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ttle of Baesweiler (22 August 1371) was a conflict between the dukes of Brabant and Jülich.

 

바이스바일러 전투. 브라반트 와 율리히 듀크들 전투.
지금 네덜란드 벨기에. 저기가 유럽 중세의 주역들이야. 얘들이 중세를 끝내고 근대를 시작할때의 중심이야. 이탈리아의 싸이키가 여기서 꽃을 피워. 

중요해 그래서. 우리네는 여기를 몰라. 우리네는 무지한 족속들임을 자각을 해.
네덜란드. 는 지금 공식지명이. 킹덤 오브 네덜란드즈.

The Kingdom of the Netherlands (DutchKoninkrijk der Nederlanden

pronounced 

[ˈkoːnɪŋkrɛiɡ dɛr ˈneːdərlɑndə(n)]

 (About this sound listen)

),[nb 1] commonly known as the Netherlands,

 

The United Kingdom of the Netherlands (DutchVerenigd Koninkrijk der NederlandenFrenchRoyaume-Uni des Pays-Bas) is the unofficial name given to the Kingdom of the Netherlands as it existed between 1815 and 1839.

 

1815-1839년. 저 26년간은 킹덤.이라고 안해. 유나이티드 킹덤.으로 구분을 해. 총 18개야. 
벨기에가 저기서 독립하겠다고 하고. 1839년 런던조약에서. 벨기에 와 룩셈부르크.가 각각 나오는겨. 

 

저기가 이전 부르고뉴의 현명공 필리프.와 아들 용감공 샤를.이 저기 저지대와 아래 부르고뉴 더치와 카운티를 다 지배할 때의. 부르고뉴 네덜란드. 야. 물론 저시대 이전 4백년 전이니 좀 달라 구분과 영역이. 부르고뉴 네덜란드는 프랑스땅 경계까지 있어. 아르트와 카운티.는 저기 없어. 

 

저걸 샤를의 딸 마리.가 합스부르크로 시집가면서 합스부르크 네덜란드.가 되는겨. 즉 이땐 용감공 겁없공 현명공의 백년전쟁이 끝난 다음이야. 저 세사람이 백년전쟁때의 부르고뉴 공작이야. 앙주의 부르고뉴는 백년전쟁의 포로된 프랑스 왕 장2세의 자식이 시작한겨. 그걸 손자 현명공 필리프가 마무리 한거고 잉글랜드 편들었다가 샤를7세 편으로 돌아서면서. 

 

그리곤 이제 이탈리아 전쟁으로 가는겨. 이 와중에 루터가 티나오고 칼뱅이 티나오는겨. 종교전쟁으로 다시 퍼지는겨. 쉴틈이 없어 . 독일 농민전쟁을 시작으로 프랑스 위그노 티나와서 30년 이상 전쟁. 다음에 티나오는게 바로. 80년 전쟁이야. 저기 저지대에서 벌어지는겨. 이건 네덜란드 독립전쟁. 이라고 칭해. 

 

 

저때 시작이 저기 저지대 합스부르크 네덜란드.가 뭉쳐서리 독립하겠다고 하는겨

 

The Seventeen Provinces were the Imperial states of the Habsburg Netherlands in the 16th century

 

17개 지역들. 프로빈키아. 로마 말이야. 프라빈스. 속주야 원어는. 저 위의 지도 18개의 합으로 이루어진 것과 비슷해. 경계가 다르고 아르트와 프랑스는 저긴 없지만. 

 

저기 이름들이 눈에 익숙하면 이야기 듣볼때 편해. 

 

영어발음으로 하자면. 

질랜드 홀랜드 프리즐랜드. zeeland holland friesland. 이게 프리지아. 야

 

안트베르펜. 을 가운데에 저긴 브라반트. 가 북 남으로 나뉜겨. 브라반트 공국하면 저길 다 합한거야. 브뤼셀.이 중심이야. 해서 지금 벨기에 수도가 브뤼셀이야. 브라반트가 핵심 중 하나야.

 

오른쪽 림부르크. limburg. 저 위에 위트레흐트 Utrecht. 이전 대교구 썰. 바로 옆 겔더랜드. Gelderland. (헬데르란트), 위가 오버아이셀. 즉 아이셀강 위. 저 아래 접하는 강이 아이셀강이야. 작센에서 저 강 넘오온 프랑크 살리안. 그 위가 드렌테. 그뢰닝겐. 

 

저 아래 루익. luik 그아래 나멘. (Namen. Namur). 아래 룩셈부르크. (뤽상부르). 

 

룩셈부르크.는 저게 땅이 쪼그라들어서리 지금 룩셈부르크야. 저기서 안트베르펜위와 오른쪽 림부르크.는 네덜란드야. 

 

지금 지도와 비교하면. 네덜란드가 벨기에를 파고들어가서리 독일과 접하는 곳이 림부르크.야 그 위가 북 브라반트. 위가 겔더랜드. 지역이고. 

 

저 지명을 꼭 눈에 익히도록해. 지도 자주봐. 

 

저 80년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곳 중에 하나가 안트베르펜이야. 지금 벨기에땅. 브뤼셀 위. 저기가 그 에스꼬강. 플랑드르랑 가르는. 강이 흘러서리 북해로 가는겨. 여기가 해상도시의 핵심중 핵심이야. 합스부르크에서 여기를 안뺏기는게 가장 커. 초기에 뺏아. 여길 네덜란드 애들이 못가져갔어 결국은. 그리고 여기서 피난간 사람들이 만든 도시가 저 암스테르담이야. 

 

 

저 지도가 있는 김에. 저기 하노버. Hanover. 맨 위에 함부르크. 그 위가 덴마크야. 함부르크 바로 아래 흐르는 강이 엘베강이야. 그 아래 뤼네부르크. 그 쫌 아래 브라운슈바이크. 가 보여. 이 두 곳이. 하노버 가문의 더치. 듀크한 공국령이야. 이 하노버 가문이. 지금 엘리자베쓰2세 할머니 핏줄인겨.

 

 

저기 17개 연합한 시작이. 결국 네덜란드 로 인정을 받지만 말야. 80년 전쟁을 끝내고. 17개로 시작했지만. 반은 프랑스와 합스부르크로 간겨. 즉 못가져온겨. 뺏긴게 아니라. 자기들은 카톨릭을 못버린다는거야 그 주민들은. 루터애들만 저리 간겨. 그게 아래 벨기에땅 룩셈부르크 땅 빠진 7개야. 

 

The States General were seated in The Hague and consisted of representatives of each of the seven provinces. 

 

해서 저때부터. 네덜란드 공화국. 나머지 10개는 스페니쉬 네덜란드. 하는겨. 그리고 합스부르크가 스페인이랑 갈라서면서 오스트리아 네덜란드.로 바뀌고. 다시 돌아가서리 유나이티드 킹덤 오브 네덜란드에 들어가다가.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된겨. 얘들도 킹덤에 대공국.이야 지금 공식이름이. 

 

 

쟤들은 리퍼블릭이니 유나이티드니 아냐. 걍 킹덤에 그랜드공국이야.

 

 

할때. 저 독립의 깃발을 든 시작이 나싸우. 나사우 가문의 윌리엄. 독어 빌헬름. 이고. 얘들이 부르고뉴의 따까리 행정으로 저기에 영향력 행사했다 했고. 여기 자식이 잉글랜드 명예혁명.으로 가는 거라 했잖아. 그 다음에 윌리엄 죽고 스튜어트 가문이 계속 왕하다가 여왕이. 또 끊겨 이 핏줄이. 그리고 오는 먼 핏줄이 저기 하노버야. 하노버 가문. 

 

현대의 잉글랜드는 네덜란드가 주인님이야 그래서. 

.

 

 

 

할때. 저 저지대의 율리히. 와 브라반트.가 바이스바일러.에서 전투하는겨. 1371년. 

 

 

아 드뎌 나온겨 첫 줄 시작이.

 

 

이거 은제 다하냐. 아 이거 참나. 걍 이탈리아에 종교전쟁에 빨랑 대충하고 정리해야하는데 이거.

 

 

쉼.

 

율리히.는 저기 라인강 바로 서쪽 쾰른.에서 똑바로 왼쪽 죽 가서 프랑스에 접하는 지역. 쾰른. 그위의 본. 이 카이사르가 만든 군단기지야. 본. 보나. 좋다 란 뜻이야 라틴어. 나사우. 나싸우는 저기 본 아래. 코블란츠와 프랑크푸르트 사이에 있어. 

 

 

브라반트. 저기 율리히.의 서북쪽 지금 벨기에 가운데 잖아 당시 브라반트는 커. 율리히 공작의 용병들이 브라반트 상인들을 강도질해. 브라반트 공작이 처벌과 사과를 요구해. 이걸 율리히 가 거부하고 오히려 용병들을 챙기고 더 고용해. 율리히가 저 큰 브라반트에 욕심이 있었던거지 원래.

 

율리히 공작과 겔더 공작. Geulder 이 한편. 브라반트 와 아래 나무르(나멘). 저 맨 위 지도. 한편.

 

저 맨 위 지도 겔더랜드(겔데르란트)의 괼더는 훨 아래야. 지금 겔데른. Gueldern.은 독일이야 저 빨간점. 정작 지역이름은 네덜란드가 지금 쓰는겨 주 단위로. 

 

.

 

하튼 그래서 저때 율리히.와 겔더 연합이 이겨. 저때 상대인 브라반트.는 세력이 쎌 때야. 가문이 룩셈부르크 와 엮였을때고. 룩셈부르크.는 저때 황제자리 비고 훨 나중 합스부르크가 황제 하기 이전에 실세가 이 룩셈부르크걸랑. 헌데 얘들이 진겨. 헌데 결국 뒤의 부르고뉴 현명공와 아들 샤를에 먹혀. 

 

The First War of the Guelderian Succession was a battle for the throne of the Duchy of Guelders that raged between 1371 and 1379.

 

저 전투 에서 율리히와 겔더 연합이 이겼지만. 겔더 공작과 동생이 죽어 저 전쟁에서. 핏줄이 끊겼어. 여자들만 남았어. 그 핏줄들 후계자들이 나뉘어. 괼더공작은 더군다나 흑태자 아들이야 잉글랜드의. 프랑스의 가문도 껴. 

 

후계자들에서. 율리히 공작이 지원한 쪽이 이겨. 결국 다 부르고뉴가 뒤에 처먹어.

 

The War of Chioggia (Italian: Guerra di Chioggia) was a conflict between Genoa and Venice which lasted from 1378 to 1381, from which Venice emerged triumphant.[1] It was a part of the Venetian-Genoese Wars.

 

키요짜 전쟁. 제노바 와 베네치아. 3년간. 베네치아 승. 둘의 130여년 전쟁 중의 막바지 전쟁.

 

 

이 지긋지긋한 숙적 베네치아 와 제노바. 음청난데 이 둘. 이전 얼핏 해상무역 루트 봤듯이 말야. 지중해의 두 앙숙이야. 아말피와 피사.는 이게 힘이 없고 이 둘만 남았어 해양도시의 두 강국.

 

4차 십자군으로 베네치아가 비잔틴 점령하면서 지중해 동부의 해상무역의 지배자가 된겨. 레반트와 이집가 알짜걸랑. 제노바가 곁다리 붙으면서리 슬픈겨. 

 

The war was primarily fought over control of the island of Tenedos in the Aegean Sea,

 

첫 지작이 저 테네도스. 옛 비잔틴이 이오니아. 터키 해변의 섬이야. 아직 이때는 비잔틴이야 아직 오스만이 섬들은 못먹어 배멀미해서. 여기 비잔틴 또 후계자 내전. 이 짝은 섬에서. 여길 제노바가 끼는겨. 해상 거점이 읎어 제노바는 이 지중해 동부에.
이때부터 다시 대드는겨 제노바가. 헝가리의 루이.를 꼬셔. 그 나폴리 동생 암살된 루이. 에다가 당시 베네치아 오른쪽이 지금 슬로베니아 잖아. 여기가 오스트리아 관할이걸랑. 즉 베네치아는 숙적이 오스트리아야. 오른쪽은. 
베네치아는 그러믄. 제노바 머리에 있는 밀라노.를 꼬시는겨. 
아 이들의 전쟁 전략은 그 외교술은 정말 최고야. 
제노바가 아드리아해 깊숙히 쳐들어가서리 베네치아 주변 도시까지 간겨. 그 막바지가 저 키요치아.야 베네치아 바로 아래 접했어. 베네치아 가 이겨. 헝가리 하곤 외교로 풀고. 돈 얼마 주면서 여 더이상 개입마슈.

 

넘어가 얘들은. 

 

 

구글거 전쟁. 아 이따위께 웃긴건데. 구글러. 귀글러. 중세 기사들이 겨울에 쓰던 일종의 헬멧이야. 백년전쟁 전반전. 저땐 에드워드 부자가 주도한 전쟁이 지나고 막 카롤라인. 샤를들이 왕일때의 전쟁기간이야. 아부지 장2세가 프와트르 전투에서 포로가 됬어 동생들이랑. 협상하면서 전쟁이 지루할 때걸랑. 용병들이 심심한겨. 길어지면서 돈 지급도 잘 안돼.
 
The Gugler (also Gügler) were a body of mostly English and French knights who as mercenaries invaded Alsace and the Swiss plateau under the leadership of Enguerrand VII de Coucy during the Gugler War of 1375.
 
저 용병 기사애들 데리고 약탈하는거야 저게. 저때 중심인물이 쿠시.의 엥게랑 7세.
 
이 인간이 참 재밌어. 아 얘들 정말 참 이 동양빠닥 정서로는 이해가 쉽지 않아. 저래서 쟤들인데. 
 
장2세가 두 아들이랑 귀족들이랑 포로가 되잖아. 협상하면서 돈 얼마 달라. 하고 풀어줘 장2세는. 그리고 저때 저 인간은 잉글랜드에 남아. 헌데 얘들이 말야. 감옥소에 있는게 아니라. 잉글랜드 왕궁에서 귀인 대접 받는겨. 루이 가 탈출한게 머 감옥서 탈출한게 아니라 저 어설픈 감시망 뚫고 나온거걸랑. 그거에 장2세가 약속 깼다 열받아서리 다시 자진해서 드간거야. 저게 이 동양빠닥의 전쟁이야기로 얘들을 보면 안돼.
 
 "...the young lord de Coucy shined in dancing and caroling whenever it was his turn. He was in great favor with both the French and English..."
 
저 엥게랑.은 저기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놀은겨. 5년을 있었어. 여기서 말야. 그 흑태자 에드워드의 딸과 약혼에 결혼까지 해. ㅋㅋㅋ. 나중에 프랑스 데려와서 애낳고 같이 살아. 그러면서 또 백년 전쟁 하는거야. ㅋㅋㅋ. 아 재밌어 얘들 진짜.
 
 
잉글랜드에서 다시 왔어 인질생활 끝나고. 저때 용병이 잉글랜드인은 리차드나 헨리편. 프랑스인은 샤를편. 이 아냐 저게. 의미 없어 용병에겐. 돈 주는 애가 아군이야. 
 
 
저 쿠시의 엥게랑.이 델꼬 다니는 용병들이 잉글랜드인에 프랑스인이야. 이 엥게랑 엄마핏줄이 합스부르크야. 합스부르크가 당시 취리히 옆에서 다시 짜질때야. 아돌프가 조카에 암살당하고. 저때 후계자 문제가 있는걸 이 엥게랑이 가는겨 저 합스부르크 있는 스위스 고원으로. 저 가는길이 또한 알사스 인겨. 
 
샤를도 보내는겨. 전쟁도 지지부진. 돈도 궁색하고. 거 가서 애들 돈벌이 하란겨. 이기믄 떨어지는것도 있겄지. 저긴 프랑스 밖의 땅이걸랑. 가면서 약탈 하는겨 저게. 나중 엥게랑.은 그러는겨. 난 저짓 안했슈.
 
그다가 이 인간은. 오스만이 지배하는 레반트에 가는겨 십자군 다시 하는거지. 가서 병걸려 죽어.
 
 
.The War of the Eight Saints (1375–1378) was a war between Pope Gregory XI and a coalition of Italian city-states led by Florence, which contributed to the end of the Avignon Papacy.
 
여덟 성인들의 전쟁. 교황 그레고리11세와 피렌체 연합의 전쟁. 아비뇽 교황정 끝내는 방향으로
 
 
아비뇽이 이태리 바로 옆이걸랑. 애들 프랑스에 납작 기들어 갈라믄 파리로 가던가. 가면서도 지들 이탈리아 로마와 교황의 세금걷는 땅들. 즉 여기가 피렌체와 나폴리 사이 그 반도 가르는 땅들이걸랑. 저걸 가까운 곳에서 보겠다는겨. 돈을 저기서 받아야 하걸랑 계속.
 
아비뇽 교황정이란건 그래서 사탄스러운거야 이 교황들을 밖의 시선에서 보면.
 
유수. 깊숙한 곳의 죄수는 먼 죄수. 저게 말야. 일본들이 번역을 할때에. 저 유럽사를 제대로 깊이 모를때 저딴 번역을 한거걸랑. 이상한 번역 많은겨 그래서. 왜 이상하냐면. 저걸 제대로 못 본겨 쟤들 역사를. 권리장전 권리청원 다 그래서 나오는 이상야릇한 번역이야 그게. 
 
헌데 저따위 역사해석을. 재들은 다시 수정해서 다시 보는데. 우리네는 여전히 일본들 번역한 글로 옛날 얄팍 단편 적 유럽사를 지금도 보는겨 여전히. 그게 지금 애들 책이야 책. 한글로 된 책.
 
 
쟤들은 저기서 탱자 탱자. 왕놀이 하면서. 비단 옷 입고 하렘 놀이 비슷하게 하면서 백년 가까이 논겨 저기서.
 
저 어설피 기들어간 곳에서. 이들이 피렌체가 차지한 땅을 원래 교황땅이다 라고 갖고 오란거지. 이전 다른 땅도 교황령이라고 뺏으려 하는겨. 그 수단은? 이들도 용병을 고용하는겨.
 
 
 
이때 용병이 잉글랜드인이야 대장이. 얘들이 몇년 계약해서리 선불 주고. 연금 계약하고 한게. 얘들이 백년전쟁으로 대륙 들어오고. 할때 용병단을 만들어. 그게 컴퍼니야. 화이트 컴퍼니. 이전 카탈란 컴퍼니. 나바르 컴퍼니도 잇어. 대륙에서 지지부진 하면서 얘들이 컴퍼니 아래에서 수주를 받는겨. 야 니덜 놀빠엔 지금 에드워드와 샤를의 사이인데. 저기 가서리 피렌체 좀 손봐주라.
 
 
피렌체 애들이 밀라노랑 같이 뭉치는겨. 저 교황 . 프랑스 왕이 무서워서리. 늙은 교황이 다구리 당해 죽어. 다음 교황은 독약 먹고 죽어. 무서워서 지들 발로 이탈리아를 버리고서는 . 여전히 여기 세금으로 저기서 하렘놀이하는들. 이 지금 머 또 우리땅도 달래.
 
용병대장을 꼬시는겨. 돈 더 주께 교황 말 듣지마. 그리고 교황령 도시들을 막막 로비하는겨. 니덜 교황말 들을껴? 교황이 니덜 버린지 얼만데 여전히 교황지지냐?
 
이들 로비가 성공을 한겨.
 
 
이들이 여덟명이야. 주교에 수도원장에 수도사들에. 결국 칼질한번 안하고 교황이 진겨.
 
해서리 이때. 아비뇽체제를 이 교황들이 접는겨. 아 로마로 돌아가자. 이리 더 있다간 이탈리아에서 쫓겨나겄다. 여긴 남의 땅이다.
 
해서 저가 아비뇽 마지막 교황인겨. 쟤들도 정식 교황이야. 로마로 와. 이후 아비뇽에서 교황교황 하는들은 교황으로 안쳐.
 
 
저때 여덟명을 피렌체의 시뇨리아. 지도체에서. 성인으로 추앙한겨. 해서 저때를 여덟성인의 전쟁. 하는겨.
 
.
The Peasants' Revolt, also called Wat Tyler's Rebellion or the Great Rising, was a major uprising across large parts of England in 1381
 
잉글랜드 농민 반란. 리차드2세때. 에드워드들도 죽고. 흑사병이 지나가고. 전쟁이라 세금은 걷어. 저 와중에 저 리차드2세. 흑태자의 아들이야. 얘가 열살에 왕이 된겨.. 정세도 불안하고. 이때 터진겨.
 
얘가 나중에 병딱 짓 하다가. 랭카스터에 쫓겨나가는겨.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의 10여년 전쟁 마지막.
 
The Lithuanian Civil War of 1381–1384 was the first struggle for power between the cousins Jogaila, Grand Duke of Lithuania and later King of Poland, and Vytautas the Great. 
 
The Lithuanian Civil War of 1389–92 
.
 
리투아니아 내전.
 
Jogaila (About this sound Jogaila), later Władysław II Jagiełło  (c. 1352/1362 – 1 June 1434) was the Grand Duke of Lithuania (1377–1434) and then the King of Poland (1386–1434), first alongside his wife Jadwiga until 1399, and then sole King of Poland. He ruled in Lithuania from 1377. 
 
Vytautas (c. 1350 – October 27, 1430), also known as Vytautas the Great from the 15th century onwards, was a ruler of the Grand Duchy of Lithuania, which chiefly encompassed the Lithuanians and Ruthenians.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튜튼 기사단. 
 
튜튼기사단이 쑤시고 들어간곳이. 프러시아. 여기가 발트해 접하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른 아래로 접하는 그 사이야. 이 왼쪽이 포메라니아.야 여긴 신성로마제국 영지야. 즉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해변은 없어 당시. 여기 해변은 포메라니아. 프러시아. 그리고 리보니아 십자군국가인 테라 마리아나. 야
 
해서 프러시아.지역에 쑤셔들어간 튜튼은. 저기가 페이건 이라는 핑게로. 그리스도 화 하겠다는 구실로 리투아니아랑 폴란드랑 연일 전쟁하면서 저길 2백년 쑤셔박혀있는겨. 그리스도 되었다지만 그게 의무는 아니걸랑. 원주민 발틱인들과 이사온 슬라브인들이 섞인 저곳은 아직 다 야만이란겨. 지들이 그리스도 구실로 저기서 있는겨. 낭중에 종교전쟁때 마르틴 루터한테 설득당한듯 얍삽이 하게 등 돌려서리 폴란드애들에게 정식 영지로 승인을 받으민서리 킹덤 하는거고.
 
 
할때. 저기는. 백년전쟁 당시에. 요가일라 와 비타우타스. 가 나오는겨. 이 둘이 사촌 지간이야. 나이가 걍 비슷하다고 치는겨. 몰라 출생일을. 즉 저긴 역사가 저때도 없는거야 저게. 죽는 날은 확실히 박혔어. 즉 그리스도가 좀 더 스며서리. 자리를 잡으면서. 기록이 되는거야 저 리투아니아는. 
 
리투아니아.에서 치는 위대한 두 인간이 저 요가일라.와 비타우타스 야. 둘이 내전하면서리 결국 협상하고 같이 지내. 말년은 요가일라.는 어차피 폴란드 왕이었으니까. 비타우타스 죽고 결국 저 리투아니아.는 요가일라의 핏줄이 갖고가. 비타우타스.는 자식없이 죽었어. 비타우타스가 요가일로랑 싸울때 튜튼이 비타우타스 편을 드는거고.
 
.
요가일라.가 중요한 인물이야. 얘가 만든 왕조가 동유럽을 지배하는겨 저때부터.
 
그 시작이 이전 썰한 헝가리에 온 앙주 루이.와 폴란드 공주의 딸. 헤드위그.
 
 
Jogaila was duly baptised at the Wawel Cathedral in Kraków on 15 February 1386 and from then on formally used the name Władysław or Latin versions of it.[15][nb 7] The marriage took place three days later, and on 4 March 1386 Jogaila was crowned King Władysław by archbishop Bodzanta.
 
헤드위그가 폴란드 왕비가 돼. 핏줄이 끊겨서. 이 여자가. 요가일라.랑 결혼하는 해가 1386년. 이야. 즉 저 1차내전 때는 요가일라.는 결혼전이야. 헤드위그 가. Jadwiga ([jadˈvʲiɡa]), also known as Hedwig (HungarianHedvig; 1373/4 – 17 July 1399), 결혼할때 13살이야. 저 요가일라 저가 몇살이야 24 또는 34세야. 
 
헤드위그.가 또한 결혼시장에서 최고일꺼 아냐. 결혼하믄 왕이되는데. 막막 선짜리가 들어오는겨. 13살 꼬마 여자애가. 성당에서 예수님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셨대. 그때 갓의 목소리가 들리신겨. 요가일라랑 결혼하려무나. 요가일라에게 그리스도 세례 받으면 결혼하겠다 하고. 요가일라는 크라코프에 와서 세례 받고 3일 후에 한겨. 
 
저때 말야. 찌질한 합스부르크 윌리엄. 차였다고 복수하는겨. 저 결혼 무효라고. 내가 헤드위그랑 잦잦했다고. 시다바리 하나 풀어서리 막막 소문내고 다닌겨. 신의 소리 까지 들은 헤드위그가. 엄숙히 맹세를 해. 사람들 많은 앞에서. 나는 요가일라 외에는 잦잦한 벌레는 없어요. 앞으로도 없을거예요

 

Queen Jadwiga's Oath, by Józef Simmler, 1867

맹세하는 헤드위그.

 

after all witnesses confirmed her oath, Gniewosz of Dalewice confessed that he had lied.[111] She did not take vengeance on him.[111]

 

그 소문 퍼뜨린 시다바리는 자기가 거짓말했다고 자백해. 헤드위크는 아무런 복수도 안해.

 

 

할때. 저 헤드위그.의 남편 요가일라.가 폴란드 왕이 되고. 리투아니아의 비타우타스.랑 싸우다가. 넌 그랜드 듀크.고 난 슈퍼듀크.다 그만 싸우자. 하고 서로 살다가. 나중엔 요가일라 핏줄이 둘다 갖는겨.

 

나중에 하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