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ussite Wars, also called the Bohemian Wars or the Hussite Revolution, were fought between the heretical Christian Hussites and the combined Catholic orthodox forces of Sigismund, Holy Roman Emperor, the Papacy and various European monarchs loyal to the Catholic Church, as well as among various Hussite factions themselves. After initial clashes, the Utraquists changed sides in 1423 to fight alongside Roman Catholics and opposed the Taborites and other Hussite spinoffs. These wars lasted from 1419 to approximately 1434
후사이트 전쟁들. 보헤미안 전쟁들. 후사이트 개혁. 1419-1434.
이건 중요한 전쟁이야 이게. 저 시기가. 백년전쟁 후반전에. 저 중심은 아비뇽 교황정 교황들이 로마로 오고 나서리. 여전히 아비뇽 교황. 일명 안티교황.들과 로마교황들의 웨스턴스키즘. 서로 교황 싸운 직후에 터진겨.
즉 시작은 결국 레반트십자군 패배에 이은 교황정 깨갱에 이은 교회의 타락이야 저게.
The Western Schism, also called Papal Schism, Great Occidental Schism and Schism of 1378, was a split within the Catholic Church lasting from 1378 to 1417
아비뇽 교황정. 끝나고 서로 싸우는 웨스턴 스키즘.이 그후 40년. 여전히 아비뇽에 처박혀있는겨 지들이 교황이라고. 아비뇽 교황정은 백년만에야 제대로 끝나는겨.
저때 교황정이 야 아비뇽에서. 이건 유수. 포수. 죄수가 아냐. 이들은 여기서 타락의 극치를 달려 왕정체제 하렘놀이를 해 여기서. 프랑스는 쟤들을 캡티비티. 포로취급한게 아냐 저 해석은 잘못된 해석이야. 이제 저따위 해석은 안써. 완전한 역사 오역이야. 아비뇽 유수 란 건 없어. 굳이 이름 지으면 아비뇽 교황들의 타락놀이. 하면 돼.
교황이 백년동안 아비뇽에. 이어서리 아비뇽대 로마 쌈질 하면서. 싸이키의 중심이 무너진겨. 중심이 타락했어 힘을 잃었어. 전체 교회들도 타락을 하는겨 저게. 그에 대한 반발이 보헤미아 에서 터진겨.
Czech:
( 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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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1369 – 6 July 1415[2]), sometimes Anglicized as John Hus or John Huss, also referred to in historical texts as Iohannes Hus or Johannes Huss) was a Czech theologian, Catholicpriest, philosopher, master, dean, and rector[3] of the Charles University in Prague who became a church reformer, an inspirer of Hussitism, a key predecessor to Protestantism and a seminal figure in the Bohemian Reformation.
얀 후스. 신학자 카톨릭사제. 철학자. 카를 대학교 프라하의 학장에 청장에 다 한겨. 루터는 이사람 죽고 백년 후에 티나온 거일 뿐이고. 루터는 재수 좋은거야. 얀 후스는 산체로 태워죽였어. 루터는 걍 말년에 병들 오고 류마티즘에 신장에 귀 눈 점점 안들리다가 걍 침대에서 편하게 죽었어.
.일단 저 보헤미아. 가 말야.
엘베강.이 프라하 의 약간 북동쪽에서 흘러서리. 프라하를 바로 위에 지나서리 죽 흘러내려서리 함부르크 지나고 덴마크 반도 왼쪽으로 북해로 빠져
오데르강은 폴란트 서남부 실레시아. 그 아래 슬로바키아의 그 카르파티아 산맥에서 내려서리. 폴란드 서남부의 실레시아의 위를 얘가 가름하면서 흘러가서리 독일과 폴란드 경계 이루면서 발트해로 빠져.
엘베강의 시작이 이 프라하 쪽이야. 여기엘 슬라브가 온겨.
The Slavs arrived in Bohemia in the 6th century. According to historian Dušan Třeštík, they advanced through the Moravian Gate (Moravská brána) valley and in the year 530 moved into Eastern Bohemia, along the rivers Labe (Elbe) and Vltava(Moldau) further into Central Bohemia.
처음에 슬라브. 6세기에 왔어. 슬라브애들중에 제일 초창기 맴버들이야. 카르파티아를 넘지 않고 줄기 따라서 저 끝에 끝까지 정착한겨. 이 보헤미안들은 그래서 처음엔 슬라브야.
여기서 아래에 정착한 아바르 스텝애들이랑 싸우고. 헝가리쪽 훈족 마자르 애들이랑 싸우고 해서 올라온 슬라브들이 또한 여기에 정착을 해.
여긴 트라이브야 그래서. 샤를 마뉴 오기 전엔. 샤를마뉴 자식들이 여까지 와서 전투를 해.
The Duchy of Bohemia, also referred to as the Czech Duchy,[1][2] (Czech: České knížectví) was a monarchy and a principality in Central Europe during the Early and High Middle Ages. It was formed around 870 by Czechs as part of the Great Moravian realm. The Bohemian lands separated from disintegrating Moravia after Duke Spytihněv swore fidelity to the East Frankishking Arnulf in 895.
c. 870–1198
여기가 게르만루이.의 자식들에게 항복하고 정식으로 듀크. 공작령으로 들어가는게 서기 895년이야. 이때 듀크. 공작은 슬라브야. 슬라브인이 보헤미아 공작이 된겨.
The Kingdom of Bohemia, sometimes in English literature referred to as the Czech Kingdom[2][3] (Czech: České království; German: Königreich Böhmen; Latin: Regnum Bohemiae, sometimes Regnum Czechorum), was a medievaland early modern monarchy in Central Europe, the predecessor of the modern Czech Republic. It was an Imperial State in the Holy Roman Empire, and the Bohemian king was a prince-elector of the empire. The kings of Bohemia, besides Bohemia, ruled also the Lands of the Bohemian Crown, which at various times included Moravia, Silesia, Lusatia and parts of Saxony, Brandenburg and Bavaria.
1198–1918
이들이 3백년 공작령에서 킹덤이 되는겨 13세기 들어서면서. 이게 20세기까지 가다가 체코가 된건데. 이 보헤미아 옆이 모라비아. 마그레이브 후작령이야. 이 모라비아.가 애초에은 슬로바키아 땅까지 모라비아였던겨 이게 줄어들어서리. 슬로바키아 는 떨어져 나가고. 체코 동쪽이 모라비아. 라는 이름으로 남았어 지금. 해서 체코는 크게 서와 동. 보헤미아 와 모라비아. 의 합이야. 위에 찔끔 실레시아. 이고
The Přemyslid dynasty or House of Přemyslid (Czech: Přemyslovci, German: Premysliden, Polish: Przemyślidzi) was a Czech royal dynasty which reigned in the Duchy of Bohemia and later Kingdom of Bohemia and Margraviate of Moravia (9th century–1306), as well as in parts of Poland (including Silesia), Hungary, and Austria.
저 시작 왕조. 프레미슬리드 왕조. 즉 이전 듀크부터 이어서리 킹덤까지. 그 핏줄들이 계속했던겨 초기에. 이들이 4백년을 저 보헤미아 와 모라비아를 지배한겨. 이들은 슬라브야. 게르만이 아냐. 1306년에 핏줄이 끊기는겨.
얘들이 슬라브 이지만 말야. 역시나 게르만이랑 막막 피가 섞여 결혼으로. 헝가리 폴란드에 합스부르크에 작센에 다 접한 지역이걸랑. 슬라브 라고 따로 논게 아냐 얘들이.
해서 킹덤되면서 얘들은 선제후가 돼. 7명의 선제후 중 대주교 셋인 쾰른 트리어 마인츠. 다 라인강 서쪽이야. 나머지 네명이 작센.에 저 라인강 부근 팔라틴. 막 생긴 저 작센 너머 브란덴부르크. 다음에 얘드리 보헤미아 킹덤이야. 즉 슬라브 이지만 이미 게르만이 된겨. 듀크가 되면서 오백년 너머서리 다 섞인겨.
이 옆 왼쪽이 바바리아.야.
The Duchy of Bavaria (German: Herzogtum Bayern) was, from the sixth through the eighth century, a frontier region in the southeastern part of the Merovingian kingdom.
이건 메로빙거. 클로비드자식애들이 만든겨.
c. 555–1623. 이 바바리아는 게르만이야. 이들이 저 오른쪽 보헤미아 로 가는겨. 이 보헤미아에서 게르만애들이 정착을 하는겨. 이 게르만과 슬라브가 섞인 보헤미아. 가 힘이 음청난겨 해서.
쉼.
저걸 보면 말야. 게르만이 변한겨. 깨달은겨.
부락 야만일때 게르만은 상대를 인정을 안했어. 이동하면서 다른 종족은 싸그리 죽여. 그리고 자기들 영역에 줄을 쳐. 넘어오면 죽이는겨. 그 줄 안에서 실컷 처먹고. 처먹을 거 없으면 다시 이동해서리 갈리아애들 영역으로 들어가서리 약탈하며 정착 살다가 다시 이동하는 게 반복이었어. 해서 갈리아애들이 게르만이 무셔무셔 이동하다가 카이사르가 움직인겨.
카이사르의 상대는 갈리아가 아냐. 게르만이야.
게르만애들이 깨달은겨 그제서야. 로마 망하고 라인강 넘어오면서. 갈리아애들이 익힌 로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얘들이 정착을 하고 문명인 키빌레스가 되는겨. 이 깨달음이 사오백년이야.
그리고 똑같이 오른쪽에 들어오는 슬라브 애들을 인정을 한겨. 샤를마뉴 애들이 보헤미아 치러가는게 서기 8백년 직후야. 니덜 여기서 살아라. 하는겨 쟤들이. 그리고 서로 혼맥 하면서 섞인겨.
똑같이 이게 폴란드. 헝가리 킹덤들이야. 얘들이랑 같이 산겨. 예전같으면 저런건 꿈도 못꿔 게르만애들에겐.
이것 역시 로마에 배운거걸랑. 로마는 갈리아.에 군단병들 두면서. 저 군단병들이 갈리아인들과 결혼하면서 섞인겨 저게. 쟤들은 민족으로 차별을 하지 않았어. 로마를 배우면 다 같은겨. 저걸 게르만애들이 천년 다되서 슬라브랑 저리 사는겨 인정하면서.
저게 게르만애들에겐 결국 천년이 걸린겨 저게.
이땅바닥은 여전히 민족 하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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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폴란드 랑 똑같이 저기도 그 첫 왕조 핏줄들. 듀크부터 시작한 개국의 핏줄이 끊겨. 똑같이 삼사백년 각각 슬라브 왕조들이 게르만과 섞여서리 직계 방계 핏줄들이 이어가다가 뚝 끊긴겨 그마저도.
헝가리 부터 끊겼어. 여기에 오는게 프랑스 카페 앙주야. 앙주의 샤를. 헝가리의 샤를1세가 되는겨. 이 아들이 헝가리 루이 대제.
바로 옆의 폴란드가 끊겨. 폴란드 공주랑 결혼한 헝가리 루이가 폴란드도 겸임해.
이 루이가 죽어. 루이 딸이 두명이. 큰딸 마리는 헝가리. 작은딸 헤드위그.는 폴란드. 에서 퀸으로 다스리는겨. 해서 폴란드 헤드위그는 리투아니아의 요가일라.를 맞으면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가 합쳐지기 시작하는겨.
보헤미아.가 역시 끊긴겨 저 사백년 이어온 프레미슬리드 왕조 핏줄이. 대공위시대야 역시. 인터 레그눔. 지배자들이 벼. 이때 아래 오스트리아.가 역시 또 막 합스부르크의 루돌프가 나오는때야 즉 오스트리아 도 핏줄이 끊긴겨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루돌프가 먹으면서 이 합스부르크가 20세기까지 간겨 이게. 저때 역시 이 루돌프 등 오스트리아 주변 공작 후작들이 보헤미아 빈자리를 차지하는겨 짧게.
이걸 쑤시고 들어간 가문이 룩셈부르크 가문이야.
이때가 1250년 프리드리히2세 황제 죽은 이후의 신성로마황제 자리가 빈 대공위시대야 역시. 이때 이 빈자리를 저 합스부르크의 루돌프와 아들 애꾸눈 알베르. 나사우의 아돌프 싸우다가. 티나오는 가문이 룩셈부르크야.
이 룩셈부르크 가문이 저 서기 1300년 전후부터 백년을 신성로마황제. 와 보헤미아 왕.을 하는겨. 그리고 백년전쟁 말에 부르고뉴 애들에게 저 룩셈부르크가 먹히는겨.
즉 저 룩셈부르크 가문이 등장할 때가. 1250년 지나면서리. 마침 이때 폴란드 헝가리 보헤미아 의 초기 왕조 핏줄들이 삼사백년만에 끊기면서 신성로마제국과 보헤미아.를 지배하는겨 이게.
그러면서 말야. 헝가리의 루이 큰딸 마리.가 역시 결혼을 이 룩셈부르크 가문애랑 하는겨. 해서 룩셈부르크가 마리랑 같이 이 헝가리 왕을 하는겨. 마리 죽고도 헝가리 왕을 하다가 이후는 여긴 합스부르크가문 요가일라 가문 헝가리귀족가문인 훈야디가문이 서로 하다가 최종 합스부르크에 가는거고.
폴란드는 헤드위그의 남편 요가일라가 2백년 가까이 하다가. 역시 핏줄 흐릿해지면서 리투아니아랑 카먼웰스로 가. 얘들은 여기서 귀족들이 왕을 선출을 해. 앞선 애들이야. 해서리 나중엔 프랑스의 앙리3세도 여기 왕을 하는겨. 완전 민주정의 절정을 하던 애들이야 이 폴란드 리투아니아 카먼웰스가.
다시 정리하면. 헝가리의 마리.는 이후로 룩셈부르크 남편이랑 잠깐 하다가. 요가일라 합스부르크 귀족훈야디에 다음 바로 합스부르크가 19세기 까지 가는거고
폴란드의 헤드위그.는 리투아니아 요가일라 남편이 2백년 가까이 하다가 리투아니아랑 카먼웰스 하면서 근대로 접어드는거고
이 보헤미아. 는 룩셈부르크.가 신성로마황제 자리와 함께 백년있다가. 똑같아 이게. 합스부르크 가문에 이전 보헤미아의 귀족가문에 옆에 요가일라에 번갈이 하다가 합스부르크가 지배한겨 근대까지.
헝가리 보헤미아 폴란드.가 역사가 똑같은겨 저게. 그 맥락이. 헝가리 보헤미아는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랑 접한 애들이걸랑. 오스트리아가 뒤의 4백년을 지배를 한겨.
폴란드는 떨어져있어. 리투아니아랑 연합해서리 나름 자기들 길을 가려고 한겨. 헌데 얘들은 오른쪽 러시아. 아래 오스만. 위에 스웨덴. 에 치이다가 저리 쪼글아들은겨.
할때 말이야.
보헤미아의 저 후스전쟁은. 저 때 왕이. 룩셈부르크 가 잠시 있었던 4대조로 왕할때의 마지막이야. 이때 룩셈부르크는 이 가문이 신성로마황제를 겸임을 한거고. 즉 얘들도 끝물이야 이게.
왼쪽에선 프랑스 잉글랜드 백년전쟁. 저 저지대에선 서로들 막막 또 후계자 핑게로 전쟁. 플랑드르쪽은 여전한 독립전쟁. 저 끝으로는 튜튼이랑 폴란드리투아니아 전쟁. 아래서는 막 오스만애들 올라오는 전쟁
그리고 아비뇽 교황정에 교황끼리 서로 내가 교황 하는 웨스턴스키즘.
에서 이 룩셈부르크 가문이. 힘이 없어. 신성로마 황제든. 보헤미아 킹이든.
얘들 다음에 바로 티나오는게 합스부르크야. 합스부르크의 시대 막 이전이 이 룩셈부르크인겨.
이 룩셈부르크의 마지막 왕.일때 터진게 저 분위기 에서의 후스전쟁.이야. 이때 등장하는 인간이 얀 후스 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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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전쟁. 하면 애들이 말야. 마르틴루터 1517년 부터 해서리 시작어쩌고 하지만. 이전 봤듯이. 7세기에 나온 폴리시즘. 아르메니아에서 시작한. 그때부터 피터의 브뤼.가 화형 당하고 아벨라르 나오고 할때부터. 알비파 십자군 카타르 십자군 할때인 서기 1200년대에. 벌써 3백년 전부터 종교전쟁이야. 기독교 안에서의.
저게 지금의 기독교야 저게. 저 피비린내나는 이념전쟁 속에서 지금 기독교인겨. 저건 엄청난겨.
죽임질 밖에 없는겨 저게. 종교도 이념이야. 신앙도 이념이야. 민족이란 이념 놀이.
개 무시기 야만 일때나 하는 짓덜이야 저게.
저러면서 깨달은겨 쟤들은. 이념놀이가 인간을 죽이는구나.
다른 종교 신앙과의 전쟁. 즉 이슬람과 하면서. 동시에 쟤들은 자기 종교 안에서 조오오온나게 피터진겨. 슬람이와의 전쟁은 저 지들 속의 이념전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저건.
종교란 이념 전쟁 끝나고선. 민족이란 이념전쟁질로 세계대전이 터진겨. 조오오온나게 죽여. 저게 게르만이고 저게 투르크야.
그다음엔 . 종교로 이념놀이. 민족으로 이념놀이 끝나니깐. 이젠 . 마르크스 인민놀이.의 이념전쟁이 터진겨 이게.
조오오오오온나게 후진 저따위 마르크스 . 저건 말야 걍 문명 이전의 야만. 이상은 없어 저 개념은.
모두가 평등하게. 그따위꺼 없어 이 들아.
저게 지금 이땅바닥을 지배하는 겨. 이제야 시작을 하는겨. 쟤들이 다 버린. 민족과 허상이념 놀이가 똘똘 뭉쳐서 지금 이땅 미디어를 휘어잡는거지. 이땅은 원래 종교가 없었걸랑. 유교는 이건 조폭들의 신조 인지 이건 종교도 신앙도 아니걸랑. 얘들이 이땅바닥의 신앙 종교를 오백년 지웠걸랑. 종교전쟁은 못하고 남들이 버린 이념전쟁을 하는거지.
소득주도정책을 더 쎄게 하겄슈.
빨리 쎄게 망하는거지.
다 말장난이걸랑. 저게. 세계사에 아무런 참여를 안한 분들이 무식한거걸랑 저게. 후진 북조선이 먼 천국인양 가랭이 부여잡고서리 우리민족끼리 .
아 슬픈거지 저건.
태극기.
저 태극기가 음양에 주역 괘를 그리잖냐. 저게 먼지 아냐. 저것도 조선 구한말에 만든거걸랑. 아 남들다 자기들 헤럴드리가 있는데 우리는 없슈 우리도 하나 만들쥬. 태극 무니에 건곤감리. 조선사람들 염색 염료 안료가 없어서리 하이얀 옷만 입는 사람 아 백의민족. 바탕은 하얗게.
돈이 없어서리 다들 허연 옷 입는겨. 염색은 돈이야 돈.
Geomancy (Greek: γεωμαντεία, "earth divination") is a method of divination that interprets markings on the ground or the patterns formed by tossed handfuls of soil, rocks, or sand. The most prevalent form of divinatory geomancy involves interpreting a series of 16 figuresformed by a randomized process that involves recursion followed by analyzing them, often augmented with astrological interpretations.
지아먼시. 어쓰 디비네이션. 땅에 신성이 나타난겨. 저게 먼지 아냐. 저게 점이야 점. 흙점 하는겨 그래서. 쌀점이야 점집에 가면 어떤 앤 쌀 휙 뿌리걸랑. 그 모양 보고 막 번역 하는겨.
저걸 쟤들이 언제부터 한걸까. 저게 마그네틱. 이란 자석을 접할때야. 신기하걸랑 막막 움직여서 막 서로들 나름 모양을 만들어. 어 이 신이 강림한겨 흙에. 저게 지오맨시.야 흙에 디비네이션. 신이 내려오신겨.
The sixteen geomantic figures.
저 흙들이 막막 모양을 만들어. 저기서 티나온게 주사위 놀이야.
저걸 무당이 해석하는겨.
The eight trigrams used in I Ching
저게 동양바닥에선. 저게 주역인겨 . 머 저게 별건줄 아냐. 저따위 을 고대와 중세에 걍 아랍애들 고대그리스애들 게르만애들이 자석 마그네틱의 원리 모르고 할때 처음 시작해서리 저게 먼 신성한 문양인줄 알고 하면서리 지들끼리 막막 개념놀이하다가 나온겨.
조선실록보믄 주역괘가 어쩌고 저쩌고. 할 이 없으니 국무회의에 아 주역 짱. 이 이나 해대고 있고
저걸 지들 나라의 헤럴드리. 문장으로 삼은겨 저걸.
저게 이땅바닥의 현황 이야.
저걸 지금 대표하는 명사.가 한무당이야 저게.
이땅은 한무당이야. 이성이 없고. 무당짓 하는 페이건들의 나라야.
무식한겨 이게.
최순실이 정부들 부처 시아이작업한 로고들을 태극무늬로 다 일괄로 바꿨다느니 어쩌고 하민서리. 그건 상관없다 저쩌고 하면서 넘어갔지만. 야 저건 적폐들이 한거 아니냐? ㅋㅋㅋ 최순실이 했든 안했든? ㅋㅋㅋ
저건 또 잘 써요. 적폐 들이 만든거라 다 없애고 다른 무늬 만들줄 알았는데. 그럴리가 없걸랑. 오 조선이 만든 태극. ㅋㅋㅋ. 웃겨. 우리네 조선의 태극.을 적폐당이 해럴드리로 삼으려 하다니!!!
야 참. 적폐 적폐. 적폐청산을 더 강화하겠대.
조선 들이 연일 소인배놀이로 오백년 놀더만. 그러면서 상대를 죽여온 저 소인배 적폐 이념 놀이. 를 21세기에 여전히 하는겨 저걸.
니덜은 이땅바닥이 얼마나 개후진걸.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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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후스 하나도못하겄네 이거. 이거만이라도 빨랑 정리하자.
해서 저당시 보헤미아 왕인 지기스문트.는 걍 독박쓴겨. 저 당시 시대분위기가 보헤미아.에서 터진겨 저게. 저게 터질 곳은 보헤미아 밖에 없었던겨 저때는.
얀 후스.가 교회 부패를 연일 들먹이는겨. 아비뇽 (안티)교황과 로마교황이 서로 경쟁하는거야 이때. 저거 이단이다. 서로 들쑤시는거지 지들이 더 정통성 있는거마냥. 저거 빨랑 십자군 발기해서 쳐들어가 깨부서라 하는겨.
In spite of the departure of many prominent Hussites, the troubles at Prague continued. On 30 July 1419 Hussite procession headed by the priest Jan Želivský attacked New Town Hall in Prague and threw the king's representatives, the burgomaster, and some town councillors from the windows into the street (the first "Defenestration of Prague"), where several were killed by the fall, after a rock was allegedly thrown from the town hall and hit Želivský
디페네스트레이션 오브 프라하. 프라하 창문투척사건. 페네스트라. 가 라틴어야. 윈도우. 창문. 던지는겨 사람을.
얀후스가 1415에 화형을 당하는겨. 교황 애들이 서로 들쑤시면서. 그리고 4년 후야. 막막 부글부글 한거지. 저때 킹이 보낸 카운슬러들. 행정관리들이지. 이들을 걍 시청 청사에서 던져버린겨. 예닐곱명은 떨어져서 죽고. 돌도 막막 던졌대.
카톨릭의 기사단들은 정부군에 붙는거고. 헝가리는 마리가 룩셈부르크랑 결혼이니 헝가리도 여기에 붙고.
후스들이.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요가일라 애들을 꼬시는겨. 당신들이 여기 왕하라고. 해서 이들은 후스애들을 지원해.
저때 보헤미아가 15년 전쟁에 휩싸이면서 아주 초토화가 돼.
On May 23, 1618,. 두번째 프라하 창문투척사건이. 딱 2백년 만에 터진겨. 합스부르크가문이 이전에 몇번 왕하다가 요가일라 이기고 아주 보헤미아 헝가리를 꿰차서 근대까지 갈때의 시작이야. 얘가 보헤미아에 다시 카톨릭을 쎄게 심는겨.
독일 30년 전쟁의 시작이야 저게. 2백년 동안 죽어지냈던 후스들이 티나온겨.
30년 전쟁의 끝도. 저 프라하야. 프라하를 점령한 애들은 스웨덴이야. 헌데 스웨덴도 저 프라하를 다 점령하질 못했어. 그러면서 30년 전쟁이 끝나.
The Codex Gigas (English: Giant Book) is the largest extant medieval illuminated manuscript in the world, at 92 cm (36 in) long.[1] It is also known as the Devil's Bible because of a very unusual full-page portrait of the devil, and the legend surrounding its creation.
이때 스웨덴 애들이 프라하에서 갖고 간게 코덱스 기가스. 큰 코덱스. 저 책이 커 코덱스가. 세로 92센티. 양피지 가죽으로 되어있는 페이지들이야. 저기에 악마가 그려져있어. 저거 재밌는건데. 넘어가고.
저건 아직도 스웨덴에 있어.
얀 후스.이야기도 이게 말할게 많아. 체코 사람이라고 다 모르는데. 넘어가고
Anecdotally, it has been claimed that the executioners had trouble intensifying the fire. An old woman then came to the stake and threw a relatively small amount of brushwoodon it. Upon seeing her act, a suffering Hus then exclaimed, "Sancta Simplicitas!". The phrase's Czech equivalent, "Svatá prostota!" (vocative form: "Svatá prostoto!", Translated "Holy simplicity!") is still used today when commenting on a person's foolish action coming from the belief that s/he is doing something righteous.[citation needed]
얀후스가 화형당하는데. 불이 활활 안타오르는겨. 얀 후스는 묶여있고. 불이 쎄게 올라와서리 빨랑빨랑 확 타야하걸랑. 괜히 뜨뜻 미지근 작게 불이나니 얀후스도 고통스런겨. 그걸 본 어떤 노파가 덤불이랑 자잘한 나무를 갖고 와서 거기에 더 쌓은겨 빨랑 붙으라고 불이.
그걸 본 얀 후스가. 고통속에서. 상크타 심플리키타스. 아 저말이 디게 애매해. 심플리시티. 저게 작다 적다. 우리말로 소박하다 검소하다 해도. 저걸 양에 빗대서리 그 조그마하게 더해준 나무 덤불이 성스러워유 고마워유 하는 건지. 아니면 아 이왕 가져올바엔 한무데기 더 확 가져오시믄 빨랑 죽을텐데 넘 고통스러 하는건지. 해서 비꼬는건 아니겄지 얀후스께서. 고맙다는 거겠지 저 조그만 양의 노파의 덤불도.
해서리 저걸. 오히려 노파를 비하하면서 어리석은 짓.이라고 지금 쓴다고 하지만. 노파는 얀후스를 위한거지. 어차피 죽는데 빨랑 죽는게 나은거지. 해서 저 어리석은 짓.은 잘못된 쓰임같아.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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