king's courts across England—originated in the practices of the courts of the English kings in the centuries following the Norman Conquest in 1066.[10] 

 

이전엔 7왕국 체제에서 각각이 달라 법들이. 알프레드 도 그 손자 에덜스탄도. 통일 이전의 각각애들의 법을 걍 그대로 둔겨 저게. 이걸 윌리엄이 건너가서리 정복하면서 합한겨 저 법을.

 

카먼. common 이란게 저기선. 저속한. 민들의. 란 뜻이 아냐. 칠왕국 체제 더하여 자잘한 곳들도 다 공통적으로 똑같이 이 법을 적용하라 하는겨. 

 

저기서 의 카먼은 그래서. 우리말로. 우리. 모두. 란 뜻이야. 어느 땅이던지 똑같은 법적용을 하겠다. 시스템도 똑같이 가져가겠다 라는 의지야 저게. 

 

 

 

관습법 이 아냐 이 .

그러면서. 쟤들은. 대륙과 떨어져서리. 로마를 더해서리. 나름 자기들이 연구를 하는겨. 법 체계가 얘들이 최고야 그래서. 그걸 고대로 카피해서 가져간게 미국이야. 법정미드가 미국외엔 못만들어. 인기가 없는 이유야. 생소하걸랑.


아 감동이야 쟤들 법정미드 보믄.

대륙은. 그냥 저 고대 로마법에 여전히 미련이 있는겨. 이걸 못벗어났어. 하물며 이젠 저 다이제스트. 나온 이후론 저걸 성문법.적으로 쓰는 지경인겨. 즉 저 자구.에 저 글자들에 똑같이 비슷하게 적용되면 유무죄. 선고 몇년. 성문법이란건 수준 이하인겨 그게.



The Napoleonic Code (French: Code Napoléon; officially Code civil des Français, referred to as (le) Code civil) is the French civil code established under Napoléon I in 1804.

 

해서. 나폴레옹이. 나폴레옹 시민법.이라 번역하지만. 저 나폴레옹법.이란게 말야. 얘가 징계방에서 유스티니아누스의 저 법전을 보고 미쳐 돌아서리 확 깨인겨. 이걸 토대로. 영감을 얻어서리. 나폴레옹이 자각한 근대.를 저기에 성문법으로 담은겨. 

 

원래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은 판레법이야. 헌데 이게 중세에 점점 성문법.으로 쓰이는겨 고리타분하게.

 

statute is a formal written enactment of a legislative authority that governs a city, state, or country.[1] 

 

성문법.할때 저건 머냐면. 스태튜트. Statute. 입법화된겨. 입법기관을 통해서 쓰여진겨. 이것대로 해라. 중요한건. 유무죄나 형량을 여기서 규정해버려. 

 

해서 이전에 말야 라면 훔치고 징역 몇년. 리 저 적폐들 돈 수천 처먹어도 일이년 사니 마니 가진자 편 드는 적폐 판사들. 와 저따위 개소리를 정의의 사도도 골때리던데 박사학위 받아처먹고. 

 

 

그 법이 그럴 수 밖에 없는겨 저게. 그 판사는 그 글자에서 나름 양형을 관대하게 해도 그럴 수 밖에 없어. 그런 개념이 전혀 없는겨 저 개무시기 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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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카먼로 가 불문법이고 시빌로 가 성문법이 아냐 그게. 단순히 보믄 그거지만. 

 

 

나폴레옹이. 그 1583년에 작명된 코르푸스 유리우스 키빌리스.를 본겨 제목이. 키빌리스. 시민이야 굳이 번역. 저 원래 소위 불문법이야 저건. 저건 로마의 카먼로.야. 헌데 저걸 스태튜트 로.로 써먹는겨 여전히. 저 냄새 그대로 나폴레옹 시대까지 온겨. 그 법 조항 과 체계 들이.

 

 

아 지금 우리네 법이라는게 이게 원조가 이 로마 법이란거였구만 . 하고 깨달은겨. 

 

헌데 전혀 다르걸랑. 그 바탕이. 천년 이상이 흐르면서 저 기본 원리가 지워진체 고리타분한 것만 남아서리 더해서리 대륙에 써먹는겨.

 

 

나폴레옹은 아작시오 식민지섬 출생이야. 헌데 프랑스가 후지걸랑. 나폴레옹에게 프랑스는 너무나 너무나 후졌어. 

 

나폴레옹은.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를 찌이이인하게 배운인간이야. 그 머릿속 상상했던 로마.에 비하면 아 지금 프랑스며 저 프랑스인들. 인간들이 너무나 너무나 후져.

 

 

저걸 토대로. 나폴레옹이 법이란 무엇인가.를 확 느낀겨. 자기만의 사상을 심은겨. 그리고 이름을 코드 시빌. 똑같이 쓴겨. 시빌. 시민. 시민은 문명인이야. 

 

 

키빌리스. 로마 키빌리스. 로 다시 돌아가는거야. 그 원래의 자부심의 로마시민. 그 시민. 로마 시민외의 민들은 야만이야. 

 

시민이 되자 하는겨. 문명인이 되자. 지금 니덜은 문명인이 아닌겨 하는겨 나폴레옹이.

 

니덜 이 문명인법. 대로 해라 이제. 그게 나폴레옹 코드. 야

 

 

음청난겨 저게. 헌데 저건 머야? 적용 기준이 강한겨. 저 법조항대로 해야해. 판사가 배심원이 판결하면서 기준을 제시 하지 말라고 해 나폴레옹이. 니덜은 이 법에 따라서 재판을 하는거지 니덜이 옛날처럼 판례를 남겨서리 앞으로 이런 사건은 이따위로 판결하라우 같은 의견따윈 내지 말어. 

 

 

저건 민법과 형법의 그 민법 이 아냐. 저기에 당근 형법이 잇어.

 

 

 

성문법이야 그래서 나폴레옹 법은.

 

 

성문법이든 불문법이든 법정에서 다툼은 같아. 헌데 불문법 이. 더 싸울수 있는겨. 변호사 검사가 쇼를 하는겨. 감정에 호소를 하는겨. 왜? 법 적용 기준이 쎄고 세세한 소위 성문법보다는 한결 여유롭걸랑 그 적용 잣대가. 

 

 

 

해서 미국 재판 영국 재판이 재밌는겨.

 

 

헌데 저게 맞아.

 

 

 

 

카먼 로.는 저런 코드식 성문법에 관심이 없어. 시대마다 장소마다 상황마다 다 달라 이야기가. 어찌 그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나의 문구로 유무죄에 죄는 몇년 어쩌구를 정하냐. 

 

 

카먼로.는 카먼로. 시빌로는 시빌로.야 굳이 번역하믄. 일반법. 대 문명인법.

 

The Court of Chancery was a court of equity in England and Wales that followed a set of loose rules to avoid the slow pace of change and possible harshness (or "inequity") of the common law.

 

해서리 영국에 있는게 챈서리 코트. 챈슬러. 좀 높은 위치의 사람들이야. 

 

In jurisdictions following the English common law system, equity is the body of law which was developed in the English Court of Chancery and which is now administered concurrently with the common law.[1]

 

이쿼티.란게 영국에서 쓰이는겨. 야 우리네 카먼로.자체도 쟤들 나폴레옹코드 따위같은 것보다 널럴한데 그래도 그조차도 너무 거칠고 야박해 보여. 어찌 모든게 저따위 법에 목멜수 있니. 좀 배운애들이나 생각 열린 애들이 모여서리. 되도록이면 좋게 좋게 해결해보자. 하는게 이쿼티. 야 이건 법 이란 로.와 배치되는겨. 법에 미친 들은 이게 먼 개소리 하겄지만. 해서 챈서리 법정에서 법으로 인해 문제되는 것을 해결하잔 차원으로 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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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이 늦은겨 그래서 저 사법시스템은. 잉글랜드가 무시무시한 애들이야. 

 

결국말야. 대륙은 세계대전으로 개피를 볼때도. 일이차 대전에서. 영국과 영국이 낳은 미국이 저걸 다 해결한겨. 자기들 땅은 걍 폭격 일부 맞고 대륙은 전쟁터로 파괴될 때도.

 

 

그 힘의 바탕은 저 법 사상. 법의 역사에 있어 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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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때의. 

 

1382년 아렐. 또는 메유통 반란. 

 

저 아렐이란게 그래서. 억울한겨. 법정에서 억울하다고 외치는 소리야. 농민반란이야 민들의 반란이고. 백년전쟁이라 세금 걷고. 흑사병 지나가고 역병이 또 돌고. 메유통 이 리더로 해서리 반란하는겨. 요 전년도엔 잉글랜드 농민반란 있었잖오. 파리에서 들고 일어난겨 또한 민들이. 저 루앙. 이 파리 바로 위야. 파리 다음 도시야. 

 

파리가 진압되고 다들 사형시킨 소식이 왔어. 왕군이 들어와. 반란군이 항복해 파리사형당한 이야길 듣고. 지도부들 다 죽여.

 

 

이전 썰한 쿠시의 엥게랑.의 구글러 귀글러 전쟁.도 터지고 말야. 유럽중세가 그 기사도의 로망이 없어지는겨 이게. 그 기사도의 기사애들이 지들땅아니라고 막막 약탈을 하는겨. 농민들 반란에. 저 백년전쟁이 중세 끝의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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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캐논로.는 브리튼과 대륙에 다 있는거고. 저 캐논로와 달리 세속에 적용하는게
브리튼은 카먼로. 대륙은 시빌로. 하는겨. 
해서. 일본덜이 메이지유신하고 십년동안 헌법이랑 법들 만들때 영미법 대신 대륙법을 갖고온 이유야. 아직 민도 민들의 수준이 영미법을 쓸 정도가 아냐. 세세하게 규정해놓은 정해진 법규대로 적용하는게 낳은겨. 해서 대륙법을 갖고 온거고. 우리네는 걍 아무생각없이 저 일본가 번역한 대륙법을 걍 암호화된 한글로 지금 여전히 쓰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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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더하자.

Georgia, a Christian kingdom in the Caucasus, was subjected, between 1386 and 1403, to several disastrous invasions by the armies of Turco-Mongol conqueror Timur, whose vast empire stretched, at its greatest extent, from Central Asia into Anatolia

 

조지아. 코카서스. 티무르와 전투.

 

 

아 이 조지아. 증말 엄청난 곳. 이전 콜키스. 황금양모털의 그 콜키스. 이베리아.

 

Kingdom of Colchis c. 13th century BC–164 BCKingdom of Iberia c. 302 BC–580 AD
흑해 오른쪽에 바로 콜키스. 킹덤이 고대그리스 이전부터 있었대. 고대로마때와 서로마 망할때도 그 옆에 이베리아킹덤이 분리되다가 합친겨 이베리아 킹덤으로. 
역사가 음청냐 얘들이. 땅크기가 7만제곱키로야. 
서기 천년 이전엔 이베리아. 였어. 그러다가 조지아.로 바뀐건데. 가만보믄 레반트는 저리 가라야 그 외세애들 침략한게. 

The Kartvelian languages (Georgian: ქართველური ენები, Kartveluri enebi, also known as Iberian[2] and formerly[3] South Caucasian[4]) are a language family indigenous to the Caucasus and spoken primarily in Georgia, 

 

카르트벨리안 언어족. 인도유러피안 레벨이야. 전혀 다른 언어족이야 어디의 가지가 아냐 이게. 조지아에 주로 있고 지금 러시아에 다음 있고 디아스포라로 퍼져있는데 남은이들이. 

 

아 음청나단 말야 이들 조지아.

 

The Georgian scripts are the three writing systems used to write the Georgian language: Asomtavruli (or Mrgvlovani), Nuskhuri and Mkhedruli. Although the systems differ in appearance, all three are unicase, their letters share the same names and alphabetical order, and are written horizontally from left to right.

 

저 카르트벨리안 언어족의 조지안어. 글자가 있어. 서기 430년에 나왔어. 지금까지 쓰는 글자. 이것도 어디 분류 안돼. 그리스 글자에서 따온듯. 

가만보믄 이들이. 그 독립적인 쎄기가 세계 최고 수준이야.

The Timurid Empire (Persian: تیموریان‎, Timuriyān), self-designated as Gurkani (Persian: گورکانیان‎, Gurkāniyān), was a Persianate[5][6] Turco-Mongol empire comprising modern-day Iran, the Caucasus, Mesopotamia, Afghanistan, much of Central Asia, as well as parts of contemporary India, Pakistan, Syria and Turkey.

The empire was founded by Timur (also known as Tamerlane), a warlord of Turco-Mongol lineage, who established the empire between 1370 and his death in 1405. 

 

1370–1507

티무르제국. 티무르 가 세웠어. 칭기스칸의 막내 툴루이.의 아들 훌라구.가 세운 일칸국이 백년되서 망해. 저 이란땅이 자잘하게 칸들 서는겨. 이때 거 오른쪽 위 차가타이 서쪽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이 티무르.야. 얜 노마딕 스텝이 아닌 이란 핏줄이야. 여기에 투르크가 섞인겨. 

 

이 티무르가. 백년 이상 이란땅에서 위쪽 흑해 위랑 왼쪽 아나톨리아로 치고 가는겨. 오른쪽은 인도에 접하고. 그러다 오스만애들에겐 안되는거고. 오른쪽엔 무굴제국 인도에 서고. 망하는건데. 저 무굴은 이전 델리 부터해서리 육칠백년 수니이슬람 하는거고. 인도는 개가 된거고.

 

슬람이는 무셔.

 

 

할때 티무르제국의 티무르가. 사마르칸트. 우즈벡에서 나라 세우고. 아래 이란땅 위로 흑해까지 치고 올라가는겨. 

 

조지아.가 속국으로 들어가. 

 

 
코소보 전투. 코소보에서. 오스만애들이랑 세르비아애들이랑 세르비아 아래 코소보에서 전투. 

 

점점 오스만이 발칸 먹는거지. 오스만이 한창 기가 오를 때걸랑. 

 

리투아니아 내전. 이전 썰.

 

니코폴리스 전투. 

 

The Battle of Nicopolis (Bulgarian: Битка при Никопол, Bitka pri Nikopol; Turkish: Niğbolu Savaşı, Hungarian: Nikápolyi csata, Romanian: Bătălia de la Nicopole) took place on 25 September 1396 and resulted in the rout of an allied crusader army of Hungarian, Croatian, Bulgarian, Wallachian, French, English, Burgundian, German and assorted troops (assisted by the Venetian navy) at the hands of an Ottoman force, raising of the siege of the Danubianfortress of Nicopolis and leading to the end of the Second Bulgarian Empire. It is often referred to as the Crusade of Nicopolis as it was one of the last large-scale Crusades of the Middle Ages, together with the Crusade of Varna in 1443–1444.

 

저기가 불가리아의 북동쪽. 다뉴브강 하류. 야. 바로 위가 지금 루마니아. 왈라키안의. 

 

오스만이 불가리아 동쪽 치고 올라가면서. 저때 헝가리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왈라키안 프랑스 잉글리 부르기니 기타튜튼인들 이 연합을 한걸. 오스만이 다 이긴겨. 아 음청나 .

 

일명 니코폴리스 십자군. 

 

 

 

Source Year Affiliation # of crusaders # of Turks Total # Cite
Johann Schiltberger 1427 European 16,000 200,000 216,000 [7]
Şükrullah in his Behçetu't-Tevârih 1460s Ottoman 130,000 60,000 190,000 [16]
German historians of the 19th c 19th century European 7,500-9,000 12,000-20,000 19,500-29,000 [15]
David Nicolle 1999 European 16,000 15,000 31,000 [17]

 

저때의 병력 비교인데. 나중에 추정을 하는거걸랑 사가들이. 저게 웃긴게 말야. 오스만 인간은. 저 십자군 연합군이 13만에 오스만 투르크는 6만 이라는거지. 

 

쟤들은 용병이야. 오스만애들은 막 강압적으로 징병하는겨. 가서 약탈하라고. 얘들은 그래서 기본적으로 대갈수야. 

 

저 맨 첫 주장한 사람. 1427년의 추정이 제일 맞아. 십자군 해야 1만 6천에 오스만애들이 2십만일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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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끝났다.

 

다음에 하자. 

 

The Court of Chancery in the reign of George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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